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난폭하게! 잔인하게! (8)
“헤에엑― 헤에엑! 끄으으으!”
오 박사는 필사적으로 다리를 끌며 걸었다. 개새끼에게 물려 뜯겨 나간 아킬레스건이 울릴 때마다 참기 어려운 고통이 전기신호처럼 척추를 찌른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곁에서 부축을 하고 있는 쉐도우 실드 조장에게 끊임없이 달콤한 제안을 계속했다.
“내가 말이지… 끄으윽! 이… 이 좆같은 위기만 벗어나면… 일단 자네부터… 끄으응… 보안 책임자로 임명할 거야! 후우우~ 후우우! 그게 내가 제일 처음 내릴 명령이라고.”
조장은 별다른 대꾸 없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경계하는 일에만 집중했다. 왜 일이 이렇게 꼬여 버렸는지 모르겠다. 비록 함께 끌고 온 직원들 대부분을 미끼로 삼아 던져 주면서였지만, 그래도 8층에서 15층까지 잘 올라왔었다.
이제 21층까지 겨우 여섯 층만 남았다고 내심 조금은 안도하고 있을 때, 좀비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쳤고, 거기에 더해서 느닷없이 계단 문이 열리며 이상한 놈들이 잔뜩 나타났다. 분명한 건 놈들의 꼴이 절대로 아군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의리고 뭐고 다 버리고, 일단 오 박사와 함께 다시 아래층으로 달아났다. 그런데 갑자기 본 적도 없는 시꺼먼 개새끼 한 마리가 쫓아와 그의 팔과 오 박사의 발목을 물어뜯었다.
겨우겨우 놈을 뿌리치기는 했지만 이제 그는 전투력이, 오 박사는 기동력이 심각하게 손상되어 버렸다.
“앞장서서 계속 걸어! B섹션 계단 어디 있는지 알잖아!”
조장은 왼손으로 삼단봉을 휘둘러 앞장서서 걷고 있는 두 명의 엔지니어를 재촉했다. A도, C도 쓸 수 없으니, 이제 B섹션으로 빙 둘러 돌아가서 그곳 계단에는 좀비들이 없기를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엔지니어들은 몇 걸음마다 겁먹은 얼굴로 뒤를 돌아본다. 조장을 신뢰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후다닥 달아나 버릴 만큼의 용기도 그들에게는 없다. 손에 들려 있는 조그만 연장 따위, 그저 무력하게만 보인다.
‘하긴 씨발, 겁먹을 만도 하지… 뭔 놈의 복도에 피가 이렇게…….’
복도 전체가 흥건하다고 해도 될 만큼 여기저기에 피의 웅덩이가 잔뜩 만들어져 있다. 거기에 더해서 저 끔찍하게 우렁찬 좀비의 울음소리. 다른 놈들보다 유난히 크고 사납다.
지금 당장은 조금 멀지만, 이제 곧 그들을 따라 가까워져 올 것이다. 서둘러야 한다.
“젠장, 너무 춥군… 이게 왜 이렇게 냉방이…….”
피투성이 다리를 움켜잡으면서 걷던 오 박사가 몸서리를 친다. 온 몸을 휘감아 얼려 버릴 것 같은 냉기. 갑자기 겨울의 한복판에 떨어지기라도 한 듯, 이가 딱딱 맞부딪칠 만큼 사무치게 춥다.
“정신 차려요. 비틀거리지 말고!”
조장은 오 박사의 몸을 거칠게 챘다. 오 박사 이놈이 살아 있어야 승진이고 부귀영화고 기대할 수 있지만, 만약 이놈 때문에 목숨을 위협 받게 된다면 곧바로 내던지고 달아날 참이다. 물론 오 박사 역시 그런 조장의 생각 정도는 빤히 읽고 있었다.
