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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16)화 (16/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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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체한 것 같네.

침대에 축 늘어져 있던 카밀라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불편한 식사 자리에 지쳐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침대에 쓰러졌는데 속이 영 불편했다. 아무래도 나가서 정원이라도 좀 걸어야 할 듯했다.

[카밀라 아가씨.]

어느 정원 쪽으로 갈까 생각하며 밖으로 향하던 카밀라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집사 유령 데린이었다.

“네?”

평소와 다른 데린의 모습에 카밀라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가 늘 짓고 있던 부드러운 미소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긴장한 듯한 모습이었다.

“무슨 일 있어요?”

[소개해 드리고 싶은 분이 계십니다.]

데린의 말에 카밀라는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를 빤히 바라봤다.

[그분이 누구시…….]

“귀신이겠네요.”

[네? 아, 네.]

귀신이 소개해 줄 분? 당연히 귀신이겠지.

“그럼 사양할게요.”

[예?]

“꼭 만나야 하는 건 아니죠?”

[아, 아니… 저!]

다른 이도 아닌 데린이 하는 부탁이다. 웬만하면 들어주고 싶지만…….

‘표정이 너무 비장하잖아.’

저렇게 심각한 얼굴로 소개해 줄 귀신이라면 그냥 평범한 존재는 아닐 것이다.

경험상 그런 귀신을 만나서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아주, 아주! 아주! 귀찮은 일을 떠맡게 된다에 전 재산을 걸 수 있었다.

죄송하지만 사절입니다.

[아가씨, 그분은…….]

“제가 좀 속이 안 좋아서요.”

[아, 아가씨.]

“죄송해요.”

당황한 목소리로 자신을 부르는 데린을 뒤로한 채 카밀라는 서둘러 방을 나섰다. 다행히 데린은 자신을 쫓아오지 않았다.

‘좀 미안하긴 하네.’

그에게 도움을 받는 상황이기도 하고 웬만한 부탁은 다 들어주겠다고 전에 그에게 말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필요 없다고 했잖아.’

소원 같은 거 없다며? 그냥 공작가 사람들을 다시 도울 수 있게 돼서 행복하다고 한 건 데린이에요.

조금 미안하긴 했지만 다른 귀신과 또 연결되는 건 정말 사양이었다.

‘귀신이 모여들기 시작하면 정말 한도 끝도 없단 말이지.’

지금은 페롤과 데린만으로도 충분했다. 굳이 소개까지 받아 귀신과 연을 맺고 싶진 않았다.

‘그래도 생각보다 쉽게 포기하시네.’

카밀라는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카밀라 아가씨.]

[주무시는데 죄송합니다.]

[식사 중에 죄송하지만…….]

[그분이 정말 아가씨를 뵙고 싶어 하셔서…….]

[한 번만 만나 주시면 안 될까요?]

[아가씨.]

[카밀라 아가씨.]

착각이었다.

‘젠장…….’

집사님, 원래 이리 질긴 분이셨어요?

그다음 날부터 밤이고 낮이고 자신의 주변을 맴돌며 같은 말만 반복하는 데린으로 인해 카밀라는 점점 지쳐 갔다.

정말 자기밖에 모르는 못된 인간이… 아니, 귀신이 저리 쫓아다니면서 괴롭혔다면 그러려니 하고 무시했을 것이다. 하지만.

‘표정이 너무 슬프잖아!’

정말로 간곡한 눈빛으로 자신을 졸졸 따라다니며, 정말 이런 부탁을 드려 죄송하다는 얼굴로 저런 말을 하니 무시하기가 더 힘들었다.

“알겠어요.”

결국 카밀라는 두 손을 들었다.

“만나 볼게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지박령인 거죠?”

[네? 지박령이요? 그게 뭡니까?]

“한곳에 묶여 있는 유령이요.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분… 아니에요?”

