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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29)화 (29/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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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아 님과 카밀라 님을 매번 과거로 다시 돌려보낸 건 서로를 인식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가 가장 큰 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각자가 나중에 다시 돌아갈 세계에 대해 미리 체험하고 익숙해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답니다.”

“…….”

이시아.

분명 자신의 이름인데 이젠 뭔가 낯설었다.

“그건 그렇고, 서로를 인식하기까지 원래 이렇게 오래 걸려?”

“저도 이렇게까지 오래 걸릴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제가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이 그리 많지 않아서…….”

도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이곳에 계셨던 카밀라 님께서 마지막 순간에 저쪽 세계의 이시아 님을 제대로 인식을 하는 것으로 다행히 이 긴 굴레를 끝낼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날 인식해?

“아!”

순간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목이 잘린 카밀라와 눈이 마주쳤던 날. 그날 자신도 사고를 당했다. 아니, 죽은 거겠지. 샹들리에가 떨어… 잠깐.

“그때 그 귀신…….”

샹들리에에 매달려 있던, 자신과 똑같이 생긴 귀신.

“…진짜 이시아였구나.”

“그날 마지막으로 보신 영혼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맞습니다.”

카밀라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한 듯, 도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만약 그 타이밍을 놓쳤다면 두 분은 아직도 반복되는 삶을 계속 겪고 계셨을 테지요. 두 분 중 한 분이 서로를 완벽히 인식했던 그 타이밍! 두 세계 사이에 완벽한 틈이 생겼고 드디어 두 분을 제 자리로 다시 돌려놓을 수 있었답니다.”

아주 대단한 일을 해낸 것처럼 뿌듯해하는 도나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새삼 구두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지금 그게 자랑스러워할 일이냐.”

이제 와 돌아왔다고 지금껏 겪은 일들이 사라지는 게 아니잖아!

“이걸 그냥 확!”

두 팔로 얼굴을 방어하며 움찔하는 도나의 모습에 절로 한숨이 튀어나왔다.

“이거, 덩치도 작아서…….”

여자치고 작은 체구를 가진 도나다. 체구라도 크면 실컷 패기라도 할 텐데!

“제가 작은 게 불만이신가요?”

카밀라의 혼잣말을 들은 도나는 손뼉을 짝 치며 빙긋 웃었다. 그 순간 그녀의 몸이 흐릿해졌다.

“하?!”

그러더니 카밀라 앞에 다른 이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조그마한 도나는 사라지고 키 크고 호리호리한 몸을 가진 남자가 떡하니 앞에 서 있었다.

긴 연보라색 머리를 질끈 묶은 채 안경까지 끼고 있는 그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정식으로 다시 인사드립니다. 도르만이라고 합니다.”

“똘마니라고?”

“아뇨, 도르만…….”

“…….”

“이게 원래 제 본모습이랍니다.”

“네가 도나?”

“네.”

“…아무리 봐도 남잔데?”

“저 같은 존재는 성별이 중요하지 않지만 굳이 따지자면 그렇지요.”

“왜 굳이 여자로 변했던 거야?”

“카밀라 님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보필하기 위해선 남성보다는 여성이 더 적합할 것 같았습니다.”

“너, 내 목욕 시중도 들지 않았니?”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 같은 존재는 성별이 딱히 중요하지 않…….”

“닥쳐.”

“네.”

기가 차다 못해 어이가 없어 자꾸 허탈한 웃음이 났다. 그런 자신의 눈치를 보며 도나, 아니, 도르만이 다시 말을 이었다.

“어쨌든 영혼을 잘못 집어넣은 실수로 전 파직 당했고 능력도 많이 잃었습니다. 이젠 더 이상 영혼도 볼 수 없지요.”

그의 표정이 다시 시무룩해졌다.

“혹시 내가 귀신을 보는 것도 영혼이 바뀌어서 그런 거야?”

“그건 아닙니다. 그 능력은 원래 타고나신 능력입니다.”

