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어벤저스 (7)
보존소 내의 연구원들이 가장 처음 인지한 것은 음속을 돌파해 날아오는 철갑탄들의 파열음이었다.
쑤앙― 쑤웅― 쑹―
그리고 곧바로 진동과 함께 강력한 폭발음이 고막을 흔들었다.
콰콰앙―!
보존소 천장의 조명들이 빠르게 점멸한다. 이 모든 사건은 첫 파열음을 듣고 무슨 소리인지 미처 추론해 보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큭!”
821056의 로커를 열고 있던 연구원 4가 진동에 깜짝 놀라 뒤로 넘어졌다.
쿠당탕―!
당겨져 나온 로커가 바닥을 때리며 쏟아졌다. 로커 안에 들어 있던 커다란 남자 좀비의 몸이 충격으로 들썩거리자 연구원들은 일제히 비명을 질렀다.
“시끄러워! 그냥 튕긴 거야! 움직인 게 아니라 튕긴 거! 나오자마자 해동이 될 리가 있냐? 소리 그만 지르고, 이거 빨리 카트에 담아! 근데 지금 이거 뭐야?”
연구원 1이 로커로 달려가 A821056을 제대로 상자 안에 넣으며 소리를 질렀다. 그때, 또다시 파열음이 들려왔다.
쑤웅― 쑤웅―
연구원들의 눈에 공포에 사로잡혀 커졌다. 그들은 또다시 밀려올 진동에 대비해 자세를 낮췄다.
쿠쿵― 쿠우웅―
이번 진동은 조금 전의 것보다 훨씬 약했다. 연구원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바로 그 순간.
팟―
불이 꺼졌다.
끼이잉―
묵직한 소음과 함께 냉동장치가 회전을 멈춘다.
“헉! 이… 이거 뭐야! 으아아아!”
갑자기 암흑 속에 휩싸인 연구원들은 비명을 지르며 두 팔을 내저었다. 출입문 위에 붙어 있는 야광 표지판만이 유일하게 눈에 보이는 사물이다.
지금 이 방 안에는 수백 마리의 냉동 좀비들이 있고, 냉동장치는 작동이 중지돼 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이미 두 마리의 아주 거대하고 그로테스크한 좀비들을 로커 밖으로 끄집어내 놓은 상태다. 당연히 두려울 수밖에 없다.
콰아앙―!
또다시 건물을 뒤흔드는 진동.
이번 것은 이제까지의 모든 폭발을 다 합친 것보다 더 사나웠다. 바닥에 쓰러진 연구원들은 허우적거리며 울부짖었다. 지진인지 폭격인지 모르지만, 이제는 끝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으아아아! 으으! 안 돼! 안 돼! 아아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벽을 짚어가며 걷던 연구원 4가 A821056에 발이 걸려 넘어지며 죽는다고 소리를 지른다.
그의 비명을 들은 다른 연구원들도 덩달아 악악! 소리를 지르며 내달리다가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핏― 핏― 파아악―
그때, 다시 조명이 깜빡이다가 불이 환하게 밝혀지고 냉동장치가 가동되는 소리가 방 안 가득 울린다.
우우우웅―
그런 후, 개방되어 있는 두 개의 로커 틈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나온다.
삐리릭―
모든 로커가 잠기는 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이거… 뭐야? 왜 이래?”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연구원 3이 주변을 돌아보며 물었다. 연구원 1이 벽에 찧었던 머리를 문지르며 일어난다.
“이거는 지금 보조 전원이 가동되는 것 같고… 밖에서 뭔가… 큰 폭발이 있었는데? 아마 태양발전 패널이나 설비 같은 게 파괴되지 않았을까?”
“야! 그딴 소리 나중에 하고, 빨리 이거 들어 올려! 다시 넣었다가 꺼내야 돼! 이러다가 다 녹는다고!”
연구원 2와 4는 A821056의 몸뚱이를 다시 로커 안에 집어넣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카트의 높이 조절이 되기 때문에 로커째로 카트에 담는 건 어렵지 않은데, 이렇게 시체를 로커 상자에 담는 건 어렵다. 특히 190센티가 넘는 남자 좀비여서 연구원 둘만의 힘으로는 벅차다.