“하아, 하아… 이봐, 버릴 사람 앞에 둘이나 있잖아.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끄으응, 우리는 끝까지 같이 가야 된다고. 이렇게 힘든 데서 의가 상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서로 힘이 되어주려고 해야… 정말 믿을 수 있는 사이인 거지. 알잖아, 서로 백업해 주는 팀 말이야.”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오 박사가 계속 지껄이고 있을 때, 뒤쪽에서 저벅거리는 발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온다. 조장은 이를 악물고 걸음을 서둘렀다. 저 복도의 코너를 돌아 나타날 게 반가운 얼굴일 리가 없다.
“왜, 왜 그래요?”
조장과 오 박사가 걷는 속도를 올리자 앞서 걷던 엔지니어들의 표정도 굳는다.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는다.
엔지니어들은 자신을 바라보는 조장의 눈빛이 이상하게 번뜩인다고 느끼며 뛸 채비를 했다. 그러나 조장이 손을 쓰는 게 조금 더 빨랐다.
빠악―!
조장은 삼단봉으로 두 엔지니어 중 왼쪽에 서 있던 놈의 발목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아윽!”
엔지니어는 발목을 움켜쥐고 바닥을 뒹군다. 또 다른 엔지니어는 화들짝 놀라 무작정 앞으로 뛰어나갔다.
“어차피 너희들도 이럴 줄 알았잖아? 응? 너도 어떻게 하면 나를 미끼로 삼을 수 있을지, 그 궁리만 했을 거 아냐? 이 새끼야!”
조장은 엔지니어의 하체를 계속 후려치며 소리를 질러 댔다. 이놈이 걷지 못해야, 그래서 미끼가 되어 잡아먹히고 있어야 자신들이 달아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다. 엔지니어의 정강이와 발목은 금세 퉁퉁 부어올랐다.
“으아악! 아악! 이 개새끼야!”
엔지니어는 비명을 내지르다가 마지막 반항으로 들고 있던 망치를 집어 던졌다.
핏―
망치는 조장의 코끝을 스치고 날아가 복도 뒤쪽에 떨어져 버렸다. 코 안쪽에 확 번지는 비릿한 피 냄새를 맡고 나서 조장은 오히려 표정이 밝아졌다.
한 번 공격을 받았으니 이제 죄책감 같은 걸 깨끗이 지워 버릴 수 있다. 어차피 먹고 먹히는 세상. 언제든 승자와 패자가 바뀔 수 있었다. 먼저 기회를 잡은 쪽이 이긴 것뿐이다.
“죽어! 깨끗이 죽으라고, 이 새끼야!”
조장은 으직, 소리가 날 만큼 강하게 엔지니어의 무릎을 후려치고 나서 놈을 내버려 둔 채 앞으로 걸어 나갔다.
“으윽! 으윽! 윽!”
아킬레스건이 끊긴 발목이 질질 끌릴 때마다 오 박사의 입에서는 신음이 터져 나온다. 하지만 걸음을 멈추거나 속도를 늦추지는 않았다. 그랬다가는 죽는다는 걸 너무도 분명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아악! 아아아!”
뒤쪽에서 좀비들의 포효와 엔지니어의 비명이 섞여 들려온다. 오 박사는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세 마리다. 세 마리의 좀비가 다리가 작살나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엔지니어의 몸을 덮치고 닥치는 대로 물어뜯고 있다.
“방… 일단 아무 방이나 들어가서 피해야 하는데…….”
조장이 식은땀을 뚝뚝 흘리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도무지 문이 눈에 띄지 않는다. 오 박사도 놈의 넋두리를 듣고 나서야 깨달았다.
12층은… 보존소가 있는 층이다. 워낙에 거대한 보존소가 건물의 중앙을 차지하고 설치되는 바람에 이 층의 대부분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이 비정상적인 냉기와 갑자기 창궐한 좀비들이 어디에서 나타난 것인지도 깨달을 수 있었다. 보존소다. 실험체가 된 좀비들을 보관하던 보존소의 문이 열린 것이다.
정확한 이유나 경위는 모르겠지만, 그로테스크한 좀비들을 찾으러 갔던 연구원, 그 개놈들이 뭔가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게 분명하다.
