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409화 (409/449)

1장 어벤저스 (4)

“둘!”

오 박사는 테라를 빤히 노려보며 숫자를 세었다. 그의 눈이 사납게 씰룩거린다. 자신의 명령이 조금만 늦게 이행되어도 도저히 못 견디는, 지랄 맞은 성격이다.

“읏…….”

테라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곧바로 어지럼증이 밀려왔지만, 한 손으로 소파 등받이를 짚고 선 채 원피스 아래로 손을 넣어 속옷을 내렸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인 것 같은데, 공연히 봉변까지 당해가며 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원피스는… 입고 있는 채로 속옷을 갈아입을 수 있으니까……. 테라는 스스로를 달랬다.

“거 봐. 잘할 수 있었잖아. 그런데 왜 그렇게 큰 소리 날 때까지 시간을 끌어요? 별것도 아닌 일인데. 다 갈아입으면 머리라도 좀 빗어요. 박스 안에 브러시가 있을 거예요.”

테라가 벗은 속옷을 발 사이로 빼고 있을 때, 오 박사가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인터폰에서 손을 뗀다. 하지만 그녀가 속옷을 벗었다는 사실 때문에 특별히 흥분했거나, 뭔가를 훔쳐보려거나 하는 기색은 없었다. 누드에 관심이 없다는 말은 사실인 모양이다.

“아, 벗은 옷은 거기 빈 박스에 넣어요. 가지고 있어도 되고, 버리고 싶으면 버려요. 어차피 그 이상한 흰 블라우스는 오늘만 입을 거고, 내일부터는 다른 옷을 준비해 줄 테니까 특별히 원하는 옷이 있거나 하면 나한테 알려주고. 쉐도우 실드에 이야기하면 며칠 내로 구해줄 겁니다.”

다시 평온해진 오 박사는 의자에 몸을 기대앉으며 느긋하게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테라가 돌아서서 요령껏 옷을 갈아입는 동안, 오 박사는 시선을 서류들에 둔 채 길고 흰 손가락으로 지휘까지 해가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다 입었어요.”

낡은 드레스와 입던 속옷들을 박스 안에 차곡차곡 개서 넣어놓고, 블라우스 단추를 담근 테라가 말했다. 흰 속옷에 헐렁한 흰 블라우스… 대체 어떤 이상한 짓을 하고 싶어 이런 걸 입히는 건지 불안하다.

그래도 그녀에겐 한 가지 믿음은 있었다. 이 사람은 면역자가 얼마나 특별하고 귀한지 정도는 안다. 그러니 오늘 이 자리에서 죽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 어디 좀 볼까? 돌아봐.”

턱을 쓸며 다가와 테라의 앞뒤를 살피며 디자이너 흉내를 내던 오 박사가 몇 가지 주문 사항을 말했다.

“좋아요! 좋은데, 단추는 하나 더 풀어요. 그리고 신발이 영 튀네. 흰색이 아니라서… 그거는 촬영하는 동안 잠깐 맨발로 있으면 될 거고… 그 허리를… 아무 끈으로나 좀 묶어서 포인트도 주고, 원래 입고 있던 옷 정도의 길이로 맞춰요. 지금은 블라우스가 길고 너무 펑퍼짐해서 영 매력이 없어.”

딱히 저항할 이유도 기운도 없어서 테라는 순순히 그의 지시를 따랐다. 그렇게 하고 있는 동안 다시 인터폰이 울렸다. 식사실의 세팅이 준비를 마쳤다는 보고였다.

“그래, 대기하고 있어. 금방 가지.”

오 박사는 테라를 앞세우고 문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식사실이 있는 8층으로 이동하는 동안 그는 어디로 가는 건지, 뭘 할 것인지에 대해 한마디도 일러주지 않았다.

그래서 테라는 몇 개 되지 않는 키워드만 가지고 여러 가지 상상을 조합하며 계속 불안에 떨어야 했다.

“저 지금… 뭘 촬영하러 가는 건가요?”

결국 두려움을 참지 못하고 테라가 먼저 질문을 던졌다. 오 박사는 그녀의 얼굴을 힐끔 내려다보며 말했다.

“두려워요? 후후후, 지금 그 눈빛은 마음에 드는데… 뭐, 이제 금방 알게 될 거니까.”

