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401화 (401/449)

4장 Fate (5)

테라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젠킨스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그가 이 끔찍한 좀비 세상을 만든 장본인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렇지만, 그가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모습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그의 죽음 때문에 이렇게 마음이 아플 거라는 생각도 해본 적 없었다.

“흐으으~”

테라는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온 눈물을 닦아내고 젠킨스를 바라보았다. 애초에 그 관계가 시작된 이유가 뭐였든 간에, 좀비 세상이 된 이후 젠킨스는 그녀와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눴던 사람이다. 그리고 아주 깊고 은밀한 비밀을 공유했던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정말 의외였다. 젠킨스가… 죽어가면서까지 다른 이들의 미래를 위해 뭔가를 부탁할 사람이라는 게… 언뜻 믿기지 않는다. 어쩌면 JL이라는 곳이 적어도 태양보다는 나은 집단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속… 제발… 내가 만들어둔… 인생의 업적을… 헛되게 하지… 마.”

젠킨스는 계속 피를 흘리면서 중얼거렸다. 테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피 묻은 손을 잡아주었다.

“약속할게요.”

쿨럭! 젠킨스가 왈칵 피를 토했다. 테라의 손을 꽉 잡은 그의 크고 퉁퉁한 손이 경련을 일으킨다.

“가자. 마저 처리했으니까.”

어느새 돌아온 민구가 테라에게 말했다. 그가 들고 있는 쿠크리의 날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진다.

민구의 모습을 확인한 젠킨스는 꼭 쥐고 있던 그녀의 손을 놓아주었다. 그러고는 쿨럭거리며 바닥에 피를 토해 댄다.

“쿨럭! 쿡! 가… 세상을 구…해. 쿨럭!”

딱히 목을 그어 고통을 덜어주지 않더라도 얼마 못 버틸 것 같아 보여서 민구는 녀석을 그냥 내버려 두고 테라를 잡아 일으켰다.

“그건 뭔데?”

테라가 소중하게 꼭 쥐고 있는 지도와 버클을 보고 민구가 물었다. 빠르게 걸어가고 있는 동안에도 몇 번이나 젠킨스 쪽을 돌아보던 테라가 대답했다.

“JL로 갈 수 있는 위치들이고… 그리고 호출하는 장치예요.”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는 민구로서는 그녀가 뭔 소리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하여튼 어딘가로 가서 저걸 누르면 되는 모양이다.

“그래… 거기로 갈 건가? 그럼 어디에서 그걸 써야 하는데?”

숨이 끊어져 있는 검은 군복의 옆구리에서 아까 날렸던 마세티를 뽑아 들며 민구가 물었다. 테라는 혼란스럽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그… 잘 모르겠어요. 여기에서 북쪽으로 2킬로미터만 올라가면 된다는데, JL에 가는 게 정말 옳은 건지… 백신을 위해서라면, 제 피를 주고 싶은 마음은 있기는 해요. 그렇지만 저 때문에 아저씨까지 위험하게 만드는 건 아닌지… 그런데도 또 젠킨스 씨에게는 가겠다고 약속을 해버렸어요. 계속 피를 토하면서 부탁을 하니까.”

테라가 어떤 기분인지 민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죽어가는 동료 앞에서 거짓 약속을 해주는 건 흔한 일이다. 그 당시에야 편하게 눈을 감게 해줄 수만 있다면 무슨 말에든 고개를 끄덕이기 마련이니까.

“일단 여기에서는 벗어나야 돼. 추락한 헬리콥터가 불타고 있어서 금방 눈에 띌 거야.”

민구는 테라의 팔을 잡고 아차산로 쪽으로 달렸다. 고가도로처럼 설치된 선로를 따라 조금만 가면 건대다. 선로의 그늘 밑으로 들어가 10분 정도만 뛰면 될 거리다.

그때, 아주 가까이에서 또다시 프로펠러 소리가 들려왔다.

투투투투투― 훙훙훙―

민구는 고개를 들었다. 반짝이는 불빛과 환한 빛이 동쪽으로부터 빠르게 가까워져 오고 있다. 또 다른 헬리콥터. 하지만 이미 지형은 그에게 유리한 상황이다. 선로를 잘만 활용하면 아주 든든한 아군이 되어줄 것이다.

“멈춰. 여기에서 기다려야 돼.”

