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444화 (444/449)

에필로그 : 충주의 가을 (1)

“형.”

규영이 부른다.

“…응. 왜? 화장실?”

신입은 힘없이 대답했다. 고개를 돌릴 기운도 없다.

“아니… 그냥, 벌써 잠들었나 궁금해서 불러봤어요.”

“참내, 새끼, 싱겁기는… 무섭냐? 끄으응~”

신입은 잘 올라가지 않는 팔을 억지로 뻗어서 옆자리에 누운 규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겨우 플래시 불빛 정도만 희미하게 비치는 어두운 실내. 딱딱한 바닥에 박스를 깔고 그 위에 담요만 덮은 잠자리가 편안할 리가 없다. 당연히 마음도 불안할 거다.

“후우~ 좀 이상해요. 아무래도 너무 늦는 것 같아요. 이렇게 오래 걸리나요?”

규영이 또 한숨을 내쉬며 걱정을 시작한다. 신입은 애써 밝은 목소리를 꾸며서 대답했다.

“야, 새끼야. 걱정 말라고 몇 번 이야기하냐. 여기까지 꽤 멀어. 그리고 앞에 사람들이 막혀 있으면 앞질러서 뛰어올 수도 없잖아. 그냥 순서대로 오는 거니까…….”

“그럴까요?”

“그렇다니까. 그렇게 걱정하지 말라고. 아마 내일쯤은 거지꼴을 하고서 나타날 것 같아. 내 예감이 맞아. 내가 씨발, 촉이 존나 좋거든. 가진 능력이라고는 그거 하나다.”

신입은 목소리를 낮춰서 속삭였다. 근처의 다른 사람들 잠을 깨우지 않으려면 가능한 목소리를 낮춰야 한다. 다들 불안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런 사소한 일에 민감하다.

사흘 전에는 별것도 아닌 이유로 시비가 붙어서 멱살잡이를 당한 적도 있다. 물론 신입은 빠르게 사과했고, 일을 좋게 마무리했다.

“하아~ 네. 그러면 좋겠지만… 근데 형은 어제도 내일은 올 거라고 했었잖아요.”

규영이 또 걱정스레 중얼거린다. 신입은 실없이 웃으며 녀석을 달랬다.

“흐흐, 그거야 하루 이틀 정도는 좀 빗나갈 수도 있는 거지. 새끼… 내일은 진짜야. 꼭 와.”

“이런 말 하면 안 되는 거 아는데요… 후우우~ 혹시 무슨 일이 생기거나 그러지는 않았겠죠?”

“안 그런다니까. 그럴 일이 없어. 야, 생각해 봐. 그 새끼들이 보통 독한 것들이냐? 씨발, 좀비를 완전히 씨를 말리고 다녔잖아. 그리고 그 인상 더러운 칼잡이도 싸움 쩔게 하더구만. 나는 보안관이랑 다이다이 뜨는 새끼는 또 처음 봤네. 거기다가 진우 같이 갔지. 너 진우 총 쏘는 거 어떤지 알지? 그런데 걱정할 게 뭐 있냐? 그러니까 마음 푹 놓고 어서 자. 내일 온다고. 이 밤만 푹 자고 나면 내일.”

신입은 가물거리는 눈을 비비며 규영을 달래주고, 녀석의 어깨를 두드렸다.

“…네, 그래 볼게요.”

규영은 맥없이 중얼거리고, 몇 번이나 무겁게 한숨을 내쉰다. 녀석의 숨소리가 떨리고 흐느끼는 것처럼 느껴진다.

“야, 새끼야. 울지 마. 걱정할 일 없다는데 왜 그래?”

“흑! 후우우~ 안 울었다고요. 후우우~”

규영은 고개를 모로 돌린 채 눈물을 닦는다. 밤이 찾아와서 어둠이 덮치면 모든 것이 너무도 두려워진다. 수정이 누나라도 함께 있어주면 좀 나은데, 당분간은 남녀 숙소를 별도의 층으로 나눠 운영하기 때문에 그것도 여의치 않다.

