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415화 (415/449)

2장 난폭하게! 잔인하게! (3)

띵―

두 번째 엘리베이터가 먼저 도착하는 벨 소리를 울렸다.

스르릉―

0.5초 정도의 딜레이를 두고 문이 양쪽으로 갈라진다. 보안관의 말처럼 폴리카보네이트 방패를 든 놈들이 가장 앞줄에 서 있다.

투투투투투투― 투투투투투― 투투투투―

진우는 K―2의 모드를 연사로 두고 방아쇠를 당겼다. 레이저처럼 날아간 총알이 방패의 윗부분 한 영역만을 집중적으로 때린다.

티티티티팅― 티티티티팅―

문이 채 다 열리기도 전에 벼락처럼 날아드는 총알! 게다가 사나운 기세로 한 점만을 때린다. 그 엄청난 운동에너지! 두 손으로 단단히 방패를 붙잡고 있던 대원의 중심이 순식간에 꺾였다.

금이 쫙쫙 가서 너덜너덜해진 방패가 뒤쪽으로 확 기울며 방어책이 사라지자 곧바로 등 뒤에서 비명과 피가 동시에 터져 나온다.

“끄아아아악―! 아으윽!”

날아든 총알이 대원들의 몸통과 벽을 때린다. 엘리베이터 내부는 순식간에 피투성이 관처럼 변해 버렸다.

티티팅― 퓩퓩― 티티팅― 퓨퓨퓩―

살과 뼈를 뚫고 들어가 총알이 박히고, 꿰뚫는 끔찍한 소리!

총격에 쓰러진 대원들이 내지르는 비명이 처절하게 울렸다. 소나기처럼 퍼부어지는 총알의 기세가 너무 사나워서 두 번째 방패 뒤에 몸을 숨기고 있던 대원도 고개를 들어 응사를 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아으윽! 닫아! 닫아!”

두 번째 방패를 든 대원이 두 팔에 힘을 줘 견디며 외쳤다. 옆구리가 터져 나간 채 쓰러져 있던 조장이 피투성이 손을 들어 아무 층이나 마구 누른 뒤, 필사적으로 닫힘 버튼을 연타했다.

퉁― 투퉁― 투투퉁―

닫힌 엘리베이터 문을 총알이 두드리는 소리가 울려 댄다. 엘리베이터는 다시 위층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으으으! 현재 상황 보고해! 부상자 누구야? 끄으윽!”

조장이 신음 소리를 섞어가며 소리쳤다. 여섯 명의 대원 중 둘이 즉사했고, 둘이 관통상을 입었다. 머리가 박살 난 채 눈을 홉뜨고 죽어 있는 대원의 뇌가 뒤쪽 거울 전체에 확 퍼져 있다. 문이 열리고 불과 2, 3초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뭐였습니까? 도대체 몇 명이나 되는 겁니까? 일곱 명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계집애들 끼어 있는 오합지졸이라고!”

두 번째 방패를 들고 있던 대원이 물었다. 이 정도의 압도적인 화력과 마주하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총으로 무장한 적과 싸우는 게 처음은 아니었다. 인간 사냥을 나가보면 가끔씩 총을 구한 놈들이 마지막 저항으로 그걸 난사해 대기도 한다.

당장 어제만 해도 우체국에 숨어 있던 세 놈 중 한 놈은 몇 발 남지 않은 총을 마구 갈겼었다.

하지만 그가 경험했던 그 어떤 상대도 지금 저 복도 너머에 있는 놈처럼 하나의 점을 이렇게 빠른 속도로 집요하게 때린 적은 없었다.

두어 발 스치고 지나가는 총격과는 몸에 가해지는 충격이 완전히 다르다. 조장은 고개를 저었다.

“하아… 하아… 몰라. 아무것도 못 봤어… 문이 다 열리지도 않았는데 곧바로 옆구리가… 하아! 하아! 대장이 뭘 잘 모르고 했던 말인가 봐… 모르겠어. 끄으윽!”

