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침을 잠시 토해낸 카밀라는 할 말이 많았지만 일단 자신의 품을 급히 뒤졌다. 정신이 들자마자 드는 생각은 하나뿐이었기 때문이다.
‘휴우.’
다행히 신수의 알이 만져졌다. 다시 저 빌어먹을 호수에 들어갈 일은 없는 거다.
그 사실에 그제야 자신이 새삼 살았다는 걸 깨달으며 긴 안도의 한숨이 연신 쏟아졌다.
진짜 물귀신 되는 줄 알았네!
바닥에 축 늘어졌던 카밀라는 간신히 다시 눈을 떠 도나를 지그시 바라봤다.
“너 뭐야?”
너 진짜 뭐냐고!
“네가 여긴 왜 나타나?”
카밀라로서는 어이가 없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공작가에서 자신을 배웅했던 그녀가 뜬금없이 학교에 왜 온 건지, 자신을 쫓아 왜 물속에 뛰어든 건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아가씨야말로 이게 무슨 짓이에요!”
“무슨 짓이라니?”
“호수에는 왜 뛰어드신 거예요!”
“그거야,”
“갑자기 왜 죽으려고 하시는 건데요!”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
“이번에 죽으면 정말 끝이에요!”
“…뭐?”
이번?
“예전처럼 다시 과거로 돌아가지 못한다고요!”
순간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온몸을 휩쓸었다. 젖은 몸에 닿는 바람이 너무도 시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소름이 바람 때문인지 아니면 도나의 말 때문인지 파악하지 못한 채 카밀라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갔다.
“너 지금 뭐라고 했니?”
* * *
“어머!”
“세, 세상에!”
“아가씨!”
집으로 돌아온 카밀라는 흠뻑 젖은 그녀를 보고 놀라는 이들의 모습에 입을 꾹 다물었다.
옷을 갈아입고 돌아올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펄럭!
순간 커다란 망토가 자신을 감쌌다. 고개를 돌리니 루드빌이 자신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훈련 중이었던 듯 기사단 정복을 입고 있었다.
“또 그 녀석들이야?”
그 녀석들?
‘아.’
그녀가 또 쥬이드 일행에게 괴롭힘을 당한 거라 여긴 듯 루드빌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도리도리.
카밀라는 가볍게 고개를 저은 뒤 걸음을 다시 뗐다. 지금은 누구와도 얘기할 기분이 아니었다.
자신을 쫓아오려는 이들을 모두 뒤로한 채 카밀라는 단 한 사람, 도나에게 시선을 던졌다.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서 있는 그녀에게 카밀라는 눈빛으로 말했다.
당장 따라오라고.
[얘야.]
[아가씨…….]
“두 분도 나가세요.”
잠시 후 방에 들어선 카밀라는 따라 들어온 헤르셀과 데린에게도 단호하게 말을 건넸다.
[하지만…….]
“지금 이 시각 이후로 이 방에서 일어나는 일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보이거나 엿듣는 이가 있다면 두 번 다시 저와 대화할 생각이 없는 걸로 간주하겠어요.”
그 어느 때보다 냉랭하게 표정이 굳어져 있는 카밀라의 모습에 둘은 결국 그 자리에서 바로 모습을 감췄다.
똑똑.
“들어와.”
이내 방문이 열리고 시녀 도나가 안으로 들어섰다.
“아가씨…….”
“…….”
“일단 따듯한 차라도 한 잔 가져다 드리……!”
“됐고.”
카밀라는 그녀의 말을 바로 잘랐다.
“너 뭐야?”
“누구긴요. 아가씨를 모시는 시녀 도나…….”
“죽을래?”
어디서 말장난이야.
냉기가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에 도나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똑바로 대답해. 이번에 죽으면 과거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예전처럼 다시 과거로 돌아가지 못한다고요!’
지금껏 있었던 일과 호수에서 도나가 한 말을 몇 번이고 곱씹었다. 그렇게 내린 결론을 카밀라가 한 자 한 자 입 밖으로 내뱉었다.
“내가 어째서 이 세계에 들어오게 된 건지,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너 알고 있지?
결국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도나가 자세를 바로 했다. 이내 체념 어린 한숨과 함께 뜻밖의 대답이 돌아왔다.
“얼마 전까지는 영혼 관리자였습니다.”
카밀라의 눈썹이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도나가 황급히 설명을 덧붙였다.
“말 그대로 영혼을 관리하는 자입니다.”
사신 같은 건가. …근데 나 왜 안 놀라니? 에이씨.
‘짜증 나.’
영혼 관리자라는 말도 안 되는 단어를 듣고도 딱히 놀라지 않는 자신의 모습에 순간 자괴감이 들었다.
역시 귀신들을 보는 건 정신 건강에 아주 좋지 않은 영향을 주는… 잠깐, 얼마 전까지?
“지금은 아니라는 거야?”
“네.”
도나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쫓겨났거든요.”
“쫓겨나?”
“제가 실수를 좀 해서…….”
도나가 다시 카밀라의 눈치를 보며 말을 이었다.
“두 영혼을 잘못 집어넣었거든요.”
“그게 무슨 말이야? 다른 사람 몸에 다른 영을 집어넣었다는 거야?”
“역시 이해가 빠르십니다!”
손뼉까지 치며 감탄하는 도나와 달리 카밀라의 표정은 점점 더 싸늘해졌다.
영혼을 잘못 집어넣어? 왜 그 말에 기분이 싸할까?
“사람에게 각자 맞는 옷이 있고 그걸 입어야 편하듯이 영혼도 그렇습니다. 맞지 않은 영혼이 몸에 들어오면 모든 것이 어긋난답니다.”
잠시 말을 멈춘 도나는 다시 카밀라의 눈치를 봤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주변 이들에게 외면을 받지요.”
