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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35)화 (35/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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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흑마법사들은 다 거기 소속이냐고.”

아르시안의 가문인 세프라 공작가는 매우 폐쇄적인 곳으로, 황실의 간섭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그것이 다 자신들이 가진 힘, 어둠을 다스리는 신수를 위한 방침이라는 말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그래서 아르시안에게 접근했던 건데…….’

세프라 가문에 직접 연통을 넣고 찾아가는 건 아무래도 무리라서 가장 접근이 쉬웠던 아르시안에게 사업 제안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물론 그 인간에게 사업안을 고사하고 광물조차 내보이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건 그렇고 어둠을 다스린다는 건 무슨 말이지?’

세프라 가문의 신수는 검은 늑대. 그 힘을 눈으로 직접 본 적은 없다. 그 오랜 세월 반복된 삶을 살면서도 세프라 가문이나 아르시안과는 조금의 접점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들려오는 소문은 많았다. 사람들은 세프라 가주가 가진 신수의 힘이 엄청나다고 떠들어 댔다. 검은 늑대의 힘이 펼쳐진 곳에는 오로지 죽음만이 존재할 뿐이라고 말이다.

새삼 카밀라는 자신의 손을 할짝거리고 있는 킹을 바라봤다.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모습이 오늘따라 유독 작아 보였다.

“아무래도 이름을 잘못 지은 게 아닐까?”

[규우?]

커다란 눈을 깜박거리며 고개를 갸웃하는 킹을 보며 카밀라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장 잘난 놈은 무슨. 싸우다 안 죽으면 다행이겠다.

“도망치는 거야.”

그런 것들과 괜히 싸우지 말고 무조건 도망치는 거라고.

“암! 안 죽는 게 이기는 거지. 명심해.”

[규규?]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는 킹의 머리를 카밀라가 다시 한번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 * *

“저기 좀 보세요!”

“허…….”

오늘따라 유독 사람들의 시선이 더 몰렸다.

‘뭐? 왜? 편하고 예쁘기만 하구만.’

하얀 셔츠에 짙은 갈색 나팔바지. 정말로 편한 옷차림이었다.

머리는 올백으로 깔끔하게 넘겨 한 갈래로 자연스럽게 묶었고 도수 없는 안경을 써 얼굴에도 살짝 포인트를 줬다.

“저건 대체 무슨 옷이죠?”

“그, 그러게요.”

“바지를… 저렇게?”

여자가 평상복으로 바지를 입는 건 매우 드문 경우였다. 그것도 귀족 영애가 저렇게 입는 경우는 처음 보는지라 사람들의 시선이 점점 모여들었다.

게다가 카밀라가 현재 입고 있는 바지는 생전 처음 보는 형태라 다들 놀라움을 표했다.

‘그런데 왜 저렇게 잘 어울려?’

‘바지인데 왜 예쁘지?’

또각또각, 처음 보는 디자인의 옷을 입고 당당하게 걸어가는 카밀라의 모습을 보며 다들 묘한 시선을 보냈다.

특히 여자들의 눈빛이 아주 반짝반짝거렸다. 새로운 유행 아이템을 발견한 이들처럼 말이다.

[와, 오늘 너 무지 멋져!]

‘어제도 멋졌거든.’

교실로 들어선 카밀라에게 가장 먼저 말을 건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여학생 귀신, 에이미였다.

‘예전에는 교실 구석에만 앉아 있더니, 이제 막 말을 거네.’

아침부터 학교에 와 제일 먼저 말을 걸어 주는 게 다른 이도 아닌 귀신이라니. 새삼 자신의 인간관계에 회의감이 밀려들었다.

짧은 한숨을 내쉰 카밀라는 곧 있을 중간시험을 대비해 바로 책을 펼쳐 들었다. 신수를 찾아 올라간 평가 점수를 이번 중간시험으로 좀 더 올려 볼 생각이었다.

이미 수도 없이 쳐 본 시험이지만 그래도 방심할 수는 없는 법! 오늘부터 학구열을 활활 불태워 보기로 했다.

드륵-

그때, 교실 문이 열리며 카밀라를 바라보던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앞으로 향했다.

“흐읍!”

여기저기서 급히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든 그녀 역시 이내 멍하니 입을 벌렸다.

“어…….”

네가 여기 왜 있니?

아르시안이었다. 그의 등장에 교실 안에 있던 이들 모두가 겁에 질린 모습으로 숨을 죽였다.

‘…나도 무서워.’

누군가를 찾는가 싶더니, 이내 목표물을 발견한 듯 그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카밀라는 점점 가까워지는 남자를 보며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아까 한 말 취소!’

내 인간관계에 귀신만 잔뜩인 거 두 번 다시 불평 안 할게! 저런 살벌한 인간, 내 인간관계에 끼워 넣고 싶지 않아!

타악!

어제 카밀라가 했던 것처럼 그녀가 앉아 있는 책상을 그가 가볍게 짚었다. 그 소리가 유독 크게 귀를 파고든다.

“나 좀 보자.”

