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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26)화 (26/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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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의 알을 그렇게 오래 방치해 둬서는 안 되는 거라네.]

[맞습니다.]

데린은 또 언제 왔대?

[그 어떤 일보다 우선시되어야 하는 일이지.]

[그렇지요.]

[우리 가문이 가진 평생의 한이 담긴 일이니 서둘러 마무리…….]

그만, 그만!

“알겠어요.”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헤르셀과 그 말에 동조하는 집사 유령 데린의 입을 서둘러 막았다.

“신수의 알 찾아올게요. 최대한 빨리.”

[저, 정말이십니까?]

“그 전에 준비할 게 있어요.”

[준비요?]

기쁜 표정을 짓던 데린의 얼굴이 다시 시무룩해졌다. 카밀라가 또 뭔가 핑계를 대고 신수의 알을 찾는 걸 미룰 것이라 생각하는 듯했다.

‘거참, 사람 말은 못 믿긴.’

안 그래도 슬슬 시작하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보다 좋은 방법이 없더라고.

“흠흠.”

카밀라는 손으로 목을 매만지며 잠긴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리고.

“꺄아아아악!”

저택이 떠나가라 있는 힘껏 비명을 질렀다.

[……!]

[……!]

그 소리에 깜짝 놀란 헤르셀과 데린이 한쪽으로 급히 물러섰다.

벌컥!

“아가씨! 무슨 일이세요!”

잠시 후 방문이 열리며 도나가 달려왔다.

“무, 무슨 일이야?”

“카밀라 아가씨?”

“뭔데? 왜 그래?”

“방금 비명 소리 뭐야? 무슨 일인데?”

이어 같은 층에 대기하고 있던 다른 시녀와 시종들도 웅성거리며 뛰어왔다. 공작의 명이 있었다더니 확실히 예전보다 시종 시녀들의 행동이 아주 빠릿빠릿했다.

“아, 아가씨! 괜찮으세요?”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벌벌 떨고 있는 카밀라를 본 도나가 급히 다가서며 안부를 물었다.

다른 시종과 시녀들도 무슨 일인가 싶어 걱정스러운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혹 침입자라도 있었던 건가?

몇몇 시종이 병사들을 부르기 위해 서둘러 밖으로 뛰쳐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카밀라는 부들부들 떨기만 할 뿐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도나가 건네는 물잔도 제대로 잡지 못한다.

“카밀라!”

그 사이 소식을 전해 들은 듯 소르펠 공작이 방 안으로 급히 들어섰다.

부르르 떨리던 카밀라의 몸이 소르펠 공작과 마주하는 순간 거짓말처럼 진정이 됐다.

대신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이 아주 멍했다. 그러다 눈가가 그렁해지더니 눈물이 주르륵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카, 카밀라!”

“아버지…….”

“무슨 일이냐!”

“괜찮으세요?”

“뭐?”

카밀라는 가까이 다가온 소르펠 공작의 손을 꼭 쥐었다. 그녀는 울먹이며 말을 이었다.

“꿈에, 아버지가…….”

“꿈?”

“불이, 커다란 불이, 흑!”

“…….”

“아버지 집무실에 천이 가득 쌓여 있는데…….”

“천?”

“커다란 불이… 흑, 그런데 제가 어서 나오시라고 해도, 잡아끌어도 아버지가 안 나오시고 불 속에… 흐흑…….”

방 안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괴이해졌다. 고작 꿈 때문에 이런 소란이 벌어진 거라고?

그중 가장 뜨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건 바로 라비였다. 이젠 하다 하다 이런 일까지 벌이냐며 별 해괴한 짓을 다 한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저 인간은 왜 왔대?’

아까 저녁에도 연구실에 틀어박혀 바쁘다며 나오지도 않더니. 그러고 보니 루드빌도 한쪽에 조용히 서 있었다.

내 비명 소리가 그렇게 컸나? 최대한 소란을 일으킬 목적으로 비명을 지른 거긴 하지만.

