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난폭하게! 잔인하게! (6)
“이, 이, 이상하군. 아, 아, 안 받아. 뭐지?”
메이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8층의 식사실로 몇 번이나 전화를 걸었는데, 도무지 응답이 없다.
대체 오 박사는, 그리고 그 많던 인원들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15층의 오 박사 비서들에게 물어봐도 별로 신통치 않은 대답이 돌아올 뿐이다.
“혹시 자기들끼리 도망친 거 아닙니까?”
그와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빠져나온 대원이 물었다. 발목에서 계속 피를 흘리며 좀비들과 싸운 탓에 녀석의 얼굴은 핏기가 많이 사라져 있다.
“그, 그, 그럴 수도 있는 이, 이, 인간이지만, 어떻게 도, 도망을 쳐? 로, 로비에는 조, 좀비들이랑 초, 초, 총 든 새끼들이 자, 잔뜩 있고, 헤, 헤, 헬리콥터 조종사들은 여, 여기 다 있는데.”
메이저는 뒤쪽에 서 있던 헬리콥터 조종사와 정비사들을 가리켰다. 좀비들이 뛰어다니는 5층을 정리하고 다니면서 그가 구출해 낸 사람들이다.
문을 꼭 잠그고 버티던 조종사들이 MP5를 든 구세주가 왔다는 사실에 안도하면서 방문을 열어줬을 때, 메이저도 뿌듯했다.
요즘 인간 같지 않은 괴물들에게 연일 치이느라 체면이 말이 아니지만, 그래도 아직 그는 대태양 그룹의 쉐도우 실드에서 넘버 원의 무력을 가진 인물이다.
같잖은 좀비 새끼들 몇 마리가 설치고 다닌다고 해도 그가 총을 잡은 이상 걱정거리가 되지 않는다. 복도에 자빠져 있는 수많은 좀비들의 시체가 그 자랑스러운 증거다.
그리고 조종사들의 숙소 안에 있던 내선 전화를 사용해 지금 막 8층에 연락을 한 참이다. 그런데 이렇게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다니…….
도저히 납득이 가질 않아서 메이저는 미간을 찌푸렸다. 침입자들이 이 건물에 대해 얼마나 많은 사전지식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테라와 오 박사가 8층 식사실에 있다는 것까지 콕 집어 알 수는 없다. 그건 그들이 침입하기 직전에 오 박사가 내린 결정이기 때문이다.
CCTV도 잡히지 않는 층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 그만큼의 정보를 캐려면, 적어도 몇 군데의 사무실을 뒤지고 다니며 직원들에게서 꼬투리 단서를 얻고 그걸 바탕으로 추리를 해야 한다.
아직 그 모든 일을 할 만한 시간은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이 건물에는 CCTV에 잡히지 않는 층이 몇 개나 된다. 8층 말고도 공격해야 할 후보지가 아주 많다는 의미다.
“뭐, 뭐, 뭔지는 모, 모르겠지만, 이, 일단 8층으로 가자. 거, 거기 가보면 무슨 다, 다, 단서가 있겠지.”
메이저는 MP5를 집어 들고 대원의 어깨를 두드렸다. 다른 건 다 포기할 수 있지만, 테라, 그년만은 그냥 두고 떠날 수 없다. 무슨 수를 쓰든 반드시 데려가서 피는 뽑아 팔고, 그년의 야리야리한 몸뚱이로는 온갖 재미를 볼 것이다. 그 희고 앙상한 등짝을 허리띠로 후려갈기고 싶다. 그년이 가늘고 고운 목소리로 비명을 지르는 상상만으로도 그의 숨결은 거칠어졌다.
“가, 가, 갑시다. 이, 일단 파, 팔층으로.”
메이저는 조종사들과 다른 직원들에게 말했다. 그와 부상을 입은 대원을 제외하면 지금 여기 모인 사람들은 모두 여덟 명. 테라와 오 박사까지 태우게 된다면 자리가 부족할 테지만, 그건 그때 가서 몇 놈 처리하면 되는 일이다.
