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그렇다고 완전히 안심하기는 이르지만 말이야.’
라비부터 시작해 주변에 온통 복병투성이니까.
“그래서 말인데, 너에게 상을 주고 싶구나.”
“상이요?”
“원하는 게 있다면 뭐든 말해 보렴. 가문이 그토록 오랫동안 바라던 것을 네가 가져다줬는데 뭔들… 전 재산을 털어서라도 구해 주마.”
‘전 재산!’
물론 정말로 전 재산을 쓰실 생각은 아닐 것이다. 다만 돈에 구애받지 말고 원하는 걸 말해 보라는 뜻일 테지.
‘정말 돈으로 달라 할까?’
한 재산 뚝 떼어 달라고 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후에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건 역시 돈이다.
이곳에서 도망쳐 다른 곳에 정착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자금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대놓고 돈을 달라고 할 수는 없고.’
그건 진짜 없어 보이잖아! 그러다 그동안 간신히 쌓아 놓은 신뢰를 와장창 깰 수도 있는 일이고.
잠시 고민을 하던 카밀라의 눈에 운명처럼 뭔가가 눈에 확 들어왔다.
소르펠 공작이 앉아 있는 의자 옆, 작은 보조 테이블 위에 서류들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 서류더미 가장 위에 놓인 문서는.
“저거요.”
“저거?”
소르펠 공작의 눈이 살짝 커졌다. 그녀가 가리킨 문서가 아주 뜻밖이었기 때문이다.
“카밀라.”
“네.”
“이게 뭔 줄 알고 달라는 거냐.”
“광산이잖아요.”
“…맞다.”
“제가 너무 큰 걸 달라 한 건가요?”
걱정스레 묻는 카밀라의 모습에 소르펠 공작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 광산이야 얼마든지 줄 수 있지.”
전 재산을 팔아서라도 원하는 걸 사주겠다고 했는데 고작 이런 광산 하나 주지 못할까. 다만 문제는 따로 있었다.
“여기서 나오는 광물이 딱히 쓸모가 없어서 하는 말이다.”
처음에는 금광이라 하여 구매한 광산이었지만 지금은 쓸모없는 광석이 쏟아지고 있었다.
마력이 느껴져 마탑에 의뢰를 해 봤지만 상품 가치가 전혀 없단다. 저번 제이빌런 공작이 찾아와 함께 사용처를 연구해 보자고 한 광물이 바로 이거다.
그런데 지금 그 광산을 카밀라가 달라 하고 있었다. 주는 건 문제가 아니었지만 이런 쓸모없는 광산을 상으로 내리는 건 애매했다.
“다른 광산을 주마. 서북쪽에 있는 루비 광산을…….”
“아뇨, 아버지.”
카밀라는 급히 고개를 저었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를 펼치려고 했지만 급한 마음에 대답이 너무 빨리 나와 버렸다. 초조한 심정을 애써 감춘 카밀라가 생긋 웃었다.
“연구해 보고 싶어서요.”
“연구?”
“아직 쓰임새가 없는 저 광물, 제가 개발해 보고 싶어요.”
“흐음.”
소르펠 공작은 조금 놀란 눈빛으로 카밀라를 바라봤다.
그냥 광산이라 무작정 달라 한 게 아니라 이미 저 광산이 어떤 것인지 다 알고 있었다는 건가.
“안 될까요?”
[규우?]
소르펠 공작은 잠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어느새 카밀라의 어깨에 다시 올라가 눈을 끔벅거리며 자신을 바라보는 신수와 카밀라가 묘하게 닮아 보였다.
“안 될 건 없지.”
예쓰!
그의 허락에 카밀라는 속으로 만세를 불렀다.
* * *
“와아.”
돈 덩어리다!
카밀라는 샘플로 받아 온 광물을 보며 히죽히죽 웃었다.
[그게 뭔 줄 알고 그리 좋아해?]
[그냥 검은 돌 같습니다.]
[아프고 나더니… 쯧.]