듣기 좋은 저음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속으로 무지 떨렸지만 카밀라는 습관처럼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뭐 해줄 건데?”

“뭐?”

이런 대답이 돌아올 줄은 몰랐던 듯 아르시안의 미간이 꿈틀했다.

심장이 순간 쫄깃해졌지만 카밀라는 더욱 태연한 표정을 유지했다.

“남의 시간을 달라고 요구할 거면 대가가 있어야지.”

어쨌든 오늘 날 먼저 찾아온 건 너잖아.

여기저기서 급히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카밀라는 아르시안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뭐든.”

“어?”

“네가 원하는 거라면 뭐든.”

주위에서 경악 어린 탄식이 흘러나왔다. 그건 카밀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너 대체 나한테 무슨 볼일인데?’

뭐든 다 들어주겠다는 말에 경계심부터 일었다. 저런 말까지 하며 자신을 왜 보자고 하는 거지?

‘찜찜하다.’

무진장!

* * *

“대화도 할 수 있는 거지?”

수많은 이들의 시선을 뒤로한 채 그들이 향한 곳은 역시나 인적이 가장 드문 장소, 정령의 호수였다.

그곳에 도착한 아르시안은 다짜고짜 질문부터 던졌다.

‘당연히 입이 있는데 대화를 왜 못 해?’

…라고 말했다간 정말 한 대 맞겠지? 아마도 그가 말하는 대화는 이것일 거다.

“죽은 자와의 대화를 말하는 거라면… 그래, 할 수 있어.”

역시 원하는 대답이 이것이었나 보다. 아르시안의 눈빛이 달라졌다. 감정이 끝까지 오른 듯 흔들리는 눈빛.

“물어봐.”

“뭘?”

“누군지.”

아르시안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고 카밀라 역시 그의 옆에 시선을 줬다.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여전히 아르시안의 옷자락을 꼭 쥔 채 서 있었다.

‘쯧.’

황금빛 머리와 짙은 녹색 눈동자가 너무도 귀여운 꼬마였다. 살만 좀 붙으면 훨씬 더 예쁠 텐데.

카밀라는 아이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

그러자 아이가 움찔하며 아르시안 뒤로 몸을 숨겼다. 그러는 와중에도 아르시안의 옷자락은 절대 놓지 않는다.

“안녕.”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네자 아이가 더욱 몸을 움츠렸다.

카밀라는 뭔가 가까워질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주머니를 뒤졌다. 다행히 바지 주머니에서 입이 심심할 때 먹으려고 챙겨 놓은 사탕 몇 개가 나왔다.

“먹을래?”

아르시안의 뒤에서 고개만 빼꼼 내민 아이가 사탕을 빤히 바라봤다.

[그게 뭔데요?]

한참 후에 아이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얼굴만큼 귀여운 음성이었다.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지는 걸 느끼며 카밀라는 무릎을 굽혀 좀 더 아이와 시선을 맞췄다.

“사탕.”

[먹는 거예요?]

“응.”

다시 한번 아이의 뼈만 남은 몸이 눈에 들어왔다.

사탕조차 모르다니. 카밀라는 굳어지려는 표정을 애써 감추며 사탕의 포장지를 벗겨 아이에게 좀 더 가까이 내밀었다.

스윽.

아이가 조심스럽게 손을 뻗자 사탕 위로 희미한 빛이 떠올랐다. 그걸 아이가 입에 넣어 오물거렸다.

“뭐 하는 거야?”

아르시안이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배고픈 거 같아서.”

“…귀신이 음식을 먹을 수 있어?”

“그럴 리가.”

파스슥.

카밀라의 손 위에 있던 사탕은 가루처럼 부서져 그대로 바람에 실려 사라져 버렸다.

“이건 먹는다기보다… 음식이 가진 기운을 흡수하는 거야. 아예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갑작스러운 상황에 흠칫하는 아르시안과 달리 그녀의 표정은 담담했다.

“맛있어?”

[네.]

“더 줄까?”

끄덕!

아이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본 카밀라는 남은 사탕도 마저 포장지를 까 아이에게 내밀었다.

아이는 이번에는 별다른 거부감 없이 바로 사탕을 집어 입에 넣었다. 아이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걸 보며 카밀라는 그제야 묻고 싶었던 질문을 던졌다.

“이름이 뭐야?”

카밀라의 그 질문에 아르시안의 몸이 굳어지는 게 느껴졌다.

아르시안을 한 번 쳐다본 아이는 다시 카밀라에게 시선을 줬다.

[시에르.]

“시에르?”

끄덕.

카밀라는 다시 자세를 바로 했다. 아이의 이름을 다시 말할 필요도 없었다.

이미 정확히 전해 들은 듯, 아르시안은 아이가 있는 곳을 바라보며 조금 전보다 더욱 격앙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아이가 있는 곳을 한참 바라보던 그가 이내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리곤 두 손을 앞으로 내밀었다.

“시에르.”

[형.]

그러자 아이가 두 손으로 그의 목을 꼭 감싸 안았다.

‘형이라고?’

카밀라는 그런 둘의 모습을 그저 멍하니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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