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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괘보는 공녀님 (1)화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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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귀신 보는 탑배우

“시아 언니, 오늘 피부 완전 촉촉해요.”

메이크업을 맡고 있는 지현이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톡 건드리기만 해도 물기가 뚝뚝 떨어질 것 같은 피부에 얼굴을 매만지는 손길이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일주일 넘게 밤새고 이런 피부를 유지하는 건 언니밖에 없을 거예요.”

“피부 숍에 그 많은 돈을 주고 관리받았는데 이 정도도 유지 못하면 거기 피부 숍 고소해야지 않냐?”

“언니도 참!”

지현은 가볍게 웃었다. 피부 숍이 너무 비싸다며 매번 안 갈려고 고집을 피우더니 이렇게 또 불만을 표한다. 몸값이 국내 연예인 중 탑이면서도 돈 쓰는 걸 그다지 즐기지 않는 그녀였다.

“그건 그렇고, 지현아.”

“네?”

“너 어릴 때 할머니 손에 컸다고 했지.”

“……? 맞아요.”

뜬금없는 시아의 물음에 지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예전 술자리에서 지나가듯 한 얘기를 새삼 왜 꺼내는 걸까?

“어릴 때 부모님이 바쁘셔서 중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할머니랑 지냈어요.”

“할머니와 마지막으로 연락한 게 언제야?”

“음… 두 달 정도 된 것 같은데요?”

“두 달?”

“네, 최근 촬영 때문에 엄청 바빴잖아요. 그러고 보니 너무 오래 연락을 못 드렸네요.”

대답을 내뱉는 지현의 얼굴에는 여전히 의아함이 가득했다.

시아가 남의 가정사에 관심을 보이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아무리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라도 결코 일정 선을 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자신이 할머니 손에 컸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도 솔직히 좀 놀라웠다.

“핸드폰은?”

“핸드폰요? 언니 핸드폰 저쪽에…….”

“내 거 말고 너.”

“제 거요? 아…….”

급히 몸을 뒤지던 지현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차에 두고 왔나 봐요.”

“갖고 와.”

“네?”

“핸드폰 갖고 오라고.”

“지금요?”

“응.”

“곧 촬영 들어가야 하는데…….”

“상관없어.”

“다, 당장 필요한 것도 아니고 핸드폰 나중에 찾아도 돼요.”

“지금 가.”

“아직 화장 마무리가…….”

“마무리는 내가 알아서 할게.”

“하지만…….”

“어서.”

정말 이상하다. 평소와 달리 단호한 시아의 모습에 조금 놀란 표정을 짓던 지현은 결국 주차장을 향해 뛰었다.

“현석 오빠.”

“응?”

시아는 지현 못지않게 궁금증이 가득한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서 있는 매니저를 조용히 불렀다.

“지현이 자리, 며칠만 대신해 줄 사람 좀 알아봐.”

“지현이 자르게?”

그녀의 갑작스러운 말에 매니저 현석의 눈이 커졌다.

“임시.”

“임시?”

“지현이 며칠 못 나올 것 같아서.”

“갑자기 무슨 말이야?”

시아는 대답 대신 이미 멀어진 지현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현의 뒤를 조용히 따르고 있는 한 할머니를 바라봤다.

아까부터 지현의 뒤에 서서 안쓰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할머니.

지현의 머리를 쓰다듬기도 하고 그녀가 웃을 때 같이 흐뭇한 미소를 짓는 모습을 보며 할머니의 정체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일주일이면 되려나?’

좀 더 마음을 추스를 시간을 줘야 할까?

“화환도 준비해 줘.”

“화환? 무슨 화환?”

“장례식에 보낼 화환.”

“뭐?”

장례식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는 매니저를 뒤로한 채 시아는 능숙한 솜씨로 화장을 마무리했다.

* * *

“할머니, 제가 화환 비싼 거 보낸 거 보셨죠?”

연예계에 이런 말이 있다.

“부조도 거하게 했어요.”

연예인 팔자나 무당 팔자나 거기서 거기라고, 둘 팔자가 아주 비슷하다는 말.

보름 동안 이어진 지방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시아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랜만에 피로도 풀 겸 혼술을 위해 냉장고에 넣어 둔 맥주 캔 하나를 꺼내 드는 순간 냉장고 문 뒤에 서 있는 할머니를 발견한 것이다.

“장례도 잘 치르고 양지바른 곳에 묻히셨잖아요.”

아… 아닌가? 납골당이 양지바른 곳이라기에는 좀 그런가?

뭐 어쨌든 장례 잘 치르고 화장까지 다 끝난 노인네가 자신을 뜬금없이 왜 찾아왔냐, 이 말이다.