“쳇.”

이것도 화풀이하려고 했는데.

카밀라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자 도르만은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두 분이 주어진 수명대로 무사히 삶을 잘 마무리하신다면, 그땐 저도 다시 복직할 수 있답니다.”

복직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어쨌든 우리가 그 개고생을 한 것도, 자꾸 죽은 것도 다 너 때문이었다는 거잖아.”

“굳이 따지자면 그렇긴 합니다만…….”

“불러.”

“예?”

“니 윗대가리 부르라고.”

“가, 갑자기 왜……?”

“원래 아랫것들이 잘못하면 윗대가리가 책임을 져야 하는 거야!”

그런 기본 상식도 몰라?

“저, 저희도 나름 책임을 지려고 노력을……!”

“뭔 책임? 뭔 노력! 니들이 뭘 했는데!”

말을 하면 할수록 더 열이 오른다.

“두, 두 분이 죽을 때마다 과거로 다시 영혼을 돌려보내는 것도 원래는 함부로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최대한 각 세계에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서로를 인식할 수 있도록 노력을……!”

“그건 내 알 바 아니고.”

“이, 이시아 님은 원래 타고난 게 많으셨습니다. 뛰어난 머리와 탁월한 연기력. 그리고 아름다운 외모까지! 거기에 저희가 드릴 수 있는 건 작은 행운뿐이었습니다.”

“행운?”

“하시는 일이 모두 잘 되게……!”

선택하는 드라마나 영화가 모두 대박이 나긴 했다. 그게 저것들이 준 운 때문이었다고? 귀신들에게 얻어 낸 정보들이 좋아서가 아니라?

“그럼 카밀라는?”

저쪽 세계의 이시아는 그렇다고 치자. 그럼 난? 현재 이곳에 있는 나는? 아무리 눈 씻고 찾아봐도 혜택 같은 건 없는데?

“저요.”

“뭐?”

“제가 딱 붙어서 보필하고 있지 않습니까.”

도르만이 방긋 웃으며 본인을 손으로 가리켰다.

“너라고?”

“네.”

“내 혜택이 너라는 거지?”

“맞습니다.”

“…….”

진짜 죽일까.

“휴우.”

도와주겠다는 도르만을 결국 신발을 집어 던져 내쫓은 카밀라는 젖은 옷을 혼자 갈아입으며 긴 한숨을 토해 냈다. 체온이 많이 내려간 듯 숨이 좀 뜨겁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날 감시했다는 거네?’

그때, 호수에 뛰어든 자신을 향해 마치 기다렸다는 듯 도나가 나타난 건 자신을 그동안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본인은 끝까지 감시가 아니라 걱정이 되어 따라온 거라고 했지만 그게 그거지 뭐.

개학 후 한동안 몰래 지켜보다 나름 학교생활을 잘하는 듯해 잠시 눈길을 거두었단다. 그러다 쥬이드 일행과의 마찰이 있은 후 다시 감시를 시작했던 것이다.

그런데 마침 내가 물속에 뛰어드는 걸 보았고, 이를 자살을 시도하는 거라 여겨서 구하려고 뛰어들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아이고, 고마워라.’

고마워서 이가 갈린다.

“젠장.”

자신을 구하러 뛰어든 거지만 하나도 안 고맙다. 물속에 뛰어든 것도 그렇고 자신을 그동안 챙긴 게 다 본인의 복직 때문이었다는 거잖아.

애초에 도나가 호수에 나타나지 않았다면 아무 문제 없이 호수에서 나왔을 것이다. 너무 놀라 호흡이 흐트러져 벌어진 일이지 않은가.

“에휴…….”

자신이 이딴 세계에 왜 들어와 있는 것인지 그 의문이 풀린 건 속이 시원한데.

“기분은 더럽네.”

더러운 기분 때문인지 자꾸 몸이 축축 처진다.

카밀라는 한쪽에 잘 놓아둔 신수의 알을 바라봤다. 그나마 저거라도 무사히 건져 와서 다행이었다.