민구는 테라와 함께 도로 위에 세워진 자동차의 뒤에 숨었다. 선로 그늘과 자동차. 두 겹의 어둠 속에 모습을 감춘 채 민구는 3호기 헬리콥터의 라이트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보고해! 생존자 보고해!”

3호기 조종사의 목소리가 확성기를 통해 들려온다. 물론 아무리 애타게 찾아봐야 그 요청에 대답할 수 있는 놈은 없다.

불타오르고 있는 2호기의 잔해를 확인한 3호기는 고도를 높인 뒤, 그 주변을 꼼꼼하게 라이트로 비추며 이동했다. 여러 개의 소형 플래시가 바쁘게 사방을 훑는다.

“우리가 갈 방향이 거기밖에 없다, 이거냐?”

건대로 이어지는 대로 쪽 상공으로 이동해서 그 지점을 굳게 지키고 있는 헬기를 바라보며 민구가 중얼거렸다. 다른 곳으로는 다 보내도 이 길을 통과하는 것만은 안 된다는 식이다.

그렇다면 다른 방향들에는 놈들이 안심하고 터놓아도 좋을 만한 뭔가가 있다는 의미다. 그건 아마도 괴물들일 테지.

“가자. 따라와.”

민구는 테라의 손을 잡고 속삭였다. 테라는 조금 의외라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쪽으로 가면… 완전히 반대 방향인데요.”

“알아. 그런데 저놈들 꼴을 봐.”

민구는 쉐도우 실드 대원들과 개들을 가리켰다. 헬기 아래에 달린 베슬에서 막 내려선 그들은 플래시도 켜지 않은 채 고가도로 아래에서 웅크리고 있다. 개들이 사납게 짖어 대고 있는데도 그걸 풀어놓지조차 않는다.

“쫓아올 생각도 없어. 저런 식으로 멀리서 버티고만 있다는 건, 지원 올 놈들이 또 있어서 그걸 기다린다는 소리야. 그러니까 그놈들이 합류하기 전에 도망쳐야 돼.”

테라는 민구의 말을 들으며 고가도로 쪽을 바라보았다. 개들이 짖어 대는 소리와 놈들의 등에서 번쩍이는 led 라이트가 분위기를 한층 더 위압적으로 만들고 있다.

민구의 말이 맞다. 동쪽으로는 갈 수 없다. 민구와 테라는 허리를 숙인 채 자동차들 사이를 내달렸다.

그롸아아아―

그들이 속도를 올릴수록 점점 더 가까워지는 괴물들의 울음소리. 이 방향으로 가면 괴물들을 만나게 된다는 것을 민구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어차피 괴물들은 테라를 물지 않는다. 적어도 그녀는 안전하게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 ☆ ☆

“거기 간다! 잡아!”

남쪽 내부 게이트를 담당하고 있던 병사들이 악다구니를 써가며 총질을 한다.

투투투― 투투둑― 투투투―

3점사로 퍼붓는 총알들이 어지럽게 날리고, 좀비들의 팔다리가 뚝뚝 떨어져나간다. 그러나 이미 뚫려 버린 철책이다. 좀비들이 뛰어 들어오는 것을 모두 막지는 못했다.

쾅쾅쾅쾅쾅― 쾅쾅쾅쾅쾅―

게이트 외부에서 장갑차의 기관총성이 들려온다. 저렇게 열심히 쏴 죽이고 있는데도 아직 남아 있는 좀비들이 꽤 된다는 게 신기할 지경이다.

“으아아아! 이런 징그러운 새끼들!”

옥상에 선 채 아래를 향해 총질을 하면서 밤톨과 분대원들은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천 번, 만 번 욕을 한다고 해도 좀비들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그저 무너진 철책 사이를 극성맞게 비집고 달려올 뿐이다.

탁탁탁탁탁―

좀비들의 발소리가 체육관 건물 벽에 부딪쳐 메아리를 만들어냈다. 외부와 내부, 두 개의 철책이 다 붕괴되어 버린 지금, 건물 옥상에서 퍼붓는 화망이 건대 쉘터의 유일한 방어책이다. 그건 아주 좋지 않은 징조였다.

“이이익! 이익!”

밤톨은 열심히 방아쇠를 당기면서도 자꾸 옆을 돌아보게 된다. 이미 잠실에서 저지선의 붕괴를 경험했던 그로서는 자연스럽게 퇴로에 대한 걱정이 들 수밖에 없다.

저지선이 무너지게 되면 적당한 시기에 물러나서 후방에 새로운 저지선을 펴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이 건대 쉘터 방어 중대는 좀 이상하게 움직인다.

