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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39)화 (39/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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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왜?”

“그냥.”

세프라 공작을 만나고 와서 그럴까? 카밀라, 이 몸의 친부는 어떤 분이었나 문득 궁금해졌다.

‘저쪽 세계의 아버지라는 인간처럼 개 같은 놈이었을까?’

오랜 세월 이곳을 지켜봤지만 카밀라의 친부에 대한 얘기는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그녀가 태어나자마자 죽었다고 했든가, 사라졌다고 했든가? 제대로 그에 대한 얘기를 해 주는 이가 없었다.

“나도 기억 안 나.”

“오라비도?”

“응.”

“하긴.”

라비 역시 그때 나이가 고작 다섯 살, 여섯 살쯤 되었을 때니.

“그 반지.”

잠시 망설이던 라비가 카밀라의 손에 끼워져 있는 붉은 루비 반지를 가리켰다. 전에 고용인들이 숨겼던 어머니의 유품인 그 반지다.

“친아버지가 어머니께 주신 거야.”

“아버지가?”

“그런데 갑자기 그게 왜 궁금해?”

“그냥이라니까.”

“맨날 그냥이지.”

작게 혀를 찬 라비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오라비.”

“또 뭐?”

“바빠?”

“너 진짜! 할 말 있으면 한 번에 다 해! 바쁘니까!”

결국 그에게서 큰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모습을 보며 카밀라가 피식 웃는다. 그래도 나가라는 소리는 안 하네.

“내가 더 바쁘게 해 줄까?”

“뭐?”

“받아.”

투욱.

“야, 갑자기 뭘 던지는 거야.”

“선물.”

“선물? 이게 뭔… 야, 야야!”

라비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카밀라가 던진 건 푸른색 광물이었다.

거기서 흘러나오는 마력을 감지했는지, 라비는 그대로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너, 너! 이거 어디서 났어?!”

“비밀.”

“야! 이거 어디서 났냐고!”

우당탕!

의자까지 넘어트리며 다급히 자신을 쫓아오려는 라비를 뒤로한 채 카밀라는 유유히 그 자리를 떠나갔다.

‘고객 한 명 확보.’

* * *

“아우, 질긴 놈.”

밤새 시달렸다. 누구한테? 라비한테.

최상급 마력석의 맛을 본 라비가 이거 어디서 구했냐고 종일 졸졸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아직은 비밀이라는 말에도 소용이 없었다.

아침까지도 말없이 노려보는 라비 때문에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정신없이 식사를 마쳐야만 했다.

‘홍보는 걱정 안 해도 되겠지?’

흑마법사들이야 세프라가에서 알아서 맡을 것이고 마탑은 라비가 들고 간 마력석 하나면 충분할 듯했다.

이전에도 제이빌런 공작이 마력석을 내놓는 순간 모든 마법사들이 흥분해 달려들었다. 내가 먼저 사겠다, 뒷돈까지 얹어 주겠다… 하여간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지.

“으흐흐.”

돈만 모여 봐. 내가 진짜 이놈의 집구석 탈출해서 작은 마을에 예쁜 집 지어 놓고 아주 떵떵거리며 산다.

‘일단은 계약부터 마무리해야겠지.’

우리 유능한 집사 데린!

이곳에서 통용되는 계약서 형식에 대해 전혀 아는 게 없었던 카밀라를 옆에서 살뜰히 도와준 게 바로 집사 유령 데린이었다.

그에 아주 꼼꼼하고 완벽한 계약서를 작성할 수 있었다. 이제 여기에 세프라 공작의 사인만 받으면 끝이었다.

‘아직은 비밀로 해야지.’

굳이 세프라 공작에게 판매까지 부탁한 건 자신의 자금줄을 바로 공개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자신이 앞에 나서 사업을 하면 소르펠 가문 사람들에게 바로 알려질 테니까.

비자금 좀 넉넉하게 마련하기 전까진 세프라 공작 뒤에 철저히 숨어 있을 계획이었다.

