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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8)화 (8/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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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밀라는 자신을 빙그레 웃으며 바라보고 서 있는 두 사람… 아니, 두 귀신을 잠시 말없이 응시했다.

[왜 그러나?]

[저희에게 뭐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

그 시선에 주방장 유령 페롤과 집사 유령 데린은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들이 뭘 잘못한 게 있나?

“이제 말해 봐요.”

[말하라니?]

[무엇을 말입니까?]

“저에게 바라는 게 뭐예요?”

20년이 넘게 귀신들과 동고동락하며 깨달은 게 있다.

구천을 떠도는 귀신치고 이유 없이 사람을 돕는 이들은 없다는 것.

‘그것도 남을.’

저들이라고 다를 게 있을까.

“전 앞으로도 두 분의 도움이 필요해요.”

고작 꽃 하나 장식하고 음식 한번 해 준 것으로 그동안의 이미지가 바뀌길 바라는 건 너무 큰 욕심이다.

“그러니 말씀해 보세요. 원하는 게 뭔지.”

어지간한 건 들어줄 생각이었다. 죽음을 피할 방법을 알려 주는 이들인데 뭔들 못해 주리.

[…….]

[…….]

카밀라의 말에 페롤과 데린은 서로를 바라봤다. 그러곤 동시에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원하는 건 단 하나야.]

“뭔데요?”

[요리.]

“…요리요?”

카밀라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요리라니? 음식을 만들어 제사라도 지내 달라는 건가?

‘음식 만드는 것에 딱히 재주가 없는데?’

조금 전 주방에서 요리를 한 것도 자신이 아니다. 페롤의 두 손이 자신의 두 손에 빙의되어 대신 음식을 만들어 냈던 거다.

[다시 음식을 만들어 보는 게 소원이었지. 내가 만든 음식을 누군가 맛있게 먹어 주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또 없거든.]

그런데 페롤에게서 예상 밖의 말이 들려왔다.

“음식 만드는 게 소원이라고요?”

내가 음식을 만들어 주는 게 아니라 본인이 음식을 만드는 게 소원이라고?

카밀라의 되물음에 페롤은 다시 작게 웃었다.

[고맙네.]

“…….”

[다시 요리를 할 수 있게 해 줘서.]

두 번 다시 요리 도구를 만져 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두 번 다시 저 요리를 선보이지 못할 거라 여겼다.

지금도 꿈같다. 자신이 불 앞에 다시 설 수 있었다는 것이.

비록 카밀라의 손이었지만 다시 칼을 잡고 냄비를 쥐었다는 게 너무도 행복했다.

“…그러시군요.”

카밀라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특별히 다른 소원이 없다고 하는데 굳이 긁어 부스럼 만드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하지만 대가 없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본 경험이 전무한 그녀는 영 찜찜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시선을 받은 집사 유령 데린 또한 희미하게 웃었다.

[가주님의 집무실에 안개꽃을 다시 가져다 놓을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뭐래? 그딴 게 행복이라고?

[제가 알고 있는 정보로 공작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건 아주 큰 행복이지요.]

[감사합니다.]

오히려 자신에게 감사 인사를 건네는 두 귀신을 보며 카밀라는 조금 당혹스러웠다.

‘이 사람들…….’

한마디로 남을 기쁘게 하는 일에 미련이 남아 구천을 떠돌고 있었다는 말이지 않은가. 살다 살다 별 이상한 호구들도 다 만나 본다.

‘뭐, 나야 좋지만.’

어쨌든 둘 다 딱히 바라는 것이 없다는 말인 거지?

카밀라는 두 손을 공손히 모았다. 그러곤 아주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페롤과 데릭을 향해서.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나중에 어찌 될지 모르지만 일단 대가 없이 도움을 받는 처지가 되었다. 공손함과 예의 정도는 차려 줄 용의가 충분히 있었다.

[…….]

[…….]

뜻밖의 인사에 페롤과 데린의 눈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곧 둘의 입가에 다시 부드러운 미소가 번져 갔다.

* * *

“이, 이것도 만들 수 있으십니까?”

주방장 젤라드는 카밀라가 완성한 음식을 보며 눈을 부릅떴다.

저 붉은 셔벗. 와인을 이용한 저 디저트 역시 돌아가신 스승님이 잘 만들던 디저트였다.

마무리 장식을 한 카밀라는 고개를 돌려 지그시 젤라드를 바라봤다.

“…….”

“…….”

스르륵.

잠시 시선을 주고받던 젤라드는 펴져 있던 무릎을 스르륵 굽혔다. 그렇게 시선이 낮아지고 나서야 카밀라가 입을 열었다.

“이 레시피도 몰라?”

“아, 압니다.”

다만 문제는 자신이 만든 건 저렇게 고운 색깔이 나지 않을 뿐.

벌써 열흘이 넘게 지켜보고 있지만 카밀라는 매번 놀라운 솜씨로 음식을 만들어 냈다. 그것도 스승인 페롤이 즐겨 만들던 음식들로만 말이다.

‘설마…….’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의심이 들었다.

‘스승님이 따로 남기신 레시피북이라도 있는 건가?’

그걸 카밀라 아가씨가 찾아냈나?

‘아니, 아니!’

하지만 곧바로 그 생각을 털어 냈다. 이건 레시피가 있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저 솜씨는 레시피북이 있다고 발휘될 수 있는 게 절대 아니었다.

‘게다가 저 모습은 대체 뭐냐고!’

주방 여기저기에 놓여 있는 도구나 식재료를 척척 찾아내는 모습이 마치 이곳에서 수십 년은 일한 사람 같았다.

“저기… 여기 남은 거…….”

“먹든가.”

“네!”

