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좀비 세계의 최강자 (5)
잠실대교 위를 두어 번 선회한 시점에서 오 박사의 인내심은 한계를 맞았다. 난파된 채 표류하는 배 같은 건 없었다.
혹시 교각 사이의 수중보에 걸린 채 멈춰 있는가 싶어 몇 번이나 고도까지 낮춰가며 꼼꼼히 살펴봤는데도 마찬가지다.
“야, 이 개새끼야! 날 가지고 놀아? 여기 배가 어디 있어?”
오 박사는 무전기를 으스러져라 쥐고 3호기의 승무원에게 욕설부터 날렸다. 3호기 승무원은 잠시 멈칫한 후에 사무적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 치이익, 있었습니다, 분명히. 치이익, 저 혼자 본 게 아닙니다. 치익.
“그럼 그 짧은 시간에 어디로 갔다는 거야? 없다고!”
― 치익, 표류 중이었으니까 물살에 휘말려 떠내려갔을 수도… 치이익.
“야! 여기 밑에 수중보가 있어! 딱 막혀 있어서 그 배는 강 상류에서 떠내려온 게 아니라고! 배가 계속 여기에 있을 때에는 뭔가에 걸려 있던 거란 말이야! 그런데 왜 갑자기 떠내려가! 지껄이기 전에 생각을 하라고! 이 멍청한 새끼야!”
자신의 무력감과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욕설을 잔뜩 퍼부은 뒤, 오 박사는 무전을 끊어버렸다.
“하여간… 똑바로 하는 새끼가 없어! 마음에 하나도 안 든다고! 어이! 하류 쪽으로 훑으면서 내려가 보자.”
오 박사는 거만한 표정으로 조종사에게 명령했다. 헬리콥터는 고도를 높여 한강의 중앙에 라이트를 비춰가며 서쪽으로 날아갔다.
“어! 저! 저기! 불빛!”
헬리콥터 조종사가 전방을 가리켰다. 오 박사도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영동대교와 성수대교의 중간 정도 지점, 한강의 북쪽에서 플래시가 점멸하는 게 눈에 들어온다.
투투투투투― 투투투투―
그리고 하늘을 향해서 쏘아져 올리는 총알도 보였다. 불을 뿜는 총구와 붉은 예광탄이 온통 검정색뿐인 밤하늘에 긴 잔상을 남긴다.
헬리콥터의 서치라이트가 그쪽으로 방향을 바꾸자, 암흑 속에 묻혀있던 유람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뭐야? 난파선이라더니… 운항만 잘하고 있구만…….”
유람선의 후미에서 솟아오르는 물거품을 보며 오 박사가 중얼거렸다. 스크루가 돌아가고 있다. 갈라놓은 물살의 흔적을 봐도 분명 달리고 있던 배다. 하지만 우습게도 조명은 완전히 꺼져 있다.
“너무 가까이 가지 말고 위쪽에서 돌아. 저 새끼들 허공에 대고 총 쏘는 거 보니까 무섭다. 대체 뭘 하자는 거야? 유령선 흉내를 내는 것도 아니고…….”
피투성이인 배는 끔찍할 정도로 큰 손상을 입은 채로 천천히 물살을 가르고 있었다. 유리 지붕이 다 박살 나고, 사방에 총알구멍이 나있는데다가, 뭘 얼마나 들이받았는지 완전히 우그러지고 찢긴 뱃머리에서는 침수가 진행 중이다.
한눈에도 지독한 전쟁을 치르고 살아남은 배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허허… 저놈들 봐라?”
망원경을 통해 유람선의 상황을 지켜본 오 박사가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배를 가득 메우다시피 한 수많은 좀비들의 시체. 그리고 그 시체들 사이에서 펄쩍펄쩍 뛰며 반가워하는 사람들…….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몇몇은 심각한 표정으로 강가를 노려보거나 배의 이곳저곳을 뒤지고 다니는 중이었다. 누군가를 찾는 모양새다.
비록 열댓 명의 생존자들 중에 오 박사가 진정으로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없지만, 뭔가를 찾고 있다는 지점에서 오 박사는 반가운 사인을 받았다.
“구조해서 베슬에 태웁니까?”
