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393화 (393/449)

3장 좀비 세계의 최강자 (3)

“끄응…….”

통로를 배회하는 좀비들을 만날 때마다 테라는 벽에 바짝 붙어 걸었다. 놈들과 몸을 부딪치는 한이 있어도 난간 쪽으로는 가지 않았다. 혹시라도 이 소중한 탄약상자를 물에 빠뜨릴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모두의 희망을 앗아가는 게… 내장이 삐져나온 피투성이 좀비들 사이로 몸을 비비고 들어가는 것보다 더 무서웠다.

낑낑대며 탄약상자를 옮기던 테라는 뱃머리 근처까지 도착하고 나서야 자신이 이걸 옆구리에 낀 채 사다리를 오를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8킬로그램… 조금 큰 수박 한 통의 무게. 그걸 머리 위로 들어 올려 3.5미터 위로 정확하게 내던질 만한 힘도 그녀에게는 없다.

“줄이… 있어야겠어.”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테라는 구명용 튜브를 배의 난간에 고정해 뒀던 줄을 풀어냈다. 그리고 그 한쪽 끝에 탄약상자의 손잡이를, 반대쪽 끝에 자신의 신발을 묶었다.

“신발을 던질 거예요! 받아주세요!”

테라는 지붕을 향해 외친 후, 회전력을 더하기 위해 신발을 무게 추 삼은 긴 줄을 빙빙 돌렸다.

부웅― 부웅―

조금씩 줄을 더 풀어주며 돌리던 그녀는 순간 깜짝 놀라 손의 힘을 뺐다.

턱―!

줄에 묶인 채 돌던 신발이 근처 좀비들의 머리를 때린다. 줄을 올릴 생각에만 집중해 있느라, 좀비들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본의 아니게 좀비들을 공격하게 된 테라는 바짝 얼어붙어 숨을 죽였다. 하지만 좀비들의 행동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하아아… 하아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신발을 다시 주워 올린 테라는 지붕 위를 향해 힘차게 내던졌다. 처음 두 번은 거리 조절과 힘 조절에 실패했지만, 이내 신발이 지붕 너머로 사라지고 큰 소리가 들려왔다.

“잡았습니다!”

“올려주세요! 줄 끝에 총알 상자를 매달았어요!”

테라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지붕 위의 군인들은 줄을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녀에게는 그렇게도 무겁던 탄약상자가 쭉― 쭉― 위쪽으로 올라간다. 테라는 탄약상자가 무사히 다 올라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다리 난간을 잡았다.

사람들이 줄을 끌어 올리기 위해 앞으로 몸을 기울이자, 좀비들은 또 생난리를 쳐 대기 시작했다. 테라는 어깨를 움츠린 채 빠르게 사다리를 올랐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녀의 손이 사다리 상단부에 닿자마자 양쪽에서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벼락같이 그녀를 잡아 끌어 올렸다.

네… 네… 테라는 반쯤 넋이 나가 대답하며 바닥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짚었다.

엄살을 부리고 싶지는 않지만, 꾹 참아왔던 긴장이 풀리자마자 똑바로 설 수가 없다. 다리는 떨리고, 머리는 어지럽다.

아래에 내려가 있는 동안 어찌나 무섭고 두려웠는지, 그녀의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이 더운 밤인데도 쉼 없이 몸이 떨린다.

“흐으으… 흐으으…….”

테라는 신음 소리를 내며 좀비들의 체액과 피로 더럽혀진 자신의 어깨를 두 팔로 감싸 안았다. 너무나 춥고 떨려서 그렇게라도 해야 조금 진정이 될 것 같았다.

“저기 샌들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걸로 좀 닦으세요, 테라 씨. 그리고 괜찮으시다면 이거라도 걸치세요.”

그녀의 신발을 돌려주던 병사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수통과 군복 상의를 내민다. 테라는 고맙다는 말을 하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사람들과 눈이 마주쳤다.

지붕 위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두려움과 경외심이 가득한 눈으로, 마치 성녀를 대하듯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

아이돌이었기에 늘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에 익숙했던 그녀에게조차 새로운 경험일 정도로, 그 시선들은 강렬하고 또 간절했다.

테라는 그런 눈빛들이 부담스러워 서둘러 일어났다. 그러고는 수통과 군복을 손에 든 채 지붕의 뒤쪽으로 걸어갔다. 그녀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은 감히 신체 접촉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처럼 좌우로 벌려서며 길을 튼다.

