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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4)화 (4/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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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봐야 너나 나나 결국은 죽는 목숨이라고. 이딴 짓 할 시간에 쓸데없는 질투심이나 잠재울 것이지.

잠시 후 식당에 들어서니 한 사람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이곳의 주인인 소르펠 공작이다. 그의 아들인 루드빌은 보이지 않았다.

‘지금이 그때인가 보네.’

식사 자리에 루드빌이 없는 걸 확인한 카밀라는 지금 시기가 언제쯤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서부 지역에 큰 반란이 일어났던 때다. 그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루드빌이 군사를 이끌고 떠났다.

‘이때부터지.’

라비의 질투심이 폭발하기 시작한 게. 루드빌이 그곳에서 아주 큰 성과를 거두고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소르펠 공작에게 시선을 준 카밀라는 속으로 작게 감탄했다.

‘아저씨, 다시 재혼해도 되겠어요.’

요즘도 귀부인들의 추파가 끊이지 않는다더니, 인물이 아주 훤하다.

‘이렇게 그냥 썩히기엔 좀 아깝네.’

카밀라와 라비의 어머니는 소르펠 공작과 재혼해 나름 행복하게 잘 살았다.

하지만 그 시간이 길지 못했다. 결혼 후 1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 어머니가 낙마 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녀가 죽은 후 당연히 카밀라와 라비가 공작가에서 내쳐질 거라 여겼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그들을 공작이 계속 데리고 있을 이유가 전혀 없었으니까.

하지만 소르펠 공작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어미를 잃은 어린 두 아이를 그대로 자기 자식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

카밀라와 라비의 등장에 소르펠 공작은 읽고 있던 신문과 쓰고 있던 안경을 한쪽으로 치우며 그들에게 시선을 줬다.

‘와.’

확실히 포스가 장난이 아니다. 그와 눈이 마주친 카밀라는 자신도 모르게 몸이 경직됐다.

‘끌고 가라.’

기사들에게 명을 내리던 차가운 목소리. 카밀라에게 향했던 서릿발 같은 눈빛.

저 눈빛 아래서 얼마나 많은 죽음을 맞이했던가.

꿀꺽.

카밀라는 표나지 않게 마른침을 삼켰다. 등에선 주르륵 식은땀이 흘렀고 미세하게 손끝이 떨려 왔다.

그를 보는 순간 확실하게 깨달았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이대로 있다간 자신이 어떤 결말을 맞게 될 것인지.

“늦었구나.”

카밀라와 라비를 번갈아 바라보던 소르펠 공작의 입이 그제야 처음으로 열렸다.

“그게…….”

“죄송해요. 제가 늦잠을 자 버렸어요.”

“…….”

“…….”

소르펠 공작과 라비의 시선이 동시에 카밀라에게 향했다. 두 사람의 눈빛에는 똑같은 감정이 묻어났다.

의아함과 놀라움.

평소 소르펠 공작 앞에서 말은커녕 제대로 고개조차 들지 못하던 그녀였지 않은가.

늘 뭔가 불만이 가득한 표정으로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게 그녀가 하는 유일한 감정 표현이자 행동이었다. 지금처럼 소르펠 공작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내뱉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게다가 웃어?’

아직도 그녀가 잠이 덜 깬 거라 확신하며 라비는 살며시 고개를 내저었다.

“앉거라.”

소르펠 공작은 다른 말을 더 하지 않고 자리를 권했다. 두 사람이 앉자마자 시녀들이 서둘러 음식들을 내왔다.

‘휴우.’

정신 차리자.

소르펠 공작을 보며 카밀라는 더욱 표정 관리에 애썼다.

자신이 연기자라는 게 이렇게 다행스러울 때가 또 있었을까? 맹장이 터지기 직전의 고통 속에서도 웃으며 연기를 마쳤던 자신이다.

‘이 정도쯤이야.’

카밀라는 덤덤한 표정으로 자신의 앞에 놓이는 음식에 시선을 줬다.

‘아침부터 고기네.’

고기… 좋지.

‘게다가 간이 된 고기.’

식단 관리 때문에 양념이 제대로 밴 고기를 먹어 본 적이 언제였던가.

윤기가 잘잘 흐르는 스테이크를 잠시 말없이 바라보던 카밀라는 힐끔 시선을 돌렸다. 몇몇 시녀들이 그녀를 보며 연신 키득거리고 있었다.

‘그래, 지금 실컷 웃어라.’

오늘로 끝일 테니.

그런 시녀들을 보며 카밀라 역시 히죽 웃었다.

시녀들의 얼굴이 의아해졌지만, 카밀라는 시선을 바로 했다. 그러곤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고기를 빠르게 썰어 나갔다.

“아버지.”

“음?”

고기를 깔끔하게 한입 크기로 썬 카밀라는 자신의 접시를 조심스럽게 소르펠 공작에게 내밀었다.

“이거 드세요. 제가 먹기 좋게 다 썰었어요.”

소르펠 공작의 눈이 이번에야말로 확연하게 커졌다. 라비 역시 마른기침을 연신 내뱉으며 들고 있던 물잔을 급히 내려놓았다.

손수건으로 입가를 훔친 그의 시선 역시 카밀라에게 향했다. 저 녀석이 드디어 완전히 미친 건가? 하는 딱 그런 눈빛이었다.

“…그래.”

잠시 카밀라와 접시를 번갈아 바라보던 소르펠 공작은 다행히 그녀가 내민 접시를 별 의심 없이 받아 자신의 앞에 내려놓았다.

그러곤 자신의 몫으로 나왔던 접시를 대신 그녀의 앞에 손수 놓아 줬다.

“허억!”

“흐읍!”

격한 반응은 다른 곳에서도 나왔다.

