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396화 (396/449)

3장 좀비 세계의 최강자 (6)

건대 쉘터에서 처음 잠을 깬 것은 제니였다.

“꺄아아아―!”

특유의 고음 잠꼬대!

바로 곁에서 잠들어 있던 일행들은 물론이고, 체육관의 절반은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내 다시 눈을 꾹 감고 꿈속으로 돌아갔다.

좀비 세상이 온 후에 그 정도의 잠꼬대는 그리 희귀한 일도 아니었다. 살아남은 이들은 다들 악몽을 꾸고, 그러다 보면 가끔씩은 잠결에 큰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뭐야! 뭔 소리야? 누구야!”

곤히 곯아떨어져 있던 보안관은 눈도 잘 뜨지 못한 채로 벌떡 일어나 주먹부터 꽉 쥐었다. 누군가 제니를 공격하기라도 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아웅~ 진정해, 보안관. 제니 여기 잘 있어.”

삼식이가 보안관의 바지를 잡아끌며 앉힌다. 그의 말이 맞다. 제니는 믿을 수 있는 친구들 사이에서 안전하게 아주 잘 있다.

“하아아~ 하아아~”

몸을 일으켜 앉은 제니는 커다란 눈을 깜빡거리면서 바닥을 노려보고 있다. 이제야 꿈과 현실이 겨우 좀 구분되는 모양이다.

“…미안해요. 바보같이… 하아~ 나쁜 꿈을 꿔서…….”

제니는 땀으로 흠뻑 젖은 머리를 쓸어 넘기면서 중얼거렸다. 태권소녀가 측은하게 바라본다.

“그러니까 자는 동안만이라도 그 후드 좀 벗고 자. 얼굴 좀 보이면 어때. 그렇게 꽁꽁 싸매고 잠이 드니까 몸이 힘들어서 악몽도 꾸는 거지. 그 구린내 나는 수건도 목에서 좀 빼버리고.”

“아… 네, 그럴게요.”

태권소녀의 조언대로 후드를 벗은 제니는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털었다. 길게 웨이브 진 갈색 머리, 핏기 없이 흰 얼굴… 달빛에 비친 그녀의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던 태권소녀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저기, 제니야, 그냥 후드 써야 되겠다.”

“조금이라도 더 자. 해 뜨려면 몇 시간 안 남았어.”

옆자리에서 자고 있던 유빈이 제니의 손등을 도닥여 주고 다시 눈을 감는다. 제니는 고개를 끄덕이고 얌전히 옆으로 누웠다.

꿈일 뿐이라는 걸 잘 알고 있는데, 그런데도 흥분되고 불안한 감정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무슨 꿈이었는데? 불길한 꿈이었어?”

그녀가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자, 유빈이 눈을 뜨며 조용하게 물었다. 제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냥… 별 내용도 없는 개꿈이었어요. 신경 쓰지 말고 자요.”

“그래? 왜 그러지? 기력이 딸리나…….”

유빈은 알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다시 눈을 감았다. 그의 옆얼굴을 보며 제니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기분 나쁜 꿈, 입 밖에도 내기 싫어서 유빈에게 거짓말을 했다.

또 테라다. 자신이 그녀를 버리고 도망쳤던 그날처럼, 테라는 잔뜩 겁먹은 얼굴로 원망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미어지는 것처럼 아팠다.

그리고… 그녀의 까만 머리카락을 적신 채 줄줄 흘러내리던 붉은 피…….

‘아니야… 그런 일 없어… 내일이면, 몇 시간 뒤면 만나게 될 거야… 혹시 선로로 옮겨 갔다고 해도 금방 찾을 수 있어. 어서 자.’

자신을 다독거린 제니는 손을 뻗어 유빈의 손가락 끝에 얹었다. 아주 작은 접촉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한결 안심이 된다. 그렇게 한 후에야 제니는 다시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얼―!

제니가 일으킨 소동으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이번에는 삼숙이가 모두를 깨웠다. 진우와 꼭 붙어서 잠들어 있던 녀석은 갑자기 몸을 벌떡 일으키며 체육관 바깥을 향해 짖었다.

얼―!

친구들이 한 번에 일어나지 않자 삼숙이는 재차, 이번에는 좀 더 크게 짖었다. 종소리처럼 굵고도 우렁찬 성대의 울림이다.

“…어우, 야. 너까지 왜 그러냐…….”

