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별일 아냐. 그냥 수영 좀 했어.”
“수영이요?”
“응.”
“이 계절에요?”
“내가 원래 몸에 열이 좀 많아.”
“오늘부터 아가씨 방의 난방을 끄도록 하겠습니다.”
“밤에는 춥잖아.”
“…….”
루브가 작게 혀를 찼다.
카밀라는 어릴 때부터 유독 추위를 많이 탔다. 초여름이 오기 전까지는 밤낮으로 난로도 끄지 못하게 하는 분이 이 계절에 수영이라고?
“뭘 좀 찾는다고 그랬어.”
의심스러운 루브의 시선에 카밀라는 결국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딱히 숨길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뭘 찾으려고 한 건데?”
“……!”
그 순간 두 사람 대화에 익숙한 음성이 끼어들었다. 차분하면서도 무게가 느껴지는 목소리. 루드빌이었다.
언제 온 것인지 그가 카밀라를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그게…….”
카밀라는 대답을 망설였다.
루드빌도 소르펠이긴 하지만, 그래도 신수의 알인데… 가장 먼저 아는 사람은 소르펠 공작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녀가 잠시 고민하자, 이를 눈치챈 루드빌이 고개를 내저었다.
“들어가.”
“네?”
그가 집무실을 가리켰다.
“아버지 만나러 온 거 아냐?”
“그렇긴 한데…….”
카밀라는 슬쩍 집무실 문을 바라봤다.
‘아무래도 다음에 다시 오는 게 좋을 것 같지?’
다른 사람, 그것도 외부인인 제이빌런 공작이 있는 곳에서 신수의 알을 전해 드리는 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전 다음에 다시…….”
“괜찮으니 들어가시죠. 안 그래도 제이빌런 공작님께서 아가씨를 뵙고 싶어 하셨습니다.”
“날?”
돌아서려던 카밀라는 집사 루브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매번 본 척도 않았으면서 왜 갑자기 나를 보고 싶어 하는 거지?
똑똑.
루브가 먼저 문을 가볍게 두드린 후 안으로 들어섰다. 그 뒤를 카밀라와 루드빌이 조용히 따랐다.
[드디어 왔구나!]
“…….”
집무실에 들어선 카밀라를 제일 먼저 맞아 준 건 소르펠 공작도 제이빌런 공작도 아닌 붉은 독수리 신수 제티였다.
아직 소환된 상태는 아닌 듯 제티가 날아오르는 모습에 시선을 주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음?]
그녀를 향해 날아오던 제티가 순간 멈칫했다.
[호오.]
독수리의 붉은 눈이 카밀라의 허리로 향했다. 작은 주머니에 자리한 알의 존재를 바로 눈치챈 것이다.
“어서 오렴.”
“네, 아버지.”
“또 보는구나.”
“안녕하세요.”
먼저 아는 척을 하는 제이빌런 공작의 모습에 카밀라는 더욱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왜 저래?
우우우우웅-
“응?”
그때 갑자기 기이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공기가 찢어지는 듯한 울림에 인사를 나누던 이들의 표정이 동시에 굳어졌다.
“……!”
누구보다 큰 반응을 보인 건 바로 소르펠 공작이었다. 그 소리의 근원지가 바로 자신의 목에 걸려 있는 펜던트였기 때문이다.
하얀 보석이 박힌 펜던트. 그토록 간절히 기다렸지만 단 한 번도 반응하지 않던 펜던트가 지금 울고 있었다.
우우우웅-
제 짝을 찾았다는 듯 펜던트에 박힌 보석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며 한곳을 가리켰다.
“이게 왜……!”
그 빛을 따라 시선을 돌린 이들의 얼굴은 더욱 경악으로 물들어갔다. 그 빛이 향한 곳이 바로 카밀라가 서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
신수의 알을 깨우는 펜던트의 존재를 처음 본 카밀라 역시 조금 당황한 상태였다.
신수의 알이 근처에 있을 때 반응을 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저렇게 확실히 빛으로 지목당할 줄은 몰랐다.
의아함과 경악이 담긴 사람들의 눈을 보며 카밀라는 주머니에서 신수의 알을 꺼내 탁자에 내려놓았다.
우우우웅- 우우웅-
펜던트에 이어 알에서도 미세한 진동과 함께 비슷한 울림이 흘러나왔다.
[드디어……!]
언제 온 것인지 헤르셀이 감격 어린 표정으로 빛을 내뿜고 있는 신수의 알을 바라보고 있었다.
“카, 카밀라, 이거 혹시……!”
천하의 소르펠 공작이 저런 모습을 보일 줄이야.
“네, 신수의 알이에요.”
그녀의 대답에 사방에서 헉, 소리가 터져 나왔다. 설마설마했는데 저게 정말 신수의 알이란 말인가!