“물러나 주십쇼! 사격하겠습니다!”

테라가 가져온 탄약을 K―3에 연결한 사수가 양각대를 바닥에 펼치며 말했다. 다른 병사들이 그 주변을 둘러싸고 앉아 안전 구역을 확보했다.

총구가 겨눈 위치는 배의 좌현 방향. 총알이 관통하더라도 딱히 큰 피해가 없을 만한 각도를 찾아 잠시 총구를 돌리던 K―3사수가 마침내 방아쇠를 당겼다.

타타타타타― 타타타타― 타타타타― 타타타타타―

듣기만 해도 체증이 뻥 뚫리는 것 같은 시원한 총소리가 밤하늘을 가르며 울려 댄다. 그와 동시에 아래쪽을 배회하던 좀비들은 머리가 꿰뚫리거나, 갈비뼈가 박살 난 채 난간 쪽으로 밀려났다.

풍덩―! 풍덩―!

총알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강물에 빠지는 좀비들도 속속 등장했다.

테라는 고개를 숙인 채 그 총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조금 전 자신의 바로 옆에 가만히 서 있던 좀비들이, 자신이 가져온 총알에 의해 모두 사살되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기분이 꽤 복잡해졌다.

“봤지, 테라 양? 이 눈빛들? 구세주를 만난 인간은 이런 눈빛을 짓게 되지. 나는 난치병의 신약을 임상 실험하면서 몇 번이나 경험해 봤어. 좀비에 대한 이론적 이해가 전혀 없지만, 이들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을 거야. 테라 양이 기적이자, 구원이라는 것을 말이야. 등 뒤에 바짝 따라붙은 죽음으로부터 떼어내 줄 유일한 사람이지. 아니, 어쩌면 이미 사람이라 부르는 것조차 송구스러울지도… 후후후.”

젠킨스는 곁으로 다가와 의기양양하게 떠들어 댔다. 그의 거들먹거리는 태도를 보면, 좀비들 사이를 헤치고 탄약을 찾아온 것이 테라가 아니라 젠킨스라는 착각이 들 정도다.

테라가 대꾸하지 않은 채 수통의 물을 손에 받아 몸에 묻은 좀비들의 피를 닦아내고 있자, 젠킨스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이야, 테라 양. 무지한 인간들의 숭배는 항상 구세주를 죽이는 끔찍한 결과로 이어지지. 신화를 봐도 그렇고, 역사를 봐도 그래. 그런 점을 감안한다면, 내가 지금까지 왜 테라 양 본인에게조차 비밀을 지켜왔는지 이제 짐작이 될 거라고 생각해. 귀하가 실험실의 해부용 침대로 보내지는 걸 막고 싶었던 거야.”

시끄럽게 귀를 울리는 총소리, 그 사이사이에 섞여 들어오는 젠킨스의 끔찍한 말들…….

테라의 미간이 걱정 때문에 찡그려진다. 그 모습을 확인한 젠킨스는 더욱 집요하게 떠들어 댔다.

“어쩌면 귀하는 지금 지구상에 남아 있는 마지막 널 키드일지도 몰라. 귀하의 정체는 테라 양 본인이나 그 주변의 사람들이 감당하기에 너무도 중요하고 위대해. 그리고 오직 JL만이 테라 양의 그 고귀한 육체와 정신을 온전히 지켜주면서도, 동시에 백신을 만들어서 저들을 구원해 내줄 수 있지.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보통의 멍청한 인간들이 소유하지 못한 경험과 기술, 그리고 비전이 있거든… 으흠! 큼! 큼!”

계속 사악하게 지껄여 대던 젠킨스는 갑자기 말을 끊고 헛기침을 하며 옆으로 물러났다. 난폭한 흉터사내, 민구가 다가와 노려보고 있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괜찮아?”

젠킨스를 한 번 쏘아보고 나서 민구가 테라에게 물었다. 테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냥… 그 옆을 스쳐서 걸어가는 것뿐인데도 너무 무서웠어요. 여기까지 오는 내내 좀비들과 한데 엉켜서 싸웠던 분 앞에서 그런 소리 하려니까 부끄럽네요.”

테라는 쑥스러움을 감춰보려고 애써 미소를 지었다. 저 사다리를 내려갔다 온 이후, 자신을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확연히 달라졌다는 게 부담스럽다.

이제 운 좋게 용산에 합류한다고 해도…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같은 대우를 받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여기를 빠져나간 뒤에 어디로 갈지 미리 마음을 정해둬. 너와 함께 갈 테니까.”

