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잉…….]
아무리 봐도 그냥 고양이인데.
그녀가 뒤척거리자 몸을 더욱 웅크리며 작게 낑낑거리는 것이 퍽 귀여웠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데, 시선을 느낀 신수가 슬며시 눈을 떴다.
[뀨우!]
카밀라가 눈을 뜬 것이 기쁜 듯 조금 큰 소리를 낸 신수는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그녀에게 다가와 얼굴을 연신 할짝거렸다.
달칵!
“아가씨!”
마침 그 순간 문이 열리며 도르만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의 손에는 새로 갈아 주려고 들고 온 대야와 물수건이 들려 있었다.
“깨어나셨네요! 잠시만요!”
그는 카밀라가 뭔가 말을 하기도 전에 밖으로 다시 뛰쳐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카밀라!”
소르펠 공작이 가장 먼저 달려왔다. 아마도 깨어나는 즉시 연락을 달라는 지시를 내린 것 같았다.
카밀라에게 성큼 다가선 그는 제일 먼저 그녀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곧 그의 입에서 작은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다행히 열은 내렸구나.”
밖으로 나와 있는 카밀라의 손을 다시 이불 속으로 집어넣어 주며 소르펠 공작은 잠시 그녀를 말없이 응시했다.
묻고 싶은 게 많았다. 들을 말도 많았고. 꼭 해 주고 싶은 말도 있었다.
하지만 며칠 사이 얼굴이 반쪽이 된 채 누워 있는 카밀라를 보고 있자니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쉬어라.”
그는 카밀라의 어깨를 잠시 다독여 준 후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버지.”
그런 그를 카밀라가 서둘러 불렀다.
“이 아이…….”
아이라 칭하긴 애매하긴 한데.
그녀의 시선이 여전히 옆에서 얼굴을 할짝이고 있는 아기 호랑이에게 향했다. 그 모습을 본 소르펠 공작이 피식 웃었다.
“안 떨어지려 하는구나.”
“네?”
“데리고 나갔더니 계속 울어대서 말이야. 어느새 보면 다시 이곳에 와 있더군.”
소르펠 공작이 새끼 호랑이를 안아 들었다.
[끼이잉…….]
“이렇게 말이지.”
신수가 꼼지락거리며 카밀라를 향해 연신 울어댔다.
그 모습을 잠시 어이없이 바라보고 있자 소르펠 공작이 다시 신수를 내려놓았다.
요망한 고… 호랑이가 기다렸다는 듯이 다시 총총 다가와 카밀라의 얼굴 옆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아가씨, 일단 약을 좀…….”
그사이 도르만이 다가와 약을 건넸다.
[크아앙!]
“악!”
도르만이 카밀라를 향해 손을 뻗기 무섭게 얌전히 누워 있던 새끼 호랑이가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털을 세웠다.
“그… 그쪽을 만지려고 한 게 아, 아닙니다!”
깜짝 놀란 도르만이 급히 다시 뒤로 물러섰지만, 여전히 새끼 호랑이 신수는 털을 세운 채 도르만을 경계했다. 그런 신수를 소르펠 공작이 다시 웃으며 안아 들었다.
[끼잉…….]
“그래도 내가 가주인 건 인정하는지, 날 거부하지는 않는구나.”
다른 이들은 신수를 향해 손을 뻗지도 못했다. 순한 새끼 고양이처럼 굴다가도 다른 이들의 접근에 아주 사나운 기세를 드러냈다.
“야, 약 드세요.”
소르펠 공작이 신수를 안고 있는 사이 도르만이 새끼 호랑이의 눈치를 보며 빠르게 카밀라에게 약을 내밀었다.
카밀라는 그 모습을 잠시 한심하게 바라봤다. 그래도 한때 영혼을 관리하던 신 같은 존재였던 녀석이.
“한숨 더 자렴.”
도르만이 뒤로 물러서자 소르펠 공작은 다시 신수를 카밀라 곁에 내려놓았다.