그렇게 거의 20분가량을 훌쩍거린 뒤에야 규영은 겨우 쌕쌕 숨소리를 내며 잠이 들었다. 이따금씩 이를 악물고 뭐라 잠꼬대를 중얼거리는 걸 보면 분명히 꿈속에서도 그리 편안한 상태는 아닌 모양이다.

“아아, 젠장… 개새끼들, 진짜… 왜 이렇게 사람 속 썩여. 빨랑빨랑 좀 오지.”

규영이 잠들고 난 뒤, 신입은 몰래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도대체 한 달이 다 되어가도록 뭘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규영이 말대로 뭔가 이상하기는 이상하다. 이제는 가장 늦게 출발한 후발대들도 속속 도착하고 있는 분위기인데…….

강 소위의 배려로 규영과 신입, 임수정은 장갑차 전투병 탑승 구역에 타서 속행 차로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다.

그게 건대 수백의 사람들을 구하고 나서, 또 수천의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 태양 그룹 빌딩에 뛰어든 영웅들의 동료를 위해 강 소위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였었다.

덕분에 그들은 남들처럼 고생하지 않고 300킬로미터가 넘는 철로 이동을 단 하루 만에 끝마치는 게 가능했다. 서울에서 대전까지, 그리고 대전에서 간선철도를 따라 다시 충주까지.

도보로 이동하는 사람들에게는 힘겹고 위험한 긴 여정이었다. 만약 그들도 다른 이들처럼 도보로 이동해야 했다면, 규영이에게는 정말로 잔혹한 날들이었을 것이다.

말이 좋아 300킬로미터지, 이글거리는 태양의 열기를 그대로 받으며 뜨겁게 달궈진 선로 위를 걷는 건 생각만 해도 진저리가 날 만큼 고통스러운 일이다.

한 시간에 3킬로미터를 전진하기도 어렵고, 가끔씩 앞쪽에서 좀비 무리들과 전투라도 벌어지면 몇 시간이고 그 자리에 서서 불안에 떨며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빨리 도착하는 것이 대단히 좋은 일은 또 아니었다. 다른 민간인들보다 일찍 온 선발대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전에 다시 새로운 임무를 부여 받았다.

군 병력들이 충주 시내의 좀비들을 소탕하고 필요한 물자를 조달해 오는 동안 임시 거처를 청소하고 살림을 담당하는 일이다.

지금 임시 거처로 사용하고 있는 충주 터미널은 내부에 할인마트와 쇼핑몰까지 함께 입주해 있을 만큼 이 부근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크고 넓은 건물이다. 그만큼 청소하기가 어렵다는 말도 된다.

신입도 그 노역에서 열외일 수는 없었다. 오전부터 하루 종일 힘들게 일을 하고 밤을 맞으면, 온몸이 노곤해서 쓰러질 것만 같다. 그런데 막상 또 자려고 누우면, 그때부터 걱정이 시작되어 새벽녘이 환하게 밝아올 무렵에야 겨우 눈을 붙인다.

‘씨발, 진짜 무슨 일이 있는 거 아니야?’

신입은 그런 생각을 하며 울상을 지었다. 처음 이곳에 도착해서 열흘 정도는 불안해하면서도 그래도 잘 버텼다. 어차피 녀석들이 사람들을 구해내고 그다음 날 출발한다고 해도 도보로 그 정도의 기간은 걸린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 열흘이 지난 뒤에도 녀석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강 소위와 고 하사에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고 싶지만, 그들을 만나기가 어렵다. 다들 어딘가에서 바쁘게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보안관, 삼식이, 진우, 유빈이, 혜주, 제니… 녀석들이 구해낸 사람들까지도 속속 도착하는 마당에, 왜 그 장본인들만 코빼기도 내비치지 않는 걸까. 그 얼굴들을 다시 보지 못하게 될까 봐 무섭다.

그 녀석들의 도움 없이 오로지 혼자만의 힘으로 이 가혹한 세상을 살아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면 숨이 가빠지고 땀이 뻘뻘 흐른다. 특히… 규영이가 걱정된다.