어제오늘 아주 무리하게 달린 바람에 잠이 부족한 삼식이가 눈을 비비면서 괴로워한다. 하지만 삼숙이는 타박을 받으면서도 꿋꿋이 다시 짖었다.

“뭔가 있는 모양이네.”

제니의 잠꼬대 때는 그저 조용히 눈을 감고 있던 진우가 제일 먼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삼숙이의 목덜미를 쓸어 녀석을 진정시킨 진우는 배낭까지 걸친 뒤 체육관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삼숙이가 바로 뒤를 따르고, 잠시 후 친구들도 진우를 쫓아 나갔다.

“왜 더 안 자고 벌써 나와? 아직 일러. 해 뜨려면 멀었어.”

야간 경계 근무 책임자여서 확성기를 든 채 뒷짐을 지고 천천히 쉘터 내부를 돌던 김 중사가 진우 일행을 알아보고 다가와 묻는다. 그들이 지금 잠실로 가기 위해 나왔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아뇨, 출발하려는 게 아니었습니다. 이 녀석이 짖어 대기에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진우는 삼숙이의 머리를 짚으며 대답했다. 삼숙이는 철책이 무너진 북쪽을 노려보고 서 있다. 이 자세며 짖는 톤은, 외부에서 화약 냄새가 접근해 올 때 녀석이 보이던 반응이다.

“그래? 왜 그랬지? 이놈, 점잖던데? 한 번 위로 올라가 볼까?”

김 중사는 삼숙이의 얼굴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따금씩 한강 쪽에서 헬리콥터 소리가 들려오기는 했지만, 그것 외에는 딱히 평소와 다를 게 없던 밤이다. 친구들과 김 중사는 그들이 갇혀 있던 수용자 숙소 건물 위로 올라갔다.

“엇, 김 중사님! 무슨 일이십니까?”

4층 건물의 옥상에 올라가자 느슨하게 경계를 보던 병사들이 서둘러 일어난다.

“너희들, 담배 피우고 있는 것 같아서 불시에 와봤다.”

김 중사가 너스레를 떨면서 난간 쪽으로 걸어가는 동안 진우와 친구들은 병사들에게 목례를 했다. 철책이 완전히 무너져 있기는 하지만 계속 불을 질러 좀비들의 방향을 돌려놓고 있는 터라 북쪽은 대체적으로 큰 이상이 없다.

혹시 소수 좀비들이 멀리에서 기웃거리더라도 전멸시키려 들지 말라는 명령에 따라서 병사들은 경계를 우선 수칙으로 삼고 있었다.

이쪽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불을 지펴 자극하지 않으면 좀비들은 그저 몇 마리만 거리에 남겨두고 돌아간다. 유빈이 알려준 대응 방식인데, 그게 꽤나 효과가 있어서 강 소위와 김 중사는 내심 감탄하는 중이었다.

“별 이상한 점은 없어 보이는데?”

군자역 쪽의 도로를 바라보던 김 중사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불 꺼진 고층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기 때문에 그리 멀리까지 보이지 않지만, 적어도 넓은 대로 위에는 이렇다 할 변화가 없어 보였다.

잠시 후, 저 멀리 도로의 끝자락에 약한 빛이 비쳐 들기 시작했다.

“어? 저게… 뭐지? 라이트?”

김 중사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망원경을 눈에 가져다 댔다. 빛은 조금씩 커지고, 밝기도 강해졌다. 그러고는 이내 사거리 전체를 확 밝힐 만큼 환하게 라이트를 켠 장갑차와 트레일러가 모습을 드러낸다.

“어어어어! 저거! 자빠지겠다!”

사거리에서 급격하게 회전한 장갑차 때문에 트레일러가 심하게 기우뚱거리자 옥상 위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미간을 찌푸리며 안타까워했다.

거리가 있어서 정확히 보이진 않지만, 트레일러 지붕 위에는 병사들도 잔뜩 실려 있다.

“아니! 미쳤나? 애들 달고 있으면서 왜 저렇게 속도를 내?”

건대 쉘터를 향해 똑바로 달려오는 장갑차를 보며 김 중사는 혀를 찼다. 그만큼 위험한 턴이었다. 트레일러가 나자빠졌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정도다.

다른 병사들 역시 장갑차장의 무모한 행동에 대해 적잖이 분노해 술렁거린다. 하지만 장갑차가 왜 그렇게 미친 듯이 급격한 회전을 감행했어야 했던 건지가 곧 밝혀졌다.

