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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36)화 (36/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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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쾅쾅!

“문 열어! 당장 열라고!”

손이 터져 나가라 굳게 닫혀 있는 문을 두드렸다.

“아이가 아파! 당장 열어!”

결국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원래 몸이 약했던 동생은 끝내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축 늘어져 있는 아이를 발견한 난 더욱더 세차게 문을 두드렸다. 손이 찢어진 것 같았지만 상관없었다.

쾅쾅!

“열어!”

쾅아앙!

“제발, 열어 줘…….”

“혀… 형…….”

평소보다 더욱 희미한 아이의 부름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처음으로 이 어둠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절망으로 물든 내 모습을 아이는 볼 수 없을 테니까.

나를 향해 뻗어진 작은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고열로 뜨거웠던 손인데, 지금은 온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난 아이의 손을 더욱 꼭 쥐었다.

“다행이야.”

“…뭐가?”

이딴 상황이 뭐가 다행이야!

버럭 소리치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제, 형은 나갈 수 있으니까.”

“웃기지 마!”

“미안해, 형.”

“입 다물어.”

“정말 미안해.”

“쓸데없는 소리로 기운 낭비하지 마. 곧 사람이 올 거야. 그러니 가만히 있어.”

“형.”

불안한 느낌에 온몸이 덜덜 떨렸다. 그런 내 손을 동생이 꼭 잡았다.

착각일까? 어둠 속에서도 아이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걸리는 게 보였다.

“형이…….”

“…….”

“혀… 형이…….”

뭔가 말을 하려던 아이의 몸이 순간 축 처졌다.

“시에르?”

난 조심스럽게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아이에게선 더 이상 아무런 반응도 돌아오지 않았다.

“시에르!”

그때가 마지막으로 불러 본 이름이었다.

“…시에르.”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그 이름을 불러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 * *

“야, 뭐래?”

형제의 감동적인 상봉, 그래 좋다 이거다. 10년 만에 동생의 존재를 알게 되었으니 얼마나 애틋하겠어. 이해할 수 있다.

“뭐라고 하냐니까.”

이해할 수 있… 아니 근데 왜 내가 이 사이에 끼어 있어야 하냐고!

“…사탕.”

“뭐?”

“사탕 더 달래!”

젠장! 이제 하다 하다 귀신 통역사까지 해야겠니!

카밀라는 자신을 사이에 두고 계속해서 아이와 대화를 나누는 아르시안을 슬며시 노려봤다.

대놓고 노려보지 못하는 자신이 싫다! 하지만 저놈의 과거 무식한 행적이 떠올라 튀어나오려는 성질을 꾹꾹 눌러 담았다.

“사탕?”

그가 급히 자기 몸을 뒤적였다. 그런다고 없는 사탕이 나오겠니?

아니나 다를까, 결국 그의 시선이 다시 자신에게 향했다.

“사탕 있어?”

뻔뻔한 놈.

‘내가 진짜 애가 예뻐서 준다.’

절대 네놈이 무서워서 주는 게 아니라고!

카밀라는 주머니에 들어 있던 남은 사탕을 모두 꺼내 아이에게 내밀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사탕들이 파스스- 연기처럼 부서져 사라졌다.

시에르가 사탕을 우물거리며 배시시 웃었다. 아르시안이 제 존재를 알아봐 준 뒤로 아이의 얼굴에 미소가 늘었다.

‘진짜 예쁘긴 하네.’

웃으니까 더 귀엽다. 어떻게 귀신은 살찌울 방법이 없나? 볼만 좀 더 통통하면 아역 배우 시켜도 딱 좋을 인상이구만.

“나 이제 가도 돼?”

“안 돼.”

썩을 놈!

“사탕도 없거든!”

“내가 사 올게.”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서는 그를 카밀라가 급히 붙잡았다.

“일단 얘기 좀 해.”

“얘기?”

“응, 얘기.”

“무슨 얘기?”

“앉아, 앉아.”

