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447화 (447/449)

에필로그 : 앨라배마 65번 도로

“달이… 영 불길하군. 색깔이 안 좋아.”

포드 F―150 픽업트럭의 운전석에 앉은 남자가 중얼거렸다. 조수석에 앉은 사내도 보름달을 한 번 힐끔 쳐다보고 나서 고개를 끄덕인다.

“그 말을 듣고 나니 또 그렇게 보이는군… 하지만 뭐든지 생각하기 나름이니까.”

그들은 앨라배마의 65번 도로 위에서 넓은 도로의 중앙 분리 공간과 울창한 숲이 막 끝나는 도로 변의 넓은 평원을 노려보고 있었다. 비록 지금은 고요 속에 묻혀 있는 남쪽 지평선이지만, 그 평화는 언제 깨어지더라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나와서 맥주 한잔해요, 선생님. 긴장이 좀 풀릴 겁니다.”

주황색 어번 대학 로고가 새겨진 풀오버를 입은 젊은이가 픽업트럭의 창문을 가볍게 두들기며 말했다.

아무에게나 다짜고짜 이름을 부르려 드는 북동부와 달리, 앨라배마에서는 아직도 ‘Sir’라는 호칭을 즐겨 사용한다. 좀비들이 창궐해서 모든 질서가 무너진 요즘도 마찬가지다.

“그럴까?”

두 남자는 자동차에서 내려 천천히 모닥불 쪽으로 걸어갔다. 수십 명의 남자들이 근처에 모여 서서 플라스틱 컵에 맥주를 따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다. 바비큐 그릴에서는 깡통 햄과 옥수수가 익어간다.

별도의 조명은 필요 없었다. 도로 위에 몰려 있는 수십, 수백 대의 픽업트럭들이 켜둔 헤드라이트 덕분에 전방은 꽤나 먼 곳까지 훤하다.

“어서 오십쇼, 선생님.”

아이스박스 앞을 지키고 섰던 남자가 그들을 맞으며 차가운 맥주를 컵에 따라 내민다. F―150에서 내린 두 남자는 야구 모자의 챙을 슬쩍 만지며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남자들은 다들 맥주를 기울이며 모닥불의 열기를 나눠 쬐었다. 이제 밤이 깊어진 이후 새벽까지는 모닥불 없이 버티기가 힘들 만큼 냉기가 서리곤 했다.

앨라배마를 비스듬히 관통하는 65번 고속도로 네 개의 차선과 중앙 분리대용으로 설치되어 있는 중앙의 넓은 풀밭은 좀비들과 싸우기 위해 나온 근처 주민들로 가득 채워졌다.

도로 우측의 넓은 평원 역시 주민들이 타고 온 픽업트럭으로 덮여 있다.

사람들은 조그만 그룹을 이루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거나, 육군에서 지원 받은 여러 종류의 화기들을 끌어내려 설치하기 위해 바삐 움직였다. 스스로를 ‘자경단’이라 부르는 사람들이었다.

앨라배마에 주둔 중이던 국가 방위군의 주력이 애틀랜타를 방어하기 위해 주 경계선을 넘어간 이후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경단은 앨라배마를 지키는 가장 중요한 화력의 역할을 수행 중이다.

물론 65번 국도의 전선은 계속 조금씩 북쪽으로 물러나고 있다. 그리고 아직 가장 심각한 적은 만나지도 않은 상태다. 지금까지 그들이 상대해야 했던 좀비들의 대부분은 모바일이나 빌럭시에서 올라오는 놈들이었다.

앨라배마 기준에서는 도시라고 부를 수 있는 수준의 인구들이었지만, 동부나 서부의 연안 도시에 비하면 작은 마을 정도나 되는 수다. 당연히 좀비들의 웨이브도 그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아서 여럿이 힘을 모아 열심히 쏜다면, 그럭저럭 막아낼 만은 했다.

