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지났다.
이틀이 지나고… 어느새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더 흘렀다. 그렇게 날이 갈수록 카밀라의 얼굴은 빠르게 썩어 들어갔다.
‘왜, 왜……!’
왜 안 깨어나는 거냐고!
이런 경우는 정말 처음이다. 이렇게 장시간 이 공간에 들어와 있었던 적이 있었던가?
시간이 점점 흐를수록 카밀라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설마…….’
아니겠지?
‘이대로 계속 이곳에 있는 건……!’
카밀라는 휙휙 고개를 저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했다. 이 세계에서 카밀라의 삶이 어떻게 끝나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으니까.
카밀라가 아직까지는 멀쩡한 자신의 목을 연신 매만졌다.
똑똑.
잠시 후 노크 소리와 함께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섰다. 자신의 전속 시녀인 도나였다.
“아가씨?”
두 팔과 머리를 축 늘어트린 채 엎드려 있는 카밀라를 본 도나가 흠칫거렸다.
“왜?”
하지만 곧 카밀라가 고개를 스르륵 들자 도나는 표나지 않게 안도의 한숨을 짧게 내쉬었다.
“주방장님이 직접 간식을 만들어 오셨어요.”
“간식?”
“요즘 통 식사를 못 하셨잖아요.”
저번 식당에서 있었던 일로 주방 시녀들이 대거 교체되었다. 그때 장난질을 한 시녀들은 퇴직금도 한 푼 받지 못하고 모두 쫓겨났다.
더불어 카밀라가 먹는 음식에 신경을 쓰라는 공작의 명이 내려졌다.
“생각 없어.”
하지만 본체, 이시아로 돌아갈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에 입맛을 완전히 잃어버린 카밀라는 최근 음식에 거의 손을 대지 않고 있었다.
아무리 좋고 맛있는 음식도 한입 먹고 물리길 여러 번. 결국 주방장이 직접 간식까지 만들어 찾아온 것이다.
“젤라드 주방장님이 직접 온 성의를 봐서라도 한입만 드셔 주세요.”
“…….”
도나의 목소리에 걱정이 가득하다. 다시 침대 아래로 고개를 푹 떨구려던 카밀라의 시선이 도나에게 향했다.
이곳 공작가에서 유일하게 카밀라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이를 꼽자면 그녀이지 않을까?
카밀라가 살인 미수범으로 잡혀 가게 되었을 때도 끝까지 그녀의 편을 들었던 이였다. 카밀라의 죽음에 유일하게 눈물을 흘려 준 이 역시 그녀뿐이었다.
‘다른 시녀들의 행패에 매번 분개했었지.’
당장 공작님께 알려야 한다며 방방 뛰었지만 카밀라의 명에 매번 안타까워하며 입을 다물어야만 했다.
그러다 카밀라의 억울함을 어떻게든 풀어 주겠다며 대신 시녀들과 머리채를 잡고 싸웠다. 결국 눈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 돌아와서는 그래도 자기가 한 대 더 때렸다며 씨익 웃던 그녀다.
“알았어.”
결국 그녀의 청을 거부하지 못한 카밀라는 몸을 일으켜 자세를 바로 했다. 그 모습을 본 도나의 표정이 밝아졌다.
서둘러 밖으로 나간 도나는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한 사람과 함께 안으로 다시 들어섰다.
“실례하겠습니다.”
조금은 마른 체형의 40대 중반의 남자였다. 카밀라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인 그는 곧바로 들고 온 음식을 탁자에 내려놓았다.
“애플파이입니다.”
설탕에 잘 졸여진, 얇게 슬라이스된 사과가 잔뜩 올려져 있는 파이였다.
“드셔 보시죠.”
파이를 권하는 주방장의 말투에 자부심이 가득했다. 아니, 거만함이 가득하다고 해야 하나.