고개 아프니까 앉으라고. 자리에 서 있는 그를 카밀라가 손을 뻗어 잡아당겼다.

“…….”

그 모습을 잠시 말없이 응시하던 아르시안이 결국 다시 자리에 앉았다.

“언제부터야?”

“뭐가?”

“이런 존재를 언제부터 볼 수 있었냐고.”

카밀라의 물음에 그가 잠시 대답을 망설였다. 그러나 이내 그의 시선이 자신의 동생, 시에르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 아이가 죽은 후.”

그 후로 아버지에게 더 이상의 학대는 없었다. 죽은 자의 기운을 느끼는 것. 그것이 아버지가 바라는 결과였으니까.

“흐음.”

카밀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귀신이 계속 옆에 있는 걸 알면서도 내버려 뒀던 거야?”

조금 신기했다. 나처럼 온전히 보고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놔뒀다고? 게다가 무던한 성격도 아니지 않은가.

‘저번에는 잘도 없애려 들더니.’

여학생 귀신 에이미를 향해 살기를 실어 손을 뻗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했다.

그런 주제에 제 동생인 것도 몰랐으면서 저런 존재가 옆에 붙어 있는 걸 그저 두고 봤다는 건.

“혹시 없애는 방법을 몰라?”

하긴, 귀신을 아무나 없앨 수 있는 건 아니지.

“알아.”

“어?”

“세프라 가문의 직계 혈족은 모두 저런 존재들을 없앨 수 있어.”

어둠을 다스리는 자들이니까.

의외의 대답에 카밀라가 깜짝 놀라 물었다.

“그러면 왜 내버려 둔 건데?”

“…그냥.”

“그냥?”

그 빌어먹을 방법이 정말로 통한 듯, 시에르의 죽음을 기점으로 기이한 존재들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검은 연기 같은 게 보이면 지체 없이 없애 버리거나 그냥 무시했다.

“응.”

하지만 이상하게 자신의 곁에 있는 이 검은 존재에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냥… 그대로 두고 싶었어.”

어쩌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혹시나 하는 생각이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죽은 시에르가 자신의 곁에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어릴 때부터 늘 자신의 뒤만 졸졸 따라다니던 녀석이었으니 죽어서도 그러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런데…….’

정말 시에르였다니.

“얘 배고프대.”

그녀가 아니었다면 평생 몰랐겠지.

“가서 먹을 것 좀 사 와.”

“…….”

“조금만 기다려. 네 형이 먹을 거 사 온대.”

아이에게 다정하게 말을 건네는 그녀의 모습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가 부러워지긴 처음이다. 그녀가 부러웠다.

‘나도 보고 싶은데.’

그 아이가, 내 동생이 너무 보고 싶은데.

“뭐 해? 안 가?”

카밀라의 재촉에 아르시안은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 * *

드륵-

3학년 C반 학생들의 시선이 세차게 열리는 앞문을 향했다. 최근 누구보다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이, 카밀라가 성큼 교실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저벅.

그녀는 C반의 분위기 조성에 크게 일조한 아르시안을 향해 주저 없이 다가갔다.

타악!

저번과 똑같은 모습이다. 아르시안의 책상을 강하게 손으로 내려짚는 모습이.

다만 저번과 달리 그녀의 손에 종이가 한 장 들려 있었다. 종이를 아르시안이 잘 볼 수 있게 내려놓은 카밀라가 빙긋 웃었다.

“사인해.”

“쿨럭!”

바, 반말?

그 짧은 한마디에 주변에서 더욱 큰 반응이 쏟아졌다. 아르시안을 향한 그녀의 말투가 너무도 편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은 다음에 일어났다.

스슥.

아르시안이 별다른 말 없이 그대로 펜을 들어 카밀라가 내민 종이에 사인을 한 것이다.

“어? 내용도 안 읽어 보고?”

그 모습에 오히려 카밀라가 당황했다. 설마 이렇게 바로 사인을 해 줄 줄은 몰랐는데.