조장은 피가 콸콸 쏟아지는 옆구리를 잡고 고통스럽게 ‘모른다’는 말을 반복했다. 대신 그가 분명하게 알고 있는 한 가지가 있었다. 자신이 절대 저 지하 1층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

철컥―!

첫 번째 엘리베이터를 격퇴한 진우는 곧바로 K―2의 탄창을 갈아 끼웠다. 기계 같은 정확도와 속도로 재장전이 끝났을 무렵, 두 번째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린다.

이번에도 진우는 문이 양쪽으로 갈라지기 시작할 때부터 그 좁은 틈을 노리며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투투투투― 투투투투투― 투투투투투―

메이저가 타고 있던 두 번째 엘리베이터에서는 외부에서 들려오는 총소리 때문에 총격전이 벌어지리라는 것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그래서 방패 두 개를 급하게 모으고 그 뒤에 한 대원이 MP5의 총구만 위로 내민 채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던 참이었다.

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에 난사로 제압사격을 한 뒤, 방패를 앞세워 나간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적의 총알은 그들의 반응속도보다 더욱 빨리 날아왔다.

티티티티티팅― 티티티팅―

투명했던 폴리카보네이트 방패의 상단부가 집중 타격을 받으면서 불투명한 흰색으로 너덜너덜하게 변했고, 방패를 맞고 튄 도탄들이 엘리베이터 내부로 불규칙하게 날아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P5를 머리 위로 들고 있던 대원은 일단 방아쇠를 당겼다.

뚜르르르륵― 뚜르르륵―

하지만 빗발쳐 오는 총알의 힘을 이기지 못한 방패가 1초도 지나지 않아 뒤로 넘어가 버렸고, 방아쇠를 당기던 대원의 머리와 눈은 5.56㎜탄에 의해 관통되었다.

퍼억―

뒷줄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얼굴에 뼛조각과 피, 뇌가 확 뿌려진다. 뒤통수가 날아가 버린 대원의 시체는 MP5의 방아쇠를 당긴 채 뒤로 넘어갔다.

뚜르르르르르륵―

통제에서 벗어난 총알이 빠르게 연사되며 엘리베이터 벽을 맞고 튕겨 나온다. 그 도탄만으로도 감당이 어려운 상황인데, 정면에서 날아오는 총알은 방패가 뒤로 꺾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투투투투투투― 투투투투투―

“아아악! 으으으으!”

팔다리가 날아나고, 내장이 터져 나온 대원들이 바닥을 기며 비명을 지른다. 두 번째 방패 뒤에 몸을 숨긴 채 방아쇠를 당겨보려던 메이저도 욕설을 내뱉으며 부하들의 시체 사이로 기었다.

“씨발! 아으으! 씨발! 으, 으, 응사해!”

그러고는 아무렇게나 MP5를 난사하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몇 층으로 가는 건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일단 이 지옥을 빠져나가야 한다.

뚜르르르륵― 뚜르르르륵―

잠시 멈췄다 싶었던 적의 사격이 곧바로 다시 시작되었다. 메이저는 머리가 터진 병사의 시체를 방패처럼 내밀며 문이 닫히기만을 빌었다. 응사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컥!”

용감한 건지, 술에 너무 많이 취해 있어서 사리분별이 안 되는 상황이었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과감하게 엘리베이터 벽에 숨어 응사해 보려던 대원이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뒤쪽으로 날아간다.

뻥 뚫린 녀석의 눈을 보며 메이저의 이빨이 딱딱 마주칠 때쯤에야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혔다.

끼이이잉―

엘리베이터를 끌어 올리는 케이블의 소리가 구원처럼 느껴진다. 메이저는 부들거리는 손으로 자신의 몸을 더듬거렸다. 이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던 일곱 명 중 오직 그만이 한 발도 맞지 않았다.

