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429화 (429/449)

4장 히어로 (2)

그을린 채 바닥에 떨어져 있는 사람의 손, 잘려진 단면에 드러난 뼈.

그것은 너무도 잔인한 선고였다.

“헉! 안 돼… 안 돼…….”

진우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안 된다는 말을 계속 중얼거리며 플래시의 방향을 돌렸다. 어둠 속에 보안관과 민구, 그리고 유빈이 웅크려 있다. 유빈은… 왼 팔목을 꽉 움켜잡고 있다.

“유빈아!”

진우는 총을 놓고 달려가 옆으로 쓰러지려는 유빈을 부축했다. 보안관과 민구도 고개를 돌린다.

“끄으으으으! 으으윽!”

유빈이 비명을 지르며 온몸을 부들부들 떤다. 잘려 나간 그의 팔목에서는 피가 왈칵왈칵 솟아오르고 있다.

“으아아! 아으! 이게 뭐야, 이게뭐야! 아악!”

진우는 미친 사람처럼 울부짖으면서 자신의 허리띠를 풀었다. 그것으로 유빈의 상완부를 묶어 지혈을 하기 위해서다.

진우는 자꾸 고꾸라지려는 유빈을 자신의 몸으로 받치며 허리띠를 유빈의 겨드랑이 사이에 넣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유빈은 고통에 떨며 계속 몸을 챘다.

“내가 잡을게! 빨리 묶어!”

보안관이 유빈의 등과 어깨를 꽉 잡으며 외쳤다. 왼팔의 자유를 빼앗기자 유빈은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격렬하게 반항한다. 하지만 보안관의 힘을 이길 수는 없다.

“오빠아~! 아으으으!”

급하게 달려왔던 제니가 고개를 저으며 주저앉는다. 삼식이도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윽! 으윽! 조금만 참아! 유빈아! 으으! 미안해!”

유빈의 팔목을 들어 올린 진우가 허리띠로 겨드랑이 쪽을 조였다. 그것이 고통스러운지 유빈은 두 다리를 번갈아 차올리며 미친 듯이 발버둥을 쳤다.

진우는 몇 번이나 가슴을 채이면서도 다시 달려들어 허리띠를 단단히 조였다. 패닉을 일으킨 유빈은 팔을 마구 흔들어 댔고, 그럴 때마다 그의 상처에 고여 있던 피가 튄다.

“윽!”

진우는 유빈의 피를 얼굴에 뒤집어써 가며 허리띠가 제대로 묶였는지를 확인했다. 손이 계속 떨린다. 목숨이 걸린 그 많은 위기들을 씩씩하게 넘겨온 진우지만, 손목이 절단된 친구의 모습 앞에서는 머릿속이 하얗게 질려 버렸다.

화르륵! 화악―!

이따금씩 똬리를 틀며 타오르던 불꽃이 테이블보에 옮겨붙었다. 민구는 벽에 설치되어 있던 소화기를 집어 핀을 뽑고, 빠르게 번지는 불을 향해 분사했다.

“…손!”

망연자실해서 앉아 있던 제니가 갑자기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난다. 제니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유빈의 잘린 손목을 집어 들고 아직도 불기가 다 가시지 않은 복도를 향해 뛰어나갔다. 말리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다들 제정신이 아니다.

“이봐!”

민구는 소화기를 내던지고 그녀를 쫓았다. 좌우를 두리번거리던 제니는 어처구니없게도 여전히 뜨거운 열기가 남아 있는 주방 안으로 들어가려 한다.

“뭐하는 거야!”

민구는 제니의 팔을 꽉 잡고 당겼다. 제니는 막무가내로 팔을 빼려 들며 소리를 질렀다.

“놔요! 이 손! 냉동실에, 얼음 속에 넣어둬야 돼요! 그럼 붙일 수 있어요!”

“뭐라고?”

돌아온 대답이 너무 뜻밖이라 민구는 잠시 멍해졌다. 냉장고가 폭발과 함께 터져 버렸다거나, 이미 절단면이 불에 탔다는 건 둘째 문제다.