그리고 그는 테라를 식사실로 끌고 갔다. 그곳에는 이미 많은 인력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연구원들, 기계 관리 직원들, 그리고 메이저와 네 명의 쉐도우 실드 대원이 오 박사를 향해 인사를 건넨다.

“이게 그 카메라인가? 어디… 화질 좋은 거야? 풀 HD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아, 그리고 음질은 어때? 아래층 소리만 들어오는 거 맞지?”

식사실의 중앙에 배치되어 있는 동영상 촬영용 카메라와 집음용 마이크를 보고 오 박사가 관심을 보인다. 테라의 눈은 더욱더 공포에 질렸다.

이 방의 분위기가 싫다. 저 촬영 도구들, 그리고 중앙에 드리워진 크레인, 창을 통해 보이는 아래층의 기괴한 구조, 그리고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의 흥분한 숨결… 곧 뭔가 아주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 같다.

“흐으으으으…….”

떨고 있는 것은 테라만이 아니었다. 방의 양쪽 철창 안에는 남녀 각각 열 명 정도씩이 다들 발가벗겨진 채 갇혀 있었다. 그들은 서로에게 의지하듯 바짝 달라붙어 울음소리를 흘려 댄다.

“오, 이걸로 가, 갈아 입혔구나. 깨, 깨, 깨끗하니 좋은데…….”

메이저가 테라의 복장에 관심을 보이며 다가왔다. 테라의 다리를 훑던 그의 시선이 흰 블라우스 끝자락에 사심 가득하게 멈춰져 있다. 하루 사이에 꿰맨 부위가 더 부어오른 그의 얼굴은 이제 정말 괴물처럼 보인다.

나머지 쉐도우 실드 대원들도 붉게 달아오른 얼굴 가득 테라에 대한 호기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들 술을 마시던 도중에 이 촬영을 위해 잠시 끌려 나온 터라 평소보다 몇 배나 더 흥분된 상태였다.

“아래쪽 준비는 어때? CCTV 좀 연결해 봐.”

오 박사는 엔지니어들 쪽으로 가서 물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아래층의 상황을 보여주는 화면이 연결됐다. 투명한 폴리카보네이트 격벽 안쪽에 두 손으로 헤아릴 수 없을 정도 규모의 좀비들이 우글댄다.

막 안전장치를 해제하고 풀어놓은 좀비들의 갈비뼈 주변에는 나사못 구멍이 뻥 뚫려 있다. 기분이 좋아진 오 박사는 손뼉을 쫙, 치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오케이. 이거는 이만하면 충분한 것 같고… 그러면 준비는 대충 다 된 것 같지? 촬영 들어가 보자. 누가 카메라 맡을 건가?”

“접니다…….”

잔뜩 주눅이 들어 있는 젊은 남자 직원이 손을 들어 올린다.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어떤 것인지 대충 알기에 그의 목소리와 손은 바르르 떨린다. 그걸 외면하지 못하고 두 눈을 부릅뜬 채 계속 지켜봐야 한다는 게 너무 두렵고 싫다. 오 박사는 아주 진지한 어조로 그에게 촬영 원칙을 지시했다.

“리얼리티를 살려야 하니까 기본적으로 제1원칙이 와이드 샷이야. 화면의 줌이나 패닝 같은 건 내가 별도로 지시할 때, 그때만 하는 거야. 그리고 컷은 절대로 없어. 합성처럼 보이고 싶지 않으니까, 절대 끊거나 빈번한 이동 같은 건 하지 마. 테이크 하나로 쭈욱 간다. 알겠지?”

오 박사는 타르코프스키가 빙의된 사람처럼 미장센에 대해 장황한 주문을 늘어놓았다. 항상 테라를 화면의 정중앙에 놓아서 긴장감을 고조시켜야 한다는 것까지 전달하고 나서 그는 테라를 돌아보았다.

“자, 테라 씨. 그럼 시작합시다. 그 샌들 벗고, 저기 저 사람 따라가요.”

테라는 오 박사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돌아보았다. 두꺼운 방호복을 입은 직원이 크레인 앞에 서서 내려갈 준비를 하고 있다.

시간을 끌었을 때 어떤 위협이 가해지는지는 이미 여러 번 경험했다. 그러니 순순히 따르는 게 훨씬 현명하다. 테라는 분홍색 샌들을 벗고, 방호복의 곁으로 걸어갔다.

