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411화 (411/449)

1장 어벤저스 (6)

“저 친구들이 이 동영상을 넘겨줬다고 했잖습니까. 말하자면 우리 모두 다 저 친구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는 겁니다.”

강 소위가 운을 띄웠다. 장갑차장도 충분히 납득하는 표정이다. 사실 빚진 걸로 따지면, 어젯밤 남쪽 철책으로 우회시켜 준 것만 해도 엄청나게 크게 졌다. 강 소위는 목소리를 비장하게 바꿔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쟤들 일행이… 아마 그 비디오 구한 사람이 아닐까 싶은데… 태양에 잡혀갔습니다. 어젯밤에, 다들 정신없을 때. 그런 상황인데 말입니다… 쟤들은 저한테 그 친구 구해 달라는 부탁 한 번을 하지 않습니다. 자기들이 알아서 하겠다고 저렇게 주섬주섬 준비하고 있는 거예요. 제가 잠깐만 기다려 달라고 했습니다. 그냥 보내기가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워서요.”

“하지만… 돕고 싶어도 우리가 뭘 해줄 수 있습니까? 건대에도 아직 사람이 남아 있지만, 어차피 이 주변 소형 쉘터들 다 대피시키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역시 저 친구들한테 여단장님 명령이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해야만 하나?”

장갑차장이 물었다. 그 말을 하는 동안에도 그의 표정에는 안타까운 감정이 드러난다. 강 소위는 승부수를 던졌다.

“아뇨, 그러는 동안에 이 핸드폰 내놓으라고 고문당하다가 죽을걸요? 동영상 봤잖아요. 말릴 수는 없어요. 그보다… 어젯밤 좀비들 섬멸할 때, 40㎜ 기관포 몇 발이나 쐈습니까? 아직 여유가 좀 있지 않습니까? 매번 따로 잔여 포탄 수를 보고하거나 어디에서 소진했는지 알려야 하는 의무가 있어요?”

“…관심도 없죠. 요즘 같은 때, 그걸 어떻게 기억하겠습니까? 길에서 좀비들 만나면 곧바로 갈겨야 하는데.”

“그러니까, 오늘 나랑 같이 건대로 돌아가는 길에… 좀비 떼 좀 만난 걸로 합시다. 접근 방향은 북동쪽, 한 열 발 땡기다 보면 그중 한두 발이 다른 데 꽂힐 수도 있는 거 아닙니까. 태양 그룹 빌딩 담벼락이라든가… 정문 같은데… 쟤들이 진입하기 쉽게…….”

강 소위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그의 제안을 들은 장갑차장은 당황하기보다는 오히려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기뻐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행이다!

“그렇군요… 굳이 우리가 좀비랑 교전했다는 말도 필요 없어요. 오늘 이 근처를 오가는 장갑 트레일러가 몇 대인데… 그냥 입 싹 씻으면 아무도 모를 겁니다. 좋습니다, 알려주세요. 저 건물 어디를 날리면 저 개새끼들이 좆 되는 건지. 40㎜ 기관포도 좋지만, 현궁 한 방 날려서 초토화시키면 아주 속이 시원할 것 같습니다.”

“어, 정말입니까? 그… 승무원들이랑 이야기 먼저 해보셔야 하는 거 아니고요?”

“훗, 쟤들한테는 제가 하늘입니다. 그리고… 무슨 걱정이 있어야 입도 맞추죠. 말했잖습니까, 누가 쐈는지 아무도 모를 거라고. 우리는 그냥 잽싸게 갈기고 사라지면 되는 겁니다.”

아직도 분노의 기색이 역력한 장갑차장은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자신 있게 대답했다. 강 소위와 고 하사는 그의 손을 덥석 잡고 감사를 표했다.

“고맙습니다, 이 하사님! 덕분에 군인 체면 좀 세울 수 있게 됐어요!”

이후 은밀한 계획은 급물살을 타고 빠르게 구성되었다. 어찌 보자면 굉장히 간단하기도 한 계획이었다.