“뭐든 들어준다고 했잖아.”

“오.”

‘너의 신용 점수를 최상급으로 올려 주마.’

카밀라는 전에 본인이 했던 말을 직접 다시 언급하는 아르시안을 보며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서류에 적힌 내용은 별거 아니었다. 흑마법사들을 섭외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겠다는 내용이 간단히 적혀 있었다.

이런 문서 쪼가리라도 하나 들고 있어야 나중에 딴말을 안 하지.

“보여 줄 거 있으니 나가자.”

“보여 줄 거?”

"일단 나가자고.”

여기서 함부로 막 꺼낼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서 말이지.

카밀라는 의아해하는 아르시안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드디어 탈출 비자금을 만드는 황금줄을 잡았다는 사실에 마음이 들떴다.

그에 미처 알지 못했다. 방금 자신의 그 작은 행동에 교실 안이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얼어 버렸다는 것을.

“쟤 아르시안 맞아?”

“아닌 것 같은데…….”

“미쳤나 봐.”

카밀라의 손에 이끌러 교실을 나서는 아르시안을 바라보는 학생들의 표정은 다 한결같았다. 못 볼 걸 본 것처럼 다들 넋을 놓은 상태다.

“지금 아르시안이 팔을 잡혀서 나간 거야?”

“허.”

사람과의 접촉 자체를 극도로 싫어하는 저 인간이!

그 사실을 모르는 이는 이 교실 안에 아무도 없었다.

아르시안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가─정말 실수였다─ 그대로 팔이 꺾였던 학생 하나가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뭐든 들어주겠다고?”

“내 귀가 미친 건가?”

다른 이도 아닌, 아르시안 세프라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이야.

그렇게 혼란스러운 교실 분위기 속에서 카밀라와 아르시안이 사라진 공간을 조용히 바라보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페트로였다.

* * *

“안녕.”

[네…….]

어쭈. 너 하루 안 봤다고 또 내외하니?

아르시안의 동생, 시에르가 처음 만났을 때처럼 형 뒤에 숨어 고개만 삐죽 내밀며 인사를 건넸다.

‘내가 이럴 줄 알고 준비한 게 있지.’

카밀라는 손에 들고 있던 작은 주머니에서 쿠키를 가득 꺼내 들었다. 주방장 유령 페롤의 도움을 받아 직접 만든 쿠키였다.

“이 누나가 너 주려고 준비했단다.”

[고… 고맙습니다.]

아이가 그제야 곁으로 다가와 주섬주섬 쿠키를 집어 우물거렸다. 죽어서도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아이는 무척 신기해했다.

파스슥-

저번처럼 아이의 손길이 닿은 쿠키가 차례차례 검게 변하며 부서지더니, 빠르게 공기 중으로 사라져 갔다.

‘계속 먹을 걸 챙겨 주고 싶네.’

아이가 삐쩍 말라서 그럴까, 아니면 쪼그려 앉아 음식을 우물거리는 모습이 햄스터 같아 그럴까. 괜히 자꾸 음식을 먹이고 싶었다.

“보여 줄 게 뭔데?”

두 사람이 노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아르시안이 조용히 말을 건네 왔다.

그제야 카밀라는 들고 온 다른 가방에서 검은 광물을 꺼내 들었다. 그녀가 꺼내 든 광물을 잠시 말없이 바라보던 아르시안의 눈이 순간 번뜩였다.

“마력석이네.”

“오. 바로 알아보는 거야?”

“줘 봐.”

“응!”

카밀라는 바로 검은 광물을 그에게 넘겼다.

“담겨 있는 마력은 그다지……?!”

그의 눈이 순간 커졌다. 카밀라 역시 입을 멍하니 벌렸다.

아르시안의 손에 닿은 순간, 광물의 색이 바뀌었다. 칠흑처럼 검었던 색이 초저녁의 밤하늘처럼 푸르스름하게 변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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