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공주는 잠 못 이루고 (6)
“꺼으으으윽! 으으윽!”
심장과 머리가 동시에 쪼개지는 것 같은 고통 속에서 얼마를 울부짖었는지 모르겠다. 너무 처절하게 비명을 질러 댄 탓에 목소리는 갈라졌고, 목구멍에서는 비릿한 피 맛이 난다.
쿠당탕―!
그는 요란한 쇳소리와 함께 리프트에서 벗어나 아래쪽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잘린 왼팔을 보호하기 위하여 몸을 굴린다는 것이, 그만 정면으로 코를 찧었다.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그의 뜨거운 피가 또 왈칵 쏟아져 내렸다.
“쿨럭! 쿨럭! 컥!”
오 박사는 마른기침을 하며 엎어졌다. 기침을 하며 흔들릴 때마다 머리는 지끈거리고 가슴이 터지는 것 같다. 바짝 말라 있는 목이 물을 갈구하는데, 코에서는 피가 줄줄 흐른다.
“끄으으! 끄으으!”
오 박사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바닥을 짚었다. 비정상적일 정도로 더딘 회복.
도대체 얼마나 오랫동안 심장이 정지된 상태였던 걸까?
모든 것이 불분명하다. 시계가… 그 괴물 좀비가 뜯어낸 왼 팔목과 함께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지금이 몇 시인지도 도통 가늠되지 않았다.
“베티…젤!”
피가 뿜어져 나오는 왼 팔꿈치를 멍하니 보고 있던 오 박사는 그제야 지혈제가 기억이 났다. 그는 리프트에 매달린 채 손을 더듬거려 스테인리스판 위에서 지혈제를 찾았다.
“헉! 흐으윽! 끄으으!”
겨우 베티젤 튜브를 집는 데 성공한 오 박사는 신음을 삼키며 베티젤의 뚜껑을 입으로 열었다. 그러고는 주사기 형태의 튜브 입구를 상처에 가져다 댔다.
“으윽!”
컨트롤되지 않고 덜덜 떨리는 손 때문에 튜브가 상처에 닿을 때마다 그의 입에서는 고통스러운 숨소리와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신경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상처는, 지옥처럼 끔찍한 고통을 그에게 던져 주었다.
그는 이를 악물어가며 튜브 한 통을 전부 다 잘린 팔꿈치 주변에 짜 넣었다. 순식간에 피가 굳기 시작하고 그로부터 10여 초 후, 콸콸 솟던 피가 멎었다.
피잉―
머리를 때리고 지나가는 어지러움!
오 박사는 순간 중심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목이 마르고 어지러워 미칠 것만 같다.
“무~울! 허억~ 허억! 물!”
그는 사력을 다해 기었다. 물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 세균 배양실 외부의 소독실 세면대. 거기까지만 가면…….
그러나 한쪽 팔과 무릎만으로 기어가는 그에게 실험실은 엄청나게 넓은 공간이었고, 그러는 동안 고통과 갈증은 끝없이 그를 괴롭혔다.
슈우욱― 슈우욱―
세균 배양실 안쪽, 세균이 주입된 좀비들을 가둬놓은 공간에서는 이따금 한 번씩, 공기가 순환되는 소리가 들려온다.
연구원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아무런 감흥도 없던 일상적인 소리였지만, 지금 없이 무력해진 그에게는 왠지 무시무시하게만 느껴져서 오 박사는 몇 번이나 흠칫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물론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다.
오 박사는 몇 개의 실험대를 지나 멸균실에까지 도착했다. 그는 팔을 뻗어 열림 버튼을 눌렀다.
치유우우욱―!
겨우 멸균실 안으로 기어 들어가자 혹시 옷에 묻어 있을지 모르는 세균을 날리기 위해서 사방에서 강력한 공기가 분사된다. 베이고 잘린 상처에 뿜어져 나오는 바람이 닿아 벌어질 때마다 오 박사는 절규하며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길고 긴 시간 동안 겨우 방 두 개를 가로질러서 소독실에 도착했을 때, 오 박사의 몸은 불덩이처럼 뜨겁게 끓어올랐다. 열 때문에 모든 것이 뿌옇게 보인다.
“이이익! 으윽!”
