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410화 (410/449)

1장 어벤저스 (5)

“테라 씨, 수고 많았어요! 근데 말이지, 지금 촬영분… 이거 몇 가지 문제가 좀 있어요! 그래서 다시 한 번 찍어야 할 것 같아. 다음번 촬영까지 시간이 좀 있으니까 잠시 쉬고 있어요! 금방 아래 정리하고 올려줄게요! 아… 그리고 두 번째 촬영 때는 좀 더 카메라를 정면으로 봐줬으면 좋겠는데… 생 초짜도 아니고, 연예인이 이러면 곤란하지. 어차피 좀비들 무섭지 않잖아.”

그로테스크하고 커다란 덩치의 좀비를 찾기 위해 연구원들이 보존소로 뛰어나간 뒤, 오 박사는 마이크를 켜고 테라에게 말을 걸었다. 구석에 쪼그리고 앉은 테라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초점 없는 눈은 바닥에 고정되어 있고, 핏기 없는 입술은 계속 바르르 떨린다. 다른 사람들의 피를 뒤집어써서 젖은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에서는 핏물이 뚝뚝 떨어졌다.

“어라? 저년 저거… 왜 저래? 돌아버렸나? 그럼 안 되는데… 젠킨스가 뭔 소리를 했었는지 아직 듣지도 못했는데 말이지.”

오 박사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중얼거리자 메이저가 피식대며 웃었다.

“저, 저, 저런 거 보통 내, 내, 내 방 끌려온 년들이 이, 이, 이틀째 많이 보이는 패, 패턴인데… 후후후.”

“그래? 다들 저렇게 미쳐?”

“미, 미친 게 아니야. 미, 미, 미친 척하는 거지. 호, 혹시 그러면 그, 그만 패고 놔줄까 해서. 저, 저, 저러다가도 뜨, 뜨거운 걸로 좀 지, 지지면 곧바로 사, 사, 살려 달라고 빌지. 다, 담뱃불이나 라, 라이터 같은 거 말이야. 후후후. 내, 내가 제정신 드, 들게 해줄까?”

메이저는 혀로 퉁퉁 부은 입술을 핥으며 콧김을 뿜어 댄다. 테라가 무척이나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오 박사는 킥킥거리며 웃었다.

“들었어요, 테라 씨? 당신 큰일 나게 생겼어. 빨리 정신 차려야 될 것 같은데? 다음 촬영 세팅 끝날 때까지도 그 상태면, 나는 인류의 안녕을 위해서 당신을 이 야만인 새디스트한테 넘길 수밖에 없다고요! 담뱃불로 지진다네! 하하하!”

웃음소리를 남긴 뒤에야 오 박사는 마이크를 껐다. 그는 일부러 메이저와의 대화까지 테라에게 다 들려줬다. 생각이 조금이라도 남은 년이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봐, 야만인 새디스트. 조금만 더 참고 다른 년들이랑 놀아. 저건 말이지, 황금 피가 흐르는 년이야. 아니, 금으로도 모자라. 다이아몬드 블러드라고 해야 할까? 그러니까 저년은 건드릴 생각 말라고. 저 피를 쪽쪽 뽑아서 우리 크게 한몫 잡아보자.”

오 박사는 메이저의 단단한 복근을 툭 치며 웃었다. 메이저도 듣기 싫지 않은 이야기여서 함께 킥킥거린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의 죽음과 고통을 보며 낄낄대는 동안, 엔지니어들은 뒷수습을 위해 바쁘게 움직였다.

먼저 식사실 가득 퍼져 있는 좀비들을 다시 격리 구역 안으로 불러들였다. 방법은 작은 회장 좀비를 격리시킬 때와 동일했다.

격벽 안쪽에 마련된 또 다른 크레인에 사람을 매달아서 늘어뜨린다. 그러면 좀비들은 사람 냄새에 홀려 그쪽으로 이동한다. 물론 앞의 놈들이 잡아먹어 버리면 이 미끼가 못 쓰게 되어버리니까, 놈들이 다가올수록 조금씩 위로 매달린 사람의 높이를 끌어 올린다.