“해부실이 있어! 해부실!”
오 박사는 조장에게 외쳤다. 조장이 잔뜩 찌푸린 얼굴로 돌아본다.
“해부실?”
“그래! 해부실로 가면 도망칠 수 있어! 거기에… 하아, 하아… 해부한 샘플들을 다른 층으로 실어 보내는 소형 엘리베이터가 있어. 소형이라고 해도 인체 샘플이랑 용기를 실어야 하는 거니까 꽤 커! 웅크리면 한 명씩은 충분히 들어갈 수 있다고! 오른쪽이야! 섹션 A로 가자!”
“하지만… 엘리베이터는 안 움직일 텐데…….”
“그건 달라! 그냥 엘리베이터라고 불렀다 뿐이지, 사실은 리프트 비슷한 거니까… CCTV도 달려 있지 않고, 경비 본부에서 통제하는 것도 아니야. 15층이랑 16층 세균 배양실로까지 이어지는 거라고!”
뜻밖의 희망을 발견한 조장과 오 박사는 걸음을 서둘렀다. 복도의 코너를 돌았을 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건 앞서 도망가 버렸던 엔지니어와 그를 맛있게 뜯어먹고 있는 좀비들이었다.
“허억!”
조장과 오 박사는 다시 방향을 틀었다. 엔지니어의 목이 뒤로 완전히 젖혀져 있는 것으로 보아 놈의 목숨은 이제 몇 초 남지 않았다. 그사이에 어서 달아나야 한다.
다행히 이 길고 복잡한 피투성이 복도는 그들에게 익숙한 공간이었다. 특히 오 박사에게는…….
“여기서 돌아!”
오 박사는 몇 차례나 조장의 어깨를 당기며 방향을 틀었다. 조장은 너무도 두렵고 혼란스러워서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를 지경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복도 벽에 부착된 화재 대비 용품 함에 도끼가 들어 있는 건 놓치지 않았다.
“잠깐… 이걸 챙깁시다.”
조장은 삼단봉을 휘둘러 얇은 투명판을 깨고, 1미터 조금 넘는 길이의 빨간색 도끼를 집었다.
묵직한 쪼개기용 도끼. 이 정도면 한 마리와 마주 쳤을 때는 승산이 있을 것이다. 조장은 오 박사를 다시 부축하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지금까지는 오 박사를 내던지기 위한 최후의 미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소형 엘리베이터 이야기가 나온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그는 그 리프트인지, 엘리베이터를 조작하는 방법을 모른다. 그러니 탈출을 위해서라도 오 박사를 살려서 해부실까지는 데리고 가야 한다.
“다 왔어! 저기! 저 표지판 왼쪽으로!”
오 박사가 기쁨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코너를 돌면 이제 해부실이다.
그때, 교차로에 들어선 그들의 앞을 가로막으며 좀비 한 마리가 다가왔다.
“뭐야! 너, 너는!”
오 박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비록 끔찍한 몰골이 되어 있지만, 자신이 그로테스크한 좀비를 찾으라고 이곳으로 올려 보냈던 연구원 중 한 놈이라는 것만은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다.
“물러나요!”
조장은 오 박사를 옆으로 밀어 치고 도끼를 두 손으로 잡으며 연구원 좀비를 마주했다. 다행히도 그리 빠르게 뛰는 놈은 아니었다. 척추가 꺾여 버린 탓에 아주 기묘한 자세로 비틀거리면서 좀비는 조장과의 거리를 좁혀왔다.
“으라아아!”
초조하게 입술을 핥던 조장이 먼저 공격을 날렸다. 그가 힘껏 내휘두른 쪼개기용 도끼가 연구원 좀비의 머리통 위쪽을 후려갈겼다.
쩌적!
두개골 위쪽의 살점이 날아가고, 연구원 좀비의 몸이 휘청한다. 하지만 놈을 죽일 만큼 제대로 들어간 타격은 아니었다.
