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Fate (3)
“2호기 보고해! 현재까지 수확 있나?”
오 박사가 무전기에 대고 외쳤다. 그러면서도 그의 눈은 아래쪽을 주시했다.
그가 탑승하고 있는 1호기는 현재 건대 부근의 자양로 상공에서 동쪽의 고층 건물들과 2호선 선로들 사이로 서치라이트를 비추며 거리를 샅샅이 훑고 있었다.
― 치이익, 여기는 2호기. 아직 별다른 단서 발견한 것 없습니다! 치이익.
“현 위치는?”
― 치익, 동일로 고가도로 끝나는… 치익, 지점부터 뚝섬역까지 계속 왕복 중입니다! 치이익.
“개들은?”
― 치이익,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치이익.
“좋아! 계속 주시해라. 놓치면 안 된다. 그것만 명심해.”
오 박사는 한 번 더 단단히 당부를 하고 무전을 끊었다. 지금까지 그 넓은 범위를 빠르게 한 번 싹 훑었는데도 아무 흔적을 찾지 못했다는 건, 이것들이 개방된 도로 위를 무작정 뛰어서 달아나고 있지 않다는 의미다.
이 발칙한 세 놈은 어딘가에 숨었다. 그리고 기회를 봐서 움직이려 하고 있다. 놈들의 목표가 어디인지는 모르지만, 놈들이 어디로 가는 게 가장 곤란한지는 잘 알고 있다.
건대, 혹은 조금 멀기는 하지만 한양대 쉘터도 그 후보에 포함시켜야 한다.
만약 놈들이 건대 쉘터로 들어가 버리면, 경비 부대에 조금 전 장갑차까지 가세한, 꽤나 벅찬 병력과 상대를 해야 테라를 쟁취할 수 있다.
그런데 그건 꽤나 어려운 일이다. 장갑차가 해치를 닫고 버티면 수면 가스 정도로는 이겨낼 수 없다. 그러니 놈들이 이 길을 통해 건대로 들어가 버리는 일만은 반드시 차단해야 한다. 다행이라면 지금 건대 쉘터가 아주 지랄 맞은 혼란 속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멀리 아래쪽에 보이는 건대 쉘터는… 좀비들과 병사들이 얇은 경계선 하나를 사이에 두고 치열하게 싸우는 지옥이다. 장갑차가 열심히 지원을 하고는 있지만, 결국 싸움의 승패는 저 경계선이 무너지는지 아닌지로 갈리게 될 것이다.
“3호기! 현 위치와 상황 보고해!”
헬기가 서치라이트를 비추며 자양동 쪽에서 구의역 방향으로 이동하는 동안, 오 박사는 3호기를 호출했다.
― 치이익, 본 기체는 뚝섬 유원지역 상공입니다. 조금 전 지하철 역 내부로 대원들 투입 완료했습니다. 치이익.
“그래. 최대한 지원하고 오발 사고 없도록 유의해. 아마 그쪽에서 발견될 확률이 제일 높다.”
― 치이익, 알겠습니다. 치익.
이번에도 오 박사는 절대 놓치면 안 된다는 말을 인사 삼아 남기고 무전을 끊었다. 하늘에서 쫓아온다는 것을 아니까 당연히 땅속으로 숨으려 들 것이다. 그리고 놈들이 사라진 지점에서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은 뚝섬 유원지 역이다.
얼마 전, 쉐도우 실드 대원들이 여덟 명이나 떼죽음을 당했던 곳이기도 해서 영 내켜 하지 않는 눈치였지만, 오 박사는 대원들을 어르고 달래서 억지로 그 안에 투입시켰다.
좀비를 인지하지 못하는 개들을 앞세워서 가는 것이니까, 타깃을 좀비로 오인해서 총을 쏘는 오발 사고 확률은 거의 없을 것이다.
“우리 개들은 어디에 있나?”
오 박사는 조종사에게 물었다. 조종사는 손으로 세 시 방향을 가리켰다.
“저 건물들 사이에 있을 겁니다. 조금 전에 번쩍거리는 걸 봤습니다.”
“그래?”
오 박사는 고개를 돌려 조종사가 지목한 건물 사이를 주시했다. 2호기가 싣고 돌아온 열두 마리의 개를 세 방향으로 나누어 풀었다.