그는 팔을 뻗어 세면대를 짚고 어떻게든 몸을 일으켜 보려 애를 썼다. 개에게 물어뜯긴 발목으로 땅을 짚었다. 뼈가 잘린 쪽보다는, 인대가 끊긴 쪽의 고통이 그나마 더 견딜 만하다.
몇 차례나 바닥을 뒹군 끝에 그는 겨우 세면대에 기대 설 수 있었다. 천장의 Led 불빛이 빙글빙글 돈다.
쏴아아아아―
자동 센서가 달린 수도꼭지에 손바닥을 가져다 대자 물이 콸콸, 쏟아져 나온다. 오 박사는 손바닥에 물을 받아 입으로 가져갔다.
비릿한 피 맛이 입안 가득 번진다. 코에서 쏟아져 내린 피와, 그 자신이 입술을 깨물 때 찢긴 입술, 그리고 몇 차례나 얼굴로 바닥을 찧을 때 부러진 이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한 모금의 물은 그의 감각을 다시 깨워낼 만큼 달콤했다. 오 박사는 몇 차례나 더 물을 받아 마시고, 눈 주변에도 끼얹었다.
따끔한 통증과 함께 조금씩 제정신이 돌아온다. 그리고 자신이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도 깨닫게 되었다.
“내 노트북!”
오 박사는 눈을 크게 뜨며 비어 있는 자신의 손을 보고 울부짖었다. 식사실에서 나올 때 소중하게 껴안고 있었던 노트북!
사람들을 뜯어먹는 좀비들 사이에서 혼자 다른 차원인 것처럼 서 있는 테라를 찍은 그 동영상이 든 노트북이 없어졌다. 게다가 언제 어디에서 잊어버렸는지도 기억이 전혀 없다.
그 계단에서 개에게 쫒길 때였나? 아니면… 12층의 그 괴물에게 쫓길 때 쉐도우 실드 조장과 부딪치면서 떨어뜨린 걸까…….
모르겠다. 그때의 일들은 아무것도 구체적으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두렵고 다급하던 감정들만이 아픔의 날카로운 감각과 함께 마구 뒤엉킨 채 남아 있다.
“이런 씨발… 이게 뭐야… 이래서야 이게… 내가 놀라운 면역자를 찾아냈다는 증거가 하나도 없잖아…….”
오 박사는 땀과 피가 점철된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중얼거렸다. 비록 만신창이가 되어버렸지만, 그는 아직도 자신이 이 위기를 극복해 내고 다시 연구조직의 정점에 오를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메이저가… 분명히 지금 이 순간에도 병력을 끌고 자신을 찾아 건물 내부를 헤매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그가 이 부근을 지날 때, 도움을 청하면 된다. 그와 함께 테라, 그 망할 년을 되찾아와서 아주 단단히 버릇을 고쳐줘야겠다.
만에 하나 메이저에게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약으로 며칠만 버텨내면 파멸의 마녀 년이 보낸 샘플 수집용 헬기가 도착할 것이다. 그때,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테라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다. 하다못해 그녀의 증거물이라도…….
좀비들에게 보이지 않는 면역자.
얼마나 매혹적인가.
“그래… 혈액 샘플… 그년 피를 뽑아놓은 게 있었지.”
잠시 벽에 기대 숨을 헐떡이고 있던 오 박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테라의 동영상을 찍기 전에 그녀의 혈액을 채취해 보관해 뒀다는 데 기억이 미쳤다.
오 박사는 비틀거리며 소독실 벽에 걸려 있는 내선 전화를 향해 다시 기어가기 시작했다.
“끄으으응!”
오 박사는 떨리는 손으로 버튼을 눌러 비서실을 연결했다. 한 층 아래에 있는 자신의 연구실 바로 옆방이다. 혈액 보존실로 보내놓은 피를 가지고 올라와서 자신을 부축해 내려가자고 할 참이었다.
뚜루루룩― 뚜루루룩―
단조로운 연결음은 신호가 정상적으로 가고 있다는 걸 알린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후우우~.”
한숨을 내쉬며 성질을 삭이고, 이번에는 연구원들의 대기실을 호출했다. 하지만 역시 전화벨만 계속해서 울려 댈 뿐이다.
“뭐하는 거야, 개새끼들이!”
오 박사는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이 커다란 건물에 자신 혼자만 남겨진 것은 아닌가 하는 공포가 의식 저 너머에서 스멀스멀 피어올라온다. 두려움이 커지자 왠지 고통도 더욱 강렬해졌다. 뜯겨 나간 팔과 자신이 전기톱으로 끊은 다리가 욱신거려 견딜 수가 없다.