조종사가 물었다. 오 박사는 라이트를 환히 받고 있는 생존자들을 노려보며 사악하게 중얼거렸다.
“후후, 저 새끼들만 있으면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네. 이렇게 가슴이 두근거렸던 게 화가 나서라도 그냥 싹 다 쏴 죽여 버리고 싶어. 근데… 이건 감이 좀 좋아. 딱 왔어.”
오 박사는 미소를 지으며 외부 확성기와 이어진 마이크를 잡았다.
“생존자 여러분! 저희는 민군 합동 구조 본부 소속입니다! 만약 구조를 원하시면 팔로 크게 원을 그려주십쇼!”
조금 전까지 짜증을 부릴 때와는 완전히 다른 톤이다. 아주 자상하고 신뢰할 만한, 그런 목소리였다.
그 이중적인 모습을 익히 알고 있던 헬기 조종사였지만, 곁에서 듣고 있자니 소름이 돋았다.
유람선에서는 당연히 난리가 났다. 민간인과 군인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일제히 두 팔을 들어 원을 그리며 펄쩍펄쩍 뛰어 댔다. 불이 꺼진 채 서서히 가라앉는 배였으니, 정말 감사할 수밖에 없었다.
“배의 엔진을 꺼주십쇼! 곧 구조용 베슬을 내리겠습니다.”
오 박사는 가증스러울 만큼 선한 말투로 지껄여 댔다. 그러고는 조종사에게 헬기를 아래로 내리라는 신호를 보냈다.
구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열댓 명의 생존자들은 딱히 명령을 하지 않아도 앞다투어 베슬 안에 뛰어들었다.
모두를 옮겨 실은 헬기는 방향을 바꿔 고도를 올렸다. 조금 더 날아간 헬기는 자동차가 정리된 성수대교 중앙에 베슬을 내리고, 그 옆에 착륙했다.
“아, 잘 세워주셨습니다! 마음이 급해서 타기는 했는데, 그냥 가면 안 될 일이 있어서 말입니다…….”
헬기에서 내린 오 박사가 베슬로 다가가자 구조된 군인들이 반가워하며 입을 열었다. 오 박사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혹시 조금 전에 누굴 찾고 있었던 겁니까?”
“예! 저희들 외에도 세 명이… 쭉 같이 있었는데, 저희가 헬리콥터에 신호를 보내느라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에 세 명이 감쪽같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병사들은 두서없이 지껄여 댔다. 하지만 오 박사는 대충 다 알아들었다. 그의 사악한 눈동자가 커진다. 감이 맞았던 것 같다. 고 깜찍한 젠킨스가 계집애를 데리고 도망친 거다.
“세 명이나요? 그거 큰일이잖습니까? 뭐죠? 추락 사고가 난 건 아니고요?”
도망쳤다는 걸 알면서도 오 박사는 사뭇 진지하게 걱정하는 표정을 지었다. 병사들은 도리질을 한다.
“한꺼번에 세 명이나 추락 사고가 났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하여튼 귀신에 홀린 것 같은 기분입니다. 꼭 찾아야 하는데…….”
K―3 사수는 말을 아꼈다. 칼자국 난 사내가 저걸 타면 죽는다고 난리를 치던 모습을 본 터여서 그는 그 세 명이 도망을 친 게 아닐까 의심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 말을 꺼내봐야 공연히 이 태양 그룹 사람들의 기분만 상하게 할 것이다.
꼭 찾아야 한다고?
오 박사는 K―3 사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테라라는 계집애는 아이돌이라니까 군인들에게 인기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렇게 단순한 이유 같아 보이지 않았다.
“일단 찾는 게 급선무겠네요. 혹시 실종되신 분들 성함이나 인상착의 같은 걸 알 수 있을까요? 확성기로 방송을 하면서 찾으면 효율이 더 높거든요.”
오 박사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물었다. 군인들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테라 씨하고, 남자 둘입니다! 한 명은 백인인데 엄청나게 뚱뚱하고요, 또 한 명은 조금 마른 체형에… 얼굴에 칼자국이 크게 나 있습니다.”
빙고! 브라보! 유레카!
테라라는 이름을 확정적으로 듣는 순간, 오 박사의 머릿속에서는 폭죽이 정신없이 터졌다.