하지만 제일 강력한 적들은 아직 이곳에 오지 않았다. 펜사콜라로부터 시작된 초거대 규모 좀비들의 행렬은 서쪽으로 루이지애나, 동쪽으로 템파까지 번져 나갔고, 북쪽으로는 65번 고속도로를 따라 거의 150마일 이상을 전진하는 중이라고 했다.

앨라배마의 자경대가 지금껏 한 번도 마주쳐보지 않은 엄청난 놈들이다.

소문에 의하면… 보는 것만으로 전의가 꺾이고, 그 상태로 머뭇거리다가는 전멸을 면치 못하게 된다고 한다. 그만큼 엄청난 위세의 웨이브라는 것이다.

지난 닷새 동안 자경대는 입술이 바짝 마른 상태에서 놈들을 기다렸다. 함께 대기하고 있는 선봉의 주 방위군 역시 두렵기는 마찬가지인 것처럼 보였다.

조지아 쪽에서 간간이 밀려오는 좀비도 막아내야 하기에 주 방위군의 병력과 화력은 3분의 1로 나뉜 채 배치되어야 한다. 전력을 다해도 막아낼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는데!

“전투기는 오늘도 오지 않는군. 탱크도 마찬가지고… 아무리 대도시 위주라고 해도 이건 좀 너무한 거 아닌가? 본격적인 지원이 제로야.”

남자들은 검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원망스럽게 중얼거렸다. 아마추어 무선을 통해 전해 들은 말에 따르면, 몇몇 대도시에서는 전투기 미사일을 날려 다리를 끊거나 해서 좀비들의 이동을 차단한다는데, 이곳에서는 그런 폭음 비슷한 것도 들어보지 못했다.

매년 터너 필드에서 브레이브스 시즌 개막 경기를 할 때에 상공을 날아가던 초음속 전투기들은 다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

탱크도 마찬가지다. 국가 방위군이 모는 탱크가 85번 고속도로를 타고 애틀랜타를 향해 전진한 이후, 그들은 탱크를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다.

도로변에 서 있는 네 대의 스트라이커 전투 차량 정도가 현재 이곳 65번 고속도로에서 구경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화력의 병기다. 고작 네 대라니 초라하게만 느껴지지만, 도로의 폭 때문에 어차피 그보다 더 많이 투입되기도 어렵다.

“그 소문이 맞는 것일지도 모르겠어. 이렇게까지나 아무런 지원이 없는 걸 보면 말이야.”

헌팅캡을 쓴 사내가 바비큐 그릴 위에 올려진 사슴 고기 스테이크를 뒤집으며 말했다. 소와 돼지, 닭의 공급이 끊긴 요즘, 사슴은 드물게 만나볼 수 있는 신선한 육류였다.

지금 맛있게 구워지고 있는 이놈은 그가 어제 카토마 강 유역까지 숲속을 거슬러 올라가 잡아왔다.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이런 상황에서는 매끼니 맛있는 것을 먹고 싶은 욕망이 더 강해진다.

“무슨 소문?”

담배를 피우고 있던 그의 친구들이 묻는다. 헌팅캡은 목소리를 은밀하게 내며 대답했다.

“태평양 위에 있던 우리 군대 대부분이 호주로 이동해서 거길 점령했다는 그 소문. 들어본 적 없나?”

“아, 그거… 맞아. 그런 이야기가 돌더군. 처음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몇 번 듣다 보니 그게 또 이치에 닿는 것 같기도 하고…….”

한 친구가 대답했다. 미국이 자랑하던 태평양 함대의 대부분이 좀비로 ‘오염’이 덜 된 호주를 점령하기 위한 긴 전투에 들어갔다는 말이 사실일지도 모르겠다고,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었다.

위이이잉―

경비행기가 정찰을 위해 남쪽 하늘 너머로 사라진다. 원래는 농작물에 농약을 살포하던 비행기지만, 이제 그들 자경단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장비가 되었다.

“전투기가 도통 보이지 않는 걸 보면 맞을 거야. 이래서 북부 양키 게이 놈들은 믿을 수가 없다는 거야. 세상이 조용할 때는 이래라저래라 온갖 골치 아픈 개소리들을 늘어놓더니, 정작 애국자가 필요한 시기가 되니 이제는 아예 다른 나라로 도망쳐 버렸지.”

