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440화 (440/449)

6장 겨울을 꿈꾸며 (3)

“어, 어라? 저 새끼들 한 대 칠 기센데?”

달려오는 에디와 마리오를 보며 보안관이 말했다. 그러고는 그 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자세를 옆으로 틀며 받아칠 준비를 이미 마쳤다.

“보안관, 맞아달라고는 안 할게. 대신에 너무 세게 때리지는 마. 특히 얼굴은…….”

유빈이 다급하게 주워섬기는 동안에 에디는 이미 보안관을 향해 몸을 날렸다. 무릎을 노린 번개 같은 태클이었다. 테이크 다운을 시켜놓고 위에서 사정없이 주먹을…….

콰작―!

보안관의 니킥이 에디의 커다란 코를 직격했다. 에디는 앞으로 고꾸라지면서도 용케 중심을 잡고 보안관의 오금을 잡는 데 성공했다.

보안관의 몸이 뒤로 넘어간다. 하지만 그는 이미 오른팔 상완이두근과 전완근 사이에 에디의 목을 끼워 넣었다.

쿵―

보안관의 등이 잔디밭 위에 떨어졌지만, 고통스러운 것은 오히려 에디 쪽이다. 동맥이 단단한 근육에 조여진 에디의 얼굴은 금세 빨갛게 달아올랐다.

목을 빼보려고 해도 이미 보안관의 두 다리가 그의 허리를 단단히 조이고 있어서 움쭉달싹하기가 어렵다. 보안관의 근육이 수축할 때마다 이미 출혈이 있던 에디의 코에서는 피가 쫙짝 흘러나왔다.

빠악―

보안관의 허벅지를 향해 마리오의 사커 킥이 날아가 꽂힌다.

“이런 개새끼들이, 치사하게!”

인상을 찌푸리며 에디를 옆으로 집어 던진 보안관은 두 팔을 교차시켜 얼굴을 가드한 채 벌떡 일어났다.

빠악― 빠악―

보안관의 가드 위로 마리오의 펀치가 마구 쏟아진다. 덩치가 큰 녀석들이라 맞으면 꽤나 아프다.

“씨발, 이러는 데도 얼굴을 때리지 말라고?”

보안관은 원망스럽다는 듯 중얼거리면서 몸을 좌우로 틀어 마리오의 펀치를 피했다. 그러고는 벼락같은 로우킥을 날렸다.

마리오의 몸이 주춤한다. 순간, 비어 있는 마리오의 안면에 한 방 제대로 먹이려던 보안관이 주먹을 꾹 쥐며 참는다.

사삿―

마리오도, 에디도 빠르게 거리를 두고 물러났다. 에디의 얼굴은 이미 피범벅이다.

“내가 할게. 빚이 있으니까.”

에디가 코피를 훔치며 말했다. 조그만 동양인이라고 우습게 봤던 게 잘못이다. 정식으로 제대로 싸워야겠다.

마리오도 두말없이 물러나 준다. 에디는 상대를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오른 주먹을 내밀고 맞부딪치라는 시늉을 했다.

“하긴 뭘 해? 내가 이야기하는 게 먼저라니까!”

뒤쫓아온 짐이 에디와 마리오를 한데 밀어내며 앞으로 나선다. 세 명의 대화를 전혀 알아듣지 못한 보안관은 짐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너냐? 그래, 와봐.”

“이게 전부야?”

짐이 물었다. 보안관에게는 여전히 먼 나라의 외국말일 뿐이다.

“오라고!”

그때, 짐의 뒤쪽에서 크리스에게 이끌려 따라오던 샘이 사납게 짖어 대기 시작했다.

크르르릉― 웡! 웡!

샘은 가슴의 목줄이 당겨져 거의 일어서다시피 하면서 잔디 운동장 반대편에 세워진 헬리콥터를 향해 짖었다. 크리스가 짐에게 말했다.

“매복이 또 있나 봅니다. 쥐 같은 놈들인데요?”

짐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두 팔을 쫙 벌렸다.

“무기를 버리고 오라고 해서 그렇게 했잖아? 그런데 또 뭘 원하는 거야? 너희는 숨어서 뒤를 치는 것밖에 못하나?”

“아니, 그런 건 아니었어요. 그냥 신중했다고 하죠. 지금 당장도 당신들 팀원이 먼저 싸움을 걸었잖아요.”