“히이익! 저, 저것도 넣어야 돼!”
연구원 3이 비명을 지르며 가리킨 것은 E9104596의 로커였다. 바닥에 비스듬히 떨어져 내린 경순의 시체는 기이한 각도로 꺾여 있다.
“우리 지금… 얼마나 됐지? 전원이 끊겼던 게? 저, 저게 더 급한 거 아닌가? 저건 몸무게도 120킬로그램이 넘는데…….”
연구원들은 반쯤 정신이 나가서 우왕좌왕하며 진땀을 흘렸다. 네 명이 힘을 모아서 마침내 A821056의 로커를 제자리에 끼워 넣은 연구원들은, 이마의 땀을 닦으며 경순의 시체 쪽으로 뛰었다.
“들어! 끄응차!”
경순의 몸을 들어 철제 상자 안에 넣으려는데, 이번에는 상자가 말썽이다. 폭발의 진동 때 흔들리며 바닥에 사선으로 끼어버린 철제 상자는 꽉 채워진 빗장처럼 도무지 움직이지를 않는다.
“야! 일단 좀비는 빼! 빼고 상자부터 꺼내서 카트 위에 올려!”
연구원 4가 지휘를 해보려 한다. 하지만 다들 마음은 급하고, 팔의 힘은 빠져간다. 그러면서 두려움만 점점 커졌다.
“그냥 나가야 하는 거 아닌가? 일단 보안 요원들을 동행해 온 다음에…….”
“그러면 그사이에 이거는 100퍼센트 해동된다고!”
“그러라고 해! 보안 요원이 처리하면 되잖아!”
“그냥 닥치고 들어 올려! 시간 내에 할 수 있으니까!”
연구원들의 의견이 갈리고, 그러면서 시간은 또 흐른다. 그렇게 낑낑거리면서도 네 명이 달려들어 용을 쓰자, 결국 경순의 시체를 로커 상자 내부에 집어넣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이제 카트의 높이를 올려서 로커를 제자리에 다시 집어넣기만 하면 된다.
위이이잉―
카트 손잡이의 버튼을 누르자 유압식 높이 조절 장치가 위로 올라갔다.
철컹―
높이를 맞춘 로커 상자의 끝부분에 달린 도르래가 빈 구멍의 홈에 정확히 맞았다. 그제야 연구원들의 입에서는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이제 밀어 넣기만 하면 된다.
바로 그때!
확―
경순이 하나밖에 남지 않은 눈을 떴다. E9104596의 흰 막이 덮인 눈동자가 빠르게 좌우를 훑는다. 연구원들은 비명을 지르며 로커를 안쪽으로 밀어 넣으려 했다.
지금 잠시 해동이 되었어도 저 안에 들어가 얼리기 시작하면 금방 다시 냉동 참치처럼 빳빳하게 굳으니까.
촤르륵―!
도르래가 구르며 철제 상자가 빠르게 안쪽으로 밀려 들어간다. 다 끝난 것처럼 보였다.
쿵―
벌떡 몸을 일으키던 경순의 이마가 다른 좀비들의 로커 상자를 들이받는다. 그 바람에 푸시 버튼이 눌려진 위쪽의 로커가 푸슈욱― 하는 소리와 함께 아주 조금 앞쪽으로 열려 나온다.
그으으― 그롸악!
E9104596은 그녀의 얼굴과 가장 가까이에 있던 연구원 1의 목을 콱 움켜쥐고 로커 밖으로 빠져나오기 위해 버둥댔다.
“끄으윽! 으아아아! 도, 도와줘!”
E9104596의 솥뚜껑 같은 손에 목이 졸린 연구원 1이 동료들을 향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도우려 하지 않았다. 나머지 세 연구원은 곧바로 앞쪽의 문을 향해 내달렸다.
삐익―
열림 버튼을 눌렀는데도 문은 열리지 않는다. 연구원들의 공포는 이제 극에 달했다.
“이거 왜 이래?”
꽈드득― 꿀쩍! 꿀쩍! 우드드득!