“어우, 저걸 언제 다 치워.”

좀비들을 격리시키고 난 뒤, 방호복을 입은 채 크레인을 타고 내려가며 직원들이 작게 투덜댔다.

여섯 명의 성인에게서 흘러나온 피의 양은 엄청나서, 바닥에 흥건한 웅덩이가 몇 개나 생겼다. 직원들은 긴 호스를 끌어내려서 피를 빨아들이고, 약품을 사용해 말라붙은 핏자국을 닦아냈다.

“이건 어떻게 처리합니까?”

조각난 신체를 산업폐기물 처리용 플라스틱 드럼에 담던 직원이 머리가 잘려 나가지 않은 채 죽어있는 희생자들의 시체를 가리키며 물었다. 오 박사는 별 고민 없이 대답했다.

“드릴로 머리 뚫어서 폐기해. 어차피 샘플 많으니까. 그전에 일단 테라부터 올려.”

테라는 억지로 일으켜 세워진 뒤 방호복의 손에 안겨 위쪽으로 다시 끌어 올려졌다. 오 박사는 가볍게 손을 흔들어주고 나서 연구원들에게 명령했다.

“걔 피 닦고 옷 갈아입혀. 누가 내 방으로 가서 옷 박스 좀 가져와라. 흰옷 잔뜩 들어 있을 거야.”

“…이제 그만해요. 충분히 찍었잖아요.”

연구원들이 달라붙어 피를 닦아주는 동안 울음을 멈춘 테라가 중얼거렸다.

“응?”

오 박사는 같잖다는 얼굴로 테라를 돌아본다.

“뭐라고 하는지 안 들려요, 테라 씨. 그렇게 웅얼거리면.”

“그만하라고요. 필요한 거 충분히 다 찍었잖아요. 제가 좀비들한테 안 보이는 거… 그리고 제 옆에서 돌아다니던 게 진짜 사람 잡아먹는 좀비들이라는 거. 그런데 왜 또 사람들을 죽이려고 해요. 이제 그만둬요.”

테라는 오 박사를 노려보며 말했다. 공포와 분노 때문에 그녀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린다. 철창 안에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울부짖으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중이다. 그들의 피를 또 보고 싶지 않았다.

“충분히 찍었다는 건 테라 씨의 일방적인 생각이고… 내 높은 안목은 아직 만족이 안 됐어요. 그러니까 협력 좀 해달라고. 한 번만 더 갑시다. 그리고 말이죠… 무고한 사람들 죽는 꼴이 그렇게 보기 싫으면 이번에는 제대로 해요. 좀비들 사이에 당당하게 서서 카메라도 응시하고, 좀 멋지게! 내가 어떤 그림 원하는 건지, 다 알면서 시치미를 떼고 그래? 안 그러면 매일 이 짓을 할지도 모르니까.”

오 박사는 빙글거리며 끔찍한 이야기들을 지껄였다. 밤을 꼬박 샜지만, 그는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다. 놀라운 면역 특성의 백신을 개발 중이라는 근거로 이 동영상을 군에 흘릴 것이다.

좀비들에게 인지되지 않는 슈퍼 면역자!

그것은 곧 슈퍼 군인의 탄생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1인용 백신의 가격으로 전차 한 대 값을 부른다고 해도, 멍청한 장군들은 앞다투어 그 거래를 받아들일 터이다. 좀비 세계 최강의 스텔스 병사들을 얻는 거니까.

그러니 이 광고용 동영상을 아주 잘 찍을 필요가 있다. 장엄하면서도 무시무시하고, 그러면서도 생동감 있고 아름답게, 또 동시에 아무리 멍청한 놈들이라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면역자의 강점이 두드러져야 한다.

“아니요… 그만해요. 이제 제발… 다른 사람들이 죽는 것도 싫고… 나도 미쳐 버릴 것 같아요. 더는 못 견디겠어요.”

테라는 피투성이 블라우스 소매에 얼굴을 묻고 흐느꼈다. 차라리 빨리 실험실에 감금된 채 피를 뽑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건… 너무 끔찍하다. 흐느끼는 그녀의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오 박사가 또다시 빙글거리며 말했다.

