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공주는 잠 못 이루고 (2)
투투투투― 투투투투투―
총소리가 겹치지 않는다. 둘 중 한 놈이 총에서 총알이 떨어진 것이다. 곧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던 바로 그 기회가 왔다. 진우는 벽에 바짝 붙어 몸을 숨긴 채 한차례의 난사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피이잉― 핑― 핑―!
돌가루와 먼지가 어지럽게 날린다. 총알이 날아오고 튀는 각도를 보면 지금 쏘고 있는 게 대각선 방향의 놈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놈이 어정쩡한 자세로 서서 마구잡이로 쏴대고 있는 중이라는 것도.
투투투투투―
한차례의 총성이 훑고 지나가자마자 진우는 벽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그러고는 빠르게 3점사를 날렸다.
투투둑― 투투둑― 투투두―
처음 세 발은 놈의 총구를, 그다음 세 발은 놈의 머리를 때렸다. 놈은 손에 전해진 충격을 이기지 못해 앞으로 몸을 숙이다가, 비명도 지르기 전에 머리가 터져 뒤로 날아갔다. 오른쪽 복도의 흰 벽과 대리석 바닥은 순식간에 피투성이로 변해 버렸다.
진우는 곧바로 총구를 왼쪽 복도를 향해 돌렸다. 두 번째 놈이 이제 곧 탄창 교환을 마치고 고개를 내미는 순간, 머리를 날려 버릴 계획이었다.
그런데…….
놈의 기척이 느껴지지를 않는다. 진우는 당황한 표정으로 복도 저편을 바라보았다. 복장으로 보아 지금 적들은 전문 전투 요원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섞여 있다는 건 알았지만, 탄창을 갈아 끼우는 그 간단한 일이 이렇게나 긴 시간을 잡아먹을 것 같지는 않다.
그런 고민을 하는 동안에 또 1초가 지났다. 걷혀가는 총성의 메아리 사이로 멀어지는 발소리가 작게 들려온다.
“젠장!”
상황을 깨달은 진우는 총구를 겨눈 채 복도로 뛰어나갔다.
“왜 그래?”
영문을 모르는 삼식이가 너덜너덜해진 방패를 꽉 붙잡고 진우의 뒤를 따른다. 셰퍼드 두 마리를 완전히 제압한 삼숙이도 덩달아 달린다. 진우가 소리쳤다.
“잡아야 돼!”
두 번째 놈… 탄창을 교환하는 거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제 보니 그냥 뒤돌아 도망을 친 거다. 혹시라도 녀석이 유빈이 있는 방향으로 돌아가거나 하면 안 된다.
유빈과 제니는 양쪽으로 나간 병력들만 철석같이 믿고, 등 뒤를 완전히 내준 채 전방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 한 놈이라도 놓치면 무방비 상태로 당하게 될 것이다.
탁탁탁탁탁―
진우는 이를 악물고 전속력으로 뛰었다. 놈을 따라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삼숙이가 자신보다 앞서 달려 나가는 건 원치 않았다.
도망치는 중이라고는 하지만 상대는 총으로 무장한 상태. 무모하게 정면에서 달려들었다가는 단 한 방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빠악― 쿠웅―!
복도 저편에서 들려오는 엄청난 소리. 쫓아가던 진우와 삼식이가 동시에 깜짝 놀랐다.
“보안관?”
삼식이가 크게 소리쳐 물었다.
“어! 여기 끝났어.”
곧바로 답이 돌아왔다. 진우는 그래도 걱정을 떨쳐 내지 못하고 보안관에게 외쳤다.
“방심하지 마! 일단 총부터……!”
“끝났다고!”
보안관은 귀찮다는 듯 대꾸했다. 진우가 코너를 도는 순간, 해머를 짚고 서 있는 보안관의 커다란 덩치가 눈에 들어왔다.
그로부터 2미터쯤 떨어진 바닥에는 쉐도우 실드 대원이 등을 보인 채 쓰러져 있다.
“젠장, 준비를 다 하기도 전에 뛰어와 가지고… 너희 다친 데 없어?”
녀석이 떨어뜨린 총을 주워 챙기면서 보안관이 물었다.
“응.”
진우가 대답했다. 보안관은 아직 사람을 죽인다는 게 영 익숙지 않고 불편한 모양이다.
벽에 묻어 있는 피, 쓰러진 대원의 각도, 꺾인 목, 놈의 입과 코에서 주르르 흘러내린 피, 보안관의 해머…….