두툼한 격자무늬 셔츠를 입은 사내가 징그럽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항상 간섭하고 귀찮게 해온 정부에 대한 그들의 불신은 흔히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깊고 역사적 뿌리도 길다.

“어쩌면 잘된 일일 수도 있지. 이걸로 남부가 다시 온전히 남부 사람들의 결정 아래 놓였으니까.”

픽업트럭 조수석 창문에 비스듬히 걸린 채 나부끼는 앨라배마 주정부기를 바라보며 헌팅캡이 중얼거렸다. 흰 깃발의 네 귀퉁이 끝까지 닿아 있는 크림슨의 대각선 십자가가 언제 봐도 지극히 남부적이다.

“함께 기도하실 분들은 앞쪽으로 모여주세요. 거기 평원에 계신 신사, 숙녀분들도 오십쇼. 짧게라도 함께 기도하려고 합니다.”

젊은 남자들이 차량들 사이를 오가며 기도 모임이 있을 것임을 알렸다. 신실한 종교 활동과 신사적인 매너는 남부인들을 지탱하는 아주 중요한 두 가지 삶의 원칙이다.

덕분에 그들은 앨라배마의 주도인 몽고메리에서 포르노와 에로틱 케이블 채널을 차단해 낼 수 있었고, 순진한 어린 영혼들을 섹스 산업의 악마들로부터 지켜내 왔다.

대낮에도 5분만 차를 몰고 나가면 스트립 바를 찾을 수 있을 만큼 타락한 대도시와는 다르다.

“저 어린 신사분들은 ‘저놈들’과 기도회까지도 함께할 셈인가? 완전히 미쳤군.”

갈색 머리의 3분의 1가량이 흰색으로 덮인 중년 남자가 지긋지긋하다는 투로 중얼거렸다. 그 옆에 함께 와 있는 여자들도 조그맣게 쑥덕거리며 미간을 찌푸린다. 그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저놈들’ 쪽으로 향했다.

도로변 왼쪽의 평원, 한 무리의 무장한 흑인들이 평원 남쪽의 숲을 노려보고 있다. 흑인들의 규모는 대략 백인들의 절반. 하지만 그들에게 허락되어 있는 공간은 왼쪽의 평원과 그곳으로 진입하기 위한 갓길 한 차선뿐이다.

픽업트럭으로 덮인 백인 구역과 달리 흑인 구역은 비교적 저렴한 현대와 기아 자동차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그 정도 차량도 구하지 못한 이들은 버스를 차출해서 단체로 이동해 왔다.

아무도 공식적으로 거기에 경계선이 있다거나 그 선을 넘어서는 안 된다고 선언한 바는 없지만, 갓길을 기준으로 오른쪽의 대부분 영역은 백인들이, 그 왼쪽에는 흑인들이 있다. 선을 넘어가려는 시도도 없고, 그것을 불편하게 여기는 감정도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

메뉴와 가격에 따라 두 인종이 가는 식당마저 확연히 다른 앨라배마에서는 그 정도 경계가 오히려 편안하고 자연스럽다. 학교에서 두 인종을 한 교실에 두기 시작한 것도 불과 반세기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마저도 연방정부군이 개입해서 강압적으로 시행했던 일이다.

주도인 몽고메리가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백인들은 흑인들과 엮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이 좀비에 못지않게 두려워하고 혐오하는 것은, 자동화기로 무장한 흑인들이 백인 거주 지역으로 들어와 활보하는 일이다.

그런데 젊은 급진주의자들이 신성한 기도 시간의 평화마저 훼손하려 들고 있다. 흑인의 손을 맞잡은 채 기도를 한다니…….

“여기 이 유콘 트럭 누구 소유입니까? 이렇게 도로 중앙을 막으시면 안 됩니다. 이렇게 하시면 다른 분들의 퇴로가 막힙니다. 후방으로 이동하십쇼. 당장!”