“내가 분명히 말했을 텐데요. 나도 새디스트라고. 그렇게 애원하는 것 따위는 내게 안 통해요. 테라 씨가 고통스러워할수록 이 게임은 나의 것이 되는 거니까. 아, 그리고 미쳐 버릴 것 같다고 했던 말… 설마 그거 협박 아니겠죠? 아까 메이저가 하는 말 분명히 들었잖아. 웬만한 급성정신병은 담뱃불로 지지면 낫는다는군. 내 생각에도 그럴 것 같긴 해. 그러니까 미쳐 버리는 거에 대해서는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 ☆ ☆

민구와 친구들 일행은 산책로에서 벗어나 한적한 풀숲 속에 모여앉아 있었다. 친구들과 민구의 사이는 약 2미터. 가끔 유빈이 질문을 던지기는 했지만, 대화가 자주 이어지지는 않았다. 말 그대로 서먹하다.

그들이 대열 밖으로 나와 있는 것에 신경 쓰는 군인은 거의 없었다. 어차피 가야 할 길은 철로 한 방향이기도 하고, 자기 살길은 자기가 챙겨야 하는 분위기였다.

열심히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 챙기고, 가끔씩 밀려드는 좀비들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더는 못 기다리겠군. 그냥 먼저 간다.”

초조하게 미키마우스 시계를 들여다본 민구가 담배를 바닥에 비벼 끄며 일어섰다. 무의미하게 시간이 흘러가는 걸 더 견디지 못하겠다. 유빈이 그를 만류했다.

“잠깐만요. 강 소위님이 담을 부숴준다고 했으니까 조금만 기다리죠. 그렇게만 되면 훨씬 시간이 덜 걸릴 거예요.”

“그게 언제인데… 이제 충분히 기다렸잖아.”

“아니… 그렇지 않아요. 저기 역 주변이 전부 높은 담으로 막혀 있어서 군의 도움이 없으면 들어가 보기도 전에 잡힐 거예요. 그리고 지금은 어차피 계속 좀비들이 돌아다니고 있어서 접근도 못하고요. 그러니 조금만 더 기다려요. 계획도 없이 무작정 간다고 테라를 데려올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최악의 경우, 아저씨가 놈들을 다 물리친다고 해도 헬리콥터가 날아올라가 버리면 끝이에요. 그러니 아주 빠르게 단시간에 해치워야 하는 겁니다.”

유빈의 말을 들은 민구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태양 그룹 빌딩이 있는 방향을 돌아봤다.

이 녀석의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아까부터 저 총에 달린 작은 망원경을 가지고 열심히 살피고, 땅에 그림까지 그려가며 뭐라고 혼자 웅얼대는 폼이 제법 약아 보였다.

하지만 이렇게 담배만 축내고 앉아 있으려니 자꾸 그 계집애의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려 미치는 것 같다. 빚진 것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지금 저 주변에 워낙 좀비들이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는 거예요. 담에 구멍이 나면 저놈들도 안으로 들어가 버릴 거고… 거기까지는 좋은데, 그랬다가 혹시 테라도 좀비들 때문에 곤란해지는 건 아닌지…….”

유빈이 마음속에 담아뒀던 걱정거리를 중얼거린다. 민구가 조용히 말했다.

“걔는 괴물들에게 보이지 않아. 바로 옆에 있어도 모른다고. 그러니까 괴물들이 안으로 들어간다고 해서 걔가 곤란해질 일은 없어.”

“에? 정말이요? 그런 게 말이 되나?”

유빈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민구의 얼굴은 거짓이 담겨 있지 않았다. 하긴… 면역자라는 것도 임수정으로부터 듣기 전에는 상상해 보지 않았던 개념이니까.

으흠, 유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지원이 더욱 필요하네요. 아저씨도 조금만 더 기다려요.”

“젠장…….”