투투투― 투투둑― 투투투― 투투둑―

철책을 통과한 좀비들이 언제 건물의 옥상으로 뛰어와 뒤를 덮칠지도 모르는데, 건대 쉘터의 병사들은 묵묵히 자신이 맡은 구역의 좀비들만을 상대하는 중이다.

“저기… 이쪽으로 좀비들 뚫렸는데…….”

밤톨은 오지랖을 발휘해서 옆의 건대 병사들에게 말을 걸었다. 적어도 알려줘야 하기는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반응이 영 신통찮다.

그와 좀비들을 힐끔 돌아본 병사들은 이내 다시 전방을 향해 사격을 시작했다.

“그쪽은 냅 둬요, 아저씨!”

너무 의외의 반응이어서 밤톨은 잠시 멍해졌다.

바보들인가… 아니면 두려움을 모르는 건가… 뚫렸다고! 이러다간 뒤가 털린다고, 이 등신들아!

그롸아아아―

그사이에도 쉘터 안쪽까지 침투한 좀비들은 빠르게 내달려 오고 있다. 놈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밤톨의 등에서는 반사적으로 소름이 쫙쫙 끼친다.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것 같지가 않다.

‘세상에…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잠실에서도 맨 마지막으로 문을 닫고 나왔고,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내내도 좀비들에게 쫓겼고… 그렇게 하고도 모자라 여기에서까지도 이렇게 목숨을 내놓고 싸워야 하는 거지?’

밤톨은 불안한 눈으로 쉘터 안쪽의 주차장을 힐끔 돌아봤다. 존나게 빠른 속도로 내달리는 좀비들.

이제 저 중 몇 마리만 민간인들이 있는 체육관까지 도달하면… 건대 쉘터는 아수라장으로 변할 것이다.

“에라, 모르겠다. 씨발, 죽으면 나만 죽겠냐.”

밤톨은 이를 꽉 깨물고 탄창을 갈아 끼웠다. 그러다가 멍 때리고 있는 김 이병을 보았다. 놈의 총구는 아예 지면을 향해 내려져 있다.

“야, 이 새끼야! 뭐해! 빨리 갈겨!”

“잠깐만, 저것 좀 보시지 말입니다…….”

놈은 입을 헤 벌린 채,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주차장과 건너편 건물의 2층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보긴 뭘 봐? 이 미친!”

김 이병의 하이바를 후려치려던 밤톨은 뭔가 싶어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는 그 역시 멍해져서 넋을 놓고 바라보기 시작했다.

탕, 탕탕― 탕―

3점사가 난무하는 건대에서 낯설게 들리는 단발 총성! 그리고 달려가던 좀비들이 맥없이 픽픽 쓰러지는 광경!

이 상황… 어째 낯이 익다. 밤톨은 총알이 발사된 건너편 건물로 시선을 돌렸다.

그놈이다! 그 허세 쩔던 사제 군인 놈!

조금 전까지는 이 부근에서 다른 병력들과 함께 싸우고 있는 걸 분명히 봤었는데, 자기가 무슨 홍길동이라고 저렇게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고 있다.

탕, 탕, 탕― 탕탕!

녀석의 총구가 불을 뿜으며 흔들릴 때마다 철책을 뚫고 달려가던 좀비들이 대가리가 터진 채 고꾸라진다. 놈의 옆에서 함께 쏴대고 있는 병사 둘도 방아쇠를 당긴다.

투투둑― 투투투― 투두둑― 투두둑―

3점사가 날아가 제대로 박히는 게 느껴진다. 그 두 녀석도 꽤나 잘 쏘기는 하는데, 저 사제 군인의 자신감 가득한 여유에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놈은 잠시도 쉬지 않고, 그러면서도 서두르는 법이 없이 부지런히 총구를 돌려가며 좀비들의 머리를 터뜨렸다.

길목을 좁히기 위해 대충 쳐놓은 레이저 와이어 바리게이트 주변에는 좀비 시체들이 수북하게 쌓여갔다. 2미터 정도의 간격으로 매달려 있는 손전등의 불빛 내에 좀비가 언뜻 비쳐지기만 하면 총성이 울리고, 좀비는 뇌수를 쏟으며 엎어졌다.

덕분에 쉘터 내부로 좀비들이 난입한 상황에서도 바리게이트 라인 안쪽으로는 단 한 마리의 좀비도 지나치지 못하고 있다.