조명이라고는 없는 깜깜한 도시에서 추적을 해야 하니까, 개들에게는 반사판과 Led 조명이 붙은 얇은 조끼를 입혔다. 야간에 인간사냥을 할 때 쓰는 장비인데, 이게 꽤나 효과가 있어서 금방 눈에 확 띈다.
“저기군.”
건물들 사이에서 약하게 번쩍이는 불빛을 보며 오 박사는 미소를 지었다. 개들이 열심히 뛰고 있는 걸 보니 녀석들이 뭔가 찾아낸 모양이다.
led 등과 반사판들이 번쩍거리며 구의역 쪽으로 질주하고 있다. 오 박사는 개들이 달려가는 쪽을 가리켰다.
“비춰봐!”
서치라이트가 방향을 바꿨고, 구의역 인근이 순식간에 환하게 밝혀진다.
그리고 그때, 오 박사는 보았다. 광진 우체국의 커다란 건물, 그 유리창에 비친 사람의 그림자를. 강렬한 빛이 순식간에 비춰지자, 그림자들은 화들짝 놀라며 안쪽으로 사라졌다.
그 실루엣! 커다랗고 뚱뚱한 남자! 그리고 또 하나는 조금 마른 남자!
오 박사의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젠킨스와 군인으로부터 전해 들었던, 제3의 인물인 것 같다. 개들도 우체국 건물 앞에 지키고 서서 맹렬하게 짖어 대고 있다.
“봤어? 봤어?”
잔뜩 흥분한 오 박사가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소리를 질렀다. 조종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 네, 사람 같았습니다.”
“같은 게 아니야! 사람이었지! 큰 사람! 그리고 작은 남자! 저기야! 저기! 내려가자! 하하하하, 젠킨스도 학회에서 봤을 때보다 많이 야위었군. 하긴 제대로 먹지도 못했을 테니. 크큭.”
하이 톤으로 변해 버린 목소리. 이쯤 되면 남의 의견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 괜히 성미를 건드렸다가는 온갖 꼬투리를 잡아서 괴롭혀 댈 거다.
“저기는… 착륙시킬 만한 공간이 영…….”
조종사는 주변을 둘러보며 헬기를 내릴 만한 장소를 찾았다. 높이 가로지르는 2호선 선로와 건물들, 그리고 길을 막고 서 있는 차들 때문에 베슬과 헬리콥터가 모두 착륙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밤중이어서 힘들기도 하거니와, 강가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위치여서 슬슬 물안개도 피어오르고 있다. 이렇게 시계가 불량할 때 전선에 테일 로터라도 걸리면, 자칫 큰 사고가 날 수도 있다.
“뭐 이렇게 늑장을 부려! 빨리 내리라고! 이러다가 도망치면 내가 어떻게 할 것 같아?”
헬리콥터 비행에 대해 좆도 모르는 주제에 오 박사는 계속 악을 쓰며 보챈다. 조종사는 이를 악물고 우체국 건물 뒤편의 주차장으로 헬리콥터를 몰았다.
자동차들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에 베슬을 내리고, 헬기 본체는 그 옆의 빈 공간에 세우면 어찌어찌 비벼볼 수 있을 것 같다.
“후우우~”
착륙에 성공했을 때, 조종사의 입에서는 저절로 한숨이 터졌다. 오늘 이 작전만 성공하면 앞으로 무리한 근무 투입은 없을 거라는 말 때문에 꾹 참고 하기는 하지만, 도심에서 이런 식의 야간 비행은 정말 너무 위험하다.
“내려! 다 내려!”
헬리콥터 문을 열고 나온 오 박사는 뒷자리에 탑승하고 있던 여섯 명의 쉐도우 실드 대원을 모두 내리게 했다.
“잘 들어! 세 명이 있을 거다! 그중에 생사 상관이 없는 건 마른 남자 하나뿐이야. 나머지 둘, 그러니까 테라와 뚱뚱한 백인 남자는 절대로 다치게 해선 안 돼! 가능하면 공포탄만 쏴서 스스로 투항하게 하고, 도망을 치거나 하면 마취 총을 사용해. 명심해. 테라에게 총 쏘는 놈은 내가 최대한 잔인하게 죽일 거야. X―1으로 꼼짝 못하게 만든 다음에 껍데기를 세 번에 나눠서 벗겨낼 거라고.”