대놓고 말은 하진 않지만 카밀라를 바라보는 주방장의 눈빛은 그리 곱지 않았다. 공작의 명으로 어쩔 수 없이 카밀라가 먹는 음식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걸 얼굴에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그로서는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이 만든 저 아름다운 작품이 저런 어린 계집의 입으로 들어간다는 게 영 속이 뒤틀렸다. 맛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의 입으로 들어갈 자신의 음식이 너무도 아까웠다.
‘아무거나 주는 대로 먹을 것이지.’
요 며칠 카밀라에게 보냈던 음식이 그대로 주방으로 돌아오는 걸 본 젤라드는 속이 부글거렸다.
감히 자신의 음식을 남기다니!
‘고것들도 괘씸하긴 하지만…….’
얼마 전, 공녀의 음식에 장난을 친 게 들통나 저택에서 쫓겨난 시녀들.
자신이 만든 음식에 장난질을 한 그것들에게도 무척 화가 나긴 하지만 솔직히 그녀들의 마음이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진짜 공녀도 아니지 않은가. 지역명도 아주 낯선 지방의 촌구석에서 지내던 것이 입맛이 까다로운 척하는 게 눈꼴시기 짝이 없었다.
공작님의 명만 아니라면 그녀가 굶든 말든 조금의 신경도 쓰고 싶지 않았다.
“제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겁니다.”
“…….”
카밀라의 시선이 다시 주방장에게 향했다.
‘에휴.’
불만이 가득한 주방장 젤라드의 시선과 마주한 카밀라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본인의 불편한 심정을 감출 생각이 전혀 없는 듯한 그의 표정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익숙하니까.’
어릴 때도 그렇고 오랫동안 연예계 생활을 하며 자신을 싫어하는 이들을 무시하는 방법 정도야 도가 텄으니까.
지금 문제는 그게 아니라.
‘시끄러워.’
안 그래도 현 상황에 머리가 터져 나갈 것 같은데.
[이놈아! 내가 누누이 말했거늘! 음식이라는 건 남이 먹어 줬을 때 진정한 빛을 발하는 거라고!]
저 시끄러운 노인네는 대체 뭐냐고.
[음식이 아무리 잘나 봐야 아무도 먹어 주지 않으면 그저 쓰레기인 거야!]
카밀라는 젤라드 옆에 서서 아까부터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한 노인을 보며 다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내 눈깔도 아닌데…….’
현실 세계의 내 눈도 아닌데, 저딴 게 왜 보이는 건데?
이 세계에 방관자로 들어와 구경할 땐 보이지도 않던 존재들이 갑자기 보이기 시작했다.
그 사실에 카밀라는 다시 한번 절망했다. 아무래도 나, 이곳에 완전히 들어온 것 같은데.
‘씨…….’
욕 나온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이 여자의 몸에 자신을 처박은 존재를 향해 욕이라도 한 사발 퍼붓고 싶었다.
‘이제 난 어째야 하나?’
[그리고 이 파이! 시나몬을 1g이나 적게 넣었잖아! 고작 1g이지만 그로 인한 맛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모르는 거냐! 그리고 카밀라, 이 아이는 사과를 좋아하지 않아. 먹는 사람의 취향을 고려하라고 그렇게 말했거늘!]
아우, 정신 사나워.
살며시 미간을 찌푸린 카밀라는 어서 이것들을 내보내야겠다는 생각에 파이를 바로 한입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곤 그대로 포크를 던지듯 내려놓았다.
“왜 그러십니까?”
“가져가.”
“뭐가 마음에 안 드십니까?”
자신의 파이를 먹고 감탄할 카밀라의 모습을 예상하고 있던 젤라드는 의외의 반응에 미간을 찌푸렸다.
“맛없어.”
“네?”
“맛없다고.”
“무, 무슨!”
젤라드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맛도 모르는 것이 감히 뭐가 어쩌고 어째? 내가 만든 음식이 맛이 없다니!
“말도 안 됩니다! 이 파이로 말할 것 같…….”