저렇게 며칠을 쫓아다니며 만나 달라 조르느니 그냥 그 유령을 데리고 오면 간단한 일이다. 막말로 문을 잠근다고 들어오지 못하는 존재들도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도 저렇게 데린만 주구장창 찾아오는 것을 보니 답은 하나였다. 그 유령이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이라는 거다.

즉, 자신이 직접 찾아가 만나야 한다는 거겠지.

[맞습니다.]

데린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분은 저희처럼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십니다.]

몇 가지 단서로 바로 상황을 파악하는 카밀라가 놀라운 듯 데린은 연신 감탄했다.

“그래서 거기가 어딘데요?”

* * *

‘싫다.’

[흑… 흐흑.]

‘정말 싫다.’

[크아악! 내가 왜 죽어야 해!]

‘진짜 싫다고!’

여기 대체 왜 이래?

사람들이 흔히 귀신들이 많을 것 같은 장소를 꼽자면 장례식장이나 납골당, 혹은 무덤가를 말한다.

‘땡!’

다들 틀렸다.

의외로 귀신들은 그런 곳에 붙어 있지 않았다. 자신이 죽었다는 걸 인식하는 순간 바로 승천하거나 살면서 마무리하지 못한 일이나 존재를 찾아가기 때문이다.

그에 정작 죽음을 애도하는 장소에는 그 당사자의 영혼을 찾기 힘들었다. 오히려 자신이 죽어 있는 모습이 보기 싫다고 장례식장이나 납골당 근처에 얼씬도 안 하는 귀신이 더 많았다.

‘그런데…….’

여긴 왜 이리 귀신들이 바글바글한데!

현재 카밀라가 걷고 있는 곳은 공동 묘지였다. 그것도 국가에 큰 공을 세운 이들의 묘가 있는 장소였다.

제국의 모든 귀족이… 아니, 조금이라도 국가 밥을 얻어먹고 사는 이들이라면 죽어 묻히고 싶어 하는 곳이 바로 여기였다. 여기에 묻힌다는 것만으로도 가문의 영광이었으니까.

“그래 봐야 묘지지 뭐.”

국가에 공을 세우고 이곳에 묻히면 뭐하겠는가. 한이 맺혀 저리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자신의 무덤가를 떠돌고 있는 이가 천지인 것을.

오히려 더 큰 권력을 누리지 못해서, 좀 더 많은 것을 이루지 못해서 다른 귀신들보다 더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카밀라는 주변에서 들려오는 귀신들의 곡소리에 조금의 시선도 주지 않았다. 그랬다간 바로 저들이 잘 만났다며 자신에게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에 카밀라는 앞서 걷고 있는 데린의 뒤만 졸졸 따랐다.

[이쪽입니다.]

집사 유령 데린을 따라간 곳은 일반 묘지는 아니었다. 좀 더 고급스럽게 꾸며진 공간이라고나 할까? 딱 봐도 직위가 좀 더 높은 이들의 무덤이 있는 곳이었다.

계단을 따라 고지대로 올라갈수록 무덤의 수도 빠르게 줄어들었다.

‘날은 더럽게 좋네.’

무덤가를 비추는 햇살이 유독 따사로웠다. 이런 좋은 날씨에 이딴 곳이나 돌아다니고 있어야 하다니.

[카밀라 아가씨.]

잠시 후 데린이 걸음을 멈추더니 조용히 카밀라를 불렀다.

고개를 든 그녀는 한 무덤가에 편안한 자세로 앉아 있는 중년 남자를 볼 수 있었다.

[어르신.]

데린이 빠르게 그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그러자 눈을 감고 있던 중년 귀신이 천천히 눈을 떠 카밀라를 바라봤다.

[저 아이인가.]

[네, 어르신.]

카밀라는 아직 자신이 만나야 할 이가 누군지 제대로 듣지 못했다. 그저 꼭 만나야 한다는 말만 반복하는 데린에게 할 수 없이 끌려왔을 뿐이다.

[…….]