주 방위군 병사가 다가와 명령한다. 그들조차도 흑인 그룹에는 유색인종 병사를, 백인 그룹에는 백인 병사를 보내 통제를 하고 전투교육을 하면서 이 인종 분리 문화에 암묵적인 동조하고 있었다.

그런 것에 일일이 대응하면서 에너지를 소모하기에는 지금 몰려오는 시체들의 군단이 너무 강력하고 많다.

“차라리 빨리 좀비들이 왔으면 좋겠군… 매일 느끼는 거지만, 이렇게 한가할 때가 제일 견디기 어려워. 미친 인종차별주의자 놈들이 꼭 무슨 사고를 칠 것 같거든.”

주 방위군 병사들이 땀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내부 교전에 대비해서 그들은 언제나 뒤쪽에 배치되었다. 물론 좀비들이 몰려오는 가운데 그런 비극이 일어나면 다 죽는 거다.

그렇게 원래는 존재하지 않아도 되는 긴장감이 65번 국도를 가득 메우고 있을 때, 정찰을 나갔던 경비행기가 날개를 위아래로 흔들며 돌아왔다. 좀비가 온다는 신호다.

“온다! 와!”

자경단원들은 재빨리 자신들의 위치로 돌아가 무기를 장전하고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를 켰다. 그러고는 남쪽 지평선을 노려보며 기다렸다. 오늘 따라 유난히 더 오랫동안 흔들렸던 경비행기의 날개가 마음 한구석을 찜찜하게 만든다.

그으으으으으아아아아아―

아주 작지만, 분명하게 들려오는 포효 소리.

수없이 많은 좀비들이 한데 뭉쳐 있다는 걸 누구라도 알 수 있을 만한 소리였다.

“저… 저기… 저거 뭐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끝이 나 있는 울창한 숲을 가리키며 누군가 말했다. 몇몇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한다. 그런 후, 웅성거림은 더욱 커졌다.

숲이… 숲이 빛나고 있다. 밝은 녹색의 발광체가 나뭇잎들을 흔들며 이쪽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는 중이다.

“라이트! 라이트를 꺼봐! 잠깐!”

주 방위군이 명령했다. 스트라이커 장갑차량을 비롯한 수십 대의 픽업트럭들이 차례로 라이트를 끄자, 그들을 덮쳐 오는 것이 무엇인지 보다 명확해졌다. 지평선 전체가 희미한 녹색 빛으로 뿌옇게 밝혀져 있다.

“신이여, 도와주세요…….”

사냥용 소총의 스코프로 전방을 노려보고 있던 백인 남자가 나직하게 중얼거린 뒤 성호를 그었다. 온몸이 네온사인처럼 밝은 녹색으로 빛나는 좀비들이 도로 위를 맹렬한 속도로 뛰어오고 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현상이지만, 그게 무엇인지는 안다. 무선 통신을 통해서 다른 지역 사람들로부터 전해 들은 적이 있다.

방사능 좀비들… 원자력발전소의 내부에 들어가 온갖 방사능에 피폭된 놈들…….

뒤집어쓰고 있는 라듐 때문에 놈들의 몸은 한밤중에도 환한 녹색 빛을 내며 빛난다. 뼈에 구멍이 뚫리고 살이 녹아내리면서도, 지금까지 보았던 좀비들보다 더 빠르게 움직이는 괴물들…….

게다가 놈들의 몸뚱이는… 시체가 된 뒤에까지도 그 자체로 강력한 방사능 무기다. 아무도 섣불리 다가갈 수 없는데, 그냥 방치하면 지역 전체를 죽음의 땅으로 만들 것이다.

공기감염이 이뤄진다는 이유로 방치되어 잔존하던 펜사콜라의 수많은 좀비들은 원자력발전소로 진군했고, 그것을 미리 막아내지 못한 대가는 너무도 뼈아프게 오랫동안 지속되어 오고 있다.

