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 난폭하게! 잔인하게! (1)
보안 요원이 고개를 저었다.
“무… 무슨 계집애요? 여자가 한둘입니까?”
“답이 틀렸어…….”
민구는 여전히 녀석의 귀를 꽉 움켜쥔 채 평온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고는 곧바로 쿠크리의 날을 녀석의 왼팔에 대고 슥― 그었다.
“끄아아아악!”
녀석은 펄쩍 뛰어오르며 비명을 질렀다. 어찌나 사납게 몸부림을 쳤는지, 민구에게 붙잡혀 있던 귀가 절반가량 쭉 찢어졌다.
“으윽! 끅!”
그것이 또 고통스러워 녀석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을 귓가에 가져다 댄다. 그래봐야 이미 손가락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오른손으로는 상처를 감싸 쥘 수도 없다.
쿠크리에 깊이 베인 녀석의 왼팔 상완부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나오고, 쉼 없이 이어진 고통에 녀석의 몸은 덜덜 떨렸다.
“아, 미리 알려줬어야 했던 건데, 틀린 답 말할 때마다 그을 거야…….”
민구는 덜렁거리는 녀석의 귀 대신 목을 꽉 쥐며 물었다.
“걔 지금 어디에 있어?”
“어제 여기로 온 여자가 몇 백 명인지도 몰라요! 누구를 말씀하시는 건지… 으아아아악! 아아악!”
녀석은 다시 몸서리를 치며 울부짖었다. 놈의 팔에는 두 개째의 칼자국이 났다. 이번 건 더 깊고 길다. 달려드는 좀비들을 상대로 해머를 휘두르고 있던 보안관이 보다 못해 소리를 지른다.
“그냥 딱 집어서 테라 찾는다고 물어보면 서로 편하잖아! 고문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것도 아니고, 왜 그런 선문답을 해?”
민구는 보안관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같잖다는 듯 대꾸했다.
“이놈이 그걸 모를 거라고 생각하나? 여기가 다 발칵 뒤집혔을 텐데? 어쩌면 이놈도 어제 그 헬리콥터에 타고 있었을지 몰라. 어이, 어때? 너, 거기 타고 있었냐?”
민구가 놈의 눈앞에 바짝 얼굴을 들이대며 물었다. 놈의 숨결에서 술 냄새가 확 풍겨온다.
그때, 보안 요원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왼팔을 세차게 휘둘렀다. 어느새 뽑아 들었는지 그의 손에는 대검이 들려 있다. 아침햇살을 받아 번쩍이는 대검의 칼날이 민구의 무릎을 향해 날아든다.
“훗!”
민구는 코웃음을 치며 왼손으로 마세티를 뽑았다. 그러고는 칼을 대각선으로 세워 바닥을 쿵, 찍었다.
챙―!
쇠끼리 부딪치며 만들어진 날카로운 소리가 고막을 파고든다. 그리고 보안 요원의 대검은 2미터가량을 날아가 바닥에 떨어졌다.
녀석은 갑자기 자신의 눈앞에 나타나 회심의 공격을 막아낸, 마세티의 커다란 칼날을 바라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손끝이 저릿저릿하다.
“아아, 너 큰일 났다. 큰 칼 나왔어. 이거는 조금 전 그었던 칼보다 훨씬 더 아플 텐데…….”
민구는 녀석의 얼굴 주위로 마세티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넓고 큰 칼날에 반사된 빛을 받아 녀석의 눈 주변은 환하게 밝아졌지만, 반대로 표정은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자…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세요!”
녀석이 엉덩방아를 찧은 채 뒤로 물러나며 애원하기 시작했다.
턱―
민구는 마세티의 날 끝으로 녀석의 뒤쪽 어깨를 찍어 퇴로를 막았다. 어깨에 칼날이 박히자 녀석은 움찔하며 움직임을 멈췄다.
민구는 마세티를 다시 녀석의 목에 가져다 대고 지금까지보다 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삼 세 번째잖아. 그러니까 이게 끝이야. 어디 있어?”
녀석은 곁눈질로 마세티의 날을 보고 있었다. 칼날이 목에서 조금씩 멀어질수록 오히려 두려움이 커진다. 언제라도 저게 확 날아와 목이 뎅겅 잘릴 거 같다.
“오 박사가! 오 박사가 데리고 있습니다! 그… 그게 오 박사 방은… 15층! 야외 옥상 정원 바로 위층입니다! 건물 중앙 남쪽! 진짜예요! 살려주십쇼!”