만약 손상이 없다 해도 그걸 대체 어디에서 붙이겠다는 건가… 종합 병원 같은 게 없는데… 그는 제니를 붙잡은 손에 더 힘을 주며 소리쳤다.

“냉동실 같은 건 없어! 다 터졌다고!”

“…없다고요?”

제니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주방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폭발의 근원지였던 만큼 주방은 참혹하게 파괴되어 있었다. 움푹 찌그러지고 그을린 냉장고는 문이 박살 난 채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있다.

그걸 보고 나서도 제니는 아직 미련이 남았는지 유빈의 손목을 꽉 붙잡고 어쩔 줄 몰라 한다.

펑! 퍼펑―!

주방 안에서는 아직 남아 있던 가스가 작은 폭발을 일으킨다. 불길이 확 치솟아 오르는 순간, 민구는 제니를 잡아당겨 식당 안으로 끌고 돌아왔다.

식당 내부에 있던 친구들은 여전히 당혹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분위기였다.

“아까 나한테 의료실이 있다고 했지? 그게 어디야?”

겨우 의료실을 기억해 낸 태권소녀는 보안 요원을 흔들면서 소리를 질러 대고 있다. 보안 요원은 목이 졸린 채 대답했다.

“18층입니다! 아까… 아까 CCTV로 봤잖아요! 엘리베이터에서 총 맞은 사람들 내렸던 곳!”

“18층!”

보안관이 씩씩거리며 배낭을 벗어 던지고 유빈을 업는다. 삼식이와 진우가 유빈의 팔이 더 다치지 않도록 업힌 자세를 조정해 주는 동안, 보안관은 두 끄나풀을 향해 물었다.

“18층 어디쯤이야?”

“C섹션 들어가는 입구에…….”

“입구?”

보안 요원의 대답이 끝나기도 전에 보안관은 유빈을 업은 채 뛰기 시작했다. 진우와 삼식이, 거기에 삼숙이까지 함께 달린다.

“비켜! 비켜!”

식당 입구에 서 있는 민구에게 보안관이 소리를 질렀다.

“설마 계단으로 뛰어 올라가려고? 18층이라며?”

민구가 물었다. 보안관은 대꾸도 하지 않고 제니를 돌아보며 말했다.

“어! 제니야! 그래, 그 손 가지고 따라와!”

다시 달리려는 보안관을 민구가 막아섰다. 짜증스러워하는 보안관에게 민구가 말했다.

“정신 차려! 엘리베이터를 다시 움직이면 되잖아!”

“엉?”

보안관도, 진우도 그 말에 깜짝 놀라서 멈춰 섰다. 폭발에 이은 친구의 중상 때문에 당황해서 다들 반쯤 미쳐 있다. 그나마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건 유빈에게 각별한 애정이 없는 민구나 두 끄나풀 정도뿐이다.

“일어나! 경비 본부로 가자!”

민구는 애송이를 잡아 일으킨 뒤, 앞장을 섰다. 다른 친구들도 그제야 정신을 되찾은 것처럼 복도를 달렸다. 그동안 계속 계단으로만 이동했던 건 엘리베이터가 망가졌거나 가동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그들 자신들이 의도적으로 멈춰뒀을 뿐이다.

“걸을 수 있어?”

제니는 잘린 유빈의 손을 꼭 쥔 채 테라를 부축했다. 테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글썽였다.

“어떡해… 나 때문에… 나 때문에…….”

“괜찮아, 테라야. 울지 마. 다시 붙일 수 있을 거야. 괜찮아.”

제니가 테라를 위로하며 걸음을 재촉한다. 하지만 괜찮다고 말하는 제니의 표정은 완전히 얼이 나가있다.

그롸아아아―

복도를 배회하던 좀비가 민구와 애송이를 반기며 달려온다. 민구는 애송이를 옆으로 밀치고 마세티를 뽑았다.

빠직―!

힘차게 휘두른 마세티에 목이 꺾인 좀비가 벽을 들이받고 쓰러진다. 민구는 한차례 더 마세티를 내리찍어서 놈의 머리를 완전히 끊어내 버렸다.