속으로 짧은 한숨을 내쉰 시아는 따 놓은 맥주 캔을 입으로 가져갔다.

“용건 없으시면 가 주실래요? 저 지금 피곤한데.”

보통은 그냥 무시하는데, 4년 넘게 같이 일한 동료의 할머니다 보니 문전 박대하기가 살짝 마음에 걸렸다.

‘정말 아주 살짝.’

역시 모른 척하는 게 좋았던 게 아닐까 싶다. 피곤한 상태에서 저런 존재를 상대하는 건 정말 정신적으로 많이 지치니까.

[우리 지현이…….]

그제야 시아를 조용히 바라보고 서 있던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 당신의 삶이 그리 평탄치는 않았다는 걸 말해 주듯 손과 얼굴에 주름이 가득해 자꾸 시선이 갔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

할머니들은 다 저런가?

더할 수 없이 인자한 미소로 본인보다 훨씬 어린 여자에게 아주 정중히 고개를 숙이는 할머니를 보며 시아는 다시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문득 며칠 전 매니저인 현석에게서 들은 말이 떠올랐다.

‘장례식장에서 우는 사람이 지현이밖에 없더라.’

할머니가 남긴 재산을 두고 지현의 부모님과 다른 형제들이 싸우는 모습이 아주 가관이었다고 한다.

얼마 되지도 않는 통장 잔고와 집과 밭을 팔아 얻게 될 돈을 누가 더 많이 가져가야 하는지 싸우는 모습에 장례식을 찾아왔던 손님들도 급히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고.

‘아, 돈 아까워.’

그딴 인간들이 가져갈 줄 알았으면 부조도 안 하는 건데.

[그리고 작은 부탁 하나만 들어주겠어요?]

속으로 투덜거리던 시아는 이어지는 할머니의 말에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시아. 국내를 넘어 아시아 전역에 이름을 날리고 있는 스물다섯 살 탑배우.

열네 살에 처음 연기를 시작해 장르를 불문하고 선택하는 작품마다 대박을 터트리며 확고한 입지를 다져 왔다.

‘내가 얼굴도 예쁘고 연기도 너무 잘하니까.’

라고 당당히 말하고 싶지만.

‘저들의 덕을 전혀 안 봤다고는 할 수 없지.’

저들이 물어다 주는 정보들이 아주 유용하거든.

이시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탑배우인 그녀가 가진 특이 사항.

‘그래, 나…….’

귀신을 본다.

* * *

“지현아.”

─ 네, 언니.

영상 통화를 걸었다. 지현에게.

할머니의 죽음으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듯 며칠 사이에 얼굴 살이 쏙 빠진 지현의 모습에 시아는 속으로 작게 혀를 찼다.

“전에 말했나? 내가 사주팔자, 점괘 같은 것에 관심 많은 거.”

─ 네! 이번에 저희 할머니 돌아가신 것도 언니가 제일 먼저 맞히셨잖아요. 전 그때 언니가 자꾸 핸드폰 들고 오라고 해서 엄청 당황했거든요. 그런데 이런 일이…….

“그냥… 그날 네 운세가 좀 좋지 않길래.”

당연히 거짓말이다. 사주팔자고 점괘고 아는 거 쥐뿔도 없다.

다만 귀신을 통해 알게 된 내용을 남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말을 하려다 보니 그런 쪽에 관심이 많은 척하고 있을 뿐이었다.

“시아 너, 교회 다닌다고 하지 않았냐?”

그때 옆에 있던 현석 매니저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응, 다녀.”

아니, 다녔지.

“나 세례받은 여자야.”

한때 이 귀신 보는 눈 좀 잠재워 보려고 아주 열심히 교회에 다녔다. 세례까지 받았고 말이다.

‘세례받던 날…….’

귀신들이 주르륵 주변에 서서 축하한다며 박수를 쳐 주는 모습에 조용히 발길을 끊었다.

그 후 성당도 가고 절에도 가 봤지만 거기도 별다를 건 없었다.

“사주 보는 거랑 교회랑 뭔 상관이야.”

“그래도 그게 아니지 않…….”

“됐고.”

시아는 깊게 파고들지 말라는 듯 현석의 말을 급히 자른 뒤 다시 핸드폰에 시선을 줬다.

“아직도 할머니 집이야?”

돌아가신 할머니의 짐을 정리하기 위해 지현이 홀로 할머니 집에 남아 있었다.

다른 식구들은 바쁘다며 바로 떠났다고 한다. 집과 땅을 최대한 빨리 팔기 위해서였다.