민구는 총소리가 잠시 뜸해진 사이를 타서 조용히 말했다. 이 계집애가 보여준 기적은 너무도 크고 강렬한 것이어서, 순식간에 사방으로 소문이 퍼져 나가게 될 것이다. 들불처럼 소문이 퍼지고 난 뒤에는 그의 힘으로 지켜줄 수 없다.

물론 아예 소문이 나지 않도록 하는 극단의 방법도 있기는 하지만… 서로의 등을 맡기고 함께 싸웠던 녀석들의 목을 따는 건 그의 입맛에 맞지 않다.

그것만은 피하고 싶지만, 그러나 그것이 그녀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면 못할 일도 아니다.

테라가 괴물들 사이를 걸어가는 그 모습을 보았을 때, 민구의 머릿속에는 ‘운명’이라는 하나의 단어가 콱 들어와 박혔다.

운명 따위… 그전까지 한 번도 믿지 않았고, 앞으로도 믿을 일이 없을 것 같았건만, 이 아이와의 만남만은 다르다.

테라가 안전한 장소에 닿을 때까지 지켜주는 것으로 자신의 죗값을 치르도록, 누군가가 미리 짜둔 것 같다. 세상을 이 꼴로 만든 죗값을…….

“어디로…라고 해봐야… 달리 갈 데가 없어요. 만약 용산철로에 도착하게 되면, 저는 어떻게 될까요?”

테라는 핏기 없는 얼굴을 쓸어내리며 중얼거렸다.

“소문이 날 테니까 아마 높은 누군가가 데려가려고 하겠지.”

“역시 그렇겠죠…….”

테라는 한숨을 내쉬었다. 군대 수뇌부에서 그녀를 데려간다면 최고의 의료 기술을 가진 기업과 협력을 할 것이고, 결국 또 태양이 끼어들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태양은… 싫다!

그렇다고 해서 젠킨스를 따라 JL로 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곳은 대한민국의 법이 통하지 않을 것 같아 더 무섭다.

“꼭 지금 결정하지 않아도 돼, 갈 길이 머니까… 그냥 미리부터 생각을 해두라는 거야.”

그렇게 말하고 난 뒤, 민구는 군인들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투투투투― 투투투― 투투투투―

K―3는 그동안에도 열심히 총알을 날려 대고 있었다. 실탄이 없던 때에 엄청나게 많은 것처럼 느껴졌던 좀비들은 이제 그 수가 확연히 줄어들어서, 손으로 헤아릴 수 있을 만큼만 남았다.

관통되어 너덜너덜해진 유람선 좌현의 모습에서 얼마나 많은 총알이 집중적으로 퍼부어졌는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아, 젠장… 안에 숨어 있는 새끼들 왜 이렇게 안 나와? 이쪽에서 보여야 어떻게 처리를 하지. 내려가서 잡아야 하나…….”

K―3 사수가 투덜거렸다. 이제 주력이라 할 만한 규모는 다 잡았지만, 아직도 객실 내 어딘가 숨어 있는 놈들이 문제였다. 정말 몇 마리 때문에… 섣불리 아래로 내려갈 수 없는 상황이다.

병사들이 플래시를 이리저리 비춰봐도 건물 틈이나 엔진 주변에 박힌 채 나오지 않는 놈들은 잡아낼 수가 없다.

“어쩌면… 이게 답일 수도 있겠군. 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내가 내려가는 걸로 하지.”

애태우는 군인들을 가만히 보고 있던 민구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두 개비나 한꺼번에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그러고는 두어 모금을 깊이 빨아들인 후, 깨진 유리 지붕을 통해 객실 안으로 던져 넣었다. 객실 바닥에서는 담배 연기가 조금씩 피어오른다.

“지금 그게 뭐하신 거…….”

너무도 뜬금없는 민구의 행동에 군인들이 의아해하고 있을 때, 객실 구석으로부터 한 마리씩, 두 마리씩 좀비들이 걸어온다. 좀비들은 자석에 끌리는 것처럼 담배를 향해 모여든다.

“이건… 무슨 원리입니까? 왜 담배에 저렇게…….”

K―3 사수가 물었다. 민구는 고개를 저은 뒤,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주워들은 이야기라서 나도 원리 같은 건 몰라. 그냥 저 괴물 놈들이 담배에 끌린다고 하더군.”

