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422화 (422/449)

3장 공주는 잠 못 이루고 (1)

“흐억!”

동료의 뇌수와 피를 뒤집어쓴 메이저와 대원들은 기겁을 하며 벽에 달라붙었다. 엎어진 시체에서는 끊임없이 피가 흘러나온다. 당황한 대원 둘이 총구를 밖으로 내밀고 마구 대응 사격을 했다.

투투투투투투― 투투투투―

적이 어디에 있는지, 자신의 총구가 어느 정도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도 전혀 가늠하지 못한 채 그냥 무작정 갈겨 대는 난사였다.

깨갱! 깨갱~!

아군이 등 뒤에서 쏜 총알에 맞은 셰퍼드들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나머지 두 마리도 깜짝 놀라 방향을 바꿔 달아났다.

“후우~ 후우~”

발밑을 적시는 붉은 피를 보면서 메이저는 숨을 헐떡였다. 잠시 잊고 있었던 그 지하 1층에서의 악몽이 떠오른다.

설마 또… 또 그 마귀 같은 놈들과 마주하고 있는 것인가…….

그는 거친 숨을 내쉬며 뒤를 돌아보았다. 네 명의 부하가 잔뜩 긴장한 채 명령을 기다리고 있다. 그중 하나는 발목과 팔에 부상을 입은 녀석, 전투력이 온전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리고 여섯 명의 직원과 두 명의 헬리콥터 조종사.

조종사들을 전투에 써먹는 건 정말 최후까지 고민해야 하는 일이다. 저놈들이 죽어버린다면 전투에 이긴다고 해도 여기에 고립되어 버린다.

조종사 둘을 계산에서 제외한다면 일단 전투에 쓸 수 있는 가용 병력은 그 자신을 포함해서 11명과 부상병 하나.

‘적은 몇이나 되는 걸까…….’

메이저는 침을 꿀꺽 삼키며 생각했다.

잠시 벽 뒤로 몸을 숨겼던 진우는 총소리가 그치자마자 고개를 살짝 내밀고 복도 반대편을 노려보았다. 거리는 약 40미터. 코너 바로 앞에는 머리가 박살 난 채 죽은 시체가 보인다.

달려오던 네 마리의 셰퍼드 중 두 마리는 죽고 나머지는 열려 있는 사무실 안으로 모습을 감춰 버렸다.

‘젠장, 조금만 빨리 왔으면 좋았을걸…….’

진우는 속으로 혀를 찼다. 하필이면 8층 식사실 앞에 거의 다다랐을 때, 이렇게 적들과 대치를 하는 상황에 처해 버렸다. 삼숙이가 미리 경고를 해줘서 대비는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마음이 조급하다.

좋은 소식이라면 저놈들이 저렇게 지원을 올 만큼 중요한 무언가가 식사실 안에 아직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중요한 무언가’란 테라일 가능성이 높다.

다만, 식사실 안에 있는 테라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적들이 전부 몇 놈이나 되는 건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 때문에 자꾸 서두르고 싶어진다.

“방패 들고 나갈까?”

그의 등 뒤에서 삼식이가 속삭였다. 식사실까지는 불과 20여 미터. 무리해서 방패를 앞세워 전진한다면 충분히 도착할 수도 있을 것처럼 보이기는 한다. 진우가 대답했다.

“아니… 있어봐. 조금 있다가 저쪽에서 한 놈 더 머리를 내밀어서 이쪽을 볼 거야. 그놈부터 잡고, 그다음에 몇 놈이나 되는지도 알아야 돼.”

“설마? 방금 한 놈이 머리가 터져서 죽었는데, 또 그렇게 할 리가…….”

“우연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진우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10여 초 후, 정말 그가 말했던 것처럼 한 놈이 슬금슬금 얼굴을 내밀었다.

진우는 딱 치명상을 입힐 수 있을 만큼만 기다렸다. 정찰하려는 놈의 머리통 절반 정도가 벽 밖으로 빠져나왔을 때, 그는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빨간색 피 안개가 목표의 귀 뒤쪽에서 확 뿜어져 나오는 걸 확인하자마자 진우는 코너 안쪽으로 몸을 숨겼다. 곧바로 요란한 총소리가 들려온다.

