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행실이 있으니까.’
가는 곳마다 사고를 치고 공작가의 명예를 바닥으로 떨어트리는 그녀에게 이미 마음을 닫아 버린 소르펠 공작 역시 그녀의 말을 믿어 주지 않았다.
‘일단…….’
소르펠 공작의 마음부터 잡아야 한다. 라비, 그 새끼가 뭔 짓을 하든 그 똥물이 자신에게까지 튀지 않도록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미 오만 정이 다 떨어진 상태일 텐데.
[이봐.]
‘친딸도 아니잖아.’
친딸이 그딴 짓을 하고 돌아다녀도 내칠 판에, 피도 한 방울 안 섞인 의붓딸이 가문의 평판을 떨어트리고 다녔으니.
[자네, 내 목소리 들리지 않아?]
‘나라도 싫겠다.’
다른 귀족 영애들과 머리채를 잡고 싸우긴 왜 싸우냐고.
[날 좀 보라니까.]
‘그것도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모여 있는 파티장에서 말이야.’
[어이, 내 말 들리지? 듣고 있는 거 맞지?]
‘뭐 좋은 방법 없을까?’
가서 무릎 꿇고 빌기라도 해야 하나?
[저번에 분명 나랑 눈 마주쳤잖아. 자네, 나 보이는 거지?]
“아씨! 그래서 뭐요? 보이면 어쩔 건데요?”
안 그래도 정신 사나워 죽겠구만!
카밀라는 얼마 전부터 자신을 찾아와 계속 말을 걸고 있는 노인을 향해 결국 반응을 하고 말았다.
‘끝까지 무시하려고 했는데!’
생각할 것도 너무 많은데 시끄럽게 옆에서 계속 쫑알거리며 쫓아다니니 더 이상 무시하기가 힘들었다.
[여… 역시!]
요리사 복장을 한 노인, 페롤은 큰 충격을 받은 것처럼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저 아무것도 안 합니다.”
아주 감격스러운 눈빛을 내보이는 페롤을 보며 카밀라는 바로 선을 그었다. 저런 존재들의 말을 들어줘서 좋을 게 하나도 없다.
“말을 대신 전해 달라거나, 뭔가 해결해 달라거나… 이런 미련 풀어 드리는 일, 전 안 해요. 못 해요.”
‘돌 맞을 일 있냐고.’
미친X 소리 안 들으면서 어떻게든 머리를 써 귀신들 소원을 들어주는 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엄청 피곤한 일이었다.
웬만해선 그냥 무시하는 게 상책이다.
[저… 정말 내가 보여?]
“안 해요, 못 해요.”
[신기하군! 신기해! 정말 내가 보이다니! 내 목소리도 들린다는 거지?]
안 듣네.
자신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혼자 흥분해 날뛰는 노인을 보며 카밀라는 고개를 살며시 내저었다.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니라고.’
카밀라는 바로 그에게서 신경을 끊었다. 조만간 자신도 저 귀신처럼 구천을 떠돌게 될지도 모를 판이다. 어떻게든 소르펠 공작의 마음을 잡아야 하는데…….
“아우! 공작이 뭘 좋아하는지 아무것도 모르는데 나보고 어쩌라고!”
카밀라와 공작의 접점은 그리 많지 않았다. 제대로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이라고 해 봐야 사고 치고 야단맞을 때가 다였다.
당연히 그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걸 마음에 들어 하는지 알 턱이 없었다.
[공작님이 좋아하는 거?]
그때 페롤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어느새 카밀라 곁으로 가까이 다가온 그가 푸근하게 웃었다.
[공작님이 좋아하시는 건 내가 아주 잘 알지.]
“……!”
[우리 공작님이 아기였을 때부터 이곳에서 일했던 나인걸.]
힘없이 자리에 앉아 있던 카밀라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르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