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좀비묵시록 82-08-392화 (392/449)

3장 좀비 세계의 최강자 (2)

휘이이잉―

악취를 가득 싣고 강바람이 불어온다. 테라는 사다리 난간을 잡고 서서 가만히 아래쪽을 바라보았다. 어두컴컴한 뱃머리에는 열댓 마리의 좀비들이 배회하고 있다.

그 뒤 통로에도 또 그만큼이, 통로를 지나 객실 안으로 들어가면 그보다 두 배는 되는 좀비들이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하나같이 피투성이에 끔찍하게 훼손된 모습. 멀리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움츠러든다. 하지만 내려가서 총알을 가져와야 한다. 테라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하는 수밖에 없다!

“테라 씨, 거기에 서 있지 마요! 위험합니다!”

테라의 몸이 앞으로 기울자 군인들이 나서서 그녀를 사다리 뒤쪽으로 당겨온다. 지붕 모서리에 다른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내자 좀비들은 금세 다시 포효하며 발광하기 시작했다.

“저놈 말을 믿어도 되는 거야? 나는 아직 납득 못했어.”

젠킨스를 내팽개치고 온 민구도 테라를 만류했다.

“에? 저놈이라니… 저 외국인 말인가요? 저 사람이 뭐라고 했는데요? 왜 좀비들이 테라 씨에게 반응을 하지 않는 건지 저 사람이 압니까?”

군인들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쏠린다.

이 모든 사람들에게 내 비밀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말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테라는 겁먹은 눈동자로 주변을 돌아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제가… 좀비에게…….”

“노우! 노우! 테라 양! 제발! 자세하게 다 이야기할 필요 없어! 그냥 특이 체질이라고 해! 귀하를 실험체로 만들어 버릴 거야!”

테라가 입을 열려 하자 바닥에 쓰러져 있던 젠킨스가 시끄럽게 떠들어 댔다. 놈을 한 방 걷어차려는 민구를 테라가 잡았다. 더 이상 거짓말을 쌓으려 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어차피 잠시 후에는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좀비들 사이를 걸어가야 하는데…….

“제가 좀비에게 물린 다음에 이상한 체질이 되었나 봐요. 좀비들 눈에는 제가 보이지 않는대요.”

테라는 배에 힘을 주고 또박또박 말했다. 민구를 제외한 모든 이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물렸다니…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요. 언제요? 오늘요?”

테라를 위아래로 훑어보던 병사가 물었다. 테라는 차분히 대답했다.

“아니요. 아주 예전에요.”

“됐어, 그런 소리는. 그것보다 그래서 네가 내려가면 물리지 않는다고? 그게 확실한 거야?”

민구는 이야기가 곁다리로 새지 않도록 차단하고 가장 중요한 것을 물었다. 테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젠킨스 씨 이야기로는 그렇대요. 그리고 아저씨도 보셨잖아요. 제가 몸을 내밀어도 저 좀비들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거. 그러니까 제가 가서 가져오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간다니… 호, 혹시 아래로 내려간다고요?”

군인들이 깜짝 놀라 물었다. 테라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대답했다.

“네, 제가 가서 총알을 가져올게요.”

“아, 아니… 잠깐만요! 안 될 것 같은데… 아무리 그래도 저기를…….”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몰라 당황스러웠지만, 군인들은 황급하게 만류했다.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군인들이 바로 곁에 있으면서 민간인 여자를 앞세울 수는 없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테라를… 그럴 것 같으면 대체 뭘 위해서 싸우는 거란 말인가…….

끼이이잉― 쿠웅―

그들이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에도 배는 또 한 번 크게 선회해서 수중보를 들이받고 돌았다. 어느새 익숙해진 사람들은 난간을 꽉 잡으면서 버텼지만, 배의 상황은 점점 더 심각해진다. 침수돼서 잠긴 쪽은 점점 더 심하게 기울고 있다.

“잘난 척하지 말고 그냥 협조나 해! 어차피 시간이 너무 지나면 그것조차도 아무 소용이 없어져! 너희들이 아무리 힘자랑을 해봐도 좀비들 상대로 하는 거라면 테라 양의 발끝조차 따라가지 못해! 이 멍청이들아!”