“아…….”

김 중사가 말을 맺지 못하고 외마디 감탄사만 이어 붙인다. 구름처럼 많은 좀비들이 장갑 트레일러를 뒤쫓아 미친 듯이 뛰어오고 있다. 대략 눈으로 훑어봐도 500, 아니, 700마리는 족히 되어 보인다.

“이게 무슨… 왜 저렇게 쫓아와… 소독차 뒤에 따라다니는 애새끼들도 아니고…….”

충격적인 비주얼에 홀려 바보 같은 소리를 늘어놓고 있던 김 중사는, 갑자기 정신이 든 사람처럼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 아니지! 이게 아니야! 정신 차려야 돼! 야! 너희! 사이렌 울리고 애들 다 깨워!”

“네, 넷!”

두 명의 병사가 건물 아래로 뛰어 내려간다.

“아, 맞다! 우리… 무전기가 없잖아!”

쉘터를 향해 대로를 직진해 오고 있는 장갑차를 보며, 김 중사는 또 새로운 문제를 생각해 냈다. 저 정도 다급하게 달려왔을 때에는 아마도 계속 지원 요청을 무전으로 보내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 쉘터에는 무전기가 없다. 응답을 받지 못한 장갑차는 지금 건대 쉘터가 전멸당한 것이라 판단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조명도 밝지 않고, 철책도 다 무너져 버렸으니 멀리에서 본다면 그저 폐허나 다름없다.

“저, 저거… 이리로 오면 안 돼! 왜 하필 철책도 없는 쪽으로!”

다들 깊은 잠에 빠져 있는데 철책이 없는 북쪽으로 좀비들이 밀려 들어와 버리면 엄청난 살육이 벌어지게 될 거다.

당황한 김중사는 주변을 둘러보며 어떻게 하면 오지 말라는 신호를 보낼 수 있을지 고민했다. 발전기를 돌리지 않으니 자동차 배터리에 연결한 라이트가 가장 밝은 빛이다.

그 정도 밝기를 깜빡거려 정지 신호를 보낸다고 해서 저 장갑차가 알아봐 줄 수 있을지, 그게 자신이 없다.

“남쪽으로 돌려 올게요! 라이트 보이면 남쪽 게이트 열어주세요!”

패닉 상태에 빠져 있는 김 중사를 붙잡고 유빈이 말했다. 김 중사의 손에서 확성기를 빼앗아 든 유빈은 진우, 그리고 병사 한 명과 함께 날듯이 계단으로 뛰어 내려가 조수석 문짝을 떼어낸 승용차에 올랐다.

부우웅―

시동을 건 유빈은 이를 악물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진우도 긴장된 표정으로 K―2를 꽉 쥔다. 물론 그중에 가장 긴장한 것은 갑자기 특공요원들 틈바구니에 끼어버린 병사였다.

떨리는 손으로 확성기를 잡고 뒷좌석에 앉은 병사는 자신이 여기에 왜 끌려온 건지를 생각해 내려 애를 썼다.

☆ ☆ ☆

“이상한데? 저기가 건대 쉘터 맞지 않냐?”

정신없이 흔들리는 트레일러 위에서 남쪽 도로를 노려보고 있던 밤톨이 물었다. 무전병이 고개를 끄덕인다.

“맞습니다, 조 병장님.”

“야, 근데… 불빛이 안 보여… 우리가 있을 때는 저기 안 저랬잖아…….”

밤톨의 얼굴에 불안함이 가득하다.

이거 어째… 영 잘 못 온 건 아닌가 싶다. 설마… 그 며칠 사이에 건대 쉘터가 좀비들에 의해서 무너지기라도 한 건가…….

희미한 라이트 불빛이 몇 개 보이기는 하지만, 도저히 중대 병력 주둔지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이 세상에 저 정도 밝기의 서치라이트를 비추며 경계 근무를 하는 군대는 없다.

좀처럼 속도를 올리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걸 보면 장갑차장도 그와 비슷한 걱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혹시라도 저곳이 이미 좀비들에게 점령당한 상태라면 그때는 앞뒤로 포위되는 형국이다.

다시 말해 꼼짝없이 죽는 거다. 그러니 앞으로 몇 개 남지 않은 사거리에서 회전을 해야 할지, 직진을 해야 할지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롸아아아아―

장갑차가 망설이며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동안에 뒤따르는 좀비들과의 간격은 꽤나 많이 줄어들었다. 가장 앞에서 달려오는 놈들과의 거리는 이제 10미터도 안 돼 보인다.

