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404화 (404/449)

5장 여명 (1)

본사에 도착한 오 박사는 함께 작전을 수행한 대원들에게 아주 짧은 격려만을 남겼다.

“다들 고생했어. 내일부터 사람 사냥 나가지 않아도 되니까 푹 쉬어. 총기만 반납한 뒤에 하고 싶은 거 있으면 다 해. 마음껏 마시고 회포도 풀어. 여자들은 어디에 있는지 알지?”

손가락으로 땅 밑을 가리키며 웃은 뒤, 오 박사는 곧바로 테라를 엘리베이터에 태우고 자신의 연구실로 데려갔다.

다른 대원들이나 직원들이 중간에 끼어드는 것을 원치도 않았고, 그래서도 안 된다. 천하의 젠킨스가 인정한 이 면역자는 오로지 자신의 것이어야 하고, 자신만의 공로로 독점되어야 한다.

“이해해 줘요. 조금 지저분합니다. 연구만 하느라고 청소에 잘 신경을 안 써서요. 자, 여기 앉으세요.”

오 박사는 테라를 소파 위에 앉히고 테이블 위에 어지럽혀져 있던 서류 더미를 한쪽으로 밀어 치워 버렸다.

에어컨의 온도가 25도로 맞춰져 있는 실내는 시원하고 쾌적했다. 세면대로 걸어가 손을 씻은 오 박사는 의료 도구 상자를 들고 돌아왔다.

“상처부터 봅시다. 귀하신 분이 계속 피 흘리고 있으면 안 되지.”

쫙, 소리가 나게 라텍스 장갑을 낀 오 박사는 테라의 왼팔을 당겨 상처 주변을 닦아냈다. 알코올 솜으로 피딱지를 닦아내고 나니 한 줄짜리 상처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녀의 붉은 피를 보는 것만으로도 오 박사의 숨결은 거칠어진다.

이 피 속에… 언뜻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인간들의 피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피 속에… 젠킨스가 주목했던 보석이 들어 있다. 저 이기적이고 교만한 천재 사이코패스가 목숨을 걸고 지키려고 했을 만큼 높은 가치의 보석이…….

후후후, 이제 자신의 손 안에 들어와 있다.

“다행히 동맥이 다치지는 않았네요. 자기가 그은 건 아니고… 사고였나 보군요. 어휴, 실수치고는 엄청 깊은데… 놀랐겠어요. 왜 그랬죠? 개랑 싸워보려고 그랬어요? 후후후, 안 돼요. 그런 생각 하면… 이 가녀린 손으로 가당키나 한 말입니까?”

그녀의 팔목에 붕대를 감아주며 오 박사는 농담과 질문을 섞어 던지고 웃었다. 자살 시도 따위가 아니라 실수로 베인 거라 확신한 이유는 간단하다. 주저흔이 없다.

인간은 자신의 팔목을 그을 때, 몇 번이고 망설인다. 고통을 두려워해서 핏줄이 잘리지 않을 만큼 얕게 긋고, 좀 더 깊이 칼날을 넣으려다가 실패하는 일을 반복해서 상처 주변을 너덜너덜하게 만들기 마련이다. 한데 이 계집애의 팔목에는 오로지 깊은 한 줄만이 선명하게 그어져 있다.

테라는 대답하지 않고 초점 없는 눈으로 테이블을 응시하고만 있었다. 그녀의 기분을 맞춰주려고 아부를 떨어 대고 있는 오 박사로서는 만족스런 반응이라곤 할 수 없는 태도였다. 오 박사는 짜증을 꾹 누르고 다시 헛웃음을 지었다.

“뭐 좀 드시겠어요? 톱스타께서는 뭘 좋아하시나? 커피? 미네랄워터? 아니면 시원한 맥주도 있는데… 후후후, 뭐든지 좀 드세요. 피를 그렇게 흘리셨으니 영양 보충도 해야죠.”