난간에 매달린 젠킨스는 밉살스러운 소리들을 잔뜩 늘어놓았다. 하지만 그중 한 가지는 분명히 맞는 이야기였다. 시간을 너무 끌면 안 된다. 그랬다가는 침몰하게 된다.

“가볼게요. 너무 늦게 가면 어차피 다 죽어요.”

테라는 자신의 팔목을 잡고 있는 민구에게 말했다. 민구는 여전히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도대체 어떻게 저 괴물들이 못 알아볼 수 있단 말인가.

“만약 저놈들이랑 스치거나 부딪치면 어떻게 되는 거야? 또 큰 소리를 내거나 하면 어떻게 되는 거고? 그런 것도 전혀 모르면서 무작정 내려가겠다는 거야?”

민구가 물었다. 테라가 듣기에도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아서, 그녀는 젠킨스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젠킨스는 조금도 걱정하지 말라는 듯 편안히 대답했다.

“테라 양, 귀하가 뭘 하든, 어떤 소리를 내든 저 좀비들이 귀하를 인식하는 경우는 없어. 공격하는 일은 더 없지. 이건 앱테크나야의 우리 연구소에서 이미 실험을 했던 거니까 의심할 필요가 없어. 달리 널 키드를 기적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지.”

젠킨스는 마치 자신이 가지고 있던 귀한 보석을 모두에게 선심이나 쓰는 것처럼 과장되게 거들먹거렸다. 테라는 한 가지를 더 물었다.

“그러면 플래시를 가지고 가도 될까요? 너무 어두워서요.”

“플래시?”

젠킨스는 아래쪽의 좀비들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

“당연하지. 그냥 이렇게 생각해 봐. 만약 어떤 사람이 번쩍거리는 플래시와 시끄러운 알람을 달고 좀비로 변했다면… 그가 좀비들 틈에서 다른 좀비들로부터 공격 받게 될까? 아니지. 아니라는 걸 우리는 다 알고 있어. 테라 양이 좀비들 틈에서 위험해지는 건, 귀하가 뛰어가는 좀비의 앞을 갑자기 막아섰을 때뿐이야.”

“저놈,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확실한 말만 하라고 해. 여차하면 혓바닥을 잘라 버릴 테니까.”

민구가 끼어들며 끔찍한 소리를 했다. 그의 실력이나 성격으로 미루어 단순히 허언으로만 들리지 않는 이야기라서 더 무시무시하다.

테라는 흥분한 민구가 젠킨스 쪽으로 가지 못하도록 막아선 뒤, 군인으로부터 플래시를 빌렸다.

“다녀올게요. 괜찮을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테라는 사다리의 난간을 잡고 뱃머리 쪽으로 등을 돌린 뒤, 모두를 향해 인사를 했다. 이게… 이게 마지막일 수도 있다…….

다들 먹먹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을 때, 젠킨스가 다정스럽게 부탁을 해온다.

“테라 양, 이 미련한 인간들이 조언해 주지 않았겠지만, 탄약통을 줍기 전에 먼저 조타실로 가서 속도를 좀 낮춰줘야 해. 그래야 충돌할 때 배가 입는 손상이 지금보다 적어질 거야. 그리 어렵지 않아. 이 정도 크기의 배라면 방향타 옆에 손잡이처럼 생긴 레버가 하나뿐일 거야. 그걸 중앙으로 오기 직전까지로 끌어내리면 돼. 간단하지?”

테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때, 아래층의 좀비들이 미친 듯이 울어 대기 시작했다.

“헉!”

깜짝 놀란 테라는 숨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발을 헛디뎠다. 심장이 콱 얼어붙는 것 같았다. 플래시가 아래로 떨어지고, 발아래에서는 좀비들이 펄쩍펄쩍 뛰어오른다.

“잡았어!”

민구가 그녀의 손목을 잡고 끌어 올렸다. 그녀가 다시 올라와 파랗게 질린 얼굴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동안 지붕 위의 모든 사람들은 분노한 채 젠킨스를 돌아보았다.

