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왜 없는 거야!”
“분명 여기가 맞는데…….”
“저쪽을 좀 더 파 봐!”
장미 정원을 뒤지는 손길이 점점 급해졌다. 카밀라의 명으로 자신들이 숨긴 반지를 찾으러 온 시녀, 시종들이 허겁지겁 몸을 움직였다.
“대체 왜 없는 거야!”
“젠장!”
벌써 두 시간이 넘게 이곳을 뒤지고 있지만 반지는 고사하고 철사 조각 하나 찾지 못하고 있었다.
“아파…….”
손은 이미 장미 가시에 긁히고 찔린 상처로 가득했다.
“뭐 해! 빨리 파!”
“…알았어.”
하지만 손의 상처 따위 신경 쓸 여력이 그들에겐 없었다. 오늘 중으로 반지를 찾아가지 못하면 무슨 사달이 날지 모른다.
조금 전에 만난 카밀라라면 자신들을 소리 소문도 없이 이 공작가에서 치워 버리고도 남을 듯했다.
혹은 정말로 그녀가 말했듯이 자살 소동이라도 벌어진다면……!
“…없어.”
“여기도 없어.”
다시 시간이 한참 흘렀다. 이미 해도 어둑어둑 지고 있었다.
“미치겠네!”
“분명 이쪽이 맞는데!”
지칠 대로 지친 이들은 모두 바닥에 주저앉았다.
대체 반지는 어디로 갔단 말인가? 이 중에 누군가 몰래 반지를 파내어 팔아먹은 건 아닐까?
잠시 서로를 의심하던 이들은 곧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귀족가의 보석을 밖으로 빼돌려 팔아먹을 정도로 다들 멍청하진 않았다.
귀한 보석은 세공한 솜씨만으로도 그 물건이 어디서 흘러나온 것인지 바로 드러나는 법. 자칫하다간 도둑으로 몰릴 게 뻔한데, 누가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일어나.”
“더 찾아보자.”
“젠장!”
시녀와 시종들은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떻게든 반지를 찾아야 한다. 그걸 찾아 들고 가 다시 카밀라에게 빌고 또 빌어야 했다.
“자네들,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지?”
그때 그들에게 천천히 다가서는 이가 있었다.
“지, 집사님.”
집사 루브였다.
“뭐 하고 있느냐고 물었는데?”
“그… 그게…….”
늘 웃는 인상이던 루브의 얼굴이 차게 식어 있었다. 그 모습에 다들 쉽게 말을 잇지 못했다.
카밀라의 반지를 훔쳐 이곳에 숨겼는데 그걸 찾지 못해 이러고 있다는 말을 그대로 전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따라들 와.”
집사 루브는 그 말을 남긴 채 휙 돌아섰다.
일이 뭔가 완전히 틀어졌다는 걸 알게 된 이들은 그런 루브의 뒤를 숨을 죽인 채 조용히 따랐다.
하지만 그렇게 앞서 걸음을 옮기는 남자의 입가에는 어느새 다시 미소가 슬며시 피어올랐다.
‘확실히 달라지셨다니까.’
저들이 이곳에서 왜 저러고 있는지, 그는 이미 상황을 대충 파악한 뒤였다.
어제 카밀라가 이곳에서 반지를 파내는 모습을 우연히 근처를 지나다 보았다. 그제야 몇 달 전에 카밀라가 왜 이곳을 엉망으로 파헤치고 다닌 건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저들이 저러고 있는 이유 또한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주방장 젤라드가 카밀라 앞에서 고개조차 들지 못하는 것처럼 저들 또한 그녀에게 뭔가 덜미를 잡힌 게 분명하다.
집사 루브는 재미있다는 듯 연신 소리 없이 웃었다.
콰직!
“훔쳐?”
“…….”
저거, 장인이 5년 걸려서 만든 책상인데.
루브는 소르펠 공작의 손에 의해 귀퉁이에 금이 간 책상을 보며 속으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수리가 가능하려나?
“그럼, 저번에 카밀라가 장미밭을 그렇게 만든 이유가?”
“아마도 반지를 찾기 위해서였던 듯합니다.”
콰지직!
완전히 부서져 떨어져 내리는 책상을 보며 루브는 새로운 책상을 주문할 견적을 빠르게 뽑았다.
“이해할 수가 없군.”
대체 왜 자신에게 말을 안 한 거지?
“그런 일이 있었다면 사실대로 말했으면 됐을 것을…….”
분명 그때, 장미밭을 훼손시킨 카밀라를 불러 그 이유를 물었지만 그 아이는 입을 굳게 다문 채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았다.
결국은 다시 한번 소란을 일으키면 큰 벌을 내릴 것이라는 말을 끝으로 카밀라를 내보냈었다.
“대체 왜…….”
식당에서 있었던 일도 그렇고 이번 일도 그렇다. 한참 동안 답을 찾지 못한 소르펠 공작은 루브에게 다시 시선을 줬다.
“카밀라를 불러오게.”
“알겠습니다.”
집사 루브가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보며 소르펠 공작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 카밀라를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자신과 눈조차 제대로 마주치지 않으려 하던 어린아이.
그러려니 했다. 낯선 남자가 갑자기 아버지 자리를 차지하였으니 어색하고 불편한 게 당연하다 여겼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지.’