“저게 그냥… 좆 까는 짓이 아니었구나…….”

손전등이 대롱거리는 레이저 와이어를 보며 밤톨이 중얼거렸다.

처음에 승용차가 레이저 와이어를 풀며 달리고, 몇 놈이 거기에 달라붙어 크리스마스트리 장식하듯 손전등을 걸 때만 해도 밤톨은 놈들의 어리석음을 비웃었었다.

저까짓 철조망 한 겹 같은 건 좀비들이 두 마리만 덮쳐도 무력화되어버린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저건 그냥 조명을 달아놓고 좀비들의 달리기를 1초만 늦추기 위한 장치였다. 어차피 그 1초만 벌면 저 사제 군인과 두 명의 보조 병사가 좀비들을 시체로 만들어놓을 수 있으니까.

“헐, 백발백중이네…….”

김 이병은 여전히 입을 다물지 못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밤톨 역시 홀린 듯 사제 군인의 활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발소리가 울리고, 플래시 불빛 사이로 좀비의 얼굴이 어른거리면, 탕― 소리와 함께 좀비는 여지없이 나자빠졌다.

무슨… 기계 속에 들어 있는 톱니바퀴처럼 규칙적이고, 한 치의 오차도 없다.

“그… 올림픽 사격 대회 보는 것 같습니다. 근데 그거는 표적이 움직이지나 않지…….”

어느새 구경꾼 그룹에 합류한 무전병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웅얼거렸다.

“아, 아니야! 이럴 때가 아니잖아!”

놈들 덕에 제정신을 찾은 밤톨은 세차게 도리질을 한 후에, 사제 군인에게 꽂혀 있는 김 이병과 무전병의 하이바를 두들겼다.

“야, 이 새끼들아! 정신 차려! 저 쪽 볼 때가 아니야! 우리 상대는 여기 있다고!”

두 병사를 사선으로 이동시킨 밤톨은 총구를 난간 아래로 돌렸다. 이제는 정말 끝나가는 분위기가 물씬 느껴진다. 뚫린 철책 주변에 모여 있는 좀비들의 수가 두 자리 이내로 줄어들어 있다. 밤톨은 정신없이 몸을 흔들어 대는 좀비들을 향해 조준을 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투두둑― 투투투― 투투투―

아홉 발을 쐈는데, 머리에 맞은 건 한 놈뿐이다. 나머지는 가슴이나 어깨의 뼈를 덜렁거리며 좁은 건물 사이를 내달린다. 밤톨은 놈들의 머리통을 향해 다시 3점사를 날렸다.

투투둑― 투투투― 투투두―

이번에도 두 마리만 쓰러졌다. 놈들이 달리는 속도가 워낙 빨라서 그가 발사한 나머지 총알들은 아스팔트에 흠집만 남기고 어디론가 튀어버렸다.

아홉 발로 두 마리를 잡았다면 분명히 보통 이상의 성적인데, 조금 전 사제 군인의 활약을 보고 난 후여서 그런지 묘한 이질감과 좌절감이 느껴졌다.

밤톨은 방아쇠를 당기면서 자신의 총을, 거의 2년 동안 함께했던 K―2를 몇 차례나 다시 바라보았다.

“야, 이거 이상해!”

명중률에 의문이 생긴 밤톨이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똑같은 총인데 이렇게 다를 수 있단 말인가.

바로 옆에서 있던 김 이병도 실망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총을 뚫어지게 노려보고 있다. 아마 녀석도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탕, 탕탕―!

그러는 동안에도 사제 군인은 계속해서 좀비의 이마에 바람구멍을 뚫어대고 있었다.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오려던 좀비가 뒤통수가 터진 채 철조망에 쓰러져 대롱거린다. 김 이병의 말마따나 백발백중이다. 존나 잘 쏘는구나, 개새끼….

☆ ☆ ☆

“아…나, 이것들… 이것들은 뭐야…….”

민간인들의 신병을 확보했다는 말을 듣고 우체국 3층으로 올라간 오 박사는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거기에는 그가 보고 싶었던 얼굴이 하나도 없다. 한눈에도 사악해 보이는 중늙은이와 손가락이 날아간 젊은 놈, 그리고 오 박사가 실루엣을 보고 젠킨스라고만 생각했던 뚱뚱한 덩치. 이렇게 3인조가 불안함이 가득한 표정으로 눈동자를 굴리고 있었다.