보안관 일행과 민구가 태양 그룹 본사에 가까이 갔을 때, 미리 정해둔 시간에 맞춰 40㎜ 기관포를 남쪽 벽과 정문 쪽으로 날려 큰 구멍을 뚫는다. 20센티 두께의 강판을 관통하기 위해 만들어진 철갑탄이니까 그 정도는 아주 쉽게 수행할 수 있을 거다. 만약 여의치 않으면 대전차미사일인 현궁을 날려 버리면 된다.

“갔다 올게.”

유빈은 규영의 머리를 쓸어주며 인사를 했다. 일행이 나뉘는 건 정말 싫지만, 이 일은 위험하고 목숨을 보장 못한다. 그러니 여기 남는 게 현명한 선택이다.

“무슨 변동 사항이 있으면 선로 벽에 적어놓으면서 사람들 따라 이동할게요. 그러니까 나중에 우리 찾으러 내려올 때, 유심히 보면서 와요. 알았죠?”

규영이 태권소녀와 제니의 손을 꽉 잡으며 몇 번이나 같은 말을 한다. 녀석은 혹시 길이 엇갈려 헤어지게 될까 봐 무척이나 두려운 모양이다. 제니와 태권소녀는 녀석의 손을 잡고 잠시의 작별을 아쉬워했다.

“그래. 조심하고 힘내! 우리 금방 끝내고 뒤따라갈 테니까, 무서워하지 말고.”

“야, 야, 수정이 누나랑 규영이 걱정은 하지 마라. 내가 누구냐? 알아서 잘 돌볼 테니까 빨리 돌아오기나 해.”

신입이 근엄하게 말했다. 제니까지도 따라가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마당에 이놈만은 변함없이 안전한 곳에 남는 편을 택했다.

참 한결같은 녀석…….

어쨌든 녀석이 챙겨주겠다고 하니, 규영이 걱정은 좀 덜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신입보다 임수정에게 더 많이 기대하는 중이지만.

“몸조심해. 아무도 다치면 안 돼.”

임수정이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이 말해줬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된 테라 찾기. 그 끝까지 함께 가보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지금 그녀가 따라나서는 건 오히려 짐이 된다. 그러니 이럴 때는 한발 물러나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제니야, 다시 생각해 봐. 내 생각에는 너도 수정이 누나랑 같이 남아서…….”

“아뇨. 전 따라갈 거예요. 왜 오빠는 자꾸 저를 떼어놓으려고 해요? 저 총도 쏠 줄 알게 됐잖아요. 제 앞가림은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오빠도 지키고 싶어요.”

남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유빈이 다시 꺼내자 제니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면역자니 뭐니, 테라를 되찾아와야 하는 이유들은 거창하게 대지만, 사실 테라가 가장 보고 싶은 건 제니 본인이다. 그런데 그런 일을 친구들에게만 미뤄두고 혼자 안전한 곳에 피해 있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리고… 만에 하나 이 친구들이 돌아오지 못할 만큼 위험해진다고 해도, 그녀 역시 그 위험 속에 같이 있고 싶다.

제니는 남들의 눈에 띄지 않게 유빈의 손을 꼭 쥐어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결국 유빈도 못 당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승낙했다.

“가자! 여기서 별로 멀지도 않아. 직선으로 가면 1킬로미터 조금 넘는 정도. 그래도 서둘러야 돼. 강 소위님이랑 약속 정해놓은 사격 시간이 40분도 안 남았어.”

장갑차장으로부터 넘겨받은 지도를 보며 진우가 말했다. 친구들은 각자의 장비와 배낭을 메고 수풀 속에 몸을 숨긴 채 경비하는 군인들 몰래 한강대로 방향을 향해 달렸다.

선봉에는 민구와 보안관이 나란히 섰다. 누가 주문한 것도 아닌데, 둘 다 자신이 가장 앞에서 달리며 길을 터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는 사람들처럼 군다.

“야, 붙지 마! 왜 자꾸 네가 리더인 척하는데? 그냥 내 뒤에서 따라오라고!”

“닥쳐, 고릴라! 너처럼 멍청한 놈이 일을 그르칠까 봐 걱정이 되니까 그러는 거다.”

