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점괘보는 공녀님 (41)화 (41/215)

16584210717971.jpg 

“헤블리 백작가의 사업은 오늘부로 모두 문을 닫았습니다.”

“그래.”

“헤블리 백작 역시 수도에 있던 집을 모두 처분하고 곧 시골로 내려갈 듯합니다.”

“쯧. 시골에 집 살 돈은 어찌 남겼나 보군.”

보좌관 잭터의 말을 듣던 소르펠 공작이 그래도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연신 미간을 찌푸렸다.

“아들놈을 그따위로 키웠으면 책임을 져야지.”

“쥬이드 영식이 퍽 문제가 많긴 했지요.”

잭터는 소르펠 공작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속으로 연신 의아함을 느끼고 있었다.

‘갑자기 왜?’

쥬이드, 그러니까 헤블리 백작의 아들인 그의 만행이야 이미 알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물론 백작이 돈으로 무마하긴 했다지만, 귀족들 사이에서 소문이 도는 것까지 막을 수 없는 법이다. 소르펠 공작 역시 그 소문을 자주 들었고.

‘하지만 한 번도 관심을 보인 적이 없으셨는데…….’

별안간 쥬이드에 대한 조사를 시키더니, 곧이어 헤블리 백작가에 대한 모든 자료를 요청하시는 게 아닌가.

그리곤 며칠 되지도 않아 그 가문을 아예 풍비박산 내버렸다. 헤블리 가문과 관련된 모든 사업에 입김을 불어 넣은 것이다.

아주 작은 입김이었지만 결과는 엄청났다. 일주일도 되지 않아 헤블리 백작가의 모든 사업이 휘청거렸으니까.

‘하긴, 그 정도의 입김에 휘청거릴 정도면 애초에 문제가 많았던 거지.’

결국 백작은 모든 재산을 정리하고 시골로 도피하는 결과를 맞이했다.

“감히…….”

“예?”

“아닐세.”

짧게 고개를 내저은 소르펠 공작은 다른 걸 물었다.

“아카데미 건은?”

“네, 바로 답변이 왔습니다. 앞으로 방과 후 교내 경비도 철저히 하겠다고 합니다. 보내 주신 후원금은 잘 받았으며 조만간 교장이 직접 찾아뵙겠다고…….”

“됐다고 해. 그럴 시간에 쥬이드 같은 놈이 학교에 또 없나 살피라고나 하게! 감히……!”

“네?”

“아닐세.”

아까부터 뭐가 자꾸 아니라는 건지. 분명 자신이 모르는 뭔가가 있는 것 같은데 그게 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참, 그 소식 들으셨습니까.”

“무슨 소식?”

“세프라가에서 새로운 마력석을 곧 내놓는다고 합니다.”

소르펠 공작은 고개를 갸웃했다.

“마력석 광맥을 새로 발견이라도 한 건가?”

현재 제국에 유통되고 있는 대부분의 마력석은 가브엘 후작가에서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었다.

새롭게 마력석을 내놓는 곳이 세프라 가문이 아니었다면 가브엘 후작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권력을 남용해 마력석 판매를 중지시키거나 공급처를 모두 빼앗았겠지. 이미 전적도 있었다.

거기까지 생각한 소르펠 공작이 피식 웃었다.

“새로운 판매처가 생겼으니 가브엘 후작이 열 좀 받겠어.”

공짜로 주는 것도 아니면서 밉보이면 두 번 다시 구매할 수 없도록 온갖 수작질을 다하고 다닌 얄미운 인간이다.

그 때문에 마탑이고 흑마법사들이고 가브엘 후작의 눈치를 보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런데 정확한 건 아닙니다만…….”

“뭔가 더 있나?”

“세프라가에서 그 마력석이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아니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정제하고 판매는 하지만 마력석의 주인은 따로 있다고 하더군요.”

“따로?”

이건 또 무슨 해괴한 소리인지 모르겠다.

그 말은 즉, 다른 이도 아닌 세프라 공작이 누군가의 지시를 받고 대신 판매를 해 주려 한다는 건가?

“허…….”

그 인간이 그런 귀찮은 짓을 할 리가 없는데?

“좀 더 알아볼까요?”

“되도록 빨리.”

“네.”

이건 아무래도 확실하게 조사가 필요한 부분인 듯했다.

* * *

타앙!

집무실 문이 그 어느 때보다 거칠게 열렸다.

자신이 있는 장소에 저리 함부로 문을 열고 들어올 이는 이 세상에 단 한 명뿐이다.

세프라 공작은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고도 상대가 누군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용건은?”

아무런 대꾸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제야 세프라 공작은 고개를 들어 상대를 바라봤다.

아르시안이 그 어느 때보다 차분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아르시안은 그를 향해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섰다.

“잘 들어.”

한참 후에야 입을 여는 아르시안의 목소리 역시 무척 담담했다.

이 아이가 자신의 앞에서 이리 편안한 모습을 유지한 적이 있었던가.

“나, 당신 안 죽여.”

“…….”

“당신이 어떤 마음으로 나와 시에르에게 그딴 짓을 했는지 이젠 상관없어. 난 여전히 그쪽이 증오스럽고 재수 없으니까.”

타악!

아르시안은 세프라 공작의 책상을 소리 나게 내려쳤다.

“그러니 죽지 마.”

“뭐?”

“쉽게 죽을 생각하지 말라고.”

“…….”

“당신이 한 짓이 얼마나 허무하고 쓸데없는 짓이었는지 평생 느끼며 살아.”

아르시안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신수의 알? 두 번 다시 우리 가문에 그딴 게 존재할 일은 없을 거야. 내가 꺼내지 않을 거거든.”

그딴 거 필요 없다.

“내가 증명해.”

아르시안의 목소리가 한층 더 낮아졌다.

“그딴 거 없이도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다는 거.”

타앙!

“저딴 신수 새끼 없어도! 누구보다 강해져 보이겠다고.”

그러니 죽지 말고 똑똑히 지켜봐. 당신의 선택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멍청해 보일 정도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는 아버지를 보고 있으니 입꼬리가 스르륵 올라갔다.

하고 싶은 말은 다했다. 뭔가 속이 후련하다.

생각을 정리하면 정리할수록 결론은 너무도 간단했다.

‘진작 이럴 것을.’

그깟 신수가 뭐라고.

가주직이 뭐라고.

카밀라의 얘기를 듣고 깨달았다. 앞으로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기로. 더 이상 이딴 가문과 아버지에게 얽매여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아르시안은 세프라 공작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바로 돌아섰다. 그의 대답 따위 애초에 들을 생각도 없었다.

타악.

문이 닫히고 그 자리에 홀로 남겨진 세프라 공작은 들고 있던 서류와 펜을 그제야 툭 내려놓았다.

“허…….”

곧 그의 입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늘 무료한 듯, 아무런 감정이 담겨 있지 않던 그의 눈빛에 작은 파문이 일었다.

그래. 이 지긋지긋한 삶을 연장해도 좋으니까.

“제발 그렇게 해 다오.”

내가 죽을 때까지 후회할 수 있도록. 내 선택을 뼈저리게 후회할 수 있도록…….

“제발.”

세프라 공작의 입에서 다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