오 박사는 냉장고에서 음료수와 간단한 음식들을 줄줄이 꺼내놓은 뒤, 물을 적신 수건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러고는 테라의 맞은편 테이블에 걸터앉아 수건으로 그녀의 얼굴과 목을 닦아냈다. 피와 먼지, 땀이 잔뜩 묻어난다.

“엉망이 되었군요… 하루 만에… 이게 무슨 고생입니까? 처음부터 헬리콥터를 타고 이리로 왔으면 이런 일 없었을 텐데…….”

수건을 잡은 오 박사의 손길이 볼 주변을 스쳐도 테라는 별 반응이 없다. 오 박사는 더럽혀진 수건을 옆으로 던져 버리고 그녀의 발에 눈길을 주었다.

무한한 증식과 파괴가 반복되고 있다는 그녀의 새끼발가락 상처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웃음이 터졌다.

“하하하하, 거기군요. 거길 물렸던 거야! 그렇죠?”

광인처럼 혼자 웃어 대던 오 박사는 갑자기 정색을 하며 담배를 피워 물었다.

“자, 이제 자세히 이야기해 봐요. 그 발가락, 언제 어떻게 물렸고, 어떻게 치료했는지, 그리고 면역은 어떻게 발동하는지……. 그동안 젠킨스와 계속 대화를 나눴잖아요. 날씨 이야기만 하지는 않았을 거 아닙니까?”

오 박사는 고개를 돌려 담배 연기를 옆으로 뿜어내며 말했다. 그때까지 그가 무슨 짓을 해도 인형처럼 앉아만 있던 테라가 처음으로 반응을 보였다.

“…제게 면역이 있다는 걸 어떻게 아셨어요?”

“음… 글쎄요? 뭐라고 할까… 이건 어때요? 테라 씨와 함께 배에 타고 있던 군인들이 말해주더군요.”

오 박사는 여유 가득한 얼굴로 뻔뻔하게 둘러댔다. 테라는 고개를 저었다.

“그분들은 젠킨스 씨가 뭘 하던 분인지 몰라요. 제가 발가락을 물렸다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그게 중요한가요? 아니에요.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건 미래죠. 비밀로 해왔던 일이 드러나 버렸다는 게 당혹스럽겠지만, 그런 감정은 지워 버려요. 그 대신에… 테라 씨, 우리 함께하고 있는 이 시간을 더 가치 있고 창조적인 걸로 만듭시다. 우리 둘 다 그럴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가 말해줄 생각이 없다는 걸 깨달은 테라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오 박사는 담배를 음미하면서 다시 물었다.

“발가락을 물렸는데, 그 후로 도무지 아물지 않는다는 말이잖아요. 그게 굉장히 특이하더라고요. 우리 쪽에도 면역자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경우는 또 처음 보고되는 거라서요. 후후후, 면역자가 또 있다고 하니까 놀랐나요? 그래요, 언젠가 만나게 해드릴 수도 있어요. 면역자들끼리는 서로를 어떻게 바라볼지도 궁금하군요. 아마 조금씩 징후나 특색이 다른 모양이니까. 그쪽의 경우를 말해주면 우리도 우리 면역자의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테라는 다시 눈길을 아래로 돌렸다. 이 사람은 엄청 대단한 척 잘난 체하고 있지만, 실은 면역자의 체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이다. 그런 사람에게 굳이 세 종류의 면역자와 특색에 대해 말해줄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이 사람이 얼마나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마지막에는 나쁜… 작은 회장이 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절대 지워지지 않는 마음의 상처를 줬던 그 작은 회장이… 사실 그가 태양의 실세이니까.

다시는 단둘이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지만, 이렇게 포로가 되어버렸으니 그녀에게 선택권 같은 건 없었다.

“피곤해요… 조금만 쉬었으면 좋겠어요.”

테라는 오 박사의 이야기를 끊으며 조용히 말했다. 지방이라고는 없는 오 박사의 흰 얼굴이 일순 경련하듯 꿈틀거린다.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리며 손잡이를 돌렸다. 물론 자물쇠가 걸려 있었지만, 오 박사는 한숨을 쉬면서 일어나 문을 열어주었다.