“뭐가 어째? 혼자만 살아남은 주제에 잘난 척해봐야 안 통해, 이 새끼야!”

“적어도 네 앞에서는 잘난 척해도 될 것 같은데?”

군용 지도에 표시되어 있는 샛길에 도달했을 때까지도 둘의 어깨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보다 못한 태권소녀가 보안관의 팔을 잡아당겼다.

“잠깐 이야기 좀 하자, 보안관.”

보안관과 함께 뒷줄로 빠진 태권소녀가 진지한 말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너 있지, 저 사람한테 감정이 있는 건 잘 알겠는데… 그래도 ‘야’라고 부른다든지, ‘이 새끼, 저 새끼’ 해가며 욕은 하지 마. 보기에 되게 안 좋아.”

“뭐야… 너, 기껏 사람 붙잡아놓고 그런 잔소리가 하고 싶냐? 저런 깡패 새끼 편들려고?”

보안관은 도무지 귀담아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다시 앞으로 뛰어가려는 그를 태권소녀가 붙잡았다.

“나는 너를 좋아하니까 네가 두 살이나 어려도 나한테 반말하고 가끔 ‘계집애’라고 부르는 거 괜찮아. 다 이해해. 하지만 저 아저씨랑 너랑 나이 차이가, 너랑 규영이 나이 차이보다 더 커 보인다고. 너 한 번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봐. 만약에 규영이가 너보다 싸움 잘한다고 너한테 ‘이 새끼, 저 새끼’라고 부르면, 넌 그거 참을 수 있어?”

규영이의 예를 들자 보안관의 기세도 조금 누그러졌다. 대답이 궁해진 보안관이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규영이는 그런 애가 아닌데…….”

“그럼 너는 그런 놈이야? 나중에 싸울 때는 싸우더라도, 같이 움직이는 동안에는 그렇게 부르지 마. 네가 욕할 때마다 저 사람이 아니라, 네 값어치가 떨어지는 것 같아 보여. 나는 그게 속상하단 말이야.”

“후우~ 뭔가 야단맞는 것 같아서 기분이 별로인데…….”

보안관이 볼멘소리를 하자, 태권소녀는 그의 덥수룩한 머리를 거칠게 헝클어뜨리며 미소를 지었다.

“네가 아까 말했지? 저 사람 지금 옆구리가 정상이 아니라고. 그래… 너보다 약해. 약한 사람한테 잘해줄 수 있잖아, 너. 나한테 잘해줬듯이 말이야.”

“약하다고? 네가? 장난치냐?”

보안관이 눈살을 찌푸리자, 태권소녀는 녀석의 등짝을 후려쳐서 앞으로 쫓아버렸다. 보안관은 다시 진우와 삼숙이를 앞질러 가며 생각에 잠겼다.

음… 인정하기 싫지만, 확실히 혜주의 말이 틀린 것 같지는 않다.

그롸아아아아―

군이 설치해 둔 철제 계단 통해 용산대로에 올랐을 때, 근처를 지나던 좀비들이 그들을 맞았다. 대략 열 마리 조금 넘는 정도. 진우가 총을 겨누려고 할 때, 민구와 보안관이 동시에 손을 들어 제지했다.

이제 태양 그룹까지 거리는 700여 미터 이내. 총소리는 가급적이면 내지 않는 게 좋다.

“형씨, 내가 왼쪽에 설게! 나는 오른팔을 주로 쓰고, 형씨는 지금 왼손이 더 편한 것 같으니까! 그러면 서로 겹칠 일 없겠지.”

그때까지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보안관이 위치에 대해 제안을 했다. 그에게서 ‘형씨’라는 말이 나오자, 그 갑작스런 변화에 민구는 잠시 당황스러워한다.

“…너 편한 대로 해라. 어차피 난 두 팔 다 잘 쓰니까 아무 데라도 상관없어.”

“젠장, 잘 쓰기는 개뿔!”

보안관은 툴툴대면서도 애초에 말했던 대로 왼쪽을 향해 뛰어나가며 해머를 높이 들어 올렸다. 민구도 가방에서 마세티를 뽑아 왼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그롸악― 카아아악―!