투투투투투투― 투투투투투투―

벽의 코너에 무수한 흠집이 나고, 시멘트 먼지가 정신없이 날렸다. 귀를 쩌렁쩌렁 울리는 총성을 들으며, 진우는 놈들이 몇이나 되는지 파악하기 위해 애를 썼다.

투투투투투― 투투투투투―

세 정 이상의 총이 난사를 해 대고 있다. 그리고 탄창을 교환할 시점이 지났는데도 그 기세가 줄어들지를 않는다. 그러면 적어도 다섯 명 이상의, 개인화기로 무장한 적이라는 의미다. 진우는 친구들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꽤 많은가 봐! 좀 있으면 몇 놈이 저쪽으로 돌아올 거야! 그리고 아마 반대쪽으로도!”

진우가 가리킨 것은 조금 전 그들이 지나온 복도. 그 사이마다 미로처럼 복잡한 길들이 나 있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떼어온 건물의 구조도는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그들은 지형적으로 불리하다. 여기는 어디까지나 적에게 더 익숙한 낯선 전장이다.

방패가 두 개 있다고는 해도 저 정도 화력이 난사를 퍼부어 대면 버티기가 어렵다. 함부로 벽 바깥으로 몸을 내미는 건 자살 행위다.

“그럼 우리도 갈라지지.”

민구가 말했다. 진우는 유빈을 돌아보며 그의 판단을 기다린다. 유빈은 잠시 망설였다.

“그럼 적어도 세 방향이어야 하는데…….”

지금 그들이 대치 중인 식사실 복도, 그리고 오른쪽, 왼쪽 통로. 갈라져서 싸우자는 흉터사내의 말은 옳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세 방향에서 협공을 당하게 될 상황이니까.

그렇다고 이 복도를 포기해 버리면 놈들은 식사실에서 나온 녀석들과 합류해서 테라를 데리고 도망쳐 버릴 것이다.

적이 늘어나는 것도, 이 넓은 건물 어딘가로 놈들이 숨어버리는 것도, 유빈이 원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니 이쪽도 적어도 세 팀으로 나눠서 각기 다른 방향에서 접근해 오는 적들을 상대하는 게 맞다.

하지만… 다른 말로 하면 그건, 한 단계 더 큰 위험과 마주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진우와 떨어져서… 총으로 무장한 적과 싸운다는 게 과연 현명한 결정인 걸까…….

“조를 이렇게 나누자.”

마침내 마음을 정한 유빈이 입을 열었다. 그는 먼저 진우와 삼식이, 그리고 보안관을 가리켰다.

“너희 셋이 한 조야! 삼식이가 방패 들고, 진우, 네가 다 죽여야 돼! 보안관은 문짝이든, 테이블이든 뜯어서 방패막이를 같이해 주고, 가까이 오는 놈들하고만 싸워! 아, 그리고 혹시 개가 덤벼들면 삼숙이랑 같이 그것도 상대해야 돼! 보니까 진우 이놈은 개 못 쏘겠나 봐. 알았지? 너희가 왼쪽으로 가!”

“왼쪽? 여기를 맡는 게 아니고?”

K―2의 총구만 내밀어서 마구잡이로 응사를 하고 있던 진우가 깜짝 놀라 다시 확인한다. 유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쟤들 계속 아무렇게나 쏴대기만 하고 접근하지 않잖아! 뭐, 이상할 것도 없지. 머리를 내밀다가 두 명이나 죽었는데. 이 중앙 복도에서는 시간 끌고 우리 주의만 흐트러뜨리려는 거야. 양쪽으로 나뉜 놈들이 여기로 들이닥칠 때까지.”

“근데 왜 하필 왼쪽이야? 오른쪽도 있는데!”

진우는 탄창을 갈아 끼운 K―2로 한 번 더 응사를 하며 물었다.

“쟤들한테는 그게 오른쪽이고, 복도를 지나지 않아도 접근할 수 있는 방향이니까. 분명히 더 많이 올 거야. 나라도 그렇게 하겠어.”