“엘리베이터 켜! 가까이 있는 거 하나만!”

경비 본부에 도착한 민구가 애송이에게 명령했다. 애송이는 CCTV로 엘리베이터들의 위치부터 확인했다. 진우의 총격을 받지 않은 엘리베이터를 골라 재가동시키는 애송이의 얼굴에서는 굵은 땀이 뚝뚝 떨어진다.

“의료실… 18층…….”

애송이가 기계를 조작하는 동안 진우는 18층의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CCTV 화면을 빠르게 훑었다. 화면 상단부에 작게 글자 표시가 되어 있는데도, 마음이 흐트러진 진우로서는 어디가 어디인지 도무지 분간이 안 된다.

“미쳤어…….”

그와 함께 CCTV 화면을 찾던 태권소녀가 힘없이 중얼거린다. 각기 다른 층의 수많은 장소에서 공포에 휩싸인 직원들이 미친 짓을 해 대고 있다.

불을 지르고, 목을 매달고, 문을 잠근 채 서로를 칼로 찌르거나 겁탈한다. 좀비 사태가 발발한 뒤에도 한 달이 넘도록 안전한 울타리 속에 살던 태양 그룹의 직원들에게는, 오늘이 종말을 직접 피부로 체험하는 첫 번째 날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 중 대부분은 극심한 압박감을 이기지 못해 광기의 노예가 되어 있었다.

“저긴가? 저기 병원 침대 보이는데?”

삼식이가 화면의 한쪽 구석을 가리킨다. CCTV 화면 안에 보이는 것은 피를 잔뜩 뒤집어쓴 몇 개의 흰 침대와, 그 사이를 누비고 다니는 좀비들이다.

그다음 화면에는 사무실 안에서 벌벌 떠는 의사와 간호사들의 모습이 비쳐지고 있다.

“됐습니다! 엘리베이터 버튼 누르시면 내려올 겁니다!”

애송이가 말했다. 유빈을 업고 있는 보안관과 진우가 가장 앞서 뛰어갔고, 누구 하나 예외 없이 그 뒤를 따랐다. 심지어 두 끄나풀도 뒤처지지 않으려 숨을 헐떡이며 달렸다.

여기는… 언제 좀비들이 내려올지 모르는 개방형 계단 주변이다. 이 미칠 듯이 강한 팀의 주변에 붙어 있지 않으면 목숨이 몇 개라도 살아남기 어렵다.

“으으으……!”

엘리베이터가 올라가기 시작했을 때, 유빈이 괴로운 신음을 토해낸다. 보안관은 어쩔 줄 몰라 하며 등에 업힌 유빈을 돌아본다.

“유빈아! 힘내! 응? 조금만 참아!”

“내려줘. 나… 걸을 수 있어. 후우! 후우! 으으윽!”

유빈이 말했다. 이제야 쇼크에서 벗어나 조금 제 정신이 드는 모양이다. 보안관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병원 갈 때까지만 내가 업고 있을게. 금방이야.”

“…병원? 병원이 어디 있어?”

유빈이 힘없이 중얼거린다. 문 앞에 서 있는 진우는 빠르게 바뀌는 표시판의 숫자를 노려보며 이를 꽉 깨물었다.

젠장! 젠장! 왜 이런 일이!

진우는 고개를 들어 눈물을 참으면서 침착해지기 위해 애써 노력했다. 18층에는 좀비들이 잔뜩 돌아다닌다. 지금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은 함께 울어주는 게 아니라, 의료실까지 가는 길을 빠르고 무사하게 뚫는 것이다.

띵―

18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린다. 진우는 총구를 좌우로 돌리며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왔다.

툭― 투둑― 투투둑― 투투투―

엘리베이터 주변을 배회하던 좀비들의 머리가 거의 동시에 터져 나간다. 진우는 눈에 보이는 좀비들을 전부 잡고 나서 친구들에게 나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러고는 누구보다 앞서서 C섹션을 향해 나아갔다.