“고, 고, 공조 장치를 돌려서 바, 바람이라도 좀 부, 불게 할까? 저, 저 브, 블라우스 자락이 퍼, 퍼, 퍼, 펄럭이는 편이 더 누, 눈길을 끌지 않겠어?”

테라가 방호복에 안겨 아래층으로 내려지기 직전에 메이저가 긴급 제안을 했다. 오 박사도 그게 꽤 그럴듯하다고 생각했는지, 직원을 시켜 아래층 방의 공조 장치를 조작했다. 그러고는 크레인 아래의 바닥을 열었다.

기이이이잉―

식사를 매달아서 작은 회장에게 주던 크레인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간다.

휘이이잉―

아래층 방의 내부에서는 꽤나 강한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테라의 길고 검은 머리카락과 헐렁한 블라우스 자락이 정신없이 흔들리며 춤을 춘다.

“읍!”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던 테라는 바람 속에 섞여 날아오는 비릿한 냄새에 코를 막았다. 소독약 냄새와 좀비의 악취로도 온전히 지워지지 않은 피 냄새였다.

“손 치워요, 테라 씨! 얼굴이 나와야 돼! 어이! 올라오기 전에 걔 얼굴에서 손 치우고 와!”

카메라 옆에 앉아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던 오 박사가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지른다. 테라와 함께 내려왔던 방호복이 테라의 손을 잡아 아래로 내렸다. 그러고는 허둥지둥 크레인에 올라타서 다시 위쪽으로 올라갔다.

“좋아! 테라 씨! 여길 봐요!”

사선으로 기울어진 위층의 유리 바닥 너머로 오 박사가 떠들어 대는 소리가 들려온다. 테라는 불안함이 가득한 얼굴로 자신이 서 있는 곳을 둘러보았다.

꽤 넓은 방이었다. 천장도 높고, 가로세로 모두 널찍하다. 그리고 바닥과 벽이 모두 푹신한 쿠션 재질로 덮여 있다. 멀리 방의 끝 쪽에는 골목처럼 움푹 들어간 곳이 보인다. 물론 일부러 거기까지 가서 그 내부를 확인할 용기 같은 건 나지 않았다.

‘이 방은 뭘까… 왜 이런 곳과 저런 장치를 만들어놨을까…….’

죽이지 않을 거라고 믿으면서도 테라의 가슴은 심하게 떨렸다.

카메라와 유리창 주변에 모여 서 있는 사람들… 저들의 호기심 가득한 저 눈빛은 대체 어떤 사건을 기대하고 있는 것인가.

작은 회장에게서 겪었던 일 때문에 그녀의 상상력은 점점 더 끔찍하고 수치스러운 방향의 두려움을 만들어낸다.

그렇게 불안과 공포에 몸을 떨고 있을 때, 그녀의 등 뒤에서 삐익― 하는 경고음과 함께 투명 격벽이 열렸다.

그롸아아아아―

좀비들의 포효!

테라는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골목 안쪽에서 수십 마리의 좀비들이 어기적거리며 걸어 나온다.

“읏!”

본능적으로 달아나려던 테라가 바닥에 무릎을 찧으며 넘어졌다. 아까부터 계속해서 그녀를 괴롭히던 어지럼증과 피로가 공포에 의해 증폭된 것이다.

테라가 이를 딱딱 부딪치며 일어나기 위해 버둥거리고 있는 동안에도 좀비들은 계속 앞쪽으로 걸어온다. 엄청난 악취가 바람에 실려 방 전체를 가득 채웠다.

“하아아~ 하아아~”

가까스로 몸을 일으킨 테라는 어깨를 움츠린 채 구석으로 피했다. 좀비들이 자신을 보지 못하는 걸 이미 경험했지만, 그래도 무섭다.

갑자기 그 법칙이 깨지고 좀비들이 이빨을 드러낸 채 달려들지도 모른다는, 원초적인 공포가 그녀의 심장을 꽉 옥죈다. 코너로 도망간 테라는 머리를 감싸 안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르르르르―

좀비 한 마리가 그녀의 팔을 툭 건드리고 지난다. 테라는 깜짝 놀라 옆으로 움직였다. 이제 넓은 방 안에는 좀비들이 가득하다. 그 어디에도 숨을 곳이 없고, 요령껏 피하지 않으면 계속 접촉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으흐으으으… 으으으…….”