“이이익! 이익! 씨발! 씨발!”
몇 차례나 전화를 돌리는 동안 계속해서 통화 연결음만 들어야 했던 오 박사는 마침내 성질을 못 이기고 수화기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욕설을 내뱉었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 대태양 그룹의 권위와 최신의 철통같은 보안 시스템, 그리고 메이저가 이끄는 수십 명의 쉐도우 실드 대원들이 전부 다 일시에 무력화되었단 말인가.
그건 말이 안 된다. 압도적인 병력의 군대라도 끌고 왔다면 모를까…….
하지만 오 박사는 분명히 보았다. 좀비들이 우글대는 주차장에 군대의 흔적은 없었다. 그들이 타고 왔을 법한 장갑차량도 없었고, 대규모의 병력이 이동하는 것도 보지 못했다. 그럼 대체 뭐란 말인가…….
“으윽!”
또다시 쑤셔오는 팔꿈치의 통증에 오 박사는 온몸을 비틀어가며 부들부들 떨었다. 생으로… 팔을 뜯어내고 그 이후로 계속 얼마를 버텼던가. 이건 정말이지 지독한 고문이다. 진통제 생각이 너무도 간절하다. 모르핀이든 코데인이든, 아무거나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로 일단 이 아픔을 달래야만 살 수 있을 것 같다.
“하아아! 하아아!”
한 번의 지독한 고통이 격랑처럼 지나가고 난 뒤, 오 박사는 의료실을 생각해 냈다. 어제 메이저가 수술을 받고 입원해 있던 곳. 거기에는 항상 경비를 보는 쉐도우 실드 대원들이 둘 있다. 의료진에게 연락을 해서 그들과 함께 내려오라고 하면 된다.
뚜르르르륵― 뚜르르르륵― 철컥!
단 두 번의 통화 연결음 만에 수화기가 들리는 소리가 났다. 오 박사의 얼굴에 짧은 희열이 스쳐 간다.
마침내! 마침내 누군가와 연결이 되었다.
“여… 여보세요?”
얼빠진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온다.
“나다!”
오 박사는 다짜고짜 말했다. 하지만 상대는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한다.
“네? 누구…….”
“야, 이 개새끼야! 태양 본사에서 일한다는 새끼가 내 목소리도 몰라? 오 박사다! 이 등신 새끼야!”
그동안 쌓여왔던 분노가 엉뚱한 상대에게 폭발했다. 오 박사는 씩씩거리며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아… 예, 아, 아니… 그게… 목소리가 완전히 달라지셔서…….”
상대가 쭈뼛거리며 변명을 한다. 오 박사도 그의 말을 듣고 나서야 자신이 지금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 쇳물을 마신 것처럼 완전히 갈라지고 쉰 목소리.
“큼, 큼… 수석의 바꿔.”
오 박사는 몇 번의 헛기침으로 목소리를 가다듬은 후 명령했다. 상대는 여전히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안 계십니다. 지금… 여기 남아있는 의사는… 저 하나뿐입니다. 다들 도망 나갔는데…….”
“뭐어? 도망을 쳐? 왜?”
“아니… 그게… 복도에 좀비들이 돌아다니는데 진압 병력이 아무도 출동을 하지 않으니까 불안해서…….”
오 박사는 어금니를 빠득, 갈았다.
18층까지 좀비가… 이런 젠장…….
하지만 그는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알았어. 그럼 너라도 간호사들 데리고 빨리 내려와. 입구 경비 대원들이랑 같이, 들것 챙겨서. 나 지금 16층이다. 세균 배양실이야.”
“경비 대원들도 없어요… 아까 쉐도우 실드 대원들이 총 맞은 사람들을 잔뜩 데리고 와서는 경비 보던 사람들을 싹 다 데리고 갔어요…….”
“뭐? 후우우~ 좋아. 알았으니까 부상자들한테 모르핀 놔주고 총 쥐어줘서 끌고 와. 어디를 얼마나 다쳤는지 모르지만, 총 정도는 잡을 수 있을 거 아니야.”
“…다리가 날아간 사람들인데요? 그리고 그마저도 지금쯤은 다들 좀비들한테… 억! 어흐~! 어우 놀라! 어흑!”