…드디어 찾았다! 그렇게 고생을 시키더니! 게다가 뚱뚱한 백인… 100퍼센트 젠킨스다!
“…그럼 그 두 분은 이름을 모르시는군요. 그건 됐고… 실종되신 지점은요? 대강 추정되는 장소나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신 장소, 다 좋습니다. 말씀을 해주세요.”
오 박사는 숨을 헐떡이지 않기 위해 애를 쓰면서 물었다. 아마도 영동대교 부근일 것 같다고, 군인들이 대답해 준다.
멀리는 못 갔겠어…….
오 박사는 마음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알겠습니다. 저희가 최대한 열심히 수색해 보겠습니다. 마침 저희 헬리콥터에는 서치라이트가 달려 있으니까요. 함께 돌아다니시려면 불편하시겠지만, 협조 좀 해주십쇼. 테라 씨 인기 많던데, 우리가 여러분을 내려 드리고 오는 동안 좀비들에게 물리기라도 하면 큰일이잖습니까.”
오 박사는 너스레를 떨며 베슬로부터 멀어져 헬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때, 그의 등 뒤에서 누군가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테라는 어차피 그런 걱정은 없잖아? 좀비들한테 보이지도 않는 것 같더구만 뭘…….”
그런가? 좀비에게 보이지 않는다고? 그런 면역자도 있는 건가?
오 박사는 애써 못 들은 척하며 헬기에 올랐다. 문을 닫자마자 그는 조종사에게 명령했다.
“영동대교로 돌아가서 그 주변 다 훑어야 돼. 테라가 그리로 갔다.”
그리고 그는 무전기를 집어 2호기와 3호기도 다 불러들였다. 쓸데없이 장갑 트레일러 꽁무니나 쫓아다닐 때가 아니다.
“푸훗! 푸후훗!”
자꾸만 웃음이 터져 나와서 오 박사는 입을 가렸다.
좀비에게 보이지 않는 면역자… 얼마나 좋은가.
미스터 배 따위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그 좋은 재료가 오늘 밤 그의 손에 들어오게 될 거다.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짜릿해져서 오 박사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 ☆ ☆
그 시각에 민구와 테라, 젠킨스는 한강 둔치의 넓은 공원 잔디밭을 지나 달려가고 있었다. 어떻게든 시야가 가려지는 곳을 찾아야 하는데, 이놈의 공원은 너무 넓고 개방적이다. 몸을 숨길 만한 데가 전혀 없다.
고가도로 같은 곳으로 도망칠 수는 없었다. 그렇게 탁 트인 곳을 택했다가는 단박에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한참 동안 벽을 따라 달리던 세 사람은 결국 입구에 ‘벽천 나들목’이라고 새겨진 보행자용 터널을 발견하고 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의 내부나 건너편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살펴보거나 생각할 만한 여유 따윈 전혀 없었다.
“하아, 하아~ 제발! 이제 됐잖아! 여기라면 안 보여! 안 보인다고! 제발 숨만이라도 좀 돌리게 해 줘! 부탁이야!”
길게 뚫려 있는 나들목의 중간 지점까지 내달렸을 때, 젠킨스가 바닥에 나동그라지며 애원을 했다. 녀석의 숨소리는 금방이라도 끊길 것처럼 불안정하고 쌕쌕거린다.
젠킨스를 두고 그냥 갈까 잠시 망설이던 민구는 결국 잠시 숨을 돌리기로 하고 녀석의 곁에 앉았다.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혹시라도 테라가 마음이 바뀌어 JL로 가겠다고 하면… 그때는 이놈이 필요하다.
민구가 멈춘 것을 보고, 테라도 허물어지듯 주저앉아 가쁜 숨을 몰아쉰다. 종이 인형처럼 가느다란 그녀의 다리와 굽이 높은 샌들을 보고 있으면, 이만큼이라도 뛰어온 게 대단하다고 여겨진다.
팟―
민구는 가방에서 플래시를 꺼내 터널의 반대편을 비춰봤다. 다행히 괴물 같은 건 없어 보인다.
“하아~ 하아~ 그 검은 헬기… 또 돌아올까요? 그냥 그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만 데리고 갈 확률은 없을까요?”