신입은 누군가를 돌보는 스타일의 인간이 아니었다. 그러니 지금 제 한 몸 돌보는 것도 어지간히 힘에 부친다. 하지만… 만약에 그 새끼들이 다 어떻게 되어버렸다면… 그때는 규영을 챙길 수 있는 게 신입 자신밖에 없다.

“어후~ 아니야! 씨발, 그딴 재수 없는 생각 그만하고 자라고! 내일 온다!”

망상과 걱정 속에서 몸부림치던 신입은 자신도 모르게 큰 목소리로 혼잣말을 내뱉었다. 아니나 다를까, 두 자리 건너 누워 있던 덩치 큰 아저씨가 몸을 일으키며 버럭 성질을 낸다.

“야이 새끼야! 조용히 좀 처자라고! 너 땜에 깼잖아! 한 번 뒈지게 맞아야 말을 들을래?”

“아,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잠꼬대였어요.”

신입은 황급히 사죄를 하고 몸을 움츠리며 규영이 쪽으로 돌아누웠다. 치사한 이야기지만, 이럴 것 같았으면 친구 놈들이 태양으로 쳐들어간다고 했을 때 말릴 걸 그랬다.

테라가 아무리 예쁘고 가치 있는 면역자라고 해도 내 생명보다 소중하지는 않은 거니까…….

눈을 감으면 코스트코 옥상이 저절로 그려진다.

수영복을 입은 제니와 태권소녀, 아무리 마셔도 동이 날 것 같지 않던 고급 샴페인 박스들, 그리고 조금 때가 떠 있기는 해도 시원하게 더위를 식혀주던 물놀이 풀. 마음대로 골라먹을 수 있었던 통조림과 먹거리들…….

그 좋았던 날들을 실제로 누렸던 건 며칠 되지도 않는다. 그렇게 좋고 아늑한 집이 있었는데, 대체 뭐한다고 그 먼 길을 떠나서 온갖 고생을 다했단 말인가…….

그렇게 많은 걸 포기하고 사람들을 구했는데, 옆자리의 저 뚱보 아저씨 새끼는 개뿔 고마운 줄도 모르고 툭하면 겁이나 주고 앉아 있다. 분하다…….

이후에도 신입은 몇 차례나 뒤척이고 괴로워하다가 겨우 잠이 들었다. 그리고 꿈을 꾸기도 전에 기상 시간이 그를 찾아왔다.

“아아, 젠장. 존나 피곤하네.”

다시 아침이 밝았을 때, 신입은 오만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이제 또 맛대가리 없는 식사를 먹고 나서 하루 종일 뼈 빠지게 일을 해야 하는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이곳으로 옮겨온 후, 군인들은 뭐든지 아꼈다. 겨울을 넘길 수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마트 안에 그득그득 음식이 쌓여 있는데도 겨우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양만을 배급하고, 민간인들이 식량에 접근하는 걸 철저히 통제한다.

“햄 먹고 싶다… 통조림에 든 햄 숟가락으로 푹푹 떠서 먹고, 와인으로 입가심 싹 했으면 좋겠다.”

규영이와 마주 앉아 물에 불린 시리얼을 씹으면서 신입이 중얼거렸다. 규영이도 음식 투정에 동참했다.

“저는… 초콜릿 바랑 캔 커피 먹고 싶어요. 과일 통조림하고.”

“음, 그래. 그것도 좋겠네… 복숭아 통조림.”

그래봐야 입안에서 씹히고 있는 것은 시리얼뿐이다. 신입은 한숨을 내쉬었다.

“규영아, 이거 먹어. 어젯밤에 배급 나온 간식인데, 나는 이거 안 먹거든. 달아서.”

임수정이 다가와 조그만 과일 주스 팩을 내민다. 규영이는 민망해서 머리를 긁적이며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어후, 누나. 자꾸 이러면 안 돼요. 누나도 먹어야죠. 어차피 여기서 주는 거 다 마찬가지인데.”

“아니야. 후후후, 그러지 말고 얼른 마셔. 너 주려고 밤새도록 꼭 가지고 있었던 거잖니.”

임수정은 규영의 머리를 쓸어준다. 세 사람이 함께 얼굴을 마주 보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때는 세 번의 식사 시간 정도가 전부다.

