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416화 (416/449)

2장 난폭하게! 잔인하게! (4)

긴급 수동 모드로 가동되는 화물용 엘리베이터는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순식간에 32를 지난 표시 창을 보고 있으면서 삼식이가 걱정스럽게 중얼거렸다.

“근데 혹시 길이 엇갈리면 어쩌지? 우리가 올라가는 동안에 그 놈들이 내려와서 도망가 버리거나 하면.”

이 큰 건물에 계단이 한두 개도 아니고,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유빈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설사 길이 엇갈린대도 밖으로 도망은 못 쳐. 지금 로비랑 주차장이 다 좀비 밭인데, 우리가 훑고 내려올 동안 그걸 다 죽일 수도 없을걸? 만에 하나 용케 그럴 수 있다고 해도 멀리 도망치지지도 못할 거고.”

애초부터 장벽을 박살 냈을 때부터 그런 걸 기대했었다. 몰려 들어온 좀비들이 경비견의 역할을 해 줄 수 있을 거다. 아군, 적군 가리지 않고 공격해 대는 위험한 경비견.

“…다 왔습니다. 문… 엽니까?”

애송이가 땀을 삐질거리며 뒤를 돌아보고 물었다.

이놈들… 대체 언제까지 자기를 끌고 다닐 건지…….

슬슬 불안해진다. 물론 배에 칼을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 화장실에 갇혀 버린 수염이나, 양팔이 다 피범벅이 된 채 끌려 다니는 저 보안 요원의 신세보다는 자신의 처지가 훨씬 낫긴 하지만…….

“잠깐만요. 준비 좀…….”

유빈과 삼식이가 투명 폴리카보네이트 재질의 방패 손잡이를 꽉 잡고 자세를 낮추며 말했다. 경비 본부에서 가지고 나온 쉐도우 실드의 비품이다. 옥상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 혹시 습격을 받게 될지도 몰라 준비해 두었었다.

얼! 얼!

삼숙이가 밖을 향해 짖는다. 경계 중인 병력이 있다는 뜻이다.

“제니랑 혜주 잘 지켜줘.”

사격 준비를 마친 진우는 삼숙이의 머리를 쓸며 다정하게 당부했다.

드르르륵―

화물 엘리베이터의 문이 위쪽으로 열리자마자 두 친구는 보폭을 맞추며 앞으로 뛰어나갔다. 그리고 그 뒤에 진우가 바짝 붙어 함께 움직였다.

나머지는 구조물 뒤로 모습을 숨겼고, 민구와 보안관은 반대편으로 돌아 달렸다.

탁탁탁탁탁―

드넓은 옥상 위에 세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울린다. 멀리 반 층 정도 위쪽으로 툭 튀어나온 헬리포트와 검은 헬기가 보인다.

“거기 뭐야?”

헬리포트 주변에 앉아 초조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던 대원들이 깜짝 놀라 묻는다.

문답무용! 진우는 방패 위로 총구를 내밀며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둑― 투투둑―

이상한 낌새에 곧바로 MP5를 고쳐 잡으려던 두 명의 쉐도우 실드 대원들은 끅― 하는 짧은 비명과 함께 머리가 산산조각 난 채 뒤로 날아갔다. 세 친구는 계속 진영을 유지하며 뛰었다.

“엇! 저기!”

매의 눈을 가진 삼식이가 건물의 북쪽을 가리키며 얼른 자세를 갖춘다. 유빈도 녀석의 방패에 자신의 방패를 반쯤 겹치며 머리를 숙였다.

투투투투투투― 투투투투투― 투투투투―

헬리포트 건너편, 경비 초소 그늘아래에서 연사가 쏟아져 날아온다.

퍼버버벅― 피피핑―

총알은 방패를 사납게 두들기고 지나갔다. 방패를 움켜잡은 팔이 떨어져 나갈 듯 찌릿찌릿하다. 근처의 콘크리트 구조물과 파이프들에도 총알이 맞고 튄다.

스릉―

기척을 죽이며 다가간 민구는 오른손을 등 뒤로 돌려 쿠크리를 꺼냈다. 그러고는 그걸 왼손으로 옮겨 쥐었다. 10여 미터 떨어진 검은 군복 두 놈은 옥상을 가로질러 삼식이의 방패를 쏴대는 것에만 몰두해 있다.

