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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9)화 (9/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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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제 괜찮다고 했는데도 굳이 가져오는군.”

그런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소르펠 공작은 짐짓 귀찮다는 듯 혀를 찼다. 하지만 그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 있다는 사실을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볼 수 있었다.

“너무도 부럽습니다, 공작님.”

“이래서 다들 딸이 있어야 한다고 하나 봅니다, 하하- 저는 아들밖에 없어서 이런 재미를 느낄 수가 없지요.”

“저희 집은 딸이 있어도 간식은 고사하고 저에게 차 한 잔 끓여다 준 적이 없답니다.”

“저희 집도 마찬가지지요.”

“딸이라고 다 카밀라 아가씨 같지는 않지.”

너 나 할 것 없이 한마디씩 내뱉는 말을 들으며 소르펠 공작은 천천히 셔벗을 떠 입으로 가져갔다.

오늘도 역시나 맛이 좋다.

“정말 놀랍네요. 평소에 그렇게 사고를 치고 다니시더니 이제야 좀 정신을 차리신 걸까요?”

멈칫!

그때 한 젊은 가신이 정말 놀랍다는 듯 와인 셔벗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말을 내뱉었다. 가신들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에르샤 자작이었다.

“…….”

소르펠 공작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저번에 파티장에서 친 사고가 많이 미안하셨나 보네요. 이런 것도 만들어 공작님께 드리는 걸 보니.”

점점 싸늘해지는 소르펠 공작의 눈빛에 주변에서 연신 눈치를 줬지만, 에르샤 자작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자네.”

“예?”

“와인 못 마신다고 하지 않았나?”

“제가요?”

“와인으로 만든 디저트도 입에 맞지 않겠군.”

“아뇨, 저 와인 완전 좋…….”

“자네 와인 완전 안 좋아하는 거 맞아.”

아니라고,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내뱉는 에르샤 자작의 말을 단호하게 자른 소르펠 공작은 집사에게 명을 내렸다.

“내 딸의 성의를 무시할 수는 없으니 저건 내가 먹도록 하지. 이리로 가져오게.”

“네, 공작님.”

“아, 아니…….”

순식간에 자신의 눈앞에 놓여 있던 셔벗이 사라지는 걸 보며 에르샤 자작은 당황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 순간 소르펠 공작과 시선이 마주친 그는 움찔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소르펠 공작의 눈빛을 보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방금 뭔가 아주 큰 잘못을 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주변 이들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을 구하며 도움을 청해 봤지만, 다들 그를 외면하며 고개를 내저을 뿐이었다.

* * *

“내일은 뭘 만들까요?”

[내가 특별히 개발한 소스가 있지. 그걸 살짝 얹은 카나페를 만들 생각이야.]

레시피 좀 제발 가르쳐 달라며 매달리는 주방장 젤라드의 팔을 뿌리치고 카밀라는 주방을 나섰다.

‘어?’

주방장 유령 페롤과 내일 만들 음식에 대해 대화를 나누던 카밀라는 멈칫했다. 복도 한쪽에 익숙한 이가 서 있었다.

“거기서 뭐 해?”

라비였다. 그냥 지나치고 싶었지만, 그와 시선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이 늦은 시간에 홀로 복도에서 뭘 하고 있는 거지?

“…….”

그가 성큼 다가섰다. 설마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던 건가?

“뭐 하는 짓이야?”

“뭐 하는 짓이라니?”

그건 이쪽에서 해야 할 말 아닌가? 길을 막고 서서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는 너야말로 뭐 하는 짓인데?

“밤마다 뭐 하는 짓이냐고. 갑자기 왜 안 하던 짓을 하고 난리야?”

라비의 시선이 주방 쪽으로 힐끔 향하는 걸 보며 카밀라는 그제야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했다.

“음식 만드는 거? 그게 왜?”

카밀라의 되물음에 라비의 미간이 살며시 찌푸려졌다.

“무슨 속셈이야?”

“속셈?”

“갑자기 무슨 짓이냐고.”

다시 같은 질문을 던지는 라비를 보며 카밀라는 쯧 혀를 찼다.

“신경 꺼.”

별 시답잖은 참견을 다 하네.

카밀라는 그대로 그를 지나쳐 가려 했지만, 곧바로 이어지는 그의 말에 다시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런다고 공작이 널 가족으로 받아 줄 것 같아?”

라비의 음성이 유독 거칠었다. 감정이 가득 묻어난다고 해야 하나? 평소의 냉소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술이라도 처마신 건가? 술 냄새는 안 나는데?

“고작 그딴 걸로 그 사람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냐고.”

한심하다는 듯, 뭔가 화가 난 듯한 라비의 모습을 보며 카밀라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저래?’

내가 음식을 만들어 공작에게 갖다 바치든 말든, 꽃을 꺾어 가져다주든 말든 그게 본인과 무슨 상관이라고?

‘우리 원래 각자 알아서 사는 사이 아니었어?’

정말 쓸데없는 참견이었다.

“저들은 우릴 인정해 주지 않아.”

“…….”

우리?

‘우리라…….’

카밀라는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자기에게 하는 말인가 보네.’

최근 소르펠 공작에게 잘 보이려고 애를 쓰는 카밀라를 보며 본인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라도 한 걸까?

어떻게든 그의 눈에 들려고 안간힘을 쓰는 라비 본인의 모습이 말이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마. 그래 봐야 아무 소용 없으니까.”

“알아.”

“…알아?”

“응, 알아.”

열을 내서 말하는 당사자가 민망할 정도로 카밀라의 대답은 무척 짧고 담담했다.

“저들의 가족이 될 생각 따위 조금도 없어.”

“뭐?”

가족? 그딴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자신이 지금 이러는 이유는 단 하나다.

“죽기 싫어서.”

“무슨 말이야?”

“살고 싶어서.”

“무슨 말이냐니까!”

“그게 다야.”

“야.”

카밀라는 그 말을 끝으로 그를 다시 지나쳤다.

자신을 혼란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라비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냥 모른 척했다.

‘그래, 그게 다야.’

가족?

‘됐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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