그롸아아아―
연구원 좀비는 두 팔을 내민 채 조장의 목을 노리고 달려들었다.
“으얍!”
조장은 기죽지 않고 다시 도끼를 휘둘렀다. 도끼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좀비의 팔꿈치를 부러뜨렸고, 연구원 좀비는 다시 휘청거린다.
“하아~ 하아! 젠장…….”
오 박사는 벽에 기대선 채 조장과 연구원 좀비의 일전을 초조하게 지켜보았다. 물론 조장과 운명을 같이하려는 생각 따위는 추호도 없었다. 그저 이 싸움에서 조장이 이기면 좋고, 만약 전세가 불리해지면 그때 달아나려고 마음을 먹고 있던 것뿐이다.
조장이 뜯어 먹히는 동안이면 충분히 해부실까지는 갈 수 있다. 하지만 그 혼자서 해부실의 엘리베이터로 용케 올라간다고 해도, 그때부터 또 막연해진다. 그러니 일단은 조장이 이겨서 함께 가주는 게 제일 좋은 경우의 수다.
“죽어라, 씨발!”
조장은 요란하게 소리를 지르며 열심히 도끼를 휘둘러 대고는 있지만, 워낙 겁에 질려 있어서 쉽사리 승부를 결정짓지 못했다.
단번에 죽이지 못한 탓에 연구원 좀비의 몸뚱이는 도끼 자국으로 엉망이 되어갔다. 두 팔은 부러져 덜렁거리고, 얼굴도 거의 반쪽이 날아갔다. 어쨌든 그래도 승기는 꽤나 이쪽으로 넘어온 상태였다.
“헉!”
그 순간, 뒤쪽을 돌아보던 오 박사가 절망적인 신음을 터뜨린다. 엄청난 크기의 좀비가 복도 저 끝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보자마자 오 박사는 그것이 지금까지 그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문제의 그 커다란 포효의 주인공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내… 내가 아니잖아! 네가 원한을 가질 대상은!”
그 커다란 좀비가 E9104596이라는 것과, 그녀가 살아 있을 때 메이저로부터 지독한 폭행을 당하면서도 기록적인 긴 생존 기간을 가졌다는 걸 기억해 낸 오 박사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롸아아아아아―
복도 끝에 인간이 둘이나 있다는 걸 확인한 E9104596은 크게 울부짖고 나서 맹렬한 속도로 뛰어오기 시작했다. 그 뒤로 좀비들이 몇 마리나 따라왔지만, 그녀에 비하면 무서울 것도 없는 수준이었다.
“히에엑!”
오 박사는 앞뒤 재지 않고 무조건 조장 쪽으로 기었다. 이제는 먼 앞날을 걱정할 때가 아니다. 일단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게 우선이다. 이젠 두 명 모두 해부실까지 도달한다는 건 불가능해졌다.
“뭐요? 하아! 하아!”
겨우 연구원 좀비의 목을 잘라낸 조장이 숨을 헐떡이며 자신의 등 뒤에 달라붙은 오 박사를 돌아본다. 오 박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에 조장을 뒤로 당기며 그 반동을 이용해 앞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하지만… E9104596은 그의 예상보다 훨씬 더 빨랐다.
턱!
E9104596의 커다란 손이 오 박사의 팔목을 잡는다. 그러고는 사정없이 비틀어 당긴다.
“아아악!”
팔이 뒤로 꺾여 버린 오 박사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조장의 뒤로 몸을 숨겼다. 뒤늦게 좀비들의 존재를, 특히 E9104596의 모습을 확인한 조장도 어떻게든 오 박사를 잡아 뒤로 던지고 달아나려 했다. 그러나 이미 늦었다.
콰드득!
E9104596의 이빨이 조장의 목덜미를 파고든다. 그러면서도 그녀의 손은 뒤에 서 있는 오 박사의 팔목을 계속 잡아당기고 있다. 아마도 앞뒤로 달라붙어 있는 두 사람의 신체를 분리해서 인식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끄으으으으!”