녀석이 빠르게 주워섬긴다.
오 박사라는 놈이 데리고 있구나…….
민구는 녀석의 입에서 나온 이름을 머릿속에 집어넣고, 마세티의 칼끝으로 놈의 턱을 툭, 때렸다.
“일어나. 앞장서서 걸어.”
녀석이 주춤거리고 일어난다.
뚝, 뚜두둑―
잘린 손가락들과 칼에 베인 상처 때문에 녀석의 양쪽 팔에서는 핏방울이 계속 떨어져 내렸다.
민구가 녀석을 고문해서 답을 얻어내는 동안 다른 친구들은 보안 요원들의 시체에서 MP5와 탄창, 그리고 삼단봉을 뺐다. 무기를 보면 무조건 챙기고 보는 건, 이제 아주 버릇이 됐다.
촥―!
3단봉을 빼서 휘둘러 본 태권소녀가 만족한 표정을 짓는다. 사람을 상대로 할 때는 찌그러진 야구 배트보다 이게 좀 더 효율적일 것 같다. 파괴력은 부족하지만, 테이크백 동작이 없어도 되니까 훨씬 빨리 대처할 수 있다.
“이것도 챙겨.”
유빈은 보안 요원들의 시체에서 아이디 카드를 꺼내와 친구들의 목에 걸었다. 피에 흠뻑 적셔진 줄이 목에 닿자 태권소녀는 미간을 찌푸렸다.
“아윽! 피잖아? 이걸로 뭘 하라고?”
“아, 미안. 플라스틱에 묻은 건 대충 닦았는데… 줄은 어쩔 수가 없더라고. 그… 건물 들어가서 웬만한 문을 만나면 그걸 갖다 대야 열릴 거라고 생각해. 지하철 패스 같은 거지. 앞으로도 이 목걸이가 생기면 무조건 빼서 챙겨둬. 누가 어디를 출입할 수 있었는지 모르니까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좋아.”
유빈은 피투성이 목걸이가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삼식이가 벽에 뚫린 구멍을 돌아보며 걱정스럽게 중얼거린다.
“근데… 불나 있는 거 좀 신경 쓰인다. 좀비들이 계속 이 근처로 몰려들 텐데, 테라 구한 다음에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가지?”
“지금 당장은 그럴지 몰라도 불은 결국 꺼질 거고, 그러면 결국 다시 철로 쪽으로 몰려갈 거야. 거기 보니까 열기가 장난 아니더구만. 탱크도 몇 대씩 서 있고, 발전기도 왱왱 돌아가고.”
유빈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 눈치였다. 일단 테라를 구해야 돌아가는 길을 걱정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투투투둑― 투투투투투― 투투둑―
잠시 조용하던 건물 안쪽에서 갑자기 총성이 들려온다. 계단을 뛰어오르던 친구들은 자세를 낮추며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진우야! 괜찮아?”
유빈이 큰 소리로 물었다. 대리석 구조물 뒤에 몸을 숨긴 채 대응사격을 하던 진우가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지금 들어오지 마! 다 잡으면 부를게!”
투투투투― 투투투투―
핑― 피핑―
총소리와 빗맞은 총알이 벽에 맞고 튀는 소리가 정신없이 울린다. 진우는 삼숙이가 잘 있는지 확인한 뒤,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둑― 투투툭― 투투투―
일단 3점사로 제압사격을 해서 놈들이 섣불리 고개를 들지 못하게 했다. 두 놈이었다. 놈들이 총을 쏴대고 있는 위치는 로비의 맞은편에 위치한 계단 입구. 위에서 내려오는 걸 보지 못했으니, 분명 지하에서 올라온 거다.
투투투투― 투투투투투투―
또다시 총알 세례가 퍼부어진다. 자세를 낮춘 채 기다리는 진우의 머리와 등 위로 석회 가루와 잘게 부서진 대리석 조각들이 쏟아져 내렸다. 횡성으로 끌려가 영문도 모르고 치러야 했던 전투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때, 건너편 산 중턱에서 숨 돌릴 틈도 없이 퍼부어 대던 기관총과 K―4, 그리고 저격수의 압박감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게다가 지금 그는 햇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입구를 등지고 있다. 놈들은 그저 막연하게 지향 사격을 하고 있는 것뿐이다.