진우가 일어서서 모습을 드러냈는데, 정작 크게 들려온 목소리는 옆에 삼숙이의 목을 꽉 잡은 채 쪼그려 앉아 있는 제니의 것이다.

이제는 복화술까지…….

짐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우~ 장난 실컷 쳤으면 나도 하고 싶은 말을 하자.”

“사과 먼저 받아주시면 안 될까요? 거기에 버려두고 온 건 정말 미안합니다. 우리는 그만큼 다급했어요.”

제니가 진우의 말을 받아 크게 외쳤다. 진우는 허리를 꾸벅 숙였다. 하지만 짐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거기 헬리콥터 뒤에 숨은 아가씨. 저 친구에게 전해줘. 그가 정말로 사과해야 할 건 우리를 멋지게 따돌린 것도 아니고, 거기에 버려두고 온 것도 아니라고! 그건 젠킨스 때문에 마음이 현혹된 우리의 실수이기도 했으니까. 달게 받아들일 수 있지. 하지만 그가 폴에게 시켜서 한 말을 사과해야 해! 우리를 쏠 수 있었는데, 쏘지 않은 걸 알아달라고? 전직 델타 팀 네 명이 안전 장구를 갖추고 빠르게 뛰어가고 있었는데, 그걸 쏠 수 있었다고?”

진우가 제니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한동안 통역된 말을 듣고 있던 진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뭐라고 대꾸한다. 제니가 머뭇거리면서 다시 소리친다.

“하지만 사실인걸요!”

“왓!”

짐은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펄쩍 뛰더니, 숨을 몰아쉬며 화를 눌러 참았다.

“후우우~! 후우우~! 좋아! 증명해 봐!”

응? 뭐래?

진우는 또 제니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제니가 설명을 해주려고 하는 순간, 그때까지 꽉 눌려 있던 삼숙이가 재빨리 탈출해서 뛰어나간다.

“앗! 안 돼!”

진우가 잡아보려 해도 소용이 없었다. 삼숙이는 바람처럼 달려 나가며 사납게 짖어 댔다.

얼―! 얼―!

물론 크리스에게 붙잡혀 있던 샘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샘이 힘차게 튀어나가는 바람에 크리스는 줄을 놓쳐 버렸다.

으르르르― 얼! 얼! 웡! 크르르르―!

두 맹견은 보안관과 짐의 바로 옆에서 한데 뒤엉켜 무시무시한 소리를 냈다. 덩치는 당연히 삼숙이가 더 크지만, 샘은 무시무시한 전투력의 핏불. 이건 그야말로 야수급 대결이다.

삼숙이가 샘의 목덜미를 덮치면, 샘은 재빨리 몸을 빼서 다시 삼숙이를 물려 든다. 몇 차례 엎치락뒤치락하던 두 마리의 대결에서 먼저 꼬리를 보인 것은 삼숙이였다. 삼숙이는 두어 걸음 물러나서 샘을 흘끗 뒤돌아본다.

그렇게 끝이 나는가 싶었는데, 샘이 쫓아오지 않자 삼숙이는 재차 달려들었다. 그러고는 또 사납게 크르릉거린다.

같은 패턴을 반복하기를 두어 차례, 마침내 샘의 인내심도 한계에 달했다. 삼숙이가 다시 꽁무니를 보이며 떨어지자 샘은 이를 드러내며 녀석을 쫓기 시작했다.

얼― 얼―

삼숙이가 딱 따라잡히기 직전의 스피드로 도망가면서 계속 뒤를 돌아본다. 약이 오른 샘은 앞뒤 재지 않고 쫓아 달렸다. 두 마리의 맹견이 숲속으로 사라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샘!”

크리스가 불러도 소용이 없다.

“저게… 뭐야? 저 새끼, 먼저 달려들었다가 등신처럼 도망을 치고 있어. 모양 빠지게.”

그때까지 멍하니 개싸움을 구경하고 있던 보안관이 한심하다는 듯 중얼거린다. 하지만 진우는 진실을 알고 있다. 삼숙이, 저 개새끼는 애초부터 싸우려는 게 아니라 끼를 부리고 있는 거다. 이름이 샘이어도 분명 암컷이었을 테지.

“개는 걱정하지 마세요. 좀 있으면 돌아올 겁니다.”

