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
“사, 살려 주세요!”
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의 눈에서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살려 달라 애원하는 모습이 퍽 애처롭기까지 했지만 이를 보는 남자의 얼굴에서 감정이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한 가지 감정은 찾아볼 수 있었다.
경멸.
그녀를 향한 차가운 경멸의 눈초리.
“끌고 가라.”
“아, 아버지!”
남자의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주변에 있던 기사 몇이 다가와 그녀를 붙들었다.
기사들의 손에 질질 끌려가면서도 그녀는 계속해서 살려 달라 외쳤다. 하지만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기사들뿐만 아니라 그녀를 바라보는 주변 이들의 눈빛은 다들 한결같았다. 한심함과 비웃음.
잠시 후, 그녀의 앞에 새로운 이가 다가섰다.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다.
“오라버니!”
그 남자 역시 그녀를 대하는 눈빛이 차갑긴 매한가지였다.
“제, 제가 잘못했어요!”
“…….”
땅에 머리를 박듯 용서를 비는 그녀를 잠시 말없이 바라보던 남자는 그대로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 들었다.
“살……!”
푸욱!
‘와… 씨!’
번쩍 눈을 뜬 시아는 바로 자신의 가슴에 손을 올렸다. 두근두근 여전히 뛰고 있는 심장에 절로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그래도 오늘은 단두대가 아니네.’
이걸 좋아해야 하는 건가? 시아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문득 이 현상을 처음 겪었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내가 다섯 살이었나?’
사건이 있던 날이다. 그날 처음 귀신을 봤다.
‘엄마…….’
자신의 곁에서 죽음을 맞이한 엄마.
자신을 조금은 슬픈 눈빛으로, 조금은 후련한 눈빛으로 바라보다 사라지는 엄마를 본 그날 이후로 다른 귀신들도 볼 수 있게 됐다.
‘그래.’
귀신을 보는 건 그렇다 치자.
‘그런데 이건 진짜 뭘까?’
시아가 이 현상을 겪게 된 것 역시 그때쯤이다. 엄마가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현상을 처음 겪었다.
‘꿈은 아니야.’
꿈을 꾸는 게 아니라 그냥 눈을 감으면 가끔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마치 다른 세계에 빨려 들듯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내가 제일 처음 본 장면은…….’
푸욱!
바로 검에 찔리는 거였다. 방금처럼 말이다.
‘내 심장이…….’
아니, 그 여자의 심장이.
마치 자신이 그녀에게 빙의라도 된 것처럼 선명하게 느껴지는 섬뜩한 감각에 눈을 뜨고도 한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 후로도 종종 눈을 감으면 이상한 세상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곤 같은 삶을 계속 반복해 살아갔다.
그곳에서 시아는 늘 같은 여자다. 중세 시대의 귀족 여식으로 보이는 여자! 그 여자는 한마디로.
‘어두워.’
칙칙해!
말수도 적고 표정도 무지 우울하다. 그러면서도 귀족으로서의 프라이드는 더럽게 높아 무시당하거나 외면받는 걸 아주 못 견뎌 했다.
화가 나면 소리부터 지르고 패악을 일삼는 여자의 모습에 처음에는 엄청 짜증이 났다. 그런 여자의 끝은 늘 한결같았기 때문이다.
죽음.
오라비로 보이는 자의 손에.
아비로 보이는 자의 손에.
혹은 단두대로 끌려가 수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목이 댕강 잘리기도 했다.
‘그 느낌은 정말…….’
끔찍하다.
다섯 살 때부터 시작해 벌써 20년이 넘게 그 모습을 지켜본 시아지만 여전히 죽음의 순간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제발 좀 그만 죽으라고, 좀 다르게 살아 보라고.
죽는 순간 다시 과거로 돌아가 같은 삶을 반복하는 여자의 모습에 시아는 짜증을 넘어 이젠 연민마저 느꼈다.
매번 그 여자의 몸에 빙의하듯 들어가 그 삶을 계속 지켜봐서 그럴까? 점점 여자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푸욱!
여자는 오늘도 죽음을 맞이했다.
‘씨…….’
잠깐 주어진 촬영 대기 시간에 눈을 감았다가 이상한 세계로 끌려 들어가는 현상을 겪은 시아는 속으로 연신 욕설을 내뱉었다.
기분… 정말 더럽다.
“언니, 괜찮아요? 또 악몽이라도 꿨어요?”
얼마 전에 할머니 집을 모두 정리하고 다시 현장으로 돌아온 지현이다. 감나무 아래에서 3천만 원에 가까운 돈을 찾았다며, 고맙다며 연신 눈시울을 붉혔다.
없는 형편에 자신에게 주려고 그 돈을 쓰지도 않고 모은 할머니 생각에 며칠은 또 울었다고 한다.
어쨌든 마음을 추스르고 돌아온 지현이 놀란 눈빛으로 급히 다가와 물었다. 잠을 자듯 미동도 없던 시아가 갑자기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악몽이지.”
“땀 좀 봐. 화장 다시 해 드릴게요.”
“응.”
짧은 한숨을 내쉰 시아는 익숙한 지현의 손길을 느끼며 다시 눈을 감았다.
“……!”
하지만 시아는 급히 다시 눈을 떠야만 했다.
“언니?”
“…….”
“왜 그래요?”
갑자기 안색이 더욱 창백해지는 시아의 모습에 지현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하지만 시아는 그녀의 물음에 대답할 여력이 조금도 없었다.
‘뭐, 뭐야?’
눈을 감는 순간 조금 전의 영상이 바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적은 없었는데…….
한 번 이런 현상을 겪고 나면 며칠은 잠잠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눈을 감자 또다시 바로 그곳이 눈에 보였다.
여자가 죽었기 때문일까?