곁을 주지 않는 아이에게 굳이 다가서려고 하지 않았다. 어색한 건 그 또한 다를 게 없었으니까.
공작 영애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걸 다 누릴 수 있게 해 주는 것으로 자신이 할 도리는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작 공작가 안에서 제 딸아이는 어떤 대우를 받고 있었던 걸까?
똑똑.
얼마 후 문이 열리며 카밀라가 안으로 들어섰다.
* * *
“아버지, 찾으셨다면서요?”
밝게 웃는 얼굴과 달리 그녀의 속은 결코 편하지 않았다. 어쩐지 불안한 느낌에 카밀라가 맞잡은 손에 살짝 힘을 줬다.
공작이 카밀라를 이렇게 따로 불러 좋았던 적이 없다. 자신이 모르는 사이 뭔가 또 사고라도 터진 건가? 라비가 벌써 무슨 짓이라도 벌인 건 아닐까?
‘아우, 대체 뭔 일이냐고.’
소르펠 공작의 표정이 굳어 있는 걸 보며 카밀라는 더욱 초조해졌다.
“반지를 잃어버렸다면서.”
“…네?”
그런데 소르펠 공작의 입에선 의외의 말이 흘러나왔다.
‘뭐야?’
소르펠 공작에게까지 말이 들어간 건가? 벌써?
‘이상하네.’
그들이 제정신이라면 자신들이 반지를 훔친 얘기는 절대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을 텐데?
그건 정말 범죄였다. 다른 이들에게 걸려도 어떻게든 장미밭을 뒤진 이유를 둘러댈 거라 생각했다.
‘능력 좋네.’
그들이 집사 루브에게 바로 걸린 걸 아직 알지 못한 카밀라는 그들을 잡아 심문한 이의 능력에 잠시 감탄했다.
‘어쨌든 내가 모르는 뭔가가 터진 건 아니라는 거지?’
소르펠 공작의 목소리를 들으니 자신을 혼내려고 부른 것 같진 않았다.
‘그런데…….’
분위기가 좀 묘했다. 화가 난 것 같진 않은데 뭔가 기분이 축 처진 느낌?
반지를 잃어버린 건 자신인데 분위기는 저쪽이 왜 저렇게 다운되어 있을까?
“왜 말하지 않은 거냐.”
잠시 후 소르펠 공작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그때 왜 나한테 바로 말을 하지 않은 거지?”
그때라는 건 아마도 카밀라가 반지를 처음 잃어버리고 장미밭을 뒤졌을 때를 말하는 걸 테다.
‘말하면 믿어는 줬고?’
그날의 소르펠 공작의 눈빛은 지금도 생생히 떠올랐다. ‘너 또 무슨 사고를 친 거냐’라고 눈빛으로 묻고 있었다.
한심함과 짜증. 그리고 체념이 그대로 담겨 있던 그의 눈을 보면서 무슨 말을 할 수 있었을까?
‘그들의 말대로 됐겠지.’
사실대로 말해 봐야 믿어 주지 않았을 것이다.
시녀 시종들이 눈물로 고하는 말에 더 귀를 기울였을 테고, 결국 카밀라는 거짓말을 내뱉은 아이로 다시 낙인이 찍혔겠지.
누굴 탓해. 입 꾹 다물고 혼자 청승 떤 인간은 따로 있는걸.
‘그건 그렇고.’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 저리 심각해?’
언제나처럼 그냥 아랫것들에게 명령을 내려 간단히 처리하면 될 일인 것을. 카밀라에 관한 일은 늘 그래 왔지 않은가.
자신을 굳이 이렇게 따로 불러 자초지종을 묻는 소르펠 공작의 저의를 도통 모르겠다.
“진작 말을 했어야지.”
소르펠 공작은 연신 혀를 찼다. 안타까워하는 것 같기도 하…….
‘안타까워해?’
저 인간이? 카밀라를?
20년 넘게 저 인간이 카밀라를 죽이는 모습을 지켜봤다. 언제나 냉정하고 차갑게 카밀라에게서 등을 돌리던 모습을 수도 없이 봤었다.
최근 관계가 아주 살짝, 정말 아주 살짝 나아진 느낌을 받긴 했지만.
‘우리 사이, 그런 사이 아닌 건 저도 잘 알거든요.’
아직 방심해서는 안 된다며 스스로를 달랜 카밀라는 죄송하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쓰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쓸데없다니.”
살짝 목소리가 높아지는 소르펠 공작을 향해 카밀라는 처연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안 그래도 업무로 바쁘신데 아버지가 제 일로 더 피곤해지시는 게 싫었거든요.”
“…….”
“죄송해요. 제가 모자라서… 어떻게든 제가 혼자 해결해 보려고 했는데…….”
“네가 왜 사과를 하는 거냐!”
울컥해 순간 소리를 높였던 소르펠 공작은 아차 했다. 혼이 난 아이처럼 시무룩해지는 카밀라의 모습에 그가 급히 말을 이었다.
“카밀라.”
“네.”
“앞으론 무슨 일이든 내게 제일 먼저 말을 하거라.”
평소와 달리 소르펠 공작의 목소리가 무척 부드러웠다.
‘뭐지?’
눈빛도 마찬가지다.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한 다정한 소르펠 공작의 눈빛에 카밀라는 더욱 경계 어린 마음으로 소르펠 공작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