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을 끝으로 쟈일은 다시 히죽 웃었다. 잇몸을 훤히 드러내고 웃는 것이 아주 기분이 좋은 듯했다.
와락!
“……!”
하지만 그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너…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그를 라비가 그대로 끌어안았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포옹에 당황하는 쟈일을 더욱 세게 끌어안은 라비가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이게 다냐?”
“뭐?”
“네가 내세울 게 고작 가족 자랑이 다냐고.”
“이게! 빨리 놔!”
“하긴… 저런 가족이 이번에는 확실히 도움이 된 것 같더라.”
“무슨 말을 하는 거……!”
“아주 지랄을 떨었다던데.”
“뭐?”
“돈지랄.”
“……!”
“이번 네 논문, 몇몇 스승님들께서 아주 적극적으로 도와주셨다는 말이 있던데.”
움찔하는 쟈일을 라비는 더욱 힘주어 끌어안았다.
“앞으로도 가족들 잘 챙겨라.”
“…….”
“넌 그거 말고는 자랑할 게 전혀 없는 머저리 새끼니까.”
툭툭.
그 말을 끝으로 라비는 쟈일을 놓아줬다. 분노로 얼굴이 시뻘게진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준 라비는 자신의 자리로 향했다. 아니, 향하려고 했다.
멈칫.
“……?”
순간 느껴지는 묘한 분위기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조금 전까지만 하여도 서로서로 인사를 나누며 조금은 소란스러웠던 발표회장에 갑자기 쥐 죽은 듯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고개를 돌리니 모든 사람이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에 라비 역시 덩달아 시선을 옮겼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인 곳을 바라본 라비의 눈이 점점 커졌다. 누군가 아주 화사한 웃음을 날리며 발표회장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활짝 핀 장미꽃을 연상시키는 붉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카밀라였다.
* * *
“공작님, 루드빌 님께서 지금 막 영지 초입에 도착하셨답니다.”
“그래?”
집무실 안을 서성이고 있던 소르펠 공작은 보좌관 잭터의 말에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드디어 기다리던 첫째 아들이 돌아온 것이다.
“나가 보시겠습니까?”
“그래야지.”
이번 전투를 승리로 이끈 아들을 맞이하기 위해 소르펠 공작은 기꺼이 마중을 나갈 생각이었다.
“축제와 파티 준비는 문제없겠지?”
“물론입니다. 영지 사람들 모두 지금 거리로 나와 루드빌 님과 다른 병사들을 목 빠지게 기다리는 중입니다.”
“나가 보지.”
“네!”
“아, 참.”
문으로 향하던 소르펠 공작의 걸음이 잠시 멈췄다.
“카밀라는? 같이 나가도 좋을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오늘 하루 종일 카밀라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파티 참석 준비로 바쁜 건가? 오늘은 안개꽃도 가져오지 않았다.
“그게…….”
“왜? 카밀라에게 무슨 일이 있나?”
“카밀라 님은 지금 이곳에 안 계십니다.”
“없다니?”
“조금 전에 급히 나가셨습니다.”
“어디를?”
“마탑에 가신다고…….”
“마탑? 갑자기 거긴 왜?”
“아마도 라비 님을 뵈러 가신 듯한데…….”
“라비? 아……!”
소르펠 공작은 그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루드빌의 승전 소식에 완전히 잊고 있었다. 라비가 소속되어 있는 마탑에서 뭔가 큰 행사가 있다고 들었는데.
“이런…….”
좀 더 신경을 써 줬어야 했거늘! 소르펠 공작은 연신 혀를 찼다.
‘그런데 카밀라가 그곳에 갔다고?’
이건 또 의외의 소식이었다. 카밀라가 그런 것도 챙길 줄 아는 아이였던가?
소르펠 공작은 새삼 놀란 표정을 지었다.
* * *
“다음 발표자는 라비 소르펠입니다.”
사회자의 소개가 끝나고 강단 위로 올라선 라비는 가볍게 관객석을 훑다 터져 나오려는 실소를 급히 삼켰다. 사람들의 시선이 여전히 한 사람에게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하지.’