이런 것들을 종합해 보면 어떤 상황이었는지 그림이 그려진다.
쉐도우 실드 대원이 코너를 돌자마자 보안관과 맞닥뜨렸고, 다급해진 보안관은 사정을 두지 않고 해머를 휘둘렀다. 달리고 있던 대원이 총구를 돌릴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몸통을 직격당한 대원이 벽에 머리를 찧고 목이 부러진 채 바닥에 떨어져 죽어버렸다…고 보면 앞뒤가 다 들어맞는다.
“다섯 명이었네…….”
대원의 시체를 바라보며 진우가 중얼거렸다. 중앙에 적어도 셋, 혹은 넷. 놈들의 주력 우회 병력이었을 이쪽 복도가 다섯.
그렇게 계산해 보면 8층에 들어온 놈들의 인원수가 그리 많지 않았거나, 또는 유빈의 예측과 달리 오른쪽으로 돌아오는 놈들이 주력이라는 게 된다.
전자라면 별문제가 될 게 없지만, 만약 후자라면… 그건 꽤나 신경이 쓰인다. 진우는 격려와 위로의 뜻을 담아 보안관의 어깨를 두드려 준 후, 삼숙이와 함께 성큼성큼 앞서 걸었다.
빨리 뒤를 쳐서 깨끗하게 다 시체로 만들어놓아야 이놈들이 더 이상 말썽을 부리지 못한다.
한편, 오른쪽 복도의 중간 지점 코너에서는 애송이가 방패로 몸을 가린 채 덜덜 떠는 중이었다. 그의 앞에는 위장을 위해 일부러 끌어다 놓은 커다란 소파와 화분이 있고, 그의 바로 뒤에는 태권소녀가 복도의 끝을 향해 MP5를 겨누고 있다.
“미리 말해두는데… 나 태권도 선수예요. 국가대표.”
태권소녀가 전방에서 눈을 떼지 않으며 작게 말했다. 애송이는 무슨 말인가 싶어 뒤를 돌아본다.
“…에? 예?”
“괜히 여자랑 일대일이면 해볼 만하지 않을까 해서 덤빌 생각 하지 말라고요. 나 엄청 세니까.”
태권소녀가 보충 설명을 해준다.
“네… 절대 안 합니다, 그런 생각.”
애송이는 잔뜩 겁먹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태권도 선수였든 아니든 그런 게 지금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총을 들고 등 뒤에 서 있으면서…….
다시 침묵이 이어졌고, 두 사람은 초조하게 기다렸다. 이제 곧 만나게 될 적이 몇이나 될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애송이의 마음속은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기묘한 상황이었다. 잠시 뒤, 복도 반대편의 저 코너를 돌아 나올 사람들은 사실 그의 아군들인데… 지금은 적이 되어버렸다. 아군이 많이 오면 올수록, 그가 총에 맞고 죽을 확률이 높아진다.
‘씨발… 좆같은 상황이다, 진짜.’
애송이는 마음속으로 욕설을 내뱉으며 자신의 처지를 원망했다. 이렇게 허술한 위장이 성공할 리가 없다.
저벅저벅.
발소리가 들려온다. 애송이는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방패를 움켜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사삭―
선봉에 선 쉐도우 실드 대원은 복도의 벽 사이에 몸을 숨겨가며 앞쪽을 살폈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에는 별다른 위험은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의 경계심을 자극하는 뭔가가 시야에 들어왔다.
‘소파… 저런 게 복도에 나와 있었었나?’
선봉은 벽과 나란하게 놓여 있는 소파를 노려보며 기억을 더듬었다. 소파의 앞에 놓여 있는 커다란 화분과 작은 나무… 저건 복도를 오가며 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소파는, 그건 이야기가 좀 다르다.
선봉은 뒤따라오는 일행들에게 멈추라는 신호를 보낸 뒤, MP5의 총구를 소파 쪽으로 겨눴다. 바로 그때, 그의 것이 아닌 총성이 울렸다.
투투투― 투투둑― 투투둑―
선봉은 얼른 몸을 움츠리고 벽 뒤에 숨었다. 총소리가 나고 돌가루가 튀자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 매복을 알아봤다는 희열이 한 줄기 빛처럼 비쳤다.