“제기랄! 또 나야? 이 멍청이들아! 남에게 책임을 돌리기 전에 생각이란 걸 좀 해라! 왜 좀비가 소리를 지르고 반응하냐고? 너희들이 배웅한다고 거기에 서 있었잖아! 테라 양을 보고 울부짖은 게 아니야! 너희들 때문이라고! 테라 양이 편하게 내려가기를 원하면 너희는 이쪽으로 와 있어! 나처럼! 그녀가 가야 하는 방향에 좀비들을 모이게 하지 말라고!”

젠킨스는 손가락으로 테라와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위치를 가리키며 짜증스럽다는 듯 큰 소리를 질러 댔다.

이번에는 신기하게도 통역조차 필요 없었다. 사람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몇 번의 손가락질로 알아들을 수가 있었다.

“말이 되는 것 같기는 하네요… 우리를 보고 난리를 피운 거라고 하면…….”

민간인들이 먼저 고개를 끄덕이고, 젠킨스가 앉아 있는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군인들이, 마지막으로 민구가 남았다. 그사이 좀비들의 포효는 다시 잠잠해졌다.

“걱정 마세요. 이번에도 또 난리를 치면 곧바로 올라올게요.”

테라는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민구를 안심시켰다. 민구는 떼어지지 않는 발을 들어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그러면서도 비명이 들리기만 하면 언제라도 칼을 뽑고 뛰어내릴 채비를 하고 있었다.

이 계집애가 괴물들 틈에서 혼자 무서워하며 죽게 내버려 두지는 않을 것이다.

“하아아… 하아아…….”

테라는 조심스럽게 사다리 아래로 발을 내렸다. 한 발짝, 한 발짝… 발아래의 좀비들은 조용하다. 이제 놈들이 뛰어서 팔을 뻗기만 하면 그녀의 발목을 잡아챌 수 있을 만큼 가까워졌다.

“괜찮아. 괜찮아… 너는 특별해…….”

사다리 난간을 꼭 붙잡은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발이 아래로 내려가지 않으려 들 때마다 테라는 스스로에게 속삭였다. 등 뒤에서 갑자기 좀비들이 손을 뻗어올까 봐 두려워 심장은 계속 빠르게 뛴다.

턱―

발이 바닥에 닿았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바닥에 쓰러져 죽어 있는 좀비들의 시체에 닿았다. 사다리에 기어 올라오려는 좀비들을 계속 쏴 죽였기 때문에, 그 주변은 온통 좀비들의 시체로 덮여 있었다.

“후우우~”

테라는 몇 번이고 심호흡을 해서 마음을 진정시킨 후, 사다리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떨어져 있는 플래시를 집기 위해 이를 악문 채 좀비 시체들 사이에 손을 집어넣었다.

“으으으~”

테라는 울상을 지으며 신음 소리를 냈다. 내장과 뇌가 터져 나와 있는 피투성이 시체들, 게다가 아직 체온이 다 식지 않아서 따뜻하다. 그 틈을 비집고 플래시를 다시 주워 올렸다.

그롸아아아아―

등 뒤를 지나는 좀비가 울부짖는다. 테라는 흠칫 놀라 엉덩방아를 찧고 커다래진 눈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좀비는 하늘로 고개를 치켜든 채 아무 의미 없이 포효하는 중이었다. 그녀를 보고 있는 게 아니다.

테라는 눈을 질끈 감고 몇 번이나 숨을 내쉬며 팔딱이는 가슴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하고 난 뒤에야 겨우 풀려 버린 다리에 힘을 주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테라는 조심스레 걷기 시작했다.

“우와! 진짜야… 좀비들이 다 조용해.”

위쪽에서 긴장한 채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이 수군댄다. 그 놀라운 기적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어서 테라 쪽으로 다가서려는 사람들을 군인들이 잡아당겼다. 자신이 믿는 신을 찾으며 감사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눈으로 보고 있으면서도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저 작고 가냘픈 여자아이가 좀비들의 사이를 뚫고 걷고 있다. 아주 평화롭게, 조금의 저항도 없이.