“누나, 혹시 고 하사 아저씨 봤어요?”

규영이 빨대로 주스를 마시며 물었다. 임수정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요즘 통 못 만났어. 왜?”

“뭐… 누나들이랑 형아들, 왜 안 오는지 그게 너무 궁금해서 물어보려고요.”

“그래… 혹시 만나게 되면 나라도 꼭 물어볼게.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 이제 금방 오겠지, 올 거야.”

임수정은 규영을 위로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강 소위와 고 하사라고 해서 별다른 정보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들 역시 조직의 하위에 속해서 매일 정신없는 격무에 시달리고 있으니까.

“다녀올게. 쉬고 있어.”

규영이가 화장실을 다녀오도록 도와준 뒤, 신입은 내키지 않는 걸음을 억지로 옮겨서 1층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거기에는 이미 오늘의 작업 내용을 지시 받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서 있었다. 반대편에서는 여자들이 똑같이 모여서서 작업을 지시 받는 중이다.

“여기 이 두 줄! 에… 물 길어 오는 조입니다. 뒤쪽으로 가시면 빈 생수통 있습니다. 그거 두 개씩 들고 정문 앞에 인솔하는 병사들 따라서 이동하십쇼!”

앞에서는 병사들이 줄을 따라 사람들을 나누고, 오늘 해야 할 일을 배정해 준다.

외부로 나가는 일은 무섭다. 병사들이 호위를 해준다고는 해도 감자나 시든 야채 따위를 캐다가 좀비들을 만나게 될까 봐 늘 조마조마하다.

“여기 한 줄!”

병사가 신입이 서 있는 줄을 가리키며 말했다. 사람들은 힘없이 손을 들어 보였다.

“에… 화장실 청소입니다.”

병사가 말하자마자 신입은 울상이 되었다. 하필이면 그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 걸려 버렸다.

이런 씨발!

화장실 청소라고 좋게 표현하지만, 실은 단순히 청소 같은 게 아니다. 간이로 만든 화장실의 구덩이 안에서 배설물 양동이를 꺼내 짊어지고 멀리 경작지까지 나가서 거기 두엄 더미에 버려야 하는 일이다.

더러운 것과 위험한 것의 콜라보레이션. 가히 최악의 작업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 이 일을 하루 하고 나면 몸에 밴 냄새가 사흘은 간다. 전염병을 막기 위해서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지만, 자신은 정말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아으, 씨발. 진짜…….”

신입은 계속 혼잣말로 욕설을 내뱉으면서 사람들과 함께 이동했다.

“자아, 어깨에 힘주고 있어! 건다!”

긴 장대를 어깨에 멘 채 신입이 나서자, 중년 아저씨들이 간이 화장실의 장막을 걷어내고 배설물 양동이를 꺼내 장대에 걸어준다. 바로 눈앞에서 찰랑이는 누군가의 배설물들…….

“읍! 우욱!”

원래부터 비위가 좋지 않은 신입은 고개를 모로 틀고 구역질을 하며, 도망치고 싶은 욕망을 꾹 눌러 참았다. 앞뒤로 양동이가 걸리면 그 무게만 해도 상당하다. 어깨의 살갗이 벗겨지는 것 같다.

“똑바로 잘 걸어! 질질 흘리지 말고! 흘리면 그거 치우는 것도 큰일이야!”

“야! 너처럼 세월아 네월아 다니면 이걸 언제 다 끝내냐! 빨리빨리 걸어!”

신입이 비틀거리면서 걸을 때마다 함께 작업에 투입된 아저씨들은 잔소리를 한 바가지 늘어놓는다. 하지만 그로서도 어쩔 수가 없다.

원래부터 체력은 그리 좋지 않았고, 이런 일을 하는데 뭐가 즐거워서 걸음을 서두르겠는가. 토하지 않는 것만 해도 그로서는 정말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건데…….

“후우우우~!”

두엄 늪에 가까이 다가가면 벌써 냄새가 장난이 아니다. 신입은 입으로만 숨을 쉬기 위해 애를 썼다. 온몸에 두드러기가 돋는 것 같은 기분이다.

