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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37)화 (37/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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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그 후로 아르시안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는 마력석을 이리저리 살폈다.

그의 마력이 광물에 들어가는 순간 또 한 번 색이 변했다. 아주 새파란 색으로.

‘역시!’

정제된 마력석!

예전에 제이빌런 공작이 소르펠 공작의 약을 올릴 때 봤던 그 마력석의 색이 딱 저랬다.

“재밌네.”

한참 광물을 매만지던 그의 평이다.

“늙은이들이 아주 환장해서 덤벼들겠어.”

현재 대륙에 존재하는 그 어떤 최상급 마력석과 비교하는 게 미안할 정도다.

어른 손가락보다 작은 마력석에서 이 정도의 강력한 마력이 흘러나오는 건 지금껏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게 가장 작은 크기야.”

“뭐?”

아르시안의 입이 크게 벌어졌다. 이게 가장 작은 크기라면…….

“더 큰 것도 있어?”

“응.”

“하.”

아르시안은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마력석을 바라봤다.

“원하는 게 뭐야?”

“그 마력석이 나오는 광산이 내 소유야.”

카밀라는 허리에 손을 척 올린 뒤 턱을 높이 치켜올렸다.

“…….”

“…그냥 그렇다고.”

하지만 곧 자세를 바로 해야만 했다. 자신을 멀뚱히 바라보는 아르시안의 시선에 민망함을 느꼈으니까.

그래서 뭐, 어쩌라고? 딱 그런 눈빛이네.

“흑마법사들의 힘이 필요해. 방금 봤듯이 흑마법사의 마력에만 반응하거든. 물론 정제하면 백마법사도 쓸 수 있고.”

“연결해 달라는 거야?”

“응!”

생각보다 말귀를 잘 알아듣는다.

“…그 인간에게 전해 줄게.”

“어?”

그 인간?

“아버지.”

* * *

투욱.

“뭐냐.”

“주래.”

“누가?”

“어떤 여자가.”

세프라 공작은 책상 위에 던져진 검은 광물을 바라봤다.

아르시안이 정제한 푸른색 마력석이 아니라 카밀라에게 새로 얻은 검은 원석 그대로의 마력석이었다. 쓸데없는 설명은 하기 싫으니 원석을 보고 알아서 판단하라고 던져 준 거다.

“하급 마력석… 음?”

심드렁하던 남자의 표정이 돌변했다. 세프라 공작은 입을 꾹 다문 채 광물을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원하는 게 뭐야?”

한참 후 세프라 공작의 차가운 시선이 아르시안에게 향했다. 아르시안 또한 건조한 시선으로 그와 마주했다.

“거래.”

“데리고 와.”

“내일.”

그걸로 끝이었다. 아르시안은 대꾸도 없이 바로 돌아섰다. 세프라 공작 역시 그런 아들에게 더 이상 시선을 주지 않았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냐.”

문고리에 손을 올렸던 아르시안이 멈칫했다.

“아직 더 기다려야 하는 건가?”

세프라 공작의 표정이나 어투는 여전히 무심했다.

“지겨우니 빨리 끝내주면 좋겠는데.”

아르시안은 별다른 말 없이 문을 닫고 그 자리를 떠나갔다.

타악-

세프라 공작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아르시안이 있던 곳을 바라봤다.

짧은 한숨을 내쉰 그는 어느새 짙은 푸른색으로 변한 마력석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러다 그의 표정이 순간 멍해졌다.

“…여자라고?”

그러고 보니 녀석이 누군가의 부탁으로 뭔가를 하는 건 처음이지 않나? 부르지도 않았는데 자신을 먼저 찾아온 것도 처음이었다.

세프라 공작은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아르시안이 사라진 곳을 바라봤다.

* * *

‘생각보다 평범하네?’

죽음을 내린다느니, 어둠을 다스린다느니. 그 어떤 곳보다 폐쇄적인 곳이라기에 솔직히 좀 긴장했었다.

하지만 직접 발을 들인 세프라 공작가는 생각보다 아주 평범했다. 뭔가 좀 칙칙하고 귀신들이 우글거리는 곳이지 않을까 했는데.

“어서 오세요.”

저택에 기거하는 사람들도 무척 평범했다. 고용인들의 인사를 받으며 카밀라는 아르시안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

잠시 후 두 사람이 향한 곳은 세프라 공작의 집무실이었다.

벌컥.

아르시안은 노크도 없이 바로 문을 열었다. 그의 행동에 조금 놀랐지만, 카밀라는 일단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안으로 들어섰다.

‘호오.’

집무실 책상에 앉아 있는 중년의 남성. 그를 본 카밀라는 작게 감탄했다. 아르시안도 나중에 저렇게 되는 건가.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 차갑도록 무심해 보이는 눈빛까지. 두 사람은 누가 봐도 부자라 할 정도로 똑 닮아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카밀라 소르펠이라고 합니다.”

“의외군.”

“네?”

의외? 뭐가? 책상 자리에서 일어서며 내뱉는 세프라 공작의 혼잣말에 카밀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앉지.”

“네.”

세프라 공작은 자리를 권한 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거래를 하고 싶다고.”

카밀라도 바로 들고 온 조건을 꺼내 들었다.

“정제와 판매를 부탁드립니다. 판매 수익의 10%를 드리겠습니다.”

방긋 웃으며 내뱉는 카밀라의 말에 세프라 공작은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내 그녀의 상황을 콕 집어 줬다.

“흑마법사가 없으면 아무 쓸모도 없는 광물이지.”

내 도움 없이는 그저 쓰레기다.

다소 냉정한 말이었지만, 카밀라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흑마법사들이 아주 탐낼 광물이기도 하죠.”