뭐라고 주절주절 떠들어 대던 상대가 갑자기 비명을 지른다. 수화기를 통해 아주 작게 철문이 울리는 소리가 나고, 여자들이 울부짖는 게 들려왔다. 상황이 대강 어떤 지는 오 박사도 짐작이 간다.
좀비들에게 둘러싸인 의료실… 아마 이놈은 환자들까지 다 포기하고 사무실 문을 잠근 채 숨어 있는 모양이다.
오 박사는 한숨을 내쉬고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이제 다 텄다. 의료실로부터는 아무런 지원도 기대할 수 없다.
오 박사는 눈을 질끈 감았다. 상황을 알아갈 수록 절망적이라는 것만 확실해진다. 어지럽다.
“뭐지? 이제 다 끝난 거라고? 방법이 없다고?”
자신의 입으로 뱉은 말이지만,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다. 바로 오늘 아침에… 그는 테라를 생포했고,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들떠서 이 건물로 돌아왔었다.
그런데 불과 몇 시간 만에… 손발이 잘린 채 죽음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 순식간에 몰락한다는 걸… 그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허망하고… 분하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이대로는 못 죽지… 내가 죽을 거면, 다른 것들도 모두 죽여 버리겠어. 아무렴.”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오 박사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수많은 좀비들이 보존되어 있는 세균 배양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놈들의 몸속에는 아주 치명적인, 감염되었다는 것을 알기도 전에 이미 목숨을 잃게 되는 수많은 세균들이 주입되어 있다. 저 세균 좀비들을 몽땅 풀어버릴 거다.
“큭큭큭큭!”
그는 발작적으로 웃었다. 풀려난 세균 좀비들이 밖으로 나가 서울을 지금보다 훨씬 더 끔찍한 죽음의 땅으로, 그 어떤 인간도 살 수 없는 불모의 땅으로 만들어줄 생각을 하니, 죽음에 대한 분노나 공포도 한풀 꺾이는 것 같다.
하찮은 인간들이 괴로워하며 죽어가는 걸 직접 목격하지 못하고 그전에 자신이 먼저 죽어야 한다는 것만이 아쉬울 뿐이다.
“어!”
퀭한 눈으로 바닥을 응시하며 실실대고 있던 오 박사가 깜짝 놀라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방금… 흰 가운을 입은 연구원이 유리문 앞을 지났다. 곁눈으로 스친 것이지만 분명히 봤다.
“이봐! 이봐! 야! 여기!”
오 박사는 황급하게 기어가며 소리를 질렀다. 아직, 아직 희망이 있다. 어쩌면 마지막 희망일지도 모른다.
“끄으으으! 으윽! 여기라고! 야!”
잘린 다리뼈가 울릴 때마다 쇳소리로 울부짖으면서도 오 박사는 기어가는 속도를 높였다.
그의 정성이 닿은 것일까, 조금 전 지나친 연구원이 다시 돌아온다.
“헉!”
연구원과 눈이 마주친 오 박사가 일순 얼어붙었다.
피 묻은 주둥이, 뜯겨 나간 피부, 그리고 흰 막이 덮인 눈동자… 연구원의 가운 앞쪽은 온통 붉은 피로 덮여 있다.
그롸아아아아―
연구원 좀비가 유리문을 들이받으며 포효한다.
“허억! 허어억!”
오 박사는 숨을 헐떡이며 뒤돌아 기었다.
쿵― 쿵―!
등 뒤에서 계속 유리문이 울려 댄다. 그리고… 연구원 좀비의 포효는 이 층에서 배회하고 있던 더욱 많은 좀비들을 불러들였다.
둘… 셋… 다섯… 일곱… 모여든 좀비들의 수는 순식간에 열 마리를 넘어섰다.
텅― 텅―!
소독실 상단의 긴 유리창을 좀비들이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놈들이 일제히 몰려와 그 난리를 치는 동안 오 박사는 겨우 소독실의 절반까지밖에 기어가지 못했다.
마음은 다급하고 호흡은 가빠지는데, 손에는 기운이 빠지고 머리는 빙글빙글 돈다.
“닥쳐! 이 개새끼들아! 닥치라고!”