목덜미가 뜯겨 나간 조장이 도끼를 휘둘렀다.
칵―!
도끼는 E9104596의 두툼한 어깨에 박혔다. 하나 그것뿐이다. 그녀의 어깨는 기진맥진한 조장 정도의 힘으로는 도저히 잘라낼 수 없을 만큼 크고 단단했다.
E9104596는 도끼가 박힌 채로 왼손을 휘둘러 조장의 턱을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사정없이 비틀어 뜯었다.
“커컥!”
턱이 부서져 빠져 버린 조장이 끔찍한 고통을 이기지 못해 비틀거린다. 오 박사는 자신의 팔을 빼내려고 안간힘을 써봤지만, E9104596은 놔줄 생각이 없었다.
으지직!
오 박사의 팔꿈치가 조장의 어깨에 걸려 아래로 꺾여 버렸다.
“아아아악! 아으으으! 끄으으으!”
오 박사는 절규하며 펄쩍 뛰었다. 물어뜯긴 아킬레스건의 통증을 깨끗이 머릿속에서 지울 만큼 날카롭고 강렬한 고통!
하지만 팔목이 단단히 잡혀 있기에 마음대로 쓰러질 수도 없었다. 팔꿈치가 완전히 박살 난 그의 왼팔은 여전히 E9104596의 손아귀에 꽉 잡혀 있는 채다.
꿀쩍! 꿀쩍! 꽈득!
E9104596은 피투성이가 된 조장의 목을 계속 베어 물면서 버릇처럼 오 박사의 팔목을 쥔 손을 위아래로 휘둘렀다.
우득!
아래로 꺾인 오 박사의 팔꿈치가 다시 관절의 45도 방향으로 당겨진다. 오 박사는 날카롭게 부러진 자신의 팔뼈가 가죽을 찢고 밖으로 튀어나오는 광경을 자신의 두 눈으로 지켜봐야 했다.
“아윽! 으으윽!”
팔뼈가 이상한 방향으로 무리하게 돌아갈 때마다 오 박사의 입에서는 계속해서 극적인 비명이 터져 나왔다.
E9104596는 그의 팔을 부러진 나무젓가락처럼 빙글빙글 돌려서 완전히 뜯어내려고 하고 있다.
끄와아아아아―
그러는 동안 뒤늦게 출발했던 다른 좀비들도 속속 도착했다. 놈들은 E9104596과 오 박사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어 있는 조장의 몸 여기저기에 이빨을 박고, 마구 뜯어냈다.
이제 오 박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다. 고통을 줄이고 싶다는 안일한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가는 좀비들의 밥이 될 상황이다.
“끄으으으! 으윽!”
오 박사는 이를 악물고 조장의 몸을 밀어내면서 E9104596가 자신의 팔을 잡아 뜯는 걸 도왔다.
찌지직― 뜨득―!
신경이 손상될 때마다 눈앞이 번쩍이다가 금세 또 깜깜해지기를 반복한다. 제발 팔이 빨리 잘라지기만을 바라며 오 박사는 온 체중을 실어서 몸을 뒤로 잡아챘다.
빠득―!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끔찍한 소리. 그리고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끔찍한 고통!
이제까지 팔이 부러지고 근육이 찢어지던 그 모든 과정이 그저 장난 수준에 불과했다고 느껴질 만큼 엄청난 크기의 고통이 아주 짧은 순간 그의 전신을 휘감았다. 그리고 오 박사는 뒤로 밀려나 엉덩방아를 찧었다.
“으헥! 으윽! 헤엑!”
오 박사는 앞뒤 잴 틈 없이 몸을 돌려 정신없이 기었다. 오른손으로 바닥을 짚고 버릇처럼 팔뚝이 없어진 왼팔을 내미는 순간, 그는 끔찍한 통증을 느끼며 복도 바닥에 코를 찧었다.
뜯겨져 나간 왼팔의 팔꿈치 위쪽이 덜덜 떨린다. 아무 생각 없이 뼈가 드러난 단면으로 바닥을 짚은 대가는 혹독했다.