뒤쪽에서는 끔찍한 비명과 함께 E9104596이 연구원 1을 잡아먹는 소리가 울려온다. 연구원 4는 뒤쪽을 돌아보았다. 연구원 1의 생명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통상적으로 좀비 한 마리는 사람을 그렇게 단시간에 죽이지 못한다. 상당한 통증과 과다 출혈, 그리고 쇼크가 함께 수반되어야만 희생자의 목숨은 끊어진다. 그러니 연구원 1이 조금은 시간을 벌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E9104596의 경우는 일반적인 사례와 거리가 상당히 멀었다. 엄청난 덩치와 근육에서 뿜어져 나오는 완력 때문에, 머리를 잡힌 연구원 1의 목은 매우 비정상적으로 꺾여 있었다.
저래서야 살점이 제대로 뜯겨 나가기도 전에 목이 부러져서 즉사하게 생겼다.
삑― 삑― 삑―
계속 열림 버튼을 누르고는 있지만, 여전히 문은 굳게 잠겨 있다. 세 연구원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연구원 1의 비명이 조금 전부터 들려오지 않는다는 게 너무 불길하다.
“아! 알았어! 이거 뭔지 알겠다! 디폴트값이 ‘잠김’으로 되어 있는 거야! 정전되었을 때!”
연구원 3이 벽을 치며 소리쳤다. 그 말을 들으니 이 상황이 당연히 이해가 간다. 퓨즈를 끊거나 정전을 유도해서 은행 금고를 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어떤 이유에서든 한 번 전원이 끊기면, 다시 전기가 공급되더라도 자물쇠는 단단히 잠기고 그 모드가 유지되는 것이다.
“그럼 어떡해? 어떻게 나가?”
연구원 2가 울먹이며 물었다. 연구원 3은 얼굴을 쥐어뜯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외부에서… 하아, 하아… 아이디 카드를 대고 열어주면 되는데… 그러면 잠김 모드가 해제되는데…….”
“그거 말고! 지금 밖에 누가 있어서 그걸 열어주겠어?”
“오, 오 박사가… 화가 나서라도 잡으러 오지 않을까? 이제 40분이 지났거든…….”
연구원 3이 입술을 떨며 대꾸했다.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동자만 봐도 그녀의 사고가 정상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그사이에 다 죽지, 씨발! 그걸 말이라고 해! 저 괴물 좀비 년이……!”
연구원 2가 말을 다 맺지 못하고 뒤를 돌아본다. 목이 반쯤 뜯겨 나간 연구원 1의 시체가 바닥에 떨어져 있고, E9104596이 그들을 향해 천천히 등을 돌린다.
“으아아아아!”
지금까지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연구원 4가 연구원 2의 뒷덜미와 팔을 잡아 기합 소리와 함께 E9104596 쪽으로 밀어 쳤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아직 이해하지 못한 연구원 2의 눈에 공포심만이 가득하다.
턱―!
연구원 2가 부딪쳐 오자마자 E9104596의 커다란 두 손은 그의 어깨를 꽉 잡았다.
엄청난 힘! 갈퀴 같은 손가락이 살을 파고드는 것만으로도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느껴진다.
카드득―!
E9104596이 연구원 2의 볼을 움푹 뜯어낸다. 피가 솟아올랐다.
“끄아아아악! 야이, 씨발! 아아악!”
연구원 2가 원망 가득한 비명을 질러 대는 동안 연구원 4는 연구원 3의 뺨을 두들기며 다그쳤다.
“정신 차려! 저 새끼가 먹히는 동안에 나가야 돼! 기억해 봐! 디폴트값을 바꾸는 방법 없어? Lock에서 Unlock으로만 교체하면 되잖아! 그런 다음에 여기 전원을 다시 껐다가 켜면 되는 거 아니야?”
그가 연구원 2를 제물로 골라 던지고 연구원3을 놔둔 이유는 그녀가 이곳의 시스템에 대해 뭔가 조금이라도 더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가쁜 호흡으로 생각에 잠겨 있던 연구원 3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있다! 있어! 그… 원래는 말이 안 되는 건데… 여기는 사용전력량이 워낙에 크니까 그런 편법이 가능할 거야… 그래… 그건 될 수도 있어…….”