“불 속인데도 날 데리러 들어온 게냐.”

그 순간 소르펠 공작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자신의 손을 꼭 잡은 카밀라의 손에서 여전히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그 모습을 본 소르펠 공작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비록 꿈이었지만 자신을 구하러 카밀라가 불 속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이 무척 감동이었다.

“너무 놀라서, 흑, 죄송해요.”

“아니다, 아니야. 많이 무서웠나 보구나.”

소르펠 공작은 흐뭇한 표정으로 카밀라의 머리를 연신 쓰다듬었다.

‘그래.’

다른 이들이 얼빠진 표정을 짓든 말든 뭔 상관이겠는가. 소르펠 공작만 이리 좋아하면 됐지.

‘게다가 원래 목적은 이게 아니거든.’

오늘 낮에 라일라, 그녀를 만나고 나서 떠오른 것이 있었다.

이맘때쯤 소르펠가에서 운영하는 방직 공작에 큰불이 난다. 가문의 주력 사업은 아니었지만 그 일로 한동안 소르펠 공작은 무척 바쁘게 밖을 돌아다녀야만 했다.

정확한 날짜는 모르겠지만, 라일라가 전학 오고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날 테니 아마도 일주일 안에 일…….

벌컥!

“공작님!”

그때 방문이 큰소리와 함께 열리며 보좌관 잭터가 안으로 급히 들어섰다.

“무슨 일인가.”

“문제가 좀 생겼습니다.”

“문제?”

카밀라의 방에 노크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온 잭터를 눈빛으로 나무라던 소르펠 공작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

이런 늦은 시간에 저리 급히 찾아올 정도면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걸 짐작한 것이다.

“베르크 지역의 방직 공작에서 큰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화재?”

잭터의 말을 같이 듣고 있던 카밀라 역시 속으로 무척 당황했다. 와, 타이밍 귀신같네.

“네, 다행히 늦은 시간이라 인명 피해는 없다고는 하는데……. 아무래도 한동안 공장 운영에는 무리가 있을 듯합니다.”

“흐음. 일단 집무실로 가지.”

“네.”

잭터와 함께 밖으로 향하던 소르펠 공작의 걸음이 뚝 멈췄다. 그의 시선이 어느덧 눈물을 그친 카밀라에게 향했다.

조금 전에 카밀라가 한 말이 떠올랐다. 집무실에 가득 쌓여 있던 천이 불타올랐다고 했는데.

다른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들 놀란 눈빛으로 카밀라를 바라봤다. 그냥 집무실이 불타오른 것도 아니고 거기에 쌓여 있던 천이 타올랐다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사람들은 곧 ‘에이, 우연이겠지.’ 혹은 조금 신기해하며 자신들의 자리로 다시 돌아갔다.

‘나도 신기하다. 신기해.’

어찌 타이밍을 이리 딱 맞췄냐?

카밀라는 도나가 건네는 물을 다시 천천히 마시며 어색한 미소를 흘렸다.

* * *

[밑밥이요?]

“네.”

[……?]

[물고기 잡는 것도 아니고, 갑자기 뭔 밑밥?]

헤르셀과 데린은 카밀라의 말을 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밑밥이라니, 어젯밤에 비명을 지른 게 신수의 알을 찾기 위한 밑밥이라고?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제가 갑자기 신수의 알을 찾아오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좋아하겠지.]

“…….”

죽으면 다들 저렇게 단순해지는 걸까.

“좋아하는 건 잠깐이죠. 그 후에는요?”

[그 후?]

“알이 있는 곳을 어찌 알았냐고, 어떻게 찾을 수 있었냐고 질문 세례를 퍼붓지 않을까요?”

[흐음.]

[아마도 그렇겠죠?]

“그럼 전 뭐라고 해야 할까요?”

[그거야…….]

“돌아가신 헤르셀 님이 가르쳐 줬다고 사실대로 말하면요? 공작 영애가 드디어 정신줄 놨다고 하지 않겠어요?”

[…….]