테라는 숨소리조차 내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었다. 바로 몇 센티 앞을 눈에 흰 막이 덮인 좀비가 천천히 지나간다. 녀석은 사선으로 된 유리창 너머의 위층 사람들을 노리고 있었다.

그 옆으로 지나는 좀비는 광대뼈 주변부터 입술, 그리고 목까지의 피부와 근육이 모두 벗겨져 있다. 검붉게 말라붙은 피딱지가 환한 조명 아래에서 너무도 선명하다.

“무서워… 싫어…….”

테라는 두 손으로 눈을 가린 채 흐느꼈다. 어젯밤 달빛과 플래시에 의지해서 좀비들의 사이를 지났던 것도 무서웠지만, 이렇게 밝은 곳에서 적나라한 좀비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피가 얼어붙는 것 같은 일이다.

이제야 오 박사가 뭘 하고 싶었던 건지 알 수 있었다. 좀비들 사이에서 멀쩡하게 생존해 있는 면역자의 모습… 그걸 화면으로 기록하려는 참인가.

테라는 좀비들이 자신을 스쳐 지나갈 때마다 몸서리를 치며 이 끔찍한 촬영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의 예상은 틀렸다. 오 박사가 원했던 건 그 정도로 단순한 영상이 아니었다.

“기가 막히는구만! 저렇게 좀비들이 많은데 단 한 마리도 저년을 인식 못해! 역시 밤새도록 찾아다닐 만했어! 근데 저년, 저거… 어지간히 비싸게 구네. 얼굴을 왜 저렇게 가리고 지랄이야. 애초에 손을 묶어서 내려보낼 걸 그랬나…….”

모니터 안에 비친 화면을 보며 오 박사가 투덜댄다. 주연배우 년이 영 협조적이지 않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 자체는 아주 괜찮다.

넓은 방 안을 가득 메운 채 어슬렁거리는 좀비 떼, 그 사이에서 멀쩡히 생존해 있는 미소녀. 바람에 날리는 그녀의 풍성한 블라우스 자락과 그것에 대비되는 가늘고 긴 다리를 보며 오 박사는 자신의 안목에 새삼 감탄했다.

“자, 주연 단독 샷은 이걸로 충분히 찍은 것 같고… 그럼 조연들을 투입해 볼까?”

오 박사가 손짓을 하자 메이저가 고개를 끄덕였다.

“며, 며, 몇 명이나 넣을까?”

“음, 처음이니까 일단 하나만 넣어볼까? 그렇게 해야 주제 의식이 명확히 전달될 것 같은데. 대비도 선명해지고. 여자로 해, 여자.”

쉐도우 실드 대원들은 곧바로 여자들이 갇힌 철창을 열었다. 안쪽의 여자들은 서로에게 달라붙어 비명을 지르며 끌려 나오지 않으려 애를 썼다.

“아, 이런 개년들이 짜증나게!”

두어 번 헛손질을 하던 쉐도우 실드 대원이 욕설과 함께 주먹세례를 퍼부었다. 여자들의 비명은 더욱 커지고, 앞쪽에서 매질을 당한 여자는 코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져 버렸다.

잠시 저항이 뜸해진 틈을 타, 쉐도우 실드 대원은 한 젊은 여자의 머리채를 콱 움켜잡고 끌어냈다. 그사이 다른 대원들은 철창문을 다시 잠갔다.

“끄아아― 흐으윽!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머리채가 잡힌 여자가 두 손을 싹싹 비비며 애원을 한다. 쉐도우 실드 대원은 전혀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크레인 아래까지 그녀를 질질 끌고 갔다. 그러고는 그녀의 배에 거친 발차기를 먹였다.

“윽!”

여자는 배를 움켜쥐고 숨넘어가는 소리를 냈다. 그녀에게 저항할 만한 기력이 남지 않다는 걸 확인한 쉐도우 실드 대원은 안전용 벨트를 걸어 크레인과 자신의 몸을 연결했다. 혹시라도 발판이 열렸을 때, 함께 떨어지는 불상사를 막기 위한 장치다.

사실 이 샘플용 인간들은 근 며칠 동안 물 한 모금 제대로 마시지 못한 상태여서 저항할 만한 기력 따위 있을 리가 없지만,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일어나.”

쉐도우 실드 대원이 명령했다. 머리끄덩이가 당겨진 여자가 비틀거리며 일어나자 발판이 조금씩 열린다.

