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너도 불렀어?”
“너도?”
“참나. 갑자기 우리들을 왜 다 불렀대?”
“모르지.”
2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시녀 네 명과 시종 두 명이 카밀라가 있는 방문 앞에 서서 피식거렸다.
“요즘 공작님과 사이가 좀 좋아졌다고 하던데?”
“그래서 이제 와 우릴 혼낼 생각인 건가?”
“푸웁! 꼴에?”
“과연 그게 오래 가겠어?”
“또 제 성질 못 이기고 난리 쳐서 공작님 눈 밖에 난다에 내가 이번에 산 귀걸이 걸게.”
“나도, 나도.”
키득거리는 이들의 모습에선 카밀라를 어려워하거나 두려워하는 모습 따윈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얼마 전에 주방 시녀 몇이 카밀라를 괴롭히다 들켜 쫓겨나긴 했지만 그건 운이 없었던 거고.
똑똑.
그들은 별 망설임 없이 문을 두드렸다.
달칵!
그러곤 바로 문을 열었다. 들어오라는 허락이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늘 하던 행동이기에 주저 따윈 없었다.
“히익!”
“흐읍!”
하지만 다음 순간 그들은 동시에 터져 나오려는 비명을 급히 삼켜야 했다. 침대에 축 늘어져 있는 카밀라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입가에 붉은 피를 흘리며 침대에 쓰러져 있는 카밀라의 모습은 그들을 기겁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주변에는 알 수 없는 약들이 잔뜩 흩어져 있었다. 누가 봐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모습이었다.
“주, 죽은 거야?”
말을 내뱉는 이의 음성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얼굴색 또한 하얗게 질려 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카밀라가 죽다니!
갑작스러운 상황에 다들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할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저거…….”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얼어붙어 아무런 행동도 못 하고 있던 이들은 한 시녀의 작은 외침에 번뜩 정신을 차렸다.
그제야 카밀라에게서 시선을 뗀 이들은 시녀가 가리킨 곳을 바라봤다.
“저거…….”
“설마!”
카밀라가 쓰러져 있는 침대 위로 하얀색 편지지가 하나 놓여 있었다.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저게 무엇인지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유서. 카밀라가 마지막으로 남긴 유서가 분명했다.
그들은 급히 편지를 집어 들었다.
“……!”
편지 내용을 읽어 내려가던 시녀와 시종들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해 갔다.
처음에는 당황하던 이들의 얼굴에 빠르게 두려움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편지에 자신들의 이름이 정확히 적혀 있었다. 이름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그동안 카밀라에게 한 짓까지 모두 언급되어 있었다.
억울하다고, 자신의 한을 풀어 달라고 토로하는 문장으로 편지는 끝이 났다.
“맙소사.”
“어, 어떡해?”
“미친…….”
“이, 이게 만약 공작님 손에 들어간다면…….”
자살한 사람이 남긴 유서의 힘은 무시하기 힘들다. 자신들이 평소처럼 아무리 거짓으로 변명을 해 봐야 소용없을 것이다.
다들 얼마나 억울했으면 카밀라가 자살까지 했을까 하는 생각을 할 게 분명했다.
아무리 싫어하는 존재라도 죽었다는 소리를 들으면 작게나마 동정심이 이는 게 사람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소르펠 공작과도 제법 잘 지내고 있지 않았던가.
이런 상황에 이 편지가 공작에게 전해진다면…….
“없애자.”
“뭐?”
“편지, 없애자고.”
“하, 하지만……”
“같이 죽을 수는 없잖아!”
버럭 소리친 시녀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로 유서를 집어 들어 갈기갈기 찢었다.
처음에 당황하던 이들도 사라지는 유서를 보며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자신들은 살아야지 않겠는가.
유서만 발견되지 않는다면 카밀라의 죽음에 자신들이 관련되었다는 증거는 아무것도 없다. 그녀가 자살한 이유 역시 언제나처럼 본인 스스로 분을 참지 못한 행동으로 결론지어질 것이다.
“이야. 너희들, 본인들 운을 너무 믿는 거 아니니?”
“……?!”
그때였다.
“내 유서를 너희가 제일 먼저 발견하는 행운이 매번 주어질까?”
“허억!”
“꺄악!”
안도하던 이들의 뒤에서 아주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급히 뒤를 돌아본 이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비명을 터트렸다. 바닥에 주저앉는 이들도 있었다.
죽은 줄 알았던 카밀라가 멀쩡히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들이 하는 짓을 모두 바라보고 있었다.
입에 묻어 있는 붉은 자국을 손수건으로 지우며 카밀라는 싱긋 웃었다.
“내가 또 한 죽는 연기 하지.”
“여, 연기요?”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이들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자신들을 놀린 건가? 고작 저따위 장난에 자신들이 놀아났다고?
다른 이도 아닌 카밀라 따위에게?!
순간 울컥 화가 치밀어 올랐다. 방금까지 겁을 먹었던 사실도 잊은 채 다들 짜증 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 모든 모습을 지켜보던 카밀라는 다시 짧게 웃었다.
“진짜가 될 수도 있고.”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의 얼굴이 다시 살며시 굳어졌다. 진짜가 될 수도 있다니? 정말 죽기라도 할 생각인가?
“요즘 매일 밤 내가 주방으로 가는 건 다들 알지?”
최근 카밀라가 소르펠 공작이 먹을 야식을 만들기 위해 매일 같은 시간 주방으로 가는 걸 모르는 이는 현재 공작가 안에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그녀가 만들어 오는 간식을 공작이 은근히 좋아하고 기다린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었다.
“그 시간에 내가 주방에 나타나지 않으면? 그럼 어떻게 될까?”
“무슨…….”
“적어도 누군가는 이상하게 생각하고 날 찾으러 오겠지?”