보아하니 한 놈이 쏘는 거다. 아까 엘리베이터에서는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반격 한 번을 제대로 못했었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이쪽도 얼마든지 몸을 숨길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앞서서 가! 쏘면서 저쪽 벽에 붙으라고!”
총성이 뜸해진 틈을 타서 대응사격을 하며 선봉은 뒤따르던 일행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일행이라야 둘뿐, 그것도 그처럼 훈련을 받은 쉐도우 실드 대원이 아니라 일반 직원들이다.
물론 군필자들이겠지만, 그래도 전투 수행 능력이 잘 갖춰져 있다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놈들은 어디까지나 총알받이로 쓰면 딱이다.
“이야아아아!”
선봉이 엄호를 해주는 동안 뒤에서 눈치를 보고 있던 놈이 MP5를 난사하며 뛰쳐나갔다. 그러고는 놈은 복도를 대각선으로 가로질러 반대쪽 벽에 바짝 붙었다.
투투투투투투투― 투투투투―
녀석이 가진 두려움의 크기만큼이나 길게 난사가 이어졌다. 그러는 동안 세 번째 놈도 코너 밖으로 뛰어나가 복도를 가로질러 달렸다.
투투투투― 투투투투―
세 정의 MP5가 불을 뿜자 화분과 나무는 순식간에 박살 나버렸고, 소파에서 터져 나온 솜이 어지럽게 날린다.
파바박― 퍽― 퍽―
애송이가 들고 있던 방패에도 총알이 날아와 박힌다.
“아윽!”
9㎜탄이 방패를 때릴 때마다 팔에 전해지는 얼얼한 충격에 애송이는 비명을 지르며 재빨리 뒷걸음질을 쳤다. 모든 걸 다 집어 던져 버리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스스로가 죽지 않기 위해서라도 버텨내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코너는 그리 멀지 않다. 그의 뒤에서 응사하는 태권소녀도 잔뜩 움츠러들어 있다.
퍼벅―! 핑―!
쏟아지는 총탄의 수에 비해 결코 명중률이 높은 것은 아니지만, 이따금 한 번씩 방패가 흔들리고 금이 쫙 가면 오금이 달라붙는 것 같다.
“쫓아가! 죽여!”
방패와 태권소녀가 코너를 돌아 벽 뒤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선봉은 기가 살았다. 그는 앞서 있는 두 명을 독려하며 뒤를 따랐다.
그가 복도 벽에 달라붙으며 신이 나서 총구를 위로 들어 올릴 때, 불 꺼진 뒤쪽 사무실 문이 열리며 뭔가가 확 튀어나왔다.
번쩍!
전방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선봉이지만, 그 번뜩임만은 곁눈을 통해 보였다. 그는 본능적으로 시선을 왼쪽으로 돌렸다.
대체 그 번쩍거리는 게 뭐였는지 깨닫기도 전에 그의 왼 팔목에서 견딜 수 없는 통증이 느껴졌다.
썽둥―!
총을 받쳐 들고 있던 왼손이 날아갔다. 지지대를 잃은 MP5는 아래로 확 기울었고, 잘려 나간 팔목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쯤에야 선봉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끄아아아아아―!”
고통과 공포는 그의 판단력에 심각한 영향을 주었고, 때문에 선봉이 다시 총구를 위로 올려 왼쪽으로 돌리기까지는 0.5초 정도의 딜레이가 생겼다.
푸슉―!
마세티를 내리 돌린 힘을 그대로 살려서 찔러 넣은 민구의 쿠크리가 선봉의 목 깊숙이 박혀 들어간다.
피피핏―
민구가 쿠크리를 확 끌어당기자 선봉의 목이 뒤로 꺾이며 피가 치솟는다. 놈의 잘린 기도와 식도 안으로 피가 역류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얼굴에 피를 뒤집어쓴 민구는 재차 왼손의 마세티를 돌려 놈의 오른쪽 어깨를 찍었다. 방아쇠를 움켜쥐려던 손에서 힘이 빠지고 축 늘어진다.
“끄르륵… 끌럭!”
선봉은 핏발 선 눈을 크게 뜨고 피가 끓는 소리를 내며 고꾸라졌다. 앞쪽에서 애송이가 숨은 방향을 향해 난사를 해 대던 두 놈은 총소리에 홀려 그런 정황을 전혀 모르고 있다.
“죽어! 씨발, 죽어!”