유빈이 대답했다. 논리적으로 다 말이 되는 이야기 같아서 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안관을 이 팀에 붙인 이유도 간단했다. 친구들은 저 총알이 빗발치는 구간을 재빨리 가로질러 가야 하니까, 커다란 엄폐물을 들고 화력 에이스를 보호해 줄 완력이 필요한 것이다.

“혜주는 저 아저씨랑 같이 오른쪽으로 가줘. 네가 총을 쏴야 돼. 삼식이가 너보다는 좀 더 잘 쏘지만, 쟤는 마음이 여려서 사람 머리 쉽게 못 날려. 꼭 명중시키지 않아도 돼. 그냥 저 아저씨랑 같이 저놈들이 어느 선 이상으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저지만 해줘. 어차피 진우 팀에 70퍼센트 이상 전력이 몰려 있으니까, 진우가 알아서 해결할 거야.”

유빈이 태권소녀에게 부탁했다. 태권소녀는 민구를 한 번 힐끔 보고 나서 물었다.

“내가 총을 쏘면, 방패는 누가 들어?”

“저기 있잖아, 방패 들 사람들.”

유빈은 보안 요원과 애송이를 가리켰다. 그들이 성실하게 엄폐물을 들어줄 것인가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민구의 쿠크리가 엄청난 동기부여를 해줄 테니까.

“그럼 여기는?”

진우가 물었다. 아무리 병력을 나누는 거라고는 해도 중앙이 너무 텅 비는 것 같아 불안하다.

“나랑 제니가 번갈아가며 쏘면서 발만 묶어놓을게. 그사이에 네가 해치워.”

그건… 뜻밖의 작전이었다. 조금 전 두 번에 걸쳐 이뤄진 원샷, 원킬로 인한 적의 두려움이 가장 클 공간인 중앙. 그래서 감히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리라는 배짱을 등에 업고, 제일 약한 두 명이 맡겠다는 역발상. 다시 말해 왼쪽으로 돌아 접근하는 진우 팀에게 처음부터 모든 것을 거는 작전이다.

하지만 말은 된다. 둘이 적당하게 난사만 계속 유지해 줘도 적들은 쉽사리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 바닥에 쓰러져 있는 두 구의 머리 뚫린 시체가 계속 그들에게 무언의 압박을 가할 테니까.

“제니가… 이거,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보안관이 잠시 걱정스런 눈빛으로 제니를 바라본다. 그러다가 이내 납득을 하고 삼식이와 함께 뒤쪽의 빈 사무실로 들어갔다. 복도를 가로질러 이동하려면 방탄 엄폐물이 필요하다.

유빈과 제니도 그 뒤에 숨어 싸운다면, 벽에 기대 고개를 내미는 것보다 훨씬 안전할 것이다. 그리고 진우를 제외하면, 그들 중 제일 총을 잘 쏘는 건 제니다.

“비켜!”

몇 초 뒤, 두 친구는 커다란 회의용 테이블을 들고 사무실에서 나왔다. 그러고는 그걸 모로 눕혀 바닥에 내려놓았다.

“자! 이거 뒤에 몸을 숨기고 쏴!”

그렇게 말한 보안관은 긴 직사각형 모양의 테이블을 복도 쪽으로 밀어 넣었다.

피잉― 핑― 핑―

테이블이 벽 밖으로 노출되자마자 너덧 발의 총알이 적중된다.

“이거 뚫리잖아!”

두꺼운 테이블을 관통한 총알구멍을 보고 보안관이 깜짝 놀라 외쳤다. 폴리카보네이트 방패가 총알을 막아내는 걸 보고 이 정도면 끄떡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역시 아무 재질이나 방탄 기능을 가지는 건 아닌가 보다.

“잠깐 기다려! 다른 걸로 가지고 와볼게!”

보안관은 다른 사무실 안으로 다시 뛰어 들어가서 좀 더 튼튼해 보이는 걸 찾았다. 하지만 사무실에 있는 집기라야 엄연히 한계가 있다.

테이블, 의자, 책상, 그리고 몇 개의 선반…….

책상 서랍에서 덕테이프를 찾은 보안관은 결국 다시 똑같은 크기의 테이블을 끌고 나왔다. 그러고는 해머로 때려 한쪽 방향의 다리 두 개를 떼어냈다.

