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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18)화 (18/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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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잠시 후, 카밀라는 식당 근처에서 라비와 마주쳤다.

“오~ 라비.”

“호칭 제대로 안 불러?”

“제대로 불렀는데.”

“맞는다.”

“쳇.”

그냥 민망해서 친한 척 좀 해 봤다, 뭐.

“그래도 다행이지?”

“뭐가?”

“동생이 생각보다 가벼워서.”

“…….”

“어제 들어 보고 깜짝 놀라지 않았어? 우리 동생, 너무 가벼… 알았어, 알았어.”

그만 노려봐.

카밀라의 말이 이어질수록 라비의 얼굴이 점점 무서워져 갔다.

그래, 어제 널 좀 귀찮게 하긴 했지. 그렇다고 그리 못마땅한 기색을 드러내야겠니?

‘음?’

순간 라비의 시선이 카밀라의 뒤로 향했다. 그에 자연스럽게 카밀라의 고개 역시 뒤로 돌아갔다.

“……!”

루드빌이었다. 그의 등장에 라비의 분위기가 한층 더 무겁게 가라앉았다.

카밀라 역시 그가 불편하고 어색했지만 애써 미소를 입가에 머금었다.

“오셨어요, 오라버니.”

“…….”

“오늘 날씨가 참 좋죠?”

카밀라의 인사에 루드빌이 말없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야!”

“……?”

그때 라비가 조금은 큰 소리로 카밀라를 불렀다. 왜? 뭔데? 여기서 갑자기 목소리를 왜 높여?

“너 왜 차별해.”

“뭔 차별?”

“왜 형한테는 존댓말 하는데!”

뭐래?

“나한테는 말 막 하면서 왜 형한테만 존대냐고.”

와, 유치한 새끼.

‘이젠 하다 하다 말투까지 시비냐?’

카밀라는 잠시 어이없는 눈빛으로 라비를 바라봤다.

그러는 지는 맨날 야! 야! 그러면서. 내 이름이 ‘야’ 냐!

“뭘 당연한 걸 물어.”

네놈도 날 ‘야’라고 부르며 막 대하는 거, 같은 이유 아니었어?

“뭐가 당연해! 형만 존중받는 게 당연한 거냐!”

“넌 내 오빠잖아.”

“뭐?”

“넌 내 가족이니까.”

뭔데? 그 표정은?

‘왜 놀라는데?’

…야! 너 그동안 날 진짜 동생으로도 생각 안 한 거냐!

‘야, 이 썩을 놈아!’

카밀라는 눈이 커진 채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는 라비의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오빠를 오빠라고 하는데 왜 놀라? 그 말이 놀랄 말이야? 장난해?

‘뭐야? 저거 왜 웃어?’

갑자기 입꼬리가 스르륵 올라가는 라비를 보며 카밀라는 더욱 어이가 없었다. 지금 내가 한 말 중에 어느 포인트가 웃긴 건데?

‘음?’

순간 뭔가 느낌이 싸했다. 슬쩍 고개를 돌린 카밀라는 움찔했다.

‘넌 또 왜?’

루드빌의 분위기가 너무도 냉랭했다. 안 그래도 없던 표정이 아예 얼음장처럼 변해 있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는데?

반면 라비는 처음과 달리 기분이 좋아진 듯 루드빌을 바라보는 눈빛에 웃음기가 맴돌았다.

‘뭐야?’

니들 왜 그러는 건데!

분위기가 자꾸 극과 극으로 바뀌는 두 사람을 보며 카밀라는 결국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 *

“아버지, 무슨 일 있으세요?”

오늘 이 집 남자들 상태가 영 꽝인 것 같다.

식사 자리에 앉아 있는 소르펠 공작의 미간이 찌푸려져 펴질 생각을 않고 있었다.

“별일 아니다.”

“……?”

별일이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카밀라의 물음에 연신 혀를 차는 모습이 심기가 불편한 게 눈에 보였다.