“그, 그, 그년 자, 잡아왔다면서? 오! 저, 저, 저기 있네!”

메이저였다. 꿰맨 자국이 부어오르고 보랏빛으로 멍이 들어서 프랑켄슈타인처럼 변해 버린 메이저가 문 안으로 발을 들여놓으려고 한다. 테라를 데려왔다는 걸 듣자마자 곧바로 달려온 모양이다.

“아, 그래그래. 진정해. 약 기운은? 좀 깼어?”

오 박사는 메이저의 몸을 막아서며 물었다. 메이저는 콧김을 씩씩거리며 대답했다.

“보, 보면 아, 알잖아. 쌔, 쌩쌩해. 저, 저, 저년 좀 빌려줘.”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쟤는 안 돼! 쟤를 왜 잡아왔는지도 몰라? 취했어?”

“아, 아니! 아, 안 죽여! 그냥 재, 재, 재미만 볼 거야. 어차피 피, 피, 피만 쓸 거잖아. 그 피, 피 내, 내가 뽑아줄게! 누, 누, 눈물도 쪽 뽀, 뽑아주고! 아, 아주 고, 고, 고분고분하게 만들어줄게!”

메이저가 거기까지 떠들도록 내버려 두던 오 박사는 그를 밀고 문밖으로 나갔다. 그러고는 문을 굳게 닫은 뒤 메이저에게 말했다.

“자네, 제정신이야? 쟤한테서 관심 끊어. 내가 살살 비위 맞춰서 알아내야 하는 게 많다고. 쟤는 우리 생명줄이야. 생명줄에 톱질을 해서 어쩌자는 거야? 후우~!”

한숨을 내쉰 오 박사는 아까 옥상에서 대원들에게 손짓했던 것처럼 땅 밑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지하에 가면 여자가 천 명은 있어. 그중에 자네 마음에 드는 것들 있으면 다 데리고 올라와서 성질 내키는 대로 해! 몇 명을 죽이든, 어디를 어떻게 때려죽이든 나는 상관 안 할 거야. 하지만 쟤는 안 돼. 절대로! 알겠어?”

“우~ 아, 아쉬운데…….”

“아쉬워하지 말고 당장 내려가. 가서 비슷한 애 찾아서 재미 보라고. 비쩍 마른 계집애들 많잖아.”

오 박사는 병균을 내몰듯 메이저를 내쫓은 뒤, 다시 연구실 안으로 들어왔다. 테라는 그때까지도 별 표정의 변화 없이 가만히 앉아 있다. 하지만 메이저가 이 방 문을 열고 지껄였던 이야기는 분명히 그녀에게도 들렸을 것이다.

“봤지? 여기는 저런 놈들이 많아.”

오 박사는 다시 테이블에 걸터앉으며 두 개비째 담배에 불을 붙였다. 메이저가 다녀간 후 더 이상의 가식적 연기가 필요 없어졌는지 쉽게 반말이 튀어나온다. 그러고는 그녀에게 고민할 시간을 충분히 주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여기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어. 나랑 이야기하는 게 유쾌하지 않을 수도 있고. 그런데 그런 판단을 내리기 전에 분명히 알아둬야 하는 사실은, 이 커다란 건물 전체에서 그래도 내가 가장 인간답게 너를 대해줄 사람이라는 거야. 그러니까… 내가 꼬박꼬박 ‘씨’자 붙이고 존댓말 써줄 때 잘해. 계속 이런 식으로 굴면 그냥 저놈한테 넘겨 버릴 거야. 그게 어디에 있더라…….”

테이블에서 일어난 오 박사는 책꽂이를 뒤적거려서 서류철 하나를 꺼내왔다. 그러고는 그것을 펼쳐 테라의 앞에 툭, 던졌다.