초조한 마음에 담배나 한 대 더 피우려고 하는데, 담뱃갑이 텅 비어 있다. 민구가 혀를 차며 담뱃갑을 구겨 버리자, 옆에서 새 담뱃갑이 날아왔다.

그걸 잡은 민구가 돌아보니, 키가 훌쩍 크고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녀석이 씩 웃는다.

‘여자깨나 후렸겠구만…….’

민구는 녀석을 빤히 쳐다보며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러고는 시선을 돌려 장갑 트레일러 쪽의 강 소위와 고 하사를 바라봤다. 하필이면 고 하사가 끼어 있어서 뭐라고 잔소리도 할 수 없는 신세다.

그때, 강 소위는 고 하사와 바짝 붙어 앉아서 유빈이 준 핸드폰의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 이미 한 번 봤던 내용이지만, 작은 회장 좀비가 사람의 살을 물어뜯을 때마다 그와 고 하사는 필요 이상 큰 소리로 과장된 반응을 보이며 몸서리를 쳤다.

“으아, 이건 진짜 너무하네… 어떻게 사람이 이런 짓을…….”

그러고선 가끔 한 번씩 뒤를 흘끔거린다. 장갑 트레일러가 급유를 위해 잠시 멈춰 서 있는 지금, 그들이 하필이면 장갑차장석에서 빤히 보이는 위치에 자리를 잡고 이 짓을 하고 있는 건 장갑차장을 이 작전에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어차피 고급 장교들에게 보고해 봐야 씨알도 안 먹힐 거라면, 인간적으로 대화할 수 있는 계급들을 목표로 삼는 게 낫다.

“어후~ 고되네요. 대체 몇 시간 동안 이걸 타고 다닌 건지… 근데 대체 뭘 보시기에 그렇게 호들갑을 떠십니까? 사람 힘들게 일하다가 잠깐 쉬는데 아는 체도 안 하시고.”

장갑차 상부에 걸터앉아 담배 한 대를 피우며 모처럼 한숨을 돌리던 장갑차장이 그들의 등에 대고 말을 건다. 어제 새벽 전투를 함께 하면서 튼 안면이라 하루 만에도 꽤나 찐득해진 사이다.

하지만 강 소위와 고 하사는 장갑차장의 목소리를 못 들은 척하고 계속 동영상만 쳐다봤다.

“어우! 꺼요! 꺼! 이건 너무 심해! 꿈에 나올까 무섭네, 젠장! 아우, 토 쏠려.”

고 하사가 호들갑을 떨었다. 결국 장갑차장은 아래로 뛰어내려서 그들 옆으로 다가왔다.

“아이구, 참내… 뭐가 그렇게 재미있습니까? 같이 좀 봅시다. 휴대폰이네요? 요새 이런 거 어디에서 구합니까?”

장갑차장이 고 하사와 강 소위의 사이에 끼어들며 양팔로 어깨를 끌어안는다. 강 소위는 화들짝 놀라는 시늉을 하며 얼른 휴대폰의 화면을 꺼버렸다.

“어! 응! 언제 왔어요? 어휴, 바로 옆에 오는 줄도 몰랐네!”

“아니… 계속 불렀는데 대답이 없으시더라고요. 근데 그게 뭐기에 그렇게 정신없이 보십니까? 재미있는 거예요? 혹시… 야한 거?”

장갑차장이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어깨를 으쓱거린다. 강 소위는 시치미를 뚝 떼고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닙니다, 그런 거. 이거… 그냥 잊어버리세요. 보시지 않는 편이 좋은 거라서… 아직은 극비이기도 하고…….”

“그래요, 잊어버려. 이 하사를 위해서 하는 소리예요. 에이, 뒷맛이 영 안 좋아. 쯧.”

고 하사도 거들고 나섰다. 강 소위의 연기가 시원치 않아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수가 없다. 예상치 못한 거절에 장갑차장은 당연히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다.

“아니… 뭡니까? 둘이서 사람 따돌리는 것도 아니고… 계속 재미나게 보시는 것 같더구만… 나도 같이 좀 봅시다!”

걸려들었구나!

강 소위와 고 하사는 은밀하게 눈빛을 교환했다.