“이러다가 따라잡힐 것 같습니다…….”

난간을 꼭 붙잡고 뒤쪽을 바라보고 있던 김 이병이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다른 병사들 역시 말은 안 했지만, 비슷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세상에… 바로 코앞의 장갑차에 탄창이 적재되어 있는데, 그걸 지급 받지 못해 이렇게 떨고 있어야 하다니… 이게 대체 무슨 좆같은 블랙코미디인가.

“어! 빛입니다! 조 병장님! 저기 라이트! 라이트!”

무전병이 뒤돌아보고 있는 밤톨의 어깨를 두드린다.

응? 밤톨은 다시 앞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화악―

거의 암흑 속에 잠겨 있던 건대 쉘터 안쪽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그 빛은 빠른 속도로 가까워졌다.

“차량입니다! 아! 조금 전까지는 하이 빔 켜고 있었나 봅니다!”

몇 차례 깜빡거리던 라이트가 조금 약해지고 승용차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이어 울려오는 확성기 소리!

병사들의 얼굴에 희망이 어린다.

건대 쉘터가 전멸된 게 아니었다!

끼이이익―

넓은 도로의 오른쪽 가장자리에서 달려오던 승용차가 날카로운 턴을 하며 옆으로 돈다.

“…저 새끼는 뭐야?”

문 없는 조수석에 앉은 사제 군인을 보고 병사들이 웅성거렸다. 군인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민간인 같지도 않다.

개인화기나 방탄전술 조끼를 보면 군인인데… 그렇다고 하기에는 또 복장이 너무 불량하다. 사제 카고 바지에 등산화… 뒷좌석 창문 밖으로 고개를 내민 병사가 아니었다면, 이 차량이 건대 쉘터 소속이라고 믿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부우웅―

180도 방향을 바꾼 승용차는 장갑차가 다가오기를 기다렸다가 그 바로 옆에서 속도를 맞춰 나란히 달리기 시작했다.

“아! 아! 건대 쉘터에서 방향을 유도하겠습니다!”

뒷좌석의 병사가 확성기를 통해 외쳐 왔다. 그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린다.

“에… 지금 본 쉘터의 북쪽은… 아… 저기… 뭐라고 하라고 하셨는지… 잘 기억이…….”

병사는 확성기 스위치를 꽉 누른 채 유빈을 돌아보며 자신의 대사를 다시 알려 달라고 한다. 긴장 때문에 머릿속이 하얗게 질려 버린 모양이다.

“북쪽 철책이 무너졌으니까 게이트가 있는 남쪽으로 가야 한다고요! 저희가 유도할 테니까 따라오라고 하세요!”

유빈은 빠르게 일러줬다. 고개를 끄덕인 병사는 다시 외쳤다.

“북쪽 철책이 무너졌다! 남쪽 게이트로 유도하겠다! 본 차량의 선도를 따라주기 바란다!”

병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사이에 좀비들은 그의 머리통을 노리며 방향을 바꿔 뛰어온다. 아직까지는 거리가 있지만, 그래도 꽤나 간이 조마조마해지는 광경이었다.

장갑차의 포탑 해치가 열리고, 장갑차장이 상체를 내민다. 그러고는 앞서 가라는 수신호를 보냈다. 그것을 확인한 유빈은 속도를 높여 장갑차의 앞으로 차를 몰았다.

깜빡― 깜빡―!

우회전 깜빡이가 반짝거리며 돌아야 할 방향을 일러준다. 그런 후, 승용차는 코너를 돌아 사라졌다. 그 모습을 본 트레일러 위의 병사들은 이구동성으로 탄식했다.

“또 돌아? 아우~! 그러다가 잡히겠다!”

장갑 트레일러에게 코너를 도는 건 속도를 늦춰야 하는 작업이다. 조금 전만 해도 무리하게 좌회전을 감행했다가 하마터면 트레일러가 전복될 뻔했다. 애초부터 이렇게 뭘 안정적으로 끌고 다니도록 설계된 차량이 아니다.

“꽉 잡아라! 떨어지지 않게!”

밤톨이 외쳤다. 병사들은 두 손을 난간을 꽉 움켜쥔 채 잠시 후에 전해질 관성에 대비했다.