촤라락―

폴라로이드 사진들이 한 무더기 쏟아진다. 모두 여자의 얼굴을 찍은 사진이었다. 끔찍하게 폭행당한 상처투성이의 얼굴들. 다들 입술이 찢어지고, 뼈가 부러져서 부어올라있다.

“아까 그 사람 방에 들어갔던 애들 사진이야. 끝내주지? 일단 그 방에 들어가면 그렇게 된 이후에야 나올 수 있어. 그 사람 취미 생활이 그거라서 말이지.”

테라는 얼른 사진을 외면했지만,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솔직히 두렵다.

왜 이렇게까지 잔인한 사람들이 많은 걸까…….

그녀의 표정 변화를 읽은 오 박사는 시치미를 뚝 떼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아니면 대원들한테 줘서 마음껏 돌리라고 할 수도 있고. 쓸모없는 인간인데 나 혼자 아까워해서 뭐하겠어? 어딘가에라도 쓸 수 있다면 써야지.”

테라의 허벅지 위에 눈물이 뚝 떨어졌다. 그걸 보고 나서야 오 박사는 만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에이, 테라 씨, 울지 마요. 그건 그냥 가정이에요. 테라 씨가 내게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판명되었을 경우, ‘이렇게 될 거다’ 하는 가정. 테라 씨는 그런 사람 아니잖아. 좀비에 물리고도 살아남은, 엄청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그렇죠?”

테라는 눈물을 씻고 고개를 끄덕였다. 기분이 좋아진 오 박사는 또 물었다.

“좀비한테 보이지 않는다는 소리도 들었어요. 그것도 사실입니까?”

테라는 또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 박사가 그녀의 손을 잡고 일으켰다.

“자, 그럼 이제 그 두 가지 가치를 증명하러 갑시다. 소문은 무성한데 나는 아직 그걸 직접 본 게 아니니까… 과학자라는 족속은 이런 게 있어요. 글로만 읽은 건 안 믿어. 직접 실험을 하고 그 결과가 일치하는지를 자기가 확인을 해야 된다고요.”

테라를 끌고 복도를 가로질러 걸어간 오 박사는 작은 방의 문을 열었다. 언젠가 파멸의 마녀 년과 함께 미스터 배가 물리는 걸 지켜봤던 그 실험실이다. 오 박사는 대기하고 있던 직원들에게 테라를 소개했다.

“인사들 해. 다들 누군지 알지? 어이, 안쪽 문 열어.”

오 박사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안쪽의 보안용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롸아아아―

그와 테라, 그리고 두 명의 직원이 방 안에 들어가자마자 반대편 벽 쪽의 우리에 들어 있는 좀비가 울부짖기 시작했다. 오 박사는 테라의 등 뒤에 서서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저 우리 중간에 구멍 뚫린 부위 보이죠? 저기에 손만 잠깐 대봐요. 너무 깊숙이 넣지는 말고 살짝만. 손가락 잘리고 그러는 거는 나도 싫으니까. 왜, 이런 데… 이런 데 있잖아요. 살점이 좀 뜯겨도 다시 자라날 수 있는 부분.”

오 박사는 자신의 손날을 가리키며 말했다. 테라가 좀처럼 움직이려 하지 않자 그는 직접 그녀를 잡아끌고 좀비 우리 쪽으로 다가갔다.

그와아악― 갸아아악―

사람 냄새가 가까워지자 좀비는 더욱 신이 나서 포효하며 철창을 두들겼다. 아무리 갇혀 있는 상태라고 해도 확실히 무섭기는 하다.

“자, 집어넣으라고요! 왜? 왜 그렇게 버텨요? 면역자라는 거 거짓말이었어?”

테라의 눈치를 살펴보던 오 박사는 그녀의 팔을 우악스럽게 잡고 철창 사이의 구멍을 향해 억지로 내밀었다.

“많이 안 다치게 한다니까요… 살점 조금만 뜯기면 곧바로 치료해 줄게.”