그녀가 시선을 떼지 않자 소르펠 공작은 짧게 한숨을 내쉬며 간단히 말을 내뱉었다.

“그 자식이 온다고 해서.”

그 자식?

“또 무슨 염장을 지르려고.”

쯧, 혀를 차는 소르펠 공작의 얼굴에 짜증이 피어올랐다.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카밀라가 짓고 있자 소르펠 공작은 그제야 좀 더 자세히 상황을 설명했다.

“제이빌런, 그 자식이 온다는구나. 사업차 의논할 게 있다고.”

제이빌런? 제이… 아!

소르펠 공작가와 함께 3대 수호 가문으로 불리는 곳이다. 더불어 소르펠 공작과 제이빌런 공작은 친구이자 원수 같은 사이이기도 했다.

가문끼리 옛날부터 사이가 좋았고 공동으로 추진하는 사업도 수두룩했다.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어릴 때부터 잘 알고 지낸 소르펠 공작과 제이빌런 공작은 친구이자 경쟁 상대였다.

“페트로도 같이 온다는구나.”

페트로?

‘아.’

제이빌런 공작의 아들?

‘이름으로 부른 적이 없어서 헷갈렸네.’

재수 없는 빨강이 새끼!

이곳 세계를 지켜볼 때 짜증 나는 인물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이가 바로 페트로, 그 녀석이었다.

‘내가 진짜 그 인간만 보면… 음?’

페트로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식당에 앉아 있는 세 남자의 시선이 동시에 카밀라를 향했다.

‘휴우.’

안다, 알어. 저들이 왜 저러는지.

‘좋아해도 꼭 그딴 놈을 좋아하냐고!’

하여튼 취향 특이해.

카밀라는 오랫동안 페트로를 짝사랑해 왔다. 그 사실을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그녀가 페트로에게 보인 사랑… 아니, 집착은 아주 대단했다.

페트로를 졸졸 따라다니는 건 물론, 그의 물건을 몰래 훔치거나 그가 다른 여자들에게 받은 편지를 허락도 없이 버리기도 했다.

‘그 정도면 스토커 아냐?’

스토커는 범죄야! 이것아!

‘그 빨강이 새끼가 뭐가 좋다고.’

저번 파티장에서 영애들과 머리채를 잡고 싸운 거도 다 그놈 때문이었다.

카밀라는 모처럼 용기를 내어 페트로에게 파티에 함께 가지 않겠냐고 먼저 말을 걸었다.

‘그건 정말 큰 용기였지.’

대놓고 쫓아다니면서도 페트로에게 직접적으로 말은 걸지 못하던 카밀라다.

좋아하는 페트로에게 혹여 거절이라도 당할까, 외면받고 무시당해서 지금의 얄팍한 관계조차도 무너지면 어쩌나…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랬던 그녀가 용기를 내어 그에게 먼저 파트너 신청을 했지만, 안타깝게도 결과가 좋지 않았다.

그는 이미 선약이 있다며 그녀의 청을 거절했다. 아주 정중히, 본인도 아주 아쉽다는 듯이 말이다.

‘그런데…….’

그날 파티장에서 페트로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들어선 이는 카밀라와 가장 사이가 나쁜 쥬엘라라는 영애였다.

그녀는 파티장에 들어설 때부터 카밀라를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그러곤 카밀라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페트로 공자에게 에스코트를 해 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했다면서요?’

‘그쪽과 먼저 선약을 했다 해서…….’

‘아닌데.’

‘뭐?’

‘제가 에스코트를 신청한 건 이틀 전이었는데요.’

‘아……!’

‘어머나, 페트로 공자도 참… 그냥 싫으면 싫다고 하시지.’

‘…….’

‘하긴… 어떤 이가 가짜 공녀와 파트너를 하고 싶어 하겠어. 넘볼 사람을 넘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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