다급히 숨을 삼키는 시녀들의 기척이 느껴졌지만 카밀라는 조용히 그녀들의 반응을 무시했다. 그러곤 아무것도 모르는 척 식사에 열중했다.

‘오… 맛있네.’

역시 아침에는 고기지.

고기는 정말 아주 부드럽고 고소했다. 이내 소르펠 공작의 입으로도 고기 한 조각이 들어갔다.

자,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

달칵.

고기를 씹던 소르펠 공작이 포크를 조용히 내려놓았다. 그 소리가 유독 크게 울려 퍼졌다.

카밀라는 미간이 잔뜩 찌푸려진 소르펠 공작을 의아한 눈빛으로 바라보다 아차, 하는 표정으로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 아버지! 그거 제가 다시 먹을게요!”

잊고 있던 사실 하나를 그제야 떠올린 것처럼 카밀라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소르펠 공작의 앞에 놓인 접시를 향해 손을 뻗었다.

“기다려라.”

입가를 손수건으로 가볍게 훔친 소르펠 공작은 그런 카밀라의 손을 제지했다.

소르펠 공작과 시선이 마주친 카밀라의 눈빛이 쉴 새 없이 흔들렸다. 이내 그런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또르르 눈물이 떨어지려는 순간, 카밀라는 그걸 감추려는 듯 고개를 급히 숙였다.

옵션으로 지그시 입술도 깨물어 줬다. 들키고 싶지 않은 걸 들킨 아이처럼 말이다.

‘오늘은 어떤 고기였으려나.’

하지만 고개를 푹 숙인 그녀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는 건 아무도 보지 못했다.

‘소금 덩어리? 후추 덩어리? 어쩌면 둘 다였을지도.’

혹은 쓰레기통에 빠졌다 나온 고기였을지도 모른다.

공작가에서 일하는 이들 대부분이 그녀를 싫어했다. 그들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그녀를 괴롭혔다.

처음에는 아주 조심스럽고 사소한 괴롭힘이었다. 음식 간을 아주 살짝 짜게 하거나 찻잎을 조금 쓴 걸로 골라 넣는다든가 하는 수준.

카밀라는 가족들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그녀에게 남은 마지막 자존심이었을 것이다.

그녀가 침묵하자 괴롭힘은 점점 더 심해졌다. 견디다 못해 화를 내면 오히려 억울하다는 듯 울먹이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는 사이 소르펠 공작을 비롯해 가족들이 카밀라를 바라보는 눈빛은 점점 서늘해졌다.

‘피 한 방울 안 섞였으면서 공녀는 무슨 공녀야.’

‘내 말이! 라비 도련님이야 능력이라도 있으시지만, 아가씨는…….’

‘멍청이. 그깟 자존심이 널 살려 주냐? 말을 해야 할 거 아냐. 저 인간들도 짜증 나.’

같이 식사를 하는 이가 음식을 매번 한입 먹고 깨작거리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아무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다는 게 말이 돼?

어떻게 그 긴 시간을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는 건지 신기하다.

“처음이 아니구나.”

소르펠 공작의 음성이 그 순간 다시 들려왔다.

“아, 아니에요!”

그렇지! 역시 한 가문의 수장답게 바로 상황을 파악하는구나!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지만 카밀라는 굳어진 안색으로 급히 고개를 저었다. 두 눈가는 여전히 붉어진 채였다.

“이 얘긴 나중에 다시 하도록 하지.”

그 모습을 잠시 말없이 응시하던 소르펠 공작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며 한 곳을 바라봤다.

“저들을 처리한 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엔 안색이 파랗게 질린 시녀들이 있었다.

* * *

“왜? 뭐? 할 말 있어?”

“너 뭐 잘못 먹었냐?”

“못 먹긴 했지.”

고기 맛있었는데.

식당을 나와 룰루랄라 가벼운 마음으로 걷던 카밀라는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라비의 시선에 결국 걸음을 멈춰야 했다.

‘어떤 처벌을 받으려나?’

굳게 닫힌 식당 문을 보며 카밀라의 입매가 슬쩍 곡선을 그렸다.

소르펠 공작은 집사부터 시작해 시녀장까지 모두 불러들였다. 이번 일이 가볍게 끝나지 않을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내가 아주 잘 알지.’

소르펠 공작의 무서움을.

‘그 단호함을!’

자신의 것이나 가문에 위해를 가하는 존재에 한해서는 조금의 틈도 주지 않고 가차 없이 처단하는 인물이라는걸.

그러니 제 친아들을 건드린 카밀라와 라비를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죽일 수 있었던 거다. 10년이 훨씬 넘게 같이 살며 가족으로 묶여 있던 사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카밀라는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라비를 바라봤다. 자신의 끝이 어찌 될지도 모르고 설치고 다닐 이놈을 어찌해야 할까.

아직 시기심과 질투심에 맛이 완전히 간 단계는 아니었다. 그래, 아직까지는 갱생의 여지가 있다.

그 여자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 여자. 이 세계의 내로라하는 남자들의 관심을 다 차지하는, 주변 여자들을 다 엑스트라로 만드는 그 여자!

그녀의 관심이 루드빌에게 향하는 것을 기점으로 라비의 열등감이 폭발한다.

잠시 고민한 카밀라는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알 게 뭐야. 난 돌아가면 그만인걸.’

현실 세계에서 자신이 정신을 차리는 순간 이 몸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 것이다.

‘죽게 될 놈만 불쌍하지.’

자업자득이긴 하지만.

툭툭.

카밀라는 조금은 측은한 눈빛으로 라비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였다. 그러곤 그를 그대로 지나쳐 갔다.

“…뭐지?”

이 더러운 기분은?

라비는 그런 카밀라를 한동안 어이없는 눈빛으로 바라봐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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