마침 소르펠 공작도 그 광산에 대한 관심을 끊은 차였다. 카밀라가 도움을 요청할 때까지 그 어떤 간섭도 하지 않겠다며 맘껏 광물 연구를 해 보라고 했다.

“이히히!”

카밀라는 저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물론 그런 그녀를 주변에서 지켜보고 있던 학생들은 동시에 고개를 살며시 내저어야 했지만 말이다. 어째 갈수록 성격이 더 이상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누나!]

“어?”

그 순간 카밀라 앞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이가 있었다.

잔뜩 울먹이고 있는 아이를 본 카밀라는 무척 당혹스러웠다. 바로 아르시안의 동생인 시에르가 자신을 홀로 찾아온 것이다.

“네가 왜…….”

카밀라는 급히 말을 멈췄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빈 공간을 보며 혼잣말을 내뱉는 모습으로 보일 테니 말이다.

[얘는 아르시안한테 붙어 있던 애잖아.]

어느새 여학생 귀신 에이미까지 다가와 말을 건넸다. 늘 형 곁에 있던 시에르가 홀로 이곳을 찾아온 게 그녀 역시 신기한 듯했다.

[형이…….]

‘아르시안이 왜?’

[형 좀 제발 말려 주세요!]

‘뭐?’

[제발요, 어서!]

다급한 아이의 말에 카밀라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이를 따라간 곳엔.

“크으으윽!”

퍽! 퍼억!

아르시안이 어디에 있냐고 물을 필요도 없었다.

수많은 이들이 모인 장소. 하지만 그곳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건 고통 어린 신음 소리와 묵직한 타격음뿐이었다.

누구 하나 숨소리조차 제대로 내뱉는 이가 없었다. 상대방의 기세에 질려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그저 두려운 눈빛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쟤 뭐하니?’

아르시안이 한 남학생을 향해 쉬지 않고 주먹을 날리고 있었다. 이미 남학생의 얼굴은 여기저기 터져 피범벅이었고 정신을 잃기 직전이었다.

하지만 아르시안은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누나! 형 좀 제발…….]

나보고 어쩌라고? 이미 정신이 반쯤 나간 놈을 내가 어떻게 말려?

눈이 이미 확 돌아가 있지 않은가. 저런 상태의 놈을 말린다고 말을 듣겠니?

[누나아.]

“쯧.”

자신을 간절히 바라보는 시에르의 눈빛에 결국 카밀라는 걸음을 옮겼다.

* * *

퍼억!

“크… 으윽! 미, 미안… 제발…….”

퍽!

“아, 아르…….”

르비셀 백작의 아들인 벨라크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잠깐의 객기가 이렇게 큰 화를 부를 줄은 정말 몰랐다.

“세프라 공작님 정말 대단하시지 않냐? 공명정대하시고 능력도 탁월하시고…….”

조금 전 그는 아르시안이 들으라는 듯 세프라 공작에 대한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 분이 아버지라면 세상 더 바랄 것도 없을 텐데.”

평소라면 아르시안 앞에서 그런 말을 절대 내뱉지 않았겠지만, 최근 묘하게 분위기가 풀린 그를 보며 용기를 냈다. 이번 기회에 확실히 눈도장을 찍고 싶었으니까.

그런데…….

“닥쳐.”

아르시안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뭘 안다고 함부로 지껄여.”

“아, 아니, 난 그냥 칭찬한 건데? 너희 아버지처럼 훌륭한 분이 제국에 있다는 게 좋아서…….”

“닥치라고.”

그의 목소리가 한층 더 낮아졌다.

이쯤에서 정말 그만뒀어야 했는데, 다른 아이들이 보고 있다는 사실에 저도 모르게 객기를 부리고 말았다.

“나 참, 더러워서. 잘난 아버지 안 둔 사람은 서러워서 못 살겠네.”