민구는 이번에도 두어 모금을 빤 뒤, 조금 전 담배를 던졌던 위치 부근에 다시 집어 던졌다.

“그러니까 밖에 나가게 되면 담배 피울 생각 같은 건 않는 게 좋아.”

민구의 말을 들은 K―3 사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일단 방아쇠부터 당겼다. 저 괴상한 검투사의 이상한 학설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건, 지금 눈앞에 보이는 좀비들을 다 처지하고 난 다음에 생각해도 충분할 테니까.

투투투투― 투투투투― 투투투투투―

객실의 유리 지붕은 산산조각으로 박살 나고, 의자들 사이는 좀비들의 시체로 채워졌다. 머리가 벌집처럼 꿰뚫린 채 죽어 있는 좀비들의 머리 위로 담배 연기가 뽀얗게 피어오른다.

☆ ☆ ☆

“으아! 진짜 돌아버리겠네! 저것들, 대체 왜 저렇게 질겨! 우리한테 무슨 원수가 진 것도 아닐 텐데!”

흔들리는 장갑 트레일러 위에서 밤톨은 뒤를 돌아보며 악을 썼다. 다른 병사들도 마찬가지다. 다들 이를 악물고 온갖 저주와 욕설을 퍼부어 댔다. 그래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그롸아아아아―

장갑차의 엔진 소리를 뚫고 들려올 만큼 커다란 포효!

규모 넷에 가까운 엄청난 수의 좀비들이 그들이 탄 장갑 트레일러를 쫓아 달려오고 있다. 잠실에서부터 따라 붙어온 놈들인데 속도는 또 왜 그리 빠른지, 시속 30킬로미터를 상회해서 달리고 있는데도 도무지 떨쳐 내지를 못한다.

“좀 더 빨리 못 가나? 아우, 답답해!”

트레일러 지붕 위의 병사들은 모두 가슴을 친다. 하지만 장갑차 승무원들이 딱히 늑장을 부리거나 그들의 애를 태우기 위해 속도를 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나름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다만, 주어진 상황이 영 좋지 않다.

일단 후방에 달고 끄는 무게가 너무 무겁다. 대형 컨테이너에 민간인들을 꽉꽉 채우고, 그 위에도 병력을 태웠으니 이미 견인해야 할 무게의 한계까지 달했다.

더 빨리 달릴 수 있어도 문제다. 넓은 개활지를 똑바로 내달리는 것이 아니라 좁은 도로에서 계속 좌회전과 우회전을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이보다 더 속도를 올렸다가는 컨테이너가 전복될 수도 있다.

부우우웅―

사거리를 만난 장갑차는 다시 급격한 좌회전을 했다. 다른 곳으로는 들어갈 수가 없다. 잠실을 점령한 규모 여섯 좀비들이 이미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으으윽!”

컨테이너가 휘청거리자 지붕 위의 병사들과 컨테이너 내부의 민간인들이 동시에 비명을 내지르며 난간을 움켜쥔다.

지금 여기에서 떨어졌다가는 그대로 황천행이다. 뒤쪽에서는 여전히 천 마리 가까운 좀비들이 바짝 달라붙어 뛰어오고 있다.

잠실 쉘터의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방어선을 사수하다가 막차를 타고 탈출한 그들에게 상황은 결코 호의적이지 않았다. 길목마다 좀비들에게 점령당해 버린 뒤여서 탄천을 넘어가지 못했을 때부터 일이 심하게 꼬여 버렸다.

심지어 실탄조차 간당간당하는 상황이다. 장갑차 내부에 무장한 병력과 예비 탄창이 있지만, 장갑차를 세우고 그걸 꺼내 지붕 위의 병사들에게 전달해 줄 만큼의 여유가 없다. 이 상태대로라면 도대체 언제 목표 지점인 선로에 닿을 수 있을지 전혀 장담이 안 된다.

“저 개새끼들은 뭐한다고 아까부터 계속 따라다니는 거야? 가만히 구경만 할 거면서?”

병사들 중 하나가 고개를 위로 들고 헬기를 향해 욕설을 퍼부었다. 천천히 상공에서 따라오는 태양 그룹의 헬기. 아까부터 영 신경이 거슬렸던 참이다.

처음엔 공중에서 내려다보며 경로라도 알려주나 싶었지만, 이렇게 정신없이 헤매고 있는 걸 보면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그렇다고 지원 사격을 해주거나, 하다못해 라이트로 전방을 밝혀주는 것도 아니다. 태양 그룹의 헬기는 도움이 되는 일은 하나도 하지 않으면서 그저 그들을 따라오고 있을 뿐이다.