투투툭― 투투투― 투투투―
진우는 총구만 밖으로 내밀고 응사했다. 어차피 맞으라고 쏘는 게 아니니 대충 높이와 방향만 조절하면 된다. 그렇게 하면서 진우가 기다리는 것은 놈들 중 하나가 탄창을 다 소진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때가 왔다.
투투투투투―
한 정의 총만이 단조롭게 울려 댄다. 대리석 가루가 정신없이 튀는 바로 그 순간, 진우는 납작 엎드리며 총구를 밖으로 내밀었다. 벽 뒤에 몸을 숨긴 채 공포에 사로잡혀 정신없이 연사를 퍼부어 대는 검은 군복의 머리와 어깨가 눈에 들어왔다.
투툭―
3연사 중 두 발이 발사되었을 때, 진우는 방아쇠에서 손을 떼고 재빨리 옆으로 굴러 다시 구조물 뒤에 숨었다.
완전히 몸을 숨기기 직전, 곁눈으로 보이는 범위에 머리가 터져 피 안개를 뿜으며 고꾸라지는 검은 군복의 모습이 얼핏 들어온다. 한 놈 잡았으니, 이제 남은 적의 사수는 하나.
투투투투투― 투투투투―
동료의 죽음에 놀라고 분노한 총소리가 또 사납게 울렸다. 하지만 방금 전의 사살 이후, 이미 승부는 기울었다.
로비 건너편 계단 벽 뒤에 숨은 녀석에게는 이제 선택할 수 있는 길이 딱 두 개뿐이다. 곱게 물러나서 자신의 동료들을 더 불러오든가, 아니면 무의미하게 서른 발을 다 쏘고 진우의 총알에 미간이 뚫려 죽든가.
투투투투― 투투투투투투―
녀석은 바보처럼 두 번째 옵션을 선택했다. 진우는 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쉐도우 실드니 뭐니 하며 거들먹거렸지만, 총알이 마주 날아오는 전쟁을 치러본 경험 같은 건 이 녀석들에게 없다.
그저 기껏해야 좀비들을 멀리서 학살하고, 민간인들을 위협하는 일에만 단련된 놈들이다. 그러니 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투투…….
신나게 울려 대던 총소리가 맥없이 끊긴 순간, 진우는 다시 몸을 굴려 총구를 내밀었다. 빈 탄창을 잡아 빼며 벽 뒤로 엄폐하려는 녀석의 옆얼굴이 가늠자에 걸린다.
타앙―
조금 전 3점사 모드에서 발사되지 않은 채 남아 있던 세 번째 탄환이 날아간다.
퍼걱―!
급하게 뒤로 빠지려던 녀석의 코와 입이 뭉텅 잘려 나가며 피가 팍 터져 나왔다.
“끄아아악!”
녀석은 생각지도 못했던 고통에 무릎을 꿇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녀석의 상체가 벽 밖으로 나오며 기울어지는 순간, 진우는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툭―
빠르게 날아간 세 발의 총알은 놈의 옆머리를 관통했고, 뇌와 뼛조각, 그리고 붉은 피가 확 터지며 계단 위로 쏟아졌다.
털썩―!
녀석의 시체가 옆으로 쓰러지고, 손에 들려 있던 MP5가 바닥에 떨어진다.
“들어와.”
혹시 있을지도 모를 추가 병력을 경계해서 잠시 계단을 노려보던 진우가 친구들을 향해 손짓을 했다. 일행은 타오르는 불에 홀려 있는 좀비들을 뒤로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폭발과 총격전의 여파를 고스란히 받아 폐허처럼 변한 입구와 달리, 넓고 긴 로비의 반대편은 깨끗했다.
중앙에 누워 있는 쉐도우 실드 대원 시체 세 구와 피로 붉게 물든 계단 주변만이 여기에서 지금 목숨을 건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었다.
“모자 쓰고, 이거 걸어. 다 죽였어?”
유빈이 가방에서 꺼낸 하이바와 아이디 카드를 진우에게 전해 주며 말했다. 정작 유빈 본인의 목에는 아직 아무것도 없지만, 저 안 쪽에 죽어 있는 시체에서 빼 걸면 된다.
“음, 근데… 계단에서 올라왔어. 지하에 뭔가 있는 모양이야.”
하이바 끈을 조이며 진우가 두 시 방향을 가리킨다.
“젠장, 보고 있으면서도 구조를 모르겠네. 도대체 계단이 몇 개나 되는 거야?”