사람을 시켜서 정리하면 되지만 지현은 그럴 수가 없었다. 할머니가 오랫동안 쓰신 소중한 물건들을 그렇게 쓰레기처럼 남의 손을 통해 버리고 싶지 않았다.

시아와 회사에 며칠 시간을 더 달라 한 그녀는 그렇게 홀로 할머니 집을 정리하고 있었다.

─ 죄송해요. 빨리 복귀해야 하는데…….

“맞아. 빨리 와. 내 얼굴 계속 다른 이들이 만지게 두지 말고.”

─ 네!

푹 쉬고 천천히 오라는 말보다 빨리 오라는 시아의 말에 지현의 목소리가 더욱 밝아졌다.

“혹시 할머니 집 동쪽에 감나무 있어?”

잠시 후 시아는 전화를 건 본론을 바로 꺼내 들었다.

─ ……!

그 말에 지현의 입이 멍하니 벌어졌다.

─ 있어요!

당연히 있겠지.

─ 동쪽인지는 모르겠지만…….

동쪽 맞아.

─ 어쨌든 있어요! 어떻게 아셨어요?

“오늘 네 운세에 동쪽 감나무에서 큰 재물을 얻는다고 나왔거든.”

─ 재, 재물요?

“밑져야 본전이니 감나무 아래 좀 파 봐.”

─ 땅을요?

“응.”

─ 아… 네…….

대답이 미적지근했다.

‘황당하겠지. 나라도 그러겠다.’

이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바로 따르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사람이라는 게 말이야.’

이런 말을 들으면 완전히 무시하기도 힘들다는 거다. ‘에이’ 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큰 재물을 얻을 수 있다는데 땅 좀 파 보는 게 뭔 대수겠냐고.’

게다가 시아가 이번에 할머니가 돌아가신 것을 예측하기도 했으니 더더욱 그녀의 말을 완전히 무시하기가 힘들 것이다.

“그럼 수고.”

─ 네, 언니.

간단히 할 말을 다 끝낸 시아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

‘이제 된 거겠지?’

어젯밤 지현의 할머니가 부탁한 게 바로 이거였다.

[감나무 밑을 파 보라고 전해 주세요.]

‘안쓰러웠나 보지.’

사업한다고 자식들은 나 몰라라, 있는 돈 없는 돈 다 갖다 쓰는 부모를 대신해 어릴 때부터 온갖 알바로 동생들 뒷바라지를 한 게 지현이다.

그런 지현이 할머니 눈에는 엄청 안쓰러워 보인 게 아닐까?

‘제법 큰돈 같던데.’

할머니가 그동안 농사지으며 번 대부분의 돈을 아끼고 아껴 감나무 밑에 묻어 두었다고 한다. 손녀의 몫으로 커다란 항아리 안에다 차곡차곡 쌓아 둔 것이다.

집이나 땅 같은 건 자신이 죽은 후 욕심 많은 자식들로 인해 지현에겐 돌아갈 몫이 전혀 없을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던 거다.

‘미리 편지도 적어 두었다고 하니.’

본인이 심장 마비로 갑작스럽게 죽을 것을 알기라도 한 걸까? 할머니는 이미 오래전에 지현이 앞으로 편지를 하나 써서 항아리 안에 넣어 두었다.

이 항아리에 있는 돈은 모두 너의 몫이니 부담 갖지 말고 오직 너를 위해서 편하게 쓰라고 말이다.

‘그 돈까지 뺏기진 않겠지.’

그 정도로 순진한 바보는 아니니까.

‘뭐, 내가 그것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는 거고.’

할머니가 전하라는 말은 다 전했으니 자신이 할 일은 다 한 거다.

“이야, 그런 운세도 볼 줄 알아? 난? 난 오늘 운세가 어때?”

지현과 통화하는 내내 옆을 서성거리던 매니저 현석이 뭔가 잔뜩 기대 어린 눈빛으로 시아를 바라봤다.

“…….”

시아는 잠시 말없이 현석을 응시했다.

“현석 오빠 운세는 모르겠고, 혜은 언니 오늘 운세는 내가 좀 알지.”

“혜은이?”

갑작스레 자신의 아내 이름이 흘러나오자 현석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언니도 재물 운이 있더라고.”

“정말?”

믿든 안 믿든 아내에게 재물 운이 있다고 하니 현석의 얼굴이 밝아졌다. 로또라도 사라고 해야 하나? 하며 히죽거렸다.

‘오빠는 오늘 재물을 잃는 운이고 말이야.’

평소 친분이 있는 혜은과 조금 전에 통화를 했던 시아다. 현석이 몰래 숨겨 둔 비상금을 찾았다며 깔깔 웃던 혜은의 목소리를 떠올리며 시아는 조금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현석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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