오 박사는 욕설을 내뱉으며 울부짖었다. 그러고는 필사적으로 앞을 향해 기었다. 그 너머에 있는 세균 배양실! 그곳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갈 거다! 그리고 인생의 마지막 과업으로 서울에, 어쩌면 대한민국 전체에 사형선고를 내릴 것이다.
쩌적!
유리창에 금이 가고, 균열이 생기는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울려온다. 오 박사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이대로…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어떻게든 저 세균 배양실까지는…….
그롸아아아아―
창가의 좀비들이 유리창을 뚫고 손과 머리를 집어넣기 시작했다. 유리창이라는 차단제가 사라진 뒤 들려오는 좀비들의 포효는 몇 배나 더 끔찍했다.
우당탕― 콰장창!
창문을 넘은 좀비들이 스테인리스 테이블을 엎으며 나뒹군다. 뒤를 돌아보고 있지 않은데도 소리만으로 모든 상황이 선명하게 눈앞에 그려진다.
“안 돼에에! 안 돼! 제발!”
오 박사는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울부짖었다. 이제 멸균실은 바로 코앞이다. 저 안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그러면 좀비들이 문을 부수는 동안 그는 세균 배양실에 도착할 수 있다.
“끄으으으으! 끄으으으!”
가까스로 세균 배양실 문 앞에 도착한 오 박사는 자신의 아이디카드를 빼서 스캐너에 가져다 댔다.
삐익―
그의 신분이 확인되고, 문이 열린다. 그때!
그롸아아아―
발목을 움켜쥐고 흔드는 좀비. 놈이 손에 힘을 준 채 잡아챌 때마다 잘린 다리뼈로부터 뇌를 향해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쏘아진다.
“으아아악! 아아악!”
오 박사는 사람의 것처럼 들리지 않는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몸서리를 쳤다. 울부짖고 있는 그의 입안으로 좀비의 손가락이 쑥 들어온다.
“어걱! 억! 걱!”
당황한 오 박사가 채 반응을 하기도 전에 좀비는 사정없이 그의 입술과 아래턱을 잡아당겼다.
찌지직―
입술이 뜯기고 턱뼈가 아래로 빠진다. 찢어진 입술부터 시작해서 얼굴의 가죽이 조금씩 옆으로 뜯겨 나간다.
“거거걱! 거걱! 으윽!”
입안에 들어와 있는 좀비의 손가락 때문에 오 박사는 비명조차 제대로 지를 수 없었다.
까드득―
또 다른 좀비가 뜯겨 나간 그의 팔꿈치 뼈를 물어뜯기 시작했다. 신경이 뜯길 때마다 오 박사는 감전된 사람처럼 온몸을 떨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의 얼굴 가죽은 점점 더 넓게 사선으로 찢겨지고 있다.
뿌득!
좀비에게 잡힌 발목의 반쯤 잘려 있던 뼈가 마침내 동강이 났다. 오 박사의 눈동자는 실핏줄이 터져 온통 빨갛게 변해 버렸다.
우둑! 뜨드드드득!
그의 사지 중에 마지막으로 멀쩡하게 남아 있던 오른팔에서 끔찍한 소리가 난다. 머리 위로 당겨져 한계치 이상 돌아간 어깨의 인대가 끊어지고 뼈가 부러진 것이다.
“끄가가각! 끄그극! 끄으윽!”
온몸에서 전해져 오는 극한의 고통에 오 박사의 찢긴 입에서는 피인지, 침인지도 모를 것들이 줄줄 흘러내린다. 자살이라도 하고 싶다. 혀를 깨물어서라도… 아니, 바닥에 머리를 찧어서라도…….
하지만 입안에 들어와 있는 좀비의 손가락은 그것마저도 허락해 주지 않았다.
뚜두둑! 빠각!
마침내 그의 오른 어깨는 180도 이상을 돌아가 버렸다. 오 박사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푸걱!
또 다른 좀비가 무지막지하게 내지른 손가락이 그의 왼쪽 눈을 꿰뚫는다.
덜그럭, 덜그럭.
안구를 터뜨리고 안와 내부로 들어와 있는 좀비의 엄지손가락이 비어 있는 공간을 마구 휘저을 때마다 그 소리가 뼈를 울리며 들리는 것 같다. 그런데도 오 박사는 신기하게… 아직 살아 있다.
까드득! 찌지직!