그롸아아아아―

새로운 먹잇감이 등장하자 18층의 좀비들은 기쁨의 포효를 내질렀다. 하지만 그 포효가 끝나기도 전에 진우가 발사한 총알이 놈들의 뇌를 복도 바닥에 흩뿌려 버렸다.

투투투― 투투둑― 투투두―

방아쇠를 당기고 전진하면서 진우는 계속 침착함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썼다. 보안관이 유빈을 업고 있는 지금, 그 자신이 좀비들을 놓치고 지나치면 모두에게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앞서가지 마, 바보야! 진우가 길을 터야지!”

마음이 급해서 자꾸 달려 나가려는 보안관을 태권소녀가 억지로 붙잡았다.

민구는 이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혹시라도 낙오하는 사람이 없도록 가장 끝에 섰다. 뒤쪽에서 달려오는 좀비들을 베고 잘라 쓰러뜨리면서도 그는 계속 입속으로 머릿수를 헤아렸다. 자신을 빼면, 끄나풀 두 명까지 포함해 총인원이 아홉이어야 한다.

“의료실이다!”

코너를 돌아나간 진우의 입에서 반가운 외침이 터졌다.

콰장창―!

의료실의 유리문을 박살 내고 좀비들이 튀어나온다. 한때는 의사였던 것으로 보이는 흰 가운을 입은 좀비들과 환자복을 입은 좀비들이 한데 섞여 있다. 진우는 빠른 속도로 총구를 돌리며 총알을 날렸다.

투투투― 투투둑― 투투두― 투둑―

의료실 앞 복도가 곧장 좀비들의 시체로 어지럽혀졌다.

그롸아아아―

쉐도우 실드 대원들이었던 좀비들도 그 혼란에 가담했다. 엘리베이터에서 진우에게 입은 총상 때문에 놈들은 좀비로 변한 뒤에도 그리 빨리 움직이지 못했다. 두 팔과 멀쩡한 다리를 이용해서 뒤뚱거리며 달려오는 놈들의 이마에도 예외 없이 총구멍이 뻥 뚫렸다.

“이봐요! 이봐! 문 열어! 좀비 다 잡았어!”

병실 내부의 좀비들을 깨끗하게 정리한 뒤, 진우는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처음 총소리가 울렸을 때부터 귀를 쫑긋 세운 채 기대로 가슴을 졸이고 있던 의사가 반색을 하며 묻는다.

“저, 정말입니까?”

“그래요! 빨리 문 열어! 탈출해야 돼!”

철컥, 하고 자물쇠가 풀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빼꼼 열린다. 진우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문을 발로 걷어차며 안으로 뛰어들었다.

“헉! 뭐, 뭡니까? 왜? 저… 저 안 물렸어요! 사람입니다!”

갑자기 태도를 바꾼 진우 때문에 놀란 의사가 바닥에 주저앉은 채 물었다. 간호사들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덜덜 떤다. 그러는 사이 보안관은 가장 피가 적게 튄 침대를 골라 시트를 잡아 빼버리고, 유빈을 눕혔다.

“나와!”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 민구는 의사의 멱살을 잡아 일으키며 다짜고짜 쿠크리부터 뽑아 들었다. 휘어 있는 쿠크리의 칼날이 조명을 반사하며 번뜩이자 의사의 얼굴은 더 파랗게 질린다. 민구는 의사를 끌고 유빈이 누워 있는 침대 맡으로 데려갔다.

“파… 팔목이 절단됐네요… 왜 이런 겁니까?”

유빈의 상처를 본 의사가 민구와 보안관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보안관이 대답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아마 문이 폭발하면서 팔목을 치고 날아간 것 같아요.”

“손은 여기 있어요! 붙여주세요! 선생님! 제발 부탁드리겠습니다!”

의사의 눈앞에 유빈의 잘린 손을 쑥 내밀면서 제니가 간곡하게 부탁했다. 민구가 위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고쳐야 돼. 안 그러면 네가 죽는 거야.”

“예?”

의사는 입을 벌린 채 얼빠진 목소리를 냈다. 겨우 좀비들에게서 벗어나는가 싶어 겨우 안도하는 참이었는데, 갑자기 팔목이 날아간 환자를 끌고 와서 고치라고 위협을 한다.