세 놈 다 플라스틱 타이로 팔목과 발목이 묶여 있고, 아직 테이저 건의 바늘도 뽑아주지 않았다. 손가락이 없는 놈은 다리에 총상까지 입은 상태였다.

으르르르― 웡! 웡!

네 마리의 개는 세 명을 에워싸고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 이를 드러내며 짖는다. 그중 한 마리는 다리를 절룩거린다.

“개새끼들 좀 조용히 시켜봐. 정신이 없잖아… 이건 왜 이렇게 해놨어?”

미간을 찌푸린 채 투덜대던 오 박사가 피투성이 총상을 가리키며 물었다. 목표했던 타깃은 아니지만, 어쨌든 다치지 않도록 하라고 몇 번이나 다짐을 해놨는데, 바로 이렇게 총을 쓴 걸 보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의 언짢음을 읽은 쉐도우 실드 대원이 주저하며 대답했다.

“나머지는 테이저 건으로 제압을 했는데, 저 새끼가… 자꾸 총을 들고 설치는 상황이어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개들도 다치고 해서 안전을 위해…….”

“총? 민간인인 것 같은데 총이라고?”

오 박사는 시선을 돌려 대원들이 압수해 둔 놈들의 총기를 내려다보았다. 군용 K―2가 두 자루나 있다. 거기에 야구 배트와 식칼 따위의 무기도 몇 개나 있다.

“근데 우리 편은 용케 안 다쳤네?”

오 박사는 다시 물었다. 폴리카보네이트 방패를 든 대원이 흠집을 보여주며 대답했다.

“나중에 보니까 실탄이 몇 발 없었습니다. 그나마도 다 빗나갔습니다.”

“하아~”

오 박사는 짜증스럽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의 분노는 주로 덩치 큰 뚱뚱한 녀석을 향한 것이었다.

“아우~ 이 개새끼만 창가에 어른거리지 않았어도!”

오 박사는 덩치의 넓적한 얼굴을 구둣발로 걷어찼다. 하지만 덩치가 고개를 틀어 피하는 바람에 헛발질을 하고 하마터면 뒤로 넘어질 뻔했다.

“이 새끼가! 피했냐, 지금?”

대원들 앞에서 망신을 당한 오 박사는 얼굴이 빨갛게 돼서 놈의 가슴팍에 박혀 있는 테이저 건 바늘을 콱 밟았다.

바늘이 깊숙이 찔려 들어가자 때로 얼룩진 놈의 와이셔츠에 피가 배어 나온다.

끄으음, 덩치는 고통을 꾹 참으면서 오 박사의 눈을 노려보았다.

“기동아!”

중늙은이가 입을 열었다. 낮게 이름을 불렀을 뿐인데, 덩치는 얼른 눈을 깔고 불손한 표정을 거뒀다. 중늙은이가 오 박사에게 고개를 숙인다.

“태양 그룹에서 오신 분들인 줄 알았으면 이렇게 소란 피우지 않았을 겁니다. 세상이 하도 어수선하니 그저 제 한 몸 지켜보려다가 이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부디 너그럽게 헤아려 주십시오.”

중늙은이는 고개를 들어 사악함이 가득한 눈으로 오 박사를 힐끔 올려다보고 말을 이었다.

“태양 그룹과 저희는 각별한 사입니다. 예전부터 저희 만배파 애들이 황 회장님 위해서 손에 더러운 거 묻는 일 여러 번 대신해 드렸습니다. 아참, 제 소개가… 제가 바로… 육만배 올시다.”

육만배는 다시 깊이 고개를 숙였다. 나름 바짝 힘을 줘본 자기소개였는데, 오 박사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테라도 모르는 인간이 육만배를 알 리가 없다.

“뭐라는 거야? 기분도 안 좋은데, 등신이…….”

오 박사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쓸어 넘겼다. 모욕적인 상황이지만 육만배는 그래도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대체 무슨 오해를 하고 자신들을 덮쳤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놈들은 화가 많이 나 있다. 그런 놈들에게 맞서는 건 좋지 않다. 그는 이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 다시 한 번 뱀 같은 혀를 놀렸다.

“선생님, 저희 나름 쓸모가 있는 놈들입니다. 그리고 의리가 뭔지도 아는 놈들입니다. 거두어만 주시면, 남들 눈에 띄지 않도록 처리하시고 싶은 일들… 저희가 해드리겠습니다. 나라를 위해 큰일하실 때 발에 걸리는 작은 돌들, 치워 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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