“근데 8층에 뭐가 있습니까? 거기 이제 폐쇄시킨 곳 아닙니까?”
1호기 조종사가 물었다. 내부의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훤히 꿰뚫고 있는 건 아니지만, 폐쇄된 조직 속에서 생활하다 보니 들려오는 소문은 있다.
며칠 전, 파멸의 마녀가 작은 회장 좀비를 헬리콥터에 싣고 남부로 가버렸다는 정도는 그도 안다.
“아, 거, 거기에 지금 테, 테, 테라, 그년이 있지. 그, 그건 데, 데, 데리고 가야 할 거 아냐. 어, 어떻게 손에 너, 넣은 건데… 따, 따라와.”
메이저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하며 앞장을 섰다. 방 밖으로 발을 내디딘 순간부터 그의 표정에 조금씩 긴장감이 더해진다.
조금 전까지 복도를 쩌렁쩌렁 울리던 좀비들의 울음소리는 이제 깨끗이 사라졌지만, 그가 걱정하는 것은 지하 1층에서 그의 대원들을 몰살시켰던 그 악마 같은 놈들이다.
“잠시만요… 저희도 아쉬운 대로 무기 좀…….”
직원들은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 거나 하나씩 집어 들었다. 정비용 보호 장갑과 스패너 정도면 그래도 맨손인 것보다는 마음이 훨씬 든든해진다.
다리를 다친 대원은 직원의 부축을 받으며 걸었다. 부러진 팔 때문에 부축을 받으면서도 그의 입에서는 계속 신음 소리가 흘러나온다.
“아, 아직 그, 그대로 있네. 자… 오, 오, 올라가 보자.”
직원들을 인솔해서 엘리베이터까지 도착한 메이저는 자신이 내렸던 엘리베이터가 아직도 5층에 멈춰 서 있다는 걸 깨닫고 작은 기쁨을 느꼈다.
엘리베이터가 몇 분 전과 같은 위치라는 건 이 빌딩의 대다수가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의미고, 아직 그리 큰 난리가 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응? 이, 이, 이게?”
메이저가 당황한 목소리를 냈다. 아무리 버튼을 눌러도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지 않는다.
그는 이내 이 상황을 깨달았다. 아무도 엘리베이터를 불러 올리지 않았던 게 아니다. 지하 경비 본부에서 가동을 중단시킨 것이다.
“허, 그, 그, 그렇게 하, 할 수 있다는 걸 어, 어, 어떻게 알았지? 개새끼들이……. 좋아, 아, 안 타면 되지. 그까짓 거, 겨, 겨, 겨우 세 층인데. 여기는 마, 막혔어! 계, 계단으로 간다!”
메이저는 다시 직원들을 쭉 끌고 비상계단 쪽으로 걸어갔다. 어차피 한 섹션당 계단이 하나씩 있기 때문에 그리 멀리 걸어가지 않아도 된다.
“네, 네, 네가 조금 힘들겠다. 그 다리로 거, 걸어가려면… 부, 부축 좀 자, 잘해줘.”
계단 앞에 선 메이저는 뒤쪽의 부상당한 대원과 그를 부축하고 있는 직원을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가로로 긴 막대기처럼 생긴 손잡이를 꾹 누르며 문을 밀었다.
끄와아악―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가 열린 문틈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엇?”
메이저는 반사적으로 손잡이를 꽉 잡으며 문을 멈춰 세웠다. 하지만 계단 안쪽에서 달려드는 놈의 움직임은 그의 반응속도보다 훨씬 빨랐다.
그롸아아― 가아아―
문틈으로 팔이 쑥 들어와 문이 닫히는 걸 막는다.
저 특유의 부패한 피부! 좀비의 팔이다.
“으아아앗!”
메이저는 비명을 지르며 손잡이를 잡고 버텼다.
턱― 턱― 좀비는 계속 손을 휘저으며 문을 안으로 잡아당겨 댄다. 그러는 사이에 또 다른 놈까지 가세해 버렸다.
끄롸아아악―
문에 걸쳐진 좀비의 팔이 두 개 더 늘어났다. 그리고 다른 좀비들의 울음소리와 계단을 뛰어내리는 발소리가 빠르게 가까워진다.