사방에서 여러 명이 한마디씩 내지르는 바람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자신에게 잘린 손을 들이밀고 있는 여자가 제니라는 사실도 모를 만큼 의사는 당황해 있었다.

“저… 접합 수술은 무리예요. 저는 그쪽 전공의도 아니고… 마취해 줄 사람도…….”

의사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의 말을 들으며 쏘아보는 민구의 눈은 얼음장처럼 차갑다. 심장이 서늘해진 의사는 말끝을 흐렸다.

“그럼 전공의는 어디에 있어요? 네? 우리가 데려올게요!”

제니가 큰소리로 묻는다. 그녀의 표정과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광기는 민구의 시선에 못지않을 만큼 의사를 두렵게 만들었다.

“다… 좀비가 됐어요. 아마 이 층 어딘가에서 돌아다니기는 할 텐데…….”

버릇처럼 의료실 문 쪽을 바라보던 의사가 움찔하며 말을 멈췄다. 복도 저편에서 좀비들이 달려오고 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아무도 피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저… 저기 좀비들이!”

의사가 말을 더듬으며 복도 쪽을 가리키려 할 때, 보안관이 그의 양쪽 어깨를 꽉 잡고 흔든다.

“그럼 당신은 뭘 할 수 있어? 왜 말만 하고 있냐고?”

기차 화통처럼 커다란 목소리에 병실 전체가 다 쩌렁쩌렁 울린다. 그러는 동안 진우가 성큼성큼 입구로 걸어 나가 총구를 들어 올렸다.

툭― 투투둑― 투투투― 투투투―

빠르게 퍼부어진 열 발의 총알. 고막을 울리는 그 시끄러운 소리에 의사는 움찔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복도에는 더 이상 움직이는 좀비들이 없었다. 진우가 탄창을 갈아 끼우며 뒤를 돌아보고 말했다.

“좀비는 걱정하지 말고 걔 팔만 봉합해 주세요. 그것만 끝나면 안전한 곳으로 보내 드리겠습니다.”

“아…….”

지금까지 억지로 어지럼증을 참아왔던 테라가 비틀거리며 주저앉는다. 힘겹게 벽에 머리를 대며 쌕쌕 숨을 몰아쉬는 그녀의 안색은 유빈만큼이나 좋지 않다.

“괜찮아?”

제니가 뒤로 뛰어가 태권소녀와 함께 테라를 부축해서 비어 있는 침대에 눕혔다. 테라는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할 수 있지?”

이번에는 민구가 칼을 들이대며 협박했다. 바로 옆에는 엄청난 덩치의 개가 떡 지키고 서 있다. 이쯤 되면 사방에서 강제로 혼을 빼는 것이나 다름없다. 의사는 손사래를 치면서 간절하게 외쳤다.

“잠깐만요! 잠깐! 제가… 제 말 좀 들어주세요!”

의사는 합장하듯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 민구와 보안관에게 말했다.

“저기… 여러분 지금, 팔을 접합하라고 하시는데… 제 능력 밖이에요. 하지만 이렇게 자꾸 협박을 하시면 저는 억지로 하는 척을 할 수밖에 없어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그냥… 신경 연결이고 뭐고 다 무시하고, 살을 꿰맨 다음에 고정을 시킬 수는 있다는 얘깁니다. 잠깐 그렇게 눈속임을 해놓을 수는 있겠지만, 그럼 안 되잖습니까? 그렇게 죽은 조직과 밀착시켜 놓았다가는 결국 팔 전체가 괴사될 수도 있어요.”

“헉! 아아!”

팔이 통째로 썩게 될 거라는 의사의 말을 듣자마자 제니는 얼굴을 감싸 쥐며 비명을 질렀다.

“협박은 지금 네가 하는 것 같은데?”

의사의 말이 못마땅한지 민구가 인상을 쓴다. 의사는 번뜩이는 칼날을 외면하며 입술을 달달 떤다. 하지만 그래도 솔직하게 이야기를 계속했다.