테라가 물었다. 민구는 플래시를 끄고 고개를 저었다.
“물론 그렇게 되면 나도 좋겠어. 네가 괴물들 눈에 보이지 않는 체질이란 걸 아는 놈들이 싹 다 끌려가서 죽어버리는 거니까. 하지만 세상일이라는 게 보통 그렇게 쉽게 풀리지는 않아. 애초부터 저놈들이 왜 저렇게 저 배에 미련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배에 타고 있던 놈들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에는 무조건 네가 타깃이 될 거야.”
“그… 저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제 목숨도 망설이지 않고 맡길 만큼 태양 그룹을 믿는 놈들인데, 네 이야기라고 왜 비밀로 하겠어. 물어보기도 전부터 떠들어 댈 게 분명해. 테라와 함께 있었는데, 지금 안 보인다고… 찾아야 한다고.”
후우~ 테라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숙였다.
태양 그룹… 원래부터 진절머리 나도록 싫지만, 민구의 말을 듣고 나니 더 두렵다.
사람을 잡아다가 좀비의 먹이로 준다니… 그녀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인간들이다. 그런 놈들이 지금 자신을 쫓고 있다.
“그나저나 저놈은…….”
숨을 헐떡이며 큰대자로 뻗어 있는 젠킨스를 가만히 쳐다보던 민구가 물었다.
“왜 저렇게 죽기 살기로 쫓아오는 건지 모르겠군. 너를 포기할 수 없어 한다는 건 알지만, 나랑 같이 있으면서 너를 제 마음대로 하지 못하리라는 걸 빤히 알 텐데……. 저놈도 태양 그룹이 무섭다는 걸 아나?”
“태양을 왜 무서워하느냐고? 하아아~ 하아아~!”
테라로부터 민구의 질문을 전해 들은 젠킨스는 큰대자로 뻗은 채 나불거리기 시작했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면 쉽지. 만약에 내가 JL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상황에서 태양의 천재적인 연구자가 지금의 나처럼 난민 신세가 되어 있다면… 아, 물론 실제 태양에는 그런 연구자 같은 거 없어! 그냥 가정이야, 가정! 어쨌든 그런 연구자를 내가 손에 넣었다면… 내가 그를 태양으로 보내주기 위해서 노력할까? 왜 그래야 하지? 그가 여기에 존재한다는 걸 아무도 모르는데? 그냥 지하 연구실에 가둬두고 실적이 나올 때까지 고문을 해 대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 알겠지, 테라 양? 그런 사실을 다 알면서 태양에 따라갈 수는 없는 거라고. 그랬다가는 그 순간 이후 평생 햇빛을 볼 수 없게 될 테니까.”
“잘도 지껄이는군. 숨도 제대로 못 쉬던 놈이…….”
그만하면 충분히 쉬었구나 싶어서 민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는 몸을 숨기기에 좋은 장소가 아니다. 헬기가 돌아와서 훑기 시작하면 금방 눈에 띌 수밖에 없다. 좀 더 미로 같은 곳으로 가서 숨어야 한다. 놈들이 지칠 때까지.
“일어나. 가자.”
민구는 테라의 팔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두 사람이 움직이는 기척을 느낀 젠킨스도 뒤뚱거리며 일어나서 자신의 두 무릎을 두드린다.
투투투투투― 투투투투― 위이이잉―
헬리콥터의 프로펠러 소리가 들려온다. 꽤나 가깝다. 세 사람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통행로를 벗어나자 좁은 도로와 야트막한 울타리가 나온다. 울타리 너머에는 운동장과 길쭉한 학교 건물들이 있다.
“읏!”
도로를 가로질러 인도의 가로수 그늘 아래 몸을 숨긴 민구는 위쪽을 올려다보며 긴장된 숨소리를 뿜어냈다.
헬리콥터가… 한 대가 아니다.
조금 전 그들이 보았던 커다란 라이트가 달린 헬리콥터가 강가에서 날고 있고, 또 다른 헬리콥터가 또 그들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떠 있다. 길거리에서 오래 돌아다닐 수 없는 상황이다.
“학교라… 별로 안 좋아하는데…….”