오 박사는 제정신으로 도저히 할 수 없을 말들을 아무렇게나 내뱉었다. 쉐도우 실드 대원들은 속으로 이를 갈았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테라든 뭐든 마취 총까지도 쓸 일이 없다. 어차피 개인화기로 무장하지 않은 일반인들 아닌가.
월! 월! 으르르르 월!
네 마리의 셰퍼드는 조끼를 번쩍이며 사납게 짖어 댄다. 대원들은 개들을 앞세워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건물 내부는 순식간에 플래시로 환하게 밝혀졌다.
“좋아, 좋아. 잘하고 있어!”
오 박사는 서커스에라도 놀러온 듯 기뻐하며 손뼉을 치며 좋아한다. 그러던 중에 등 뒤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을 깨닫고 고개를 돌렸다.
“어라… 저놈들을 잊고 있었구만…….”
베슬 안에 들어 있는 네 명의 군인과 눈이 마주친 오 박사가 작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놈들이 아직까지 총을 들고 있다는 것조차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건 좀 후회되는 일이었다. 안전을 위해서라고 둘러대서 비무장 상태로 태웠어야 했는데…….
하지만 당시에는 테라에 관한 정보를 얻는 게 우선이었기 때문에 놈들의 비위를 맞춰줘야만 했으니까.
오 박사는 놈들을 외면하고 헬기 앞쪽으로 자리를 옮긴 뒤 생각에 잠겼다. 만약 잠시 뒤에 이 건물에서 테라를 데리고 나오면… 그런데 테라가 군인들에게 살려 달라고 울부짖으면 어떻게 될까…….
그건 좀 골치 아파질 것 같다. 총격전을 하는 것도 위험부담이 있고……. 아예 지금 잠시 헬기를 높이 띄워서 저놈들을 베슬째 떨어뜨려 버리는 게 나을까?
그렇게 그가 고민하고 있을 때, 호출을 알리는 램프가 깜빡인다. 그러고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 치이익, 여기는 2호기. 치익.
오 박사는 무전기를 집었다.
“응, 뭐야?”
― 치익, 개들이… 치익, 사라졌습니다. 치이익.
오 박사의 얼굴이 굳었다. 그는 좀처럼 펴지지 않는 미간을 문지르며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사라지다니?”
― 치이익, 저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치익, 조금 전부터 불빛이 보이지 않아서 찾고 있는데… 치이익.
이건 좋지 않다. led 등이 꺼질 수도 있고, 개들이 죽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반사판 때문에 빛을 비추면 쉽게 찾을 수 있어야 한다. 뭔가 있다는 느낌을 받은 오 박사는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후우우~ 마지막으로 개들을 봤던 장소가 어딘데? 그게 언제야?”
― 치이익, 2분 전쯤에 동일로에서 좌측 주택가 골목 안으로 이동하는 것까지는 봤는데… 치익, 그 이후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치익.
“장난치는 거야? 그럼 실종된 지점부터 찾아야 할 것…….”
버럭 소리를 지르던 오 박사가 잠시 말을 멈췄다. 조금 전 머릿속을 섬광처럼 스치고 지나는 생각이 있었다.
“좌측으로 이동한 걸 봤다고 했지? 그때, 라이트를 비추고 있었어? 정말로 개들이 뛰어가는 걸 봤냐고? 아니면 조끼가 번쩍이는 것만 곁눈으로 대충 훑은 거야?”
2호기 조종사는 잠시 대답이 없었다. 조금 뜸을 들이던 2호기 조종사가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 치이익, 그게… 그때, 다른 방향을 감시하고 있던 상황이라서… 라이트까지는… 치이익, 그냥 곁눈으로 봤습니다. 치익.
오 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예상이 맞았다.
“고가도로에서 주택가로 갔다고 했지? 그럼 우리 개새끼들은 아마 고가도로 아래에 뒈져 있겠네… 뭐, 그건 됐고… 너희는 내가 갈 때까지 그 주택가 샅샅이 살피면서 지키고 있어! 잡으라고까지도 하지 않을게. 그냥 놓치지만 말라고! 어차피 그 주변에서 멀리 가지 못했을 테니까!”
쇳소리를 질러 댄 오 박사는 플래시 불빛이 번쩍거리는 우체국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이쪽, 그리고 저쪽 모두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쪽은 실루엣이 비슷했다.
그런 우연은 흔치 않다. 유리창에 비친 실루엣은 100킬로그램을 훌쩍 넘는 비대한 남자의 것이었다. 마음 한구석이 불안하지만, 일단 이곳의 수색을 마치는 게 우선이다.