놈들은 욕설을 퍼부으며 방아쇠를 당기는 데에만 몰두해 있다. 민구는 빠르게 달려가 태권소녀를 죽이겠다는 광기에만 사로잡혀 있는 놈들의 등 뒤를 덮쳤다.
몇 발 뒤처져 왼쪽에 서 있는 놈 먼저!
민구는 마세티를 백스윙해서 놈의 뒷목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덜컥!
놈의 목을 전부 자르고 지나친 칼날이 벽에 깊은 상흔을 남긴다. 머리를 잃은 놈의 시체가 앞으로 고꾸라지기도 전에 민구는 쿠크리를 빙글 돌려 날이 아래쪽으로 향하게 한 다음, 오른쪽에서 난사를 해 대고 있는 놈의 겨드랑이 안쪽을 확 베어 올렸다.
“어윽!”
놈의 몸이 휘청한다. 민구는 녀석의 등 뒤로 돌며 어깨에 쿠크리를 박아 뒤로 당기고, 활짝 젖혀진 놈의 목에 마세티의 날을 가져다 댔다.
사악―!
민구가 마세티를 쥔 왼손에 힘을 줘서 아래쪽으로 쭉 당기자, 곧바로 뜨거운 피가 그의 오른 손등을 적신다.
투투투투투투―
녀석은 MP5의 방아쇠를 꽉 움켜쥔 채 힘없이 무릎을 꿇었다. 놈에게서 흘러나온 피로 바닥은 이내 붉게 물들었다.
민구는 놈의 오른손을 걷어차 총을 치워 버리고, 마세티의 피를 털어낸 다음 가방 안에 넣었다. 복도에 쓰러져 있는 세 구의 시체를 보면서 민구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웃었다.
덫으로 끌어들여 처치한 계략은 아주 깨끗하게 먹혀 들어갔다. 물론 이보다는 조금 더 올 거라고 기대했었는데…….
“…조용하네. 끝난 건가…….”
총소리가 뚝 끊기자 태권소녀가 중얼거렸다. 그녀와 애송이는 벽 뒤로 몸을 피한 채 총구만 내밀어 겨우 가끔씩 응사를 하고 있었다.
애송이의 방패를 의지한 채 고개를 들어보니 복도 저편에서는 붉은 피가 가느다란 줄기를 이뤄 흐른다.
“가자.”
태권소녀와 눈이 마주치자 민구는 쿠크리의 날에서 피를 닦아내며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 민구와 함께 사무실에 숨어 있던 보안 요원은 잔뜩 웅크린 채, 바닥에 떨어져 있는 MP5와 등을 돌리고 서 있는 민구를 번갈아 주시하고 있었다.
욕심이 난다. 그와 총의 거리는 불과 2미터 남짓. 당연히 장전도 되어 있고, 모드도 연사로 조정되어 있다. 비록 피가 뚝뚝 떨어지는 왼손밖에 쓸 수 없지만, 그것으로도 총을 집고 방아쇠를 당기는 정도는 할 수 있다.
어차피 여자애는 그리 총을 잘 쏘는 것 같지 않으니 큰 문제가 아니다. 저… 민구라는 놈만 해치우면 승산은 오히려 이쪽에 있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할 수 있을까?
여기에서 몸을 날려 왼손으로 총을 집고, 불편한 자세로 총구를 들어 올린 뒤에 쏘기까지… 몇 초나 걸릴 것인가, 그것이 관건이었다.
“집어보려고?”
어느새 고개를 돌린 민구가 보안 요원을 보며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는다.
“해봐도 되지. 아슬아슬하게 승부가 갈릴지도 몰라. 이기면 영웅이잖아.”
민구와 눈이 마주친 보안 요원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며 일어서서 복종의 눈빛을 지어 보였다. 그가 칼을 휘두르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팔의 상처들이 쑤셔온다.
“앞장서.”
민구는 보안 요원과 애송이의 등을 떠밀며 미로처럼 복잡한 복도 속을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이, 이, 이상해. 왜 아, 아직까지도 도, 도착을 모, 못했지? 계, 계속 우, 우, 우리 편 총소리가 났는데?”
복도 저편의 테이블을 향해 방아쇠를 당겨 대던 메이저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도대체 어째서… 양방향으로 나눠 우회시킨 두 병력이 똑같이 이렇게 늦는단 말인가…….