큼큼, 가볍게 헛기침을 한 뒤, 강 소위가 주변을 둘러보며 목소리를 낮춰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어제 같이 싸운 전우가 그렇게 말하니까 보여줘야겠네요. 그런데 이거, 진짜 극비예요. 어디 가서 이런 걸 봤다고 하면 안 됩니다. 그것만 약속해 줘요. 우리도 상부에 보고하기 전에 한 번 몰래 본 거라서.”

장갑차장은 눈을 반짝이며 대번에 고개를 끄덕인다. 가뜩이나 한 달이 훌쩍 넘도록 뭔가를 시청하지 못한 채 살았는데, 거기에 극비라고까지 하니, 이보다 더 구미가 당기는 건 흔치 않다.

“경고합니다. 이거, 진짜 잔인해요.”

고 하사가 끼어들어 한 번 더 시간을 지체했다. 장갑차장은 콧방귀를 뀌었다. 신체가 훼손되고 토막 난 좀비들과 매일 부대끼며 얼마를 살았는데, 이제 와서 잔인하니까 경고한다니… 우습지도 않은 소리다.

“알았어요, 경고 다 알아들었고, 극비인 것도 알았으니까, 봅시다.”

장갑차장의 대답을 듣자마자 강 소위는 휴대폰의 화면을 켜고 다시 재생 버튼을 눌렀다. 일시 정지되어 있던 작은 회장 좀비가 크레인에 매달린 사람의 내장을 뜯기 시작했다. 마침 신 차장의 내레이션이 들어가 있는 동영상이었다.

― 이렇게 잔인한 일이 태양 그룹 본사 내에서 매일 몇 차례나 벌어집니다.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을 잡아다 좀비 먹이로 주는 겁니다. 좀비가 되어버린 회장의 아들 새끼 끼니를 챙겨 줘야 한다는 이유로… 이들은 X―1에 의해 몸의 근육이 마비되어 있기 때문에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죽어간 사람들이 또 좀비가 되어 실험실에 해부용으로 보내집니다.

내레이션이 흐르는 동안 작은 회장 좀비의 식사는 끝이 났다. 심장이 멈춘 사람에게서 피투성이 입을 떼어낸 작은 회장 좀비가 카메라를 올려다보며 울부짖는다.

“…이, 이게 지금… 뭡니까? 태양 그룹이라고요? 저기 저 빌딩?”

장갑차장은 어안이 벙벙해져서 태양 그룹 본사 건물을 가리켰다. 강 소위와 고 하사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멍해져 있던 장갑차장이 도리질을 하며 현실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아니, 이거 뭔가 조작이거나 잘못된 이야기입니다. 아무리 세상에 법이고 뭐고 다 무너졌다지만, 그래도 어떻게…….”

“그랬으면 좋겠는데… 증거가 너무 명확해요. 그러니 믿지 않을 수가 없어. 동영상도 이거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고요.”

장갑차장은 조금 전과 완전히 달라진 표정이 되어 입술을 굳게 다물고 다음 동영상을 골라 재생시켰다. 내용도, 촬영 각도도 비슷한 동영상이었다.

작은 회장 좀비는 크레인에 매달려 있는 희생자에게 달라붙어 숨이 끊어질 때까지 물어뜯는다. 다만 죽어가는 사람이 다르다. 이번에는 훨씬 더 나이가 든 사람이었다.

“후우우…….”

미간을 찌푸린 채 지켜보고 있던 장갑차장의 입에서 분한 마음이 가득 담긴 한숨이 새어 나온다. 두 개의 동영상을 더 지켜본 후, 그는 화면을 정지시키고 잠시 먼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어제 하루만… 천 명이 넘는 민간인이 태양 그룹 헬리콥터를 타고 그쪽으로 이동했습니다. 제가 장갑 트레일러에 사람들을 싣는 바로 옆에서… 그물 같은 통에 태우는 걸 봤어요. 그 사람들도 지금 이런 신세란 말이에요?”