쉬이익―

민구가 왼손을 힘껏 휘두르자, 초승달처럼 휜 쿠크리가 빙글빙글 돌며 빠르게 날아간다. 앞서 달리는 보안관을 스치고 지난 쿠크리는 방아쇠를 당기고 있던 대원의 목에 깊숙하게 박혔다.

“어어억!”

쿠크리가 박힌 대원이 총을 떨어뜨리며 비명을 지른다. 그의 옆에 있던 놈은 놀란 눈으로 자신의 동료를 돌아보았다.

웬 난데없는 칼이!

동료의 목에서 뿜어져 나오는 핏줄기와 커다란 쿠크리 나이프. 놈은 당황해하며 총구를 옆으로 돌렸다.

빠악―

번개처럼 휘둘러진 보안관의 해머가 놈의 왼손과 MP5를 동시에 후려친다. MP5는 하늘 높이 날아가 버렸다.

손의 모든 뼈가 박살 나는 고통! 그 지독한 아픔에 놈이 비명을 내지르기도 전에 보안관의 제2타가 얼굴을 향해 날아든다.

콰작!

엄청난 속도로 내리꽂힌 해머의 무게 앞에서 방탄 헬멧은 아무런 기능을 하지 못했다. 두개골이 터지고 목이 으깨진 쉐도우 실드 대원은 맥없이 앞으로 쓰러졌다.

“하아아~ 하아아~”

눈과 코에서 피가 터져 나온 시체를 보며 보안관이 숨을 헐떡였다. 친구들과 자신의 목숨이 걸린 상황이어서 앞뒤 가리지 않았지만, 역시 사람을 때려죽인다는 건 괴로운 경험이다.

“몇 번 더 하다 보면 익숙해질 거다.”

첫 번째 대원의 목에 박힌 쿠크리를 더 깊이 쑤셔 넣었다가 빼내면서 민구가 말했다. 놈에게 얕보인 것 같아 기분이 상한 보안관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나는 당신이랑 달라. 이런 거에 익숙해지고 싶지 않다고.”

“그래? 하긴, 그렇게 센 척하다가 익숙한 새끼들 손에 뒈지는 것도 네 자유지…….”

민구는 무심하게 중얼거리며 쿠크리에 묻은 피를 바닥에 털어내고는 다시 등 뒤의 홀더에 끼워 넣었다.

“그냥 내가 다 잡을 수 있었는데…….”

진우가 구조물들 사이로 걸어오며 말했다. 민구는 삼식이에게서 얻은 담배에 불을 붙인 뒤, 씩 웃었다.

확실히… 늘 화가 나 있는 저 고릴라보다 이 표정의 변화가 없는 놈 쪽이 훨씬 더 위험한 인간이다.

“어으, 무지하게 아파.”

유빈이 죽은 대원들의 목걸이를 빼서 주렁주렁 목에 거는 동안, 삼식이가 방패를 내려놓고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그래도 막 방패를 놓치거나 뒤로 넘어가거나 할 정도는 아니었는데… 아까 진우 총 맞은 놈들은 왜 그랬지?”

“저 총이랑 내 총이랑 쓰는 총알이 달라. 저건 그냥 권총탄이야. 당연히 방패에 맞을 때, 거기 전해지는 힘이 다르지. 그리고 나는 한 군데에만 몰아서 계속 쐈잖아. 그건 그렇고… 이걸 이제 어떻게 부순다?”

삼식이에게 설명을 해주며 헬리포트 위로 올라간 진우가 헬리콥터를 보며 중얼거린다.

헬리콥터의 조수석 문을 열고 잠시 내부를 들여다보던 진우는 몇 발 물러난 뒤, 조종간과 계기판을 향해 다짜고짜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투― 투투툭― 투투둑― 투투투―

난사를 당해 엉망으로 박살 난 계기판 안쪽에서 불꽃이 튄다. 그렇게 해놓고도 부족했는지 진우는 방향을 바꿔 전면 유리창에 나머지 총알들을 전부 다 쏟아부었다.

유리가 엉망으로 금이 가서 도저히 앞을 볼 수 없는 상태가 되었지만, 진우는 탄창을 교환해 가며 계속 헬기에 총알을 퍼부었다.

딱 한 번 상대해 봤을 뿐이지만, 헬리콥터라는 건 꽤나 골치 아프고 무서운 적이다. 어떻게 방향이 바뀌고 어느 각도에서 총알이 날아오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니 아예 떠오르지 못하도록 만드는 게 제일 좋다.

피지짓― 피짓―!