그런 그녀를 헤르셀과 집사 유령 데린, 그리고 요리사 유령 페롤이 황당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아까부터 검은 돌을 들고 히죽히죽 웃는데 누가 봐도 정신이 온전치 못한 사람 같았다.
“이게 뭐냐면요.”
[그래, 그게 뭔데?]
[정말 그게 뭔지 아시는 겁니까?]
“음…….”
카밀라는 귀신들의 재촉에 더 짙은 미소를 지으며 쉽게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 한참 후에야 대답을 들려준다.
“마력석이요.”
[마력석?]
[그럴 리가요. 공작님께서도 이미 마탑에 문의를 하셨던 광물입니다.]
하지만 광물에 포함된 마력이 너무도 미흡해 하급 마력석으로도 쓰이기 힘들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그건 마탑에만 문의했기 때문이에요.”
[네?]
[그게 무슨 말이냐? 마력석의 감정을 그럼 마탑에서 하지, 어디서 해?]
“마탑에는 흑마법사가 없잖아요.”
마법사는 백마법사와 흑마법사로 나뉜다. 마탑에 있는 이들은 모두 백마법사로, 세간에서 흔히들 생각하는 마법사는 대부분 여기에 속했다.
‘그리고 흑마법사.’
백마법사들과 마나를 운영하는 방법 자체가 달라 예전에는 그들을 배척하고 외면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그러나 현재는 마법을 이끄는 주요 축으로 인정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마탑에는 소속이 되지 못하고 그들은 또 하나의 다른 단체를 이루고 있었다.
‘그게 문제인데…….’
이 광물, 이번에 소르펠 공작에게서 얻은 이 광물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바로 흑마법사들이 가진 그 특유의 마력이 필요했다.
“백마법사들의 마력에는 전혀 반응하지 않는 광물이어서요.”
다만 흑마법사의 마력에는 상황이 달라진다.
‘최상급 마력석이 되는 거지.’
흑마법사들이 가진 고유의 마력에는 아주 강한 반응을 보이며 대륙에 존재하는 그 어떤 마력석보다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광물로 변한다.
‘게다가 정화를 하면 백마법사들도 쓸 수 있다는 거!’
흑마법사들의 힘으로 정화된 광물은 백마법사들의 마력에도 강한 반응을 보이게 된다.
한마디로 흑마법사만 있으면 이 광물은 대륙 최고의 보물이 된다는 말이었다. 루비 광산? 다이아몬드 광산? 됐다 해!
“으흐흐……!”
[…….]
[…….]
[…….]
다시 광물을 보며 괴이한 웃음소리를 내는 카밀라의 모습에 세 유령은 살며시 고개를 내저었다.
“참!”
잠시 후 카밀라는 잊고 있던 사실 하나를 떠올리며 광물을 손에서 내려놓았다. 이내 그녀가 시선을 준 곳에는 헤르셀이 서 있었다.
“헤르셀 님.”
[음?]
“제가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똑똑히 들은 말이 있거든요.”
[무슨 말?]
스윽.
카밀라는 두 손을 앞으로 공손히 내밀었다.
“줄 거 있다면서요.”
* * *
[으아악!]
[난 아직 죽을 때가 아니라고!]
여긴 여전하네.
카밀라가 찾은 곳은 국가 공동묘지다. 저번 헤르셀을 만나러 왔던 그곳.
‘대체 뭘 주려고.’
신수의 알을 찾아 준 보답으로 무언가를 주겠다며 헤르셀은 이곳으로 와 줄 것을 청했다.
여전히 귀신들의 곡소리가 난무하는 장소를 빠르게 지나 카밀라는 헤르셀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왔는가.]
“같이 오시면 될걸, 왜 먼저 오셨어요?”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같이 있었으면서 새삼 먼저 이곳으로 와 자신을 맞아 주는 모습에 카밀라는 어이없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여기에는 왜 오라고 한 거예요?”
설마 무덤 안에 뭔가가 있는 건가? 혹 무덤을 파 보라는 건 아니겠지?