“아닙니다… 제가 무슨 협박을… 제 주제를 빤히 아는데요… 그냥 저는 제가 저 환자분한테 할 수 있는 최선을 말씀드리려는 겁니다.”

“최선이 뭔데요?”

보안관이 물었다. 의사는 각오를 하듯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나서 힘겹게 입을 열었다.

“일단 지혈을 해드릴 겁니다. 동맥이 완전히 잘려 나갔으니까 지금 당장 과다출혈로 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지혈은 필요해요. 수액도 보충하고요. 후우, 그런 후에 손상된 뼈와 근육조직을 제거해서 더 이상 염증이 발생하지 않도록 막을 겁니다. 극심한 고통 없이요! 그게… 그게 답니다. 그보다 더 복잡한 수술은 지금 못해요. 제 능력도 안 되고, 스태프도 없잖습니까?”

“그럼, 그럼 이 손은요! 시간이 너무 지나면 안 된다고 들었는데!”

머리와 얼굴에 검댕이 잔뜩 묻은 제니가 유빈의 잘린 손을 꼭 붙들고 눈물을 글썽인다.

‘뭐지, 얘는? 징그럽지도 않나? 사람 잘린 팔을 무슨 보물처럼…….’

의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으로 제니를 바라보았다. 사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미 저 팔목은 텄다. 불에 잔뜩 그슬린 피부며 신경이 재생될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하지만 그런 말까지 입 밖에 내서 공연히 이들을 자극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

“얼음을 드릴게요. 얼음 팩에 넣어서… 맞다, 아이스박스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일단 여기에서는 응급처치를 하시고, 더 나은 설비와 인력이 있는 곳에서 접합 수술을 하시는 게 지금 제가 대충 모양만 맞춰 붙이는 것보다 저 환자분께 훨씬 좋을 겁니다. 그게 의사의 양심을 걸고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예요.”

의사의 말을 들으며 민구는 잠시 망설였다. 고문을 하라면 얼마든지 할 수는 있지만, 그런다고 해서 없는 실력이 생겨날 것 같지가 않아서다. 눈속임을 위해 팔의 모양을 가짜로 맞춰 붙일 수는 있다고 고백한 부분이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타앙―! 탕, 탕!

입구에 버티고 선 진우는 세 방향의 복도에서 좀비들이 머리를 들이밀 때마다 곧바로 방아쇠를 날리고 있다.

“저기… 다들 고집 그만 피워… 의사 아저씨 말 들어… 끄으으으!”

침대에 누워 숨을 헐떡이던 유빈이 힘겹게 말했다. 그러고는 뒤쪽에 쭈뼛거리며 서 있는 보안 요원을 가리켰다.

“그리고 저… 저 사람도 치료해 주세요. 저 사람도 손가락이 다 날아갔어요…….”

팔목이 잘리고 나서야 깨달았다. 저 보안 요원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상태에서 계속 끌려 다녔던 건지. 갱생을 시키기로 했었으니까, 그전에 치료도 해주는 게 순리다.

“잠시만요. 일단 지혈제랑 항생제 좀…….”

민구와 보안관이 마지못해 길을 터주자 의사는 피투성이가 된 병실을 누비고 다니며 주사약과 도구들을 챙기고 손을 씻었다.

“여기… 얼음이요.”

간호사가 장기 이송용 케이스에 얼음을 채워 와 제니에게 내민다. 제니는 박스 가득 차 있는 얼음 사이에 유빈의 손을 집어넣었다. 케블라 장갑을 낀 채로 잘려 나간 손이 왠지 더 슬퍼서 제니의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흘러내린다.

“얘도, 열이 펄펄 끓는데…….”

테라의 이마를 짚어본 태권소녀가 걱정스레 중얼거렸다.

“아니에요, 저 오빠가 저 때문에… 저렇게 크게 다쳤는데… 저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힘없이 대답하는 테라의 곁에 제니가 다가왔다. 제니는 슬픔이 가득한 얼굴로 테라의 손을 잡으며 조용히 말했다.