조금 전 총알 세례를 받았던 조종석 안에서 스파크가 튀며 조금씩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제 이 헬기가 떠오를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삼숙이가 지키고 있던 인질 둘과 태권소녀, 제니와 합류한 친구들은 아래로 이어지는 계단의 문을 열었다.

☆ ☆ ☆

“뭐지, 이 개새끼들?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오 박사는 짜증을 부리며 신경질적으로 바닥에 담배를 비벼 껐다. 그로테스크한 좀비를 찾아오라고 보낸 놈들도, 그놈들을 데려오라고 보낸 놈들도, 다 돌아오지 않는다.

그는 내선 전화기로 15층 자신의 연구실에 딸린 연구 부서를 연결했다.

“나다!”

오 박사는 저쪽에서 수화기를 들자마자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자 연구원이 그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물었다.

― 오 박사님! 어디 계셨어요? 엄청 찾았습니다. 조금 전 그 폭발 무슨 소리였습니…….

“닥쳐! 너 궁금증 풀어주려고 내가 전화했겠어? 내가 네 비서냐? 너, 지금 당장 12층으로 가서 거기 놈들 다 데리고 나한테 와. 나 지금 8층 식사실에 있으니까.”

그러고는 상대방이 대답하기도 전에 탁, 소리를 내며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의 기분이 안 좋아짐에 따라서 방 안의 분위기는 급격하게 가라앉았다.

네 명의 쉐도우 실드 대원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들은 괜히 기가 죽어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개새끼들이 말이야… 무슨 백화점으로 쇼핑 나들이를 간 줄 아나…….”

오 박사가 분을 못 이겨서 씩씩거리고 있을 때, 내선 전화가 울렸다. 수화기를 집어 들고 응답하던 직원이 쭈뼛거리며 오 박사를 바라본다.

“저기… 오 박사님. 조금 전에 통화하셨던 그 연구원이라고…….”

“뭐어?”

오 박사는 이마를 찌푸리며 직원의 손에서 전화기를 잡아챘다.

“야이, 개년아! 내가 너한테 전화하라고 했어? 12층 가서 데리고 오라고 했지? 응? 그 간단한 명령을 수행 못해? 사람 말을 똥구멍으로 처 듣냐?”

― 아… 오 박사님…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엘리베이터가…….

여자 연구원은 갑자기 쏟아지는 욕설에 깜짝 놀라 기죽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엘리베이터가 뭐! 어떻게 하라고?”

― 엘리베이터가 먹통입니다… 한 대도 안 움직여요… 그래서 일단 그 사실부터 미리 말씀드리고 출발해야 기다리시지 않을 것 같아서…….

“…뭐라고?”

당혹스럽게 묻는 오 박사의 목소리에서 분노가 걷힌다.

또 불길한 징조…….

오 박사는 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어느 섹션 엘리베이터 말하는 거야? 우리 연구실 앞에 그 A섹션?”

― 다른 데도 다 마찬가지였습니다… B랑 C섹션도…….

철컥―

오 박사는 급하게 전화를 끊고 지하의 경비 본부를 연결했다. 열 대가 넘는 엘리베이터가 동시에 고장 난다는 건 불가능하다. 뭔가 잘못 되었다. 그게 뭔지 경비 본부는 알고 있을 것이다.

뚜루루룩― 뚜루루루룩― 뚜루루룩―

단조롭고 지루한 통화 연결음이 계속 울려 댄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오 박사는 수화기를 곁의 직원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계속 연결해. 전화 받으면 엘리베이터가 왜 가동되지 않는 건지 물어봐. 그리고 나 올 때까지 끊지 마.”

오 박사는 식사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긴 복도를 내달려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한 오 박사는 오르고 내려가는 모든 버튼을 다 누르고 상태창을 살폈다. 상태창의 숫자들은 조금도 변함이 없이 그대로 정지해 있다.

“이게… 뭐야… 왜 이래?”

오 박사의 얼굴이 점점 땀으로 뒤덮여 갔다. 이런 상황이 뭘 의미하는 건지…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그래서 더 불안하고, 불길하다. 지은 죄가 많은 그로서는 당연히 무서운 것도 많았다.

“근데… 메이저 이 새끼는 뭘 하고 있어? 구멍은 다 막았나?”

반대편 복도로 뛰어간 오 박사는 창문에 이마를 박고 아래층을 내려다보았다. 장벽은 여전히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 그대로 방치되어 있고, 주차장 안을 배회하는 좀비들의 수는 더욱 늘어났다. 반면에 단 한 명의 아군 병력도 보이지 않는다.