귀족들의 무덤에는 종종 평소 죽은 이가 아끼던 고가의 물건들이 같이 묻힐 때가 많았다. 그에 그런 물건을 일부러 찾아 팔아먹는 전문 도굴꾼도 존재했다.
카밀라는 뭔가를 주겠다며 굳이 무덤가로 오라고 한 헤르셀을 의심스럽게 바라봤다. 설마 자신을 도굴꾼으로 만들 생각은 아니겠지?
[이쪽이네.]
헤르셀은 카밀라를 비석이 세워져 있는 뒤쪽으로 안내했다.
[이곳을 파 보게.]
“싫어요.”
이 귀신이 진짜! 설마설마했는데 비석 뒤를 파 보라는 헤르셀의 말에 카밀라는 바로 그에게서 한 걸음 물러섰다.
“제가 아무리 거지 같은 평판을 갖고 있다지만 조상님 무덤까지 훔친 년 소리는 듣고 싶지 않거든요.”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헤르셀을 황당한 눈빛으로 카밀라를 바라보다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덤을 파 보라는 게 아니라 이곳을 파 보라는 거야.]
카밀라는 헤르셀이 가리키는 곳을 봤다. 아무것도 없는데?
[그냥 파!]
답답하다는 듯 소리치는 헤르셀을 잠시 흘겨봤다. 삽도 없는데 대체 뭘로 파라고! 미리 언질을 줬으면 뭔가 도구라도 챙겨 왔을 거 아냐!
짧은 한숨을 내쉰 카밀라는 오늘도 구두를 벗어 집어 들었다. 뾰족 구두가 요즘 들어 참 유용하게 쓰인다.
팍팍!
땅은 생각보다 부드러워 쉽게 파였다.
“음?”
그리고 깊게 팔 필요도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특이한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이게 뭐예요?”
씨앗?
모양은 누가 봐도 씨앗인데, 그런데 손톱만 한 작은 씨앗에서 희미한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설마 이것도 신수의 알 같은 건가?
[약이다.]
“약이요? 이게?”
[해독 효과가 있는 약이지.]
“이런 게 왜…….”
무덤가에 있는 약이라니, 그것도 해독 효과가 있는 약이 왜 이런 곳에 묻혀 있는 건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어떻게 죽었는지 들어 알고 있겠지.]
“독살 당하셨잖아요. 궁에서.”
[당사자 앞에서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구나.]
“뭘 새삼.”
그건 그렇다치고.
“그래서 뭐요?”
[아주 극독이었지.]
‘그렇겠지.’
마스터를 단번에 죽인 독이니 얼마나 독했겠어.
[내 몸은 죽어서도 독과 싸우더군.]
“네?”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카밀라는 황당한 시선을 그에게 보냈다. 헤르셀 역시 허탈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마스터였던 내 몸의 기운이 뒤늦게 저 독과 아주 열심히 싸우더라고. 썩어 문드러질 때까지 말이야.]
그걸 또 지켜보고 있었어?
카밀라는 살며시 고개를 내저었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자신의 죽은 신체가 썩어 들어가 변하는 모습을 대체 어떤 생각으로 지켜본 걸까?
[그 결과가 그거라네.]
투욱.
카밀라는 손에 들고 있던 씨앗을 저도 모르게 바닥에 떨어트렸다. 시체에서 발생된 물건이라고 하니 괜히 만지기 찝찝했다.
[이봐. 그 귀한 걸 그리……!]
“그러니까, 이게 정확히 뭔데요?”
[독에 정화된 내 모든 기운이 담긴 결과물이지.]
더 찜찜해.
짧은 한숨을 내쉰 카밀라는 바닥에 떨어진 씨앗 모양의 결정체를 다시 집어 들었다.
“이게 약이라고요?”
[어지간한 독은 모두 해독시키는 효과가 있지. 미리 복용한다면 평생 독에 중독될 일은 없을 거다.]
“아, 예.”
대답을 내뱉는 카밀라의 표정은 여전히 떨떠름했다.
지금껏 수많은 죽음을 맞이하였지만 독에 의해 죽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대체 이걸 어디에 쓰라는 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