대체 무슨 용기였던 건지.

“주위에서 오냐오냐해 주니까 남들이 널 떠받들어 주는 게 당연한 것 같냐?”

“…….”

“아버지가 공작이라고 자기도 공작인 줄 아는 것 같은……!”

퍼억!

그 순간 아르시안의 주먹이 바로 날아들었다.

기절이라도 했으면 좋겠는데, 이놈의 정신은 왜 놓아지지도 않는 건지! 고통 속에서 벨라크는 열심히 허우적거렸다.

도움의 손길 따윈 기대할 수도 없었다. 저 미친놈을 대체 누가 말리겠는가.

조금 전에 교수들이 황급히 도망치듯 자리를 뜨는 것을 보았다. 마치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는 듯이 말이다.

다른 학생들도 아르시안, 저놈이 또 돌았구나 생각하며 그러려니 하는 상태였다.

촤아악!

“……!”

그런데 그때였다. 차가운 물줄기가 쏟아진 게!

흐릿한 시야 속에서 흠뻑 젖어 있는 아르시안의 모습이 보였다. 벨라크는 간신히 숨을 돌리며 상황 파악을 위해 고개를 살짝 들었다.

‘저… 저 여자는!’

아르시안의 뒤에 누군가 서 있었다. 뚜껑이 열린 빈 주전자를 든 채 짧은 한숨을 내쉬고 있는 여자.

“머리 좀 식히지.”

바로 카밀라였다.

“…….”

온몸이 푹 젖은 아르시안이 천천히 그녀를 돌아봤다.

“네가 할래? 아니면 치료실로 데리고 가고.”

여전히 눈이 풀린 채 멍하니 앉아 있는 아르시안을 보며 카밀라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성큼 다가가 그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좀 비켜 봐. 죽일 생각 아니면.”

아르시안은 별다른 저항 없이 그녀의 손에 이끌려 자리에서 일어섰다.

카밀라는 슬쩍 주변을 훑다 한 사람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빈 주전자를 넘겼다.

“죄송하지만 뒷정리 좀 부탁드릴게요.”

그래도 아는 얼굴이라고 만만한 게 너다.

“넌 따라와.”

카밀라는 다시 아르시안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그에 아르시안은 힘없이 그녀를 따라 발을 뗐다.

그렇게 자리를 뜨는 두 사람을 다들 멍하니 바라봤다.

“…….”

특히 주전자를 건네받은 이, 페트로는 뭔가 할 말이 많은 얼굴로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다 웃음을 터트렸다.

* * *

“잘한다.”

카밀라가 아르시안을 데리고 간 곳은 어느새 그들의 아지트처럼 변해 버린 정령의 호수가 위치한 곳이었다.

“괜한 곳에 화풀이하니까 좋니?”

“네가 신경 쓸 일 아냐.”

“나도 신경 안 쓰고 싶거든.”

누군 좋아서 끼어든 줄 아니?

“네 동생이 하도 울어서 그런 거잖아.”

아르시안이 고개를 들어 시에르가 있는 곳을 바라본다. 하지만 바로 고개를 돌려 버렸다.

“어쭈? 이제 동생까지 꼴 보기 싫냐?”

카밀라는 쯧 혀를 찼다. 저놈이 저리 정신줄을 놓은 이유가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짜증 나겠지.”

평생 증오하고 원망했던 상대에게도 나름의 사정이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아주 잠시지만 상대의 마음을 조금 이해해 버렸다면?

“그렇다고 바로 용서가 되는 것도 아니고.”

오랫동안 쌓아 온 감정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 여전히 상대가 밉고 증오스럽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는… 뭐 그런 마음?

“네가 뭘 안다고……!”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아버지라는 인간한테 목이 졸려 죽을 뻔한 애가 있거든.”

“…뭐?”

잠시 말을 멈춘 카밀라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얘기를 생각보다 덤덤하게 내뱉는 스스로가 조금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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