카밀라와 함께 있는 신수를 잠시 바라보며 희미한 미소를 짓던 그는 곧 방을 나섰다.
“흐음.”
카밀라는 어느새 자리를 잡고 누운 새끼 호랑이를 가만히 바라봤다.
‘동물 같은 거 딱 질색인데.’
특히 새끼나 어린아이 같은 존재는 정말 사양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 줘야 하니까.
챙김을 받아 본 적이 없어서 그럴까? 어리고 약한 것들을 보면 어떻게 대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
[뀨우?]
스르륵 눈을 감으려다 말고 다시 카밀라를 올려다본 신수가 눈을 연신 깜박인다. 그러고는 또다시 그녀의 볼을 할짝 핥았다.
…모르겠다.
‘잠이나 자자.’
약에 수면제라도 섞여 있었던 걸까? 다시 밀려드는 수마에 결국 카밀라는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 *
“이 녀석아! 거기가 어디라고 뛰어들어!”
“아니, 진짜 꿈에서 봤는데…….”
“카밀라!”
혼났다. 오랜만에.
신수의 알을 찾기 위해 정령의 호수에 뛰어들었다는 말을 전하는 순간, 소르펠 공작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루드빌 마저 연신 미간을 찌푸리며 나무라는 눈빛을 보냈다. 라비는 할 말이 많지만 하지 않는다는 듯 미간만 꾹꾹 눌러댔다.
“죄송해요. 하지만 아무도 보지 않았으니 걱정 마세요.”
“뭐?”
“주변에 사람 없는 거 꼼꼼하게 확인했으니 가문에 누가 되지는 않을 거예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야!”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
“야! 너 바보냐! 지금 그 말이 왜 나와!”
음, 소르펠 공녀씩이나 되서 채신머리없이 행동했다고 혼나고 있는 거 아니었나?
무슨 상황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카밀라의 모습에 세 남자는 동시에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그런 위험한 행동은 하지 마라.”
“딱히 위험한 일은 아니…….”
“카밀라!”
동시에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세 사람을 보며 카밀라는 움찔했다. 와, 지들이 언제부터 저리 마음이 잘 맞았다고.
“네, 알겠어요.”
자신을 지그시 응시하는 세 쌍의 눈동자에 결국 카밀라는 고개를 숙였다.
[뀨우!]
어느새 엉금엉금 기어 올라와 어깨 위를 차지한 새끼 신수가 위로하듯 그녀의 얼굴을 할짝였다.
“넌 왜 맨날 핥니?”
틈만 나면 자신의 손과 얼굴을 할짝거리는 새끼 신수다. 사탕도 아닌데 뭐가 맛있다고 이리 핥는지.
“기운을 먹고 자라는 녀석이라 그런 거란다.”
“기운이요?”
그런 카밀라의 의문을 소르펠 공작이 풀어 줬다.
“신수는 인간의 맑은 기운을 먹고 자라지.”
카밀라는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여전히 자신의 얼굴을 핥고 있는 신수를 바라봤다. 그럼 저 행동이 내 기운을 뺏어 먹고 있는 거였어?
“다만 핥는 행동 자체는 그저 이 녀석의 특징 같기도 하구나.”
소르펠 공작은 카밀라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한 듯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보통 신수는 자신이 원하는 기운을 내뿜는 존재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성장하지. 굳이 저렇게 핥는 행동을 할 필요가 없단다.”
카밀라는 신수의 코를 살짝 손가락으로 쳤다. 그만 핥아.
[끼이잉…….]
앞발로 얼굴을 감싸며 몸을 웅크리는 신수를 잠시 바라보다 다시 소르펠 공작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 녀석, 계속 제 옆에 있어도 되는 걸까요?”
카밀라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신수는 가주의 상징이다. 그런 존재가 소르펠 공작이 아닌 자신을 따르는 건 남들이 보기에도 좋지 않았다. 괜한 분란을 낳을 수 있었다.
“가주이기에 신수를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란다.”
“네?”