“아아아악! 으으윽! 끄으으으!”

널찍한 엘리베이터 내부가 비명으로 가득 찼다. 살아남은 사람은 모두 세 명. 그중 하나는 허벅지의 근육이 다 터져서 너덜너덜해진 상태다. 녀석이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 몸을 챌 때마다 피가 주변으로 솟아오른다.

‘도대체… 뭐였지?’

녀석의 뜨거운 피를 얼굴에 뒤집어쓰면서 메이저는 멍하니 조금 전의 전투를… 아니, 학살을 되짚어봤다.

자신들은 대비를 하고 내려갔다. 전술적으로 완벽했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개인화기만을 가지고 겨루는 싸움에서 그 정도면 나름 괜찮은 작전이었다.

두 패로 나뉘어 투입되는 병력. 그리고 처음의 몇 초 동안 적의 총알을 막아줄 방탄 방패.

투명 방패 뒤에서 적의 위치를 파악한 사수가 연사를 하면… 당연히 주도권과 우위는 이쪽으로 넘어와야 한다.

그런데… 이 결과는 그의 예상치를 훌쩍 뛰어넘는 참혹함, 그 자체였다. 방패가 그렇게 쉽게 무너지고, 방아쇠도 제대로 당겨보지 못한 상태로 거의 모든 병력이 궤멸되어 버릴 동안, 메이저는 적의 사수가 몇인지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띵―

메이저가 무작정 눌렀던 층수에서 엘리베이터가 멈춰 선다.

5층… 지원 요청 무전을 받고 기세 좋게 출발했던 시작점으로 다시 돌아왔다.

“다, 다른 엘리베이터에 타, 타, 타고 있던 놈들은 어, 어떻게 됐지?”

문이 열리자마자 메이저는 밖으로 기어 나왔다. 지하 1층에서 따라붙은 죽음의 악령이 아직도 엘리베이터 내부에서 맴도는 것 같아, 일단 그 피투성이 상자 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대장! 끄으으! 대장!”

방패로 총알을 막았던 대원이 간절하게 메이저를 부른다. 방패 안에 끼워져 있던 녀석의 팔꿈치는 총알의 운동에너지를 이기지 못해 안쪽으로 부러진 상태다. 녀석은 부러진 팔을 덜렁거리며 메이저의 뒤를 쫓아 나왔다.

찌이익―

녀석이 관통당한 다리를 끌자 바닥에 길게 혈흔이 남는다.

“아니… 여, 여, 여, 여기가 아니지. 8층으로 도, 돌아가자. 오 박사를…….”

복도에 엎어져서 숨을 헐떡거리던 메이저가 중얼거렸다. 왜 이렇게 모든 것이 꼬여 버렸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여기 이 건물이 텄다는 것만은 확실해졌다.

담과 정문이 무너졌고, 병력의 2/3 이상이 순식간에 사살됐다. 1층은 물론이고, 5층까지 갑자기 좀비가 돌아다니고… 이제 남아 있는 전투 가능 인원은 모두 다 긁어모아 봐야 열 명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더 이상 싸운다는 건 무의미하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 짧은 찰나의 겨루기에서 절실하게 느꼈다. 누군지 몰라도 이놈들과 싸워서는 못 이긴다는 걸…….

못 이길 상대에게 덤벼들 필요는 없다. 그럴 때는 일단 달아나야 한다.

메이저는 8층으로 돌아가서 오 박사와 그 면역자 년을 데리고 도망쳐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 둘만 있으면 어디로 도망을 쳐 몸을 의탁하든지 얼마든지 재기가 가능할 것이다. 옥상에는 아직도 헬리콥터 1호기가 있다. 그러려면 헬리콥터 조종사가 필요하다.

“헤, 헤, 헤, 헬리콥터 조종사 수, 수, 숙소가 몇 층이지?”