중년 귀신이 빤히 자신을 바라봤다. 그에 카밀라 역시 그를 멀뚱히 쳐다봤다.

[정말 내가 보이는구나.]

“들리기도 해요.”

[허허… 허…….]

그가 내뱉는 웃음이 무척 허탈했다. 기쁜 것 같기도 하고 슬픈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여러 감정이 뒤섞인 웃음이었다.

[드디어… 드디어 끝을 보는 건가.]

끝이라. 역시 자신에게 뭔가 부탁할 게 있는 거다.

[내 소개를 먼저 해야겠구나.]

“헤르셀 소르펠.”

[……!]

“과거 소르펠 가문을 이끄셨던 선대 공작님이시네요.”

[…어찌 알았느냐. 데린이 말해 준 건가?]

의아해 하는 중년 귀신… 아니, 헤르셀의 물음에 카밀라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그가 앉아 있는 뒤편을 가리켰다.

“저도 글자 정도는 읽을 줄 알아서요.”

[아…….]

그가 앉아 있는 무덤 비석에 떡하니 이름이 적혀 있었다.

<39대 소르펠 가주, 헤르셀. 이곳에 잠들다>

‘39대면 아주 한참 전이네.’

현 소르펠 공작이 42대째 소르펠가를 이끄는 가주니까 말이다.

[내가 널 이곳으로 부른 이유는…….]

“그전에 저 한 가지만 여쭤봐도 돼요?”

[……? 뭐든 물어 보거라.]

헤르셀의 허락에 카밀라의 시선이 그의 머리로 향했다.

“혹시 유전인가요?”

[유전?]

“머리카락이요.”

두상은 참 예쁘다.

‘반짝반짝.’

햇빛에 반짝이는… 머리카락 하나 없는 그의 두상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 * *

‘신수라고?’

헤르셀을 만나고 돌아선 카밀라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신수에 대한 건 카밀라도 대충 알고 있었다.

제국 3대 가문이 소유하고 있는 신수. 그리고 오래전에 사라져 버린 소르펠 가문의 신수.

소르펠 가문을 상징하는 신수가 뭔지도 잘 안다.

‘백호.’

하얀 호랑이.

‘루드빌과 아주 잘 어울리네.’

다른 색깔이 전혀 섞이지 않은 루드빌의 하얀 머리카락을 떠올리며 카밀라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나보고 그걸 찾아 달라는 거지?

지금 만나고 온 중년 귀신 헤르셀. 그가 바로 신수를 소르펠 공작가에서 사라지게 한 장본인이었다.

‘뭐, 엄밀히 말하면 그의 잘못은 아니지만.’

그라고 독살당하고 싶어서 당했던 건 아닐 테니 말이야.

새로 태어날 신수의 위치를 후손들에게 제대로 말해 주지 못한 것이 한이 되어 그는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귀신이 되고 말았다.

그 위치를 어떻게든 알려 줘야 하는데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 그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게 얼마나 한이 되었으면, 자신의 죽음이 얼마나 한이 되었으면 다른 곳도 아닌 본인의 무덤에 지박령이 되어 그곳을 떠나지도 못하고 있겠는가.

‘안타깝긴 한데…….’

나보고 어쩌라고?

헤르셀은 소르펠 가문의 신수가 있는 곳을 말해 줬다.

하지만 일이 결코 간단하지 않았다. 그 오랜 세월 찾지 못한 신수의 알을 자신이 갑자기 떡하니 찾아 가져다주면 다들 뭐라고 하겠는가.

‘완전 소름.’

가문 사람들이 자신에게 퍼부을 질문 세례를 떠올리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왔다.

‘내가 왜 여기서도 무당 짓을 해야 하는 거야?’

점괘니 사주니, 하는 것을 여기서도 해야 할지도 모를 상황에 카밀라는 절로 한숨이 흘러나왔다.

‘게다가 뭐? 물속이라고?’

진짜 미친X 소리 듣기 딱 좋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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