“뭔데? 그렇게 웅얼거리지만 말고 똑바로 말을 해! 아니면 행동을 하든가! 응? 뭐냐고, 그 편법이라는 게!”
연구원 4가 어깨를 잡고 거칠게 흔들자, 연구원 3은 광인처럼 웅얼거렸다.
“모든 로커… 저걸 다 개방해. 그러면… 온도를 유지하기 위해서 냉동장치가 영하 55도 이하로 계속 가동될 거라고. 엄청난 과부하지. 그런데… 지금은 보조 전력에서 전기를 공급 받고 있잖아. 그러니까 메인 시스템에서 AI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어… 이 보존소를 계속 유지하느냐, 아니면… 여기만 셧다운시키고 나머지 구역 전체를 정상적인 상태로 유지하느냐, 이 두 가지 선택지 중에서 말이야… 그리고 AI니까 보존소가 프라이머리로 설정되어 있지만 않으면 당연히…….”
“자기도 포함된 시스템을 살리는 걸 선택하겠지. 그래, 그거 말이 되는 거 같다. 근데… 그래봐야 잠김이 디폴트인 건 변함이 없잖아. 애초에 여기 갇힌 것도 전원이 끊겨서 그런 건데.”
이야기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것 같아 연구원 4의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연구원 3은 그의 예상과 조금 다른 가설을 내놓았다.
“시스템에서 리셋을 시도해 볼지도 몰라… 센서 이상이라고 인지할 테니까… 모든 개폐 장치를 한 번 가동해 보고 접촉 센서가 정상인지 부터 확인하면… 그때 나갈 수 있어.”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연구원 4는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아직 연구원 2는 숨이 붙어 있다. 간간이 비명을 지르고 하는 걸 보면 적어도 30초 이상은 더 버텨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바꿔 말하면, 30초 뒤에는 저 괴물 좀비가 다음 먹잇감을 찾으려 들 것이다. 되든 안 되든 연구원 3의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겨보는 수밖에는 없다.
문제는… 저 괴물 좀비다. 저 커다란 덩치가 버티고 있는 옆을 스쳐 돌아다니며 로커들을 눌러 밖으로 빼내야 한다. 연구원 4는 연구원 3을 E9104596 쪽으로 밀며 로커를 열라고 지시했다.
“무… 무서워! 못해!”
“닥치고 해! 안 그러면 진짜 뒈진다고! 익! 익!”
연구원 4는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로커들을 눌러 아주 조금씩만 개방시켰다.
치이익―
냉기가 빠져나오기 시작하자 보존소 내부의 기온은 금세 영하로 떨어졌다. 그런데도 아직 과부하가 걸릴 기미는 없다.
그와아아악―
E9104596이 연구원 2의 얼굴에서 입을 떼며 포효한다. 연구원 2는 얼굴에 피부가 남은 부분이 거의 존재하지 않을 만큼 끔찍하게 손상된 채 숨을 거뒀다.
“하아~ 하아~!”
연구원 4는 문 쪽에 바짝 붙어 숨을 죽였다. 연구원 3은 아직도 E9104596이 다가오는 걸 눈치채지 못한 채 로커를 열고 있다.
“헉!”
E9104596의 손에 붙잡힌 연구원 3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온다. 그리고 곧바로 E9104596은 그녀의 팔을 물어뜯기 시작했다.
“꺄아아악!”
연구원 3이 비명을 지르는 순간, 마침내 시스템이 보존소의 전원을 끊었다. 그리고 잠시 암흑 속에서 살이 찢기는 소리와 째지는 비명만이 연구원 4의 신경을 긁어 댔다.
연구원 4는 문을 밀어보려 애를 썼다. 수동으로라도 열 수만 있다면… 손톱이 들리고, 손가락의 살갗이 벗겨져 스테인리스 재질의 표면에 피가 묻어난다.
팟―
다시 불이 들어온다. 그리고…….
우웅! 덜컹!
여기저기서 로커의 자물쇠가 여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연구원 3의 가설이 맞았다!
연구원 4는 입구에 바짝 달라붙어 선 채 굳게 잠겨 있던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우드득―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뼈가 부러지는 소리!
스르릉―
마침내 길고 긴 감금이 끝나고, 문이 열렸다. 연구원 4는 복도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그러고는 다음 발짝을 내딛기 위해 어깨를 틀었다.