카밀라는 자신과 사람들을 어이없이 바라보는 라비를 향해 손을 가볍게 흔들어 줬다.
‘그래서 내가 미리 경고했잖아.’
비교될지도 모른다고. 그러니 옷 좀 새로 맞추라고.
부드럽게 미소까지 지어 주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얘가 원래 한 미모 했다니까.’
다만 그동안은 자신의 미모를 전혀 살리지 못했던 거다.
‘옷만 화려하면 뭐 해?’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을.
카밀라는 늘 가장 비싸고 화려한 옷을 구매해 입고 다녔지만 정작 자신에게 어울리는 물건은 아예 찾지 못했다.
‘왜 그랬는지도 잘 알지.’
그렇게 비싼 옷과 보석들로 온몸을 치장한 이유는 단 하나다. 그런 것으로나마 자신을 보호하고 싶었던 거다.
‘사람들이 보내는 무시의 시선에서.’
소르펠 공작의 가짜 딸.
누구보다 그 사실을 깊게 인지하고 사람들을 마주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카밀라였다.
그녀는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어떻게든 받지 않기 위해 가장 비싸고 화려한 것만 골라 몸에 걸치려고 했다.
‘그럼 뭐 해?’
정작 본인은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는걸. 사람들 앞에 서면 본능적으로 움츠러들고 그걸 또 들키기 싫어 눈에 독기를 가득 담아내니.
그런 언밸런스하고 이상한 분위기를 풍기는 카밀라에게 선뜻 다가서고 싶어 하는 이가 있을 리가 만무했다.
‘패션 센스가 그냥 생기는 게 아니지.’
카밀라는 이 옷을 고르기 위해 거의 일주일이 넘는 시간 동안 발품을 팔았다.
번화가에 있는 옷 가게란 옷 가게는 다 돌아다녔다. 가격 따윈 보지도 않았다. 가격이 싸도, 비싼 명품이 아니어도 나에게 어울리는 물건! 그게 포인트였다.
‘내가 걸치면 다 명품이 되는 거거든.’
시아로 살았을 때도 그랬다. 뭐든 걸치기만 하면 다 유행이 되고 완판이 되었으니까.
지금도 발표회장에 들어선 영애들의 시선이 매우 뜨거웠다. 당장이라도 다가와 그 옷과 보석들, 어디서 구했는지 묻고 싶어 하는 게 눈에 보였다.
‘뭐, 진짜로 다가올 인간은 없겠지만.’
그동안 카밀라를 완전히 무시했던 행동들이 있는데, 선뜻 다가와 친한 척 굴기는 자기들도 쪽팔리겠지.
그러는 사이 라비의 발표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갔다. 본인이 찾아낸 새로운 수식을 차근차근 설명하는 그의 모습이 제법 멋졌다.
잠시 후.
“너 대체 여기 왜 온 거야?”
발표회가 모두 끝나고 카밀라 곁으로 다가선 라비가 제일 먼저 던진 말은 이거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너무 뜬금없는 등장이었다.
카밀라가 이곳에 왜 온 건지 발표회가 진행되는 내내 생각해 봤지만 그녀의 의도를 전혀 모르겠다.
‘게다가 저 모습은 대체 뭐고?’
솔직히 좀 놀랐다. 이 녀석이 원래 이렇게 생겼던가?
카밀라의 등장 이후 분하고 억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쟈일 녀석을 보고 있으니 속이 좀 시원하긴 하다.
본인의 동생이 사람들에게 이목을 받아 한껏 기분이 업된 것 같던데, 카밀라가 등장한 이후 모든 이의 관심이 이 녀석에게 쏠리고 있으니 얼마나 짜증이 나겠는가.
지금도 자신과 카밀라를 씩씩거리며 노려보고 있는 쟈일 녀석이었다.
“나도 몰라.”
“뭐?”
라비는 어이없는 눈빛을 카밀라에게 보냈다. 본인 스스로가 이곳에 왜 왔는지 모르겠다니, 장난해?