“그놈, 고집 어지간히 세군. 자기 입으로 뚫린다고 했으면서…….”

덜덜 떨고 있는 애송이에게 방패를 들고 어떻게 앞장을 서야 하는지를 가르치고 있던 민구가 보안관의 모습을 보며 혀를 찬다.

보안관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두 개의 테이블을 겹쳐 놓으며 다리끼리 덕테이프로 단단히 고정시켰다.

“하나가 뚫리면 두 겹으로 하면 되지! 그래도 안 되면 세 겹으로 하면 되고!”

두 테이블을 고정시킨 뒤, 보안관은 다시 그 엄폐물을 복도 밖으로 밀었다.

핑―! 핑―! 피잉―!

또다시 총알이 테이블을 때린다. 하지만 이번에는 관통되지 않았다. 두 개가 합쳐져 한 뼘 가까운 두께가 된 테이블의 합판은 4분의 3 지점에서 9㎜ 파라블럼탄을 저지시켰다.

투투투투투― 투투투투―

테이블이 복도 밖으로 삐죽이 나온 이후에도, 적들의 사격 빈도는 별다른 변동이 없었다. 유빈의 말이 맞았다. 이놈들은 고개조차 내밀지 않고, 그저 기계적으로 제압사격만 해 대는 중이다. 테이블 때문에 복도에 변화가 생겼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투투둑― 투투투― 투투둑―

진우는 새로 생긴 엄폐물에 의지해서 한차례 3점사를 퍼부어준 뒤, 보안관, 삼식이와 함께 왼쪽 복도로 돌아 나갔다.

“다들 조심해.”

친구들은 서로에게 조심하라는 인사를 남기고 헤어졌다. 삼숙이도 코너를 돌아 사라지기 전에 제니를 한 번 돌아보았다.

이제 민구와 태권소녀 조가 복도를 가로질러 반대편을 향해 출발할 차례다.

“탁자를 밀어.”

유빈이 총구를 밖으로 내밀고 갈겨 대는 동안, 민구는 애송이와 보안 요원에게 명령했다. 유빈으로부터 방패를 건네받은 애송이는 덜덜 떨면서도 테이블을 민 뒤, 허리를 굽히고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티팅―! 핑―!

총알에 맞아 테이블이 밀릴 때마다 애송이는 기겁을 하며 주저앉았다가 겨우 다시 정신을 차리고 앞으로 기었다.

“무리하면 안 돼.”

엄폐물에 몸을 가린 채 재빠르게 복도 건너편으로 뛰어간 태권소녀가 제니와 유빈을 향해 웃어준다. 그러고는 MP5의 손잡이를 꽉 잡은 채 민구 일행과 함께 복도의 오른편 코너로 돌아 나갔다.

피이잉― 핑! 핑!

친구들이 모두 사라진 뒤, 복도에는 유빈과 제니, 그리고 총알이 튀는 요란한 소리만이 남았다.

투투투― 투투둑― 투투투― 투두둑―

유빈이 먼저 테이블 안으로 뛰어 들어가서 머리 위로 총구를 내민 뒤, 방아쇠를 당겼다. 대응 수칙은 간단하다. 교대로 한 번씩 총구만 위로 내밀어 3점사를 퍼부으며 좌우로 총구를 돌린다. 한 사람이 천천히 탄창 30발을 다 쓰는 동안 다른 사람이 탄창을 교환하고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면 된다.

투투투― 투투투―

유빈은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어가면서 부지런히 방아쇠를 당겼다. 놈들이 쏜 총알이 날아와 박힐 때마다 테이블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탁탁탁탁―

진우 팀은 빠르게 왼쪽 복도를 내달렸다. 혹시나 적이 매복하고 있는 건 아닐지에 대해 걱정하며 시간을 지체할 필요는 없었다. 이쪽에는 삼숙이라는 훌륭한 디텍터가 있으니까. 만약 적이 가까워지면 녀석이 먼저 경고를 해줄 것이다.