아래층에서 기다리고 있는 좀비들의 반응이 열기를 띠고, 여자의 바짝 마른 입술에서 다시 애원이 터져 나왔다.

“안 돼요… 제발! 제발! 살려주… 끄아아!”

등을 세게 걷어차인 여자는 말을 다 맺지 못하고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펄쩍펄쩍 뛰고 있던 좀비들은 그녀가 떨어지자마자 달려들어 이빨을 박아 넣었다. 그녀의 몸 위로 열 마리가 넘는 좀비들이 덮쳐든다.

“아아악! 끄으으!”

살이 찢기고, 팔다리가 뽑혀 나가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 여자는 비명을 질러 댔다.

그것도 잠시. 한 좀비가 그녀의 얼굴을 덮친 채 코와 입술을 뜯어내기 시작하자 여자의 비명은 피가 식도와 기도를 역류하는 끄르륵, 소리로 바뀌어 버렸다.

“안 돼…….”

테라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부짖었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여자가 순식간에 좀비들에 의해 해체되는 걸 지켜보고 있으면서도 아무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게 너무 괴롭고 슬프다.

떨어져 내린 여자가 사방에 피를 흩뿌린 채 몇 개의 조각으로 나뉘기까지는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테라가 어떤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다 끝이 났다. 여자의 피 냄새가 방 안 가득 번졌다.

“으흐흐흑!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테라는 눈물을 터뜨리며 주저앉았다. 좀비들은 아직도 뜨거운 피가 뚝뚝 떨어지는 여자의 살점을 입에 문 채 테라의 곁을 스쳐 지난다.

“아… 이거, 너무 금방 끝나 버렸네… 역시 하나 가지고는 안 되겠다.”

오 박사는 입맛을 다시며 안경을 끌어 올렸다. 좀비들이 너무 빨리 여자를 덮치는 바람에 화면에 생생함이 없다.

“역시 한 서너 명은 있어야 그림이 나오겠다. 근데… 서너 명이라고 해봐야 어차피 떨어지는 구멍이 하나잖아…….”

“차, 차, 차례차례 떠, 떨어뜨리면 되, 될 것 같아… 머, 먼저 하, 하, 한 놈을 떠, 떨어뜨리고. 조, 조, 좀비들이 그, 그 새끼를 뜯어먹을 때, 그, 그놈들 등짝 위로 다, 다른 연놈들을 밀면…….”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던 메이저가 의견을 냈다. 오 박사의 생각에도 그 정도면 스펙터클할 듯하다.

“그래. 그러면 이번에는 남자 셋, 여자 둘, 이렇게 가보자. 남자 먼저, 그다음엔 여남여남, 이 순서로.”

결정이 내려지고, 철창 주변에서는 또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끌려 나오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버티는 사람들과, 그들에게 매질을 하고 끌어내는 대원들의 비명과 욕설이 방 안을 쩌렁쩌렁 울린다.

“아, 씨발. 시, 시끄러워! 그, 그, 급소를 차버리면 되잖아! 이, 이렇게!”

참다못한 메이저가 걸어가 저항하는 남자의 사타구니의 걷어찼다. 남자는 펄쩍 뛰어오른 뒤, 급소를 움켜쥐고 엎어졌다.

“자! 이, 이, 이렇게 해서 끄, 끌고 가면 펴, 편하지! 이 멍청아! 그, 그, 그걸 계속 드, 등짝만 때리고 앉아 있냐?”

엎어진 남자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크레인 앞으로 끌어다 놓은 시범을 보인 뒤, 메이저는 잘난 척을 하며 푸르뎅뎅한 얼굴로 씨익 웃었다.

안전 고리를 착용한 대원이 계속 매질을 해서 사람들이 고개를 들지 못하도록 하는 사이에, 다시 발판이 열렸다.

“안 돼! 싫어요!”

급소를 맞고 끌려온 남자가 가장 먼저 밀려 떨어졌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좀비들이 달려들어 남자의 몸 여기저기를 덮치고 잡아 뜯으며 깨문다.

까드득! 우득! 찌이이익!

끄아아아―!

살이 찢기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 관절이 빠지는 소리에 남자의 단말마가 겹쳐지면서 식사실 아래층은 지옥으로 변해 버렸다.

