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어…….’
제이빌런 공작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깨에 신수가 앉아 있는 걸 모르는 듯 툭툭 그쪽 어깨를 손으로 치고 있었다.
‘불러내기 전까지는 귀신과 같은 건가?’
신수는 평소에 그들만의 공간에서 머무르다가 주인이 부르면 모습을 드러낸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나 지금 보니 이는 사실과 조금 다른 듯했다.
‘귀신처럼 저렇게 주변을 계속 맴돌고 있는 거야?’
그러다 주인이 부르면 모습을 드러내는 거고?
제이빌런 공작의 어깨에서 꾸벅 꾸벅 졸듯 앉아 있던 붉은 독수리는 순간 고개를 들었다.
“…….”
[…….]
둘의 시선이 딱 마주쳤다.
잠시 말없이 그녀를 멀뚱히 바라보던 신수가 슬쩍 날아올라 탁자에 내려앉았다. 카밀라는 그런 신수의 행동을 무의식중에 쫓았다.
[넌 내가 보이는구나.]
순간 움찔한 카밀라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저 붉은 독수리라는 걸 깨달았다. 그녀의 표정이 조금 어색해졌다.
‘신수의 목소리는 가주만 들을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뭐가 이렇게 알려진 것과 다 달라!
그러는 와중에도 신기한 듯 신수는 카밀라의 주변을 맴돌았다.
[깨끗하네.]
깨끗해? 뭐가? 내가? 내가 좀 청결하긴 하지.
[영(靈)이 아주 맑아.]
뭔 도 닦는 소리야. 너 사이비 교주니?
“제티.”
그때 제이빌런 공작이 조용히 이름 하나를 불렀다.
‘제티?’
초코맛…….
아주 달콤한 초코 음료가 떠오르는 순간, 사방으로 화사한 빛이 퍼져 나갔다.
잠시 후 그녀의 시야로 제이빌런 공작의 어깨에 올라탄 붉은 독수리가 들어왔다. 소르펠 공작의 사나운 시선이 신수에게 향했다.
‘역시 내 생각이 맞는 것 같네.’
신수라는 거, 저렇게 부름을 받아야 다른 이들이 볼 수 있나 보다. 그 주인도 마찬가지고 말이다.
‘그런데 내 눈에는 왜 보이지?’
말도 들리고.
‘저것들도 귀신이네, 귀신.’
그런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쓸데없이 신수를 왜 불러?”
“그냥 갑자기 보고 싶어서.”
“이곳을 불바다로 만들 생각이야?”
“보고 싶어서 불렀다니까. 신수라는 게 보고 있어도 계속 보고 싶거든. 하긴, 자네는 모르겠군.”
“그럼 자네 집 가서 실컷 봐.”
“까칠하게 굴긴.”
누가 봐도 소르펠 공작을 약 올리기 위해 불러낸 것 같은데… 신수를 불러내고 의기양양 피식피식 웃는 모습이 카밀라가 봐도 참 얄밉긴 했다.
그런데.
휘익.
“……!”
제이빌런 공작과 있던 제티가 가볍게 날갯짓하더니 이내 어딘가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제이빌런 공작의 어깨 위가 아닌 카밀라의 어깨 위로.
“…….”
“…….”
“…….”
너 뭐니?
‘왜 뜬금없이 친한 척이야!’
순간 방 안에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소르펠 공작과 제이빌런 공작의 눈이 커질 대로 커져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제티.”
[…….]
“이리로 와.”
획.
“……!”
제이빌런 공작의 부름에도 제티는 못 들은 척 고개를 획 돌려 버렸다. 심지어 슬쩍 날아올라 카밀라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제티, 이리 오라니까.”
[싫다.]
“뭐?”
[여기가 좋다. 이 아이, 영이 깨끗해. 신생아처럼.]
“무슨!”
[마음에 들어.]
“…….”
제이빌런 공작이 눈을 부릅뜨며 카밀라를 노려봤다. 그 시선에 카밀라는 어색한 미소를 흘렸다.
‘제가 원래 이런 존재들에게 인기가 좀 많아요.’
그녀는 신수를 그냥 귀신과 같은 과로 통합시켜 버리기로 했다.
즉.
‘저리 가!’
귀찮은 존재라는 거다.
카밀라가 고개를 휙휙 저어 제티를 떨어트리려 했다. 하지만 신수는 가볍게 날아올랐다가 다시 카밀라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가라고!’
다시 한번 어깨를 흔들어 보지만 역시나 떨어지지 않는다.
확실히 이놈들, 귀신같은 게 분명하다! 한 번 들러붙으면 떨어질 줄 모르는!
“흐음.”
그 모든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던 소르펠 공작의 입가가 슬며시 올라갔다.
“아무래도 네놈의 신수는 네놈보다 내 딸이 더 마음에 드나 본데.”
“무슨 소리! 그 누구보다도 내 말을 가장 잘 따르는 게 저 녀석이야. 당장 이리로 와, 제티!”
휙!
“…….”
“그렇군. 네 말을 아주 잘 따르는군.”
“…….”
얼굴이 벌게지는 친우의 모습에 소르펠 공작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