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414화 (414/449)

2장 난폭하게! 잔인하게! (2)

오 박사는 얼굴을 감싸 쥐었다. 애초에 오늘은 마음껏 즐기고 마시라고 했던 게 자신이었으니, 누구를 탓할 수도 없다.

“후우우~ 그럼 깨워! 젠장, 무전도 못 받는 놈들인데, 그걸 깨워서 싸움이나 제대로 하겠어?”

“그, 그러지. 다, 다, 당장은 거, 걱정할 거 없어. 조, 좀비들 까짓거 몇 십 마리인데… 겨, 경비 본부에 있는 애들만 해도 여, 여, 열 명이 넘어. 추, 추, 충분히 제압 가능해. 그, 그, 그나저나 대체 이게 무, 무슨 상황이야? 뭐가 터, 터진 거야?”

메이저는 오 박사를 달래며 폭발에 대해 물었다. 담장에 생긴 구멍이 아무래도 너무 불길하다. 그냥 폭발이 일어난다고 해서 저런 형태로 콘크리트가 날아가 버리지는 않는다.

그랬기에 그 역시 첫 폭음을 듣자마자 군을 의심했다. 하지만 그들은 발목 잡힐 단서를 남기지 않아왔다. 이런 식으로 다짜고짜 응징을 당할 리는 없다.

“몰라… 모르겠으니까 일단 대원들 데리고 내려가서 아무거로라도 저 벽 막아줘. 이러다가 건물 안까지 좀비 새끼들 들어와서 뛰어다니게 생겼어.”

메이저의 어깨를 두드린 오 박사는 다시 식사실로 돌아갔다.

“보존소 갔던 놈들은? 아직 안 왔나?”

식사실 문을 열자마자 오 박사는 그것부터 물었다. 안에 남아 있던 직원들은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개새끼들. 40분이면 시간도 넉넉하게 줬구만, 꼭 누구 하나 피를 봐야 일이 제대로 돌아가지. 어이, 너! 보존소로 가서 연구원들 데려와. 아직도 마냥 밍기적거리고 있으면 이제는 괴물이고 그로테스크고 다 필요 없다고 해!”

오 박사는 직원 중 한 사람을 지목해서 보존소로 올려 보냈다. 공연히 자신에게까지 불통이 튈까 봐 지목 받은 직원은 전속력으로 복도를 내달렸다.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어, 썅!”

담배를 피워 물며 오 박사가 투덜거렸다. 이래저래 상황이 좋지 않다. 빨리 제대로 된 영상을 만들어서 군부로부터 대대적인 지원을 받지 않으면, 며칠 내로 생존에 대해 걱정하게 될 판이다.

만약 그전에 마녀 개년이 와서 태양광발전 패널이 다 작살난 걸 봐도 영 귀찮아질 테고.

“저기… 오 박사님.”

담배 연기를 내뿜는 오 박사에게 여직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건다. 오 박사는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뭐? 왜?”

“아니… 저기… 이분, 옷… 갈아입히고 검사 맡으라고 하셨어서…….”

여직원은 테라를 가리켰다.

“아아, 그거…….”

오 박사는 납득하는 표정을 지으며 테라의 복장을 살펴봤다. 조금 전 입었던 것보다 조금 더 짧고 타이트한 블라우스. 나쁘지 않다. 늙다리 장군들이 숨을 헐떡거리면서 동영상에 집중할 만한 비주얼이다.

재질이 실크가 아니라서 고급스러움이 좀 부족하지만, 피가 튀었을 때에는 오히려 이게 더 선명한 빨간색을 낼 것 같다.

‘그래… 대체 뭐가 걱정이야. 이런 보물이 내 손에 들어와 있는데… 백신만 완성돼 봐라. 그까짓 태양광패널, 여의도 전체를 다 덮을 만큼도 살 수 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테라를 보며 오 박사는 비로소 마음의 여유를 조금 되찾을 수 있었다. 그의 상상력을 총동원해도 이보다 가치 있는 면역자라는 건 기대하기 어렵다.