“아으~ 이 개새끼들아! 그만 따라와!”

뒤쪽에서 달려오는 좀비들의 모습에 질린 김 이병이 K―2를 들어 발작적으로 놈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투투둑― 투투투― 투투투― 투투투―

당기는 동안에는 잠깐 기분이 풀리는 것도 같았지만, 그래봐야 아무런 변화를 주지 못한다. 쫓아오는 좀비들은 너무 많고, 그가 날릴 수 있는 총알의 수는 한계가 명확하다. 정신없이 덜컹거리는 트레일러 위에서 쏘는 총알의 명중률도 낮을 수밖에 없다.

“쏘고 나니까 속이 시원하냐? 이 멍청한 새끼야, 실탄 아끼라고 그렇게 잔소리를 했는데, 그걸 그냥 냅다 갈겨? 그래봐야 흠집도 안 난다고!”

김 이병이 겨우 정신을 추슬러서 방아쇠에서 손을 떼자 밤톨이 타박을 한다. 하지만 진심으로 심하게 나무라지는 않았다. 녀석이 그렇게 하는 것도 다 이해할 수 있다.

이놈들… 하루 종일 너무 압박을 심하게 받고 오래 싸워서, 다들 반쯤 미쳐 있다.

“잘 들어! 이러다가 정말 실탄 한 발이 아쉬울 때가 온다고! 그러니까 일단은 그냥 꾹 참아! 쏴봐야 소용이 없단 말이야, 이 새끼들아!”

밤톨은 난간을 꽉 움켜쥐고 자신의 분대원들에게 다시 당부를 했다. 그가 불어오는 바람 소리보다 더 크게 악을 쓰는 동안에, 장갑 트레일러는 좀비들에게 점령당한 거리를 돌고 돌아서 송파대로를 달리고 있었다.

사실 장갑차장이 그 경로를 선택한 건 아니었다. 그냥 좀비들을 피해서 무작정 내달리다 보니, 토끼몰이당하듯 그곳으로 몰렸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어쨌든 송파대로는 비교적 뻥 뚫려 있었고, K―21 장갑차는 망설이지 않고 그 길을 택했다.

“어, 이 길…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습니다?”

속도를 높인 장갑 트레일러가 잠실대교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하자 밤톨의 곁에 앉아 있던 무전병이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그러네… 건대로 이동하던 날에 뒈질 뻔했던 데잖아.”

밤톨도 고개를 끄덕였다. 구석으로 내몰려 있는 자동차 한 대, 가로등 하나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바로 여기에서 민구와 그의 분대원들이 목숨을 걸고 좀비들과 싸웠었다.

‘그러고 보니 그 형님은…….’

밤톨은 감개가 무량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면서 민구를 생각했다. 자신이 전해 준 칼 가방… 그걸 쓸 일이 없었으면 제일 좋겠지만, 오늘 같이 급박한 상황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분명 또 한 번 엄청난 칼춤을 추었으리라…….

그와 선로에서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그 옆에 있던 테라도 밝은 곳에서 한 번 더 자세히 봤으면 좋겠다고, 밤톨은 생각했다.

물론 자신들이 건너고 있는 다리의 바로 아래에서 민구 일행을 태운 배가 빙글빙글 돌며 표류하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까지 삥 돌아갑니까? 이러면 용산역에서 엄청 멀어지는 거지 말입니다.”

일전에 건대로 이동했을 때와 정확하게 같은 경로를 따라 장갑 트레일러가 이동하자, 무전병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내 생각에도 이대로 용산까지 가는 건 무리야. 건대로 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거기 중대 병력이 있으니까 지원도 받을 겸… 전에 봤잖아, 게이트 안으로만 들어가면 든든하더구만.”

밤톨이 자신의 바람을 중얼거리며 뒤쪽을 돌아보았다. 귀찮고 꼴 보기 싫은 것들은 여전히 그들을 쫓아오고 있었다.

하늘엔 태양 그룹의 헬리콥터, 도로 위에는 울부짖는 좀비들…….

바로 그때, 트레일러를 쫓던 태양 그룹의 헬리콥터는 밤톨이 보지 못한 것을 주시하는 중이었다. 잠실대교 남단 쪽에서 불 꺼진 유람선 한 척이 빙글빙글 돌며 표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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