진우가 제니에게 부탁해서 말했다. 이래저래 기분이 좋지 않은 짐이 내뱉듯 말했다.

“증명해 보라고 했었다. 그걸 못하면 네 개보다 네가 더 사납게 물어뜯길 거야.”

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뭐래… 누가 물어 뜯긴다는 거야? 그놈은 인간으로 치면 삼식이 급이라고…….

“어떻게 증명할까요?”

제니가 외쳤다. 짐은 코웃음을 치며 크리스에게 손짓을 했다. 크리스가 수염을 긁적이며 말했다.

“아무리 우리가 방심하고 있었어도 헬리콥터가 착륙하기 전에 너희의 모습을 전혀 보지 못했다는 건 너희가 적어도 300야드 이상 떨어진 거리에 숨어 있었다는 의미겠지? 최소한으로 정해서 300야드라고 하자. 자, 여기에서 문제! 너희 팀의 샤프 슈터가 몇 명이야?”

“저격수가 몇 명이냐는데요?”

제니가 통역을 해줬다. 진우는 나름 머리를 굴려서 대답했다.

“여러 명인데 당시에 조준하고 있던 건 나 혼자였다고 해.”

제니가 그 말을 옮기자 크리스는 아찔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혼자라고? 그럼 너는 거기에서 빠르게 뛰어나가는 우리 넷을 모두 쏠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거잖아. 우리가 반격할 틈도 없이. 그러면 얼마나 빠른 걸까? 첫 발의 총성이 울리면 우리는 모두 조건반사적으로 엎드렸을 거야. 그러면 타깃은 더 작아지지. 그런데 너는 우리가 너를 찾아내서 반격하기 전에 끝날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 거야. 그러면 3초? 최대치로 그만큼을 줄게.”

“저기… 지금 이야기가 너무 복잡한데, 조건만 말해줘요! 통역하면서 헷갈린다고요. 저는 컴퓨터가 아니에요!”

숫자와 상황들을 열심히 옮기고 있던 제니가 결국 포기하고 소리쳤다. 크리스는 빙글거리며 대꾸했다.

“하하, 좋아. 300야드 떨어진 곳의 직경 10인치 크기의 목표 네 개. 3초 내에 모두 명중시켜. 그러면 네 말을 증명한 걸로 인정하지. 그것만 해도 많이 봐준 거야. 우리는 당시에 빠른 속도로 이동하는 중이었으니까.”

제니가 그의 말을 전하자 진우는 미간을 찌푸렸다.

“300야드가 얼마만큼 떨어져 있는 거야? 10인치는 또 얼마나 큰 거고? 저놈들은 왜 미터를 안 쓰고 이상한 단위를 사용해서…….”

“아… 저 사람들은 또 미터법이 이상하다고 생각해요. 가늠도 잘 안 될 거고. 300야드면… 어디 보자, 한 280미터 정도? 아닌가? 270미터?”

제니가 어깨를 으쓱하며 알려준다.

“그럼 10인치는?”

“그건 민감하죠. 2.54센티가 1인치.”

제니가 자신의 허리를 양손으로 잡으며 대답해 준다. 진우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러면 넉넉하게 300미터에 25센티로 정하면 말은 안 나오겠다. 그런데… 이 섬에 그렇게 딱 적당한 표적이 있으려나?”

진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 섬의 반대쪽 끝을 바라보았다. 길쭉한 형태의 섬이어서 거리는 얼추 나올 것 같기도 하다. 진우가 표적을 고르고 있는 걸 본 크리스도 그의 곁으로 가서 망원경을 들고 같은 방향을 살핀다.

잠시 후, 크리스가 앞쪽을 가리키며 뭐라고 떠든다. 진우는 제니를 돌아보았다.

“저기 선착장 있는 데 배를 묶는 말뚝이 보이냐고 해요. 나무 말뚝 여섯 개. 그중에 아무거나 네 개를 맞추면 된대요.”

“응, 있네.”

매의 눈 삼식이가 뒤쪽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 진우의 육안으로는 가물가물하다. 일렁거리는 파도가 아침 햇살을 잔뜩 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 총 집는다고 이야기해 줘. 여기부터 일직선으로는 물러나라고.”

진우가 말했다. 용병들이 뒤로 물러서며 대꾸하는 걸 듣고 있던 제니가 금방 통역을 해준다.