민구가 투덜댔다. 하지만 지금은 몸을 피할 만한 곳이 그 정도뿐이다. 나머지 조그만 건물들 안으로 숨었다가는 꼼짝도 못하고 갇힐 게 자명하다.
민구는 테라를 번쩍 들어 울타리 너머 운동장 구석에 내려놓고, 울타리를 넘는 젠킨스를 뒤에서 받쳐 줬다.
“우웃! 우웃! 이게 꽤 높군!”
젠킨스가 두 다리를 공중에서 버둥거린다. 민구는 이를 악물고 녀석의 커다란 엉덩이를 밀었다.
쿵―
젠킨스가 육중한 소리와 함께 건너편에 떨어진 걸 확인한 민구는 재빨리 울타리를 뛰어넘었다.
투투투투투투투― 위이이이잉―
그러는 동안에도 두 대의 헬리콥터는 영동대교 부근을 바쁘게 오가고 있다. 곧 이쪽으로도 저놈의 서치라이트가 비춰지기 시작할 것이다.
“들어와!”
허술하게 잠겨 있던 문을 발로 차서 연 민구는 테라와 젠킨스를 안으로 잡아 끈 뒤, 다시 문을 닫았다.
전형적인 학교 건물이었다. 긴 복도의 한쪽으로 나란히 늘어서 있는 수많은 교실들, 그리고 화장실.
스릉―!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강하게 느껴지는 악취에, 민구는 일단 마세티부터 뽑아 들었다. 이 안에 꽤 많은 괴물들이 있다.
물론 그놈들보다 더 고약한 괴물들은 지금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그들의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중이긴 하지만…….
“바짝 붙어…….”
버릇처럼 테라에게 말하던 민구는 이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테라는 안전하다. 이 건물 안에서 괴물들 때문에 마음을 졸여야 하는 것은 그와 젠킨스뿐이다.
“창문이 없는 곳으로 가자.”
민구는 마세티를 앞세운 채 길고 긴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그롸아아아―
저 멀리 어둠 속에서 괴물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 ☆ ☆
“배를 물가에 댔던 적이 없다고 했으니까 분명히 물에 뛰어들었던 거야! 그리고 기슭까지 헤엄을 쳐서 갔을 테지!”
오 박사는 조종사에게 큰 소리로 떠들어 댔다. 조종사는 그의 말이 뭘 의미하는지 알아듣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헤엄을 쳤든, 뛰어 올라갔든 그게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답답하긴! 당연히 차이가 있지! 생각해 봐! 세 놈이나 물에 흠뻑 적셔졌다가 기어 나왔다고! 그중 한 놈은 덩치가 우리 둘 합친 것만큼이나 커다랗고! 그러니까 산책로 아스팔트가 물기로 젖어 있는 구역이 분명히 있을 거야! 이렇게 무작정 뺑글뺑글 돌지만 말고 산책로를 차분히 훑어!”
오 박사는 조종사를 타박하며 다시 망원경을 들어 올렸다. 저 멀리 2호기가 날아오고 있고, 3호기는 이미 조금 전부터 합류해서 그와 함께 이 근방을 훑는 중이다.
“저기! 저기 봐! 저거! 물에 젖은 거 맞지?”
영동대교 부근의 산책로에서 물에 젖은 구간을 발견한 오 박사가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점점이 떨어진 물방울들이 공원의 잔디까지 이어졌다는 걸 확인했지만, 그 뒤에 어디로 갔는지는 전혀 짐작할 수 없다.
“여기에 있지는 않을 거야! 숨으려고 했으니 당연히 이보다는 멀리 갔겠지! 도로 위 좀 비춰봐!”
오 박사는 열심히 지휘를 하며 이리저리 헬리콥터를 몰았다. 그러던 중에 자신이 굉장히 어리석게 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가지고 있는 자원조차 충분히 활용하고 있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숨은 인간들을 찾는 일에 아주 특화된 놈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걸 기억해 냈다. 정말로 요긴한 놈들이다.
“2호기!”
오 박사는 고가도로 주변을 훑어보고 있는 2호기를 호출했다.
― 치익, 부르셨습니까, 여기는 2호기. 치이익.
“그래.”
오 박사는 입술을 삐쭉거리며 말했다.
“본사로 돌아가서 인간 샘플들 다 내려놓고, 개 싣고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