처음이다. 여자의 몸에 빙의되지 않은 채 이 세상을 보는 건.
피를 흘리며 죽어 있는 그녀와 시아의 눈이 딱 마주쳤다.
“…….”
원망과 슬픔이 가득 담긴 그녀의 눈을 본 시아는 한동안 굳어진 표정을 풀지 못했다.
* * *
“저기… 시아야.”
“왜?”
“눈 좀 붙여.”
“괜찮아.”
내가 안 괜찮아.
시아를 바라보던 현석 매니저는 어색한 미소를 흘렸다. 시뻘겋게 충혈된 눈을 부릅뜨고 앉아 있는 시아의 모습이 괴기스럽기 짝이 없었다.
대기실에 들어오자마자 눈 좀 붙이라고 말을 하고 있지만 무슨 일인지 그럴 때마다 더욱 눈에 힘을 주는 시아였다.
안 그래도 커다란 눈에 힘을 팍 주고 앉아 있으니 뭔가 좀 섬뜩하다.
“앞 신 끝나려면 1시간은 넘게 남았어.”
“알아.”
“좀 자라고.”
“됐다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권한 현석은 고개를 살며시 내저었다. 오늘따라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
‘나도 눈 감고 싶지.’
자고 싶다고!
밤새 촬영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이렇게 잠깐잠깐 주어지는 시간에 잠을 청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시아 역시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시아는 오늘 낮에 보았던 장면, 마지막으로 죽은 여자의 눈을 떠올리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 깨진 귀신들과 공기놀이를 하는 게 낫지.’
그 모습은 두 번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지금껏 여러 귀신들을 통해 끔찍한 모습을 수도 없이 봐 왔다. 하지만 그런 귀신들을 보며 두려움을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겁을 먹지 않는 이상 귀신들이 인간에게 물리적으로 해를 끼칠 수 있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왤까?’
죽은 여자의 원망 어린 눈빛을 보는 순간 이상하게 소름이 끼쳤다.
그 여자가 죽는 걸 한두 번 본 것도 아닌데.
‘오늘은 뭔가 좀 달랐어.’
그 눈빛이 마치 자신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시아는 두 번 다시 그 모습을, 그 눈빛을 보고 싶지 않았다. 가슴이 왠지 두근거리며 뭔가 날카로운 것이 콕콕 온몸을 찌르는 듯했다.
‘동정심?’
그건 아니다.
여자의 삶이 답답하고 안타깝긴 하지만 크게 마음이 쓰일 정도로 가슴 아프지는 않았다.
이미 20년 넘게 그녀의 죽음을 수도 없이 봐 왔기에… 아니, 같이 겪었거늘. 이제 와 새삼? 그런 마음은 들지 않았다.
다만 오늘 본 그녀의 마지막 눈빛. 그 눈빛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 잊히지 않았다.
‘썩을…….’
그러게 좀 잘 살지.
『대구 한 아파트에서 일가족 세 명이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생활고에 시달린 A 씨는 아내와 여섯 살 된 아들을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저런…….”
그때 대기실에 틀어져 있던 티브이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안타까운 사연이 흘러나오는 티브이로 향했다.
시아의 옆에 서 있던 매니저 현석 역시 혀를 끌끌 차며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
시아 역시 티브이에 시선을 줬다. 일가족이 죽은 지하 단칸방이 화면에 나오고 있었다. 생활고에 못 이겨 죽은 것을 여실히 알려 주는 장면이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쯧.”
“힘들면 저래도 돼?”
“어?”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던 현석은 순간 들려오는 나직한 음성에 흠칫했다.
“그럼 혼자 죽든가.”
티브이에 시선이 고정된 시아의 표정이나 말투는 무척 덤덤했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린 현석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저, 저기, 시아야.”
“그 아이는 무슨 죄야.”
“그, 그러게.”
현석은 급히 티브이를 끄고 싶었지만, 이 망할 놈의 리모컨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저 아빠라는 인간은 같이 죽기라도 했네.”
피식 웃는 시아를 보며 현석은 결국 티브이의 전선을 아예 뽑아 버렸다. 그러곤 어색한 표정으로 그녀를 돌아본다. 하지만 시아는 여전히 꺼진 티브이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시아야, 괜…….”
“시아 씨, 준비해 주세요.”
현석이 다시 말을 걸려고 할 때 마침 촬영 스태프가 대기실을 찾아왔다.
‘휴우.’
속으로 짧은 한숨을 내쉰 시아는 그제야 티브이에서 시선을 떼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별론데…….’
절로 새어 나오는 한숨을 애써 참으며 시아는 촬영장으로 향했다.
오늘 일진이 영 별로다. 귀신들과 오랫동안 함께해서 그럴까? 가끔 이렇게 진짜로 감이 확 올 때가 있었다. 뭔가 일이 꼬일 것 같은 느낌? 그런 날은 크든 작든 반드시 뭔가 일이 생겼다.
이런 날은 그냥 집에 들어가 푹 쉬는 게 좋은데.
“두 분 다 준비되셨죠?”
잘생기고 능력 좋은 젊은 사장과 비서의 로맨스를 그린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다. 특별히 어려운 신도 아니었다. 남주인공의 파트너로 파티에 참석해 그를 비서로서 살뜰히 챙기는 장면이었다.
끼이익-
‘끼익?’
입맛이 까다로운 남주인공이 먹지 못하는 음식을 비서로서 체크하는 장면을 찍던 시아는 순간 들려오는 낯선 소음에 고개를 들었다.
“꺄아악!”
“시아야!”
고개를 드는 순간 들려오는 사람들의 비명 소리.
“……!”
시아는 자신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고급 샹들리에를 보며… 아니, 그 위에 매달려 있는 한 귀신을 보며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