“끄으으… 여깁니다. 5층. 연구원 애들이랑 같은 층을 씁니다. 반대편 복도 쪽일 겁니다. 근데… 대장, 경보부터 올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화재 알람이라도…….”

“아, 아니야. 조, 조용히 처리해야 돼. 헤, 헬리콥터 자리가 며, 몇 개 없어.”

메이저는 고개를 저었다. 경보를 울려 사람들의 주의를 끌어봐야 엘리베이터며 옥상이 붐비게 되어서 자신들이 탈출할 때 불편해지기만 한다. 그냥 최대한 빨리, 은밀하게 도망치는 게 최고다.

그는 피가 잔뜩 묻은 MP5를 들고 복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대원이 피투성이 다리를 질질 끌며 그를 따랐다.

그롸아아아―!

5층 여기저기에서는 좀비들의 포효가 더 자주 들려오고 있었다. 아까 구조 요청 때문에 깨끗하게 정리하지 못하고 서둘러 내려갔던 탓이다.

☆ ☆ ☆

“괜찮아? 다친 데는 없어?”

진우가 열세 명의 쉐도우 실드 대원을 모두 패퇴시키고 경비 본부로 돌아오자, 유빈이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진우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음, 전혀.”

그렇게 말하는 진우의 볼에서는 가느다란 핏줄기가 몇 개나 흘러내리고 있었다. 적이 MP5를 난사할 때, 천장의 조명이 깨지면서 그 파편이 얼굴을 할퀴고 지나간 흔적이다.

“다음엔 삼식이랑 나도 같이 쏠게. 암만 네가 잘 싸운다고 해도 그렇게 너 혼자 상대하도록 하는 게 아닌데.”

“무슨 소리야? 위험해.”

진우는 천만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유빈과 삼식이의 생각은 흔들리지 않았다.

“총 잘 쏜다고 해서 날아오는 총알이 덜 위험해지는 건 아니지. 위험한 건 너도 마찬가지잖아. 우리 총 못 쏘는 건 알아. 하지만 일단 저쪽이 겁을 먹게 할 수는 있잖아.”

유빈이 말했다. 객관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다. 복도의 양쪽에서 난사하면 적들의 주의도 흐트러지고, 총소리가 울리는 동안에는 쉽게 머리를 들기도 어려울 거다.

“하아~”

한 번 깊이 한숨을 내쉰 진우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주의사항을 말했다.

“몸하고 머리는 복도 안쪽에 두고 총 끝만 내밀어서 갈기는 거야. 알았지? 맞추지 않아도 되니까 그렇게만 해. 너희는 하이바도 없고, 방탄 조끼도 없잖아. 그러니 더 사려야 돼.”

세 친구가 그렇게 사격 전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던 태권소녀가 말했다.

“지금 올라간 놈들 5층에서 멈췄어. 저기, 저 모니터야.”

모두의 시선이 모니터로 향했다. 두 놈이 복도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아까 먼저 올라간 놈들도?”

“아니, 그놈들은 18층으로 올라갔어. 여기 이 화면.”

태권소녀가 가리킨 모니터에는 18F―C2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지금은 복도에 남은 핏자국만이 그들이 그곳을 지나갔다는 걸 보여준다.

“의, 의무실이 있는 곳입니다. 치료하러 간 거예요.”

민구가 슬쩍 돌아보자 겁에 질린 보안 요원은 묻지도 않은 질문에 대해 답을 해줬다. 모니터 화면을 유심히 노려보던 유빈이 수염에게 물었다.

“저 엘리베이터들! 멈출 수 없나요?”

앞으로 계속 총으로 무장을 한 병력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밀어닥치는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 먼저 이 건물 전체의 발을 묶어두고 싶었다.

그렇게만 되면 여기저기에 있는 엘리베이터들을 모두 신경 쓰지 않고 계단으로 올라가는 일에만 집중할 수 있다.

“들었어?”

민구가 수염을 다그쳤다. 두 직원이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슬쩍 얼굴을 마주 본다. 그러고는 수염이 대답했다.