메이저까지…….

점점 더 커지는 압박감에 오 박사의 관자놀이에는 핏줄이 도드라졌다.

“하아아~ 하아아~ 씨발.”

숨을 헐떡이며 식사실 안으로 뛰어 들어온 오 박사는 쉐도우 실드들에게 손을 내밀며 물었다.

“너희 대장이랑 무전으로 교신 좀 하자. 무전기 내놔.”

“무전기요? 없습니다. 빌딩 내로 귀환하면 대장님하고 경비를 서는 당직 대원들 외에는 모두 무전기와 총기는 반납합니다. 그게 규정입니다.”

쉐도우 실드 대원들은 당연하다는 얼굴로 대답했다.

“뭐어? 총기는 그렇다고 쳐도 무전기는 왜? 그러면 너희는 평소에 대장이랑 어떻게 연락해? 급한 용무가 있을 때 어떻게 연락하냐고!”

“급할 때… 뭐, 주로 숙소에 계시니까 거길 찾아가면 되고요… 아니면 경비 본부에 연락을 해서 거기에서 무전을 보내거나… 숙소에도 호출 가능한 무전기가 있습니다.”

아찔해진 오 박사는 이를 빠득 갈며 눈을 감았다.

이런 씨발… 뭐, 이렇게 좆같은 경우가 다 있단 말인가. 경비 본부는 아직 연락을 받지 않고, 직원 숙소에 있는 대원들을 싹 다 끌고 내려가라고 한 건 자신이다. 의존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력 수단과 연결이 끊어져 버리자 갑자기 소름이 돋아 오른다.

“그래… 알았어. 그렇단 말이지. 너! 너는 쉐도우 실드 숙소에 가서 일단 무전기하고 총 인원수대로 챙겨 와. 아, 엘리베이터가 안 움직이니까 계단으로 가야 돼. 서둘러.”

오 박사가 말했다. 지목을 받은 쉐도우 실드 대원은 떨떠름한 표정이다.

씨발, 30분 정도만 걸린다고 해서 테라 구경이나 할 겸 흥분되는 파티도 잠시 거르고 여기로 왔는데…….

여기는 8층, 직원 숙소는 21층. 열세 개 층을 뛰어 올라가서 무거운 무기들을 챙겨 또 돌아와야 한다니, 기분 좋은 심부름은 아니다.

대원이 오만상을 찌푸리며 방을 나간 뒤에, 오 박사는 미친 사람처럼 방 안을 오가며 뭘 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지금 그에게 주어진 이 비일상적인 현상들을 모두 연결하면 어떤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인지… 그는 입술을 잘근거리며 뇌를 풀가동했다.

“폭발… 그리고 경비 본부 마비… 엘리베이터 가동 중단… 아, 그러면… 12층에 갔던 놈들은…….”

보존소에 갔던 놈들도 그로테스크한 좀비를 싣고 돌아오다가 엘리베이터가 멈춰 서는 바람에 갇혀 버린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잠시 머리를 스쳤다.

이해해 주려고 하면 가능성이 아예 제로인 것은 아니다. 재촉하러 갔던 놈이 네 놈과 함께 좀비를 끌고 엘리베이터를 막 탔는데 멈췄다면… 그렇다면 그건 이상한 일에서 제외시켜 둬도 무방한 건가…….

오 박사가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조금 전에 방을 나갔던 쉐도우 실드 대원이 비명 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뛰어 들어왔다.

“으아아! 으아! 으으! 하아! 하아!”

“어흑!”

뛰어 들어온 대원과 부딪친 연구원들이 뒤로 밀려 벽을 짚는다. 대원은 방 안에 들어와서도 고개를 들지 못하고 엎어진 채 숨을 헐떡거리고 있다.

“뭐야, 대체? 왜 그래? 너희들 오늘 단체로 무슨 약이라도 처먹었어?”

오 박사는 짜증을 부리며 물었다. 쉐도우 실드 대원은 문밖을 가리키며 말을 더듬는다.

“계, 계단에! 계단이 온통! 하아! 하아!”

“계단이 뭐! 말을 해!”

“계단이… 하아! 다 좀비 천지입니다! 좀비들이 존나게 돌아다닌다고요! 하아! 하아! 으아, 죽는 줄 알았네! 으아, 놀래라!”

“…뭐라고?”

오 박사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좀비가… 계단을 돌아다닌다고? 어째서?