그가 가장 화가 나는 건 바로 그 지점이었다. 이런 짓을 하기 위해 사람들을 태우고 가는 동안, 잠실의 병사들이 목숨을 걸고 시간을 벌어줬었다.

헬리콥터가 떠오를 때, 이제 살았다는 안도감을 느끼며 환하게 웃던 그물 속의 얼굴들이 눈에 선하게 그려질 것 같다.

“후우우~ 뭐, 비슷하지 않을까요? 믿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어쨌든 이렇게 빼도 박도 못할 증거가 나왔으니까, 앞으로는 못 그럴 겁니다. 여단장님께 보고 올라가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시겠죠.”

강 소위가 대답했다. 장갑차장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여전히 마뜩치 않았다. 여단장은 지금 경기도 아래까지 내려가 있다고 들었다. 이 초급 장교가 저 핸드폰을 가지고 거기까지 내려가서… 여러 단계의 보고를 두루 거친 뒤에 여단장이 그걸 보고… 작전 회의를 열어 병력을 보낼 것인지, 아니면 시찰단을 파견할 것인지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그 모든 게 단시간에 제대로 끝이 날 리가 없다. 그러면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저 건물 안에서는 이런 개 같은 짓이 반복적으로 벌어질 게 빤하다. 그리고 만약 들통이 나더라도 정말 정의가 실현될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근데… 이런 게 어떻게 알려지게 된 겁니까? 이런 짓을 하고 있었으면 저놈들도 보안에 얼마나 신경을 썼을 텐데요. 그것도 하필이면 강 소위님 손에…….”

장갑차장이 물었다. 강 소위는 그의 등 뒤를 가리켰다.

“저기 저 친구들이 준 겁니다. 이건 꼭 상부에 알려야 한다고 목숨을 걸고 구해온 자료거든요…….”

장갑차장의 시선이 강 소위의 손끝을 따라 이동했다. 10여 미터 뒤에서는 어제 그와 여러 병사들을 경악시켰던 사제 군인 진우가 보안관, 유빈과 함께 진입에 대해 논의하고 서 있다.

“아아, 저 친구들이 그랬군요. 근데 저 총 든 친구는 신분이 뭔데 개인화기 휴대를 허용 받고 있습니까? 군의 통제를 받는 것도 아닌 것 같던데…….”

장갑차장은 어제부터 도통 이해할 수 없었던 걸 물었다. 지원사격을 받았을 때는 참 요긴하고 고마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납득이 안 됐다. 전술 조끼도, K―2도 모두 군용 표준 장비가 아니라는 점도 신기했다.

“그냥 좋은 놈이라고만 알고 있읍시다. 쟤 신분 하나가 뭐 그렇게 중요한 문제도 아니고… 여러 사람 구해낸 우리 편, 그 정도면 충분하잖아요.”

강 소위가 대답했다. 이번에는 뻥을 치지 않았다. 부사관쯤 되면 특수 요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에 넘어가 줄 리도 없고, 그 뒤에 이어질 사연과도 부합되지 않는 면이 있다. 장갑차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 소위님 말씀이 현답이네요. 좋은 우리 편… 맞습니다. 어차피 사방에 총 든 어린애들이 수두룩한데, 쟤 하나 더 있다고 뭐가 달라질 것도 없고요. 음, 여기까지는 다 이해가 된 것 같은데… 아직 모르겠는 게 있어요. 저한테 이걸 왜 보여주신 겁니까?”

“아니, 보여주기는 누가 보여줘요! 이 하사가 와서 자꾸 졸랐잖…….”

“에이, 왜 이러십니까? 제가 무슨 어린애도 아니고, 이제 보니까 딱 저를 꼬신 모양새인데… 굳이 그렇게까지 하셨을 때에는 강 소위님도 뭔가 원하는 게 있었던 거잖습니까.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뭡니까, 그게?”

장갑차장은 선수끼리 번거롭게 굴지 말자는 듯 손사래를 쳤다. 강 소위는 고 하사와 얼굴을 마주 봤다. 이쯤 되면 좀 어려운 부탁의 말을 꺼내도 될 만큼 분위기는 충분히 무르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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