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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42)화 (4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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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건 뭐야?”

“네 거 아냐.”

카밀라는 그제야 바구니에 든 간식들을 꺼내 쭉 펼쳤다.

“이 누님이 너를 위해 준비했단다.”

감사히 먹도록.

[와!]

확실히 아이의 얼굴이 많이 밝아졌다. 아르시안의 기분이 많이 안정됐기 때문이겠지.

솔직히 카밀라도 좀 의외였다. 아르시안이 생각보다 빨리 마음을 다잡은 것 같아서. 좀 더 오래 정신 나간 놈처럼 굴 줄 알았는데.

"어서 먹어.”

[…….]

“왜?”

아이가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이제 안 먹어도 돼요.]

“어?”

[이제 배고프지 않아요.]

아이의 미소가 짙어졌다.

의아해하는 카밀라에게 다가선 시에르가 그녀를 꼭 안아 줬다. 순간 아이의 입술이 볼에 닿았다.

물론 카밀라는 아무런 감촉을 느끼지 못했지만 뭔가 기분이 간질간질했다.

[고마워요, 누나.]

“…….”

[정말 고마웠어요.]

다시 한번 카밀라를 꼭 안아 준 아이는 한 걸음 물러섰다. 아이의 시선이 자신의 형, 아르시안에게 향했다.

무슨 상황인지 전혀 알지 못한 채 의아한 눈빛으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그에게 다가간 아이가 이번에는 그를 꼭 안았다.

[형, 정말… 정말 미안해.]

자신이 죽은 후 형이 더욱 마음을 닫고 아버지와 점점 더 멀어지는 모습을 보며 무척 마음이 아팠다. 모든 게 자신의 잘못된 선택 때문인 것 같아 형의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

자신이 그런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다면, 그냥 자연스럽게 죽었다면 형과 아버지의 관계가 좀 더 나아졌을까?

후회스러운 마음이 수도 없이 들었다. 비록 형을 위한 선택이었다고 하지만 그것이 정말 잘한 선택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젠 마음이 놓였다.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해 보이는 형의 모습을 보며 괜히 자꾸 웃음이 났다.

카밀라는 아이의 말을 차분히 전해 줬다.

아이가 목소리가 살짝 떨리고 있었지만 눈물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는 연신 미소를 짓고 있었다.

[형이…….]

‘형이…….’

그날, 시에르가 죽던 날. 제 형을 바라보며 뭔가 말하려 하던 아이는 끝내 말을 맺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형이 우리 형이라 너무 다행이야.]

“…….”

[형이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오랫동안 전하지 못한 말.

눈빛이 흔들리는 형을 보며 시에르는 그를 다시 꼭 안아 줬다.

마지막으로 아이가 카밀라에게 다시 시선을 준다.

[우리 형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누나.]

‘아냐.’

그건 아냐. 그런 부탁 하지 마!

미간을 찌푸리는 카밀라를 보며 아이가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저리 소리 내어 웃는 건 또 처음이네.

잠시 후 아이의 몸이 점점 희미한 빛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점점 흐릿해져 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카밀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럴 때 그녀가 해 줄 수 있는 건 단 한 가지뿐이었다.

‘지켜보는 것.’

그저 그들의 마지막을 지켜보고 기억해 주는 것.

카밀라는 그렇게 환한 웃음을 남기 채 사라져 가는 아이를 그저 조용히 지켜봤다.

아르시안 역시 모든 상황을 이해한 듯 별다른 말이 없었다. 시에르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를 가만히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슬퍼?”

“…딱히.”

이미 오래전에 죽은 아이다. 오히려 이제라도 아이가 편안히 쉬게 되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밀려든다.

그동안 자신의 곁을 맴돌며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버지를 원망하고 증오하는 자신을 보며 스스로를 자책하고 또 자책했겠지.

다 자기 때문이라며 그 어린것이 얼마나 울었을까.

“그런 너를 위해 준비했어.”

“…….”

“먹어, 먹어. 허전하고 슬플 땐 먹는 거야.”

“내 거 아니라며.”

“누가 그래? 너 주려고 가지고 온 거 맞아. 먹어, 먹어.”

음식 남기면 벌 받아!

시에르를 위해 준비했다는 음식을 자신의 앞으로 밀어내는 카밀라를 보며 아르시안은 잠시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그런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맺히는 걸 카밀라는 미처 보지 못했다.

* * *

주말이다.

모처럼 수업도 없고 맘껏 한가함을 느끼며 오랜만에 쇼핑이나 갈까 생각 중이었다. 그런데.

“다행히 집에 있었구나. 잘 지냈니?”

“…어서 오세요.”

갑작스레 손님들이 찾아왔다. 그것도 떼거리로.

카밀라는 유독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제이빌런 공작을 향해 애써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건넸다. 저번에도 그러더니 갑자기 왜 친한 척?

“자네까지 어쩐 일인가?”

“같이 오자고 해서.”

소르펠 공작의 질문에 대답하는 이는 바로 세프라 공작이었다. 그랬다. 두 공작이 동시에 별다른 연락도 없이 찾아온 것이다.

‘어릴 때부터 알던 사이라더니.’

제이빌런 공작도 그렇고 세프라 공작 역시 소르펠 공작에겐 친구라 부를 수 있는 존재였다.

나이대도 비슷했고 같은 공작가의 후계자라는 사실에 어릴 때부터 얼굴을 자주 맞대고 지낸 이들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경쟁 상대이면서도 어릴 때부터 묘한 유대감이 있었다. 제국을 수호하는 가문이라는 무게감을 똑같이 짊어지고 가야 하는 사이였으니까.