두 양동이를 모두 두엄 늪에 부어버리고, 옆에 쌓여 있는 석회를 한 삽 떠서 양동이 안에 골고루 뿌렸다. 그렇게 하고 나서 손에 묻은 오물을 풀잎에 문질러 닦고 있으려니 새삼 서럽고 처량하다.

씨발…….

탕! 타타탕! 탕탕탕!

어딘가에서 총소리가 들려온다. 선발대가 이곳에 도착한 지 한 달이 훨씬 더 지났건만, 숨어 있던 좀비들은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튀어나와서 이렇게 간을 졸인다.

“어이, 학생! 뭐해! 똥지게 지라고 했더니, 뭐한다고 풀만 뜯고 앉았어!”

그의 뒤를 따라온 아저씨가 양동이를 확 비우면서 성질을 부린다.

이것들은 도대체 왜 나만 보면 못 잡아먹어서 안달들인지…….

신입은 분하고 억울했지만, 입술을 꽉 깨물고 참았다. 어차피 싸워봐야 못 이긴다. 그러니까 두드려 맞기 전에 말을 듣는 척이라도 하는 편이 낫다.

“예, 예… 가요. 손에 똥이 튀어서 그거 닦은 거예요.”

신입은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고개를 푹 숙인 채 다시 장대에 양동이를 끼우고 터미널로 돌아왔다. 거기에서는 새로운 배설물 양동이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업은 몇 시간 동안 계속됐다. 여기로 대피해 온 사람의 수가 몇 만이나 되다 보니, 당연히 하루 동안 쏟아져 나오는 배설물의 양도 엄청나다.

“점심 먹고 와서 합시다! 점심시간 다되어가는데!”

몇 번의 괴로운 왕복을 하고 신입의 비위가 한계까지 내몰렸을 때, 누군가 크게 외쳤다.

작대기를 내려놓은 신입은 부들거리며 손에 살균 세정제를 묻혀 닦았다. 아무리 열심히 문질러도 이 냄새는 좀처럼 가시지를 않는다.

점심 따위 먹고 싶은 기분이 조금도 아니었지만, 그가 가서 식사를 타 오지 않으면 규영은 굶어야 한다. 이곳에는 아직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배려가 부족하다.

“형아, 똥 푸는 거 걸렸어요?”

신입이 점심으로 지급된 크래커와 잼을 비닐 봉투에 담아 오자 규영이 대뜸 물었다. 신입은 고개를 끄덕였다.

“냄새가… 멀리에서도 나디?”

“아뇨. 다들 땀으로 범벅이 돼 있어서 사실 냄새는 잘 모르겠어요. 똥 냄새나 겨드랑이 땀 냄새나 거기서 거기죠 뭐. 근데 형 얼굴이 완전 썩었더라고요. 전에도 그 작업 걸리면 늘 그런 표정이었으니까…….”

“하아~ 말 마라… 진짜 이거, 미치는 기분이다. 한 서너 시간 하고 났더니 이제 냄새는 그래도 좀 익숙해졌는데, 보는 게 너무 괴로워. 아으, 이거 너 다 먹어. 나는 진짜 속이 울렁거려서 아무것도 못 삼키겠어.”

“에이, 형. 그러지 말고 먹어요. 굶고 일하다가 쓰러지면 어쩌려고 그래요.”

규영이 크래커에 잼을 발라서 신입에게 내민다. 신입은 서글픈 표정으로 그 크래커를 한동안 바라보고 있다가 마지못해 입을 벌려 받아먹었다.

“…응, 건대 있던 애가 그러는데, 거기 왔던 특공대 완전 끝내줬대. 삼식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완전 모델 싸대기 막 때릴 정도로 잘생겼다더라고. 그리고… 그 사람은 여자 얼굴 안 가리고 전부 다한테 친절하게 군대.”

“아니던데… 나는 삼식이라는 사람은 모르고, 진우 요원은 알아. 그 사람이 그렇게 끝내주게 멋있다더라. 총을 완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처럼 쏜대. 표정도 엄청 시크하고. 여자들이 막 줄을 섰었다던데?”