“양각대를 써도 좋대요. 공정하게 그때를 재현해야 하니까.”

“그런 건 있지도 않아.”

진우는 바닥에서 자신의 K―2를 집어 들며 말했다. 사거리가 짧은 카빈 소총에 저격수용 조준경이 달려 있는 그의 기묘한 무기를 보며 용병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총을 보아하니 과제를 너무 어렵게 낸 것 같대요.”

크리스가 혼잣말을 중얼거리자마자 제니가 곧바로 통역해서 이른다. 진우는 반응하지 않았다. 녀석이 얼마나 대단한 총을 쓰는지는 몰라도, 그 자신은 이 K―2면 충분했다.

“한 2초 더 주자고 하고 있어요.”

짐이 중얼거리는 말도 제니는 고자질을 했다. 진우는 그래도 무덤덤하게 총구를 들어 올리고 조준경에 눈을 가져다 댔다. 잠시 목표를 살피던 진우가 입을 열었다.

“저거, 너무 가깝다고 말해줘. 아무리 넉넉하게 잡아도 250미터밖에 안 돼.”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그냥 맞춰 달라는 거 맞춰 버려요. 오빠가 찍은 것도 아니고, 자기들이 요구한 건데.”

제니가 답답하다는 듯 속삭였다. 진우는 이마를 긁적이며 말했다.

“이렇게 우습게 보고 놀리는데, 나중에 봐줬다는 소리 듣기 싫어. 내가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서 쏘면 대각선으로 거리가 늘어나니까 거리는 대충 맞을 거야. 근데 저 말뚝도 25센티는 훨씬 넘어. 이래저래 별로야. 그렇게 말해줘.”

어휴우~

제니는 한숨을 몰아쉬고 나서 크리스에게 진우가 한 말들을 옮겼다. 크리스가 뭐라고 중얼거리자 제니가 또 곧바로 이른다.

“말이 길어진대요.”

표정의 변화 없이 조준경에 눈을 바짝 붙이고 있던 진우가 총구를 아래로 내리며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럼 움직이기도 귀찮으니까 여기에서 쏠게. 근데 나를 봐줬으니까 나도 공평하게 네 개가 아니라 여섯 개 다 맞추겠다고 해줘. 똑같은 시간 내에.”

제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진우의 제안을 영어로 옮겼다. 크리스와 짐은 진우가 허세를 부린다고 생각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쏜다.”

여전히 총구를 아래로 내린 채 진우가 말했다. 제니가 그 말을 영어로 옮기고 크리스가 시계를 들어 스톱워치 버튼에 손가락을 댄 순간.

탕탕탕탕탕탕―

진우는 빠르게 총구를 들어 올린 뒤, 순식간에 여섯 발을 당겼다. 초를 재기도 전에 사격을 마친 진우는 민망하다는 듯 코끝을 손으로 훑으며 말했다.

“확인해 보라고 해줘.”

이번 말은 제니가 굳이 통역할 필요도 없었다. 크리스는 망원경을 들어 선착장의 말뚝들을 살폈다.

“짐, 이것 좀 보래요.”

크리스가 놀란 표정으로 중얼거린 말을 제니가 옮긴다. 망원경을 넘겨받은 짐은 표적을 확인했다. 양쪽으로 줄지어 늘어선 여섯 개의 말뚝. 모두 가장 끝부분에만 총알이 파인 자국이 있다.

“하하하하!”

망원경을 내린 짐은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웃어 댔다. 그러다가 갑자기 진우의 가슴팍을 후려치며 외쳤다.

“머더 퍼커!”

“오빠보고 씨발 놈이래요!”

제니도 신이 나서 쓸데없는 말까지 통역을 해준다.

“나도 그 정도는 알아… 아우, 아파.”

솥뚜껑 같은 손으로 가슴을 강타당한 진우는 맞은 부위를 문지르며 이마를 찌푸렸다. 하지만 흥분한 짐은 그를 놔줄 생각이 없었다. 크리스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어요. 그거 트릭 샷이라고.”

제니가 계속 통역을 해준다. 진우는 약간 잘난 척을 하며 대답했다.

“그냥 총이 몸에 익으면 그 정도는 다 한다고 해줘.”

“어우! 컴 온! 유 애스홀! 하하하하!”