“좋아, 잘 골라서 입혔어. 너는 합격이다.”

오 박사는 여직원을 칭찬해 주고 나서 테라의 턱을 살짝 들어 올렸다.

“이봐요, 테라 씨. 지금 여기에서 그렇게 잡아먹을 것 같은 표정을 짓는 건 봐줄 수 있어요. 당신이 아무리 마음속으로 저주하고 욕해 봐야 실질적으로 나한테 피해 오는 건 뭐 전혀 없으니까. 그런데 다시 촬영 시작했을 때에도 또 아까처럼 얼굴 가리고 구석에 짱 박히면, 나 이거 몇 번이고 다시 찍을 겁니다. 그럼 그때 좀비들한테 던져지는 인간들은 전부 당신 때문에 죽는 거야. 협조하기 싫다는 당신의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죽는 거라고! 그거 하나만 명심해요.”

오 박사의 말을 들은 테라의 눈빛에 증오가 가득 차오른다. 어떻게 인간이 이렇게까지 사악할 수가 있는가.

오 박사는 그녀의 볼을 손끝으로 쓸면서 이야기를 이었다.

“그러니까 좀 순종적으로 굴란 말이에요. 우린 앞으로도 아주 한참 동안 함께 있어야 하는데, 계속 이렇게 기 싸움하면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진 않아요. 어차피 같은 길을 가야 하는 동반자끼리 서로 웃으면서, 이왕이면 즐겁게 지냅시다.”

테라는 고개를 모로 틀어 그의 손을 피했다. 그러고는 머리를 쓸어 넘기는 척하며 고인 눈물을 닦았다. 자신이 괴로워하면 할수록 이 악마 같은 인간이 더 기뻐한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자꾸만 눈물이 왈칵왈칵 맺힌다.

조금 전에도 ‘아주 한참 동안 함께 있어야 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끔찍해서 몸서리가 쳐졌다.

이런 식으로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을지… 불과 몇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 ☆ ☆

오 박사와 헤어진 메이저는 긴 복도를 가로질러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대원들의 숙소가 있는 21층 버튼을 누르던 메이저는 미간을 찌푸리며 옆의 거울을 돌아보았다.

빨간 얼룩. 꽤나 잔뜩 묻어 있다.

“뭐, 뭐지?”

메이저는 그 빨간 얼룩에 손을 대보았다. 끈적거린다. 그는 손끝의 냄새를 맡으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건… 틀림없는 피다. 닫힘 버튼 주변과 손잡이, 벽면 아래, 그리고 바닥에까지도 피가 묻어 있다.

“피, 피가 왜… 이, 이, 이런 데에…….”

엘리베이터의 층수 버튼들 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린 메이저는 5층 버튼에서도 핏자국을 찾아냈다. 연구원들과 직원들 숙소가 있는 층이다.

“뭐, 뭔가 아주 구, 구린데?”

빠른 속도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메이저는 이것이 어떤 상황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애를 썼다.

누군가 피를 뚝뚝 흘릴 만큼 다쳤고, 그걸 수습하지도 못할 정도로 다급하게 5층으로 갔다. 의무실이 아니라 야간 교대조가 잠들어 있는 숙소로…….

조금 전의 폭발만큼은 아니지만, 이것도 꽤나 불길하고 이상한 일이다.

‘애들 데리고 저기부터 내려가 봐야겠군…….’

메이저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사이, 그를 태운 엘리베이터는 21층에 도착했다.

빠빠빠빠― 빠빠빠빠― 빠빠빠빠빠― 꿍짝꿍짝― 빠빠빠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도 전부터 복도 전체를 뒤흔드는, 단조로운 신디사이저 음이 들려온다. 그리고 여자들의 비명과 남자들의 환호성도…….

21층에서는 EDM을 베이스로 삼은 광란의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으아 시, 시끄러워. 이 미, 미친 새끼들!”