“흐으으으으! 으으으으!”
오 박사는 온몸을 떨면서도 입술을 꽉 깨물고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 복도를 걸었다. 눈앞의 모든 것이 일렁거리고, 바닥은 양주 한 병을 다 마셨을 때보다 더 심하게 흔들렸다.
“아니! 아직은… 아직은……!”
자신의 팔꿈치에서 쫙쫙 뿜어져 나오는 피를 밟고 비틀거리면서도 오 박사는 포기하지 않고 해부실을 향해 걸어갔다.
이제 겨우 세 걸음, 그것만 걸어가면 이 지긋지긋한 12층과 작별할 수 있다.
“흐으으으! 이 개 같은 것들… 다 대갈통에 구멍을 뚫어서 죽여주마!”
해부실의 스캐너에 아이디카드를 가져다 댄 오 박사는 문이 열리는 동안, 복도를 돌아보며 원한에 가득 찬 다짐을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서둘러 해부실 안으로 몸을 던졌다.
“흐으! 흐으!”
반가운 소독약 냄새!
오 박사는 비틀거리며 해부실 문의 닫힘 버튼을 눌렀다. 그때, 그의 귀에 쿵쿵거리며 달려오는 육중한 발소리가 들렸다.
“안 돼! 아… 안 돼!”
온몸의 피가 싹 빠져나가는 것 같은 공포!
이 발소리가 누구의 것인지는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리고 붙잡히는 순간, 어떻게 될 것인지도…….
오 박사는 문에서 멀어지기 위해 뒤로 돌았다. 첫걸음을 떼는 순간!
쿵!
닫히려는 해부실 문 안으로 육중하고 두꺼운 팔뚝이 쑥 밀고 들어온다. 그러고는 그의 발목을 움켜쥐었다.
콰당―!
오 박사는 E9104596의 그 압도적인 힘을 이기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바닥에 짓찧은 그의 입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린다. 침이 닿자 반쯤 부러져 버린 앞니가 시큰거리고, 코는 순식간에 부어올랐다.
“커어억! 후우우! 으으!”
오 박사는 끌려 나가지 않기 위해 정신없이 두 팔을 휘저었다. 아무것이라도 잡아보겠다는 마음밖에는 없었다. 왼팔의 팔꿈치 아래가 없어졌다는 것도 잠시 잊을 만큼 다급했지만, 상황은 그에게 별로 유리하지 않았다.
와장창!
그가 꽉 붙잡고 버티던 진열대가 당겨지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그의 몸 위로 쓰러져 버렸다. 진열대 위에 놓여 있던 각종 해부 기구들과 보존용 유리 기구의 파편들이 오 박사의 등 위에 박힌다.
“아으으윽!”
진열대의 모서리에 맞아 머리가 찢긴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운데, 날갯죽지에 메스가 꽂히고 유리 조각들이 얼굴을 가른다. 오 박사는 광대뼈에 박힌 커다란 유리 조각을 빼낼 여유도 없이 해부용 침대의 다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
쿠웅―
E9104596의 팔에 걸려 닫히지 못한 해부실의 문이 다시 열렸다 닫히기를 반복한다. 저 그로테스크한 좀비 괴물 년이 멍청해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오 박사는 생각했다.
만약 이렇게 문이 열렸을 때, 저 엄청난 괴물이 해부실 안으로 뛰어 들어온다면 그것으로 모든 게 끝나 버린다. 그러니 아직 기회가 있을 때 빨리 방법을 찾아야 한다.
“어? 으읏!”
다급하게 좌우를 두리번거리던 오 박사의 시선에 뼈 절단용 전기톱이 들어왔다. 조금 전, 진열대에서 떨어져 내린 모양이다. 오 박사는 얼른 그걸 집어 들고 스위치를 켰다.
위이이잉―!
둥근 톱날은 아주 매서운 소리를 내며 힘차게 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