순식간에 덮쳐 오는 좀비들!

보안관은 해머로 맨 앞에서 달려오는 좀비의 대갈통을 날렸다.

빠작―!

목뼈가 완전히 뒤로 꺾인 좀비가 맥없이 무릎을 꿇는다. 보안관은 녀석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두 번째 놈의 턱을 올려쳤다. 그러고는 한 번 더 크게 스윙을 해서 세 번째 놈의 얼굴에 정면으로 한 방을 먹였다.

그사이 민구도 세 마리째의 괴물과 맞서고 있었다.

서걱―!

강력한 일격에 잘린 괴물의 머리가 허공에 떠오른다. 민구는 마세티를 찔러 네 번째 놈을 밀어내고, 다시 방향을 돌려 녀석의 턱과 목을 베어냈다.

등의 나이프 홀더에 끼워진 쿠크리 손잡이를 오른팔로 움켜쥐고, 그것을 조종간 삼아 부족한 옆구리 근력을 대신하는 중이다.

불과 4미터 넓이도 되지 않는 좁은 보도 안에서 길고 무거운 무기를 휘두르면서도 보안관과 민구는 서로의 동선 안에 들어가지 않았다.

해머가 뒤로 젖혀지면 민구가 알아서 마세티를 뒤로 빼고, 민구가 마세티를 백핸드로 휘두르면 보안관이 먼저 회전 반경 밖으로 피한다.

둘 다 믿기지 않을 수준의 운동 능력과 동체 시력, 그리고 감각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허! 둘이 아주 오랜 단짝이라고 해도 믿겠는데? 꼭 미리 짜놓고 움직이는 것 같아.”

진우의 탄약 가방을 짊어진 삼식이가 감탄한다. 녀석의 말대로 보안관과 민구 콤비는 대단히 강력했고, 또 효율적이었다. 덕분에 열 마리가 넘던 좀비들이 순식간에 모두 처리됐다.

“후우우~”

민구는 칼날에 묻은 체액과 찐득한 피를 털어내고 마세티를 가방 안에 넣었다. 그러면서 그는 보안관과 해머를 슬쩍 돌아봤다.

주인을 닮아 엄청나게 무식한 무기다. 이 정도 무게의 칼을 휘두르는 것도 만만치 않은데, 저 무거운 걸 계속 휘둘러 가며 팔랑팔랑 뛰어다니다니… 녀석의 힘이 놀랍다. 흥, 역시 고릴라답군.

“여덟 시 사십 분이야. 이제 진짜 시간 많지 않아. 다음번에 또 좀비들 나오면 내가 빨리 잡고 갈게.”

수고했다는 듯 보안관의 어깨를 두드려 준 진우가 말했다. 삼숙이는 아직 거리가 꽤 되는 태양 그룹 본사를 노려보며 낮게 으르렁거린다. 녀석에게도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악의 기운이 느껴지는 모양이다.

보안관 일행 일곱 명은 빠른 속도로 보도를 내달렸다. 가장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삼식이와 유빈의 숨이 가빠진다. 그리고 그들은 5분여 만에 강 소위와 입을 맞춰뒀던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대로에서 벗어나 골목 안으로 들어간 일행은 구식 5층 건물의 계단을 뛰어올랐다.

“자, 이제 15분 동안 대기.”

2층 벽에 기댄 진우는 시계를 확인하고 가방에서 물을 꺼내 입술을 축였다. 다들 배낭을 멘 채로 숨을 돌렸다. 이제 15분 후면 그들은 다시 돌이킬 수 없는 전쟁 속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 ☆ ☆

“으으으, 추워… 가뜩이나 으스스한데.”

태양 그룹 연구원이 팔짱을 끼며 몸서리를 친다. 바로 옆에서 NFC 태그를 통해 좀비들의 정보를 파악하고 있던 두 번째 연구원이 잔뜩 코가 막힌 목소리로 대꾸한다.

“뭐… 당연하지. 이 보존 로커 내부는 영하 55도니까. 아무래도 여기까지 냉기가 새어 나올 수밖에 없어.”