잔에 담고 남은 와인 셔벗을 조심스럽게 가리키던 젤라드는 카밀라의 허락에 서둘러 셔벗을 입으로 가져갔다.

‘역시!’

와인 셔벗을 먹은 젤라드의 눈빛이 쉴 새 없이 흔들렸다.

왤까? 대체 뭘까? 왜 같은 레시피로 만들어도 자신은 이 맛이 나지 않는 걸까?

“맛있어?”

“나, 나쁘지 않습니다.”

꼴에 아직까지 자존심은 남아 슬쩍 말을 돌린다.

그런 젤라드를 보며 카밀라는 자신의 목 뒤를 손으로 툭툭 쳤다.

스르륵.

잠시 높아졌던 젤라드의 시선이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아가씨.”

그때 주방 입구로 집사 루브가 들어섰다.

언제나처럼 무릎을 살짝 굽힌 채 카밀라와 마주하고 있는 젤라드를 보며 루브는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슬며시 삼켰다.

“다 되셨습니까?”

“응.”

카밀라는 한쪽에 놓여 있는 와인 셔벗을 가리켰다. 작은 유리잔에 둥글게 담긴 붉은 셔벗 위로 아주 작은 민트 잎이 앙증맞게 장식되어 있었다.

“오늘도 부탁해.”

“네, 아가씨.”

가볍게 고개를 숙인 집사 루브는 셔벗이 담긴 잔들을 챙겼다.

‘정말 의외군.’

루브는 마지막으로 카밀라를 슬쩍 바라봤다.

‘갑자기 왜 이렇게 변하셨을까?’

루브는 그녀를 싫어한 적은 없다. 그렇다고 좋아한 적도 없었다. 공작가 안에서 점점 고립되어 가는 그녀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지만 도움을 줄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에게 도움의 손길을 먼저 내미는 건 그가 가장 싫어하는 행동이었으니까. 그에 그냥 지켜만 봤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카밀라, 그녀가 달라졌다. 주방 시녀들이 장난을 친 음식이 공작님의 입에 들어가게 된 것이 정말 우연이었을까?

어찌 된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루브는 요즘 그녀가 무척 재미있었다.

‘지금도 그래.’

저 성격 더럽고 자기중심적인 젤라드를 저런 모습으로 만들어 버리다니.

카밀라의 눈치를 연신 보며 슬쩍슬쩍 셔벗을 퍼먹고 있는 젤라드의 모습이 무척 신기했다.

“그런데 이 시간에도 회의를 해?”

카밀라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야?”

지금 준비된 셔벗은 평소처럼 두 개가 아니었다.

잔이 올라가 있는 쟁반이 여러 개다. 현재 회의실에 집안의 가신들이 모두 모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늘 갑작스럽게 잡힌 회의였다.

“글쎄요.”

집사 루브는 카밀라의 질문에 다시 빙그레 웃었다.

낮에 해야 했을 회의를 굳이 이 시간에, 카밀라가 간식을 가져다주는 시간으로 미룬 이가 바로 소르펠 공작이었다.

“그럼 전 이만.”

꾸벅 고개를 숙인 루브는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그런 그의 뒤를 시녀 몇이 셔벗이 올려져 있는 쟁반을 들고 따라나섰다.

“저런 색깔이 나오려면 어떻게…….”

“알고 싶어?”

“네!”

“그럼 예쁜 짓 좀 해 봐.”

“요, 요로케요?”

“…볼에 올라간 손 치워. 혀 짧은 소리도 내지 마.”

뒤에서 들려오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루브는 다시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급히 참았다.

* * *

“회, 회의를 이 시간에 하니 아주 새롭군요.”

“그, 그러게 말입니다. 하하.”

“안 그래도 요즘 밤잠이 줄어들어 고생하였는데 잘됐지요.”

회의실에 모인 이들이 어색한 미소를 흘리며 연신 말을 내뱉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의아함을 내보이고 있었다.

‘대체 이 시간에 왜?’

‘낮엔 바빠서 안 된다고 하셨다지 않나.’

‘오늘 특별히 바쁜 일도 없으셨다고 들었습니다만…….’

낮에 잡혀 있던 회의를 바쁘다는 이유로 이 시간, 자정이 가까워지고 있는 이 시간에 굳이 잡은 소르펠 공작의 의도를 아무도 이해하지 못했다.

딱히 급한 안건도 없었기에 내일 다시 낮에 회의를 잡아도 상관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의아함과 불만을 소르펠 공작에게 대놓고 표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왜 아까부터 자꾸 시계를 보시는 거지?’

회의를 하는 중간중간 한쪽 벽에 세워져 있는 시계를 쳐다보는 소르펠 공작의 모습을 다들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시간에 다른 약속이 있는 것도 아닐 텐데?

똑똑!

그때 노크 소리와 함께 회의실 문이 열리며 집사 루브와 시녀 몇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의 손에는 쟁반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공작님, 카밀라 아가씨께서 오늘도 간식을 보내오셨습니다.”

“흐음. 이리로 갖고 오게.”

소르펠 공작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모두가 들으라는 듯 집사에게 다시 말을 건넸다.

“오늘도 카밀라가 직접 만든 건가?”

“네, 공작님. 아가씨께서 직접 만드신 디저트입니다. 손님들 몫까지 넉넉히 준비하셨더군요.”

두 사람의 대화에 가신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누가 뭘 만들어?

“아니, 지금 이걸 영애께서 만드셨다는 겁니까?”

“허허. 세상에…….”

“아가씨께서 이런 것도 만들 줄 아십니까?”

카밀라가 만들었다는 말에 처음에는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셔벗을 한입 떠먹은 이들은 이내 진심으로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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