근처에 모여 앉아 밥을 먹는 젊은 여자들의 입에서 신입과 규영이 익히 아는 이름들이 마구 흘러나온다.

그들은 건대 쉘터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구해낸 영웅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목소리만 들어도 다들 동경이 가득하다.

“아아, 젠장. 나도 그 새끼들이랑 한패거리였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럼 쟤들이 나랑 놀아줄까?”

귀를 쫑긋 세워서 듣고 있던 신입이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규영이가 고개를 저었다.

“뭐, 그래도 되기는 하는데… 오늘은 하지 말아요. 아무래도… 냄새라는 게 첫인상을 좌우할 텐데…….”

“그렇겠지?”

신입도 자신의 처지를 잘 알기에 규영의 충고를 곧바로 받아들였다. 크래커를 입에 가까이 가져가는 동안에도 악취가 진동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여자를 꼬실 수 있겠는가…….

“나… 그 진우 요원이라는 사람 본 것 같아. 우린 그때, 태양 그룹 빌딩 지하 주차장에 갇혀 있었거든. 근데 그 사람이 딱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거야. 진짜 한창 싸우고 있는 중이었던 것 같아. 엘리베이터 안에도 나쁜 새끼들 시체가 막… 하여간, 이제 곧 구조해 주겠다고 말하는데… 나 진짜 그 순간에 그 사람 얼굴이랑 목소리가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것처럼 느껴지더라.”

진우의 특이한 총과 복장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던 여자들 중에서 한 사람이 말했다. 신입과 규영은 깜짝 놀라 그쪽을 돌아보았다.

“저기! 용산 태양 빌딩에서 왔어요? 응? 거기에서 진우, 그 새끼 봤어요?”

신입은 앞뒤 잴 새 없이 그 말을 한 여자에게 달려들어 속사포처럼 질문을 날렸다. 갑작스럽게 난입해서 크래커 부스러기를 튕겨가며 큰소리를 내는 신입 때문에 여자는 깜짝 놀라 코를 틀어쥔 채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건 왜요?”

“아, 아니… 친구라서 그래요. 기다리고 있는데 이 개새끼들이 도통 오지를 않으니까 불안해서… 저기, 미안한데 아는 대로 좀 말해줘요! 그게 언제예요? 응? 몇 시쯤? 진우 걔 혼자 있었어요? 덩치 커다란 놈이나, 나만 한 키에 별로 볼품없는 놈은 같이 안 있었어요? 네?”

신입의 말이 많아졌다. 여자는 더욱 위축된 채 고개를 젓는다.

“몰라요, 저는 그냥 먼발치에서 봤던 거예요. 그 사람 잠깐 들렀다가 간 다음에, 군인들이 와서 꺼내줬어요. 그때 이후로는 못 봤고요.”

“여기에 도착한 게 언제예요? 그쪽이 여기 도착한 날짜요!”

“저… 사흘 전인데요… 저기, 근데, 저 좀 무서운데…….”

여자가 점점 뒤로 물러나며 애원하듯 말했다. 신입은 그제야 좀 이성을 되찾고 여자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아, 네. 미안합니다. 놀라게 해서… 그게 친구 일이다 보니까…….”

기분 탓일까…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들의 눈빛이 하나같이 의심이나 비웃음처럼만 느껴진다.

― 흥, 제깟 게 무슨 진우 요원의 친구라는 거야? 웃기지도 않아, 정말. 그런 수법으로는 백날 꼬셔보려고 해도 안 돼…….

그런 생각들이 등 뒤에 박히는 것 같다. 신입은 억울했다. 다시 여자들에게 가서 큰소리로 외치고 싶다.

나, 그 새끼들 친구 맞다고! 우리… 라면 한 개도 나눠 먹고, 한 양동이에 오줌도 같이 싼 사이라고!

하지만 그래봐야 자기 자신만 더 초라해질 뿐이라는 걸 알기에 신입은 쓸쓸히 규영이 곁으로 돌아왔다.