“진짜 몰라.”
“…….”
“그냥… 그냥 오고 싶어서 왔어.”
정말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정말 그냥 오고 싶었다.
‘이상하지.’
이 남매, 이상하게 자꾸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저 아이는 부모님이 안 오셨네요?”
“쟤 고아잖아요.”
“고아요?”
학예회나 부모님이 참석해야 할 중요 행사 때마다 뒤에서 늘 수군거리듯 들려오는 소리.
“저 아이 아빠가 전에 그 뉴스에 나왔던 사람이에요.”
“아! 삶을 비관해 다 같이 죽으려고 했다던…….”
“네, 결국 여자만 죽었죠.”
그리고 빠지지 않고 이어지는 말들.
‘더 웃긴 건 그 아빠라는 작자가 혼자 살겠다고 119에 전화까지 했다는 거지.’
가족의 정 같은 건 없었다. 엄마는 딸아이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분명 본인이 직접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왠지 아이를 껄끄러워했다.
딸에게 정을 주지 못하는 스스로를 본인도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종종 보였다.
‘아빠라는 작자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완전히 남의 자식처럼 대했다. 어찌 이렇게 정이 가지 않는 자식이 있을 수 있냐며 이유 없이 여자와 아이를 구타했다.
결국 술에 잔뜩 취해 들어온 날, 남자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엄마도 많이 지쳤는지 그의 선택에 따랐다. 딸아이 역시 뭔지도 모르고 그들이 시키는 대로 했다.
‘사, 살려 줘! 제발……! 너, 너무 아파!’
똑똑히 들었다. 흐릿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아내와 딸은 죽어 가는데 자기 혼자 살겠다고 아주 간절하게 구급차를 불러대는 소리에 어린 나이에도 어이가 없었다.
그날, 결국 엄마는 죽었다. 다행히 자신은 살아났지만.
죽은 엄마는 자신을 한참 동안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다 사라졌다. 그래도 떠나기 전에 본 엄마는 분명 홀가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긋지긋했겠지. 제 배로 낳았지만 정이 안 가는 딸도, 매번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도.
그 후 보육원을 전전하다 우연히 본 영화 오디션에 떡하니 붙어 버렸다. 비록 조연이었지만 말이다.
운이 따르는지 그 영화가 천만 관객을 동원하며 좋은 조건으로 대형 기획사까지 들어갈 수 있었다. 선택하는 드라마나 영화가 줄줄이 흥행하며 그 어떤 배우보다 빠르게 자리를 잡아갔다.
그렇게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데 그 인간이 나타났다.
살인자.
엄마를 죽이고 자신까지 죽이려 한 주제에 아주 당당하게 찾아와 돈을 요구했다. 심신 미약으로 아주 짧은 형만 살고 나왔다는 말에 절로 이가 갈렸다.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너의 과거를 기자들에게 팔아먹을 거라는 웃기지도 않는 협박을 하면서 말이다.
‘너 때문이야! 네 엄마는 너 때문에 죽은 거야!’
미친 개소리를 하길래 그 자리에서 바로 친분이 있던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죄지었니?’
죄지은 건 그놈인데 왜 내가 협박을 받아야 하냐고.
딱히 숨길 생각도 없었다. 일부러 드러내 알리고 싶지도 않았지만 저런 쓰레기에게 돈까지 쥐여 주며 숨길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당황하며 무슨 짓이냐고 소리치는 아빠라는 인간을 무시한 채 바로 기자와 약속을 잡았고 그다음 날 모든 걸 세상에 알렸다.
과거에 있었던 사건과 자신을 찾아와 돈을 요구하는 인간에 대한 것까지 모두 말이다.
보름 가까이 인기 검색어 순위에 오르락내리락했다. 사람들의 동정론이 일기도 했고 협박을 한 남자를 향한 분노 어린 댓글이 끝도 없이 달렸다.
그런 대중의 시선이 무서웠던 듯 남자는 그 이후 단 한 번도 자신을 찾아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