그가 카밀라의 어깨 위에 자리를 잡은 신수를 향해 손을 뻗었다.
[뀨우…….]
움찔하던 신수는 마지못해 소르펠 공작의 손 위로 아장아장 걸음을 옮겨 올라섰다.
“신수가 선택한 자가 매번 가주였을 뿐이지.”
소르펠 공작이 신수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신수를 바라보는 눈빛에 애정이 가득했다.
“그저 각 가문의 수장들이 신수들이 좋아하는 각각의 기운을 유독 강하게 가지고 있었을 뿐이야.”
“아…….”
“그리고 넌.”
잠시 말을 멈춘 소르펠 공작은 다시 카밀라에게 다가가려고 꿈틀거리는 신수를 재미있다는 듯 바라봤다.
“아마도 모든 신수가 반기는 기운을 타고난 것 같구나.”
“제가요?”
“그 망할 녀석의 신수도 너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더냐.”
붉은 독수리 신수 제티를 말하는 거다.
“저번에 그 녀석이 널 보고자 했던 것도 붉은 독수리 놈 때문인 것 같던데.”
“제티요?”
그러고 보니 쓰러지기 전에 집사 루브에게 들었던 것도 같다. 제이빌런 공작이 자신을 보고 싶어 한다고.
“절 왜요?”
“글쎄. 나한테는 말해 주고 싶지 않다더군.”
뭔가 짐작되는 것이 있는 듯 소르펠 공작은 연신 피식거렸다.
“…….”
카밀라는 어느새 다시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 신수를 슬쩍 안아들었다. 마음이 상당히 복잡했다.
‘이놈의 신수를 계속 내 옆에 둬도 될까?’
그녀의 복잡한 심정이 은연중에 드러났는지, 소르펠 공작이 조용히 카밀라를 불렀다.
“카밀라.”
“네?”
“고맙다.”
의미를 알 수 없는 감사 인사였다. 퍼뜩 고개를 든 카밀라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가, 소르펠 공작이 아주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지금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너무도 편안한 미소였다.
“네 덕분에 아주 오랜 숙원을 풀었구나.”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진짜로 아깝지 않아?
“우리 가문에 다시 신수가 돌아오다니.”
그동안의 마음고생이 새삼 떠오르는 듯 그의 입에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러다 다시 흐뭇한 눈빛으로 신수를 바라본다.
“충분히 기뻐할 일이지.”
“아버지.”
“잘했다.”
정말로 큰 짐을 하나 덜어낸 것처럼 홀가분한 표정인 소르펠 공작을 보며 카밀라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잘 된 건가?’
솔직히 이런 결말을 원했던 건 사실이다. 밑밥을 뿌린 이유가 다 뭐였던가. 자신의 말을 믿게 만들려고 한 작전이었다.
그렇게 열심히 밑밥을 뿌린 후에 꿈에서 봤다며 슬쩍 신수의 알이 있는 위치를 다른 이들에게 말해 줄 수도 있었다.
‘거길 왜 직접 들어가셨어요? 위험하게.’
몸이 회복되고 모든 사실을 알게 된 도르만이 물었다.
그의 말대로다. 자신이 굳이 호수에 뛰어들 이유가 없었다.
펜던트를 들고 있는 소르펠 공작을 호수 근처로 데리고만 갔어도 일은 쉽게 해결되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왜긴 왜야.’
‘네?’
‘살려고.’
‘무슨…….’
‘매번 죽는 엔딩에서 좀 멀어져 보려고.’
신수를 자신의 손으로 찾아 직접 건네주고 싶었으니까.
카밀라는 사람들의 칭찬이나 평판도 중요치 않았다. 그녀가 신경 쓰고 있는 건 여전히 단 한가지였다.
‘죽지 않으려고 용쓴 거다, 이 자식아! 이게 다 누구 때문인지 알지?’
‘…죄송합니다.’
확실히 이번 일로 큰 사고를 치더라도 바로 목이 뎅강 잘리지는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