보안관이 넓고도 복잡한 건물 내부를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활짝 개방된 중앙을 제외하면 나머지 부분들은 암회색 대리석 기둥들과 격벽 때문에 커다란 미로처럼 보인다.
지금 눈으로 봐서 알 수 있는 것은 정면에 지하철처럼 아이디 카드를 대고 지나쳐야 하는 개찰구가 길게 늘어서 있다는 사실 정도다.
초행길인 침입자들에게는 그 복잡한 구조가 꽤나 성가신 장애물이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끄나풀 안내자가 있다.
“저 밑에 뭐가 있는데?”
민구가 보안 요원에게 물었다. 녀석은 잠시 망설였다. 지하 1층에는 경비 본부가 있다. 이미 열 명이 넘게 죽어버렸으니 대기조로 있던 전투 인원들은 거의 바닥이 났겠지만, CCTV로 건물 전체를 감시하는 통제 시설은 아직 건재하다.
그곳을 이놈들에게 점령당하면, 그때는 아군의 승산이 없어진다. 그러면… 자신의 목숨은 이 잔인한 칼잡이 새끼한테 온전히 맡겨지는 거다.
“아아악! 으으! 으으으!”
진땀을 흘리며 눈치를 보고 있던 보안 요원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버둥거린다. 녀석의 왼 팔뚝에는 또 베인 상처가 생겼고, 언제 꺼내 들었는지 민구의 쿠크리 칼날에는 핏방울이 맺혀 있다.
“아아, 맞다. 너는 일단 두 번 찔러줘야 말을 하는 놈이지? 내가 깜빡했네. 일어나, 빨리 한 번 더 찌르고 다시 물어볼게.”
민구는 녀석의 반쯤 찢긴 귀를 꽉 잡았다. 보안 요원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오른손을 흔들며 울부짖었다.
“그만! 그만! 왜… 왜 이러십니까! 아악! 귀! 귀! 제발!”
“이것 봐. 두 번 찔러야 제대로 대답을 한다고 했지? 내가 괜한 소리 하는 게 아니라니까.”
민구는 보안관 일행을 향해 악마처럼 웃어 보이고 다시 쿠크리를 녀석에게 가져다 댔다. 녀석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겨… 경비 본부가 있어요! 으흐으윽! 지하에! 그만 찔러!”
“근데 왜 말을 안 하고 머뭇거렸어? 지금 막 기억날 일이 아니잖아.”
“도… 동료들을 배신하는 것 같아서…….”
“하하하, 아나, 이 새끼.”
녀석이 거짓말을 한다고 판단한 민구는 허탈하게 웃으며 또 쿠크리를 그었다. 칼에 베인 자국이 병장 계급장까지로 늘어난 보안 요원은 또 죽는다고 비명을 지른다. 민구는 놈의 입을 꽉 틀어막으며, 차갑게 말했다.
“돌아가지도 않는 머리 쓰려고 하지 말고, 솔직하게 대답해. 일이 다 끝난 다음에 너를 안 죽이고 싶게 하란 말이야.”
“으음! 읍!”
보안 요원은 신음 소리를 내며 적극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민구가 천천히 손아귀에서 힘을 빼자 녀석은 이를 딱딱 부딪치며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흐으으… 경비 본부에… CCTV 모니터가 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흐으으윽… 이제 정말 잘… 협조하겠습니다.”
민구가 그렇게 놈에게서 답을 얻는 동안, 보안관은 복잡한 기분으로 민구를 보고 있었다. 보안 요원 놈이 가지고 있는 정보는 꼭 필요한 게 맞다. 그런데 사람을 장난감처럼 놀리며 괴롭히는 이놈의 태도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어차피 그 자신이 민구의 역할을 했어도, 비슷한 크기의 고통을 요원 놈에게 주면서 똑바로 불라고 다그쳤을 것이다.
그러니 사실은 빙글거리며 칼로 고통을 주느냐, 아니면 화를 버럭버럭 내며 두들겨 패서 고통을 주느냐의 차이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게 보안관의 마음이 복잡해진 이유다.
반면, 진우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세상에는 저것보다 더한 괴물들도 많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상대하면서까지 마음에 인정을 두고 싶지는 않았다. 도리를 찾다가 후회로 가슴을 치는 건 한 번이면 충분하다.
“몇 명이 있습니까? 그 경비 본부라는 데에.”