“3호기! 3호기!”
대신에 3호기에게 지원을 맡기기로 한 오 박사는 무전기를 잡고 큰 소리로 외쳤다. 헬리콥터 두 대면 놓치는 일은 없을 것이다.
☆ ☆ ☆
“지랄 맞게 구네, 개새끼. 진짜… 씨발, 누가 보기 싫어서 안 봤나… 이 깜깜한 데 커버할 구역은 넓고,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 있으니까 그렇지. 좆같은 새끼. 이 지랄을 하려면 여기에다가 서치라이트를 붙이든가.”
오 박사와의 교신을 마친 2호기 조종사가 이를 빠득 갈며 욕설을 중얼거렸다. 2호기의 실내는 상갓집처럼 암울한 분위기가 무겁게 번져 있었다. 다들 입을 꾹 다문 채 한숨만 내쉰다.
개들을 모두 잃었다는 부정적이고 명백한 증거가 있는 이상, 만약 이 작전이 실패하면 그 책임은 고스란히 그들에게 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오 박사는 언제나 아주 책임을 무겁게 묻는 인간이다.
“어떻게 할 거야? 이제 오늘밤에 못 찾으면 우리가 독박 쓰는 거야. 다 이거라고.”
부기장석에 앉은 쉐도우 실드 조장이 자신의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면서 뒤쪽의 대원들을 돌아보았다. 대원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마른침을 삼켰다.
“일단 내려가서 몰아보기라도 하자. 위에서 보니까 좀비들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 것 같은데…….”
조장이 제안했다. 대원 중 하나가 머뭇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그런데… 좀비들보다 오히려 이 새끼들이 더 위험한 거 아닙니까? 뭔 재주를 부렸는지는 몰라도, 그 사납게 훈련시킨 셰퍼드들을 네 마리나 잡은 놈들인데…….”
그 말을 들은 조장도 멍해져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건 꽤 어려운 일이다. 모두가 눈치채지 못한 걸 보면 총을 쓴 것도 아닌데…….
“야, 한숨 작작 쉬고 아래나 똑바로 처살펴! 이러다가 진짜 오늘 초상 치른다고!”
2호기 조종사가 성질을 부리며 고도를 낮췄다. 물안개가 조금씩 짙어지고 있다. 이러면 가로등이 켜져 있는 평소라고 해도 운행하지 않는 편이 나을 정도의 기상 상황이다.
그런데 그냥 날아다니는 것도 아니고, 어딘가에 숨어 있는 놈들을 찾아내라니… 정말 짜증이 난다.
그래도 이제는 정말 물러날 곳이 없다. 개새끼들 따라서 저승 갈 생각이 아니라면 눈에 불을 켜고 찾아야 한다. 쉐도우 실드 대원들도 다들 같은 마음으로 열심히 창문 밖을 살폈다.
2호기는 아차산로를 따라 움직이며 남쪽의 주택가들을 훑었다. 개들이 사라진 시간 이후 지금까지 계속 뛰었다고 해도 이보다 더 멀리 올 수는 없다.
그리고 놈들도 저질러 놓은 일 때문에 이제는 마음이 어지간히 급해져 있을 터였다. 개를 죽였으니 스스로 발자취를 남긴 것과 다르지 않다.
“저기! 저기! 저거!”
헬리콥터의 라이트가 비치고 지나간 자리를 가리키며 좌측 뒷자리의 대원이 꽥꽥 소리를 질러 댔다. 조종사는 헬기의 방향을 급하게 선회했다.
후우우웅―
방향을 90도가량 남쪽으로 틀자, 골목 안에서 달리고 있는 세 명이 보인다.
뚱뚱한 남자, 마른 근육질의 남자, 그리고 테라.
“어, 저 개새끼들! 지금까지 어디 숨어 있다가 지금 갑자기 튀어나왔어?”
조종사와 조장이 한목소리로 외쳤다. 그 세 명이 왜 그리 무모하게 달리고 있는지는 조금만 시선을 아래로 옮겨도 알 수 있었다.
좀비들이었다. 열한 마리의 좀비가 그들의 뒤를 쫓아 뛰어가고 있다. 거리는 아직 60미터 이상 떨어져 있지만, 곧 따라잡히게 될 거다.