세 명이 출발한 쪽은 조금 지체가 된다고 해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다른 한쪽으로는 다섯이나 되는 인원이 갔다. 게다가 모두 개인화기로 무장을 하고… 뭔가 이상하다.
“탄창! 탄창이 떨어졌습니다!”
바닥에 엎드린 채 MP5를 난사하고 있던 대원이 또 탄창을 달라고 손을 벌린다. 메이저는 못마땅한 눈으로 놈의 뒤통수를 노려봤다.
다리를 다쳐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녀석이라 여기에서 제압사격을 시켰더니, 이놈… 총알을 들이붓다시피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또 명중률은 형편없다.
왼팔이 부러져서 오른손으로만 잡고 쏴대고 있으니, 총알이 사방으로 아무렇게나 날아가는 게 당연하다.
“아, 아껴 써! 이, 이게 마지막이야!”
두 개 남은 탄창 중 하나를 녀석에게 넘겨주며 메이저는 잔뜩 짜증을 부렸다. 그의 뒤에 서 있다가 번갈아가며 한 번씩 총구를 내밀어 지원사격을 하던 헬리콥터 조종사들도, 정비사 놈도 이제는 여유 탄창이 없다. 아무래도 우회 병력만 믿고 이 대치를 너무 오래 끈 모양이다.
“저, 저쪽에 며, 며, 몇이나 있는 것 같나?”
“둘? 많으면 셋? 그 정도입니다. 그리고 한 번에 꼭 한 놈씩만 쏘고 있어요.”
대원의 대답을 들은 메이저는 슬쩍 고개를 내밀어 복도 저 멀리에 있는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처음 저게 엄폐물로 등장할 때만 해도 금방 박살이 나버릴 거라고 내심 비웃었었는데… 생각보다 오래 버틴다.
그게 다 초반에 단 두 발만으로 두 명의 아군 머리를 날린 개새끼 때문이다. 그 후로는 완전히 쫄아서 도통 머리를 내밀고 조준 사격을 할 수가 없다.
하지만 지금 상황으로 보면, 그 저격수 놈은 지금 이 중앙 복도에 없는 것 같다. 무주공산을 털려면 지금이 기회라는 의미다.
“여, 여기서 쏘, 쏘고 있어. 다, 다, 당신들은 얘 도, 돕고, 다, 당신은 나 좀 따라와.”
메이저는 대원의 어깨를 두드리며 명령한 뒤, 1호기 조종사에게 따라오라고 말했다. 대원이 물었다.
“어디 가십니까, 대장?”
“타, 타, 탁자 가지러. 우, 우, 우리도 저, 저런 거 하나 만들어서 시, 시, 식사실까지 쭉 밀고 가, 가자.”
유빈과 제니가 몸을 숨긴 테이블을 가리키며 메이저가 말했다. 저격수가 사라진 지금, 수적 우위를 가진 이쪽에서 테이블을 밀고 전진하면 적의 두 명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으리라는 계산이다.
가는 도중에 낑낑거리며 숨어 있는 개들도 회수해서 내보낸다면 식사실까지 도달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따, 따라와!”
메이저는 1호기 조종사를 끌고 뒤쪽의 방문을 열었다. 처음 몇 개의 방들은 연구실이어서 쓸 만한 가구가 없었다. 방끼리 이어진 칸막이 문을 개방해 가며 더 깊숙하게 들어가자 그제야 책상이 몇 개 나타난다.
유빈이 엄폐물로 삼은 것 같은 커다란 테이블은 아니지만, 그래도 네 명이 몸을 숨길 수 있을 정도는 된다. 한 사람이 엄호할 공간은 비워놔야 하니까 오히려 딱 적당한 크기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이걸로 하지! 하, 하, 한 세, 세 겹 겹치면 되, 될까? 다, 다리를 나, 날리면 세 겹도 되, 되는데.”
메이저는 책상을 바닥에 엎으며 말했다. 그를 따라 다른 책상을 끌던 1호기 조종사가 갑자기 정곡을 찌르는 질문을 던졌다.
“근데… 식사실에 테라가 있기는 있는 겁니까? 이렇게 총을 시끄럽게 쏴대는데, 그 방에서 아무도 문을 열어보는 사람이 없어요.”
메이저의 등골이 서늘해진다. 지금 자신이 뭘 위해서 그 많은 실탄을 소모하고, 병력을 나누고, 심지어 두 명이나 죽게 만든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조종사 놈이 옳다. 그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멋진 영화를 찍고 있었지만, 테라가 지금도 거기에 있다는 근거는 전혀 없다.