물론 이 건물에는 좀비들이 엄청나게 많지만, 전부 다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다. 실수로라도 그것이 풀려날 가능성은 제로에 수렴한다.

그렇다면 1층에서부터 올라왔다고?

아니, 그것도 말이 안 된다. 1층의 오픈식 계단은 3층까지만 이어진다. 외부인의 출입을 차단하기 위해 3층의 계단 출입구는 스캐너에 아이디카드를 댄 후에야 열 수 있다.

“몇 마리나 되는데?”

“몇 마리고 자시고 셀 필요도 없어요. 그냥 계단이 위아래로 다 좀비들이란 말입니다!”

“어느 계단이 그 모양이야?”

“A섹션이요. 하아, 하아~!”

대원은 기억을 되살리는 것 자체가 불쾌하다는 듯 불손하게 대꾸했다. 오 박사는 잠시 녀석을 노려보다가 다른 대원들에게 명령했다.

“…들었지? A섹션은 못 쓴다는 말. 하지만… 다른 섹션 계단으로 가면 될 거야.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계단들은 다 독립되어 있으니까… 얼른 다녀와.”

“만약 거기도 상황이 똑같으면 어떡합니까?”

네 명 중 조장이 물었다. 오 박사의 입에서 바보 같은 대답이 나왔다.

“…아닐 거야.”

대원들은 쉽사리 움직이려 들지 않는다. 오 박사가 생각해도 설득력이 없는 대답이었다. 어떻게 하면 이놈들을 꼬드겨 총을 가져오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그의 신경을 긁는 소리가 울렸다.

삐잉― 삐잉―

그러고 보니 조금 전부터 이 소음이 계속 들려왔었다. 오 박사는 엉뚱한 곳에 화풀이를 하듯 직원들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뭐야! 이 삑삑거리는 소리 뭐냐고? 응?”

“네?”

직원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본다. 다들 오 박사와 쉐도우 실드 대원의 이야기에 집중해 있느라 소음을 인식하지도 못했다.

“어? 이게 왜…….”

아래층의 모니터를 돌아본 직원이 깜짝 놀란다. 좀비들을 몰아 가둬뒀던 방의 격벽이 열려 있다. 조금 전 방안으로 뛰어든 쉐도우 실드 대원과 부딪쳤을 때, 누군가 벽을 짚으며 스위치를 건드린 게 분명하다.

그롸아아아―

유심히 들어보니 닫혀 있는 크레인 바닥 틈으로 좀비들의 울음소리도 희미하게 들려온다. 입구의 대원들에게만 집중되어 있던 시선이 반대편으로 돌아갔다.

아래층을 환히 보여주는 사선의 유리 바닥 너머, 식사실로 들어와 배회하고 있는 좀비들의 모습이 보인다.

“야이! 개새끼들아! 가뜩이나 정신없는데 그건 왜 건드려, 왜? 당장 좀비들 격벽 안으로 들여보내!”

오 박사는 직원들에게 쌍욕을 퍼부은 후, 카메라와 연결되어 있던 노트북을 빼 들었다.

비주얼적인 박력이 좀 부족하기는 하지만, 어쨌든 여기에는 테라가 희한한 면역자라는 증거가 담겨 있다. 동영상이 제대로 있나 확인해 본 오 박사는 테라를 돌아보았다.

완전히 탈진했는지, 그녀는 가느다란 두 다리 사이에 고개를 박은 채 멍하니 앉아 있다. 주변의 혼란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는 눈치다. 오 박사는 쉐도우 실드 대원들에게 다가가서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이봐… 너희들… 지금 혼란스럽고 겁도 나겠지만, 저기 앉아 있는 저년… 저년하고 이 노트북, 그리고 내 머리 속에 들어 있는 그간의 연구 실적만 있으면 우리는 어디를 가든 떵떵거리며 큰소리치고 살 수 있어. 내가 무슨 말 하는 건지 알겠어? 총을 가지러 가자. 저기… 저 샘플 새끼들 보이지? 저걸 줄로 묶어서 끌고 가다가 계단에서 혹시 좀비를 만나면 하나씩 먹이로 던져 주면 돼. 열세 층이라야 금방이야.”

쉐도우 실드 대원들은 철창 안에 들어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았다.

먹이로 던져 촬영을 하고 남은 건 모두 합쳐 다섯.

아슬아슬하다. 동시에… 될 것도 같다. 여기 가만히 버티고 있어봐야 별로 나아질 것 같지 않다는 사실이 그들로 하여금 무리한 모험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다.