메이저는 인상을 찌푸렸다. 복도 끝 오른편에 위치한 작전 회의실의 문이 활짝 열려 있다. 그곳이 이 시끄러운 음악 소리의 근원이자 파티 장소인 모양이다.

“꺄아아악―!”

작전 회의실 밖으로 반라의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뛰어나온다. 그녀의 몸 여기저기에는 손으로 압박당했을 때 생기는 빨간 손자국이 나 있다.

“어딜! 하하하!”

곧바로 웃옷을 벗은 쉐도우 실드 대원 하나가 쫓아와 여자의 허리를 콱 움켜쥐었다. 여자가 울음을 터뜨리며 발버둥을 쳐도 건장한 대원의 힘을 당해낼 수는 없다. 대원은 여자를 복도 바닥에 밀어 쳐 엎드리게 하고, 곧바로 지퍼를 내렸다.

“하하하! 앙탈 부리는 거 봐라! 하하하! 그래, 더 해봐! 안 되겠지? 팔이 부러질 거 같지?”

여자가 다시 일어나려 하자, 대원은 그녀의 팔을 꺾어 제압하며 큰 소리로 웃어 댔다. 그러다 자신을 향한 시선을 느낀 대원이 메이저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어! 대장님! 이제 합류하십니까?”

대원은 해맑게 웃으며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 올렸다. 여전히 쿵쿵거리는 비트, 그리고 이 교성과 비명…….

메이저는 이놈들이 조금 전 무전에 응답을 하지 않았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너무 많이 취한 게 아니라 너무 시끄럽게 놀고 있었던 거다.

“다, 다른 놈들은?”

여자의 속옷을 잡아 뜯고 있는 대원에게 메이저가 물었다. 대원은 작전 회의실을 가리켰다.

“전부 다 저기에 모여 있습니다.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된다고 하잖습니까! 큭큭큭!”

메이저는 녀석을 뒤로하고 작전회의실로 들어갔다. 널찍한 회의실 안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회의용 탁자 위에서, 바닥에서, 그리고 프레젠테이션용 강단 위에서 여자들은 유린당하고 있었다.

혹시 반항하거나 달아나려고 드는 여자들은 호되게 내동댕이쳐진 뒤, 더 모진 꼴을 보아야 했다. 부분적으로나마 옷을 걸치고 있는 걸 보면, 최근에 잠실에서 잡아온 사람들이다.

“다, 다, 다들 주목!”

메이저는 화이트보드를 탕탕! 두들기며 큰 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아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최고 볼륨으로 틀어놓은 강단 스피커에서 메이저의 목소리보다 훨씬 더 큰 음악소리가 쿵쿵 울려 대고 있기 때문이었다. 눈앞의 여자들을 능욕하고 괴롭히는 일에 너무 몰두한 까닭이기도 했다.

또르르르―

비워진 양주병이 바닥을 굴러 그의 발에 닿는다.

“새, 새끼들, 시, 신이 났구만, 신이 났어…….”

십여 명의 대원들이 그 배에 가까운 여자들을 잡아와 야만의 향연을 벌이는 걸 보며 메이저는 씩, 웃었다.

모름지기 사내란 놀 때 이 정도는 해줘야 호탕함을 기를 수 있는 법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마냥 그렇게 하도록 놔두고 볼 수 없는 상황이다.

틱―

메이저는 일단 강단 스피커와 연결된 MP3 플레이어부터 중지시켰다. 천둥처럼 울려 대던 음악이 걷히자, 회의실 안에는 여자들의 훌쩍이는 소리와 애원, 그리고 남자들의 웃음소리만이 남았다.

“주, 주, 주목!”

메이저는 강단 마이크에 대고 큰 소리로 말했다. 삐익― 하는 소음과 그의 목소리가 동시에 퍼진다. 그제야 쉐도우 실드 대원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앞쪽을 돌아본다. 메이저는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너희들 포, 포, 폭발하는 소리 모, 못 들었어?”

“아… 네… 들었습니다만, 비상이 걸린 것 같지는 않아서…….”