크르르르릉― 끼기기긱―

장갑차 자체는 조금 속도를 줄인 채 별 무리 없이 코너를 돌았다. 그렇게 하라고 만들어놓은 물건이니까.

문제는 뒤에 연결되어 있는 트레일러였다. 불친절한 완충장치와 무게 배분, 과적, 그리고 너무 긴 길이 때문에 트레일러는 또 급격하게 기울었다.

텅!

뒷자리에서 떨고 있던 김 이병의 몸이 떠오른다. 그러더니 녀석은 난간 밖으로 확 밀려났다.

“으아아아! 씨발! 구해주세요! 잡아줘요!”

난간에 대롱대롱 매달린 김 이병이 다급하게 외쳐 댄다. 살려 달라는 말도 참 고문관처럼 한다. 트레일러가 흔들릴 때마다 녀석의 두 다리가 시계추처럼 이리저리 흔들렸다.

“잡았어! 올라와! 발을 벽에다 대고 올라오라고, 이 새끼야!”

밤톨과 다른 병사들이 난간 아래로 몸을 기울여서 녀석의 팔목과 접어 올린 소매를 움켜쥐고 소리쳤다.

“끄응~!”

김 이병은 어떻게든 발을 트레일러 벽에 밀착시키려 애를 썼지만, 흔들리며 달리는 상황에서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몸을 올리려던 김 이병은 몇 차례나 미끄러지며 더 아래로 축 처졌다.

“아으! 이 개새끼! 힘주라고! 이러다 떨어져!”

밤톨은 김 이병의 소매를 꽉 잡아당기며 이를 악물었다. 트레일러가 덜컹거릴 때마다 밖으로 몸을 기울여 내민 그마저도 위험해진다.

“아, 안 돼요! 놓지 마요!”

밤톨의 손에서 힘이 빠진 것도 아닌데, 김 이병은 지레 겁을 먹고 비명을 질러 댔다.

그롸아아아아―

방금 전, 우회전을 하는 동안 또 간격을 줄인 좀비들이 김 이병의 다리를 향해 팔을 뻗으며 달려온다. 거리는 기껏해야 2미터 내외다. 한 번 휘청하고 다리가 뒤쪽으로 흔들리면 잡힐 것만 같다.

근접해 있는 좀비들을 쏴버리면 제일 편하고 좋겠지만, 달리는 트레일러 위에 서서 아래쪽을 겨누고 쏘는 총알이 제대로 명중될 리가 없다. 자칫 흔들리기라도 하면 김 이병의 다리가 제일 먼저 벌집이 되고 말 거다. 아니면 서서 쏘던 놈도 아래로 떨어지거나…….

“올라오라고! 이 개새끼야! 네가 다리에 힘을 줘야 돼!”

밤톨은 녀석의 소매를 당기면서 악을 썼다. 그때였다.

끼이이익―

저만치 앞서 달리던 승용차가 비스듬히 방향을 틀어 멈춰 서고, 조수석의 사제 군인이 몸을 기울여 내민다.

사제 군인의 총구 아래 달린 플래시가 번쩍하고 켜진다 싶은 순간, 벼락같은 총성이 울렸다. 망설임이라고는 10원 어치도 없는 태도다.

탕, 탕, 탕, 탕― 탕, 탕, 탕―

“저 미친!”

총성을 들은 밤톨은 자신도 모르게 사제 군인을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김 이병이나 자신에게 맞으면 어쩌려고 저렇게 생각 없이 방아쇠를 당기는 건가 싶어서였다. 하지만 결과는 그의 우려와 완전히 다르게 펼쳐졌다.

크륵―!

포효하려던 좀비가 대갈통이 뚫린 채 뒤로 나자빠진다. 그 옆에서 김 이병의 다리를 낚아채려던 좀비들도, 그리고 그 바로 뒤에서 달려오던 놈들까지도… 너무 근접했다 싶었던 좀비들은 전부 다 순식간에 뇌를 쏟아내며 바닥에 널브러져 버렸다.

“하아아~ 하아아~!”

믿을 수 없는 기적을 목격한 밤톨은 김 이병을 당겨 올리며 승용차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제 군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총구를 거두었고, 승용차는 이내 다시 출발해서 앞서 달린다.

뭐냐, 이거? 마치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식의 오만한 태도.

“와아~ 씨발!”

그 대단한 간지에 밤톨은 고개를 저으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의 마음속에서 전투력 1위에 랭크되어 있던 민구가 지금 막 왕좌를 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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