“외면?”
“심지어 가족들조차 애정을 주지 못합니다. 다들 그 존재를 아주 껄끄럽게 여겨요.”
“…….”
“본능 같은 겁니다. 자신과 다른 것에 대한 거부감을 본능적으로 느끼는 거죠. 누구라 할 것 없이 그 사람을 기피하고 외면하게 됩니다. 간혹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지만 그건 정말 특수한 경우죠.”
외면, 기피.
“그러니까…….”
카밀라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그러자 어깨에 걸쳐져 있던 망토가 스르륵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 바뀐 영혼이 나라는 거네?”
“맞습니다!”
도나가 다시 손뼉을 짝 쳤다.
“카밀라 님과 이시아 님의 영혼이 뒤바뀌신 거죠. 역시 이해력뿐만 아니라 판단력까지 뛰어나십……!”
“닥쳐.”
“네.”
“…….”
카밀라는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뭔가 강한 둔기로 머리를 수차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지금껏 카밀라와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이 영혼이 뒤바뀌어 벌어진 일이라는 거잖아.
‘다 너 때문이야!’
‘아, 아빠…….’
‘너 같은 게 내 딸일 리가 없어!’
오래전의 기억 한 조각이 떠오른다. 아빠라는 인간이 툭하면 저주의 말을 내뱉던 기억이.
‘아버지! 사, 살려 주세요!’
‘끌고 가라.’
‘아, 아버지!’
카밀라의 마지막 모습도 떠올랐다.
“실수?”
실수라고? 나와 카밀라가 겪은 그 모든 일이 고작 실수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지껄이고 있는 거야?
“하! 이런, 씨…….”
오랜만에 느껴 보는 빡침에 머리가 띵했다.
“저기…….”
순간 도나가 움찔하며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갑자기 신발은 왜……?”
신고 있던 구두를 벗어 손에 쥐는 카밀라의 모습에 도나의 말투가 조금 전보다 더 조심스러워졌다.
“그냥.”
구두가 아주 뾰족한 게 오늘따라 참 흡족했다. 구두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왠지 들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도나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몸을 조금 더 뒤로 물렸다.
“그래서, 지금 이 몸이 원래 내 거였다는 거야?”
“맞습니다.”
“이유가 뭐야?”
“이유요?”
“잘못한 거 알았으면 영혼을 다시 제자리로 바로 돌려놓았어야지! 바로 안 바꾼 이유가 뭐냐고!”
영혼을 실수로 바꿨다는 걸 알았을 때 곧바로 다시 제자리로 돌려놨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일이지 않은가.
“대체 왜!”
대체 왜 그 긴 세월을 그냥 내버려 두다가 이제 와 갑자기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은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미 몸에 정착한 영혼을 다시 빼서 바꾸는 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그것도 각각 다른 차원에 있는 영혼을요.”
도나의 입에서 짧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두 차원이 유지하고 있는 고유의 법칙을 깨는 것이라 그 세계의 흐름이 망가질 수도 있거든요.”
도나는 말을 내뱉으면서도 카밀라가 꼭 쥐고 있는 구두에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뒤로 슬쩍 물러섰다.
“그래서 한 가지 조건이 필요했습니다.”
“조건?”
“서로를 인식하는 거죠. 자연스럽게요. 아마도 아가씨께선 이곳을 오랫동안 지켜보셨을 겁니다.”
20년 넘게 겪었던 그 이상한 현상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고?
‘그런데 잠깐만…….’
서로를 인식해?
“설마 이 아이도 날 지켜봤던 거야?”
“그렇습니다.”
“……!”
“이곳에 계셨던 카밀라 님 역시 저쪽 세계 이시아 님의 반복되는 삶을 계속 지켜보셨지요.”
“하…….”
그 현상을, 다른 세계에 빨려 들어가 다른 삶을 지켜보는 현상을 이 아이 역시 똑같이 겪었던 거다.
“그러니까, 여기가 내 자리라는 거네.”
“네.”
“이젠 저쪽 세계에 두 번 다시 못 가는 거고?”
“맞습니다.”
“이젠 죽으면 그냥 끝?”
“딩동댕!”
카밀라는 한참 동안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울컥 화가 치밀어 오르다가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이제 정말 저쪽 세계로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는 사실에 막막했다가 진짜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돌아왔다는 것에 묘한 감정도 일었다.
“…잠깐.”
그러다 카밀라는 문득 떠오른 또 하나의 사실을 깨닫곤 흠칫했다.
“설마 저쪽 세상에 있던 나도 매번 죽은 거야?”
조금 전 분명 ‘이시아의 반복되는 삶’이라고 했다. 그 말은 자신 또한 저쪽 세상에서 매번 죽어 과거로 돌아갔다는 말 아닌가?
“네, 이시아 님도 매번 죽으셨죠.”
“……!”
“아버지의 손에.”
“…누구?”
“그쪽 세상 아버지요.”
그 인간이 갑자기 여기서 왜 튀어나오는 건데?
“하…….”
오랫동안 모습을 보지 못했다. 돈 내놓으라며 자신을 협박했다가 본전도 못 찾고 사라진 후 눈앞에 나타난 적이 없었는데.
‘내가 결국 그 인간 손에 죽었다고?’
그것도 매번?
“그럼 또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거잖아.”
저쪽 세계의 이시아가 위험하다는 거다!
“그 사실을 이시아 님도 알고 계십니다.”
도나는 걱정 말라는 듯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카밀라 님께서 현재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고 계시는 것처럼, 그분 또한 저쪽 세계에서 아주 열심히 위험을 제거하고 계실 겁니다.”
“하긴.”
그 애도 바보가 아닌 이상 뭔가 대비는 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