“시나몬이 적게 들어갔잖아. 1g이나. 베이킹의 기본도 안 된 음식을 내오다니. 당장 들고 나가.”
“예?”
시나몬?
“그리고 나 사과 안 좋아해.”
“그, 그건…….”
“먹는 사람 취향부터 파악해야 하는 거 아닌가? 본인만 만족하면 뭐 해? 아무도 먹어 주지 않으면 이건 그저 쓰레기지.”
“……!”
저건 돌아가신 스승님께서 늘 하시던 말씀인데.
혼란스러워하는 젤라드를 향해 카밀라는 눈을 부릅떴다.
“안 나가?”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린 젤라드는 붉어진 얼굴로 내려놓았던 음식을 챙겨 급히 밖으로 향했다.
‘그쪽도 좀 나가고.’
본인이 하고 싶었던 말을 다 내뱉어 준 카밀라를 조금은 놀란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노인을 향해서도 그녀는 손을 내저었다.
순간 그와 카밀라의 눈이 딱 마주쳤다. 그러자 노인의 눈이 더욱 커진다.
‘뭐? 왜? 귀신 보는 인간 처음 봐?’
처음 보나 보네.
‘아, 몰라.’
카밀라는 그대로 침대에 다시 축 늘어졌다.
* * *
[왜 그러나? 페롤?]
카밀라의 방을 나선 노인의 곁으로 다른 유령이 다가섰다. 깔끔한 정장을 차려입은 또래의 노인이었다.
[눈이 마주쳤어.]
[눈이 마주치다니?]
[진짜로 마주쳤다니까!]
[진정하고. 차근차근 말해 보게.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저 방에 있는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고.]
[누구? 카밀라 아가씨?]
[아가씨는 무슨. 아직도 데린, 자네가 여기 집사인 줄 아나?]
[죽었다고 본분을 잊으며 쓰나.]
집사 유령 데린이 빙그레 웃었다.
[공작님께서 따님으로 받아들인 이상 우리 역시 저분을 존중해 드려야지. 그건 그렇고 정말 저분과 눈이 마주쳤나?]
[그렇다니까.]
[흐음.]
두 노인의 시선이 동시에 카밀라가 있는 방문으로 향했다.
오랜 시간 그녀를 지켜봤지만 그동안 그런 기미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자네가 착각한 건 아니고?]
[진짜로 마주쳤어. 나를 향해 손도 내젓더군.]
[손을?]
집사 유령 데린이 흥미롭다는 듯 턱을 매만졌다.
[천천히 지켜보면 알겠지. 우리야 남는 게 시간 아닌가.]
그 말에 주방장 옷을 입고 있는 노인 유령 페롤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두 유령은 조용히 그 자리에서 모습을 감췄다.
* * *
‘살자.’
살아야겠다.
그 후로도 삼 일이라는 시간이 더 흘렀다. 그리고 결국 카밀라는 하나의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글렀다.’
본래의 세계로 돌아가는 거, 아무래도 글러 먹은 것 같다.
나중엔 어찌 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 당장 돌아가는 건 문제가 있어 보였다. 더 이상 이렇게 허송세월을 보낼 때가 아니라는 판단이 섰다.
‘일단 살고 보자.’
시체처럼 누워 있던 카밀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대로 있다간 말 그대로 개죽음이었다.
“평판부터 바꿔야 해.”
수없이 반복된 생애 중에 첫째 아들인 루드빌을 암살하려는 라비의 계획에 간혹 카밀라가 참여하지 않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의 결과 또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녀를 눈엣가시처럼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들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다.
라비의 잘못이 발각되는 순간 사람들은 카밀라까지 싸잡아 죄인으로 만들었다. 거짓 증언을 해서 라비와 한통속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아니라고, 자신은 하지 않았다고 소리쳐 봐야 그녀의 말을 들어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다들 카밀라의 말보다 거짓 증언을 해 대는 이들의 말에 더욱 귀를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