방패를 들고 앞장선 삼식이도, 그 뒤를 따르는 진우와 보안관도 복도 뒤쪽에서 울려오는 총성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급해졌다. 조금은 무모한 이 작전의 성패는 그들이 얼마나 빨리 우회한 적의 별동대를 격파하고 본진의 뒤를 치느냐에 달려 있다.

만약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면 상대도 유빈과 제니의 명중률이 그리 위협적이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될 테고, 그러면 훨씬 더 과감하게 거리를 좁히려 들 것이다.

얼―!

진우와 속도를 맞춰 달리던 삼숙이가 낮게 짖는다. 녀석이 몸으로 가리키는 방향은 T자형으로 갈라진 복도의 오른편.

친구들은 발소리를 죽이고 진형을 갖춘 채 앞으로 접근했다. 적의 발소리는 아직 조금 거리가 있다.

“나는 일루 돌아간다.”

보안관이 왼쪽 갈림길을 가리키며 귀엣말을 한다. 혹시 놈들이 진우에게 막힌 뒤, 다시 도망을 쳐서 중앙의 복도 놈들과 합류할까 봐 미리 뒤에서 길목을 막으려는 것이다. 진우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걱정스럽게 물었다.

“먼저 나서면 위험해.”

“걱정하지 마. 총소리 들리면 그때 눈치 봐가면서 덤빌 테니까.”

그렇게 대답한 보안관은 해머를 들고 왼쪽 복도 안쪽으로 사라졌다. 진우와 삼식이는 기척을 숨긴 채 발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기다렸다.

대략 네 명에서 여섯 명 사이의 규모라고 추측하고 있을 때, 별로 반갑지 않은 소리가 들려왔다.

으르렁! 월! 월! 컹컹!

뒤쪽에서 달려드는 두 마리의 셰퍼드. 중앙 복도에 있던 놈들은 아니다. 적들이 처음 8층에 도착했을 때 풀어놓은 두 마리가 복도를 배회하다가 그들의 배후를 치는 상황이 온 것이다.

개새끼들이 짖어 대기 시작했으니, 이제 완벽한 기습으로 우회 병력을 전멸시키는 건 텄다.

“나가자!”

진우는 삼식이의 어깨를 쳤다. 삼식이는 커다란 키를 잔뜩 수그린 채 방패를 들고 코너 밖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마치 한 몸인 것처럼 진우도 녀석의 뒤에 바짝 붙어 함께 따라 나갔다.

투투투투투― 투투투투―

복도에 서 있던 적들의 MP5가 먼저 불을 뿜는다.

퍼버벅― 파박― 팍―

폴리카보네이트 방패에 총알이 박힌다. 해머로 두드리는 것보다 더 큰 충격이 가해질 때마다 실금이 쫙쫙 가며, 투명했던 방패가 우윳빛으로 변한다. 동시에 머리 위로도, 바닥으로도 총알이 튀고 바람을 갈랐다.

누구라도 오줌을 찔끔 싸며 제 자리에 주저앉을 만큼 무서운 일이지만, 삼식이는 눈을 똑바로 뜨고 버텨냈다. 남을 해치는 일에는 모질지 못하지만, 친구를 지키는 일이라면 그 누구보다 용감한 녀석이다.

투투툭― 투투툭― 투투둑―

든든한 삼식이의 등 뒤에서 첫 번째 공격을 받아낸 진우는 곧바로 몸을 일으키며 3점사를 퍼부었다.

퍽! 퍼벅―!

삼식이를 향해 총알을 날리던 두 놈의 머리통이 아예 절반 이상 날아가 버렸고, 뒤돌아 달아나며 마구잡이로 쏴대던 놈의 얼굴에도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거의 동시에 쓰러지는 세 구의 시체들 너머, 코너의 안쪽으로 도망가는 놈의 다리가 보인다. 녀석을 맞추기 위해 방패 밖으로 몸을 빼내려던 진우는 다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반대편 코너에 그들을 향해 내밀어진 총구가 있다.

투투투투투투― 투투투투투―

난사를 받아내는 동안 삼식이의 방패는 거의 걸레쪽처럼 너덜너덜해졌다. 잘게 바스러진 방패의 모서리가 사방으로 튀어나간다.