더 못 버티겠다고 생각한 메이저가 이판사판으로 MP5의 손잡이를 움켜쥐는 순간, 뒤쪽에서 따라오던 직원이 힘차게 도끼를 휘둘렀다.
콰작! 콱! 와작!
좀비들의 팔이 잘려 나가고, 문을 둘러싼 대치에서 메이저에게 아주 작은 여유가 생겼다. 그는 재빨리 MP5를 들어 올리며 문틈 안으로 총알을 퍼부었다.
투투투― 투투둑― 투투둑― 투투두―
머리와 가슴, 어깨가 꿰뚫린 좀비들이 뒤로 나가떨어진다. 다른 직원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막대형 손잡이를 당겨 문을 닫았다.
쿵―
문이 단단히 닫히는 소리가 울리고, 곧바로 모두들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쿠웅― 쿠웅―
안쪽에서 문을 들이받을 때마다 두꺼운 쇠문이 문틀과 부딪치며 울린다. 놈들이 안쪽 손잡이를 돌려서 문을 열지 못하는 게 정말 다행스러운 상황이다.
“하아아~ 하아아~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여기 5층만 그런 게 아니고… 건물 전체에 좀비들이 쫙 퍼졌던 겁니까?”
소방용 도끼를 휘둘러 좀비의 팔을 잘라냈던 직원이 헐떡이며 물었다. 메이저라고 해서 계단이 갑자기 왜 좀비들 천지가 되어버렸는지 알 수는 없었다. 다만, 상황이 더욱 악화되었다는 것만은 확실히 느낄 수 있다.
계단이 좀비들로 버글버글하다. 그 전체적인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기에 더 두려울 수밖에 없다.
이제 그 혼자서만 총을 앞세운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부러진 팔을 흔들어가며 관통상을 입은 다리를 질질 끌고 걷는 부하의 투지는 대견하지만, 녀석이 한 손으로 쏘는 총은 거의 맞지 않았다.
저 지옥 같은 데를 뚫고 8층까지 올라가려면, 더 많은 총과 사수가 반드시 필요하다. 예비 실탄도 슬슬 바닥을 보이는 중이다.
하지만 그걸 대체 어디서 구할 수 있단 말인가. 개인화기는 21층과 지하 1층에 있는데…….
“총… 하아~ 하아~ 초, 총…….”
거친 숨소리에 섞어 외마디 소리를 더듬거리던 메이저가 갑자기 엘리베이터를 돌아본다. 그러고는 조종사들에게 물었다.
“다, 다, 당신들, 초, 총 쏘, 쏘, 쏠 줄 알지?”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닙니까? 군대에서 먹은 밥이 몇 년인데…….”
조종사들과 정비사들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메이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따라오라는 손짓을 했다.
“자, 잘됐어. 내, 내, 내가 총 구, 구해주지. 이, 이거 찍어서 여, 여, 열어.”
다시 엘리베이터 앞으로 돌아온 메이저는 소방용 도끼를 들고 있던 직원에게 자신이 타고 올라왔던 엘리베이터의 문틈을 찍으라고 말했다.
“여기에 총이 있어요? 이 안에?”
“그, 그, 그래. 서, 서둘러! 빠, 빠, 빨리 무, 무장 갖추고 오, 올라가자!”
메이저의 확답을 들은 직원은 도끼로 엘리베이터의 문틈을 찍고 옆으로 벌렸다. 조금 틈이 생기자마자 다른 직원들도 각자 갖고 있던 연장을 이용해 그 간격을 벌렸다.
대여섯 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힘을 합해 달려들자 굳게 닫혀 있던 엘리베이터의 문이 차츰 넓게 열렸다.
“윽! 어으!”
벌어진 문틈으로 엘리베이터 내부의 광경을 본 직원들이 코와 입을 가리며 얼굴을 찌푸린다.
처참하게 파괴된 다섯 구의 시체, 그리고 시체에서 뿜어져 나온 피와 뇌, 내장 조각들… 엘리베이터 바닥에 웅덩이처럼 고여 있던 피가 주르륵 흘러내린다. 전부 다 쉐도우 실드 대원들의 시체다.