“어쨌든 그래서 밑밥이 필요한 거예요.”

[신수의 알도 꿈에서 있는 곳을 봤다고 말하려고?]

“네.”

[그거야말로 사람들이 믿어 줄까?]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고작 한 번 우연히 불이 난 상황을 꿈에서 보고 맞췄다고 하여 바로 사람들이 제 말을 믿어 줄 것 같진 않았다.

“그러니 밑밥을 더 뿌려야죠.”

[더?]

[어떻게 말입니까?]

카밀라는 헤르셀과 데린의 물음에 그저 빙그레 웃었다. 그때 타고 있던 마차가 스르륵 멈췄다.

“아가씨, 도착했습니다.”

마부가 열어 주는 문을 통해 카밀라는 천천히 마차에서 내렸다. 그런 그녀의 앞에는 작은 가게가 자리하고 있었다.

가게 창문으로 어린 아기들이 쓰는 용품들이 진열되어 있는 게 보였다.

[여긴 왜?]

“밑밥 재료 사려구요.”

[재료?]

의아해하는 헤르셀과 데린을 뒤로한 채 카밀라는 가게로 향했다.

그런 그녀를 향해 그들이 마지막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어제 말이야. 방직 공장에서 화재가 날 건 어떻게 안 거야? 정말 우연이야?]

[저도 그게 궁금합니다. 아가씨, 어떻게 아신 겁니까?]

[우연이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말이 안 되는데.]

꿈을 꾸었다며 훌쩍이던 카밀라의 연기는 일품이었다. 갑자기 비명을 지르는 것부터 모두 지켜본 헤르셀과 데린 또한 깜박 속을 정도로 리얼한 연기였다.

그래도 가장 놀라운 건 카밀라가 공장에서 일어날 화재를 어찌 알았냐는 거다. 설마 그냥 아무 말이나 내뱉은 건 아닐 테고.

“아! 바쁘다, 바빠.”

카밀라는 두 유령의 지긋한 시선이 느껴졌지만 짐짓 모르는 척 서둘러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 * *

“어서 오십시오, 샤일런 백작님.”

“공작님은 안에 계신가?”

“네, 기다리고 계십니다.”

입구까지 나와 기다리고 있던 집사 루브가 정중히 인사를 건넸다.

샤일런가. 소르펠 공작가와 가장 친밀하고 오래된 가신 가문이다.

오늘 그가 공작가를 방문한 이유는 며칠 전에 있었던 방직 공장의 화재 사건 때문이었다. 그 공장을 관리하고 책임지고 있던 이가 바로 샤일런 백작이었다.

평소 늘 편안해 보이던 그의 얼굴은 눈에 띄게 굳어 있었다. 공장을 관리하고 책임지는 자리에 있는 자로서 이번 일은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다행히 피해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다시 공장을 돌리려면 제법 긴 시간이 필요했다.

‘휴우.’

속으로 짧은 한숨을 내쉰 그는 집사 루브의 뒤를 조용히 따랐다.

“음?”

잠시 후 샤일런 백작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집무실로 향하는 복도 끝에서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

샤일런 백작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카밀라 아가씨.”

그러자 그녀가 빙그레 웃으며 우아하게 화답했다.

“네, 오랜만이에요, 샤일런 백작님.”

그의 표정이 굳어 있는 걸 본 카밀라는 희미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이번 공장 화재 때문에 오셨나 보네요.”

“네.”

화재라는 단어에 절로 그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러다 조금은 의외라는 눈빛으로 카밀라를 바라봤다.

이번에 화재가 난 공장이 자신의 관리하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건가? 가문의 사업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분인 줄 알았는데.

“너무 심려 마세요.”

카밀라는 그를 위로했다. 이전의 경험을 토대로 슬며시 언질을 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제가 슬쩍 들어 보니 이참에 아예 방직 공장을 두 배로 키워 새로 짓는 걸 계획하고 계시더라고요.”

생각지도 못한 말에 샤일런 백작의 눈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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