“이 일만 성공하면 너희들은 더 이상 이런 짓 하지 않아도 돼. 메이저 바로 아래에서 총지휘만 해. 군인들을 잔뜩 부리게 해줄게. 아니지, 메이저가 돌아오지 못하면 서열도 하나씩 더 올라가야지. 가자! 더 늦기 전에 가서 총 가지고 헬리콥터 타고 도망가는 거야!”

대원들의 마음이 흔들린다는 걸 눈치챈 오 박사는 그들의 욕망을 자극했다.

그들 다섯 명이 그렇게 소리 죽여 모의를 하고 있을 때, 대부분의 직원들은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엿듣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혹시 자신들이 미끼로 사용되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좀비들을 격벽 안으로 꼬드겨 들이기 위해 건너편 방의 크레인을 조절하던 직원도 정신의 반은 오 박사 쪽으로 가 있었다. 그러다가 실수로 크레인을 너무 내려 버렸다. 좀비의 손에 닿을 만큼 아래로 내려진 미끼용 인간의 사지가 처참히 뜯겨 나간다.

“어흑!”

모니터를 보고 있던 직원은 얼른 크레인을 끌어 올리고 바닥 해치를 닫은 뒤, 다른 사람들 틈에 섞여 버렸다.

일단 자신이 이 일과 무관하다고 발뺌해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고, 그래서 아예 모니터도 꺼버렸다. 다른 직원들은 그가 언제 자신의 옆으로 왔는지도 모를 만큼 오직 오 박사의 말소리에만 집중해 있었다.

하지만 그때, 그 방에서 단 한 사람만은 직원이 크레인을 어떻게 움직이는지, 바닥의 해치를 어떻게 여닫는지 아주 유심히 관찰하는 중이었다.

테라였다.

테라는 수그린 얼굴을 두 팔로 감싸 안고 자신의 시선을 감추면서 아무것도 보지 않는 척, 직원의 손놀림과 모니터 안의 변화를 전부 다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비록 그 직원이 조작한 것은 격벽 너머 다른 방의 크레인이지만, 이 방의 것과 조작 방법이 다를 것 같지는 않았다.

테라는 눈을 치켜뜨고 아주 조심조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천천히 스위치가 있는 쪽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지금 당장이야 좀비들이 돌아다닌다고 하니까 조금 무섭겠지만, 총만 들어봐. 그까짓 거 아무것도 아니라고… 그렇잖아. 너희들 넷이 기관단총으로 갈기면, 좁은 계단에 좀비들이 달려 올라와 봐야 그냥 개죽음으로 끝이야. 그러니까 조금만 용기를 내면…….”

오 박사는 아직도 쉐도우 실드 직원들을 설득하는 데 여념이 없다. 테라는 오 박사와 직원들을 노려보면서 바닥의 해치를 여는 스위치를 곁눈질했다.

이 빌딩에 뭔가 큰 위기가 닥친 게 분명하다. 그리고 저들은 자신을 데리고 여기에서 탈출하려 한다.

민구가 아는 것은 자신이 여기에 있다는 것까지다. 만약 그녀가 또 다른 곳으로 끌려가 버린다면, 세상에 그녀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진다.

그렇게 구조 받을 가능성이 제로인 채 잔인하게 정신적 고문을 받으며 계속 버틸 자신은 없었다. 그럴 바에야 모험을 거는 편이 낫다. 물론 민구에게 항체가 전해졌는지 어떤지도 불확실하지만…….

찰―칵!

테라는 아주 조심조심 천천히 안전장치를 해제하고 바닥의 스위치를 올렸다. 스위치 스프링이 울리며 나는 찰칵, 소리가 그녀에게만은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끼이이이잉―

크레인 아래 해치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양쪽으로 벌어진다.

‘왜 저렇게 느리게 열려…….’

테라는 발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애를 쓰며 벽에 붙어 크레인 쪽으로 걸었다. 저 변태 박사가 신발을 빼앗아 버린 게 이럴 때는 오히려 도움이 되었다.

“이게 뭔 소리야?”

그 순간, 오 박사와 쉐도우 실드 대원들이 뒤를 돌아본다.

들켰다!

“어! 저, 저게 왜? 저년이!”

그녀를 붙잡기 위해 손을 뻗으며 뛰어오는 직원들, 그리고 오 박사.

고양이 걸음을 걷고 있던 테라는 힘차게 크레인을 향해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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