“모, 못합니다. 그런 기능 자체가 없습니다.”

민구는 수염의 얼굴과 그 옆 애송이의 얼굴을 동시에 보고 있었다. 수염이 멈출 수 없다는 말을 하는 순간, 애송이의 얼굴에 당혹스러운 빛이 스친다.

거짓말이군…….

민구는 곧바로 수염의 배에 쿠크리를 찔러 넣었다.

“크헉! 어어억! 으읍!”

수염은 배를 끌어안고 무릎을 꿇었다. 놈의 손가락 사이로 피가 줄줄 흘러내린다. 찔린 수염과 보고 있는 애송이, 두 놈 모두 얼굴에서 핏기가 싹 가셨다. 그리고 뒤쪽에 서 있던 제니도 깜짝 놀라 흑, 하고 숨을 삼킨다.

“너는 할 수 있겠지.”

민구는 수염의 피가 묻은 쿠크리로 애송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네! 네! 잠시만요! 잠시만요!”

애송이는 기다시피하며 계기판으로 달려가 엘리베이터 비상 정지 버튼을 눌렀다.

덜컹―!

애송이는 빠르게 손을 놀려 차례대로 모든 엘리베이터 가동을 중단시켰다. 두 번 생각할 여유 같은 건 없다. 약은 척을 하다가 수염이 어떤 꼴을 당했는지, 똑똑히 지켜 본 그에게는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남겨져 있지 않았다.

“다, 다 멈췄습니다! 이제! 엘리베이터 움직이는 거 없습니다!”

작업을 마친 애송이는 이마의 땀을 훔쳐 낸다.

끄으으으~ 으으으~ 수염은 여전히 배를 움켜쥐고 신음하는 중이다. 죽을 정도로 깊게 찌르지는 않았지만, 아마 두려움과 공포가 고통을 배가하고 있을 터였다.

“테라가 안 보여요. 아까부터 아무리 찾아도… 여기 나오는 화면이 이 건물 전부 다 보여주는 건가요? 계속 좀비들만 뛰어다니고…….”

열심히 모니터 화면을 훑고 있던 제니가 초조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수백 개의 작은 화면들을 쉼 없이 옮겨 다니며 노려보느라 머리가 어질어질할 지경이다.

“오 박사라는 놈 방 화면이 어떤 거야?”

민구는 애송이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물었다. 바깥에서 있었던 대화에 대해 모르는 진우가 묻는다.

“오 박사? 그건 누굽니까?”

“저놈 말이… 오 박사라는 녀석이 테라를 데리고 있다더군. 15층이라고 했지?”

민구가 끄나풀 삼아 끌고 온 보안 요원을 가리켰다. 보안 요원이 고개를 끄덕였고, 애송이는 얼굴이 파랗게 질린 채 말을 더듬는다.

“그… 그, 오 박사는… 그 사람이 여기 책임자라서… 자기 방이나 연구실에 CCTV를 뽑아버렸습니다. 그렇게 작업한 데가 몇 군데 있습니다! 정말입니다! 아시잖아요! 말씀 좀 해주세요!”

애송이는 보안 요원에게 협조를 구하며 간절히 외쳤다.

“네! 맞습니다! 저기… 메이저 방도 그렇고… 보존소나, 식사실도 그렇고… 세균 배양 실험실도 그렇고… 혹시라도 기록이 남으면 큰일 날 곳들은 다 CCTV가 없습니다.”

보안 요원도 애송이의 말을 긍정하며 자신이 아는 걸 다 털어놓았다. 조금 전 엘리베이터 앞 총격전을 보고 그는 확실히 깨달았다. 이 새끼들은 엄청난 괴물들이다.

그전까지 그가 알던 최고의 괴물은 메이저였다. 사격 실력도, 육탄전도 잘하고, 심지어 나이프도 기가 막히게 쓰는 막강 전력.