제니가 옮겨준 말을 들은 짐은 또 껄껄 웃어 대며 욕설을 퍼붓는다. 두 용병은 10년 지기라도 되는 양 진우에게 바짝 달라붙어 총에 대해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M110은 써보았느냐. 방아쇠 무게는 얼마로 조정한 거냐, 지금 풍속을 얼마로 계산했느냐, 왜 이 총을 선택한 거냐…….

진우로서는 잘 들어보지도 못한 질문들과 조언이 잔뜩 쏟아져 들어온다.

“근데, 네 개 미안해서 어쩌지? 샘에게 쫓겨서 지금쯤은 크게 다쳤을지도 모르는데…….”

속사정도 모르는 크리스가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진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근데 왜 암컷 이름을 샘이라고 지었어요?”

“<나는 전설이다>에서 윌 스미스가 기르던 그 셰퍼드의 이름을 딴 거야. 영화 속에서 그 녀석도 암컷이었지.”

크리스가 열심히 설명을 해줬지만, 그런 옛날 영화, 케이블 TV 없이 살았던 진우로서는 모르는 이야기다. 그저 ‘아, 네’ 그러면서 맞장구만 쳐줬다.

“아이 씨, 이거 괜히 열 받네. 나는 몇 대 두들겨 맞기도 했는데, 폼 나고 좋은 건 저게 다 하고.”

총 이야기로 미친놈들의 통역을 해주느라 제니까지 빼앗긴 보안관이 짜증스럽다는 듯 중얼거리며 마리오에게 맞았던 팔을 주무른다. 태권소녀가 녀석의 등짝을 때렸다.

“맞았다고? 저 사람 얼굴을 봐라, 그런 말이 나오나.”

그녀가 가리킨 것은 에디였다. 부러진 코가 퉁퉁 부어오른 에디가 얼굴의 피를 닦으며 보안관에게 다가오고 있다.

“아… 쏘리.”

보안관이 진땀을 흘리며 말했다. 싸울 때는 흥분해서 그냥 내질러 버렸는데, 저렇게 한쪽에서 사이좋게 웃고 있으니 이게 참… 민망하다.

“노노노, 굿 파이트. 나이스 기요틴 초크.”

에디는 옷에 문질러 손의 피를 닦아내고 보안관에게 내밀었다. 보안관은 그의 손을 맞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리오도 끼어들어서 미안하다는 몸짓을 하며 악수를 청한다. 상대가 갑자기 너무 신사적으로 나오는 것 때문에 더 당혹스러운 건 보안관이었다.

“아, 저기… 다음에 같이 운동해요!”

보안관이 쑥스럽게 인사를 하자 에디와 마리오는 엄지를 치켜 올리는 것으로 긍정의 뜻을 표시했다.

“놀랍구나…….”

삼식이와 함께 뒤에 숨어 있던 알렉스가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고 중얼거렸다. 결코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갈등이 분명히 존재했는데, 이 친구들은 그걸 그냥 정면 돌파해 버렸다.

언어도 전혀 통하지 않으면서 선원과 선장들에게 섞여 들어간 민구도, 저 까다롭고 자존심 강한 짐의 울분을 단번에 날려 버린 진우도, 그리고 두 명의 델타 팀을 힘으로 꺾은 보안관도…….

“너희들은 모두 최고구나. 경이로워.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이제 하나도 이상하지 않아.”

알렉스가 유빈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유빈은 테라를 돌아보며 물었다.

“오빠들이 최고래요. 놀랍대요.”

테라가 일러준다. 오늘 용병들과의 만남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한 유빈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 저 녀석들은 정말 최고지. 근데 나는… 솔직히 나는 최고라고 할 수는 없어. 아니… 테라야, 오해하지 마. 내가 다쳐서 그런 말을 하는 건 아니야. 그냥 원래부터 나는 별다른 재주가 없었거든.”

유빈은 자기가 테라의 기분까지 우울하게 만들었을까 봐 황급하게 변명을 보탰다. 알렉스는 그의 표정을 흥미롭게 살피며 뭐라고 했는지, 테라에게 물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테라의 말을 다 듣고 난 알렉스가 말했다.

“무슨 소리 하냐고 전해줘. 나랑 협상을 해서 아무것도 내놓지 않고 이 섬이랑 헬리콥터 두 개를 다 가져간 사람이 누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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