“이, 이 사람들 어떻게 된 겁니까? 왜 이렇게… 으읍!”
조종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메이저는 일단 피에 흠뻑 젖은 MP5부터 주워 올려서 그걸 조종사의 손에 쥐어 주고, 죽은 부하의 전술 조끼에서 탄창을 빼내 자신의 탄창에 끼워 넣었다.
“내, 내, 내가 다, 당신이라면, 그딴 걸 무, 무, 물어볼 시간에 초, 총이랑 탄창부터 채, 챙기겠어. 이유가 뭐가 됐든 이, 이, 이런 짓을 할 만한 놈이 이 거, 건물 내에 있다는 거니까. 내, 내가 그래서 빠, 빨리 오, 올라가야 한다고 해, 했잖아!”
그 말을 들은 직원들은 구역질을 해가면서도 피 웅덩이 안에 발을 집어넣고 피범벅이 된 MP5와 탄창들을 꺼내왔다.
그들이 웃옷을 벗어 총기의 피를 닦아내는 동안 메이저는 부하들의 시체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아주 조금이기는 하지만, 죄책감이 밀려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복수를 하겠다는 엄두는 들지 않았다. 저 아래 지하 1층에 있던 적의 사수들은… 인간이라기보다는 기계다. 그만큼 집요하고 잔인하고 실력이 빼어났다.
지금 그가 그 악마들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복수는, 이곳에서 테라를 데리고 달아나 그들이 목표를 완수하지 못한 분노에 떨게 만드는 것이다.
“가, 가, 각자 자기 총 나가는지 시, 시험 사격 한 번씩 해봐.”
다시 계단 문 앞에 선 메이저가 문을 열기 전, 마지막으로 직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MP5가 아무리 잘 만들어진 총이라고는 하지만, 저렇게 피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었으니 고장이 난대도 전혀 이상할 게 없다.
투투둑― 투투투― 투투투―
직원들은 두 사람씩 앞으로 나서서 먼 복도 쪽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다행스럽게도 격발이 되지 않는 총은 없었다.
“다, 당신들은 뒤, 뒤로 빠져.”
문을 열기 전, 메이저는 조종사들을 가장 뒤쪽으로 보냈다. 저것들이 없으면 모든 게 다 계획대로 풀린다고 해도 이 건물에서 탈출할 수가 없다.
다른 직원들도 그 점에 대해서는 암묵적으로 동의를 하는 분위기였다.
“여, 여, 열어!”
메이저도 다른 직원들과 나란히 서서 사격 자세를 갖춘 채 크게 외쳤다. 개인화기를 차지하지 못한 직원이 문의 손잡이를 콱 눌러서 힘껏 민 뒤, 옆으로 빠졌다.
삐이익―
활짝 열렸던 계단 문이 다시 되돌아 닫히려는 순간.
턱―!
좀비의 얼굴이 문틈 사이로 뛰어든다. 녀석을 신호로 더 많은 놈들이 계단을 뛰어 내려와 문을 향해 몸을 날린다.
“쏴!”
메이저는 외마디 명령을 내리는 것과 동시에 방아쇠를 당겼다. 그의 양옆에 서 있는 직원들도 입술을 꽉 깨문 채 문을 열고 뛰어오는 좀비들을 향해 3점사를 퍼부었다.
투투투― 투투투― 투투둑― 투투투―
☆ ☆ ☆
“여기 이상하네. 계단에 뭐 이리 좀비들이 돌아다녀?”
15층 문을 열고 복도로 들어가며 태권소녀가 중얼거렸다. 옥상에서 이곳으로 오는 동안 스무 마리가 넘는 좀비를 죽였다. 이쯤 되면 단순히 1층이 뚫렸기 때문인 것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조금 전 죽인 좀비들은 아이디카드까지 걸고 있었다. 여기 직원들인 것이다.
“내 생각에도 이상해. 사람들을 좀비로 만들어서 보관해 둔다고 하더니… 그 창고 같은 게 무너졌나? 왜 하필 오늘…….”