한창 재미있게 놀던 중에 난데없이 문책을 받는 건가 싶어서 조장들이 머쓱해한다. 일부러 반대쪽 사무실까지 이동해서 창밖을 살핀 놈이 하나도 없는 모양이다.

메이저는 짐짓 화가 난 연기를 하며 구석의 의자에 웃옷과 함께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는 무전기를 내동댕이쳤다.

“으, 음악을 그, 그, 그렇게 크게 틀어놨으니 이게 드, 들려? 응?”

대원들이 바지를 추스르며 주춤주춤 일어선다. 메이저는 성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지, 지, 지금 정문이 뚜, 뚫려서 조, 좀비들이 뛰어 들어오는데, 그, 그년들 거시기가 누, 눈에 들어와? 너희 도, 도, 동료들은 조, 좆 빠지게 싸우고 있는데? 후우우~ 5분 내로 저, 전원 복장 가, 가, 갖추고 총기 보관소 앞에 지, 집합한다! 자, 자빠져 자는 새끼들 다 깨, 깨워!”

거기까지 말한 메이저는 마이크를 탁, 껐다. 회의실에서는 또 다른 종류의 대소란이 벌어졌다. 대원들은 비틀거리며 자기 옷을 찾아 입고, 장비를 걸친다.

퉁퉁 부은 상처투성이 얼굴이 일그러진 걸 보니, 공연히 찍혔다가는 큰일 나겠다 싶어진 것이다.

“5층부터 머, 머, 먼저 드, 들른다.”

무장을 하고 엘리베이터 앞에 집합한 대원들에게 메이저가 말했다. 아직 술이 덜 깬 상황에서도 대원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문이 무너졌다더니, 갑자기 5층은 또 뭐란 말인가.

“초, 촉이 왔어. 뭐, 뭔가 이상해.”

아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렇게 중얼거리며 메이저는 권총을 꺼내 들고 슬라이드를 당겼다. 그의 태도와 엘리베이터 여기저기에 묻은 핏자국을 보고 다른 대원들도 MP5의 안전 모드를 3점사로 바꾼다.

띵―

5층에 도착해 문이 열렸을 때, 점점이 떨어진 핏자국이 복도에 길게 이어져 있는 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저 멀리 코너 안쪽에서 특유의 포효가 울린다.

그롸아아악― 가아악! 그롸악―!

“드, 드, 들었지?”

메이저는 한쪽 입술을 씰룩거리며 웃었다. 안색이 완전히 변한 대원들은 자신의 뺨을 쫙쫙, 때려 정신을 차리고, MP5를 앞세운 채 엘리베이터 밖으로 걸어 나갔다.

열두 명의 대원이 세 방향으로 나뉘어 진행되는 좀비 수색이 시작되었다.

“멈춰! 거기 서!”

방문 밖으로 뛰어나오는 흰 가운의 연구원을 보며 대원들이 소리쳤다. 하지만 연구원은 멈추지 않고 그들을 덮쳐 온다.

투투둑― 투투둑―

대원들은 두 번째 경고 없이 곧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연구원은 머리와 가슴에서 피를 내뿜으며 벽으로 날아가 나동그라졌다.

“더 있을 거야, 수색 계속해!”

연구원 좀비의 입술과 턱에서 말라붙은 핏자국을 발견한 조장은 자신의 조원들에게 긴장을 늦추지 말라고 명령했다. 그때, 메이저의 전술 조끼에 부착된 무전기가 울렸다.

― 띠리릭, 경비실장님, 하아아~ 경비실장님, 여기 경비 본부입니다. 띠리릭.

지하 1층의 경비 본부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는 목소리가 다급하게 그를 찾고 있다. 호칭을 대장이나 메이저가 아닌 경비실장이라고 부르는 걸로 보아, 쉐도우 실드 대원이 아니라 일반 직원인 모양이다.

“무, 무슨 일이야?”

― 띠릭, 저희 지금… 공격 받고 있습니다. 침입자가… 공격을 해왔는데… 바로 문 앞에… 하아아… 이건 지금 긴급 구조 요청입니다! 띠리릭.