“야, 근데 테라도 그렇게 해놓으니까 아주 섹시하더라. 나는 하의 실종 와이셔츠는 제니 전유물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팔짱을 끼고 있던 연구원 1이 중얼거렸다. 연구원 2도 동의한다.

“그것도 그렇고… 걔가 막 괴로워하니까 그게 더 자극적인 면이 있었지. 애가 딱 상처 받기 쉬워 보이는 비주얼이잖아… A821056… 에이, 이것도 아니네. 193이니까 키는 꽤 큰데, 덩치도 그렇고… 생긴 게 너무 멀끔해.”

A821056의 로커를 당겨 열어 실물을 확인한 연구원 2가 실망스러워한다.

“그럼 빨리 닫아. 깨어날라! 아니면 안전장치를 걸고 보든가! 하여간 남자라는 것들은! 섹스 이야기는 좀 나가서 해!”

좀비를 실어 나르기 위한 카트에 기대서 있던 연구원 3이 조바심을 낸다. 연구원 2는 가볍게 낄낄거리며 로커를 닫았다.

“야, 괜찮아. 어차피 그렇게 빨리 해동은 안 돼. 꽁꽁 얼어 있다고. 에, 다음 후보는… 어후, 마음 급해 죽겠네. 아직 40분 안 지났지?”

“그렇기는 한데, 서둘러라. 오 박사 그 새끼가 빡 돌면 우리부터 식사실에 처넣는 수가 있다.”

연구원 4가 시간을 확인하고 나서 경고조로 말했다. 다들 같은 대학원 출신이어서 동네 친구처럼 스스럼없는 사이들이다.

반대편 벽 쪽의 로커들을 확인하고 있던 연구원 1이 불만스럽다는 듯 웅얼거린다.

“사실 시간이 좀 걸리는 일이기는 하지. NFC로 차트를 읽어온다고 해도 그냥 몸무게나 키 정도지, 그게 얼마나 그로테스크한지는 안 보여주니까 일일이 눈으로 확인을 해야 하잖아.”

“그딴 변명은 오 박사한테 네가 직접 해. 나는 찍히기 싫으니까. 그냥 아까 그 190 넘는 남자로 가져가고 말자. 이 많은 걸 언제 다 확인해?”

연구원 4의 말에 모든 연구원들이 새삼스럽다는 표정으로 넓은 보존실을 돌아봤다. 가로 1.5, 세로 0.6의 보존용 로커 박스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그 철제 상자 하나하나가 모두 다 살아서 이 건물로 들어왔던 사람들이다.

“정말 징그럽게 많이 죽이기는 했네… 씨발, 우리 지옥 가겠다.”

“에이, 아니지. 우리가 무슨 죄가 있어. 그냥 위에서 시키는 대로 처리만 한 실무자들인데. 우리는 벌 받을 대상이 아니야. 그런 것보다 전에 완전히 끔찍한 꼴로 좀비가 된 년을 하나 보기는 했는데, 뭐더라… 에취!”

차가운 실내 기온 때문에 저절로 재채기가 난다. 영하 55도로 좀비를 보존시키는 방법은 오 박사가 개발한 것이 아니라, 국방연구소에 심어둔 프락치가 좀비에 대한 모든 데이터를 처음 작은 회장에게 넘겼을 때부터 포함되어 있던 정보다.

깨끗한 상태로 재사용해야 하는 좀비들은 이곳에 보관한다. 덕분에 이 커다란 건물 내에서 이곳 12층의 보존실이 가장 많은 양의 전력을 사용하는 곳이다.

“아! 기억났어! 메이저한테 끌려가서 일주일인지 며칠인지 버틴 그거 말이지! 엄청 괴물 같은 여자!”

연구원 2가 손뼉을 치며 기억난 것을 떠든다. 연구원 4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그래! 그 시리얼 넘버 기억나?”

“아마… 그게… E9104596… 이건가?”

연구원 2는 태블릿을 NFC 스티커에 가져다 댔다. 정보가 화면에 떠오른다.

“그래… 이거 맞나보다. 어후, 몸무게 봐라. 무슨 멧돼지도 아니고.”

연구원 2는 곧바로 로커를 열어 눈으로 확인을 했다.