방패를 들고 앞서 달리던 유빈도 태권소녀의 의견에 동의했다. 이 건물의 좀비들 수와 분포는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어디야? 그 오 박사라는 놈 방이?”
민구가 보안 요원을 다그치며 잡아끈다.
“으윽! 윽! 저기 A섹션으로… 아윽! 중요 시설은 다 그쪽에 있습니다! 아악! 팔은 잡지 마세요! 윽!”
녀석은 민구에게 애원을 하며 비명을 삼켰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어지럽고 지치는데, 이 원수 같은 것들은 올라갈 때만 엘리베이터를 이용한 뒤, 그걸 딱 잠가두고 계단으로 뛰어 내려온다.
다들 체력은 또 얼마나 좋은지, 이 인정사정없는 칼잡이가 개중 가장 느린 인간이다.
괴롭다. 잠시만 쉬고 싶다.
“저, 저깁니다! 저기! 이제 저 조금만! 으윽!”
보안 요원은 오 박사의 연구실을 가리켜 준 뒤,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심장에 조금씩 이상이 온다는 게 느껴진다. 숨을 쉬는 게 점점 더 고통스럽고, 머리로 전달되는 산소가 부족해서 메스껍다.
“안 열리는데? 안 열려!”
보안관이 먼저 아이디카드를 대보고 도움을 요청했다. 열 개가 넘는 아이디카드를 주렁주렁 목에 걸고 있는 유빈이 나서서 차례로 하나씩 스캐너에 대본다.
하지만 계속 삐익― 하는 불쾌한 소리만 울려 댈 뿐이다.
“젠장, 여기서 제일 높은 새끼 방이라더니… 자기 혼자만 열 수 있게 해놓았나? 그러면 아주 지랄 맞은데?”
유빈이 땀을 뚝뚝 떨어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보안관은 결국 다시 해머를 들었다. 좀비 세상이 시작된 이래로 잠겨 있는 모든 문과 그가 대화하고 타협하는 방식이다.
콰앙―
보안관이 있는 힘껏 해머를 휘두르자, 단단한 스테인리스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린다. 자물쇠가 어지간히 단단했지만, 보안관은 몇 번이고 다시 해머를 다시 들어 올린 후 힘차고 집요하게 같은 자리를 내려찍었다.
콰앙― 쾅, 터엉―!
열 번이 넘는 매질을 당하자 그렇게 단단해 보이던 첨단의 잠금장치도 슬슬 우그러지며 틈을 보이기 시작했다. 보안관은 문틈에 얼굴을 바짝 대고 큰 소리를 질렀다.
“어차피 박살 날 문이니까 안에 있으면 지금 나와라, 이 개새끼야! 내가 따고 들어가면 너는 아주 뒈지는 수가 있다!”
그렇게 협박의 말들을 늘어놓은 뒤, 보안관은 잠시도 기다리지 않고 다시 해머를 휘둘렀다. 복도는 다시 쇠와 쇠가 부딪치는 요란한 소리로 가득 찼다.
얼―! 얼!
삼숙이가 복도 반대쪽을 보며 짖는다. 삼식이가 녀석이 가리키는 방향에 맞춰 방패를 들었고, 그 뒤로 바짝 붙어선 진우가 총구를 겨눈 채 나타날 적에 대비했다.
덜컹―!
문이 열린다. 진우의 손가락은 방아쇠를 이미 아주 지긋하게 누르기 시작했다.
한데…….
열린 문 안에서 뛰어나온 것은 딱 보기에도 싸움 따위와는 거리가 먼 백면서생들이었다.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과 어두운 색 정장을 입은 여비서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난다.
아마 조금 전 보안관의 협박이 엉뚱하게 저쪽에 먹혀들었나 보다.
“거기 서요!”
진우가 외쳤다. 하지만 도망자들은 느려 터진 달리기로 뒤뚱거리며 계속 뛴다. 이쪽이 총을 가지고 있다는 것조차 잘 모르는 것 같다.
한심하군…….