“오오, 그래. 이런 그림이야… 상상했던 것보다 더 아름답군, 테라 양…….”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고개를 돌려 테라의 모습을 훔쳐보던 젠킨스도 만족한 듯 미소를 지었다.

그를 제외한 모두가 신기해하면서도 가슴을 졸였지만, 그중 민구가 가장 긴장이 가득한 채 아래를 노려보고 있었다.

“후우우~ 후우우~”

사방에 가득한 좀비들. 테라는 천천히 숨을 몰아쉬며 조심조심 그 사이를 걸었다. 플래시로 바닥을 비추고, 좀비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노력했다.

젠킨스는 어떤 소리를 내도 상관없다고 했지만, 막상 그가 널 키드라고 해도 여기에 내려오면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숨소리를 내는 것조차도 망설여질 만큼 무섭다.

늘어서 있는 좀비들을 헤치며 지나는 동안 계속해서 소름 끼치는 상상이 그녀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다시 돌아갈 수 없을 만큼 멀리 왔을 때, 갑자기 좀비가 그녀를 돌아보는 상상. 그리고 오래전 들었던 귀신 이야기에서처럼, 이렇게 중얼거릴 것만 같다.

얘, 진짜 우리가 자기를 못 보는 줄 아나 봐.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면, 가뜩이나 덜덜 떨리던 다리에서 힘이 쭉 빠진다.

정말로 그렇게 돌아보면 어쩌지? 갑자기 내 손을 덥썩 잡아서 끌어당기면 어쩌지?

깜짝 놀라게 될까봐 무섭다. 그렇게 두려워질 때마다 테라는 이를 꽉 깨물고 스스로를 다잡았다.

‘아니, 아니야… 괜찮아. 젠킨스 씨 말을 믿어……. 그리고 지금 네 주변에 저렇게 멍하니 서 있는 좀비들의 반응을 믿어……. 너는 안 보여.’

계속 해서 스스로를 다그치며 억지로 걸음을 옮기던 테라는 객실 문 앞에서 멈춰 섰다. 내장이 다 터져 나온 좀비가 객실로 들어가는 문을 장승처럼 딱 가로막고 서 있다. 좀처럼 움직일 생각도 없는 것 같다.

‘어쩌지… 다른 문으로 돌아가야 하나…….’

테라는 망설였다. 플래시 불빛을 받은 놈의 피투성이 모습이 너무도 끔찍해서 정말이지 가까이 가고 싶지 않다. 하지만 좁은 통로도 이미 다른 좀비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억지로 밀치고 이동해야 한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차라리 이쪽이 빠르다.

“아으으…….”

문 앞의 좀비를 밀치기 위해 손을 뻗는데, 저절로 신음 소리가 나온다. 테라는 울상을 지으며 놈의 몸 중에서 아직 체액이나 피가 묻지 않은 부분을 밀었다.

툭.

하지만 좀비는 꿈쩍도 않는다. 더 세게, 더 적극적으로 밀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싫어… 싫어… 제발 좀 물러나.’

테라는 눈을 꾹 감고, 좀비를 밀기 위해 힘을 줬다. 좀비는… 대체 무슨 고집이 난 건지, 그 자리를 쉽게 내주려 들지 않는다.

결국 시체의 몸통에 손을 얹고 거의 1분 가까이 씨름을 한 후에야 테라는 객실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우웁! 읍!”

손이 미끄러져 실수로 내장을 짚었을 때의 느낌 때문에 테라는 와들와들 떨며 구역질을 했다. 허리를 숙이고 있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스윽― 스치며 또 다른 좀비가 지나간다.

“허억!”

테라는 기겁을 하며 몸을 추스르고, 아까 지붕 위에서 봤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객실 내부에는 통로보다 훨씬 더 많은 좀비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움직임도 활발하다.