“그, 그럼 어디에 이, 있다는 거야? 여, 여기에 없으면…….”
“그야 나는 모르죠. 그냥 이상해서 물어보는 거예요.”
복잡하게 얽혀 있는 랜 케이블을 뽑아내서 덧댄 책상의 상판을 고정시키고 있던 조종사가 답답하다는 듯 대꾸한다.
그때, 복도에서 지금까지 울려 대던 MP5와 다른, 낯선 총소리가 들렸다.
투투둑― 투투둑― 타타― 타아앙―!
전신을 훑고 지나가는 불길한 예감!
메이저는 살짝 열린 사무실 문틈에 얼굴을 가져다 대고 조금 전까지 자신들이 몸을 숨기고 사격을 해 대던 위치를 엿봤다.
“헉! 흐으!”
그는 신음이 터져 나오려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왜 그러세… 읍!”
메이저는 조종사의 입을 꽉 틀어막고 그를 뒤로 당겼다. 겁에 질린 놈이 갑자기 뛰쳐나갈까 봐 두려웠다. 이제 이놈마저 잃으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다.
“조, 조용… 쉿!”
전부 다… 죽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팔팔하게 살아서 복도 저 편을 향해 아무렇게나 MP5를 난사하고 있던 쉐도우 실드 대원도, 그 옆에서 덜덜 떨며 방아쇠를 당기던 정비사도, 그리고 또 한 명의 헬리콥터 조종사도… 모두 죽어버렸다.
엎어진 채 꼼짝할 줄 모르는 세 구의 시체들. 근처의 벽과 바닥에는 피와 뇌, 그리고 뼛조각이 흩뿌려져 있다. 이제 저 망할 놈의 복도 벽 앞에 쓰러진 시체는 총 다섯 구나 된다.
“그만 쏴! 유빈아! 여기 정리 완료!”
보이지 않는 각도에서 낯선 목소리가 외쳤다.
얼! 얼!
개도 짖는다. 조금 전 외쳤던 목소리가 말했다.
“그럼, 그럼, 우리 삼숙이도 잘했어.”
그래도 총소리가 그치지 않자 조금 전의 것보다 훨씬 더 큰 목소리가 고함을 지른다.
“쏘지 마! 다 죽였다고!”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것처럼 커다란 그 목소리!
어딘가 귀에 익다. 분명히 들어본 적이 있다. 그것도 아주 최근에…….
“아, 그래? 다 끝난 거야?”
반가워하는 목소리. 그리고 총성은 끊겼다. 그리고 잠시 후, 엿보는 시야에 들어온 근육질의 팔뚝!
이상한 장갑을 낀, 솥뚜껑만 한 손이 방패 아래로 보이자마자 메이저는 조종사를 이끌고 반대편으로 난 사무실 문을 열고 복도를 내달렸다.
이제 기억났다! 저 목소리! 잊을 수가 없다! 저 덩치! 저놈의 커다란 주먹! 단 한 방에 자신의 갈비뼈를 박살 낸 괴물! 개새끼!
그는 복수할 수 있는 기회라는 것도 인식하지 못할 만큼 겁에 질려서 무작정 계단을 향해 달렸다. 이제 테라고 뭐고, 그런 건 나중 문제다. 우선 내가 살아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다. 달아나야 한다.
“어디로 가는 거요? 하아! 하아! 항복합시다!”
그에게 팔목을 잡혀 끌려오던 1호기 조종사가 말했다. 메이저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소리를 질렀다.
“다, 닥쳐! 씨발 놈아! 그, 그냥 뛰어!”
항복을 한다고 해서 살려줄 놈이 아니다. 저 주먹에 한 번 더 걸렸다간 겨우 뼛조각을 맞추고 꿰매놓은 얼굴이 다시 다 터져서 걸레처럼 되어버릴 것이다.
얼― 얼! 얼!
개가 짖어 대는 소리까지 울리자 메이저의 머릿속은 완전히 하얘졌다.
콰앙―
그는 계단 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무조건 달려서 옥상의 1호기로 가겠다는 생각, 그것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계단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또 다른 존재들은 그를 순순히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그롸아아아아아―
소름이 끼치는 포효! 그리고 계단 위에서 정신없이 뛰어내리는 좀비들!
메이저는 다급하게 MP5의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투투투투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