여기저기의 살이 뜯겨 나가고 그의 몸은 이리저리 마구 흔들렸다. 고통에 지친 그의 몸에서 서서히 힘이 빠져나간다. 이제 이보다 더 아플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 순간!
“커걱! 커거걱! 칵! 극! 그극!”
여러 마리 좀비들에게 깔린 오 박사가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격렬하게 몸을 흔든다. 너무도 묵직한 고통에 뇌와는 무관하게 온몸의 근육이 저항을 하는 것이다. 그의 사타구니를… 뒤에서 달려든 좀비의 무릎이 꽉 누르고 있다.
빠드득! 뜨득!
다리가 관절의 반대 방향으로 벌려진 채 돌아간다. 그러는 동안 사타구니의 고통은 점점 더 커졌다.
콰장창!
이미 달라붙어 있는 좀비가 몇 마리인지도 모르겠는데, 뒤쪽에서 또 유리창을 넘어 떨어지는 좀비들이 있다.
찌지직!
두 마리 좀비에 의해 양방향으로 당겨지던 그의 얼굴 가죽이 더 버티지 못하고 위쪽으로 쫘악, 뜯겨 나간다. 그러다 갑자기 두 그룹의 좀비들이 그의 몸을 가지고 줄다리기를 시작했다.
상체에 달라붙은 놈들은 그의 덜렁거리는 팔과 잘린 팔꿈치, 그리고 안와를 붙잡은 채 당겼다. 하체 쪽의 놈들은 그의 두 다리에 매달려 체중을 실었다.
“우구루루룩! 그르르륵!”
아래턱이 빠져 버린 오 박사의 입에서 피와 함께 마지막 신음이 터져 나온다. 팽팽하게 양방향으로 당겨진 그의 배에 견딜 수 없는 통증이 퍼부어진다.
뚝―!
허리뼈가 당기는 힘을 이기지 못해 빠져 버렸다. 그 순간 이후, 하체의 고통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찌지지지직― 찌지직―
그의 몸이 반으로 찢겨 나가기 시작했다. 오른쪽 옆구리에서부터 피가 배어 나온다.
까드득! 우드득!
그러는 동안에도 몇몇 좀비들은 열심히 그의 살을 잘라내고 있다. 목덜미에서는 이미 조금 전부터 피의 분수가 치솟아 오른다.
빠득!
겨우 뼈만 남아 있던 그의 목이 완전히 뜯겨 나갔다. 오 박사의 눈구멍에 엄지손가락을 꽂은 채 열심히 잡아당기고 있던 좀비가 멍한 표정으로 돌아간다.
피싯― 피시싯―
머리를 잃은 그의 목에서는 핏줄기가 쭉쭉 뿜어져 나온다.
그르르르르―
좀비들이 오 박사의 몸에서 흥미를 잃고 입을 뗀다. 그들은 다시 멍한 얼굴로 배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놈들 중 한 마리의 오른손엄지에는 아직도 오 박사의 머리가 끼워진 채 걸려 있다. 놈이 걸으며 팔을 휘저을 때마다 오 박사의 머리도 함께 덜렁대며 따라 움직인다.
오 박사의 마지막 얼굴은 고통스럽게… 그가 목숨을 앗았던 그 어떤 희생자의 표정보다도 훨씬 더한 공포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 ☆ ☆
“그 아저씨는 담배 한 대 피우고 온대… 안녕!”
태권소녀가 민구의 말을 전하며 테라에게 첫 인사를 건넸을 때, 테라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저기… 그 아저씨라는 건…….”
“아, 왜, 있잖아. 이름이 뭐였더라? 하여간 껄렁껄렁한 사람. 칼 잘 쓰고, 여기 이렇게 한 줄로… 아, 뭐, 이 정도 설명했으면 알지? 금방 올 거니까 기다리면 돼.”
태권소녀가 자신의 얼굴에 민구의 흉터를 묘사하는 순간, 테라의 눈에는 또 눈물이 왈칵 고였다. 그녀가 세상에 남겼던, 마지막 간절한 소망이 이뤄진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민구가 항체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보다 더 놀라운 일은, 제니와 이 고마운 사람들이 민구를 만났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두 사람이 만날 일은 없을 것 같았는데…….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천천히 해도 돼. 이제 앞으로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며 테라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주던 제니가 또 울음을 터뜨렸다. 이 순간이 너무도 꿈같아서, 너무나 소중해서 자꾸만 눈물이 난다.