경비 본부 직원은 얼마나 당황스러운지 계속 숨을 헐떡이고, 좀처럼 문장을 끝맺지 못했다. 메이저는 다 안다는 듯 녀석을 달랬다.

“아, 조, 조, 좀비 나, 나, 난입한 거? 이미 파, 파악하고 있다. 고, 곧 지원 나갈 테니까 거, 걱정 말고 대기해.”

아마 정문에서 보안 요원들이 정신없이 좀비들을 쏴 죽이는 동안 한두 마리가 계단을 따라 경비 본부까지 내려간 모양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 띠리릭, 좀비가… 아닙니다! 침입자입니다! 사람! 살아 있는 사람요! 무장하고 있습니다! 띠릭.

“사, 사람이라고? 뭐, 뭐야? 혀, 혀, 현장 대기 요원들 이, 있었잖아? 조, 좀비 저, 저, 정리하러 나간 애들! 걔, 걔, 걔들 불러!”

그렇게 소리치며 메이저는 한쪽 귀를 틀어막았다. 5층에서 아직 진행 중인 좀비 색출 때문에 총소리가 시끄러워서 무전이 잘 들리지 않는다.

― 띠릭, 그 대원들… 다 사살됐습니다. 지금… 하아~ 하아~ 한 명만 남아서 이 방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띠릭.

메이저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지하 1층에서 대기하던 인원이 12명. 그럼 지금 그가 데리고 내려가는 인원의 수와 같다.

그런데 현재 남아 있는 쉐도우 실드 대원들의 1/3이 그 짧은 시간 만에 몰살당했다고?

덜컥 겁이 난다.

결국 군이 개입했구나…….

“그, 그, 그, 그 치, 침입자라는 놈들… 뭐, 뭐, 뭐, 뭔데? 구, 구, 군인이야? 규, 규, 규, 규모가 얼마나 돼?”

다급한 마음에 말은 더 심하게 더듬게 되고, 메이저는 자기가 말을 하면서도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다.

― 띠리릭, 군인 아닙니다! 그냥… 민간인들입니다! 총을 든 놈들도 보이긴 하는데… 망치를 든 놈도 있고, 칼 든 놈도 있고, 계집애들이랑 개까지 섞여 있습니다. 전부 일곱 명입니다! 그리고… 포로도 한 명 있습니다. 띠릭.

점점 더 요지경처럼 느껴졌다. 열두 명의 쉐도우 실드 대원이 그런 오합지졸들에게 이렇게 순식간에 몰살을 당했다니… 말이 안 된다.

어쨌거나 메이저는 5층을 수색하던 대원들에게 돌아오라는 손짓을 하며 경비 본부를 진정시켰다.

“야! 너희들 돌아와! 지하로 간다! 빨리! 그리고 너! 문을 잠그고 버텨! 금방 간다!”

― 띠릭, 그, 그게 안 될 것 같습니다! 해머로 계속 두들겨 대는데, 자물쇠가…….

직원은 무전의 송신을 끊지 않은 채 숨을 헐떡거렸다. 상황이 아주 긴박해진 모양이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있자니, 무전기 너머 저쪽에서 정말로 콰앙― 콰앙― 쇠문 두드리는 소리가 전해졌다. 메이저는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며 소리쳤다.

“야! 지, 지, 지금 가, 간다! 버, 버, 버텨!”

하지만 지하 경비 본부의 직원은 아직도 송신 버튼에서 손가락을 떼지 않고 있는 모양이다. 메이저의 목소리는 그쪽으로 전달되지 않았다.

―아아… 어떡해. 열린다… 닥쳐! 좀 조용히 하고 있어!

마이크를 통해 방 안의 목소리들이 고스란히 전달되어 온다.

걱정하는 직원들, 그리고 그들에게 짜증을 부리는 대원.

그림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꽝―!

문이 거칠게 열리는 소리! 그리고…….