아마도 유리 지붕을 통해 언뜻언뜻 내비치는 사람들 때문에 계속 자극을 받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좀비들의 시체도 몇 구나 쓰러져 있다. 통로나 뱃머리에 있던 좀비 시체들이 배가 충돌할 때마다 난간 사이로 떨어져 나간 것에 비해, 이 안의 시체들은 계속 벽에 튕겨가며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아아~”

테라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시체들과 좀비들 사이를 걸어 배의 앞쪽으로 나아갔다.

문이 박살 난 조타실 내부에는 좀비 세 마리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깨진 유리창 사이와 방향키 옆에 고꾸라진 시체들이 몇 구나 보인다.

“레버… 레버…….”

플래시를 천천히 좌우로 움직이던 테라는 젠킨스가 말했던 것처럼, 방향타의 오른쪽 아래에서 레버를 발견할 수 있었다.

테라는 좀비들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서 천천히 손을 뻗었다. 그때, 배가 또 한 바퀴를 돌아 수중보를 들이받았다.

쿠웅―

측면에서 가해지는 강력한 충격!

시체를 밟지 않기 위해 어정쩡한 자세로 서 있던 테라는 중심을 잃고 벽 쪽으로 밀려 나갔다. 그리고 그녀의 몸 위로 좀비 세 마리와 두 구의 시체가 확 덮쳐든다.

“꺄악!”

꾹 참고 있던 비명이 결국 터져 나왔다. 좀비에 깔린 테라는 몸을 잔뜩 움츠린 채 손으로 얼굴부터 막았다. 하지만 채 1초도 지나지 않아 자신이 정말로 안전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녀가 그렇게 비명을 지르고, 몸을 움찔거리는 동안에도 좀비들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그저 벽을 짚고 다시 일어나려고만 할 뿐이다.

쿵쾅쿵쾅―

지붕 위가 발소리로 시끄럽다. 그리고 사람들이 떠들어 대는 소리도 들려온다.

“내려가면 안 됩니다!”

테라는 그 소동이 민구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뛰어내리려 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임을 깨달았다. 여기로 내려오면 그 사람은 죽는다. 테라는 좀비들의 얼굴을 옆으로 밀어내면서 다급하게 외쳤다.

“오지 마세요! 전 괜찮아요! 그냥… 좀 놀란 것뿐이에요!”

“정말인가?”

물어보는 민구의 목소리는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그 역시 섣불리 뛰어내릴 수도 없다. 그랬다가는 테라가 지금껏 했던 모든 노력이 다 물거품이 되고 만다.

“네… 괜찮아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끄응~!”

좀비들의 얼굴이 바로 코앞에 와 있고, 그들의 몸이 자신의 팔다리를 누르고 있지만, 테라는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낑낑대며 좀비들을 밀어보려 애를 썼다.

잘 안 된다. 다들 왜 그렇게 무거운 건지…….

잠시 후, 배가 잠시 반대로 쏠리자 그녀에게 실려 있는 좀비들의 무게가 확 줄어들었다. 테라는 얼른 그들의 몸을 밀쳐 내고 일어섰다.

“하아아~ 정말…….”

테라는 끔찍했던 조금 전의 상황을 떠올리며 안전한 자리를 찾아 이동했다. 저절로 솟아난 눈물 때문에 가뜩이나 어두운 시야는 더욱 흐려져 있다.

좀비들과 얼굴을 비볐다…….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중앙에 오기 직전까지 내리라고 했었지.”

테라는 계기판 쪽으로 다가가 레버를 당겼다. 그렇게 하고 나니, 정말로 회전하는 속도가 꽤나 줄어드는 게 느껴졌다.

이제 탄창을 가지러 갈 차례다. 피투성이 조타실을 빠져나온 테라는 의자들을 타 넘고 좀비들의 움직임을 피해 탄약 상자가 있는 곳까지 도착했다.

“끄응차!”

탄약 상자를 들어 올린 테라의 코끝에서 땀이 뚝뚝 떨어진다. 무게는 대략 8킬로그램 정도. 충분히 가져갈 수 있다. 지금까지 무섭고 힘이 들었던 것에 비한다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이제 이걸 가지고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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