꿈속에서 이미 수없이 만났지만, 이만큼 기쁘지 않았었다. 이렇게 미안하지도 않았었다. 피가 배어 나온 테라의 왼쪽 손목 붕대만 봐도 마음이 아프다. 그 겁 많은 아이가 지금까지 얼마나 무섭고 힘이 들었을까.
흐느끼며 꼭 끌어안고 서로를 달래는 미소녀들… 진우는 멍하니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아름답다. 눈물에 촉촉하게 젖어 있는 긴 속눈썹이, 저 희고 부드러운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계속 울어 대느라 부어 있는 입술이…….
‘…원래 내 꿈속에서는 얘들이 나를 끌어안고 키스를 막 퍼붓는 건데…….’
진우는 하이바를 벗었다. 땀으로 흠뻑 젖은 하이바 안쪽의 사진을 잠시 물끄러미 바라보던 진우는 다시 눈앞의 실제 핑크 펀치에게 시선을 돌렸다.
친구들과 다시 만나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강원도의 춥고 외로운 밤을 그녀들과 만나는 망상의 힘으로 견뎌내었던가… 하이바 속에 붙여둔 사진이 닳을 때까지 얼마나 가만히 손으로 쓸어봤던가…….
그런데 그 모든 상상보다 더 아름다운 실체가 지금 그의 눈앞에 있다.
‘나… 한 번만 둘 다 꼭 끌어안아 보고 싶은데… 내 꿈속에서처럼… 생명의 은인이라고 부르면서 안겨주면 얼마나 좋을까… 아, 이런 말 입 밖으로 꺼내면 추잡하다는 소리 듣겠지?’
진우는 생각했다. 분명히 머릿속으로.
“흐윽… 아뇨, 하나도 안 추잡해요. 이리 와요, 생명의 은인 오빠.”
그런데… 제니가 눈물을 훔치며 팔을 벌려 진우에게 손짓을 한다. 테라도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진우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라서 물었다.
“서, 서, 설마 내가 또?”
내가 또 혼자서만 생각한답시고 입 밖으로 소리 내서 중얼거린 건가?
친구들 모두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으아…….”
진우는 얼굴을 감싸 쥐었다. 미친 듯이 창피하다.
세상에… 혼자 있을 때, 중얼거리던 버릇이 하필이면 지금 이 순간 부활할 줄이야. 그만큼 얼이 빠져 있었나 보다.
둘 다 꼭 안아보고 싶다는 말까지는 할 수 있다. 그건 그렇게 부끄러운 말도 아니다. 친구끼리 허그라고 둘러대면 되니까.
그런데… 생명의 은인이니까 한 번쯤은 안아볼 수 있지 않느냐는 말까지 나와 버렸다니! 이건 진짜 쿨하지 못한 개망신이다.
“어휴…….”
얼굴을 쓸어내린 진우는 하이바를 들고 제니와 테라에게 다가갔다. 망신은 이미 당했으니 늘 꿈꿔왔던 소원을 이룰 순간이다. 두 팔을 활짝 벌리려는 진우를 보안관이 막았다.
“아니, 이건 좀 보기 이상해. 한 사람씩 이렇게… 자축하는 의미로 서로 포옹을 하는 것까지는 그런 대로 이해가 가겠는데… 두 명을…….”
“괜찮아! 나는 둘 다 좋아하니까!”
진우는 당당하게 외쳤다. 그러자 보안관은 자신이 덫에 걸렸다는 걸 알았다. 둘 다 좋아한다는 말 같은 거, 그 자신은 못한다. 이제까지 제니만을 사랑한다고 수천, 수만 번을 말해 버린 주제에 그런 말은 입 밖에도 낼 수 없다.
“고마워요, 오빠. 정말로 고마워요.”
제니가 진우를 먼저 와락 끌어안았다. 테라도 두 사람에게 몸을 겹쳐 끌어안고 울먹인다.
“네… 저를 구해주신 것도 정말 고맙고, 제니를 지켜주신 것도 고마워요.”
아아! 내 가슴과 팔에 핑크 펀치가 안겨 있다.
어찌나 작고 가녀린지 금방이라도 녹아버릴 것 같은 그녀들의 어깨. 한동안 눈을 꼭 감고 있던 진우가 말했다.
“나도… 나도 고마워. 너희들이 지켜줘서… 지금까지 싸울 수 있었어.”