E9104596. 참혹하게 멍들고 찢어진 경순의 얼굴이 나타나자, 연구원들은 가볍게 탄식했다.

“으아, 맞은 애도 대단하지만,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때린 메이저… 진짜 그게 인간이냐?”

“좀 더 당겨보면 더 끔찍해. 갈비뼈가 부러져서 피부를 뚫고 나왔어. 어쨌든 잘됐다. 이거 가져가면 좋아할 거 같다. 혹시 모르니까 아까 그 남자 A821056도 같이 가져가자. 정 그렇게 기괴하고 싶으면 메스로 몇 군데 그어놓으면 되잖아.”

“서둘러! 지금 여덟 시 58분 막 지났다고! 10분도 안 남았어!”

A821056의 로커 쪽으로 걸어가며 연구원 4가 또 짜증을 부렸다.

☆ ☆ ☆

강 소위와 고 하사, 그리고 장갑차장인 이 하사를 태운 장갑차는 한강대로 끝자락에 멈춰 서 있었다. 빠른 이동을 위해 트레일러는 산책로 한쪽에 잠시 떼어놓고 왔다.

어차피 건대로 돌아가는 길이어서 트레일러 안은 텅 빈 상태니까 그렇게 세워놓아도 문제가 될 건 없었다.

“공팔 시 오십구 분.”

시계를 확인한 장갑차장이 조준경에 눈을 가져다 대고 방아쇠를 당길 준비를 마쳤다.

거리는 900, 목표는 직각으로 서 있는 콘크리트 벽.

이건 놓치려야 놓칠 수가 없는 목표다. 딱히 조준까지도 필요 없지만, 그래도 계속 열영상 카메라를 확인하는 이유는, 혹시 벽 너머에 무슨 변화가 있지 않은가 하는 노파심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빌딩 외부엔 오가는 사람이 없다. 오직 넓은 태양열 발전 패널들이 뜨거운 열기를 발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장갑차장의 목표다.

이왕 때릴 거면 아주 아프게 때린다는 것이, 그의 좌우명이다. 그래서 오늘 그는 벽에 구멍을 뚫고, 그 너머의 발전 패널들을 다 박살 낼 생각이다. 대놓고 쳐들어가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태양 그룹 저 개새끼들을 아주 가루로 만들어주고 싶다.

“좀비들은 어때요? 아직도 그 주변에 많습니까?”

전투 병력 탑승 공간에 앉아 있는 강 소위가 물었다. 장갑차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규모 삼… 정도는 족히 될 것 같습니다. 그 주변을 빙글빙글 돌고 있는 중입니다.”

저 좀비들은 구멍이 뚫리면 가장 먼저 안으로 뛰어 들어갈 놈들이다. 말하자면, 진우 일행의 첨병이랄까.

“공구 시 정각!”

언제라도 전속력으로 퇴각할 준비가 되어 있는 운전수가 시간을 알려주자, 장갑차장은 곧바로 40㎜ 기관포의 방아쇠를 당겼다.

쾅― 쾅― 쾅―

잇달아 발사된 세 발의 철갑탄이 빠르게 날아간다. 그리고 태양 그룹 본사 빌딩을 외부로부터 보호하고 있던 단단한 콘크리트 벽에 직경 3미터가 넘는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냈다. 장갑차장은 명중을 확인하고 나서 다시 방아쇠를 당겼다.

쾅― 쾅―

이번에 장전되어 있던 포탄은 근접 복합 기능탄이었다. 뚫려 있던 구멍 안으로 빨려 들어간 두 발의 복합 기능탄은 목표물로 상정되어 있던 태양열 발전 패널의 앞에서 폭발하며 수백 개의 파편을 흩뿌렸다.

콰창― 콰창―

주차장을 가득 메운 채 설치되어 있던 태양열 발전 패널과 4층까지의 모든 유리창이 산산조각 났다. 마지막으로 현궁이 날아가 폭발하자 열영상 카메라에 비친 태양 그룹 본사 건물 앞마당과 주차장은 금세 뜨거운 불덩어리로 변해 버렸다.

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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