투투투투투투투― 투투투투투투― 투투투투투―

MP5의 연발 총성이 들려온다. 이건 분명 하나 남아 있던 대원이 저항하는 것이다. 메이저는 라디오 중계를 듣는 사람처럼 잔뜩 긴장한 채 무전기에 집중했다.

투투둑―

MP5의 총성이 잠시 끊기는 듯하자마자 곧바로 조금 다른 종류의 총이 발사되는 소리가 울렸다. 단 세 발. 그걸로 총성은 뚝 끊겼다. 대신 애원하는 직원들의 목소리와 개가 사납게 짖는 소리가 전해져 온다.

― 으아아악! 아아아!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 얼! 얼!

“야! 으, 으, 응답해! 응답하라고! 이 개새끼야!”

무전기 저편에 닿지도 않을 말들을 외치며 메이저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저편으로부터 아주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가리 다물어. 너! 무전기 내려놔.

그리고 1초도 지나지 않아 교신은 끊겼다.

― 띠리릭.

분노로 일그러져 있던 메이저의 얼굴에 빠르게 공포가 번진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되어가는 거야…….

☆ ☆ ☆

“살려주십쇼! 사, 살려주십쇼!”

두 직원은 납작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어정쩡하게 든 채로 기계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바로 앞에는 세 방의 총알을 맞고 얼굴이 아예 없어져 버린 쉐도우 실드 대원의 시체가 누워 있다. 콸콸 쏟아져 나온 피가 바닥을 타고 흘러 그들의 무릎을 적신다.

“너!”

민구는 두 놈 중 좀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수염 난 놈을 지목하며 CCTV 모니터를 턱으로 가리켰다.

“조금 전까지 통화하던 놈이 어떤 거야?”

벽면에 붙은 대형 모니터에는 수백 개로 잘게 나뉜 화면들이 보인다. 그 수백 개의 화면은 모두 이 건물의 이곳저곳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무리 눈이 빠른 사람이라고 해도 짧은 시간에 모든 걸 파악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정신이 없다.

스릉―

수염의 대답이 늦자 민구는 쿠크리를 뽑았다.

“저, 저겁니다! 5층! 엘리베이터 앞!”

수염은 칼을 보자마자 다급하게 외쳤다. 모니터 안에서는 얼굴이 괴물처럼 일그러진 검은 군복 놈이 졸개로 보이는 놈들을 두 개의 엘리베이터에 나눠 우르르 몰아넣는 중이다.

엉망으로 붓고 멍든 메이저의 얼굴을 보며, 민구는 그것이 잠실에서 자신에게 발길질을 퍼부었던 검은 군복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저 엘리베이터가 어디에 있는 겁니까?”

화면을 보고 있던 진우가 물었다. 민구는 수염을 경비 본부 밖으로 끌어내서 위치를 가리키게 했다.

“저, 저깁니다! 저기!”

복도로 나간 수염은 북쪽 벽에 일렬로 위치한 네 개의 엘리베이터를 벌벌 떨리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는 빨리 벗어나고 싶어 안달이 났다.

이 자리에 서 있다가는 문이 열리자마자 엘리베이터 안에서 갈기는 총알에 벌집이 될 게 빤하다.

“엘리베이터 두 대뿐이야? 더 나뉘지 않았어?”

벽 뒤에 몸을 숨긴 채 엘리베이터를 겨냥하고 있던 진우가 소리쳐 물었다.

“응! 아까 그대로야! 계속 내려온다!”

보안관이 대답했다. 엘리베이터 입구 위쪽의 전광 표시 숫자가 5에서 4로, 4에서 3으로, 다시 3에서 2로… 하나씩 줄어든다.

진우는 놈들이 타고 있는 두 개의 엘리베이터를 조준한 채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그의 발치에는 예비용 MP5를 대비되어 있다.

“야! 근데 저 새끼들 방패 들고 있어! 저거, 총알 막을 수 있는 건가 본데?”

보안관이 다급하게 추가 정보를 알린다. 진우는 전방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무표정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어디 막아보라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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