오 박사는 뜨거운 콧김을 내뿜으며 테라의 어깨와 팔을 꽉 쥔다. 무섭고 꺼림칙해서 싫지만, 더 버틸 재간이 없어서 테라는 구멍 안에 손을 넣었다.

하지만 좀비는 그녀의 희고 작은 손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그저 오 박사와 직원들을 노려보며 철창을 두드릴 뿐이다.

아아… 이런 건가! 이런 게 바로 좀비들에게 보이지 않는 면역자라는 건가… 과연!

상상했던 것보다 더 놀라운 결과와 마주하게 된 오 박사의 숨소리가 더욱 거칠어진다.

이건 진짜 대단하다! 미스터 배 따위 거지같은 면역자와는 비교자체가 불가한 수준이다.

“…좀 더 깊숙이 집어넣어 봐. 이렇게… 야! 팔에 힘 빼! 내가 하는 대로 따르라고!”

좀 더 확실하게 확인하고 싶었던 오 박사는 테라의 어깨를 거칠게 밀었다. 가느다란 그녀의 왼팔은 팔꿈치 부분까지 좁은 철창 안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오히려 그녀가 좀비를 밀어 쳐버린 상황!

그래도 좀비는 여전히 테라에게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이빨을 박아 넣기는커녕, 시선 한 번 맞추려 들지 않았다.

“하! 하하하하! 이것 좀 봐! 이거! 이게 믿어져? 좀비한테 안 보인다고! 얘가 옆에 있다는 걸 몰라! 마녀 씨발 년아! 너는 이런 거 있냐? 별것도 아닌 걸로 잘난 척이나 해 대고 말이야!”

오 박사는 박장대소를 하며 미친 사람처럼 떠들어 댔다. 그는 테라의 팔을 다시 잡아 당겨서 철창 밖으로 빼냈다.

“여기 조금 서 있어봐! 잠깐이면 돼!”

테라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한 뒤, 오 박사는 직원들만 데리고 방을 빠져나왔다. 안전 도어를 굳게 걸어 잠근 오 박사는 안쪽 방이 보이는 유리 앞에 섰다. 그의 가슴은 아까부터 미친 듯이 뛴다.

“우리 열어봐.”

오 박사가 명령했다. 직원이 흠칫 놀라며 되물었다.

“지금 좀비가… 머리에 안전장치도 달려 있지 않은 상황입니다만…….”

“알아. 내가 너보다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마. 괜찮으니까 열라고 하는 거야.”

오 박사는 평소처럼 싸가지 없이 지껄였다. 직원은 한숨을 내쉬며 우리의 잠금장치를 해제했다.

삐익―

잠금장치가 해제되자 우리 위에 빨간 경고등이 들어온다. 그런 후, 곧 좀비가 철창을 밀어 치고 우리 밖으로 걸어 나왔다.

테라가 벽 쪽으로 주춤거리며 피한다. 하지만 좀비는 그녀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곧바로 커다란 강화유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쿵―

좀비가 오 박사를 노려보며 유리를 들이받는다. 그러고는 두 주먹을 휘둘러 후려친다. 바로 1미터 옆에 테라가 있는데, 놈은 이 두꺼운 유리벽 너머의 먹이 생각뿐이다.

면역자의 세계라는 건 무수한 변종들로 이뤄져 있는 모양이다. 대체 무슨 조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시장성이 얼마나 큰지는 잘 알겠다.

“죽인다! 저년 피에서 항체를 추출해 내면 다 이렇게 좀비들에게 안 보이는 사람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거잖아? 이건 말이지, 그냥 백신 같은 거랑은 차원이 다른 상품이야. 이건… 가만있어 봐. 이걸 어떻게 광고하지?”

오 박사는 계속 히죽거리면서 고민에 잠겼다. 자신을 마녀로부터 지켜줄 동아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단순히 그 정도가 아니었다.

이건… 그에게 세계 최고의 부를 안겨줄 만한 무언가다.

