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여부를 떠나 공장을 키운다는 의견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혹여 소르펠 공작에게 그런 생각이 없다 하더라도 한 번쯤 설득해 보는 것도 좋을 듯했다.
“이런 말 들어 보셨어요?”
“네?”
“행운과 불행은 늘 같이 온다는 말.”
“행운이요?”
의아해하는 그에게 카밀라는 들고 있던 뭔가를 건넸다.
“이게 뭡니까?”
“행운이요.”
행운?
카밀라가 건넨 건 작은 선물 상자였다.
“풀어 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그녀가 갑자기 자신에게 선물을 왜 주는 것인지 의아해하며 그는 리본으로 묶여 있는 상자를 풀었다.
“…….”
상자 안의 물건을 확인한 샤일런 백작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옆에 있던 집사 루브 역시 미간을 살며시 찌푸렸다.
‘당연한 반응이지.’
샤일런 백작의 올해 나이가 49세였다. 그의 아내는 그보다 한 살 어린 48세였고.
두 사람은 누가 봐도 부러워할 정도로 사이가 무척 좋았다. 결혼한 지 20년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서로를 향한 애틋함이 존재했다. 하지만 그런 두 사람에겐 한 가지 문제가 있었으니.
‘아이가 없다는 거.’
신이 질투라도 한 것인지 금슬이 너무도 좋은 두 사람 사이엔 아이가 없었다.
주변에서 입양을 권하기도 했지만, 샤일런 백작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아내의 피를 잇지 않은 아이를 사랑할 자신도 없거니와, 그런 마음으로 아이를 데려오는 건 아이나 자신들 부부 모두에게 불행이라면서 말이다.
대신 여러 보육원을 오랫동안 아내와 함께 후원하고 있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직접 보육원을 찾아가 아이들을 돌보기도 했다.
그렇게 아이를 간절히 바라다 못해 포기한 상태인 그들에게 카밀라가 선물한 건…….
“아기 신발이군요.”
바로 아기들이 신는 작은 신발이었다.
“참 귀엽죠?”
샤일런 백작은 입을 꾹 다문 채 카밀라를 바라봤다.
‘날 놀리는 건가?’
그게 아니고서야 이런 선물을 자신에게 할 이유가 없었다.
“잘 간직하세요.”
“네?”
“곧 필요하시게 될 거예요.”
미간을 찌푸리는 샤일런 백작을 보며 카밀라는 그저 빙그레 웃었다. 그러곤 별다른 말 없이 그 자리를 떠나갔다.
“…….”
손에 든 아기 신발과 떠나가는 카밀라를 잠시 번갈아 바라보던 샤일런 백작의 얼굴이 더욱 차갑게 굳어 갔다.
하지만 며칠 후.
“얘기 들었어?”
“샤일런 백작 부인께서 아기를 가지셨대!”
“그런데 그 사실을 제일 먼저 알려 준 게 카밀라 아가씨라며?”
“뜬금없이 샤일런 백작님께 아기 신발을 선물하셨다잖아. 곧 필요하게 될 거라면서!”
“그것도 분홍 신발이라며? 태어날 아기가 딸이라는 건가?”
“그건 모르지.”
샤일런 백작가에 큰 경사가 생기고 그 일에 카밀라의 이름이 같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부인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샤일런 백작은 그날 바로 카밀라를 찾아와 감격 어린 얼굴로 연신 감사 인사를 건넨 것이다.
마치 그녀가 자신들 부부에게 아기를 선물해 준 당사자라도 된 것처럼 그는 카밀라를 연신 찬양했다.
“얼마 전에 바셀 자작님이 새로운 사업 파트너를 데리고 오셨는데 그 사람을 보자마자 카밀라 아가씨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셨대. 찜찜해서 조사를 해 보니 그 새로운 파트너가 사기꾼이었던 거지!”
“시녀장님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것도 맞추셨잖아! 어서 집에 가 보라고 해서 가 봤더니 어머니가 돌아가셨대.”
“저번에 화재가 일어나는 꿈을 꾼 것도 우연이 아닌 것 같지?”
“완전 신기해!”
“우리 아가씨! 신의 계시라도 받고 계신 거 아냐?”
“진짜 그런 건가?”
“수도의 유명한 점술가보다 더 잘 보시는 것 같아!”
“요즘 아가씨 근처에 알짱거리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 자기도 점 좀 봐 달라고!”
공작가가 떠들썩했다. 다들 최근 카밀라가 보여 준 신비한 능력에 놀람과 감탄을 내뱉고 있었다.
한 번은 우연이라 넘어갈 수 있다지만 계속되는 신기한 현상은 더 이상 무시하기 힘들었다.
“카밀라.”
“네, 아버지.”
그건 소르펠 공작 또한 마찬가지였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니.”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놀람과 감탄에 걱정도 함께 하고 있다는 거다.
카밀라의 능력이 혹여 그녀에게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뭔가 위해가 가해지는 건 아닌지에 대한 걱정이었다.
“저도 모르겠어요.”
카밀라는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꿈으로 보기도 하지만… 그냥 특정 인물을 본 것만으로도 이상한 장면이 떠오를 때가 있어서요.”
“몸은?”
“네?”
“아픈 곳은 없는 거냐.”
“네, 그건 걱정 마세요.”
“…그래.”
자신을 안심시키듯 방긋 웃는 카밀라를 보며 소르펠 공작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카밀라에 대한 얘기가 이미 곳곳에 퍼진 듯, 어제는 신전에서까지 연락이 왔다. 그녀의 예지 능력이 혹 신성력과 관련되지는 않았는지 조사를 해 보고 싶다면서 말이다.
물론 소르펠 공작은 일말의 여지도 주지 않고 바로 냉정히 그들의 청을 거부했다.
“혹 몸에 이상이 있거나 하면 바로 나에게 말을 해야 한다.”
“네, 아버지.”
카밀라는 다시 희미한 미소를 지어 준 뒤 잠시 말을 끊었다.
“그런데…….”
“음?”
“제가 요즘 자꾸 반복해서 꾸는 꿈이 있거든요.”
“반복해서?”
한 번도 아니고 같은 꿈을 여러 번 꾼다는 카밀라의 말에 소르펠 공작의 얼굴이 살며시 굳어졌다. 그녀의 꿈을 더 이상 무시하기 힘든 상황이었으니까.
“나쁜 꿈이니?”
“그건 아니에요.”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은 카밀라는 자신을 빤히 응시하고 이는 소르펠 공작을 안심시키기 위해 다시 미소를 머금었다.
“일단 제가 확인해 보고 말씀해 드릴게요.”
“확인?”
“네.”
“위험한 건 아니고?”
“전혀요.”
어떤 꿈인지 바로 말해 줄 생각이 없는 듯 카밀라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다물었다. 소르펠 공작 역시 거기에 대해 더 캐묻지 않았다.
‘자, 이제 밑밥은 다 뿌렸고.’
슬슬 신수의 알을 찾으러 가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