‘오잔다고 올 녀석이 아닌데?’

어지간한 일은 다 귀찮다며 거절하는 이가 바로 세프라 공작이다. 웬만한 일에는 절대 움직이는 법이 없거늘.

오늘 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 연락도 없이 여기까지 찾아온 것인지 신기했다.

“그럼 말씀들 나누세요.”

카밀라는 바로 인사를 마친 후 자리를 뜨려 했다.

덥석.

“……?!”

그 순간 자신의 팔을 붙잡는 두 손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아니, 왜……?”

두 분, 왜 이러시는 건가요?

양쪽 팔을 잡힌 카밀라는 황당한 눈빛을 보냈다. 자신을 붙잡은 이들이 바로 제이빌런 공작과 세프라 공작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오늘 여기에 온 목적은 자네인데 빠지면 쓰나.”

“음.”

…저는 왜요?

제이빌런 공작은 저번부터 무언가 볼일이 있는 것처럼 굴었으니 그렇다 치지만 세프라 공작은 또 왜?

“일단 들어가세.”

“그러지.”

“어… 어……?”

카밀라는 두 팔을 붙잡힌 채 걸음을 옮겨야 했다. 그런 그녀의 시선이 자신을 말없이 응시하고 있는 이들에게 향했다.

두 공작을 따라온 페트로와 아르시안이 그녀를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너는 왜 왔는데!’

페트로야 저번에도 아버지를 따라 여기에 온 적이 있으니 그렇다 치지만 저 인간은 대체 왜 왔대? 언제부터 지가 아버지랑 같이 행동했다고?

“어서 가세, 어서.”

“아니, 저기……?”

카밀라가 끌려가는 모습을 보며 페트로는 빙그레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르시안은 언제나처럼 무심한 표정이었지만, 최근 그와 붙어 있던 날이 많았던 카밀라는 알 수 있었다. 그가 지금 눈으로 웃고 있다는 것을!

“우린 이제 뭐 하지?”

그렇게 카밀라가 떠난 자리에 남은 페트로는 아르시안에게 하나의 제안을 했다.

“같이 정원이라도 산책할까? 저번에 둘러보니 아주 좋던데.”

“내가? 너와?”

“왜? 싫어?”

“좋겠냐?”

“왜? 나는 좋은데?”

“미친놈.”

아르시안은 바로 돌아섰다. 하지만 이내 그의 걸음이 뚝 멈췄다. 언제 온 것이지 자신들 곁에 서 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바로 소르펠 공작의 첫째 아들인 루드빌이었다.

‘언제…….’

그의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이렇게 가까이 다가오는 동안 말이다.

그건 페트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또한 조금은 놀란 눈빛으로 루드빌을 바라봤다.

“그럼 둘 다 나와 산책을 하는 건 어때?”

“…….”

“…….”

* * *

[역시 좋네.]

[…….]

접객실에 들어서는 순간 두 공작은 자신들의 신수를 불러냈다. 모습을 드러낸 그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카밀라에게 다가갔다.

붉은 독수리와 검은 늑대가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모습을 보며 카밀라의 표정이 멍해졌다.

‘설마…….’

저 두 공작이 갑작스레 여기를 찾아온 게 저 신수들 때문인 건가?

“미안하네. 그 녀석이 하도 보채서 말이야.”

“음.”

세프라 공작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 또한 제이빌런 공작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이유로 이곳에 온 게 분명했다.

[크아아앙!]

[…….]

[…….]

어느새 카밀라의 무릎에 올라와 있던 하얀 호랑이 신수 킹이 두 신수를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너무도 앙증맞은 이빨이지만 말이야.’

소환된 두 신수가 내보이는 기운은 엄청났다. 인간이 아닌 존재에 대한 면역력이 나름 강한 카밀라가 살짝 긴장할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킹은 그런 기운 따위 전혀 상관없다는 듯, 카밀라 곁에 다가오지 말라며 두 신수를 향해 거침없이 이빨을 드러냈다.

‘오.’

요 녀석 전혀 안 쪼네. 오히려 자신에게 다가오던 두 신수가 주춤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규우.]

그제야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자신의 무릎에 자리를 잡더니 아주 태평한 모습으로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신수는 신수라는 건가.

‘제법 기특한데?’

카밀라는 피식 웃으며 킹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역시 네놈의 호랑이 신수도 저 아이를 더 따르는 것 같군.”

“네놈들 신수가 아주 닦달을 했나 보구나. 내 딸 보여 달라고.”

“끄응.”

놀리듯 말을 내뱉었던 제이빌런 공작은 본전도 못 건지고 소르펠 공작의 시선을 피했다. 신기한 건 세프라 공작 역시 슬쩍 시선을 피했다는 거다.

“자네가 우리 딸을 본 적 있었나?”

그런 세프라 공작을 향해 소르펠 공작이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의 기억에 세프라 공작이나 그의 신수가 카밀라와 대면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신수의 크기가 많이 작군.”

세프라 공작은 바로 화제를 돌렸다. 그 말에 소르펠 공작이 살짝 미간을 찌푸린다.

“곧 크겠지.”

“너무 오랫동안 봉인되어 있어 그런 건가.”

“아마도…….”

“그래도 태어난 게 어디야.”

“그렇지!”

소르펠 공작의 얼굴에 다시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크면 어떻고 작으면 어떤가! 중요한 건 자신의 가문에 신수가 돌아왔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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