그런데 이 새끼들을 보고 나니, 메이저는 그저 동네 노는 형 수준 정도로밖에 안 느껴진다. 그러니 얌전히 협조하고 그저 선처를 바라는 게 현재로서는 가장 생존 확률을 높이는 방법이다.

“그럼 걔는 화면에 안 보이는 곳 중 한 군데에 있다는 소리군. 지금 말한 데가 15층하고 또 몇 층이냐?”

민구가 물었다. 보안 요원이 기억을 더듬으며 대답하기 시작했다.

“에 또, 카메라 없는 곳이… 식사실은 8층이고요…….”

“식사실? 밥 먹는데? 거기는 왜?”

“좀 다릅니다… 사람이 먹는 곳이 아니라, 좀비 밥을 주는 뎁니다. 그… 작은 회장이 좀비로 변해버려서, 황 회장이 그거 굶으면 안 된다고… 그런데 지금은 아예 안 씁니다. 얼마 전에 작은 회장을 남쪽으로 싣고 갔어요.”

보안 요원은 슬쩍슬쩍 눈치를 보며 식사실에 대해 설명했다. 그 비인간적인 시설 때문에 공연히 자신이 분노를 사게 될까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그는 테라가 그곳에서 잔인한 동영상을 촬영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또?”

“보존소라는 데는… 좀비를 얼려서 보관하는 뎁니다. 그건 12층이에요. 세균 배양 실험실이라는 데는 식사실이 있는 8층… 뭘 하는 데인지는 잘 모릅니다. 그리고 해부실이 있는데…….”

보안 요원은 계속 주워섬겼다. 듣고 있는 동안 태권소녀와 제니의 미간의 주름이 점점 더 늘어난다. 말도 안 되는 미친 짓이 정말 여러 군데에서 너무도 많이 벌어지고 있다.

“또, 그리고… 샘플 보관실이라고… 잡아온 사람들을 가둬두는 곳이 있습니다. 그냥 한 군데에 몰아놓는 건데요…….”

“그게 여긴가요?”

제니가 모니터를 가리키며 물었다. 어둑한 조명과 바닥의 재질로 보아 지하 주차장 정도 되는 것 같다.

사람들이다. 잡혀온 사람들… 어둑한 조명 아래 천 단위는 훌쩍 넘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불안이 가득한 얼굴로 굳게 닫힌 셔터를 흔들고 있었다.

“아뇨… 거긴 주차장입니다. 그건 요 며칠 잠실에서 데려온 민간인들…….”

“세상에… 저 사람들을 다 어떻게 해야 돼… 혹시 테라도 저 안에 섞여 있으려나? 화면이 작아서 얼굴이 잘 분간이 안 되는데…….”

태권소녀가 입을 감싸 쥐며 중얼거렸다.

“헬리콥터가 몇 대나 떠서 겨우 데려온 애를 저렇게 방치했을 리가 없지. 아까 저 사람이 말했던 카메라 없는 층 중 하나에 있을 거야. 그전에 일단 저 헬리콥터부터 박살 내놓아야겠네. 저건 옥상인가요?”

유빈이 헬리콥터 1호기가 멈춰 서 있는 헬리포트 화면을 가리키며 애송이에게 물었다.

“그, 그렇습니다.”

“그럼 옥상 먼저 들렀다가 22층, 15, 12, 8… 이런 식으로 쭉 훑으면서 내려오면 되겠다. 아까 보니까 엘리베이터 멈추는 스위치가 여러 개던데, 하나만 움직일 수도 있는 거죠?”

“네, 네… 됩니다. 어떤 걸 가동시킬까요?”

“가장 가까이 있는 걸로.”

유빈이 대답했다. 아드레날린이 넘치는 세 명, 보안관, 민구, 그리고 진우는 벌써 각자의 장비를 챙겨서 방을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제 이 더러운 악마의 소굴을 화끈하게 쓸어버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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