그들은 카밀라가 갑자기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 시간에 내가 딱 맞춰 손목이라도 살짝 긋고 이 유서를 손에 꼭 쥐고 있다면?”
“……!”
“혹은 지금처럼 약 같은 걸 바닥에 확 뿌려 놓고 쓰러져 있어도 좋을 것 같은데. 너희도 속았는데 다른 이들이라고 안 속을까?”
“아, 아가씨!”
그제야 이 상황이 장난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이들의 얼굴이 핼쑥해졌다.
“지, 지금 저희를 협박하시는 거예요?”
“협박?”
카밀라의 입가에서 처음으로 미소가 사라졌다.
그녀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라졌다. 그 모습을 바로 코앞에서 마주한 시녀는 자신도 모르게 움찔 몸을 떨었다.
“협박은 말이야…….”
말끝을 흐린 카밀라는 한걸음 가까이 시녀에게 다가섰다.
“뭔가 얻을 게 있는 이들에게나 하는 거야.”
카밀라는 방금 말을 내뱉은 시녀를 향해 손을 뻗었다.
움찔!
뺨이라도 맞는 줄 알고 질끈 눈을 감는 시녀의 모습에 카밀라는 다시 빙긋 웃었다. 그러곤 톡톡, 그녀의 볼을 손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넌 벌레한테도 협박을 하니?”
“……!”
“벌레는.”
뺨을 토닥이던 손이 천천히 내려와 시녀의 목을 쓰다듬었다.
“그냥 밟아 죽이는 거야. 손으로 뭉개 버리든가.”
“아… 아가씨!”
“다만 손과 발이 더러워지니까. 그게 싫을 뿐이지.”
카밀라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친 시녀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런데 말이야.”
그녀의 음성이 한층 더 낮아졌다.
“그것도 한계가 있지 않을까?”
순간 차갑게 가라앉는 카밀라의 눈빛을 보며 다들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더 이상 윙윙거리는 것들을 봐줄 수가 없겠는데… 어떡하지?”
그녀의 손길이 닿는 목이 서늘했다. 당장이라도 목이 꺾일 것 같았다.
“자, 잘못했어요! 아가씨!”
“용서해 주세요!”
어느새 시녀와 시종들 모두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머리를 바닥에 조아리는 이들도 보였다.
다르다! 예전의 그녀가 아니다!
평소처럼 큰소리로 화를 내거나 물건을 집어 던지는 거였다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오히려 비웃었겠지. 네가 그럼 그렇지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숨이 막혀 왔다. 처음으로 그녀가 자신들이 함부로 대할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 느껴졌다.
툭툭.
“잘하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다른 이들과 달리 무릎조차 꿇지 못한 채 벌벌 떨고 있는 시녀의 볼을 카밀라는 다시 한번 부드럽게 톡톡 쳤다.
“찾아와.”
“…예?”
“너희들이 훔쳐 간 반지. 찾아오라고.”
“……! 네!”
“알겠습니다!”
카밀라의 명이 떨어지자마자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얼마나 급했는지 자기 발에 걸려 넘어지는 이도 있었다.
타악!
순식간에 문이 닫혔다. 그렇게 홀로 방에 남게 된 카밀라는 그제야 긴 숨을 토해 냈다.
‘에고, 기운 달려.’
악역 연기는 스트레스 푸는 데는 정말 최고다. 하지만 그만큼 체력이나 심력이 많이 소비된다.
어쨌든 상대방의 기운보다 더 큰 기운으로 눌러 버려야 그 연기가 제대로 사는 법이거든.
[…….]
[…….]
침대에 쓰러지듯 풀썩 주저앉는 카밀라의 곁으로 데린과 페롤이 다가섰다.
그들의 얼굴에 할 말이 무척 많아 보였지만 쉽게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왜요?”
입만 열었다 닫기를 반복하는 그들의 모습에 결국 카밀라가 먼저 말을 건넸다.
[…깜짝 놀랐습니다.]
[정말 저들을 죽일 기세던데?]
방 한쪽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집사 유령 데린과 주방장 유령 페롤은 그제야 말을 내뱉었다. 여전히 놀라움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정말 연기 맞아?]
미리 언질을 받긴 했지만 조금 전에 시녀와 시종들을 압박하던 카밀라의 모습은 누가 봐도 진심이었다.
정말 누구 하나 죽어 나가도 이상할 게 없는 분위기였다. 참으라고 뛰쳐나가 소리칠 뻔했다.
“제가 악역 연기로 주인공을 제치고 대상까지 받은 사람이에요.”
[대상? 그게 뭔데?]
[연기로 상도 받습니까?]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두 귀신을 뒤로한 채 카밀라는 탁자 위에 놓여 있는 물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그런데 카밀라 아가씨.]
“말해요.”
데린은 여전히 궁금한 게 남은 듯 다시 말을 걸어왔다.
[반지는 이미 찾지 않으셨습니까?]
조금 전 시녀와 시종들에게 반지를 찾아오라고 명을 내렸지만……. 사실 반지는 이미 그녀가 찾아서 가지고 있지 않은가.
“제가 원래 예의가 참 발라요.”
[예의요?]
[갑자기 뭔 소리야?]
“사람이라면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하는 게 예의 아니겠어요?”
카밀라는 물잔을 쥐고 있는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여기저기 장미 가시에 긁힌 흔적이 가득한 손.
‘장미꽃밭에 마가 낀 줄 알겠네.’
카밀라에 이어 다른 이들까지 장미꽃밭을 들쑤시고 다니는 꼴을 다른 이들이 보면 말이다.
‘너희들도 미친X 소리 좀 들어 보라고.’
의아해하는 데린과 페롤의 시선을 받으며 카밀라는 빙그레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