진우는 탄창을 갈아 끼우며 보안 요원에게 물었다.
“예? 몇 명이냐고요? 그… 지금 몇 명이 죽었습니까? 후우우… 후우우… 대기하고 있던 총인원은 열둘이었습니다. 그리고… CCTV 기계를 조작하는 직원이 둘이고요.”
정문 앞 주차장에서 다섯, 로비에서 셋, 계단에서 둘. 그럼 이제 경비 본부에 있던 전투 인원 중 살아남은 건… 피를 철철 흘리며 대답하는 이놈과 또 다른 한 놈밖에 없다. 지원 병력이 온다고 해도 아직 도착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건물 모든 곳을 속속들이 지켜본다는 건 엄청난 정보다. 그 능력이 상대방에게 있다면 당연히 싸움은 어려워진다. 마음껏 활개를 치려면 그 이점부터 무조건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내려가죠.”
민구를 향해 진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민구는 보안 요원을 앞세워서 벽에 바짝 붙은 채 계단을 향해 걸어갔다. 언제라도 방아쇠를 당길 준비를 한 진우가 민구의 옆에, 그리고 삼숙이와 친구들이 그 뒤를 따랐다.
그롸아아아―
주차장 쪽에서 좀비들의 포효가 들려온다. 아직도 타오르고 있는 불길 덕에 주변의 작은 좀비 무리들이 속속 태양 그룹 건물을 향해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 ☆ ☆
폭발과 두 번의 정전이 이어졌을 때, 오 박사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식사실에는 외부를 볼 수 있는 창문이 아예 없기 때문에, 그는 복도까지 뛰어나가서야 정전의 원인이 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이… 이게… 이런 좆같은…….”
창문에 달라붙어 아래를 내려다보던 오 박사의 입에서 욕설이 흘러나왔다. 넓은 주차장을 거의 가득 메우고 있던 태양광 발전 패널들이 완전히 박살났다.
가로세로 1미터당 100만 원씩이나 하는 최첨단의 시설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진 채 검은 연기를 뿜어낸다.
총 피해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감조차 오지 않을 만큼 심각한 타격이다. 그것에 비하면 파괴된 헬리콥터 같은 건 애교로 넘어가 줄 수도 있다.
“그럼 지금… 보조 전력이 돌아가는 건가…….”
오 박사는 초조하게 중얼거렸다. 메인 발전 모듈이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어버린 지금, 축전지와 화력발전에 의지한다는 건 그에게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는 말과 같다.
등에 흐른 땀을 식혀주는 에어컨의 바람이 갑자기 사치스럽게 느껴졌다. 현재 비축하고 있는 유류만으로는 이렇게 전기를 펑펑 쓰며 보름도 버티지 못한다.
물론 축전지가 있으니 그보다는 조금 더 여유가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다.
“왜 이런 거야? 대체 뭐가…….”
단순한 폭발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뜬금없는데… 혹시 공격을 받았다고?
그것도 말이 안 된다. 이런 정도의 공격력을 보일 수 있는 건 군대밖에 없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태양 그룹은 어젯밤 잠실의 군대를 도와서 수많은 사람들을 구출해 낸 협력 업체다. 갑자기 이렇게 공격의 대상으로 삼을 이유가 없다. 그리고 만약 정말로 군대가 공격을 하기로 마음먹었으면, 이렇게 몇 발만 갈기고 끝내지는 않을 거다.
“저게 뭐야! 좀비잖아!”
원인을 찾던 오 박사는 담장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설상가상 그 사이로 좀비들이 뛰어 들어오고 있다.
“아, 이런… 경비 본부에 연락해! 좀비들 잡으라고! 그리고 나머지 대원들도 다 소집해야 하는 거 아닌가?”
패닉을 일으키기 직전까지 내몰린 오 박사는 경비 본부와 무전으로 교신하고 있는 메이저에게 물었다. 메이저도 심각성을 느끼고 있던 터라 곧바로 대원들의 숙소를 연결했다.
“나다. 비, 비상 상황이다.”
띠리리릭― 띠리리릭―
몇 번이나 무전을 보내도 돌아오는 건 단조로운 전파 소리뿐이다. 아무도 응답하지 않는다. 메이저는 고개를 저으며 난감해했다.
“이, 이, 이빠이 꼴았나 본데? 하, 하, 하긴 아까부터 퍼, 퍼, 퍼마셨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