소르펠 공작이 떨리는 손길로 자신의 펜던트를 신수의 알을 향해 가져갔다. 방 안에 있는 모두가 숨소리까지 죽인 채 긴장된 눈빛으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우우우우웅!
펜던트가 다가오자 알에서 흘러나오는 울림이 더욱 강해졌다. 그리고 이내.
화아아악!
환한 빛이 순식간에 방 안을 가득 채워 나갔다. 그 눈부심에 절로 눈이 감겼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빛이 잦아드는 걸 느끼며 사람들이 천천히 눈을 떴다.
백호.
소르펠 가문을 상징하는 신수.
「백호의 울음소리에 적들은 귀가 멀고, 백호의 한 걸음에 주변이 온통 피로 붉게 물든다.」
뾱뾱뾱-
「…한 걸음에 주변이 온통 피로 붉게 물든…」
“…….”
“…….”
아장아장 걷다 앞발을 할짝거리며 앉아 있는 작은 생명체 하나.
“…새끼 고양이?”
신수의 알이 있던 자리에 어른 손바닥보다 작은 하얀 고양… 호랑이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백호라며?”
제이빌런 공작이 망연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잠시 할 말을 잃은 채 멍하니 새로운 존재를 바라봤다.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생사(生死) 상관없이─은 헤르셀이었다.
[드디어 깨어났구나!]
그는 무척 감격스러운 눈으로 하얀 고양이를 바라봤다.
‘이게 정말 신수?’
카밀라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헤르셀을 바라봤다. 그 개고생을 해서 얻은 게 저 하얀 고양이라고?
[너무 오랫동안 깨어나지 못해서 그런 거란다. 유독 작긴 하지만 차차 제 능력을 발휘할 테니 걱정 말거라.]
그런 카밀라의 표정을 읽은 헤르셀이 간단히 설명을 해 줬다.
‘그럼 다행이고.’
카밀라는 다시 하얀 고양이… 아니, 신수를 바라봤다.
그때 마침 연신 꼬물거리던 신수가 빼꼼 고개를 들었다. 펜던트를 들고 있는 소르펠 공작과 카밀라를 잠시 번갈아 보던 신수는 이내 아장아장 걸어 한곳으로 향했다.
카밀라에게.
“응?”
할짝.
“아……!”
그 작은 몸을 쭈욱 일으켜 탁자에 가까이 있던 자신의 손을 핥는 신수의 모습에 카밀라는 움찔했다.
‘야, 저리 가.’
카밀라는 차마 작은 생명체를 확 밀어내지는 못하고 조금씩 손을 뒤로 뺐다. 하지만 신수는 계속해서 카밀라의 손을 쫓아 움직였다.
“어… 어!”
결국 탁자 아래로 떨어지려는 신수를 카밀라가 급히 손으로 감싸 안았다. 그러고는 손에 들린 신수를 급히 소르펠 공작 앞에 내려놓았다.
[뀨우?]
하지만 소르펠 공작과 다른 이들을 잠시 살피듯 두리번거리던 신수는 다시 카밀라를 향해 뾱뾱거리며 움직였다.
“…….”
아장거리며 다시 자신에게 기어오는 신수의 모습에 카밀라는 난색을 표했다.
[저 녀석도 네가 마음에 드는 거야.]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붉은 독수리 신수 제티가 재미있다는 듯 말을 건넸다.
‘이게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신수는 가주를 상징하는 존재다. 다른 이들이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카밀라는 굳어진 표정으로 소르펠 공작을 바라봤다.
‘어라?’
그런데 그런 카밀라의 걱정과 달리 소르펠 공작은 웃고 있었다.
아주 감격 어린 눈빛으로 식탁 위를 연신 걸으며 카밀라 주변을 맴돌고 있는 신수를 아주 애정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당연하지. 나도 이리 좋은걸.]
의아해하는 카밀라와 달리 헤르셀은 현재 소르펠 공작의 기분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백 년도 훌쩍 넘는 세월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모멸감을 느꼈던가! 신수가 없는 수호 가문이라고…….
그런데 드디어, 드디어 소르펠 가문에 신수가 돌아온 것이다!
[어찌 기쁘지 않겠느냐.]
‘그런 건가?’
일단은 신수를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마냥 기쁜 건가?
‘하아.’
헤르셀의 말과 소르펠 공작의 표정을 본 카밀라는 그제야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긴장이 풀려서 그럴까? 다리에 쭈욱 힘이 빠지는 기분이…….
“카밀라!”
기분이 아니라 진짜 빠지는 거였네.
카밀라는 자신을 급히 부축하는 루드빌과 당황한 표정인 소르펠 공작을 보며 결국 오늘 두 번째로 정신을 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