턱―
그의 뒷덜미에 강력한 힘이 가해진다. 그는 더 나아가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와작!
목덜미를 파고드는 날카롭고 단단한 이빨!
연구원 4는 어깨를 움츠리며 악을 썼다. 그는 어떻게든 달아나 보려 몸부림을 쳤다.
찌지직―
입고 있던 흰 가운의 솔기가 뜯겨져 나가고, 그는 앞으로 고꾸라지며 코를 바닥에 짓찧었다. 겨우 E9104596에게서 풀려난 연구원 4는 입과 코의 피를 훔치며 복도를 내달렸다.
머리로는 이미 가망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 그럼에도 그는 달아나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괘… 괜찮아… 하아아~ 하아아~ 별거 아니라고. 소독하면… 나을 수 있어…….”
엘리베이터에 오른 연구원 4는 자신의 숙소가 있는 5층을 누르면서 열린 문틈으로 복도를 내다봤다.
그롸아아아아―
E9104596의 포효가 긴 메아리를 만들며 울려온다. 활짝 열린 채 전원이 끊겨 멈춰 버린 보존소에서는 아직 남아 있던 차가운 냉기가 쉼 없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 ☆ ☆
“우리도 들어가자.”
2층 창문을 통해 길 건너의 태양 그룹 본사 상황을 살피던 진우가 말했다. 좀비들은 불길에 홀려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뛰어나온 보안 요원들이 그 좀비들을 향해 MP5를 난사하고 있다.
검은 군복의 수는 총 여섯 명. 저놈들이 현장 보고를 마치고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가 버리기 전에 처리해야 한다.
“여섯 명 전부 내가 맡는다!”
앞장서서 계단을 뛰어 내려가며 진우는 역할을 확실히 선언했다. 총 든 놈들을 친구들에게 맡기는 건 너무 위험하다.
얼―!
삼숙이도 이를 드러내며 그를 쫓아왔다. 진우는 커다랗게 구멍이 뚫린 벽 앞에 서서 몸을 숨긴 채 안쪽을 엿봤다.
투투투투투― 투투투투투―
검은 군복들은 불타오르는 주차장 방향의 좀비들을 향해 열심히 MP5를 갈겨 대고 있다. 사실 이 정도 불길이라면 좀비들이 알아서 타 죽을 테니까 특별히 제압을 할 필요조차도 없다.
‘입구에 셋, 계단 아래에 둘, 주차장 부근에 하나…….’
놈들의 위치를 파악한 진우는 곧바로 몸을 내밀며 방아쇠를 당겼다.
탕탕탕― 탕, 탕― 타앙―
딱 여섯 발. 그리고 여섯 명의 검은 군복은 거의 동시에 피를 흩뿌리며 바닥에 쓸러졌다. 진우는 지체하지 않고 건물 내부를 향해 뛰었다. 그의 뒤를 따르던 민구가 끌탕을 한다.
“젠장! 다 죽이면 어떻게 하라는 거야! 하나쯤은 살려뒀어야지!”
“맨 앞의 놈은 숨을 붙여놨습니다.”
진우는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러고는 다시 삼숙이와 함께 건물 내부로 뛰어 올라갔다.
투투투― 투투둑― 투투둑―
안쪽에서 대기 중이던 쉐도우 실드 대원들에게 진우의 3점사가 퍼부어졌다. 불과 20분 전만 해도 공고한 요새 같던 태양 그룹 본사의 1층은 이제 그들에게 함락되었다.
“어이.”
민구는 가장 건물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보안 요원에게 다가가 총을 멀리 차버린 뒤, 녀석의 귀를 잡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끄으으으~ 끄으으으!”
녀석은 정말 진우의 말처럼 아직 살아 있었다. 손가락이 뭉텅 날아간 녀석의 오른손에서는 피가 물총 줄기처럼 솟아오른다.
민구는 녀석의 귀를 있는 힘껏 당기면서 오른팔을 뒤로 돌려 쿠크리를 뽑아 들었다. 그러고는 나직하게 물었다.
“어젯밤 잡아온 계집애… 지금 어디에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