군인들이 잔뜩 몰려 살고 있던 사우스 캐롤라이나도, 노스 캐롤라이나도, 원자력발전소를 제대로 지키지 못한 지역은 모두 저 방사능 좀비들 때문에 무너졌다.

방사능 좀비가 다른 좀비 무리들과 만나면, 며칠 지나지 않아 다른 놈들 역시 미약하게나마 방사능에 피폭된 좀비들로 변질된다.

“망했군…….”

머나먼 지평선이 야광 좀비들에 의해 덮인 것을 보며 군인들과 자경단원들은 일제히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돌진해 오는 놈들을 저지하기 위한 노력을 포기할 수는 없다.

방사능 피폭의 대피 반경인 20마일. 여기에서 놈들을 모두 쓰러뜨리면 최소한 당분간이라도 몽고메리는 현 상태로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저 방사능 덩어리 좀비들이 사정거리 내로 들어올 때까지 가만히 기다려야 한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에 모두의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오늘 이 전투에서 뒤집어쓰게 될 각종 방사능의 양은 얼마나 되는 걸까… 그리고 그게 어떤 부작용을 몸에 가져오는 걸까…….

끼이이이잉―

Mk19 40㎜ 그레네이드 런처를 장착한 스트라이커 장갑차들이 가장 먼저 움직였다. 도로변에 세워져 있던 네 대의 스트라이커가 빠르게 도로 위로 올라와 좀비들을 향해 달려간다.

그러고는 좀비들의 선두가 최대 사정거리인 2,400야드 내에 들어왔을 때, 리모콘으로 조작되는 Mk19가 분당 60발의 속도로 40㎜ 고폭탄을 쏴대기 시작했다.

쾅쾅쾅쾅쾅― 쾅쾅쾅쾅쾅― 쾅쾅쾅쾅쾅―

빠르게 날아간 고폭탄은 좀비들의 머리 위에서 폭발하며 무수한 파편을 만들어냈다. 폭발에 휘말리고 파편에 직격당한 좀비들의 찢겨 나간 팔다리와 머리가 녹색의 작은 발광 물질 덩어리가 되어 사방으로 날린다. 수십 년 이상을 자라온 울창한 전나무들도 엉망으로 부서지고 꺾여 쓰러졌다.

하지만… 전나무들을 든든한 방패로 삼은 좀비들은 흩날리는 전나무 잎 사이로 조금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빠르게 돌진해 왔다.

보통의 좀비들이 장거리 육상선수처럼 뛴다고 하면, 방사능 좀비들은 100미터 달리기의 스프린터들처럼 휙휙 거리를 줄인다.

쾅쾅쾅쾅쾅― 쾅쾅쾅―

드르르르륵― 드르르르르륵―

스트라이커 장갑차들은 후진으로 거리를 유지하면서 Mk19와 M240 기관총을 쉬지 않고 난사했다. 넓은 도로와 중앙의 분리 공간이 녹색으로 빛나는 시체들로 온통 뒤덮인 뒤에도 좀비들의 웨이브는 끝없이 이어졌으며, 양쪽 숲을 통해 달려오는 놈들의 기세는 좀처럼 꺾이지 않았다.

“역시 저놈의 숲이 문제였어…….”

자경단원들은 빽빽하게 자라나 있는 전나무 숲을 원망스러운 눈으로 노려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모두 깨끗이 불태워 버리고 싶었지만, 그런 짓을 벌였다가는 들불이 번지는 걸 감당 못하고 타 죽을 게 빤해서 그냥 방치할 수밖에 없었다.

위이이이잉―

강력한 화력을 자랑하던 스트라이커 장갑차들은 좀비들을 전멸시키지 못하고 결국 자경단이 구축해 놓은 사선까지 물러났다.

그리고 약 1분이 지난 뒤, 좀비들이 반 마일 내로 접근했을 때, 자경단원들의 각종 개인화기도 일제히 불을 뿜었다.