“저거 어떻게 해?”
좀비들을 가리키며 조장이 물었다. 저 중에 둘은 반드시 생포하라고 했는데, 지금 저 꼴대로라면 살아남는 건 면역자인 테라뿐일 것 같다.
“일단 좀비들은 좀 잡자. 아, 그리고 좀비들 잡은 다음에 위협사격으로 아차산로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아. 선로가 있어서 저리로 들어가 버리면 영 골 아프다.”
조종사는 기체를 더욱 아래로 내리며 대답했다. 이제 모습을 드러낸 이상, 다시 또 완전히 숨기란 불가능하다. 뒷자리의 대원들이 문을 열고 MP5를 조준한다.
“…아니지.”
테라를 찾았다는 보고를 하기 위해 무전기를 들었던 조장이 고개를 저으며 다시 무전기를 내려놓았다. 만에 하나 보고를 해놓고서 놓치면… 그 성깔에 어떤 미친 지랄을 떨지 모른다.
차라리 안전하게 신병을 확보한 후에 무전을 때리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좀 돌려주세요. 때리기가 나빠요.”
대원의 요청을 들은 조종사는 헬기의 방향을 달려오는 좀비들과 직각이 되도록 좀 더 틀었다. 대원은 총구 아래 달린 플래시를 켜고 곧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투투투투투― 투투투투투― 투투투투투―
연사로 발사된 총알이 빠르게 하늘을 가르고 날아간다. 골목을 채우고 달려오던 좀비들 중 절반가량이 바닥을 나뒹군다. 금세 탄창 하나를 다 비운 대원은 새 탄창을 끼워 넣고 다시 사격을 시작했다.
투투투투― 투투투투투― 투투투투투투―
이번에도 아낌없이 총알을 퍼부었다. 골목에는 죽거나, 혹은 다리가 부러진 좀비들이 어지럽게 널렸다. 두 번째 탄창까지 깨끗하게 쏟아부은 대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무서운 새끼 맞았네요. 저 뒤에 줄줄이 널브러진 좀비 시체들 좀 보세요. 씨발, 내가 총으로 잡은 것보다 더 많이 죽어 자빠져 있네. 대가리만 똑똑 따여서. 이거, 미리 알았으면 우리가 굳이 나서서 좀비들 잡아줄 필요도 없었을 것 같은데요.”
흥미로운 이야기이긴 하지만 조종사는 그런 걸 구경할 시간이 없었다. 조금 전 말했던 대로 저 세 놈이 아차산로로 들어가 버리면 헬기로 쫓기가 너무 나빠진다. 그 전에 방향을 틀도록 해야 한다.
“위협사격이다. 맞추면 큰일 나는 거야.”
테라 일행이 달리는 방향으로 앞질러 날아가면서 조종사가 외쳤다. 대원은 걱정하지 말라고 대답하며 탄창을 갈아 끼웠다. 그러는 사이 조장이 확성기용 마이크를 잡았다.
“여러분! 도망치실 필요가 없습니다! 저희는 군의 의뢰를 받아 여러분을 구조하기 위해 왔습니다! 안전하게 군이 기다리는 용산철교로 모셔가겠습니다!”
물론 새빨간 거짓말이지만, 조장은 아주 진지하게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사이 진행 방향으로 앞질러 간 헬기가 다시 기수를 직각으로 돌렸다.
“멈추라고! 이 개 같은 것들아!”
조금 전 좀비들을 사살했던 대원이 다시 MP5를 난사한다.
투투투투투― 투투투투투―
테라가 달리는 위치로부터 30여 미터 앞에 일렬로 총알이 박히며 시멘트 벽에서 먼지가 치솟아 오른다.
화들짝 놀란 세 사람은 뒤로 돌아서 다시 뛴다. 그러더니 오른쪽의 골목 안으로 꺾어 들어갔다.
“우리 셋 내려주세요!”
쉐도우 실드 대원들이 레펠용 로프를 아래로 늘어뜨리고 내려갈 준비를 한다.
“잊지 마! 큰길로 못나가게 몰아! 골목 안에 가둬!”
로프를 잡고 빠르게 미끄러져 내려가는 대원들에게 조장은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했다.
세 명의 대원이 착지한 것을 확인하고 로프를 풀어버린 2호기는, 오른쪽의 골목과 아차산로의 사이로 날아갔다. 이제 놈들은 독안에 든 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