김빠지는 수준의 적들을 보며 진우는 입맛을 다셨다. 그래도 일단 뛰어서 쫓아가야 잡을 수 있고, 그래야 아이디카드를 빼앗아서 이 문을 열든, 뭘 하든 할 수 있다.
“서라고! 내 말 안 들려?”
진우는 천장을 향해 위협사격을 날리며 달리기 시작했다.
얼―! 얼―!
삼숙이 녀석이 곧바로 속도를 올린다. 나머지 친구들도 그 둘의 뒤를 쫓아 뛰었다.
“쏘지 마요! 쏘지 마세요!”
두 명의 여직원이 바닥에 납작 쪼그려 앉으며 항복의 의사를 표했다. 민구가 그녀들의 머리끄덩이를 잡아 올리며 사납게 말했다.
“따라와! 오 박사 새끼 방 구경 좀 하자.”
“아아악! 저, 저희한테는 키 없어요! 저기… 저 사람! 저 사람이 열 수 있어요! 수석 연구원이라서요! 오 박사 행방도 알아요!”
여직원들은 비명을 지르며 막 코너를 돌아 사라진 놈을 지목했다. 그녀들의 말을 신뢰하는 것과 별도로 유빈은 일단 아이디카드부터 벗겨서 자기 목에 걸었다.
얼―! 얼―!
삼숙이가 가장 앞서서 수석 연구원의 뒤를 쫓는다. 진우와 보안관도 달리는 속도를 높였다. 코너를 돌자 거리가 완전히 좁혀진 삼숙이와 연구원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얼―!
삼숙이가 몸을 날려 수석 연구원의 등을 덮쳤다. 수석 연구원은 맥도 못 추고 바닥을 나뒹굴었다.
“물지 마! 씨발! 이 개새끼가! 물지 말라고!”
삼숙이는 그저 앞발에 체중을 실어 제압하고 있을 뿐인데, 수석 연구원은 제풀에 겁을 먹고 발버둥을 쳐 댄다. 그러고는 가운 앞주머니에서 작은 권총형 주사기를 꺼냈다.
수석 연구원의 눈빛이 사납게 변한다. X―1이 들어 있는 주사기. 그가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좀비 밥으로 만들기 위해 사용한 충직한 무기!
제까짓 개새끼가 아무리 잘난 척을 해봐야 이것 한 방이면 운동능력을 잃고, 두 방이면 심장까지 멈춘다. 그는 두 방을 잇달아 쏠 계획이었다.
타앙―
복도를 울리는 총성!
총소리에 깜짝 놀라 어깨를 움츠리던 수석 연구원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데굴데굴 구른다. 오른손이! 주사기를 들고 있던 오른손이 통째로 사라졌다!
“끄아아아아―! 으윽! 아흐으으!”
피가 쫙쫙 뿜어져 나오는 오른 팔목을 움켜쥐고 비명을 지르는 수석 연구원의 목을 뭔가가 콱 짓누른다. 진우의 등산화였다. 진우는 분노한 표정으로 수석 연구원을 노려보며 말했다.
“내 친구에게 무슨 짓 하려고 했어… 이 새끼야.”
뭐지? 이 미친 새끼는…….
수석 연구원의 눈이 공포에 사로잡힌다.
개를 두고 자기 친구라니…….
하지만 진짜 미친 새끼가 곧바로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민구는 연구원의 가슴과 어깨 사이에 쿠크리를 푹 찔러 넣으면서 물었다.
“오 박사 어디 갔나?”
“끄아아아악! 아악! 이 미친 새끼야!”
연구원의 입에서 또다시 비명이 터진다.
이런 미친! 개새끼가! 상식적으로 일단 물어보고 대답이 없으면 그때부터 고문이 시작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모르면 그냥 죽어라.”
연구원의 대답이 1초도 지연되지 않았을 때, 민구는 차갑게 내뱉으며 쿠크리의 날을 심장 쪽으로 당기기 시작했다.
“아아악! 8층이요! 8층입니다! 8층 식사실에 있어요! 아아악! 아윽! 8층! 8층! 8츠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