타타탕― 탕― 피이잉― 피이잉― 타탕― 투투투둑― 투투투―

백인에게서 발사된 총알도, 흑인에게서 발사된 총알도 모두 좀비들을 향해 날아간다. 그리고 그중의 몇 발은 방사능 좀비의 녹아내리는 살과 뼈를 꿰뚫고 들어가 뇌를 터뜨렸다.

콰쾅― 콰콰앙―!

숲이 끝나는 지점에 위험 표시와 함께 설치해 둔 지뢰를 좀비들이 화끈하게 짓밟았다. 지뢰가 폭발하면서 산산조각 난 좀비들의 몸뚱이가 높이 치솟아 올랐다가 바닥에 흩뿌려졌다.

그 발광하는 녹색의 파편을 보고 있으면…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지고, 눈동자가 아파오는 느낌이 든다.

대체 얼마나 많은 양의 방사능이 저놈들로부터 뿜어져 나오고 있는 걸까? 놈들이 800야드 이내로 접근해 있는 이런 상태에서 대치를 오래 끌다가 혹시 피를 쏟으며 죽게 되는 것은 아닐까?

아가리를 쫙 벌린 채 눈앞에 몰려오는 좀비들만큼이나 보이지 않는 방사능의 공포는 사람들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했다.

당연히 총구는 흔들리고 가뜩이나 낮았던 명중률은 더 급격하게 떨어졌다. 그렇게 되면 좀비들은 훌쩍 거리를 줄이고, 사람들의 공포는 더욱 커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런데도 지평선에는 아직 좀비 웨이브의 꼬리가 드러나지도 않은 상태. 이제 이 전선으로 저지한다는 건 불가능해졌다.

“버스! 버스! 도로로!”

주 방위군 장교가 무전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겉에 철조망을 두른 버스들이 평원의 후방에서 빠져나와 도로 쪽으로 이동했으며, 그것에 맞춰 병사들은 자경단원들 사이를 돌며 외쳤다.

“사격 중지! 사격 중지! 후퇴!”

철조망 버스들이 도로를 가로막은 채 좀비들의 공격을 받아내는 동안 사격을 중단한 자경단원들이 빠져나가는 방식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트라이커에서 고폭탄을 발사해 버스 안에 가득 채워져 있던 인화물질을 폭파시켰다.

이미 수십 마일 이상을 거슬러 올라오며 두 달 가까이 전투를 벌이는 동안 여러 번이나 해본 일이라 자경단원들에게도 익숙한 일이었다.

거기에 버스 운전하는 병사의 탈출을 돕는 장갑차만 있으면 꽤나 효율적이기도 했다. 지금까지는….

하나 지금까지 그들이 상대했던 좀비와 오늘 밤 맞이하게 된 방사능 좀비는 스피드와 힘이 달랐다. 물론 어차피 인간의 골격을 가지고 있는 좀비라서 10퍼센트 정도의 우월성을 보일 뿐이었지만, 그 10퍼센트라는 차이가 무시하기에는 너무 커다란 수치였다.

그롸아아아아― 그와아아아―

철조망 버스에 매달린 좀비들이 발작하는 것 같은 움직임을 보이며 버스를 앞뒤로 밀고 흔든다. 쿵쿵거리며 한쪽 바퀴가 들릴 때마다 버스는 금방이라도 쓰러져 버릴 것 같다.

“으으아! 으아!”

생각했던 것보다 좀비들이 빠르게 버스에 접근하고 흔들어 대는 걸 보며, 자경단원들은 공포에 질려 달아났다. 그들은 자신의 차량으로 돌아가 시동을 걸었다.

순서를 지켜 뒤쪽에 세워진 차들부터 빠져나가면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 막상 마음이 급해지니 그 짧은 순간 동안의 양보도 결코 쉽지 않다.

빠앙― 빠앙―

서로 코를 박은 픽업트럭들은 상대방을 향해 경적을 울려 대며 물러나라고 위협을 했다. 조금 전까지 기세 좋게 맥주를 나눠 마시던 여유 같은 건 이미 자취를 감춘 지 오래다.