진우는 삼식이의 목덜미를 잡고 살짝 당겨서 후퇴하자는 의사를 전했다. 삼식이는 진우와 발을 맞추며 다시 벽 안쪽으로 물러났다.

컹! 컹! 월! 월!

그렇게 적들과 총알을 교환한 몇 초 동안 계속 달려온 셰퍼드들은 이제 코앞으로 다가왔다. 그래도 진우는 복도 반대편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총구를 내밀어 제압사격을 했다.

투투둑― 투투둑―

그에게는 삼식이 말고도 든든하게 믿는 녀석이 또 있기 때문이다. 셰퍼드들이 진우를 향해 뛰어오르려고 하는 바로 그 순간!

얼―!

진우의 뒤쪽에서 잔뜩 도사리고 있던 삼숙이가 벼락처럼 날아오르면서 앞선 놈의 목을 콱 깨물고 벽에 짓찧었다.

“으르르르르! 으르르!”

삼숙이는 사납게 머리를 흔들면서 셰퍼드의 목덜미 안으로 더 깊이 이빨을 박아 넣었다. 물론 다른 셰퍼드도 가만히 보고 있지만은 않았다.

놈은 삼숙이의 뒤로 돌아가기 위해 애를 쓰며 날카로운 이빨이 가득한 주둥이를 크게 벌리고 짖어 댔다.

삼숙이는 물고 있던 놈을 놔주지 않은 채 몸을 이리저리 돌리며 또 다른 한 마리의 공격을 피했다.

바닥에 깔린 셰퍼드는 어떻게든 일어나 보려 버둥대지만, 삼숙이의 커다란 덩치와 강력한 치악력은 녀석의 저항을 무력화시키기에 충분했다.

으르렁! 얼! 얼!

두 번째 셰퍼드가 마침내 기회를 얻어 삼숙이의 뒷다리를 문다. 그때까지 계속 첫 번째 개의 목을 물고 흔드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던 삼숙이는 갑자기 벌떡 몸을 일으키며 체중을 실어 녀석의 뒤쪽을 덮쳤다.

끼잉―

목 뒷덜미를 물린 두 번째 셰퍼드가 구슬프게 울부짖는다. 녀석의 입에 물려 있던 삼숙이의 굵은 뒷다리는 이제 자유로워졌다. 삼숙이는 앞발에 힘을 주어 녀석의 등에 비스듬히 올라타면서 귀와 목덜미를 사정없이 물어뜯었다.

털썩―!

누르는 무게를 이기지 못한 두 번째 셰퍼드가 바닥에 쓰러졌다. 그때부터는 삼숙이의 일방적인 공격이었다. 삼숙이는 녀석의 주둥이를 옆에서 깨물고 앞발로 머리를 꽉 누른다.

끄응~ 끄응~!

두 번째 놈이 당하는 동안에 겨우 몸을 추스른 첫 번째 셰퍼드는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안쪽으로 둥글게 말려 들어간 녀석의 꼬리가 이미 전의를 상실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삼숙이는 놈을 곁눈으로 노려보면서 자신의 발밑에 깔려 있는 두 번째 녀석의 주둥이를 계속 꽉 깨물고 머리를 챘다.

그렇게 2대 1의 승부는 전직 대장개의 승리로 끝을 맺었다.

“다시 나갈까?”

진우가 벽에 기댄 채 힘겹게 복도 양쪽의 적들과 총격전을 벌이고 있는 걸 보며 삼식이가 물어온다.

하지만 녀석의 방패는 이미 더 이상 방패의 기능을 수행할 수 없을 만큼 심하게 손상되었다. 만약 한 번 더 난사에 노출되었다간 산산조각이 나버릴 것이다.

“아니야! 가만히 있어! 위험해!”

진우는 삼식이의 어깨를 뒤로 잡아당기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는 슬쩍 총구를 내밀어 3점사를 퍼부었다.

딱 한 번.

딱 한 번만 두 놈 중 한 놈이 탄창을 교환하는 순간까지만 기다리면 된다. 양방향에서 동시에 총알이 날아오지만 않으면 저런 놈들 따위, 단번에 처리해 버릴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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