그리고 진우는 그녀들에게 자신의 하이바 안쪽을 보여주었다. 나긋하게 해지고 닳아버린 핑크 펀치의 사진. 이렇게 감사의 말을 직접 주인공들에게 할 수 있을 줄 몰랐다.
“어머.”
제니와 테라가 동시에 입을 막으며 놀란다. 살짝 웃은 것도 같다. 진우는 벅차오르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고마워. 내가 혼자 잠들 때, 꿈속에서 나와 함께 있어줘서… 그리고 우리 분대원들이 마지막까지 아름다운 꿈을 꿀 수 있게 해줘서.”
분대원들이라는 말을 하는 순간, 진우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다들… 지금 그가 누린 이런 순간을 꿈꾸며 죽어갔다.
“아!”
진우의 솔직한 고백을 듣고 제니와 테라가 다시 그를 와락 안아준다.
“왜 그 새끼만!”
질투심을 이기지 못한 보안관이 펄펄 뛰자 그때까지 느긋이 바라보고만 있던 삼식이가 녀석의 손을 잡고 진우와 핑크 펀치를 함께 끌어안았다.
“바보, 이렇게 서로 안아주면 되지! 이제 계속 같이 살 건데!”
“야! 나는?”
태권소녀도 지지 않고 보안관과 삼식이 사이를 파고들었다.
“아, 이게 지금 무슨…….”
여섯 명이나 되는 사람이 서로 꼭 부둥켜 안고 있는 이상한 모습을 보며 유빈이 중얼거렸다. 진우가 팔을 뻗어 녀석의 어깨를 확 당겼다. 그런 후, 제니가 뒤로 손을 뻗어 유빈이 달아나지 못하게 막았다. 이제 한데 뭉쳐 있는 사람은 일곱 명이 되었다.
“좁아! 이거 왜 해야 하는데!”
유빈이 투덜댔다. 하지만 아무도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이렇게 모두가 함께하고 싶어서 그 길고 잔혹한 싸움을 다 참아왔다. 그러니 서로를 꼭 끌어안아 칭찬해 주고 싶다.
얼! 얼!
삼숙이가 진우의 엉덩이에 코를 댄다. 이 상황에 녹아들지 못한 것은 둘뿐이었다. 보안 요원과 애송이… 두 놈은 이 갑작스런 허그 열풍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당황스러워 눈을 아래로 깐 채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또 한 명의 남자가 그 묘한 연쇄 허그를 보고 당황했다.
“뭐야…….”
손의 물기를 털어내며 다가오던 민구는 흠칫하며 문 앞에 멈춰 섰다. 어린 애들 일곱 명과 개 한 마리가 서로 허그를 하는 건지, 스크럼을 짜는 건지 모르겠는 자세로 한데 뭉쳐 있다.
“훗.”
그 무리의 가운데에서 제니와 테라의 모습을 발견한 민구는 헛웃음을 지었다. 이제 앞으로 테라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걸 눈으로 확인한 기분이다. 이렇게 유난스러운 놈들이니 서로 사이좋게 아옹다옹하며 잘 지낼 것 같다.
“아!”
문가의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린 테라가 민구를 향해 반가운 미소를 지어 보인다. 민구는 눈으로만 그녀의 인사를 받았다. 그러고는 뒤로 물러나려 했다.
‘아뇨, 가지 말아요.’
테라의 눈이 민구에게 말했다. 그녀는 스크럼 밖으로 팔을 빼서 민구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리 오라고… 부드럽게 손짓하는 그녀의 작은 손이 썰물처럼 민구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그래, 이렇게 만났으니 한 번 정도는…….’
민구는 천천히 걸어가서 테라의 팔 안에 자신의 어깨를 넣었다.
생명의 은인… 자신을 살리기 위해 피를 나누어 준 고마운 아이. 그리고 그 바로 옆은… 뾰족 머리 고릴라…….
쿵―
민구와 보안관의 머리끼리 부딪친다. 민구도 미간을 찌푸리며 버텼다. 이렇게까지 허그에 집착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는데, 이 고릴라 놈이 자리를 내주지 않으려 버티는 걸 보니 은근히 승부 근성이 불타오른다.
민구는 몇 번이나 밀려나면서도 계속 보안관의 옆자리로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네깟 놈한테 질까 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