“그럼 가 볼까?”

카밀라는 신수의 알을 챙겼다. 이런 건 오래 가지고 있어 봐야 좋을 게 없다. 괜한 오해만 생길 뿐이다.

달칵!

카밀라는 바로 방을 나섰다. 신수의 알을 주머니에 잘 간직한 채.

그런데…….

“도르만! 이것 좀 들어 줘.”

“네, 알겠습니다.”

“도르만, 나중에 간식 먹으러 와.”

“꼭 갈게요.”

…뭐지? 저 친밀함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보게 된 상황에 카밀라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도나의 모습이 아닌 본래의 모습인 도르만으로 있는 그에게 공작가 사람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말을 걸고 있었다.

“아! 카밀라 아가씨!”

카밀라를 발견한 도르만이 조르륵 달려왔다.

“뭐야?”

“네?”

“왜 다들 이렇게 자연스러워?”

“아…….”

카밀라가 무엇을 의아해하는지 알아챈 도르만이 빙그레 웃었다.

“그나마 남아 있는 제 능력이지요.”

“능력?”

“뜬금없이 나타나도 사람들이 제 존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답니다. 오래전부터 알던 사이로 기억의 혼란을 주는 거죠. 카밀라 님 곁에 딱 붙어 있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라 다행히 뺏기지 않았답니다.”

“안 붙어 있어도 되거든?”

“에?”

“네가 붙어 있다고 해서 안 죽는 것도 아니었잖아.”

대체 뭔 도움이 된다고 붙어 있는 거래? 마지막에 편들어 준 거? 죽을 때 누구보다 서럽게 울어 준 거?

‘그것도 그래!’

그 운 것도 자기 복직이 이번에도 실패해서 운 거 아냐?

“그럴 거면 그냥 미리 다 말해 주면 됐잖아.”

영혼이 바뀌어 상황이 이러니 카밀라에게 좀 얌전히 살라고, 이러다 또 죽는다고 미리 언질이라도 해 줬으면 그리 쉽게 매번 죽었겠어?

“그랬으면 영혼이 바뀌면 괜찮아 질 거라는 작은 희망이라도 안고 열심히 살았을 거 아냐.”

“그건 제 권한이 아니라서요.”

도르만은 나름 억울하다며 울상을 지었다.

“영혼이 제자리로 돌아오기 전에 사실을 알리는 건 금지된 상황이었습니다. 작은 충격으로도 불안정한 영혼은 깨어지기 쉬우니까요.”

“그래서.”

“네?”

“네가 도움이 된 게 뭔데?”

“…차 한 잔 드릴까요?”

“…….”

“바, 방 청소 바로 하겠습니다.”

“…….”

“빨래도……!”

“쓸모없네.”

“너, 너무하세요.”

더 이상의 대화가 무의미하다는 걸 느낀 카밀라는 걸음을 옮겼다.

“어?”

소르펠 공작의 집무실에 다다랐을 때 카밀라는 마침 차를 준비해 안으로 들어서려는 집사 루브를 볼 수 있었다.

그녀의 등장에 노크를 하려던 루브의 손길이 멈췄다.

“아가씨.”

“아버지 안에 계시지?”

“네, 손님과 대화 중이십니다.”

“손님?”

“제이빌런 공작님께서 오셨습니다.”

“아.”

아까 곧장 방으로 향하는 바람에 손님이 집에 와 있다는 사실을 미처 전해 듣지 못했다.

“괜찮으십니까?”

집사 루브가 아직까지 물기가 살짝 남아 있는 카밀라의 머리에 시선을 줬다.

그녀가 흠뻑 젖어 돌아왔다는 사실은 물론, 제 방에 아무도 들어오지 말라고 명을 내렸다는 것 역시 이미 전해 들었다. 다만, 손님이 와 있는지라 소르펠 공작에게도 아직 보고를 올리지 못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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