“아… 젠장… 저 생판 모르는 여자까지 구했다는 거 보면 분명 테라도 구했을 것 같은데… 너무 이상하다…….”

신입은 도리질을 하며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규영이 묻는다.

“다른 형아들이나 누나들은 못 봤대요?”

“으응, 뭐… 어떻게 된 조화인지 모르겠어. 설마 진우, 그 새끼 혼자만 살아남은 건 아닐 텐데… 뭐, 어쨌든 이건 좋은 소식이라고 치자. 그날 멀쩡하게 살아 있었다는 단서 하나는 얻었잖아. 규영아, 형아 일 마저 하고 올게.”

신입은 쓸쓸하게 중얼거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작업 시작 시간까지는 조금 여유가 있지만, 일단 담배라도 한두어 대 스트레이트로 빨아줘야 이 답답한 기분이 좀 풀릴 것 같다.

그나마 배낭 안에 담배를 넉넉하게 챙겨 온 것이 불행 중 다행이랄까.

“후우우~!”

간이 화장실 옆에 서서 담배 연기를 내뿜고 있는 동안 신입의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이 다 떠올랐다.

혹시… 다 죽고 진우랑 제니, 테라만 살아남은 건 아닐까? 그래서 진우가 핑크 펀치를 모두 독차지하고 코스트코에서 룰루랄라 하고 있지는 않을까… 아니, 그건 좀 너무 작위적이다.

그러면… 혹시 다 살아남았는데, 이 개새끼들이 자기들끼리만 코스트코로 간 건 아닐까? 자신과 규영이, 그리고 임수정을 평소에 귀찮게 여겼던 건 아닐까…….

아니, 그것도 말이 안 된다. 자신이 싸가지 없이 살았던 건 맞지만, 혜주 그 계집애가 규영이를 버릴 리가 없다. 얼마나 끔찍이 아꼈는데…….

그렇게 쓸데없는 망상들에 휩싸여서 담배 두 대를 피우는 동안에 점심시간은 끝이 났고, 사람들은 하나둘 간이 화장실로 돌아온다. 신입도 힘없이 작대기를 어깨에 걸치고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이거 좀 유난히 무겁다! 어깨에 힘 바짝 줘!”

양동이를 꺼내 거는 아저씨가 경고를 한다.

왜 하필이면 나한테 무거운 놈이 걸려…….

신입은 울상을 지으며 어깨를 짓누르는 배설물의 무게를 견뎌냈다. 비틀거리며 두엄 늪으로 걸어가고 있을 때, 누군가 갑자기 확 다가와 그의 옆구리를 뾰족한 것으로 누르며 말했다. 둘이다.

“담배 내놔, 이 새끼야! 확 쑤셔 버리기 전에!”

“소리 지르면 그냥 죽일 거야! 빨랑 내놔!”

둘 다 일부러 한없이 굵게 꾸며 낸 목소리. 하지만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신입의 눈에서는 눈물이 콸콸 쏟아져 내렸다.

“흐어어엉! 이 개새끼들아!”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느라 신입이 몸을 움츠리자 어깨에 메고 있던 똥지게가 바닥에 털썩 떨어져 내렸다.

옷과 얼굴에 똥물이 잔뜩 튀었는데도 신입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그저 눈물만 흘렸다. 거기에 코와 침도 함께 범벅이 되었다.

“어으!”

두 목소리가 동시에 깜짝 놀라며 뒤로 물러난다.

“이 개새끼들… 나는 너희가 뒈진 줄 알고… 씨발, 내가 얼마나… 으허허헝!”

신입은 눈물을 닦아내고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유빈과 삼식이가 환하게 웃으며 서 있었다.

“신입! 잘 지냈어?”

한 달 만에 다시 봐도 존나게 잘생긴 삼식이가 담배를 꺼내 물며 물었다. 신입은 가슴이 메는 것 같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는 대답 대신 친구들을 와락 끌어안았다.

“야! 야! 너 이거! 똥 묻었잖아! 아으, 냄새!”

삼식이가 기겁을 한다. 신입은 아이처럼 도리질을 하며 외쳤다.

“참아, 이 개새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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