이제 그는 더 이상 태양의 노예로 전전긍긍하며 살지 않아도 된다. 더 힘이 센 누군가에게 이런 사실을 알리기만 하면, 남부의 태양 그룹 따위 싹 다 죽여 버리고 그가 총수의 의자를 차지할 수도 있다.

물론 아주 약간의 과장은 필요하다. 그가 이미 이런 종류의 백신을 거의 다 완성했다는 정도의 사소한 과장.

“아하! 그렇게!”

이 대단하고 신비로운 보물을 어떻게 극적으로 알릴 수 있을지 고민하던 오 박사가 손뼉을 쫙, 쳤다. 아주 그럴듯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어이, 식사실에 카메라 설치해 둬. CCTV 말고 더 선명한 걸로. 아, 그리고 진압반 불러서 이 방에 나와 있는 좀비 새끼 다시 우리에 처넣어. 아니면 그냥 죽여 버리든가.”

명령을 내린 오 박사는 유리 너머, 아직도 벽에 기댄 채 고개를 숙이고 있는 테라를 보며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의 취향은 아니지만, 계집애가 생긴 것도 참 반반하다. 이건 아주… 기가 막힌 그림 하나 뽑아낼 수 있을 것 같다.

☆ ☆ ☆

여명이 밝아오고 있다. 조금 전까지 암흑 속에 묻혀 있던 건대 쉘터의 윤곽이 어스름 푸른 새벽빛을 받아 점차 선명해진다. 남쪽 게이트가 있던 자리에 수북하게 쌓인 좀비들의 시체도.

“저걸 보니까 새삼 또 아찔하네요.”

주차장 안까지 이어진 좀비 시체의 산을 보며 김 중사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저 많은 놈들이 원래 접근하던 대로 북쪽에서 뛰어 들어왔다면, 건대 쉘터는 지금처럼 굳건히 버텨낼 수 없었을 것이다.

지금 그들이 살아서 무사히 서 있을 수 있는 건 장갑차 뒤의 좀비들을 보자마자 차를 끌고 나가 놈들을 남쪽 철책으로 유인해 온 유빈의 기지 덕이다.

“그러니까요. 대체 쟤들한테 몇 번이나 목숨을 빚지는 건지…….”

그의 곁에 서 있던 강 소위도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단 임수정을 구해준 게 한 번, 고 하사가 좀비들에 쫓길 때 또 한 번, 폭주하는 박 소위로부터 인질들을 구출해 내고, 좀비들에게 휩싸인 건대 쉘터를 구해주고, 하마터면 태양 그룹에 인도될 뻔한 사람들을 살렸고…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오늘 또 저 좀비들로부터 여기를 지켜냈다. 이건 무슨… 직업이 ‘생명의 은인’인 사람들 같다.

그런데 지금… 그 고맙고도 감사한 친구들에게 정말 암울한 소식을 전해야 한다. 너희가 찾는 사람은 이제 잠실에 없다고… 잠실 쉘터도 이제는 없다고… 어젯밤 너희가 출발한다고 했을 때에는 있었는데, 그사이에 없어졌다고… 그저 좀비들만 가득한 곳이 되어버렸다고…….

아침에 가도 똑같으니, 밝을 때 떠나라고 붙잡았던 강 소위로서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말이다. 생명의 은인에게 은혜를 원수로 갚는… 그런 꼴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문자 그대로 배은망덕!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하는지…….

“어휴~ 돌겠네, 진짜!”

체육관 주변에 모여 앉아 있는 친구들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강 소위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저절로 한숨이 터져 나온다. 그래도 말하는 수밖에 없다. 어차피 곧 알게 될 사실이니까.

“유빈 군, 잠깐 이야기 좀 하고 싶은데…….”

절룩거리며 친구들에게 다가간 강 소위는 유빈에게 손짓을 했다. 최대한 침착함을 가장해 봤지만, 그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유빈은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알 수 있었다. 뭔가 좋지 않은 소식이 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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