드르르르륵― 드르르륵―

탕탕탕탕탕―

그러는 동안에도 스트라이커 장갑차들은 자경단원이 달아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어떻게든 기관총을 난사하며 버티고 있다.

아직 희망이 끝난 것은 아니다. 20마일 정도 빠르게 북상해서 다시 전선을 꾸미기만 한다면…….

쿠웅! 쿵―!

백인들의 트럭과 흑인들의 버스가 서로 먼저 빠져나가기 위해 정면으로 맞서면서 문제는 더 심각해졌다. 사실은 별것도 아닌 사소한 일이지만, 그동안 쌓여온 감정의 앙금들은 그들로 하여금 서로 총을 겨눈 채 위협을 하도록 만들었다.

결국은 주 방위군 병사들도 가세해서 이 사태를 진정시켜 보려 한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제일 먼저 버스 바리게이트 사이를 통과한 좀비들은 아직 빠져나가지 못한 사람들을 덮쳤다.

“으아아악! 끄아아아!”

피가 튀고 비명이 고막을 찌르자 사람들의 눈빛은 더욱더 강하게 광기에 사로잡혔다. 게다가 좀비에게 덮쳐지며 당겨진 방아쇠는 방향을 가리지 않고 총알을 날렸다.

투투투투투― 투투투투―

뒤쪽의 픽업트럭과 승용차 유리에 피가 가득 튄다.

와장창―!

끼이이익―!

앞쪽에선 좀 더 빨리 달아나려던 차량들끼리 서로 부딪치며 요란한 브레이크 소리를 냈다.

콰콰쾅―! 콰쾅―!

바리게이트용 버스에 채워져 있던 인화물질이 고막을 흔드는 굉음과 함께 요란한 불꽃을 만들었다.

방사능 좀비의 살과 뼛조각이 픽업트럭의 화물칸에 투투둑― 떨어져 내린다.

“차를 버리고 앞쪽의 버스로 옮겨요! 이대로는 다 못 빠져나갑니다! 빨리요!”

주 방위군 병사들은 트럭 사이를 돌며 그들을 버스에 옮겨 타도록 했다. 지금의 이 혼란은 불과 수백에 불과한 사람들이 끝까지 차를 버리지 않으려 들어서 일어난 것이었다.

그냥 조금 좁게 끼어서 불과 10여 분만 빠져나가면 되는데…….

하지만 그런 결단도 이미 늦었다. 차량에서 내린 사람들의 머리 위로 네온처럼 발광하는 좀비들이 확확 덮쳐들었다.

투투― 투투투― 투투투―

이미 전선의 내부로까지 침투해서 트럭 사이를 내달리는 좀비들을 향해 병사들의 사격이 쏟아졌다.

빠른 탈출과 대피가 무산된 지금, 전투는 근접 대치의 형태로 바뀌었고, 헤드라이트의 불빛이 어지럽게 교차되는 가운데 좀비와 인간이 서로를 죽여 대고 있다.

그롸아아아아―

온몸이 녹아내리고 불이 붙었어도 좀비는 오로지 사람의 피를 갈구하며 돌진해 온다. 바로 앞에 적을 둔 채로 옆의 동료를 증오하는 인간들이 그 일관된 집요함을 당해낼 수 있을 리가 없다.

“윽!”

서행하는 픽업트럭의 짐칸에 서서 좀비들을 향해 난사하던 병사 하나가 소매로 코를 훔쳤다. 얻어맞지도 않았는데 그의 코에서는 검붉은 코피가 흘러나온다.

‘방사능 때문일까?’

병사는 두려움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다시 탄창을 갈아 끼우고 열심히 방아쇠를 당겼다.

“하아아~! 하아아!”

그를 태운 트럭은 겨우 정체를 빠져나와 65번 도로를 빠르게 내달렸다. 트럭의 짐칸에 기대앉은 병사는 네온 좀비와 인간이 한데 뒤엉킨 참극을 얼빠진 얼굴로 바라보았다.

이제 몇 시간 후면 몽고메리라는 도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전에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을 더 멀리까지 대피시키는 것 정도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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