“미안해, 테라야. 자꾸 곁을 비워서… 근데… 오빠가… 손이… 흐윽! 이러다가 영영 못 붙이게 되면 어떡하지…….”

제니의 눈물을 보며 테라의 가슴도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하지만 아무리 안타까워도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 이 도시에서 거의 유일하게 현대 의료 설비가 가동되고 있는, 이곳에서도 접합하지 못하는 팔을… 어디에서 붙일 수 있단 말인가. 좀비 세상에 그런 곳은 없다.

“JL!”

입술을 깨물며 고민하던 테라가 멍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태권소녀와 제니가 묻는다.

“뭐라고?”

“그래, JL! 제니야, JL로 가면 돼! 거기에 가면… 거기엔 의사들이 있다고 했어. 저 아저씨의 옆구리도 고쳐 줄 수 있다고 그랬거든. 그러니까 손도 붙일 수 있을 거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JL이 어디야? 그… 외국 제약 회사?”

“응! 응! 기억나지?”

테라는 갑자기 화색을 띠며 벌떡 일어나 앉았다.

저 오빠를 고칠 방법이 있다!

하지만 듣고 있는 제니와 태권소녀로서는 도무지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릴 뿐이다.

“아… 나랑 잠실에 같이 있던 사람이 JL의 간부였는데… 젠킨스 씨라고…….”

거기까지 말하던 테라는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를 죽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면역자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알리면 안 된다는 버릇이 몸에 밴 탓이다.

하지만 이내 자신이 왜 이곳에 잡혀왔는지를 기억해 낸 테라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젠킨스 씨 말이… JL 연구소에는 최고급 연구 인력들이 의료진과 함께 대기 중이고, 거기는 외부환경과 독립되어 있다고 했었어. 그러니까 저 오빠, 응급 치료가 끝나고 나면 함께 JL로 가면 돼.”

“거기가 어딘데…….”

“그건 나도 몰라. 신호를 보내면 24시간 내에 헬리콥터가 데리러 온다고만 들었어. 그리고 그 신호 보내는 장소가 바로 여기야.”

“후우~”

제니는 한숨을 내쉬었다. 외부 환경과 독립된 연구소라는 부분부터 영 미심쩍었는데, 신호를 보내면 헬리콥터가 온다는 만화 같은 이야기까지 듣고 나니 맥이 쭉 빠진다.

뒤쪽에서는 유빈의 수술이 시작되었다. 삼식이가 자리를 비키기 전, 유빈의 오른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유빈아… 힘내.”

“후후, 괜찮아. 팔이야 또 자라면 되는 건데…….”

의사가 주사한 마약에 취해 유빈이 빙글거리며 대꾸했다. 그 말을 들은 제니의 눈에서는 또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온다.

테라의 말을 듣고 잠시나마 기대를 했던 자신이 바보 같다. 아마 누군가 짓궂은 사람이 이 순진한 아이를 놀린 모양이라고, 제니는 생각했다.

“아니야! 진짜야! 젠킨스 씨는 면역자에 대해서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를 알려줬어. 그리고 신호가 어떻게 가는 건지도 설명해 줬고. 그 신호기도 저 아저씨에게 있어.”

제니의 실망한 표정을 읽은 테라가 고개를 저으며 믿어달라고 한다. 제니는 힘없이 물었다.

“근데 테라야, 그 간부라는 사람은 지금 어디 있어?”

“죽었어… 어젯밤에…….”

“알았으니까 일단 좀 누워. JL로 간다고 하더라도 거기에서 유빈 오빠를 치료해 줄 것 같지가 않아. 이제는 돈도 쓸모없는데, 그곳 간부라는 사람도 죽어버렸잖아…….”

제니는 테라의 머리를 쓸어 넘겨줬다. 한 달이 넘도록 만에 겨우 이 소중한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된 날,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이런 이야기밖에 할 수 없다는 게 슬프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걸…….

테라는 제니의 손을 꽉 잡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치료해 줄 거야.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 그 사람들은 내 피를 원하고, 나는 그 사람들이 저 오빠의 손을 고쳐 주기를 원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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