남자의 살을 뜯기 위해 몰려든 좀비들이 열 마리가 넘었을 때, 대기하고 있던 쉐도우 실드 대원들은 두 번째와 세 번째 희생자를 잇달아 차서 떨어뜨렸다.

“흐윽!”

좀비의 등짝 위로 떨어져 내린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달아나기 위해 뛰었다.

이 방이 밀실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가만히 죽음을 기다릴 수는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처절한 몸부림조차도 철저하게 봉인당했다.

그롸아아―

끄르륵―

좀비들은 뛰어나가려는 남녀의 앞을 가로막고 목과 얼굴에 이빨을 박아 넣었다. 그 힘을 이기지 못해 쓰러진 희생자들의 팔과 다리, 몸에도 금방 좀비들이 달라붙었다.

“또 간다!”

쉐도우 실드 대원들은 낄낄거리며 두 명의 제물을 더 떨어뜨렸다. 식사실은 이내 피투성이가 되었다. 뜯겨 나간 살덩이에서 튀긴 피가 사방을 붉게 물들였다. 지옥이다.

“끄아아아! 으으으으!”

테라는 눈과 귀를 가리고 울부짖었다. 아니, 울부짖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의 경직된 성대는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흡사 악몽에 시달리는 동안 소리가 목구멍을 뚫고 터져 나오지 못하던 그때와 똑같이.

도와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두 다리는 얼어붙어서 움직일 줄을 모른다. 너무… 무섭다.

사람이 죽는 것도 보았고, 좀비들도 처음 본 게 아니었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좀비들이 사람을 산 채로 찢어발기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헉!”

살아 있는 사람의 살을 뜯어 먹기 위해 달려가는 좀비가 테라를 치고 지나간다. 테라는 옆으로 넘어졌다. 어쩔 수 없이 홉떠진 그녀의 눈앞에서는 한 남자가 얼굴이 뜯겨 나간 채 죽어가고 있다.

핏! 피핏―!

좀비들이 남자의 팔목을 반대로 꺾어 뜯어내자 핏줄기가 세차게 뻗는다. 그녀가 걸치고 있는 흰 블라우스 위로, 블라우스가 가려주지 않는 그녀의 흰 목덜미와 다리로…….

붉고 뜨거운 피를 뒤집어쓴 테라는 기겁을 하며 소매로 얼굴을 닦고, 구석을 찾아 기었다. 감각을 마비시키고 싶다. 뇌의 안쪽 어딘가 신경이 아주 팽팽하게 당겨지는 게 느껴졌다.

“좋아! 테라 쪽으로 줌인! 저거거든! 내가 흰 옷을 입혔던 이유가! 피가 아주 선명하게 돋보이잖아! 응? 어때, 메이저? 구원을 위한 성녀처럼 보이나?”

테라의 블라우스가 붉은 피로 물들자 오 박사는 기분 좋게 웃었다. 미친 사이코 새끼 덕분에 새디즘의 새로운 극한을 지켜보면서 흥분한 메이저가 홀린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 서, 성녀 싸, 싸대기 때리고 싶어… 이, 입술을 터, 터, 터뜨려서 그 피, 피를…….”

피가 흥건히 흘러나온 방 안에서 순식간에 여섯 명이 끔찍하게 죽어갔다. 그리고 테라의 정신도 극한의 고문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도 오 박사의 표정은 점점 굳어갔다. 어딘가 못마땅한 모양이다.

“야, 멈춰봐. 촬영 그만해.”

오 박사가 명령했다. 카메라를 맡았던 직원은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구석으로 달려가 구역질을 해 대기 시작했다. 직원을 흘겨본 오 박사는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린 뒤 중얼거렸다.

“이거… 아무래도 다시 찍어야 할 것 같아… 저년이 면역자라는 건 알겠는데, 임팩트가 부족해. 뭔가 말이지… 아주 덩치가 큰 좀비가 있었으면 좋겠어. 딱 보기만 해도 기가 질리는, 그런 거 있잖아. 저 테라라는 년이랑 완전히 다른 이미지의 위압감을 주는 좀비.”

어깨를 부풀리며 과장스럽게 큰 덩치를 표현하던 오 박사가 연구원들에게 명령했다.

“보존소로 가서 덩치 크고 인상 더러운 좀비 찾아와. 딱 보기에도 엄청 강해 보여야 돼. 그로테스크하고! 에… 40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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