그래서 뭐 어쩌라고. 필요 없어? 니들도 못 쓰게 그냥 쓰레기로 계속 버려둘까? 이러나저러나 광산 주인은 나잖아.

“…….”

“…….”

그 말을 끝으로 세프라 공작과 카밀라는 잠시 말없이 서로를 응시했다. 연신 해맑게 웃고 있는 카밀라를 바라보던 그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에게 최우선으로 판매를 약속한다면 거래에 응하겠네.”

“콜!”

“음?”

“아니, 좋다고요.”

판매까지 맡겼는데 그 정도야.

오히려 이렇게 쉽게 조건을 받아들이는 그가 더 놀라웠다. 안 되면 수익금을 좀 더 줄 생각까지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카밀라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계약서를 작성해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러게.”

가장 힘든 단계라 생각했던 일이 생각보다 쉽게 마무리가 됐다. 카밀라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밝게 웃었다.

“그런데…….”

그 순간 세프라 공작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우리 집 검은 새끼가 영애에게 자꾸 찝쩍대는 것 같군.”

‘헐.’

카밀라는 조금 당황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신수를 저렇게 부르는 사람도 있구나.’

보통 신수를 귀한 존재로 여기며 때론 신격화시켜 두려워하는 이들도 있기 마련이라 신기했다.

다시 돌아가자면, 일단 그의 말이 맞았다. 발밑에 자리 잡고 앉은 검은 늑대 한 마리가 그녀의 무릎에 제 턱을 당당히 올려놓고 있었으니까.

이 늑대가 세프라 가문의 신수라는 건 보자마자 눈치챘다. 아르시안의 낌새를 보니 소환된 상태는 아닌 듯했다. 즉, 다른 이의 눈에는 보이지 않아야 하는데.

“아하하하, 네, 뭐…….”

‘눈치 엄청 빨라.’

최대한 모르는 척을 한다고 한 건데, 저도 모르게 슬쩍슬쩍 시선이 한두 번 신수에게 향하긴 했다. 그걸 또 세프라 공작이 바로 캐치한 것이고.

“우리 가문 사람 외에 이런 걸 또 볼 수 있는 자가 있을 줄 몰랐군.”

소환된 상태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신수가 어디에 있는지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신수가 관심을 보이는 카밀라를 세프라 공작 역시 가만히 바라봤다. 최근 소르펠 가문의 영애에 대한 얘기가 자주 들려오고 있었다.

‘예지 능력을 보인다고 했던가.’

그 일로 수많은 이들이 그녀를 거론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신수의 알도 찾았다지?’

아직 대외적으로 알려진 사실은 아니었지만, 이미 알만 한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소르펠 가문에 신수가 돌아왔고, 그 알을 찾은 사람이 바로 카밀라 영애라고 말이다.

그래서 오늘 그녀가 자신을 찾아왔을 때 조금 의외였다. 아르시안이 데려오겠다고 했던 사람이 그녀일 줄은 몰랐으니까.

거기다 자신들처럼 특별한 존재들까지 볼 수 있는 듯했다. 처음에는 우연인가 했지만, 신수가 있는 곳에 정확히 시선을 주는 카밀라의 모습을 보고 확신했다.

“저도 신기해요.”

카밀라는 세프라 공작을 바라보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원래 오지랖이 넓은 사람은 아니라서. 오늘도 그냥 조용히 있다가 가려고 했는데…….”

진짜 남의 가정사에 끼어드는 취미는 없는데 말이야.

“이번엔 도저히 묻지 않을 수가 없네요.”

“뭐가 말이지?”

“왤까요?”

카밀라의 시선은 세프라 공작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그에게 매달려 있는 한 존재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왜 저 아이는 공작님을 저리 애틋하게 안아 주고 있을까요?”

저 아이. 세프라 공작의 목을 꼭 감싸 안은 채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눈빛을 하고 있는 저 아이.

시에르, 너 왜 그러는 건데?

* * *

“시에르.”

[네?]

쿠키를 우물거리던 아이가 왜 부르느냐는 듯 자신을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아르시안은 잠시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목이 마르니 음료수 좀 사 오라고 시켰다. 당연히 동생인 시에르가 먹을 거라고 거짓말을 해서 쫓아냈다.

쿠키에 정신이 팔렸던 시에르는 형을 따라가지 않고 자신의 옆에 딱 붙어 있었다.

“한 가지 물어봐도 돼?”

끄덕.

뭐든 물어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를 잠시 말없이 바라보던 카밀라는 전부터 묻고 싶었던 질문을 조심스럽게 던졌다.

“등의 상처.”

[…….]

아이가 순간 움찔하며 쿠키를 먹던 행동을 멈췄다.

웬만해선 귀신들의 사연 같은 거 궁금해 해 본 적이 없는데 말이야.

‘도저히 신경이 쓰여서 안 되겠어.’

낡아 찢어진 아이의 옷, 그 사이로 보이는 상처가 있었다. 등에 한 줄기 붉게 물든 상처. 딱 봐도 채찍 같은 것에 얻어맞은 상처다.

“형이 그런 거니?”

[아니에요!]

응, 나도 알아. 아닌 거.

자신의 말에 급히 소리를 지르는 아이의 모습에 카밀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가 먹을 거라는 말에 바로 일어나 달려 나간 인간이 아니던가. 그런 녀석이 동생에게 저런 상처를 입혔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사이코도 아니고 그럴 리가 없지.’

다만 망설이는 아이의 입을 열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럼 누군데?”

[…지.]

“음?”

[…아버지요.]

“…….”

어느 정도는 예상한 대답이다. 아동 학대의 주범은 늘 주변에 있는 법이니까.

[형은…….]

하지만 이어지는 아이의 말은 그런 자신의 예상을 훨씬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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